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그린다

 


 밤이 깊어도 잠들 줄 모르는 아이하고 부대끼다가 그림종이를 펼친다. 둘째는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끼어들고 싶다. 둘째가 어머니한테 기어간 사이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저 그리고픈 대로 그리고, 아버지는 첫째 곁에서 이모저모 그림을 그려 본다. 그림종이 앞에 엎드려 그림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후다닥 그린다. 아이는 오른손에 연필을 쥐고 엎드린 채 그림을 그렸지만, 아버지는 아이 왼손에 연필 쥔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알아보려나, 알아보겠지. 그런데 나는 첫째 아이가 무엇을 그렸는지 좀처럼 알아보지 못한다. 응, 무얼 그렸나. 이게 귤이니?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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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날 어디를 ‘여행’하라 한다면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7] 장을선, 《아프리카의 인상》(사진예술사,1990)

 


 사진을 찍어 상을 받아야 할 까닭이 없고, 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어 이름을 날려야 한다든지, 사진을 찍으며 책을 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좋아하니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삶을 누리는 길동무인 사진입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는 넋을 다스리는 사진입니다.

 

 삶을 돌아보면, 사진공모전은 덧없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며 저마다 다 다른 사랑을 빚은 사진에는 차례나 번호나 점수를 매길 수 없어요. 어떤 사진을 몇 작품으로 만들었다 해서 작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어느 모임에 들어가 사진을 찍기에 사진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한자말로 적어 ‘작가(作家)’인데, 사진작가란 “사진을 짓는 사람”이란 소리입니다. 이제껏 없던 사진을 새롭게 지을 때에 이러한 이름을 쓴다지만, 누구라도 ‘이제껏 있던 사진을 다시 찍’는 일이란 없어요. 다른 사람이 내놓은 작품을 베끼거나 따른다 하더라도 빈틈 하나 없이 똑같이 베끼지 못합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 작품을 베끼거나 따른다는 일이란 얼마나 슬픈 일이 될까요. 내 삶은 내 삶이지, 다른 사람 삶을 흉내낼 수 없어요. 내 넋은 내 넋이지, 다른 사람 넋을 따라갈 수 없어요.

 

 내 눈길에 따라 내 나름대로 빚는 사진이에요. 참가비도 상금도 상장도 없이, 사진공모전에 사진을 보낸 사람들 작품을 모두 한 자리에 실어 스스럼없이 나누거나 보여주거나 즐길 때에 비로소 서로서로 즐거울 ‘사진잔치’로 자리잡으리라 생각해요.

 

 

 장을선 님 사진책 《아프리카의 인상》(사진예술사,1990)을 읽습니다. 여섯 아이를 낳아 돌본 어머니 길을 걸으며 사진기를 다른 한손에 쥔 장을선 님이라고 합니다. 장을선 님은 1989년에 여덟 번째 ‘대한민국 사진전람회’에서 큰 사진상 하나를 받고는 나라밖으로 ‘사진 배우는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하고, 이 사진여행길에 찍은 사진을 《아프리카의 인상》이라는 사진책으로 낼 수 있었다 합니다.

 

 적잖은 돈이 들 사진여행을 마흔 날 동안 홀가분히 떠날 수 있었고, 케냐와 이집트를 사진기 걸쳐메고 돌아봅니다. 사진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한편으로는 부럽네,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쉽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케냐와 이집트를 밟는 마실길이기에 고작 마흔 날밖에 못 다니겠지요. 장을선 님으로서는 아프리카를 꿈처럼 그리며 살았기에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사진책 《아프리카의 인상》을 읽으며 ‘아프리카 이야기’와 ‘케냐 이야기’와 ‘이집트 이야기’가 얼마나 예쁘게 얼크러지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라 이름을 붙이니 아프리카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할 뿐, 사진만 들여다보아서는 왜 어떻게 아프리카라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흔 날 마실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습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에 살림집 얻어 여러 해 눌러지내며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를 이웃집 드나들듯 자주 오가며 사진을 찍습니다.

 

 

 

 오래 눌러지내며 사진을 찍어야 가장 잘 찍지 않습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갔대서 제대로 못 찍지 않습니다. 오래 눌러지낼 때에는 오래 눌러지내는 빛을 담습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갈 때에는 짧은 한동안을 빛내는 결을 담습니다.

 

 살결이 까만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 아프리카가 되지 않습니다. 책이름처럼 ‘아프리카를 느낀’ 무언가도 되지 않습니다. 서로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일은 언뜻 보기에 잘 빚은 사진이라 할 만하지만, ‘서로를 구경하고 지나치는’ 일에 그치곤 합니다.

 

 왜 얼굴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과 어른들 얼굴을 가만히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아프리카란 어떤 땅이고, 케냐란 어떤 나라이며, 이집트는 어떠한 삶터인가요. 세 가지 궁금한 대목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애써 마흔 날에 걸쳐 두 나라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막상 사진으로 빚는 이야기는 못 태어나는 셈 아닌가 싶어요. 참말, ‘구경하는 사진(인상)’으로 머물면서, ‘살아가는 사진’으로는 새로 태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이 사진책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살가우며 수더분해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삶으로 깊숙히 스며들며 담은 이야기를 찾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마실하는 날이 넉넉하지 못해 오래 머물지 못하기에 겉스치는 ‘느낌(인상)’을 담는 사진이 된다 하겠으나, 겉스칠 때에는 겉스치며 마주하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즐기면 돼요. ‘반짝 하는 놀라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짧은 동안 마주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살포시 담는 사진’을 보여주면 넉넉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기쁘게 담으면 되거든요. 이를테면, 귀여운 손자가 명절날 찾아와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더라도 이 며칠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나로서는 더없이 사랑스럽다 여긴 사진을 찍습니다. 고작 하루만 머물다 돌아가든, 하루조차 아닌 몇 시간만 머물고 돌아가든 나는 내 손자를 아주 예쁘게 여기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나한테 마흔 날 어디 홀가분하게 마실을 다녀오라 한다면 어디를 다닐 만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내 옆지기라면 우리 보금자리 뒤에 깃든 천등산부터 걸어 소백산맥 길을 따라 지리산을 지나고 태백산을 아울러 오대산과 설악산 있는 데까지 멧길 천천히 걷기를 할 텐데, 나라면 마흔 날 동안 어떤 마실을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일본 도쿄 헌책방거리를 마흔 날 동안 쏘다니며 책을 살피고 장만하며 누리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꿈꿉니다. 고흥 시골마을을 골골샅샅 누비며 맞아들이면 얼마나 즐거우랴 하고 꿈꿉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 따라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바닷마을을 휘 돌아볼 수 있어도 무척 기쁘겠구나 하고 꿈꿉니다. 자전거 타고 한국땅 헌책방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마실을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습니다. 문닫은 시골 작은학교를 자전거 타고 찾아다니고, 작은학교 깃든 시골마을 작은가게에 들러 깡통맥주 하나 마시면서 사진을 찍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요즈음도 ‘대한민국 사진전람회’에서 큰 사진상 받는 이한테 나라밖 마실을 보내 주는지 궁금합니다. 요즈음도 나라밖으로 마실을 보내 준다면, 사진쟁이 스스로 가고프다는 곳으로 보내 주지 말고, 지구별 나라들을 하나씩 콕콕 집어, 해마다 다른 나라로 보내면서, ‘해마다 다 다른 나라 삶과 사람과 삶터를 다 다른 사진쟁이가 다 달리 담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해에 한 나라씩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하도록 이끈다고 할까요. 이러면서 작은 사진상 받는 이한테 나라안 골골샅샅 돌아보도록 이끌어, 해마다 두 가지 사진열매 빚을 수 있어요. 하나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지구별’을,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한국땅’을.

 

 아이를 여섯 낳아 돌본 어머니이기 때문에 꼭 여섯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거나, 여섯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을 때에 이 여섯 아이들네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섯 아이 삶을 두고두고 사진으로 갈무리한다면, 장을선 님으로서는 아직 한국에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놀라운 ‘사진 육아일기’를 여섯 권 빚을 수 있고, 이 여섯 아이들네 아이들 이야기까지 갈무리하며 ‘사진 생활일기’를 수없이 빚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프리카도 좋고, 록키산맥도 좋아요. 그런데 장을선 님이 선보일 첫 사진책이 《아프리카의 인상》이니 서운합니다. 두 번째 사진책은 《The Spring of Rockies》이니 슬픕니다. 장을선 님 아이들이 당신한테 힘이 되고 사랑이 되며 믿음이 되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막상 장을선 님 아이들 삶과 사랑과 믿음을 고루 갈무리한 사진으로는 사진책을 일구지 못하니 쓸쓸합니다.

 

 작품이 되어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진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에요. 삶이 될 때에 사진이에요. 사진은 삶을 사랑하는 꿈을 보살피는 좋은 길동무 가운데 하나예요. (4345.3.2.쇠.ㅎㄲㅅㄱ)


― 아프리카의 인상 (장을선 사진·글,사진예술사 펴냄,199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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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빨개요
뻬뜨르 호라체크 글 그림 / 시공주니어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른인 나한테 선물하는 그림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0] 뻬뜨르 호라체크, 《딸기는 빨개요》(시공주니어,2002)

 


 나는 어릴 적 그림책을 보며 자라지 않았습니다. 딱히 그림책이 없었으나 어린 나날을 따분하게 보내거나 심심하게 누리지 않았습니다. 놀거리 많았고 놀이동무 많았습니다. 무엇을 돌아보든 놀거리요, 어디를 다니든 놀이동무였습니다.

 

 오늘날 그림책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그림책만큼 아이들 어버이는 그림책을 꽤 많이 장만합니다. 그림책을 집에 가득 모시는 아이들은 어느 때라도 마음껏 그림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집에서든 어린이집에서든 학교에서든 그림책은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좋은 그림책 많이 나오는 오늘날이라 아이들이 즐거울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좋은 그림책 두루 볼 수 있어 오늘날 아이들은 맑은 꿈을 빛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좋은 그림책 걱정없이 누릴 수 있으니 오늘날 아이들은 너른 사랑을 따스히 가꿀 만한지 궁금합니다.


.. 빨간색 딸기 ..

 


 내 어릴 적 그림책이란 없었으나, 집 둘레 어디에서나 풀을 보고 꽃을 보며 나무를 보았습니다. 풀을 만지고 꽃을 만지며 나무를 만졌습니다.

 

 하늘을 보고 땅을 밟습니다. 무지개를 보고 뭉게구름을 보며 소나기를 봅니다. 빗소리를 듣고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새소리를 듣습니다. 하늘빛을 헤아리고 물빛을 들여다봅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오늘날 그림책에 담기는 이야기란 하나도 남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담는 그림책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그림책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예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여기는 모습을 담는 그림책입니다.

 

 곧, 그림책이 없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우리 스스로 곱게 돌보면 기쁩니다. 그림책이 없다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즐거이 살아가며 예쁘게 사랑하면 됩니다. 그림책을 모르더라도 어른들부터 좋은 나날 누리며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좋은 꿈을 물려받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 주황색 귤 ..

 


 뻬뜨르 호라체크 님 작은 그림책 《딸기는 빨개요》(시공주니어,2002)를 읽습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하다고 여겨 장만하기도 했지만, 아이에 앞서 나부터 보기에 즐거웁기에 장만합니다. 아이가 예쁘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이에 앞서 어른인 내가 예쁘게 읽을 만하다 싶기에 장만합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힐 때에는, 이 그림책을 읽을 어른부터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읽기에 즐겁지 않은데 아이가 읽으며 얼마나 즐거울까 모르겠어요. 때로는, 어른한테는 재미없어도 아이한테는 재미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모름지기 그림책이라 하면, 누구나 즐기고 누구나 좋아하며 누구나 사랑을 느낄 때에 그림책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그림만 예쁘장하거나 귀엽게 그린대서 그림책이 아니에요. 재미난 말놀이를 한다든지, 아이한테 무슨무슨 학습 효과가 있대서 그림책이 아니에요.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어우러지는 삶을 담는 책이에요.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나날을 빛내어 그러모으는 책이에요. 그림책은 이 지구별 사람들이 다 함께 어깨동무하며 사랑할 꿈을 돌보거나 보살피도록 이끄는 책이에요.


.. 내 그릇에 담긴 알록달록한 과일들을 보세요 ..

 


 “내 그릇에 알록달록” 담는 과일을 하나씩 앙증맞게 담은 그림책 《딸기는 빨개요》입니다. 참 곱게 그렸고, 참 재미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왜 ‘빨간빛-노란빛-주황빛’처럼 옮기지 못했을까요. 한국 아이들한테는 한국말로 ‘빛깔’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요.

 

 알록달록 어여쁜 빛깔을 알록달록 아리따운 말구슬로 엮으면 참으로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두 아이 아버지인 나는 아이랑 나한테 선물하려고 이 그림책을 장만합니다. 좋은 책, 좋은 마음밥, 좋은 선물, 좋은 꿈, 좋은 이야기밥, 좋은 하루로 빛내는 예쁜 그림책이라고 여겨 장만합니다. (4345.3.2.쇠.ㅎㄲㅅㄱ)


― 딸기는 빨개요 (뻬뜨르 호라체크 글·그림,시공주니어 펴냄,2002.2.10./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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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강부회

 


귀신 숭배신앙, 태양신 숭배신앙, 난생 국조신화 등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이를 근거로 한족 계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라 하겠다
《최광식-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살림,2004) 21쪽

 

  ‘숭배신앙(崇拜信仰)’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섬기는 믿음’이나 ‘받드는 믿음’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난생(卵生) 국조신화(國祖神話)”는 “알에서 태어난 나라 시조 옛이야기”로 다듬고, ‘등(等)은’은 ‘들은’으로 다듬으며, “세계적(世界的)으로 나타나는”은 “세계에 널리 나타나는”이나 “온누리 어디에나 나타나는”으로 다듬습니다. “보편적(普遍的) 현상(現象)”은 앞말과 이어 ‘널리’나 ‘두루’를 사이에 넣고, “세계에 널리 나타나는”이나 “온누리 곳곳에서 두루 찾아볼 수 있는”으로 손질하면 됩니다. ‘근거(根據)’는 ‘바탕’으로 고쳐쓰고, “주장(主張)하는 것은”은 “이야기한다면”이나 “하는 말은”으로 고쳐 줍니다.

  보기글을 이모저모 살핍니다. 한결 쉽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꼭 이렇게 글을 써야 학문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쉽게 쓰는 글로 역사나 철학이나 과학을 할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을 뜻한다 합니다. 곧, 한국말로 하자면 ‘억지’나 ‘악지’란 소리입니다. ‘떼’를 쓴다는 소리입니다. ‘어거지’를 부린다는 소리입니다.

 

 이를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라 하겠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한다면 억지라 하겠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하면 억지이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하면 억지일 뿐이다
 …

 

  네 글자 한자말 ‘견강부회’를 곳곳에서 곧잘 듣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리송해 으레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이와 같은 말을 쓰는 분들로서는 손쉬운 낱말이라 여길는지 모르고, 이 낱말만큼 알맞거나 또렷한 낱말이 없다고 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견강부회’라는 낱말을 마주할 때면 늘 골이 아픕니다.


  국어사전에서 말뜻을 헤아리면, ‘견강부회’는 그저 “억지 쓰기”를 가리킵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억지’이고, ‘어거지’이며 ‘떼’입니다. ‘어이없는’ 짓이요 ‘어처구니없는’ 매무새이며 ‘터무니없는’ 몸가짐입니다. 딱히 어떤 다른 뜻이나 느낌을 담는 낱말이 아닙니다. 이 같은 한자말로 써야 뜻이 살아나거나 느낌이 깊어지지 않아요.


  한자 지식을 뽐내어 쓸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한테나 허물없이 쓸 만한 쉽고 바른 말마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견강부회’ 같은 말마디를 고지식하게 붙잡을까요. 한결 살가이 말하기가 더 힘이 들까요. 한껏 따스하게 글을 쓰기가 더 어려운가요.


  이 보기글은 “이를 내세워 한족 갈래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나 “이런 이야기를 들며 한족 갈래라 한다면 더없이 터무니없다”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알맞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올바르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견강부회’에 ‘아전인수’를 더해 놓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은 사람들한테 더욱 말치레를 하라고 부추깁니다. 사람들이 꾸밈없이 말하고 알맞게 글쓰며 슬기롭게 이야기하도록 도와주는 틀이 아닙니다.

 

 자기의 취미에 맞도록 아전인수 하고 견강부회하는 바람에
→ 제 입맛에 맞도록 뜯어고치고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 저한테만 맞도록 하면서 어거지를 쓰는 바람에
→ 저한테 좋도록 맞추고 바꾸는 바람에
 …

 

  아무래도 말을 말다이 쓰도록 하는 좋은 길을 찾는 국어사전은 아니지 싶습니다. 말을 슬기롭게 배우거나 글을 올바르게 갈고닦는 데에 이바지하는 국어사전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말풀이만 달아 놓는다고 해서 국어사전일 수 없으나, 국어사전을 엮는 고운 길을 놓치는구나 싶습니다. 수많은 낱말을 모조리 실어 놓는다고 해서 국어사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국어사전을 펼칠 사람들한테 훌륭한 길잡이가 되도록 하려는 뜻을 되새기지 못한다 싶어 슬픕니다.


  지식을 주워섬기는 말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담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보다 낫거나 훌륭하다고 내세우는 글이 아닌, 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껍데기를 씌우는 이야기가 아닌, 넋과 얼을 튼튼하고 알차게 빛내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다 함께 살아나는 말을 하고, 서로서로 북돋우는 글을 쓰며, 나란히 빛나는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싶습니다.


  보기글을 하나 더 들여다봅니다.

 

견강부회적인 해석이 눈에 띄는 등, 케이건이 홉스와 칸트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강상중/이목 옮김-청춘을 읽는다》(돌베개,2009) 177쪽

 

 ‘해석(解釋)’은 ‘풀이’로 다듬고, “눈에 띄는 등(等)”은 “눈에 띄는 한편”이나 “눈에 띄고”로 다듬습니다. “정확(正確)하게 이해(理解)하고”는 “제대로 헤아리고”나 “옳게 읽어내고”나 “올바로 알고”로 손질하고, ‘심(甚)히’는 ‘몹시’로 손질하며, ‘의심(疑心)스럽다’는 ‘모르겠다’나 ‘알 수 없다’나 ‘궁금하다’로 손질해 줍니다.

 

견강부회적인 해석이
→ 억지스런 풀이가
→ 어거지 같은 말이
→ 끼워맞추기 풀이가
→ 끼워맞춘 말이
 …

 

  억지스럽게 풀이하는 말이란 깊이 살피지 않고 이렁저렁 끼워맞추듯 풀이하는 말이라는 소리입니다. ‘끼워맞추기’요 ‘때려넣기’요 ‘주워섬기기’입니다. ‘땜질’이며 ‘말장난’이고 ‘얕은 풀이’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엉성한 풀이”나 “어줍잖은 풀이”나 “말이 안 되는 풀이”나 “터무니없는 풀이”나 “뚱딴지 같은 풀이”나 “뜬금없는 풀이”로 고쳐 볼 수 있습니다. 홉스이든 칸트이든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면 올바르게 하는 풀이가 아니라 ‘엉터리’로 하는 풀이인 셈입니다. 한 마디로 “엉터리 풀이”라 해도 되겠군요. 엉터리 같은 풀이라 한다면 “바보스러운 풀이”라든지 “모자란 풀이”라든지 “앞뒤가 안 맞는 풀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엉성한지를 나타내면 되고, 어떻게 모자란지를 보여주면 되며, 어느 만큼 어설픈지 이야기하면 됩니다.

 

 설렁설렁 적은 듯한 말이 눈에 띄며
 아무렇게나 붙인 말이 눈에 띄고
 제멋대로 끄적인 말이 눈에 띄고
 함부로 읊는 말이 눈에 띄고
 …

 

  뜻과 느낌을 살리면서 ‘설렁설렁’이나 ‘아무렇게나’나 ‘제멋대로’나 ‘함부로’ 같은 꾸밈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읊조리던 말마디가 내 귀로는 얼마나 억지처럼 들렸는가를 다루면 됩니다. 누군가 내뱉은 이야기가 내 마음으로는 어떻게 뜬금없게 느껴졌는가를 밝히면 됩니다. 누군가 끄적인 글줄이 내 눈으로는 어느 만큼 엉터리였는가를 적바림하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살리는 길을 찾아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슬기로 우리 글을 빛내는 삶을 살뜰히 꾸리면 좋겠습니다.


  내 말을 말답게 가꾸면서 내 넋을 넋답게 추스르고 내 삶을 삶답게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글을 글답게 일구면서 내 얼을 얼답게 다독이고 내 삶터를 삶터답게 다스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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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씨와 오이씨

 


 따스한 날씨가 새로 찾아옵니다. 새 날씨에 맞추어 올해 텃밭을 어떻게 가꾸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어린싹 틔울 판을 마련하기로 합니다. 지난해에는 밭에 바로 씨앗을 심었는데, 이렇게 해도 되지만 다른 풀이 나란히 싹이 트며 당근이랑 감자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어요. 올해 당근은 제대로 거두고 싶어, 판에 씨앗을 먼저 심어 어느 만큼 자란 다음 옮겨심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돌을 고른 흙을 손으로 솔솔 뿌립니다. 판에 흙이 다 차면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자리를 내고 씨앗을 심습니다. 당근씨는 아주 작아 흙을 살짝 덮고, 오이씨는 조금 크니 살짝 깊이 묻고 흙을 덮습니다. 아이는 지난해에 당근씨를 함께 심었습니다만, 한 해 지나고 다시 보니 당근씨인 줄 떠올리지 못합니다. 올해 이렇게 당근씨를 심고 이듬해에 또 심고 다음해에 거듭 심으면, 아이도 당근씨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심는지 찬찬히 깨닫겠지요.

 

 마을 귀퉁이에 굴러다니는 판을 몇 더 주워 다른 씨앗을 심고, 달걀판에는 능금씨랑 배씨를 심을 생각입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따스한 날씨가 고맙습니다.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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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3-03 14:11   좋아요 0 | URL
씨앗을 심는 시기군요!
저는 당근은 키우지 못 했지만 오이는 길러본 적 있어요. 된장 님처럼 씨앗부터 심은 건 아니고요 이웃 할머니께서 싹 틔우신 모종을 주셨었지요. 토종 오이였는데 엄청 맛있었죠. 반찬 해 먹을 겨를도 없이 우리 식구 너도나도 똑똑 따서 맨입에 그냥 먹었답니다. 오독오독 씹으면 싱그러운 오이향기가 물씬~~아항..

파란놀 2012-03-04 04:06   좋아요 0 | URL
집에서 작은 화분으로 길러 보셔요. 꽤 많이 스스로 얻어 즐거이 먹을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