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걸레 빨기


 어제 낮, 충청북도 충주 멧골집 살림짐 꾸리기를 마무리짓는다. 여태껏 숱하게 살림집을 옮기면서 짐차 들어오기 앞서 모든 짐을 다 꾸린 적은 처음이다. 언제나 이삿날까지 짐을 다 꾸리지 못해 허둥지둥했다. 이제 처음으로 아주 느긋하게 이삿날을 맞이한다.

 내가 더 많이 땀흘리고 더 많이 품을 들였으니까 살림짐 꾸리기를 마무리지었다고 할 수 없다. 먼저, 옆지기가 아이들하고 새 보금자리에서 씩씩하고 즐거이 여러 날 지낸다. 다음으로, 옆지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자잘하며 손 많이 가는 일을 기꺼이 해 주셨다. 내 둘레 좋은 사람들이 크고작은 손길을 보태어 우리 도서관 새로 여는 일에 큰힘이 되어 주었다. 이 모두가 어우러지기에 나는 아주 홀가분하게 책짐과 살림짐을 꾸렸고, 오늘 새벽 드디어 이 짐꾸러미를 커다란 짐차에 가득 싣고 새 보금자리로 떠날 수 있다.

 옛 멧골집에서는 물을 쓰지 못한다. 물을 쓸 수 있으면 걸레를 바지런히 빨아 집 청소를 할 텐데, 물을 쓸 수 없으니 먼지만 얼추 훔치고 만다. 나중에는 흙먼지를 한쪽으로 몰아 놓기만 한다. 여관으로 걸레 여덟 장을 챙겨 온다. 여관에서 몸을 씻으며 걸레 여덟 장을 빤다. 짐을 꾸리며 한 번도 못 빨며 쓰던 걸레였기에 시커먼 구정물이 끝없이 나온다. 한참을 빨아 구정물이 거의 안 나오도록 한다. 여관 방바닥에 가지런히 펼친다. 걸레들은 금세 마른다.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는다. 이제 이 걸레들은 새터에서 짐을 끌르며 다시 제몫을 해 주겠지. 고맙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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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 누리기


 좋은 책을 누릴 줄 안다면, 둘레 사람들한테 좋은 책에 서린 좋은 넋을 차근차근 나눌 수 있어요. 좋은 책을 누리지 못한다면, 나부터 좋은 넋을 북돋우지 못하고, 내 둘레 사람들한테 좋은 넋이 서리는 책을 나누지 못해요.

 내가 좋은 꿈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따로 온 마디 즈믄 마디 말을 읊지 않더라도 좋은 꿈이 내 둘레 사람들한테 시나브로 스며들어서 예쁘게 태어나요. 내가 좋은 꿈하고는 동떨어진 채 사랑 없이 살아갈 때에는, 따로 온 마디 즈믄 마디 말을 그럴듯하게 읊거나 외친다 하더라도 내 둘레 사람들 누구나 좋은 꿈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해요.

 좋은 삶이라면 좋은 책을 마다 할 수 없지만, 좋은 삶이라면 스스로 좋은 책을 알아채고 느껴요. 좋은 삶이라면 내 오늘 하루가 온통 좋은 이야기책이에요. 좋은 삶이라면 내 좋은 삶을 이루는 좋은 사랑으로 좋은 마음이 책씨처럼 싱그러이 새로 자라나요.

 좋다고 하는 책을 열·백·천·만 권 선물받거나 장만한다 하더라도, 내 하루를 오늘부터 좋은 사랑으로 보듬지 않는다면, 나한테는 무거운 책짐만 잔뜩 생기고 말아요. 삶은 삶꿈이에요. 삶은 삶짐이 될 수 없어요. 삶은 삶사랑이에요. 삶굴레가 될 수 없어요.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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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짐을 나르려고 옛 집에 왔다. 잠은 여관에서 잔다. 옛 집은 보일러를 쓸 수 없고 물도 쓰지 못한다. 참 딱하다. 그러나 어쩌는 수 없지. 집으로 돌아가면 주문할 생각에 살포시 담아 본다. 2권으로 끝날는지, 2권에서 3권으로 이어질 새 이야기가 담길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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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0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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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5] 학교옷

 아이들이 중학교 들어갈 무렵 학교옷을 맞춥니다. 똑같은 모양과 빛깔로 맞춘 학교옷을 입은 아이들이 버스나 자가용이나 두 다리나 자전거로 학교에 갑니다. 옷을 똑같이 맞춘 만큼, 학교에서 이 아이들한테 베푸는 앎조각이란 모두 똑같습니다. 똑같은 대학교에 시험성적 더 잘 받은 아이가 들어가게끔 힘씁니다. 아이들은 학교옷을 똑같이 맞춰 입기에 한결 예뻐 보이는지, 아니면 학교 밖에서 미운 짓이나 못난 짓을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지키거나 다스리려고 틀에 맞추는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옷을 따로 맞추지 않을 때에도 끔찍한 입시지옥이 그대로 있을까 궁금합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다 다른 옷을 입고, 다 다른 꿈에 걸맞게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어른한테서 배울 수 있다면, 이리하여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며 다 다른 삶을 예쁘게 일굴 수 있으면, 우리한테 대학교란 어떤 값이나 보람이나 뜻이 있을까요. 학교옷을 입고 운동장에서 뒹굴 수 없습니다. 땀내 물씬 나는 옷을 한 주 내내 입기 어렵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논밭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바다에서 고기를 낚을 수 없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어린 갓난쟁이 동생을 돌볼 수 없습니다. 학교옷 똑같이 입은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는 길만 걷습니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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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고 싶은 터


 멧자락을 곁에 낀 보금자리란 참으로 좋다. 멧자락과 함께 들판이 찬찬히 펼쳐진 자리에 있는 보금자리란 더없이 좋다. 물줄기가 시원하게 흐르는 골짜기가 함께 있으면 아주 좋다. 물줄기가 바다로 이어져 갯벌과 모래밭까지 한 시간쯤 걸어서 찾아갈 수 있으면 그야말로 좋다.

 옆지기가 살아가고 싶은 보금자리를 마음속으로 그린다. 나는 어떠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가고 싶었나 곰곰이 헤아린다. 돌이키면, 나는 책방 곁 작은 보금자리를 생각했을 뿐, 정작 내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보듬을 만한 보금자리를 꿈꾼 적이 없다. 오직 마음밥 하나 먹는 일에만 생각을 쏟았다.

 내가 오늘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를 만나지 않았으면, 아마 책방하고 가까운 도시에서 내처 살아가지 않았으랴 싶다. 마음밥만 먹으면서 막상 몸은 썩 튼튼하지 못한 삐뚜름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돌아본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내가 살아갈 만한 터를 곱씹는다. 옆지기하고 함께 낳은 아이들과 지내며 이 아이들하고 사랑스레 살아갈 만한 터를 되새긴다.

 그래, 멧자락, 들판, 물줄기, 바다, 갯벌, 모래밭 골고루 있을 때에 얼마나 따사롭고 포근할까. 멧자락에는 온갖 나무가 골고루 자라고, 나와 살붙이 모두 풀과 나무가 베푸는 선물을 곱게 받으면서, 나 또한 풀과 나무한테 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나날이라면 얼마나 기쁘며 고마울까. 흙을 밟으면서 흙으로 벽을 쌓고, 나무를 만지면서 나무로 기둥과 지붕 뼈대를 올리며, 돌을 쓰다듬으며 너른 돌판을 지붕으로 얹는 집이라면 가장 어여쁘겠지.

 그러고 보면, 이와 같은 보금자리에는 한 가지 깃들 수 없다. 바로 건널목. 내가 우리 살붙이하고 느긋하게 마실을 다니는 터에는 건널목이 깃들 수 없다. 나는 건널목 있는 마을이 싫다. 건널목 없이 길을 걷고 싶다. 건널목 없이 이곳과 저곳을 오가고 싶다.

 자동차를 안 몰고, 자동차를 애써 타려 하지 않으나, 짐을 싣는다든지 가끔 얻어탄다든지 한다. 오늘날 자동차가 아예 없을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늘 자동차를 타야 할 까닭이 없다. 꼭 타야 할 때에만 고마이 살짝 얻어타면 된다. 그러니까, 이 자동차들 때문에 찻길이 넓어진다든지, 건널목이 생긴다든지 할 일이란 없다. 드문드문 아주 드물게 달릴 자동차에는 빵빵이가 없어야 한다. 시골마을 달리는 자전거에도 딸랑이가 없어야 한다. 시골마을 자전거는 앞에 가는 사람을 딸랑이로 놀래켜서는 안 된다. 시골마을 자동차는 앞에 걷는 사람을 빵빵이로 비키라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사람이 앞에서 걸어가면 뒤에서 천천히 가다가 스르르 옆으로 비켜 가야 할 자전거요 자동차이다.

 사람은 사람을 생각할 때에 사람이다. 삶을 생각하는 나날이어야 삶이다. 사랑을 아끼는 손길이어야 사랑이다. 조용히 예쁘게 살가이 꿈을 누리는 보금자리가 좋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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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1-08 22:20   좋아요 0 | URL
하긴 차가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없어도 그만이죠.정말 좁은 땅덩어리에 차가 너무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