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논둑길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1.15.



 논둑길을 타고 도서관으로 간다. 멧골집에 깃들던 때 책꽂이들이 잔뜩 먹어야 하던 곰팡이를 닦고 털어야 하기에 아침에 창문을 모조리 열고는 저녁에 닫는다. 책꽂이에 한 번 내려앉은 곰팡이는 닦고 털고 말리면 다시 안 피어날까. 애써 닦는달지라도 다시금 스멀스멀 피어나려나. 바람 잘 들고 햇살 잘 비치는 옛 흥양초등학교 자리가 좋다고 느낀다. 이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놀며 배우던 지난날에는 한겨울에도 밝은 햇볕을 받으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겠지. 한겨울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살이 골고루 들어오니, 이곳 아이들은 고운 햇살을 고마이 받으면서 마음껏 뛰놀며 배울 수 있었겠지.

 도시 한복판에 도서관을 세우더라도 도서관 둘레로 흙을 밟으면서 걸을 길이랑, 흙을 손으로 만지며 일굴 밭을 함께 마련하면 참 좋겠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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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있어야 할 책


 꼭 있어야 할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있으면 좋은 책이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간수해야 할 책까지 사서 읽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있으면 좋은 책을 많이 장만했고, 사라지지 않도록 간수해야 한다고 여기는 책을 참말 잔뜩 건사하며 살았다.

 빈집을 치우면서 생긴 쓰레기를 장인어른 짐차에 그득 싣고 고흥쓰레기매립장으로 간다. 빈집에서 나온 쓰레기 적잖은 푸대를 한 번 내다 버렸으나 또 잔뜩 나왔기에 스무 푸대가 조금 안 되게 담아서 싣고 가는데, 모두 540킬로그램 나온다. 비가 새는 헌 기왓장이랑 마당에 깔렸던 흙먼지랑 이장님이 가져가신 낡은 쇠붙이랑 얼기설기 얽힌 낡은 전깃줄이랑 이것저것 모두 헤아리면, 조그마한 시골 빈집에서 나온 쓰레기가 1톤쯤 되는구나 싶다.

 쓰레기매립장으로 찾아가 쓰레기를 버리는데, 참 고약하구나 싶은 냄새가 몸에 밴다. 수많은 사람들 손을 거친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커다란 멧자락을 이룬다. 이 냄새는 참 끔찍하겠지. 사람 스스로 빚은 물질문명이 내는 냄새일 텐데, 쓰레기매립장은 읍내하고 멀찍이 떨어진 외딴 곳 안쪽 깊숙하게 자리한다. 어디에서고 쓰레기매립장이 보이지 않는다.

 7만이 좀 안 되게 살아가는 작은 군 쓰레기매립장이기에 참 작다 할 텐데, 천만이 훨씬 웃도는 서울이나 경기도 쓰레기매립장이라면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아니, 서울은 구 하나조차 아닌 동 하나가 내 보금자리 고흥군보다 훨씬 크다 할 테고, 쓰레기는 더욱 많이 나올 텐데, 동이나 구마다 쓰레기를 어떻게 건사해서 버리거나 다룰까.

 꼭 있어야 할 책을 사면 걱정스럽지 않다. 꼭 있어야 할 책을 사면 사랑스럽다. 내 마음은 내가 꼭 아낄 사람을 사랑할 때에 따스하다. 내 생각은 내가 꼭 어깨를 겯을 동무를 믿을 때에 너그럽다.

 꼭 자야 할 잠을 잔다. 꼭 먹을 밥을 먹는다. 꼭 입을 옷을 입는다. 꼭 일굴 흙을 일군다. 꼭 벌 만한 돈을 번다. 꼭 할 이야기를 한다. 꼭 눌 똥오줌을 눈다. 꼭 보살필 살붙이를 보살핀다.

 조복성 님이 쓴 곤충 이야기 담은 책 하나면 넉넉하리라. 굳이 1934년에 낸 《조선의 접류》라는 책을 캐내어 갖추어야 하지 않는다. 도로시아 랭 사진책을 꼭 갖추어야겠는가. 나가쿠라 히로미 님 사진책 번역된 판 하나를 갖추어도 된다. 내가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책쉼터를 마련해서 꾸린다 하더라도, 모든 사진책을 다 장만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참으로 사랑할 책을 예쁘게 사랑하면서 갖추어야 한다. 내가 늘 즐기면서 아낄 만한 책을 즐기면서 아껴야 한다. 옆지기가 들려주는 말 한 마디 두 마디 고맙게 아로새기자. (4344.11.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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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친구'가 아니라 '주부의 벗'일 텐데? 더 찬찬히 헤아리면, 일본말로 '主婦の友'라고 적는 출판사이니, "주부와 벗"이라든지 "살림꾼 벗"이나 "살림벗"이나 "살림동무"쯤으로 옮겨 적어야 옳다고 느낀다. '友'라는 한자는 "벗 우"이지 "친구 우"가 아니다. 어쨌든, 이 일본 출판사는 재미나며 알찬 책을 참 옛날부터 많이 펴냈다. 읽을 줄 모르면서 헌책방에서 일본책을 곧잘 사서 사진이랑 글만 읽었는데, 이렇게 한국말로 옮겨진 책이 하나 있으니 참 반갑다. 나한테는 땅콩집이건 무어건 집지을 돈이 없지만, 좋은 꿈을 곱게 꾸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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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도 기분 좋은 일본의 땅콩집- 6평부터 시작하는 행복한 집짓기 150가지 방법
주부의 친구사 엮음, 박은지 옮김, 이현욱 감수 / 마티 / 2011년 1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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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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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밭 책읽기


 두 아이가 어머니랑 풀밭에 앉아서 풀가락지를 삼으며 논다. 어머니는 풀밭 기운을 예쁘게 누리면서 아이들이 함께 예쁘게 누릴 풀밭 기운을 베푼다. 토끼풀을 뜯고 억새를 뜯는다. 시원스레 부는 바람이 세 사람 온몸을 포근하게 어루만지면서 지나간다. 모든 사람을 살찌우는 숨결은 아이들 살결처럼 보송보송하면서 보드라운 흙에서 태어난다. 시멘트밭이나 아스팔트논이란 없다. 보송보송하면서 보드라운 흙밭과 흙논에서 새 숨결이 태어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 보송보송하면서 보드라운 흙땅을 천천히 밟을 수 있고, 이 흙땅에서 자라나는 풀밭에 얌전히 앉으면서 생각에 잠기고 놀이에 젖을 때에 아름답다.

 햇볕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람이 이야기를 속삭인다. 들풀과 도랑물이 이야기를 나눈다. 멧새가 하늘을 가르며 이야기를 흩뿌린다. 어머니가 차분하게 삼은 풀가락지를 손가락에 걸며 이야기씨 하나 가슴에 맺힌다. (4344.1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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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뜨개질 책읽기


 아이들 어머니가 뜨개질을 한다. 두 달 만이다. 지난 두 달, 우리 보금자리 없이 떠돌면서 지내야 했고, 살림짐은 모두 꽁꽁 싸서 끌를 수 없었다. 이제 새 보금자리를 찾아 짐을 하나둘 끌러 얼추 살림살이는 이렁저렁 풀었기에, 아이들 어머니는 뜨개바늘과 뜨개실을 꺼내어 뜨개질을 한다.

 아이들 어머니가 뜨개질을 두 달 만에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다가 문득 느낀다. 둘째 갓난쟁이를 품에 안고 뜨개질을 하는 모습은, 꼭 첫째가 갓난쟁이일 때에 품에 안고 매듭짓기를 하던 모습하고 닮았다.

 첫째 아이는 제 어머니가 저를 품에 안고 매듭짓기를 하던 지난날을 떠올릴 수 있을까. 둘째 아이는 제 어머니가 저를 품에 안고 뜨개질을 하던 오늘을 앞으로 되새길 수 있을까.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 또는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지나서, 이 아이들한테 저희 어린 나날 모습 담긴 사진을 보여주면 저희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났는가를 돌이킬 수 있을까. (4344.11.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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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1-17 13:47   좋아요 0 | URL
ㅎㅎ 뜨개질이라...저도 어려서 어머니까 떠주신 스웨터를 입은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아이들에게 거의 입히지 않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