동물들이 아파요 - 세계우수창작동화 100선 18
마르타 코시 글.그림 / 예지현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도시는 깨끗해지지 않는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9] 마르타 코시, 《숲이 아파요》(푸름이동사모,2004)

 


 도시는 깨끗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도시는 이 나라에 없습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이웃한 다른 나라에도 깨끗한 도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라는 곳이 되면, 지구별 어디에서나 지저분한 터전이 되고 만다고 느낍니다.

 

 한국땅 서울에는 청계천이 있답니다. 청계천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청계천에서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울사람은 청계천 물을 ‘먹는물’이나 ‘씻는물’로 삼지 않아요. 댐에 가둔 물을 수도꼭지를 틀어서 쓰고, 이 물조차 정수기를 달아 다시금 걸러야 합니다.

 

 물을 마실 수 없는 도시에서는 바람도 마실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물을 마시지 못할 뿐더러 바람조차 마시지 못하니, 이곳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몸이 튼튼할 수 없습니다. 서울에는 크고작은 병원이 곳곳에 수없이 늘어설밖에 없어요.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도시이기에, 아프고 만 사람들을 낫게 해 준다며 돈벌이를 하는 병원이 그득그득 있어야 해요.


.. 깊은 숲 속 마을에 동물들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어요 ..  (3쪽)

 


 시골이라 해서 어디나 맑은 물과 바람이지는 않습니다. 요즈음은 도시가 넘치고 넘치면서 공장을 시골로 옮기거든요.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땅값이 올라, 땅값 싸면서 물 마음껏 쓰고 버릴 수 있는 시골로 공장을 옮기거나 새로 짓거든요. 더구나, 도시 한복판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드뭅니다. 한갓지며 깨끗한 시골자락을 밀고 깎아 골프장을 짓습니다. 골프장 잔디를 늘 푸르게 한다며 풀약을 어마어마하게 치고 물을 허벌나게 씁니다. 제주섬에 있는 골프장에서 쓰는 물은 삼다수라는 먹는샘물 회사가 뽑아올리는 물보다 몇 곱이 많아요. 제주섬이 깨끗하다 하고 관광하기 좋은 데라 하지만, 골프장 넘치는 제주섬이라 한다면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기는 힘들다고 느껴요.

 

 곧, 도시사람은 도시에 바글바글 모이면서 스스로 삶터를 옥죄고, 시골은 시골대로 공장과 골프장으로 더럽히거나 망가뜨립니다. 게다가, 큰도시와 큰도시를 더 빠른 길로 잇는다며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끊임없이 새로 지어요. 이러는 동안 시골사람은 도시사람 때문에 삶터를 잃거나 빼앗깁니다. 시골마을이 짓밟혀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곁으로 보이는 시골마을은 모조리 도시사람 때문에 짓이겨진 슬픈 터전입니다.


.. 동물들의 병은 낫지 않았어요. 어제는 사슴과 다람쥐가 죽었어요. (멧골 아이) 리사는 큰 소리로 엉엉 울었어요 ..  (11쪽)

 


 도시는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도시는 돈을 놓고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깨끗해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환경부담금을 내도록 한대서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돈이 모일 뿐입니다. 도시에는 발전소가 없습니다. 도시에는 쓰레기 묻거나 태우는 터가 몇 없습니다. 도시에는 핵발전소 폐기물 묻는 터가 없습니다. 도시에는 ‘위해 시설’이나 ‘유해 시설’을 들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에 숲을 이루도록 흙땅을 건사하는 일이란 보이지 않습니다.

 

 숲을 마련하지 않고, 그나마 남은 논밭이랑 얕은 멧자락을 허물어 아파트를 짓는 도시입니다. 이러한 도시가 깨끗해질 일이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도시는 날마다 더 더러워집니다. 도시는 날마다 더 지저분한 먼지를 온누리로 흩뿌립니다. 도시사람은 자가용을 몰아 도시뿐 아니라 이웃 시골마을까지 더럽힙니다. 자가용을 몰면서 골골샅샅 누비는 동안 정갈하던 시골자락마저 지저분해집니다.

 

 장비를 갖춰 산을 타니까 산이 망가집니다. 자전거를 몰고 산을 오르내리니까 산이 깎입니다. 나쁜벌레 막는다며 헬리콥터로 농약을 온 들판과 멧자락에 뿌려대니까 숲이 몸살을 앓습니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 종이로 쓴다거나 가구를 짠다거나 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이마저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숨을 마음껏 들이쉴 만한 터전이 못 됩니다.


.. 야콥은 숲 속을 나와 어느 도시에 도착했어요. 도시의 수많은 공장 굴뚝에서는 하루 종일 새까만 연기가 나왔어요. 또 거리의 자동차들은 쉴새없이 더러운 연기를 뿜어내며 달렸어요. 콜록콜록! 야콥은 숨쉬기조차 힘들었어요 ..  (12쪽)

 

 


 돈을 벌자면 도시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도시로 가야 더 크나크다 하는 돈을 벌겠지요. 요즘 같은 누리에서 시골로 가면 돈구멍이 없다고 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시골에서 돈벌이를 얼마나 하겠습니까. 시골에서 푸성귀를 일구거나 곡식을 거두어도 도시에 내다 팔아야 돈을 벌 테니까, 도시하고 안 이어지면 돈구멍이 없어요.

 

 그러나, 돈 아닌 삶을 생각한다면 도시에서 삶찾기는 까마득합니다. 밥이 되는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잊는 도시에서 어떤 삶을 찾고 어떤 사랑을 느끼며 어떤 사람을 사귀는가요.

 

 오늘날 사람들은 삶이 아닌 돈을 찾으니까 도시로 몰리기만 해요. 오늘날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사랑 아닌 지식을 가르치려 하니까 더 커다란 도시 더 커다란 학교로 내몰기만 해요. 오늘날 사람들은 어깨동무할 이웃이랑 동무를 사귀기보다는 이름값 드날리는 데에 기울어지니까 수수한 꿈과 믿음이랑 동떨어지고 말아요.

 

 왜 아이들한테 자동차를 익숙하게 하나요. 왜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하고 사귀도록 하나요. 왜 아이들이랑 흙을 밟으며 먹을거리 일구는 삶을 잊는가요. 왜 아이들이랑 도란도란 이야기꽃 노래잔치 벌이는 꿈 같은 하루하고 멀어지나요.

 

 가수가 되어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들이어야 사랑스럽습니다. 공무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스스로 땀흘려 일하는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아이들이어야 믿음직합니다. 있는 집에 시집장가 가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꿈과 사랑과 믿음이 얼크러진 좋은 넋으로 살아가는 짝꿍을 만나는 아이들이어야 아름답습니다.


.. (멧골 아이 야콥은) 광장으로 달려가 큰 소리로 외쳤어요. “왜 착한 내 친구(멧짐승)들을 괴롭히는 거예요?” 그때 도시의 대표가 나와서 말했어요. “네 친구들이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계속 말썽을 피웠단다. 그런데 넌 어디서 왔니?” “저는 숲 속 마을에 사는데, 동물들이 아파서 약을 구하러 왔어요. 여기서 날아온 나쁜 공기 때문에 동물들이 아파요. 제발 도시를 깨끗하게 해 주세요!” ..  (19쪽)

 


 마르타 코시 님 그림책 《숲이 아파요》(푸름이동사모,2004)를 읽습니다. 2002년에 ‘예지현’이라는 데에서 처음 나왔다가 사라진 《동물들이 아파요》가 2004년에 새옷을 입었으나, 《숲이 아파요》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은 전집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로 찾아 읽을 길이 없습니다.

 

 이 그림책은 아주 단출하고 짤막하게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첫째, 숲은 즐거웠습니다. 둘째, 숲이 갑자기 앓아눕습니다. 셋째, 숲을 살리려고 길을 떠납니다. 넷째, 도시에 닿아 숨이 막혀 죽을 뻔합니다. 다섯째, 도시에서 따돌림받고 들볶이는 들짐승을 만납니다. 여섯째, 도시사람더러 제발 서로서로 살아남을 길을 찾자고 외칩니다. 일곱째, 숲으로 돌아온 아이는 숲동무랑 예전처럼 조용하면서 아름다이 살아갑니다.

 

 숲이 아프고 도시가 아픈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공장과 자가용, 이 두 가지입니다. 공장과 자가용으로 대표하는 도시살이란 바로 ‘돈’입니다. 돈 때문에 공장을 짓고, 돈 때문에 공장을 지으면서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늘어납니다. 공장 일꾼이 늘어나며 공무원도 늘어나고, 이것저것 끝없이 늘리고 늘리면서 도시는 몸집이 커질 뿐, 이 커진 몸집을 어찌 건사해야 하는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돈은 끝없이 쌓이는데, 끝없이 쌓이는 돈으로 무얼 해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날이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제성장을 이룬들 밥을 나누지 않으면 부질없습니다. 수출을 많이 한들 땅을 나누지 않으면 덧없습니다. 맑은 물과 바람과 햇살과 흙과 풀을 누릴 수 있는 터로 이 나라를 돌보아야 합니다. 내가 살고 네가 살며 우리가 살아가자면, 도시사람 아닌 숲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도시를 버리고 숲을 살려야 합니다.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4345.2.18.흙.ㅎㄲㅅㄱ)


― 숲이 아파요 (마르타 코시 글·그림,김요한 옮김,푸름이동사모 펴냄,200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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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별과 살아갈 때에
별빛을 받는다.
달과 살아갈 때에
달빛을 받는다.

 

짙누런 땅에
뿌리내리는
풀과 나무가 꽃을 피우면
파란하늘 흰구름은
낮 동안
고운 내음 듬뿍 마시고는
깊은 밤에
맑고 환한 빛살
어두운 마을에
곱게 나누어 준다.


4345.2.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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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17 22:59   좋아요 0 | URL
참 아름다운 시군요.
된장님처럼 그런 곳에 사셔야 이런 시를 짓는 게 가능할 것 같아요.
아름다운 경치가 마음을 아름답게 물 들여 놓겠죠.ㅋ

파란놀 2012-02-18 06:52   좋아요 0 | URL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꼭 도시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아름다울 터에서 살아가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176번째 글을 올리고 보니 174번째 글을 빼먹었다. -_-;;;; 바보로군...

 


 책으로 보는 눈 174 : 자연을 버린 책읽기

 


 케라 에이코 님이 그린 만화책 《あたしンち(私の家》가 있습니다. 이 만화책 이름을 한국말로 옮기면 “우리 집”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책을 한국말로 옮긴 곳에서는 “우리 집”도 “우리 엄마”도 아닌 “아따맘마’로 옮겼어요. 케라 에이코 님은 ‘와타시노’를 줄여 ‘아타(아따)’로 적고, 이녁 어머니와 식구들이 부대끼는 삶을 만화로 빚어 “우리 집”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따맘마”라는 한글판 만화책 이름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밝힐 수 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아따맘마”는 일본말 ‘아따’랑 영어 ‘맘마’를 더한 이름입니다. 일본사람이 영어쓰기를 좋아한대서 “우리 엄마”를 “아따맘마(私の母)”처럼 적을는지 모르지만,  이 만화책을 내놓은 분은 영어로 이름을 적지 않았어요. 한글판 “아따맘마”에 나오는 사람들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붙이고, 어머니 아버지 고향을 전라남도로 삼으면서, 왜 책이름은 엉뚱하게 붙여야 했을까요.

 

 수수한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수수하며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다가 자꾸자꾸 책이름이 걸립니다. 우리한테는 참말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멋지거나 아름다운 글과 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카와 아키코 님이 쓴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 펴냄,2011)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일본에 있다는 ‘숲 유치원’, 곧 자연 놀이터에서 자라며 뛰도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도시 물질문명이 한국보다 훨씬 앞선 일본은 ‘숲 유치원’ 또한 한국보다 훨씬 앞서 태어납니다. 일본에서는 ‘숲 유치원’ 말고도 ‘멧골학교’도 꽤 일찍부터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는 ‘생활협동조합’도 아주 일찍부터 이루어졌습니다. ‘푸른정당(녹생당)’ 또한 참으로 일찍부터 만들었고, 일본 책마을은 아이와 어버이와 교사가 나란히 읽을 그림책을 꽤 예전부터 알차게 빚었습니다.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24쪽).”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한국땅에서는 ‘아이 낳은 어버이’가 자연을 어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 몸가짐과 눈길이 달라진다고 느낄 일이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줄어들며, 온통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 가운데 서울과 경기도에서 북적거려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동물 캐릭터 같은 인공적인 것에 아주 익숙하다(25쪽).”는 말마따나, 오늘날 아이들은 ㅃㄹㄹ라느니 무엇이라느니 새겨진 신이나 옷이나 밥그릇이나 놀잇감을 뀁니다. 아이들은 자연하고 동떨어집니다. 아니, 아이들에 앞서 어른부터 자연하고 등을 져요. 자연하고 등을 지니 자연을 파헤치는 정책이 끊이지 않는데, 이보다 ‘사람인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말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도우며 품앗이하는 넋이 잊힙니다.

 

 집이 배움터가 되지 못하는 요즈음 한국입니다. 집이 삶터 노릇하고 동떨어지는 요즈음 한국이에요. 여기에, 마을도 학교도 공공기관도 문화시설도 배움터나 삶터나 사랑터나 만남터나 어울림터나 꿈터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4345.1.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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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17 23:03   좋아요 0 | URL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24쪽).”- 이것, 맞아요.

제가 밤길에 고양이를 무서워했더니 어릴 적 아이도 고양이를 무서워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턴 예쁜 야옹아, 하면서 불러 주고 그랬어요. 아이가 고양이를 예뻐하라고... 동물을 사랑하자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랬다기보다 무엇을 무서워한다는 게 대단한 스트레스잖아요. 하지만 무엇을 예뻐하면 행복해지잖아요. 요즘은 아이가 개나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자고 조를 정도이니, 성공한 것이죠. 제가 잘 했죠? ㅋ

파란놀 2012-02-18 06:51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랑은 삶 곳곳에 예쁘게 자리하면서
아이들하고 기쁜 웃음을 피어냈으리라 믿어요~~
 


 책으로 보는 눈 176 : 작은 마을 작은 책숲

 


 어릴 적부터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어른이 된 내가 돈을 많이 번다면, 많이 버는 돈만큼 땅을 사야겠다고 꿈을 꾸었어요.

 

 땅장사를 하려는 마음으로 사고프다는 꿈이 아닙니다. 내가 조금씩 사들이는 땅뙈기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도록 놓아 주고 싶다는 꿈입니다. 어린 나는 ‘내셔널 트러스트’ 같은 이름은 알지 못했습니다만, 정치를 꾸리거나 경제를 이끈다는 사람들이 땅을 옳게 건사하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몹시 슬펐어요. 왜 땅뙈기로 장사를 하지? 왜 좋은 땅에서 살아갈 좋은 생각을 안 하며 애꿎은 땅놀이를 하지?

 

 내가 돈을 모을 수 있을 때에는 숲이 숲 그대로 이어가고, 논밭은 논밭 그대로 돌보며, 멧자락과 갯벌과 바다는 멧자락과 갯벌과 바다 그대로 살리고 싶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따로 지키는 숲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스레 싱그러이 살아나는 숲을 바랐어요. 나는 이 들판과 숲과 갯벌과 바다와 멧자락이 어우러지는 한쪽에 조그맣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아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고마워 듀이》(걷는책,2011)를 읽습니다. 첫머리에 “내가 사랑하는 아이오와 주 스펜서는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인구 1만 명의 작은 마을이다(32쪽).”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도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사람이 되어 작은 숲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참 예쁘겠다고 느낍니다. 굳이 커다란 도시를 이루어야 한 나라가 대단해지지 않을 테니까요. 애써 커다란 도시로 찾아가야 내 밥벌이를 이룬다거나 내 뜻을 편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자긍심을 가진 농부의 후예였으나 1950년대에 대형 탈곡기와 바인더 기계가 등장하면서 농업의 성격과 경제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큰 농기구를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농작물 생산량은 그대로이고 가격은 떨어지니 농장의 근간이 흔들렸다(355쪽).” 하는 이야기를 읽다가 바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느낍니다. 아니, 이 나라에서 똑같이 일어난 일은 먼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깨닫습니다.

 

 조용히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즐거울 텐데요. 내 손으로 흙을 일구어 내 몸을 살찌울 밥을 나 스스로 얻으면 기쁠 텐데요. 왜 커다란 농기계가 나와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왜 경제와 산업과 수출과 무역을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더 맛난 밥을 먹어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아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멋스레 보인다는 옷을 걸쳐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빠르고 번쩍거리는 자가용을 굴려야 할는지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은 《자연기행》(까치,2008)이라는 책에서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꿀풀이나 다른 꽃을 따서 향기로운 꿀을 빨아먹곤 했었다(3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꼭 시골이 아니더라도 흙을 밟거나 푸나무랑 벗삼던 사람이라면, 꿀풀도 먹고 까마중도 먹었어요. 풀내음과 꽃내음을 코로 입으로 손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였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작은 시골마을 보금자리에서 햇살과 바람과 흙과 나무와 풀과 멧새가 골고루 들려주는 노래를 마음껏 들으면 좋겠습니다. (4345.2.17.쇠.ㅎㄲㅅㄱ)

 

-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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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하늘 빨래줄, 하얀 기저귀

 


 아이 둘을 낳아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 아니었으면, 여느 골목집 사진에 널쩍하게 펼쳐진 하얀 기저귀천이 바람에 흩날리는 사진을 바라보며 ‘어, 여기 아기가 있구나. 참 복닥거리며 바쁘고 재미나겠구나.’ 하고 느끼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 오줌기저귀를 빨아 햇살 머금는 마당에 내다 널며 파란하늘을 올려다볼 때에, ‘이렇게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나오면서 햇살을 느끼고 햇살을 기저귀에 담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첫째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나서 둘째 아이를 맞이했습니다. 어느덧 다섯 해째 기저귀 빨래를 잇습니다. 둘째가 기저귀를 떼자면 이태는 있어야 하니, 앞으로 두 해를 더해서 일곱 해 동안 기저귀 빨래를 하며 살아간다 하겠군요. 그즈음 셋째를 낳는다면 아마 열 해 남짓 기저귀 빨래로 한삶을 누리겠구나 싶은데, 셋째를 낳을는지 못 낳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넘치는 빨래를 어찌 짊어지느냐 싶으나, 생각해 보면 첫째 때와 견주어 둘째 기저귀 빨래는 한결 수월하게 해요. 셋째가 우리한테 찾아오면 셋째 기저귀 빨래는 두 아이 기저귀 빨래보다 조금 수월하게 하리라 생각해요.

 

 마당에 드리운 후박나무 빨래줄에 대나무 바지랑대를 겁니다. 기저귀가 한결 잘 마르라고 바지랑대를 받치고는 기지개를 켭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기저귀 말려 주는 파란하늘 햇살이 참 곱다고 느낍니다. 파란하늘 사이사이 하얗게 붓질하는 구름을 바라보며,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누런 흙땅 사이사이 하얗게 펄럭이는 기저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햇살을 머금고 바람을 마시며 흙내음 맡는 기저귀는 아이가 엉금엉금 기는 나날 곁에서 예쁘게 어루만지는 포근한 손길이 되어 주기를 빕니다. (4345.2.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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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2-17 16:42   좋아요 0 | URL
햇살이 참 따스해요 보여요,

파란놀 2012-02-17 18:07   좋아요 0 | URL
오늘 어제도 햇살은 따스한데
바람은 싱싱 부네요.. ㅠ.ㅜ

하늘바람 2012-02-17 18:17   좋아요 0 | URL
참 이쁘네요. 하늫도 기저귀도
그런데 빨아 쓰시기 참 힘드실텐데
정말 대단하셔요

파란놀 2012-02-17 18:52   좋아요 0 | URL
빨래는 그리 힘들지 않아요.
이래저래 하다 보면,
아이들하고 더 오래 더 따스히
놀 겨를을 제대로 못 내는 일이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