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물든 미국말
 (663) 네코무라이스 에그


.. “아, 그럼, 오늘은 ‘네코무라이스 에그’를 해 볼까? 여자니까 깜찍하게 에그로 장식하면 좋아하실지도 몰라.” ..  《호시 요리코/박보영 옮김-오늘의 네코무라 씨 (하나)》(조은세상,2008) 107쪽

 ‘장식(裝飾)하면’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꾸미면’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집살림 맡은 네코무라 씨가 ‘오무라이스’를 하는데, 밥을 볶아서 밥그릇에 담은 다음 접시에 뒤집어 놓고, 달걀을 노른자 터지지 않게 부쳐서 밥 위쪽에 예쁘게 얹습니다. 달걀을 얇게 부쳐서 볶음밥에 얹지 않아요. 그래서 여느 ‘오무라이스’가 아닌 ‘네코무라이스 에그’라는 새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쓰는 ‘장식하면’이니, “여자니까 깜짝하게 달걀(부침)을 얹으면”처럼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오무라이스(オムライス)’는 일본사람이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오믈렛(omelet)’ + ‘라이스(rice)’가 ‘오무라이스’가 되었어요. 그러나 이 일본말(일본 영어)을 거리끼지 않고 쓰는 한국사람이에요. 한국에 있는 밥집 어디에서나 ‘오무라이스’나 ‘오므라이스’라 적을 뿐, 이 밥을 우리 말글에 걸맞게 풀어내어 적지 않습니다.

 오믈렛 → 달걀 얇게 부침
 라이스 → 밥
 오믈렛 + 라이스 → 밥을 볶은 다음 달걀 얇게 부쳐 얹음


 달걀을 부친다 할 때에 두껍게 부치기도 할 테고 얇게 부치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일본말 ‘오무라이스’는 ‘얇은달걀부침볶음밥’으로 적어야 가장 올바릅니다.

 이렇게 적자니 너무 길다면 ‘달걀부침볶음밥’이나 ‘달걀부침밥’처럼 적을 수 있어요. 어떻게 마련해서 먹는 밥인가를 살핀다면 가장 알맞으면서 올바르고 쉬운 이름 하나 얻습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도 됩니다. 아이한테 ‘오무라이스’를 마련해 준 다음, “자, 오늘은 무슨 밥일까?” 하고 물어 보셔요. 아이들이 아직 ‘오무라이스’라는 일본말을 모를 때 물어야 하는데, 오무라이스를 모르는 아이들은 달걀을 얇게 부쳐서 볶음밥에 얹을 때에 무어라 이야기를 할까요. 아이들한테 묻듯 나 스스로한테 차분하게 물어도 돼요. 나는 이 밥을 바라보면서 어떤 밥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네코무라이스 에그 : 네코무라 씨가 만든 달걀부침 얹는 볶음밥
→ 네코무라 달걀밥
→ 네코무라 달걀부침밥
→ 네코무라 달걀부침볶음밥
 …


 여느 달걀부침밥(오무라이스)하고는 좀 다르게 마련하는 밥인 만큼 ‘부침’이라는 낱말을 덜어 ‘달걀밥’이라고만 할 때에 더 알맞을 수 있습니다. 또는 “네코무라볶음밥 달걀얹기”처럼 조금 길더라도 새 이름을 붙일 만해요.

 스스로 예쁘게 꾸미려 하는 맛난 밥인 만큼, 스스로 예쁘게 돌보려 하는 살가운 말이요 이름이라면 한결 반갑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나날이라면, 스스로 아름다이 보살피는 말이며 글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인다면 몹시 즐겁습니다.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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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기에 어느 책이든 선뜻 장만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런저런 읽을거리를 꾸준하게 장만하곤 한다. 한 번 읽으면 좋을 책하고, 집식구 모두 갈마들며 읽으면 좋을 책하고, 아이들이 오래오래 아끼며 읽으면 좋을 책은 다르니까. 책을 말하는 책이 하나둘 늘면서 베스트셀러에 들지 않는 아름다운 책이 하나둘 사랑받기도 한다고 느낀다. 다만, 조금 더 몸과 눈을 낮추고, 글 또한 삶하고 어울려 놓으면 좋으리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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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11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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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아 봄꽃들아 과학은 내친구 23
이제호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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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도 꽃도 자연도 ‘과학’이 아니에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9] 이제호, 《겨울눈아 봄꽃들아》(한림출판사,2008)



 겨울눈과 봄꽃을 찬찬히 살피며 꼼꼼하게 담은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한림출판사,2008)를 바라봅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집 네 살 딸아이가 이 그림책을 즐길 만할까 어림해 봅니다. 갓난쟁이 둘째 아이는 이 그림책을 앞으로 좋아할 만할까 갸웃해 봅니다.

 어쩌면, 집 안팎과 마을에서 마주하는 나무에 맺히는 눈과 잎과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에 실린 그림을 견줄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바라보며 그린 나무 그림이랑 《겨울눈아 봄꽃들아》에 실린 나무 그림을 나란히 놓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이제호 님이 빚은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는 그림이 푼더분합니다. 빛깔이 흐드러집니다. 한 땀 두 땀 얼마나 알뜰히 힘을 쏟았는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쉽습니다. 이 겨울눈과 봄꽃을 왜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 겨울눈과 봄꽃은 우리 삶하고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이른바 세밀화라는 이름으로 그려서 선보이는 그림책을 들여다볼 때면 으레 이 대목을 떠올립니다. 이들 세밀화 그림책은 왜 읽어야 하나요. 이들 세밀화 그림책은 우리 삶하고 어떻게 맞닿을까요.

 시골사람한테는 세밀화 그림책이 부질없습니다. 늘 보며 언제나 살피니까요. 나무를 늘 보지 못하고 자연을 언제나 벗삼지 못할 도시사람이 아니고서야 세밀화 그림책은 덧없습니다. 살아숨쉬는 자연처럼 아름다운 그림이 없어요. 손가락을 가만히 대며 느끼는 겨울눈 숨결이랑 종이에 아로새겨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느낄 겨울눈 빛깔은 사뭇 달라요.

 그저 모양만 예쁘장하게 그리는 어수룩한 나무 그림을 떠올린다면, 《겨울눈아 봄꽃들아》는 참 잘 빚은 그림책입니다. 다만, 꼼꼼하며 찬찬히 바라본 그림이기에 어수룩하게 그린 나무 그림보다 더 살갑거나 따사롭지는 않아요. 더욱이, 이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에는 “과학은 내 친구”라는 ‘묶음책 이름’이 붙어요. “과학은 내 친구” 스물셋째 그림책이라는 《겨울눈아 봄꽃들아》입니다.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겨울나무 겨울눈은 과학인가요. 봄나무 봄꽃은 과학인가요. 아이들한테 나무는 과학인가요. 아이들한테 꽃과 잎사귀와 열매는 과학인가요.

 나는 나무도 열매도 잎도 꽃도 눈도 모두 삶이라고 여깁니다. 내 하루를 북돋우는 삶이요, 나랑 함께 살아가는 집식구 모든 삶이라고 느낍니다. 삶이지 않고서는 나무를 바라보거나 껴안을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 아니라면 나무를 어루만질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파트로 이루어진 보금자리에서 《겨울눈아 봄꽃들아》를 읽힐 어버이라면 한 번쯤 곰곰이 생각에 잠기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으로만 겨울눈과 봄꽃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아파트를 떠나 나무 한 그루 심을 만한 흙땅 있는 조그마한 집을 찾아야 합니다.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심어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나무는 씨앗을 받아 심으면 됩니다. 씨앗을 심을 마땅한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아니 도시에서는 씨앗을 받아 나무를 심으려 한다면 ‘새싹을 몰라볼 사람’들이 마구 짓밟거나 풀약을 쳐서 죽이고 말 테니까, 어린나무를 사서 심을 때가 더 나을 수 있어요. 어린나무 한 그루 값은 5천 원이 안 됩니다. 그림책 한 권 값이 안 돼요. 아이들하고 아름답다 싶을 그림책 하나 더 나누어도 기쁜 나날이요, 아이들하고 아름답다 싶을 어린나무 한 그루 사서 이 나무가 곱게 자랄 흙땅을 튼튼하게 지켜도 기쁜 삶입니다.

 삶을 생각하고 삶을 느끼며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손을 맞잡아 주셔요. (4344.11.19.흙.ㅎㄲㅅㄱ)


― 겨울눈아 봄꽃들아 (이제호 글·그림,한림출판사 펴냄,2008.2.27./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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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짚는 손


 첫째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잔뜩 장만한다. 저녁나절, 하루가 저물 무렵 저녁밥 먹고 나서 방바닥에서 뒹굴며 그림책을 집는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내키는 그림책을 집어서 펼친다. 그래도 그림책 쥐고 아이를 무릎에 앉혀 함께 읽으면 더 좋아할까.

 옆지기가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넘긴다. 둘째 아이가 그림책을 함께 쥐기도 하고, 그림 있는 자리에 손을 뻗어 짚기도 한다. 첫째 아이도 이무렵 이렇게 놀았겠지. 다만, 둘째 아이한테는 바람씻이랑 찬물더운물씻이를 아직 못 한다. 밥차림 다스리기도 제대로 못 한다. 해야 할 일이 많고 다스릴 살림이 벅차다고 느껴 둘째 아이 아토피 털어내는 데에 마음을 못 둔다 할 만하다. 그렇지만, 첫째 아이를 낳아 살아갈 때에는 일이 적거나 없었겠나. 어린 갓난쟁이가 아토피를 비롯해 힘겨운 몸앓이를 스스로 이기기란 참 버겁다. 어쩌면 하루이틀 흐르는 나날이 저절로 풀어 준다 할는지 모르지만, 어버이로서 옳게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나날이라 한다면, 아이 스스로 기운을 낼 수 없다. 나부터 기운을 차리고, 나부터 따사로운 숨결을 북돋아야 한다. 나부터 새힘을 내고, 나부터 모든 일을 한결 씩씩하게 어루만져야 한다.

 책을 짚는 손은, 책에 깃든 이야기를 지식으로 담는 손이 아니다. 책을 짚는 손은 온몸으로 사랑을 실어 따사로이 살아가는 손이다.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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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fornia on the Breadlines (Hardcover) - Dorothea Lange, Paul Taylor, and the Making of a New Deal Narrative
Jan Goggans / Univ of California Pr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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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서 읽은 책은 이 <캘리포니아 어쩌고>가 아니지만, 이 사진책에 캘리포니아 모습이 적잖이 나온다. 아무튼, 도로디어 랭 사진책을 '간추린 판'이 아닌 '사진책'으로 사서 읽는다면, 사람들이 흔히 고정관념처럼 아는 사진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느끼리라 믿는다. 



 사진 한 장에 담기는 사람들 삶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8] Dorothea Lange,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Heyday books,1995)


 1895년에 태어나 1965년에 숨을 거둔 도로디어 랭(Dorothea Lange) 님 사진을 바탕으로 새롭게 꾸민 사진책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Heyday books,199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조그마한 사진책에는 “Dorothea Lange and the Bay Area at War, 1941∼1945”라는 자그마한 이름 하나 덧붙습니다. 그러니까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요, ‘두 번째 금광찾기’가 된다는 사진이라는 셈입니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했는가 돌이킵니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였던 이무렵 숱한 지식인과 지성인은 친일부역을 합니다. 나로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살지 못했으니 이때가 얼마나 어떻게 괴로우며 벅찼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만, 옳으며 바른 길을 착하고 맑게 걷기란 몹시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옳으며 바른 길을 착하고 맑게 걷는 모든 길이 꽉 막히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멧골 깊이 들어가 조용히 흙을 일구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외딴섬 조그마한 집에서 아주 고요히 바다와 벗삼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흙을 일구어야 먹고살 수 있던 지난날 한겨레인데, 뻔히 일본총독부한테 쌀과 곡식과 푸성귀를 빼앗길 줄 알면서도 흙을 일구어야 하는 삶에서 어떻게 견디거나 버틸 수 있었을까요. 시골사람은 창씨개명을 할밖에 없으며, 도시사람은 친일부역을 할밖에 없던 슬프며 아픈 나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핑계감으로 삼는 말이 아니라, 참 배고프고 외로우며 아픈 나날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1950년부터 남녘과 북녘은 총부리를 맞대며 서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짓을 저지릅니다. 왜 한겨레끼리 이토록 죽임질에 목을 매야 했는가 돌아보면 그예 슬프며 아플 뿐입니다. 그런데, 이무렵 1950년부터 몇몇 나라는 군수공장을 펑펑 돌리면서 어마어마하게 돈벌이를 합니다. 이른바 ‘무기 만들고 팔아 금광찾기’를 하는 꼴입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노릇이지만, 미국땅에서 1941년부터 1945년은 ‘무기 만들고 팔아 금광찾기’를 하던 나날이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일으켜 준 전쟁 때문에 쉴새없이 ‘무기팔이’를 할 수 있었고, 미국에서는 일본이 일으켜 준 전쟁이 있기에 더욱더 힘을 내어 ‘무기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그야말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짓입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집도 식구도 돈도 꿈도 몽땅 날아가는 터무니없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또다른 누군가한테는 어마어마한 돈벌이입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크나큰 훈장이나 이름값입니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한국땅에서 마주할 수 있던 사람들 모습에서는 어떤 빛을 읽을 수 있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만하고, 어떤 웃음꽃이 피어날 만하며, 어떤 꿈이 이루어질 만한지 궁금합니다.

 1942년에도 혼인한 사람이 있겠지요. 1944년에도 태어난 아이가 있겠지요. 1943년에도 글을 배운 아이가 있겠지요. 1945년에도 예순잔치가 있겠지요.

 도로디어 랭 님 사진책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를 넘기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사진 밑에 붙인 ‘사진 찍은 해’가 없다면, 이 사진을 194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195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1961년이나 1971년이나 198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참말 언제 찍은 사진이라 할 만할까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미국사람한테 1945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가난하다가 갑작스레 살림이 편 미국사람한테 1944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이무렵 일자리라면 아무래도 군수공장이 가장 많았으리라 보는데, 군수공장에서 일거리를 얻어 돈벌이를 하며 집식구를 먹여살리던 어버이들한테 1943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같은 해 다른 자리 사람들 사진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품을 수 있을까요. 같은 자리 다른 삶 사람들 사진은 저마다 어떤 빛과 그림자를 껴안을 수 있을까요.

 가난해도 밥을 먹습니다. 가멸차도 잠을 잡니다. 못생겨도 사랑을 합니다. 잘생겨도 헤어집니다. 집이 없어도 살림을 꾸립니다. 집이 있어도 텃밭을 못 일구곤 합니다. 돈이 없어도 웃음꽃을 활짝 피웁니다. 돈이 있어도 눈물나무만 자랍니다.

 누군가는 가난하거나 힘겹다 싶은 살림을 꾸리는 사람을 찍은 사진은 어둡거나 퀴퀴하거나 슬프거나 아파야 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면, 가멸차거나 수월하다 싶은 살림을 누리는 사람을 찍은 사진은 어떠해야 할까요. 사진은 돈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까요. 글은 돈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나요. 노래는 돈에 따라 내음이 바뀌는가요.

 더 큰 선물보따리를 받아야 웃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밥그릇을 두서넛쯤 받아야 함박웃음으로 밥을 먹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합니다. 하루 두어 끼니면 배부릅니다. 누구나 조그마한 밥그릇으로 조그마한 사랑을 조그마한 꿈에 담아 누립니다.

 도로디어 랭 님이 농업안정국이라는 데에 몸담으며 사진을 찍었든, 홀가분하게 당신 사진감을 찾아 사진을 찍었든, 두 갈래 사진은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를 사진쟁이 스스로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이 사진기를 손에 쥔 사진쟁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며 깨우치는가를 알아채면 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길을 닦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사랑길을 닦을 테고, 누군가는 돈길을 닦을 테며, 누군가는 꿈길을 닦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름길을 닦겠지요.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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