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꽃 책읽기

 


 아직 겨울인 2월 끝무렵은 동짓날을 생각하면 해가 퍽 길지만, 봄이나 여름을 헤아리면 해가 꽤 짧습니다. 낮 서너 시를 지나면 차츰 기울고, 너덧 시쯤 되면 뉘엿뉘엿 해질녘입니다. 해질녘 아이와 함께 고샅길을 걷다가 아침에 들여다보던 봄까치꽃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앙증맞도록 작은 꽃송이는 거의 다 오므렸습니다. 이제 따순 햇볕이 고개 넘어 지니, 이 꽃들도 꽃잎을 앙 다물며 새근새근 잠들고 싶은 듯합니다. 이러다가 새벽을 지나 동이 트며 차츰 따뜻한 새날이 찾아오면, 밤새 오므리던 꽃잎을 벌려 새 햇살을 넉넉히 받아먹겠지요.

 

 새벽에 잠을 깨고 아침에 활짝 펴서 낮에 흐드러지며 저녁에 곱게 잠듭니다. 고요한 하루이고 즐거운 삶입니다. 맑은 소리이고 좋은 가락이며 기쁜 꿈입니다.

 

 생각해 보면, 식물도감에 ‘활짝 핀 꽃망울’ 그림이나 사진만 실을 뿐, ‘잠자는 꽃망울’ 그림이나 사진을 싣지 않습니다.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꽃을 다루는 이들이 활짝 피는 꽃망울처럼 고요히 잠드는 새근새근 꽃자락을 나란히 보여주는 일이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두 얼굴이나 두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온삶을 살피고 온넋을 헤아리며 온빛을 담을 줄 알아야 합니다. (4345.2.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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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5 10:37   좋아요 0 | URL
저 아래 피었던 녀석들이 저렇게 옹크리고 자는건가요?
진짜 그런건가요? 이파리는 비슷한데.... 피곤한가봐요, 다들, 잘두 자는군요. ^^

파란놀 2012-02-25 11:04   좋아요 0 | URL
저 아래하고 같은 꽃이에요.
저녁이 되면 다들 이렇게
새근새근 자요~

진주 2012-02-25 20:52   좋아요 0 | URL
그쪽은 많이 따스한가봐요.
봄까치 꽃이 벌써 피었네요.
여기선 개불알꽃이라고 해야 알아 들어요^^;;

파란놀 2012-02-25 22:05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
꽃이 봉오리를 굳게 다물었네요~
 
태일이 2 - 거리의 천사
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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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느질하며 배우는 어머니 삶
 [만화책 즐겨읽기 122] 최호철, 《태일이 (2)》

 


 둘째 아이 기저귀싸개 풀린 실을 꿰맵니다. 지난달에 하나는 꿰매었고 다른 하나는 미처 다 꿰매지 못한 채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갑니다. 이웃집에서 얻어 첫째 아이가 먼저 쓰고 둘째 아이가 물려받아 쓰는 기저귀싸개도 실이 많이 풀려 꿰매야 합니다. 이런저런 집일이 많다며 미적미적 미루며 실올 풀린 채 쓰다가 그만 꽤 많이 풀어집니다.

 

 밤나절에 꿰매고 새벽에 더 꿰맵니다. 아침에 마무리를 짓고 다른 기저귀싸개도 꿰매야 합니다. 한창 바느질을 하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내 어린 날 양말이나 옷을 얼마나 꿰매어 주었는가를 하나하나 떠올리지 못합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틈틈이 꿰매셨는데, 네 식구 양말이나 속옷이나 겉옷을 꿰매느라 얼마나 잠을 줄이셨는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옆지기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옆지기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들은, 또 이분들을 낳은 어머니들은, 먼먼 지난날 하루를 어떻게 보내었을까 궁금합니다. 하루 내내 어떤 일을 하며 삶을 누렸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이른새벽에 일어나 늦은밤까지 손가락 하나 쉴 겨를 없지 않았으랴 생각합니다. 등허리 한 번 두들길 틈이 없는 하루이지만, 삶을 사랑하는 노래를 고이 건사하며 살림을 일구지 않았으랴 생각합니다.

 


- “작은집에서 주는 일이나 열심히 해요. 애들 공부시키고 좀더 기반 잡을 때까지 딴생각 말아요!” “이 여편네가 재수 없게! 하청 일 백날 해 봐야 기반은커녕 골병 들고 쪽박 차기 십상이야! 기회 있을 때 잡아야지!” “그리고 태일아! 큰집에 들렀다가 네가 다닐 학교 좀 알아봤다. 큰집 조카가 다니는 국민학교에 얹혀 있는 청옥고등공민학교라고, 너처럼 배운 게 늦은 아이들이 다니는 데란다. 공부 계속할 거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창 일손이 모자란 판에. 이제 막 재미 붙이는 아이한테!” (17∼19쪽)


 문학을 하는 이들은 역사소설을 씁니다. 방송국 일꾼은 역사연속극을 찍습니다. 역사소설이나 역사연속극에는 으레 이름난 사내나 힘있는 사내가 한복판을 차지합니다. 이를테면, 임금이나 신하나 지식인이나 싸울아비나 예술쟁이가 나옵니다. 궁궐에서 밥하는 여자가 역사연속극에 나오기도 했지만, 여느 시골마을 여느 살림집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돌보던 어머니들 이야기가 역사연속극에 한 차례라도 한복판에 나온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느 멧골자락 여느 멧골집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키우던 어머니들 이야기를 어느 누구라도 역사소설에서 다룬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삶이 궁금하고,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삶이 궁금합니다. 어떠한 책에도 글에도 영화에도 기록에도 남지 않은 여느 어머니들 삶이 궁금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누구나 스스로 궁금히 여기거나 꿈꾸는 모습대로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궁금히 여기는 모습과 똑같이 살아가지는 않을 테고, 꿈꾸는 모습과 똑같이 살아내지는 못할 수 있을 터이나, 스스로 몸으로 살면서 시나브로 알아차리거나 깨닫지 않으랴 싶어요.

 

 아이들 옷가지나 기저귀싸개를 바느질하면서 어머니들 삶을 곰곰이 돌이킵니다. 옆지기가 양말을 뜰 때에 어떤 삶과 꿈일까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집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살포시 안을까 헤아립니다.

 


- “그깟 공부가 대수야? 어차피 중간에 끝낼 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사는 법이야. 빨리 기술 익혀서 돈 버는 게 최고야.” “야, 놀라운데. 자네 빠른 솜씨도 솜씨지만 태일이가 자넬 쏙 빼닮은 것 같아. 허허, 수고했어.” “아니, 더 자지 않고 벌써 일어났어?” “며칠 만에 학교 갈 생각 하니 잠이 안 와요.”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잤는데.” “오랜만에 반장이 학교 가는데 늦지는 말아야죠. 진도도 쫓아가야 하고, 아버지 일도 마쳤으니.” “어디 가냐?” “학교에.” “일 잘한다고 또 일이 들어왔다. 딴생각 하지 말고 일 시작하자!” “여보!” “저, 오늘은 학교에 다녀오면, 안 될.”“뭐 해? 빨리 짐 내리고 정리해야지!” (64∼65쪽)


 내 바느질은 꽤 서툴다고 느낍니다. 어릴 적에도 서툴었고 오늘도 서툽니다. 그렇지만 내 바느질은 서툴기는 하면서 내 어머니가 하던 바느질을 시늉으로는 따라합니다. 실을 자를 때, 바늘코에 꿸 때, 바느질을 마치고 마감할 때, 내 손놀림에서 문득문득 어머니 얼굴을 떠올립니다. 아하, 그래,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하던 때, 또는 우리 아이들보다 조금 크던 때, 내 어머니는 나를 옆에 앉히고 이렇게 바느질을 하셨지.

 

 서툰 바느질이기 때문은 아니지만, 바느질을 하노라면 으레 바늘에 찔립니다. 몇 해쯤 앞서는 바느질을 하다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면 뜨끔 하면서 빨간 핏망울이 번졌어요. 엊저녁 바느질을 하며 몇 차례 손가락이 바늘에 쿡 찔리는데, 찔리고 나서 뜨끔 하지 않는데다가 아무런 핏망울이 비치지 않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 꾸덕살이 얼마나 단단히 박혔는데 이쯤 바늘 박힌다고 피가 돌겠느냐 싶다가, 내 어머니도 이러하지 않았겠느냐고, 내 옆지기 어머니도 이와 같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골무를 손가락에 끼는 까닭은 바늘에 찔리기 때문이 아니라, 가느다란 바늘을 잡고 두꺼운 천을 꿸 때에 힘을 덜 쓰고 일을 빨리 끝내려 하기 때문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재봉틀 밟는 사람들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재봉틀이 있었는데, 빌린 재봉틀인지 산 재봉틀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재봉틀을 밟는다면 밤늦도록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재봉틀까지 둘 만큼 옷을 손질하고 이불을 꿰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딸린 식구들 옷을 지어야 한다는 소리일 테니까요. 재봉틀 밟으며 잠이나 제대로 이룰까요.

 

 그러고 보면, 재봉틀 아닌 베틀은 먼먼 옛날 어머니들 등허리를 얼마나 고되게 했을까요. 베틀을 밟던 먼먼 옛날 어머니들은 하루가 얼마나 길었을까요.

 

 


- “와, 뭘로 이렇게 불을 지폈어?” “미안해, 형! 아버지가.”“아버지! 왜 교과서를 땔감으로 다 태웠어요? 네? 아버지!” “춥다! 문 닫아라.” (95쪽)


 최호철 님 만화책 《태일이》(돌베개,2007) 둘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실린 작품으로 다 읽었기에 낱권책으로 나왔을 때에 따로 찾아보지 않았으나, 우리 집 아이들이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글과 그림을 함께 읽으며 ‘젊은 전태일 삶’을 헤아리고 싶다 할 때에 《전태일 평전》과 나란히 내밀려면 이 낱권책을 찬찬히 먼저 살펴야겠다고 느껴 새로 읽습니다.

 

 만화책 《태일이》는 《전태일 평전》이나 전태일 님 수기 이야기하고 사뭇 다릅니다. 사뭇 다르다 하는 소리는 줄거리가 다르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사람은 전태일 님 평전이나 수기만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어렵거든요. 어떠한 마을에서 어떠한 살림을 꾸리고 어느 만큼 고단하게 밥을 굶고 힘겨이 일거리 붙잡으며 지냈는가를 헤아리기 어려워요. 1960년대 허름한 달동네 집살이를, 잠 한두 시간 달게 누리지 못하며 일해도 너무 벅찬 살림을, 불 땔 나무조차 없이 매서운 한겨울 추위를 견디어야 하던 나날을, 스스로 살아내지 않고서 어느 만큼 느끼거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글을 읽으며 이러한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지 못하면, 그림이나 만화를 읽는대서 이러한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참다이 그리지 못해요. 글을 읽을 때부터 이 삶자락을 내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내 몸으로 이 삶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 누가 봐도 비참한 생활이었지만 이른봄 차가운 밤공기를 견디며 모처럼 어머니와 태일은 서로 이불을 덮어 주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었다. (166쪽)


 《태일이》 둘째 권은 ‘젊은’ 전태일에 앞서 ‘푸른’ 전태일입니다. 한창 푸른 잎사귀를 돋으며 꿈을 꾸려 하는 전태일을 보여줍니다. 싱그러운 몸과 마음으로 싱그러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싶은 전태일 삶이 《태일이》 둘째 권에 찬찬히 담깁니다.


- ‘그때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아직도 서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정말 모두가 고맙다. 어떻게든 끝까지 공부해서 지금도 거리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5원의 동전을 받기 위해 양심까지 다 내주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33쪽)


 푸른 전태일은 배우고 싶습니다. 어떤 돈이나 이름이나 힘 때문에 배울 뜻이 아닙니다. 더없이 푸른 잎사귀인 만큼 더없이 따사로운 햇살을 먹고픈 마음 그대로 배우고 싶습니다. 푸른 잎들이 햇볕을 바라보며 한껏 푸른 빛을 뽐내듯, 푸른 전태일 또한 머리와 가슴과 꿈과 사랑을 북돋우는 온누리를 배우고 싶어요.

 

 배우면서 일하고 싶어요. 배우면서 살고 싶어요. 배우면서 사랑하고 싶어요.

 

 이런 지식 저런 정보가 아닌, 삶을 배우고 싶어요. 이런 학문 저런 교과서가 아닌,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좋은 동무들이랑 좋은 나날을 배우고 싶어요. 좋은 교사하고 좋은 마을살이를 배우고 싶어요. 좋은 어른들과 함께 좋은 두레와 품앗이를 배우고 싶어요.

 

 만화책 《태일이》 둘째 권을 읽는 나도 새롭게 배웁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나도 날마다 새롭게 배우고픈 꿈을 키웁니다. 내 새 삶을 배우고, 내 어버이들 옛 삶을 배우며, 우리 아이들한테 앞으로 다가올 삶을 배우고 싶어요. (4345.2.25.흙.ㅎㄲㅅㄱ)


― 태일이 2 (최호철 글·그림,돌베개,2007.11.5./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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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하나에 삶을 담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주고 싶은 꿈을 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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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순환선-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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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철의 걷는 그림- 최호철의 크로키북 1984-2010
최호철 지음 / 두보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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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까치꽃 책읽기

 


 2월이 막바지인 철, 도시에서는 어떤 꽃이 봄을 부를까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2월 막바지에 어떤 꽃을 어디에서 맞이할까 궁금합니다.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 2월 막바지에도 골목집 꽃밭이나 마당 한켠에서는 자그마한 들꽃이 피곤 합니다. 골목동네 사람들 발길 뜸한 흙땅 한쪽에서는 조그마한 들꽃이 새숨을 틔우곤 합니다.

 

 2월 막바지, 시골 논둑과 밭둑에는 선 채로 바라보아서는 좀처럼 눈에 잘 안 뜨이는 파란 빛깔 작은 꽃송이가 흐드러집니다. 아이와 함께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꽃들을 바라봅니다. 볕이 잘 드는 자리일수록 꽃무리가 흐드러진 봄까치꽃입니다. 손톱만 한 꽃잎을 활짝 펼친 봄까치꽃이 있고, 바야흐로 꽃잎을 활짝 펼치려는 봄까치꽃이 있습니다. 다섯 살 아이는 한참 봄까치꽃을 구경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신발에 새겨진 꽃 무늬를 가리켜 “내 신발에도 꽃이 피었네.” 하고 말합니다.

 

 들에도 멧자락에도 마당에도 아이 얼굴에도 조그마한 꽃송이 예쁘게 어우러집니다. (4345.2.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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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5 10:39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는 아직도 길가에 얼음이 쌓였답니다.
된장님 동네는 조금 더 따뜻한가 봅니다. 벼리가 외투도 안 입고 외출한거 보면.

봄까치꽃인가요? 이름이 참 곱네요~

파란놀 2012-02-25 11:05   좋아요 0 | URL
그러나 학명은 개불알꽃이에요... -_-;;;;;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 인류의 작은 역사 1
실비 보시에 글, 장석훈 옮김, 메 앙젤리 그림, 한정숙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며 자라야지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90] 실비 보시에,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푸른숲,2007)

 


- 책이름 :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
- 글 : 실비 보시에
- 그림 : 메 앙젤리
- 옮긴이 : 장석훈
- 펴낸곳 : 푸른숲 (2007.3.26.)
- 책값 : 1만 원

 


 실비 보시에 님이 푸름이한테 읽힐 뜻으로 쓴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푸른숲,2007)를 읽다 보면, 싸움터 군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놓고 아주 또렷하게 잘 간추렸습니다. “어떤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업 군인이라면 그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어떤 군인은 군복이 멋있어서, 어떤 군인은 전쟁에 참가하는 게 정의롭다고 사람들이 얘기해서, 어떤 군인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군인은 국법에 의해 전쟁에 끌려왔기 때문에(72쪽).”라 하면서, 어리석게 믿는 사람이나 슬프게 휩쓸리는 사람 모두 싸움터에서 서로서로 죽고 죽이는 짓을 하고야 만다고 밝힙니다.

 

 책을 읽으며,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알맞고 좋은 이야기를 찬찬히 들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린이한테나 푸름이한테나 이처럼 이야기할 줄 아는 어른이 몹시 드물거든요.

 

 군인이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군인이란 무엇보다 ‘사람 죽이는 짓을 하는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법으로 사내들을 군대로 내모는 일이란 하나도 올바르지 않아요. 법으로 무언가를 세우려 한다면, 아름다운 삶을 세워야 합니다. 아름답게 꿈꾸고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튼튼히 세울 때에 비로소 법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어떤 나라에서는 군대에 들어가 총을 들고 사람을 죽여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군대에 스스로 들어가지 않고서야 도무지 살아남을 길이 없게끔 꽉 막히거나 닫힌 나라가 있어요. 정치를 거머쥐거나 경제를 움켜쥔 이들이 사람들 삶을 옥죄거든요.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고 교육이 참길을 이끌지 않거든요.


..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왜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 수 없을까요 …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전쟁이 목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12쪽)


 사람들 스스로 평화를 바랄 때에는 평화로이 살아갑니다. 사람들 스스로 평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평화로이 살아가지 못합니다. 마음 한구석에 ‘평화를 바란다며 무기를 갖추지 않으면 두렵잖아?’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화가 깨집니다. 마음 한켠에 ‘평화를 바라지만 군대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근심하기 때문에 평화가 흔들립니다.

 

 전쟁과 평화는 서로 두 얼굴이 아닙니다. 전쟁은 평화를 갉아먹으면서 무섭게 퍼집니다. 평화는 전쟁을 타이르며 보드랍게 녹입니다. 전쟁은 죽음을 먹으면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평화는 삶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살립니다.

 

 나는 군대에 끌려가서 스물두 달을 보내며 어느 하루도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사랑을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스물두 달 내내 죽음과 죽임을 듣고 보며 지내야 했습니다.

 

 평화를 생각하는 총이나 칼은 없습니다. 평화를 부르는 총이나 칼이 아닙니다. 평화를 부수는 총이나 칼입니다. 평화를 짓밟는 총이나 칼이에요.

 

 군인으로 지내야 하던 스물두 달 동안 들판과 멧자락을 군화발로 짓이깁니다. 참호를 파고 교통호를 낸다며 애먼 멧자락을 파헤칩니다. 멧등성이를 빙 두르면서 지뢰를 묻고 쇠가시그물을 새로 칩니다. 방공호를 짓는다며 조용하며 맑은 숲을 망가뜨립니다. 군사훈련을 한다며 나무를 베고 들판을 더럽힙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묻습니다. 수백 사람에 이르는 군인은 군사훈련을 하는 동안 깨끗한 멧자락 어디에나 똥오줌을 내갈깁니다. 고된 행군을 하며 건빵이나 밥 봉지를 들길과 멧길에 함부로 버립니다.

 

 환경을 헤아리지 않는 군인입니다. 환경을 헤아릴 까닭이 없는 군인이랄 수 있습니다. 내 목숨이 간당간당하니까 다른 자리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고된 훈련으로 넋이 빠지니 착한 사랑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주먹다짐과 거친 말이 넘치니 참다운 꿈하고는 등집니다.

 

 사내들은 군대에 간대서 사람이 되지 않아요. 사내들은 군대에 끌려가면서 사람다운 빛과 슬기를 잃어요. 사내들은 군대에서 길들여지며 사랑이랑 평화하고 멀어져요.


.. 갈 길이 멀지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접어서는 안 됩니다. 평화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평화가 실현될 날도 그만큼 앞당겨질 테니까요 … 간디는 영국인들의 부당한 지배에 폭력으로 맞서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싸워 나갔습니다. 비폭력 투쟁은 폭력 투쟁보다 더 힘겨운 일입니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  (31, 117쪽)


 누구나 사랑을 배우며 살아야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껴요. 사랑을 배우지 못하며 살아간다면, 산 목숨이 아니라 죽은 목숨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을 꿈꿀 때에 비로소 사람이요, 사랑을 꿈꾸지 못하다면 살가죽만 사람 모양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어른일 때에 사랑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도록 도울 수 있어요. 사랑을 배우며 기뻐하는 어른일 때에 사랑을 배우며 기뻐하는 아이들이 되도록 이끌 수 있어요.

 

 평화란 사랑하는 삶입니다. 전쟁이란 사랑하지 않는 죽음입니다. 평화란 서로 믿고 좋아하는 꿈입니다. 전쟁이란 서로 등치거나 들볶는 미움입니다.

 

 평화를 아끼는 나날이기에 내 손으로 땀흘려 흙을 일굴 줄 압니다. 전쟁에 사로잡힌 나날이기에 내 손으로 땀흘리지 않고 내 몸으로 흙을 일구지 않습니다. 평화를 돌보는 사람이기에 이웃하고 어때동무를 하며 두레를 합니다. 전쟁에 휘둘리는 사람이기에 따돌림과 괴롭힘을 내세워 등수와 계급을 세웁니다.

 

 학문이 아닌 시험성적이 된 대학교는 평화가 아닌 전쟁입니다. 대학교를 바라보도록 이끄는 학교 틀거리는 평화하고 동떨어진 전쟁입니다. 학문 또한 새 전쟁무기와 더 큰 경제개발에 끄달린다면 전쟁하고 마찬가지입니다. 학문 또한 삶과 가깝지 못하고 돈과 권력하고 가깝고 만다면 전쟁하고 똑같습니다.

 

 총소리 울려퍼져도 전쟁이고, 총소리 없어도 전쟁입니다. 사랑스레 돌보며 어깨동무하는 삶이 아니라면 언제나 전쟁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가르치며 나눌 수 없을 때에는 늘 전쟁입니다.


..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평화’는 핑계일 뿐이고, 다른 속셈이 있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 칼과 총은 서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싸울 때 공정한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  (36, 80쪽)


 아이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어버이는 전쟁을 일으키는 셈입니다. 아이들을 대학바라기에 가두는 어버이는 전쟁터 지휘자인 셈입니다. 입시학원을 열어 시험성적만 따지도록 이끄는 어른은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재벌기업하고 같은 셈입니다. 대입시험 이야기로 돈벌이를 일삼는 신문과 방송은 군수공장을 차린 재벌기업하고 같은 셈입니다. 입시공부 아니면 아무것도 못 가르치는 제도권학교 교사는 첨단무기 새로 만드는 과학자하고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삶을 바라보아야 해요. 삶을 사랑하는 눈길을 터야 해요. 삶을 사랑하는 눈길로 꿈을 키우는 마음을 북돋아야 해요.

 

 이런 지식 저런 지식은 덧없어요. 이런 졸업증 저런 자격증으로는 아이들이 즐거이 살아가지 못해요.

 

 아이나 어른이나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누려야 해요. 아이나 어른이나 스스로 가장 기뻐할 만한 놀이를 함께해야 해요.

 

 좋은 삶이거든요. 좋은 하루이거든요. 좋은 이야기 꽃피우는 좋은 벗이거든요.


.. 과연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가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유럽 정복자들이 문명의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전 세계 인구가 1년 동안 각각 128달러(약 12만 8천 원)를 군사비에 쓰는 셈입니다. 10억 명 이상이 하루에 1달러(약 1000원)도 못 되는 돈으로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 도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로 가는 걸까요?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군인들에게 워러급도 주어야 하고, 무기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돈이 듭니다. 전투기, 폭격기, 전차, 무인 전투기와 같은 첨단 무기를 제작하거나 구입하는 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  (55, 89쪽)


 자연은 누구한테나 너그러워요. 자연은 누구한테나 밥과 옷과 집을 내주어요. 자연은 몇몇이 홀로 차지하도록 내몰지 않아요. 자연은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아끼는 누구한테나 좋은 빛을 베풀어요.

 

 가난이 있는 까닭은 무엇이든 홀로 차지하려는 권력자와 지배자 때문이에요. 배고픔이나 굶주림이 떠도는 까닭은 사랑을 나눌 뜻이 없는 권력자와 지배자가 자꾸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에요.

 

 살아가는 즐거움을 모르니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거머쥐면서 이웃을 아끼지 않아요. 살아가는 보람을 등지니까 평화 아닌 전쟁으로 기울어요. 살아가는 멋과 맛을 누리지 않으니까 사랑을 깨닫지 않아요.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좋은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좋은 꿈을 꾸고 싶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좋은 삶을 누리고 좋은 사랑을 먹으며 자라도록 마음을 쓰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집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며 함께 지내요. 아버지인 나부터 집에서 일하고 살림을 꾸려요. 아버지로서 집에 머문다면 바깥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아주 적거나 아예 없기까지 하달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집에서 아이들이랑 복닥이며 얻는 웃음과 기쁨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삶도 사랑도 사람도 돈으로는 사지 못하거든요. 비싼값 치르며 바깥밥 사먹는대서 기쁜 하루가 아니거든요. 자가용을 굴리지 못하는 살림이지만, 아이들이랑 나란히 걷고 뛰면서 즐거워요. 들길을 걷고 멧길을 걸어요. 들꽃을 보고 멧꽃을 봐요. 풀포기와 나무를 언제나 벗삼아요.

 

 집에서 아이들과 살아가기에 두 아이는 천기저귀를 쓸 수 있어요. 천기저귀는 아버지가 도맡아 손빨래를 해요. 환경이니 전쟁이니를 떠나, 아이들 몸을 헤아리며 즐거이 천기저귀를 써요. 아니, 천기저귀를 대고 천기저귀를 빨래하는 삶이 즐거워요.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을 먹이며 아이들하고 얼크러지면서 날마다 새 마음이 될 수 있어요. 내 어린 나날을 돌이키고 아이들 앞날을 꿈꿀 수 있어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따사로이 재우고,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작은 가슴에서 샘솟는 좋은 씨앗을 느낄 수 있어요.

 

 전쟁을 막거나 그치도록 하자며 평화를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면서 천천히 평화로운 나날을 누리거나 즐길 수 있구나 싶어요. 평화는 평화를 말하거나 외친대서 찾아오지 않으니까요. 평화는 평화로운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가 바로 평화일 테니까요. (4345.2.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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