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海容해용 - 전편
이토 미노루 지음, 이시이 세이치로.송기호 감수 / 비로소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 꿈을 짓밟지 마셔요
 [만화책 즐겨읽기 79] 이토 미노루, 《사랑합니다 海容 (전편)》



 아이를 나무라거나 꾸짖는 일처럼 나쁜 짓이 없는 줄 머리로는 알지만, 좀처럼 이 못난 버릇을 뜯어고치지 못합니다.

 곰곰이 돌이킵니다. 뜯어고칠 수 없는 버릇이라서 뜯어고치지 못할는지, 뜯어고칠 버릇이 아니라, 내 삶을 옳게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저절로 녹여야 할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니, 알쏭달쏭할 까닭은 없어요. 말 그대로 나 스스로 내 삶을 곱게 사랑하면서 하루하루 반가이 맞아들일 때에는, 이 넋과 결과 꿈 그대로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어버이 사랑을 물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 “내가 한심스러워. 일곱 살자리 동생한테 진짜로 화를 내는 누나가 제대로 된 걸까 하고. 하지만 왠지 짜증난단 말야, 그 녀석. 항상 웃기만 하는 바보 주제에 무조건 사랑받는 느낌이라구 …… 뭐, 사랑해 달라고 애원할 생각은 없지만, 나도 조금 챙겨 달라고 하고 싶다 이거지.” (12∼13쪽)
- ‘부드러운 머리카락, 따뜻한 체온. 바로 곁에 또 하나의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나는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어.’ (112쪽)



 어릴 때에 꾸지람을 늘 들었습니다. 아마 날마다 꾸지람을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당신 아이를 꾸짖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참 드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아이가 말을 안 들으니 꾸짖었을 테고, 잘못을 저질렀으니 나무랐겠지요.

 아이에서 어버이가 되어 살아가며 돌아봅니다. 내 아이들이 밉거나 싫어 꾸짖는 일은 없습니다. 내 아이들이 바보스럽거나 못나기에 나무라는 적은 없습니다. 아이들이니까요. 아이들은 아이답게 살아가니까요. 아이들 삶결을 헤아리면서 따사로이 다가선다면, 어버이가 아이들을 꾸짖을 일은 없겠지요. 나부터 내 어린 나날을 헤아리면서 내 아이들을 마주한다면, 내가 어린 나날 아무리 꾸지람을 자주 늘 많이 들었달지라도, 이 아이들한테 똑같은 앙금이 이어지도록 할 까닭이 없겠지요.

 내 어버이가 나한테 좋은 사랑을 안 물려주고 싶겠습니까. 내가 내 아이한테 예쁜 사랑을 안 선물하고 싶겠습니까.

 마음이 있으면, 마음이 있는 대로 사랑하면 돼요. 생각이 있으면, 생각이 흐르는 대로 사랑하는 손길을 나누면 즐거워요.

 좋은 여러 가지를 넣은 밥도 맛납니다. 그런데, 썩 좋다 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를 넣은 밥도 맛납니다. 왜냐하면, 좋은 여러 가지에는 좋은 사랑이 깃들고, 썩 좋다 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라 하더라도 이 여러 가지를 다루는 손길에 사랑이 깃들면, 이 밥이든 저 밥이든 모두 한결같이 맛납니다.


- “넌 똑똑한 애니까 아무 걱정도 안 했어.” “걱정을 안 한 게 아니라 관심이 없었던 것 아냐?” (23쪽)
- “괜찮아, 어차피. 기요타카가 죽기 전에도 엄마는 기요타카만 챙겼잖아.” “미호코.” “내가 죽는 게 나았지? 기요타카가 아니라.” “미호코, 무슨 소리니.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잖아.” “하지만 엄마. 그런 건 말 안 해도 느낀단 말야. 아무리 아닌 척하려고 해도.” (108쪽)
- “알고 싶어. 같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181쪽)



 옆지기가 밤새 둘째 아이를 안고 어릅니다. 여러 날째 몸앓이를 하는 둘째 아이를 돌보느라 옆지기는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합니다. 새 시골집으로 옮긴 짐을 끌르고 풀며 닦고 치우며 제자리에 놓느라 나는 참 고단합니다. 몸이 고단하니 아이들을 살가이 사랑하는 손길을 내미는 데에 힘을 못 쓰는구나 하고 으레 느낍니다. 몸이 이렇게 힘들면, 몸이 이렇게 아프면, 몸이 이렇게 고단하면, 여느 어버이는 여느 아이한테 어떤 사랑을 어떻게 나눌 수 있으려나요. 이 나라 모든 어버이는 당신부터 너무 힘들거나 아프거나 고단한 나머지, 아이들을 참답고 착하며 곱게 사랑하는 길을 잃거나 놓치거나 내버리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밥벌이에 지친 탓에, 당신 아이들한테 더 들려줄 사랑이야기를 뒤로 젖힙니다. 밥벌이로 힘겨운 탓에 당신 아이들을 따사로이 껴안을 사랑삶을 뒤로 밀어놓습니다. 밥벌이로 슬픈 탓에 당신 아이들을 사랑스레 바라볼 눈길을 그만 잃습니다.

 어느 어버이가 제 아이를 눈엣가시로 여기나요. 어느 어버이가 제 아이를 걸림돌로 느끼나요. 어느 어버이가 제 아이를 노리개로 삼나요. 어느 어버이가 제 아이를 톱니바퀴처럼 다루나요.

 어느 어버이라도 이 고마우면서 어여쁜 목숨을 사랑할밖에 없습니다. 어느 아이라도 제 고마우면서 어여쁜 어버이를 믿고 사랑할밖에 없습니다.


- “쉽게 말하지 마. 그런 부탁하면 잘린단 말야.” “괜찮아.” “아, 정말! 그렇게 되면 유이치 학원비는 어쩌라고.” “어떻게든 되겠지.” “어째서 자기가 데려간다고는 말하지 않는 거야? 항상 나만!” (47쪽)
- “사람을 죽였어.” “에휴! 엄마는 그런 농담 싫어해. 어쨌든 학원은 제대로 다니거라. 이제 곧 중학생이 될 텐데, 지금까지보다 훨씬 공부가 어려워질 테니까. 왜 엄마가 아르바이트 한다고 생각하니? 전부 네 교육비에 드는 거야. 알고 있니? 유이치! 입이 달렸으면 대답을 해!” “엄마한테는 귀가 달렸어?” (82∼83쪽)


 이토 미노루 님 만화책 《사랑합니다 海容》(비로소,2011) 앞권을 읽습니다. 두 권으로 나뉘어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를 끔찍하게 죽이는 슬픔’을 들려줍니다.

 얼추 살피기로는, ‘나이도 어린 것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느냐’ 하고 생각할 테지만, 나이가 어려서 사람을 못 죽이지 않아요. 나이가 어리든 많든,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여리고 슬프며 아픈 넋이 자꾸자꾸 더 여리고 더 슬프며 더 아픈 길을 걷고 맙니다.

 몸이며 마음이 아픈 아이가 온몸과 온마음으로 제 어버이한테 외칩니다. 제발 내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래 달라며 제 어버이한테 외칩니다.

 아이들은 온몸으로 소리칩니다. 제발 나를 나대로 사랑해 달라고 소리칩니다. 끝없는 책과 교재와 학원과 학교와 시험과 자격증과 지식과 상식과 졸업장과 돈벌이로 내 꿈을 짓밟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아이들은 해맑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제 어버이한테서 해맑게 사랑하는 길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어버이는 당신 아이들이 해맑게 사랑하는 길을 바라거나 꿈꾸지 않다 보니, 어버이가 바라는 대로 당신 아이들이 살아갈 턱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아이들은 끝없이 스스로를 무너뜨리거나 망가뜨리는 길을 걷고 맙니다. 모두 슬프고 모두 아픕니다. 서로 괴롭고 서로 다칩니다.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면서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씨는 마음밭에 늘 자리해요. 사랑씨는 마음밭에서 언제나 기다려요. 사랑씨는 모든 사람들 모든 마음밭에 뿌리를 내리고 싶습니다.


- “우리는 피해자인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 그렇게 타인의 불행이 즐거운 거야? 나쁜 건 범인이잖아.” (69쪽)
- “평범한가요? 평범한 아이가 그런 잔인한 짓을 하나요? 그렇다면 평범하다는 건 도대체 뭔가요?” “울지 마라, 고이즈미. 괴로운 건 피해자의 부모와 가해자의 부모다. 양쪽 모두 지옥이겠지.” (139쪽)
- “우리 집은 (텔레비전에) 나오네. 범인의 학교, 교장, 동급생 모두 모자이크가 걸렸는데 우리만 기요타카 이름과 사진, 집까지 전부 그대로 내보내고 있어.” (150쪽)



 《사랑합니다 海容》은 책이름 그대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잊거나 잃은 사람들 삶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멀리 있는 사랑이 아닌 곁에 있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디 육아책이나 인문책이나 역사책에 적바림된 사랑이 아니라, 내 온몸에 아로새겨질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미워할 사랑이 아닙니다. 홀로 차지할 사랑이 아닙니다. 시샘할 사랑이 아닙니다. 부끄러울 사랑이 아닙니다. 따사로이 아끼는 사랑입니다. 너그러이 얼싸안는 사랑입니다.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사랑입니다. 믿음직하게 마주하는 사랑입니다.


- “사실은 집에 함께 있으면서 보살펴 줘야 하는데. 나쁜 엄마지.” “함께 있는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게 아냐.” “응?” “떨어져 있어도 계속 생각해 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유이치 군.” “바로 곁애 있는데도 무척 멀게 느껴져.” “어머니 얘기니?” (201∼202쪽)
- “아니에요. 몰랐을 거예요. 진심이라고요.” “세이코?”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은 아무도 몰라요. 다들 똑같아요. 다들 불안해서 견디질 못한다고요.” (216쪽)


 좋은 생각을 좋은 삶으로 잇습니다. 좋은 생각을 좋은 사랑으로 가다듬습니다. 좋은 생각을 좋은 일놀이로 북돋웁니다. 좋은 생각을 좋은 꿈으로 키웁니다. 좋은 생각을 좋은 나날로 펼칩니다.

 학원에 보낸대서 아이들이 똑똑해지거나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똑똑해지거나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간들 아이들 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좋은 사랑을 꽃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꽃피우면 넉넉합니다. 좋은 보금자리에 꽃이 피는 나날이면 아름답습니다. (4344.11.14.달.ㅎㄲㅅㄱ)


― 사랑합니다 海容 (전편) (이토 미노루 글·그림,편집부 옮김,비로소 펴냄,2011.8.22./8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2) -의 : 인체의 아름다움


.. 인체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다 ..  《박용현-정당한 위반》(철수와영희,2011) 167쪽

 ‘인체(人體)’는 ‘사람몸’이나 ‘몸’으로 다듬습니다. ‘대답(對答)하기’는 ‘말하기’나 ‘이야기하기’로 손보고, “어려운 질문(質問)이다”는 “어려운 말이다”나 “어려운 물음이다”나 “어렵다”로 손봅니다. 그러니까, 이 글월은 “이야기하기 참 어렵다”나 “말하기 참 어렵다”로 손보면 돼요.

 인체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아름다운 몸이란 무엇인가
→ 사람들 몸은 어떻게 아름다운가
→ 사람들 몸은 무엇이 아름다운가
 …


 학문으로 따지자면, ‘사람을 이루는 몸’을 ‘사람몸’이라 일컬으면 됩니다. 애써 ‘사람 人 + 몸 體’라는 한자를 빌어 ‘인체’로 가리켜야 하지 않아요. 더 헤아리면, 예부터 ‘몸’이라는 낱말로 ‘사람을 이루는 몸’을 단출히 가리켰어요.

 어떻게 말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하며 생각했는가를 느껴야 합니다. 말이 이루어지는 결을 살펴야 합니다. 말과 말을 맺는 이음고리를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 몸은 어떻게 아름다운가
 우리 몸은 무엇이 아름다운가
 내 몸은 무엇 때문에 아름다운가
 내 몸은 어떤 모습이 아름다운가
 …


 “인체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글월은 우리 글월이 아닙니다. 한겨레 글월이 될 수 없습니다. “책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든지 “지구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또한 우리 글월이 아닙니다. 한국말이 될 수 없어요.

 “책은 무엇이 아름다운가”라 말하거나 “아름다운 책이란 무엇인가”라 말해야 우리 글월이 되고 한겨레 글월이 됩니다. “지구는 무엇이 아름다운가”라 말하거나 “아름다운 지구란 무엇인가”라 말해야 우리 글월이요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을 잊는 사람한테는 한국말을 어떻게 쓰더라도 대수롭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한국말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한국말로 꾸는 꿈이란 너무 멀리 떨어진 아스라한 아지랑이일는지 모릅니다. (4344.11.14.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쟁이 어린이


 아이가 아이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삶은 아이가 누리는 나날대로 예쁩니다. 어버이가 어버이 눈높이에서 마주하는 삶은 어버이가 누리는 나날대로 즐겁습니다. 서로 예쁘며 즐거이 함께 살아갈 때에 사랑이 태어납니다. 해 떨어진 어두운 저녁, 아이는 아이 사진기를 들고, 아버지는 아버지 사진기를 듭니다. 서로를 살며시 바라보며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4344.11.14.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William Eggleston (Hardcover) - Democratic Camera; Photographs and Video, 1958-2008
Elisabeth Sussman / Whitney Museum of Art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윌리엄 이글스턴 사진책이 퍽 여러 가지 뜬다. 그러나 내가 가진 책만큼은 좀처럼 안 뜬다 ㅠ.ㅜ 마이리뷰로 올리고 싶어 절판된 사진책에 글을 걸친다. 빛느낌이 새삼스러운 윌리엄 이글스턴 사진책이 잘 읽힐 수 있기를 꿈꾼다. 

 



 사진이 만든 빛, 사람이 살아가는 빛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7]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Los Alamos》(Scalo,2003)


 사진은 빛을 만듭니다. 빛을 담는 그릇이 사진이라 할 텐데, 사진은 빛을 담으면서 스스로 빛을 만듭니다.

 사진이 만드는 빛은 억지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진이 만드는 빛은 사람들 눈으로는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 만드는 빛은 더없이 눈부시거나 더할 나위 없이 고울 수 있습니다.

 사진은 빛을 붙들어매기 때문에 빛을 만들는지 모릅니다. 사진은 어느 한때에 멈추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빛을 만드는구나 하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사진은 틀림없이 빛을 만듭니다. 다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야 사진이 빛을 만듭니다. 사진을 찍어 나누는 사람이 있을 때에 사진 또한 빛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제 고운 삶터에서 고운 넋으로 살아갈 때에, 사진은 시나브로 고운 빛을 만듭니다.

 밉거나 슬프거나 아픈 삶을 누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저 스스로 모르던 빛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진은 속일 수 있으나 속일 수 없습니다. 사진은 속일 수 없으나 속일 수 있습니다. 짐짓 대단하거나 씩씩하거나 무시무시한 듯 얼굴을 내미는 사람 뒤에 깃든 보드랍거나 따사롭거나 너그러운 빛을 담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얼핏 사랑스럽거나 예쁘거나 티없다 싶은 듯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 언저리에 감도는 어둡거나 쓸쓸하거나 힘겨운 빛을 담을 수 있는 사진이에요.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님 사진책 《Los Alamos》(Scalo,2003)를 읽습니다. 여느 사진쟁이들이 까망하양 필름으로 그림자 놀이에 흠뻑 빠져 허우적거릴 무렵, 윌리엄 이글스턴 님은 무지개 필름으로 무지개꿈을 누립니다. 여느 사진쟁이들이 까망하양 필름으로 까망과 하양 사이에 얼마나 많은 빛깔이 있느냐고 금긋기를 하는 동안, 윌리엄 이글스턴 님은 사람들 여느 눈으로 바라보는 여느 빛깔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봅니다.

 까망하양으로 담는 사진은 무지개빛 사진하고 견주어 차분하다고들 합니다. 어수선하지 않다고들 합니다. 다큐멘터리로 알맞은 듯 여깁니다.

 사람은 무지개빛으로 이웃과 동무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무지개빛으로 살아갑니다. 흙을 만지며 흙내음과 흙빛을 느낍니다. 밥을 먹으며 나락내와 나락빛을 느낍니다. 바람을 마시며 바람내음과 바람빛을 느낍니다. 햇살을 먹으며 햇살내와 햇살빛을 느껴요.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님 사진책 《Los Alamos》는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빛을 살피면서 사진이 만드는 빛이 무엇인가를 느끼도록 이끌 뿐입니다.

 그러니까, 지난날 사진쟁이들은 굳이 까망하양에 얽매인 채 사진빛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오늘날 사진쟁이들은 으레 무지개빛을 다루지만 막상 사진빛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살며시 건드립니다.

 사진은 빛을 만듭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빛을 냅니다.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며 내는 빛을 담습니다. 사람은 사진에 담긴 빛을 들여다보면서 저희 삶을 새삼스러이 다시 바라봅니다.

 사진은 모두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진은 아주 작은 점 하나를 보여줍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주 작은 점 하나를 바라보면서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빛을 누리는 저희 삶을 넓거나 깊게 되새깁니다. 점 하나가 발판이 되어 흐름을 곱씹습니다. 점에서 점으로 이어지는 길이를 돌이킵니다. 점에서 비롯해서 점으로 돌아오는 너비를 헤아립니다.

 빛나는 삶입니다. 누구나 빛나는 삶입니다. 무엇을 찍든 빛나는 사진입니다. 이름나며 예쁘장한 모델을 찍어야 빛나는 사진이지 않습니다. 대단하거나 거룩하다는 뜻을 애써 심어야 놀라운 사진이지 않습니다.

 만듦사진은 부질없습니다. 다큐사진은 덧없습니다. 사진은 오직 사진일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는 빛을 사람내와 사람빛을 깨달으며 시나브로 담을 때에 비로소 사진빛을 이룹니다. 사진빛을 이루지 못한다면 사람빛을 모른다는 소리입니다. 사진꿈을 꾸지 않는다면 사람꿈하고 등졌다는 소리입니다. 사진넋이 없다면 사람넋하고 동떨어진다는 소리입니다. 사진사랑이란 사람사랑입니다. 사진이야기란 사람이야기입니다. 사진삶이란 사람삶입니다. 사진길이란 사람길입니다. 사진은 사람입니다. (4344.11.14.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의 일생 1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온삶 걸쳐 사랑을 빚는 사람들
 [만화책 즐겨읽기 64] 니시 케이코, 《남자의 일생 (1)》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날마다 옷을 걸칩니다. 날마다 잠을 잡니다. 어느 누구라도 밥·옷·집이 없이는 목숨을 잇지 못합니다. 어디에서 어떤 밥·옷·집을 누리든, 밥·옷·집을 맞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내 목숨이 끊어지거나 흔들립니다.

 누군가는 사랑스러운 터에서 사랑스러운 밥·옷·집을 누립니다. 누군가는 슬프거나 메마른 터에서 슬프거나 메마른 밥·옷·집에 허덕입니다.

 사랑으로 맺은 내 목숨일 텐데, 왜 사랑으로 꽃피우지 못할까요. 사랑으로 이루는 내 삶일 텐데, 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가요.

 스스로 밥을 차리지 못하면서 스스로 사랑을 할 줄 모릅니다. 스스로 옷을 짓지 못하면서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잊습니다. 스스로 집을 건사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사랑을 북돋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나무라기도 하고 추켜세우기도 합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나라가 무너진다 걱정하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해야 나라가 산다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어떤 나라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짚지는 않습니다. ‘어떤 나라가 어떻게 살찌우는’가를 헤아리지는 않습니다.

 나라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 한다면, 나라힘을 거머쥔 몇몇 사람이 저희 밥그릇을 채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부터 ‘밥그릇 더 채우기’에 마음을 쏟기 때문입니다. 삶을 참답게 사랑하면서 삶을 예쁘게 가꾸는 일에 마음을 쏟는 여느 사람으로 이루어진 나라일 때에는, 제아무리 밥그릇 채우기에 힘쓰는 권력자나 공무원이 가득하다 하더라도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어 ‘나라 살찌우기’를 한다고 나서지 못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옳은 삶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사람들 스스로 옳은 삶으로 고치지 않으니까, 사람들 스스로 옳은 삶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자꾸자꾸 슬프며 안쓰러운 정책이나 돈벌이만 판칩니다. 돈벌이에서 홀가분하지 않은 여느 사람들인 만큼, 이러한 터전에서 정치권력을 붙잡아 행정을 맡는 이들이 옳거나 바르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지 않아요.


- “아무 생각 없이, 난생 처음 긴 휴가를 내서, 체면치레 따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었어.” (12쪽)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어버이일 때에, 이 어버이가 보살피는 아이들도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길을 걷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려는 어버이일 때에, 이 어버이가 돌보는 아이들 또한 착하게 살아가려는 길을 걸어요.

 어버이 스스로 좋은 터에서 좋은 꿈을 꿀 때에, 아이들이 좋은 넋을 길어올리며 좋은 말꽃을 피웁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은 밥을 좋은 손길로 지을 때에, 아이들이 좋은 마음을 좋은 빛줄기로 가득 채웁니다.

 첫손 꼽는 요리사가 지어야 좋거나 맛나거나 아름다운 밥이지 않습니다. 훌륭하다는 요리책에 나오는 대로 지어야 좋거나 맛나거나 아름다운 밥이 되지 않아요.

 사랑을 담는 밥일 때에 좋거나 맛납니다. 빛줄기를 따사로이 싣는 밥일 때에 기쁘면서 고맙습니다.


- “제가 살게요. 할머니 땅 전부 다. 집도, 산도, 밭도.” (20쪽)
-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의좋던 친척들이 싸우는 걸 보기도 괴롭고, 결국 아무도 이곳을 돌볼 수 없게 되어 남의 손에 넘어가느니.” (57쪽)



 이 나라에서 남자들은 언제부터 밥짓기에서 손을 떼었나 궁금합니다. 이 나라에서 남자들은 언제부터 밥짓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집살림에서 멀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라 남자들이 어리석거나 어리숙하거나 어처구니없는 길을 걷더라도 이 나라 여자들은 어리석거나 어리숙하거나 어처구니없는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 여자들도 이 나라 남자들처럼 어리석거나 어리숙하거나 어처구니없는 길을 걸었다면 나라가 폭삭 무너졌겠지요. 마을이 와장창 사라졌겠지요. 살림이 송두리째 날아갔겠지요.

 이 나라 여자들은 밥순이요 집순이요 빨래순이요 아기순이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 남자들은 밥돌이도 아니요 집돌이도 아니며 빨래돌이나 아기돌이 또한 아닙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놓지 않은 이 나라 여자들이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내동댕이친 이 나라 남자들이에요.

 오늘날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등돌립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저버립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처음부터 모릅니다.

 목숨보다 아름다운 무엇이 내 삶에서 또 있으려나요. 목숨보다 값진 무엇이 내 나날에서 다시 있으려나요.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할 무엇이 내 하루에서 어떻게 있으려나요.


- “7시에 저녁식사예요. 빨래와 식사 준비는 내가 할게요. 식비는 반반 부담이에요. 카이에다 씨는 장작 패기와 목욕물을 맡아 주세요.” “아, 그런 거 해 본 적 없는데.” “간단해요. 그럼, 7시에.” (70쪽)
- “자네 꽤나 신경질적이군.” “난 할머니 같은 우아함도 관용도 배려도 없어요.” “아니, 관용 외엔 있는데. 의외로.” “그런 건 도쿄에서 다 닳아 없어졌어요.” “오오, 자신을 너무 깎아내리지 말라고.” (136쪽)



 주식이 있어야 나라가 있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있어야 마을이 있지 않습니다. 아파트와 재개발이 있어야 보금자리가 있지 않습니다.

 들판이 있어야 합니다. 멧줄기가 있어야 합니다. 바다와 냇물과 푸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짐승과 벌레가 있어야 합니다. 바람과 햇살이 있어야 합니다. 흙과 돌과 모래가 있어야 합니다.

 손전화나 피아노는 없어도 됩니다. 책이나 졸업장은 없어도 됩니다. 영화나 잔치마당은 없어도 됩니다. 통계청이나 서울시청은 없어도 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없어도 됩니다. 교사나 판사나 의사나 운전기사는 없어도 됩니다.

 오직 하나 사람이 있으면 됩니다. 내가 있고 이웃이 있으며 벗이 있으면 돼요. 어버이가 있고 아이가 있으면 됩니다. 딸이 있고 아들이 있으면 돼요. 할머니가 있으며 할아버지가 있으면 됩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있어야지 텔레비전 소리는 없으면 그만입니다. 호미가 있어야지 공장은 없어도 넉넉해요. 숟가락이 있어야지 골프장은 없을 때에 즐거워요.


-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 곁에 있고 싶다고 내 안의 뭔가가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게 선생님의 손녀였다는 건 나중에서야. 하지만, ‘사랑’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182쪽)


 니시 케이코 님 만화책 《남자의 일생》(시리얼,2011) 1권을 읽습니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남자의 일생》 가운데 첫 권은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서 생각할 한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사람 가운데 여자로 살아가는 사람, 사람 가운데 남자로 살아가는 사람, 이 둘은 서로 어떻게 맺고 만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남자는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지, 여자는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남자와 여자는 나란히 무엇을 돌아보며 사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아니, 삶을 이야기한다기보다 이야기하자고 이끕니다. 삶을 나 스스로 생각하자고 이야기하도록 이끕니다. 삶을 나 스스로 아끼며 사랑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이끌어요.

 삶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삶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사랑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삶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내 목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살포시 나누지 못합니다.

 삶을 바탕으로 사랑이 태어납니다. 삶을 밑거름 삼아 사랑을 꽃피웁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스스로 삶을 옳게 바라보고 착하게 보듬으면서 사랑을 새삼스레 새로 빚습니다. (4344.11.13.해.ㅎㄲㅅㄱ)


― 남자의 일생 1 (니시 케이코 글·그림,최윤정 옮김,시리얼,2011.4.25./8000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르미 2012-01-1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가 너무 절절하셔서... 방금 샀어요. 이 작가 다른 만화 사놓고 안 읽고 있었는데 후기 보고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알라딘 중고샵으로 사서 땡크스투를 못드림 ㅠ

파란놀 2012-01-10 13:31   좋아요 0 | URL
땡크스투는 없어도 돼요.
중고샵으로 값싸게 사서 읽을 수 있으면 좋지요~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며
1권 2권 3권 읽어 보면,
무언가 응어리를 터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구나 싶어요.

오늘 하루 즐거이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