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열린 한대수
한대수 지음 / 선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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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구성지게 얘기하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56] 한대수, 《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

 


 봄이 되어 들판에는 다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들새가 먹이 찾으러 새벽부터 일찍 돌아다니는 소리를 듣습니다. 멧등성이 쪽을 바라봅니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저 멧자락에는 어떤 멧짐승이 새봄을 기쁘게 맞이할까 헤아려 봅니다. 저 멧자락에는 어떤 멧풀이 새싹을 틔우고, 어떤 멧나무가 새눈을 틔우려 애쓸는지 생각해 봅니다.

 

 봄은 누구한테나 봄입니다. 사람한테도 들고양이한테도 들풀한테도 모두 봄입니다. 하늘도 봄이요 냇물도 봄이며 별들도 봄입니다. 긴긴 겨울을 알뜰히 지냈으니, 이제부터 모두들 맑은 봄기운 듬뿍 받아먹을 만합니다. 추운 겨울을 포근히 났으니, 이제 저마다 마음속으로 품으며 기다리던 봄을 한껏 누릴 만합니다.

 

 봄햇살에 더 보송보송 마르는 봄빨래입니다. 겨우내 덮던 이불은 한 채씩 신나게 빨아 즐거이 말리자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고무대야 마당에 내놓고 아이하고 이불을 마음껏 밟으며 빨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애벌빨래는 내가 먼저 해 놓고, 헹굼질을 할 때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나이에 맞추어 나중에는 아이더러 이불 비누질도 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더러는 이불 한 채를 한 시간쯤 걸려 빨라고 하지요. 나도 어린 나날 이불 한 채를 빨 때에 으레 한두 시간은 들였지 싶어요. 작은 몸 작은 손으로 커다란 이불을 이리저리 뒤집고 돌려서 비비고 밟고 하자면 퍽 힘들거든요.

 

 

 나부터 하루를 즐길 때에 아이들 또한 하루를 즐깁니다. 나부터 새봄을 새로운 사랑으로 맞아들일 때에 아이들 또한 새봄을 새로운 꿈으로 받아들입니다. 새로 비추는 좋은 빛살을 느끼며 한대수 님 사진이야기 《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를 읽습니다. 뚜껑이 열렸다니, 무슨 뚜껑이 열렸나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처음부터 “내 생각엔 기획사를 통해서 성공한 아티스트는 거의 없다. 성공을 한다고 해도 잠깐이지, 한 인생을 거치며 아티스트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45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런 소음 공해는 여러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데, 곳곳에 있는 공사장의 소음들과 거리의 상점마다 틀어놓은 야외 스피커는 나를 더더욱 놀라게 한다. 이러한 소음은 서양 사회에서는 불법이다(66쪽).” 하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밑줄을 그으며 찬찬히 읽습니다. 한대수 님은 ‘음악 예술’을 하려는 이들한테 들려주고 싶다며, ‘기획사에 들어가 이름 날리는 길’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곰곰이 되새깁니다. 노래꾼을 꿈꾸는 이들뿐 아니라, 사진꾼이나 글꾼이나 그림꾼이 되려는 이들도 똑같이 헤아릴 대목입니다. 어떤 ‘학교’를 다니거나 어떤 ‘스승’을 섬기거나 어떤 ‘기관(또는 스튜디오, 또는 창작실, 또는 작업실)’에 들어간대서 내가 꿈꾸는 길을 기쁘게 이루지는 않아요. 늘 혼자 씩씩하게 걸어가는 길에서 꿈을 기쁘게 이룹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여럿이 동아리를 이루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노래패에는 악기를 다루는 이들이 따로 있어, 여럿이 어울리는 길에서도 내 꿈을 이룬다 할 테지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나요 장구를 때리는 사람도 나이며 기타를 뜯는 사람 또한 나예요. 나와 내가 어우러지는 우리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나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또한 나이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란 바로 나예요. 돈을 벌겠다며 글을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돈을 벌려고 쓰는 글이란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 꿈을 키우는 길이 될까 궁금해요.

 

 

 

 곧, 꿈하고 동떨어진 돈하고 사귈 때에는 ‘소음 공해’와 똑같이 ‘글 공해’가 되고 ‘그림 공해’가 되며 ‘사진 공해’가 됩니다.

 

 삶을 구성지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글입니다. 삶을 신나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림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입니다. 이야기가 있어야 글이며 그림이고 사진이에요. 이야기를 담지 못하거나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다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국 연속극에서) 최하 2천에서 3천 달러 되는 아파트에 살면서 브런치나 먹어가면서 명품 가방과 하이힐을 신고 다닌다니 그야말로 소설이다. 그리고 온갖 사람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어떻게 바로 사랑을 나누느냐(92쪽)?” 하는 말처럼, 명품과 겉치레와 돈놀음에 파묻히는 삶이란 삶이라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사랑조차 없다고 말할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을 때에 쓰는 글이거든요. 내 가슴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있을 때에 그리는 그림이거든요. 내 넋으로 북돋우는 사랑이 있을 때에 찍는 사진이에요.

 

 

 한대수 님은 손숙 님과 함께 꾸리는 라디오 풀그림에서 “80퍼센트가 되는 서민층에게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만 온순하게 일을 하고, 빚을 갚게 만들고, 불만이 있더라도 특히 다문화 다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혁명을 일으킬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전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117쪽).” 하고 이야기한답니다. “아티스트는 ‘반 고흐’와 같이 한평생 고생하다가 고귀한 희생을 하는 것과는 반대였다. 그래서 워홀은 수천만 달러를 챙겼다. 그래서 나는 워홀에 대한 예술적인 가치는 그다지 평가하지 않는다(167쪽).” 하고도 이야기한답니다. 그야말로 홀가분한 넋이기에 홀가분하게 이야기합니다. 즐거이 누리고픈 삶이기에 즐거워 보이지 않는 삶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따스히 어루만지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곱게 누릴 삶입니다. 저마다 알차게 빛낼 나날입니다. 누구나 곱게 부를 노래요, 저마다 알차게 찍을 사진입니다. 누구나 곱게 꾸릴 살림이요, 저마다 알차게 마련할 밥상입니다. 누구나 곱게 나눌 사랑이고, 저마다 살가이 어깨동무할 꿈이에요.

 

 한대수 님은 또 이야기합니다. “큰곰은 군을 제대하고 나서 인생관이 많이 변했다. 인류에 대한 희망을 더욱더 잃었고, 그것이 음악에 반영이 됐다(239쪽).” 하고.

 

 

(헉 ! 사진 뒤집어졌네... -_-;;;)

 

 

 슬픔은 슬픔대로 노래하는 사람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기쁨은 기쁨대로 사진하는 사람 마음으로 젖어듭니다. 아픔은 아픔대로 글을 쓰는 사람 넋으로 깃듭니다. 웃음은 웃음대로 춤을 추는 사람 몸짓으로 녹아듭니다.

 

 나 또한 군대에서 빛을 잃었습니다. 사람을 더 잘 더 빨리 더 많이 죽이는 재주를 가르치고 길들이는 군대에서 도무지 빛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군대에 며칠 먼저 들어왔다고 웃사람으로 모시며 깍듯이 높임말을 써야 하는데, 군대 바깥에서 나이를 따져 웃사람으로 모시며 깍듯이 높임말을 쓰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군대는 군대대로 꽉 막히고, 사회라는 곳은 사회라는 곳대로 꽁꽁 묶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총부리로 윽박질러 짓뭉갭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랑하는 꿈은 군화발로 걷어차며 짓밟습니다. 돌이켜보면, 회사라는 곳도 이와 같습니다. 사회에서는 나이, 군대에서는 계급, 회사에서는 지위에 따라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을 매겨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이런 판이라면, 어떤 이가 노래하는 꿈을 꿀까요. 이런 터라면, 어떤 이가 사진하는 꿈을 키울까요. 이런 마당이라면, 어떤 이가 좋은 벗을 사귀며 좋은 사랑을 빛내는 길을 걸을까요.

 

 한대수 님은 당신 노래를 돌이키며 “작곡은 내 마음의 상처의 치유다. 그리고 내 음악이 여러분들의 상처에 치유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293쪽).” 하고 말합니다. 노래할 때에는 노래가 마음을 달랠 테고,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이 마음을 달래겠지요. 아이를 안고 어를 때에는 아이가 마음을 달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와 길을 걷고, 아이를 씻기며, 아이를 먹일 때에는, 언제나 아이가 한대수 님 마음자리를 가득 누비리라 느낍니다. 이제 한대수 님은 당신 딸아이한테 “여자인 네가 짝을 택하는 것이다.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지 그 반대는 없다(358쪽).” 하는 말을 들려주며 책을 끝맺습니다. 여자한테는 ‘어머니가 되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남자한테는 ‘아버지가 되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는 소리요, 한대수 님 스스로 당신한테 가장 아름다울 길인 ‘아버지로 살아가는 나날’을 즐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순이 다 되어 아이를 낳아 사랑하겠다고 생각했을 테지요. 예순이든 일흔이든 나이라 하는 ‘숫자 밥그릇’을 떠나, 참살길을 찾으려 했겠지요.

 

 《뚜껑 열린 한대수》는 이제껏 누리지 못한 새로운 꿈을 누리는 이야기를 구성지게 들려주는 사진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뚜껑 열린 한대수》는 여태 깨닫지 않으며 지나치고 만 새로운 사랑을 빛내는 삶을 구성지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로구나 생각합니다.

 

 

 구성지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구성지게 나누며 환하게 웃음꽃 터뜨리고 싶을 적에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새로 맞이한 봄날, 새로 찾아드는 따스한 기운을 마음껏 누리며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춥던 긴 겨울날, 따스한 봄날을 꿈꾸며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 스스로 누리고픈 삶이 글꽃이나 그림꽃이나 사진꽃으로 피어납니다. 내가 아끼는 내 살붙이와 어우러지고픈 사랑이 글열매나 그림열매나 사진열매로 이루어집니다. 그래, 한대수 님이 한국땅을 두루 돌아보기에 참말 삶을 아끼며 삶꽃을 피우려는 젊은이가 도무지 안 보인다 싶어 “뚜껑 열린 한대수”가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땅 어딘가에, 또는 한국 바깥 어느 곳에, 한대수 님 딸아이하고 좋은 짝꿍이 될 사랑스러운 사내아이 기쁘게 크리라 믿으며, “뚜껑 열고 찾아보는 한대수”로 오늘 하루를 즐거이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4345.3.3.흙.ㅎㄲㅅㄱ)


― 뚜껑 열린 한대수 (한대수 글·사진,선 펴냄,2011.11.7.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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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3-0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밑 사진에 안긴 저 아이가 '한양호'인가요? 라디오 방송 들으니까, "양호"라는 낱말이 좋아서 아이를 낳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양호라고 지을 작정이었대요.
된장 님께서 별을 다섯 개나 주셨네요!

파란놀 2012-03-04 04:05   좋아요 0 | URL
글과 사진이 참 좋은데,
예전 생각의나무 책은 출판사가 송두리째 사라지며 책도 사라져서
이번에 새 책이 나왔는데, 그동안 새로 찍었을
좋은 사진을 더 싣지 못한 대목이 퍽 아쉽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괜찮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3-0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대수 씨가 늘그막에 본 딸이로군요.늘 양호 양호 하던 그 아이...

파란놀 2012-03-04 04:04   좋아요 0 | URL
한국말로 하면... "한 좋아"인 셈이에요 ^^;;;

한대수 님 노래 가운데 <하루 아침>이 있는데, 이 노래를 열 때에 "기분이 좋아, 좋아..." 하고 읊어요. 좋아, 좋아... 이 말을 양호, 양호... 하면서 딸아이 양호가 되었지요 ^^;;;;
 


 밑씻는 책읽기

 


 저녁 열 시가 넘도록 둘째 아이가 잠들지 않더니, 똥을 한 번 시원하게 눈다. 둘째는 아홉 시 살짝 넘은 때에도 똥을 푸지게 누었다. 그래, 이렇게 저녁똥을 누고 홀가분한 배를 두들기며 자려 했구나. 그런데 네 똥기저귀랑 오줌기저귀를 힘겨이 다 빨아 방에 널고는 좀 쉴까 했더니 다시 똥을 누네. 그러나 어찌 너를 탓하랴. 네가 이렇게 잠들기 앞서 신나게 놀며 똥을 누어 주니 고맙다 여겨야지. 한밤에 자다가 똥을 누면 얼마나 힘든데. 자다 깨어 기저귀를 갈다가 손에 똥이 질펀하게 묻으면 치우기 얼마나 까다로운데. 자칫 이불이 똥범벅이 되어 이불을 몽땅 빨아야 하면 얼마나 고단한데.

 

 생각해 보니, 첫째 아이는 한밤에 자다가 똥을 누기 일쑤였다. 자다가 이불을 다 걷고는 새 이불을 깔고 덮으며, 밤에 똥이불을 애벌빨래 해서 담가 놓는 일이 참 잦았다. 둘째를 생각하면 둘째는 똥이불 빨래를 거의 내놓지 않는다. 한겨울이 가도록 아버지한테 똥이불 빨래를 시키지 않았다.

 

 밑을 다 씻기고는 토실토실 엉덩이를 톡톡톡 치면서, 이 귀여운 녀석, 하고는 논다. 똥기저귀는 비누를 발라 두 차례 밑빨래를 하고는 뜨신 물에 담가 놓는다.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어머니랑 좀 놀라 하고는, 남은 뜨신 물로 똥기저귀를 마저 빨래한다. 둘째는 열한 시가 되어 비로소 깊이 잠든다. 살포시 안아 이부자리에 눕히니 가만히 실눈을 뜨며 ‘어머니인가 아닌가’를 살피더니 ‘쳇, 아버지잖아’ 하는 눈짓으로 다시 눈을 감으며 숨을 고르더니 곯아떨어진다. 쳇, 아버지야말로 쳇이라고.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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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3-03 14:05   좋아요 0 | URL
된장 님 아기 키우는 글 보면서요, 우리 애들도 어렸을 적에 저렇게 응가를 자주 했던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많아요. 하루에 한 번 응가 누는 게 어느 정도 자라야 되는 일인지 까맣게 잊어 버렸어요.
기저귀 졸업하던 일이 아기가 하는 가장 큰 효도라고 제가 칭찬한 적은 있어요ㅋㅋ
기저귀 안 차면 엄마 할 일이 확 줄거든요.
부모가 아니면 똥기저귀 가는 수고를 어떻게 기쁘게 감당해 낼까요....

파란놀 2012-03-04 11:09   좋아요 0 | URL
하루에 서너 차례는 누잖아요.
천기저귀를 쓰면 똥이랑 오줌을
날마다 언제 어느 만큼 누는가를
헤아릴 수 있어요.

종이기저귀를 쓸 때에는
이런 모습을 잘 느끼지 어려울 수 있어요.

기저귀를 마치는 일은 효도라기보다..
집일을 좀 줄여 줄 뿐이에요 ^^;;;

효도는 다른 데에서 효도를 하리라 믿어요~
 
다녀왔어 노래 2
후지모토 유우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모두들 네가 참 좋아서 그렇단다
 [만화책 즐겨읽기 123] 후지모토 유키, 《다녀왔어 노래 (2)》

 


 졸려 두 눈이 벌겋지만 잠을 이루지 않는 아이는 더 놀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아이가 한숨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면 한결 신나게 놀 텐데 하는 어버이 마음이지만, 아이는 더 버티고 또 버티며 다시 버팁니다. 지쳐서 곯아떨어질 때까지 자리에 누울 생각이 없고, “나 졸려, 잘래.” 하고는 자리에 누웠다가도 이내 슬슬 기어나와서 시익 웃고는 또 놀려 합니다.

 

 오늘 하루 어김없이 낮 열두 시 무렵부터 졸린 낌새가 보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밥을 먹고도, 또 한참 놀고도, 또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고도, 그예 더 버티고 더 엉겨붙고 더 낑낑거립니다.

 

 이 아이는 참 왜 이렇게도 더 놀려고만 하지, 하고 생각하던 저녁나절, 귤조각 입에 문 아이가 스르르 눈을 감고는 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빛 환한 방인데, 어머니랑 아버지랑 동생이랑 복닥복닥 떠들어도, 첫째 아이는 다시 깨지 않고 아주 깊이 잠듭니다.

 

 하얀 천으로 아이 눈을 가립니다. 이러고 한 시간쯤 지나니 아이가 끄응끄응 하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옳거니, 쉬가 마렵구나. 벌떡 일어난 아이인데, 비틀비틀 합니다. 그래, 잠이 안 깬 채 몸만 일어났구나. 대견하네. 아버지는 두 손을 아이 어깨죽지 사이에 넣고는 아이를 대롱대롱 흔들면서, “쉬 하러 가자, 쉬 하러 가자.” 하고 노래합니다. 오줌그릇 앞에서 아이 바지를 내리고 살그머니 앉힙니다. 입에 문 귤을 뱉으렴, 하고 말하지만,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오물오물 할 뿐.

 

 쉬를 누었다 말았다 하기를 1분쯤 하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까딱까딱 합니다. “다 누었니?”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슬 일어납니다. 바지를 올리고 가슴으로 안습니다. 이제는 잠자는 방으로 옮겨 누입니다. 아이는 이때부터 다시 깨지 않고 아주 달고도 깊게 잠을 잡니다.

 

 


- “아빠, 이거 무지 비쌌지, 괜찮아?” “용돈 다 썼어?” “내 저금 빌려줄까?” “너희가 걱정할 만큼 아빠가 변변치 못해 보이냐. 앞으로 많이 쓸 거라고 생각하면 싼 거야! 안 그래, 여보?” “맞아. 그럼 앞으로 다 같이 많이 놀러가야겠다!” (24쪽)
- “그리고 경품행사에 사쿠라 오빠 이름으로 응모하면 이게 또 당첨된단 말이지! 그렇게 굳은 돈으로 고기라든지 고기라든가 고기를 사서 조금이라도 풍성한 식탁을!” “아하하, 좋다. 재미있네. 나도 너네 집 식구가 되어 보고 싶어!” (134쪽)


 나는 내 네 살 적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일곱 살 적도 그닥 떠올리지 못합니다. 열 살 때도 그리 많이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첫째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늘 곁에서 지켜보며 곰곰이 되새깁니다. 내 한 살 적에는, 내 두 살 적에는, 내 세 살 적에는, 내 네 살적에는, 또 내 다섯 살 적에는 어떤 모습으로 놀며 복닥였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첫째 아이를 품에 안고 잠자리에 누이고는 이불을 여밉니다. 머리칼을 쓸어넘깁니다. 나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내 다섯 살 적 나 또한 내 아이처럼 이렇게 잠잘 줄 모르며 놀다가 갑자기 곯아떨어지고는 어머니 품이나 아버지 품에 안겨 방 한켠에 눕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문득 누군가 나를 안고 잠자리로 가던 느낌과 따스함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 ‘이런 식으로 오빠를 찬찬히 관찰할 기회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응, 확실히 니시야마가 예쁘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가.’ (64∼65쪽)
- “알아. 잊으려고 하는 거겠지, 엄마를.” “난 도저히 잊을 수 없는데!” “그랬구나. 많이 힘들지? 우리 집은 두 분이 돌아가신 지 6년 정도 됐는데.” “6년쯤 지나면 잊을 수 있는 거야?” “못 잊어. 아직도 여전히 슬픈걸. 하지만 정말 힘들 때는 울어도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웃기로 약속했어. 우리끼리, 아주 오래 전에.” (102∼104쪽)

 


 나는 내가 잘 모른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사랑받으며 살았습니다. 나는 내가 잘 떠올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김없이 사랑받으며 자랐습니다. 나는 내가 낱낱이 되새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사랑을 먹으며 컸습니다. 나는 내가 똑똑히 헤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사랑을 누리며 지냈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서 바보처럼 아이들을 꾸짖는 날이면, 내 어버이도 나를 바보처럼 꾸짖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서 예쁘게 아이들을 돌보며 아끼는 날이면, 내 어버이 또한 나를 예쁘게 돌보며 아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내 어버이가 나를 너무 다그치거나 꾸짖기만 하던 모습이 깊이 아로새겨진 나머지, 내 아이들을 너무 다그칠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내 어버이가 나를 몹시 다그친 생채기가 남았다 하더라도, 내 아이들한테는 고운 사랑으로 마주하자고 다짐하며 달라지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내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사랑을 제대로 못 깨닫고는 내 아이들한테 못난 어버이 모습을 보이는지 모릅니다.


- “맞아, 집에 가야지. 집이 어디니?” “이 근처야? 아님 멀리서 왔니?” “…….” “엄마가 걱정하시잖아.” “없어요. 죽었어요.” (89쪽)
- “부모님 욕 먹이기 싫으면 다시는 하지 마.” (110쪽)

 

 


 아이들은 하루하루 자랍니다. 어른들도 하루하루 자랍니다. 아이들은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늡니다. 팔뚝과 허벅지에 힘살이 붙습니다. 어른들은 키가 줄고 몸무게가 줍니다. 팔뚝과 허벅지 힘살이 아이들보다 뒤처지거나 따라잡힙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삶을 누리면서 새로운 사랑을 누립니다. 어른들 또한 날마다 새로운 삶이요, 새로운 사랑이에요. 다만, 적잖은 어른들은 당신들이 날마다 새롭게 자라며 새롭게 사랑받는 나날을 누리는 줄 제대로 못 깨닫기 일쑤입니다.

 

 나이 스물도 꽃이요 나이 서른도 꽃이며 나이 마흔도 꽃이에요. 나이 쉰도 꽃이고 나이 예순과 일흔 또한 꽃이에요.

 

 동백나무는 열 살이든 쉰 살이든 백 살이든 꽃을 피웁니다. 느티나무는 이백 살이든 삼백 살이든 사백 살이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를 떨구고는 어린 느티싹이 돋아 무럭무럭 자라도록 이끕니다. 감나무는 열다섯 살에도 스물다섯 살에도 싱그럽고 소담스레 열매를 맺습니다. 감나무는 쉰다섯 살이나 백다섯 살에도 말간 감꽃을 피우며 고운 내음을 온 들판에 퍼뜨립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어서 죽고, 나무도 어느 만큼 늙으면 죽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에 드디어 죽음을 맞아들이며 기쁘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무도 더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할 때에 조용히 가지가 말라붙으며 시나브로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내 어버이 사랑을 받아먹으며 살아갑니다. 나는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들 목숨을 맞아들이며 살아갑니다. 내 아이는 내 사랑을 받아먹으며 살아냅니다. 내 아이가 낳을 아이들은 내 숨결을 받아들여 곱게 꿈을 키웁니다.

 


- “있을 때 잘해야겠지. 아빠 좋아해? 많이 걱정하실 거야.” (120쪽)
- “그게 다가 아냐. 괴롭힘을 당하는 원인이 집안 사정에 있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 (152쪽)


 후지모토 유키 님 만화책 《다녀왔어 노래》(대원씨아이,2011) 둘째 권을 읽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아이들끼리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찬찬히 읽습니다.

 

 만화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나라면, 나는 어떤 모습과 이야기를 누리며 살아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서 나와 옆지기가 그만 갑작스레 목숨을 잃고 두 아이가 남아야 한다면, 두 아이는 앞으로 어떤 꿈과 사랑을 누리며 살아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루하루 웃음으로 꽃을 피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웃음으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하루 웃음으로 새싹을 내고 웃음으로 줄기를 올리며 웃음으로 뿌리를 튼튼히 내리는 삶이라면,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더라도 늘 웃을 수 있겠지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웃음으로 잎을 틔우고 웃음으로 꽃과 열매를 이룬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더라도 웃음꽃이요 웃음열매를 누릴 테지요.


- “모두 네가 너무너무 소중해서 그런 것뿐이니까, 금방 화해할 거야.” (157쪽)


 아름답게 즐기는 삶일 때에 아름답게 트는 싹입니다. 예쁘게 일구는 하루일 때에 예쁘게 맺는 열매입니다. 따사로이 보살피는 손길로 살림을 일굴 때에 따사로이 피어나는 꽃입니다.

 

 《다녀왔어 노래》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이이면서 어른이요 모두 씩씩하고 튼튼하며 어여쁜 사람입니다. 《다녀왔어 노래》에 나오는 네 아이는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꿈을 키우며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서로서로 아끼는 기쁨을 누리는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돈이야 없으면 없는 대로 즐겁게 살아가면 되지요. 책이야 없으면 없는 대로 재미나게 이야기꽃 피우면 되지요. 집이야 좁으면 좁은 대로 서로 엉겨붙으며 복닥거리면 되지요. 옷이야 서로 물려입거나 한 벌로 두고두고 아껴 입으면 돼요. 다만, 오직 한 가지, 서로를 좋아하고 믿으며 어깨동무할 줄 아는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어떠한 웃음도 누리지 못합니다. (4345.3.2.쇠.ㅎㄲㅅㄱ)


― 다녀왔어 노래 2 (후지모토 유키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11.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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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그린다

 


 밤이 깊어도 잠들 줄 모르는 아이하고 부대끼다가 그림종이를 펼친다. 둘째는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끼어들고 싶다. 둘째가 어머니한테 기어간 사이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저 그리고픈 대로 그리고, 아버지는 첫째 곁에서 이모저모 그림을 그려 본다. 그림종이 앞에 엎드려 그림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후다닥 그린다. 아이는 오른손에 연필을 쥐고 엎드린 채 그림을 그렸지만, 아버지는 아이 왼손에 연필 쥔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알아보려나, 알아보겠지. 그런데 나는 첫째 아이가 무엇을 그렸는지 좀처럼 알아보지 못한다. 응, 무얼 그렸나. 이게 귤이니?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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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날 어디를 ‘여행’하라 한다면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7] 장을선, 《아프리카의 인상》(사진예술사,1990)

 


 사진을 찍어 상을 받아야 할 까닭이 없고, 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어 이름을 날려야 한다든지, 사진을 찍으며 책을 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좋아하니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삶을 누리는 길동무인 사진입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는 넋을 다스리는 사진입니다.

 

 삶을 돌아보면, 사진공모전은 덧없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며 저마다 다 다른 사랑을 빚은 사진에는 차례나 번호나 점수를 매길 수 없어요. 어떤 사진을 몇 작품으로 만들었다 해서 작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어느 모임에 들어가 사진을 찍기에 사진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한자말로 적어 ‘작가(作家)’인데, 사진작가란 “사진을 짓는 사람”이란 소리입니다. 이제껏 없던 사진을 새롭게 지을 때에 이러한 이름을 쓴다지만, 누구라도 ‘이제껏 있던 사진을 다시 찍’는 일이란 없어요. 다른 사람이 내놓은 작품을 베끼거나 따른다 하더라도 빈틈 하나 없이 똑같이 베끼지 못합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 작품을 베끼거나 따른다는 일이란 얼마나 슬픈 일이 될까요. 내 삶은 내 삶이지, 다른 사람 삶을 흉내낼 수 없어요. 내 넋은 내 넋이지, 다른 사람 넋을 따라갈 수 없어요.

 

 내 눈길에 따라 내 나름대로 빚는 사진이에요. 참가비도 상금도 상장도 없이, 사진공모전에 사진을 보낸 사람들 작품을 모두 한 자리에 실어 스스럼없이 나누거나 보여주거나 즐길 때에 비로소 서로서로 즐거울 ‘사진잔치’로 자리잡으리라 생각해요.

 

 

 장을선 님 사진책 《아프리카의 인상》(사진예술사,1990)을 읽습니다. 여섯 아이를 낳아 돌본 어머니 길을 걸으며 사진기를 다른 한손에 쥔 장을선 님이라고 합니다. 장을선 님은 1989년에 여덟 번째 ‘대한민국 사진전람회’에서 큰 사진상 하나를 받고는 나라밖으로 ‘사진 배우는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하고, 이 사진여행길에 찍은 사진을 《아프리카의 인상》이라는 사진책으로 낼 수 있었다 합니다.

 

 적잖은 돈이 들 사진여행을 마흔 날 동안 홀가분히 떠날 수 있었고, 케냐와 이집트를 사진기 걸쳐메고 돌아봅니다. 사진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한편으로는 부럽네,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쉽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케냐와 이집트를 밟는 마실길이기에 고작 마흔 날밖에 못 다니겠지요. 장을선 님으로서는 아프리카를 꿈처럼 그리며 살았기에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사진책 《아프리카의 인상》을 읽으며 ‘아프리카 이야기’와 ‘케냐 이야기’와 ‘이집트 이야기’가 얼마나 예쁘게 얼크러지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라 이름을 붙이니 아프리카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할 뿐, 사진만 들여다보아서는 왜 어떻게 아프리카라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흔 날 마실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습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에 살림집 얻어 여러 해 눌러지내며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를 이웃집 드나들듯 자주 오가며 사진을 찍습니다.

 

 

 

 오래 눌러지내며 사진을 찍어야 가장 잘 찍지 않습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갔대서 제대로 못 찍지 않습니다. 오래 눌러지낼 때에는 오래 눌러지내는 빛을 담습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갈 때에는 짧은 한동안을 빛내는 결을 담습니다.

 

 살결이 까만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 아프리카가 되지 않습니다. 책이름처럼 ‘아프리카를 느낀’ 무언가도 되지 않습니다. 서로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일은 언뜻 보기에 잘 빚은 사진이라 할 만하지만, ‘서로를 구경하고 지나치는’ 일에 그치곤 합니다.

 

 왜 얼굴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과 어른들 얼굴을 가만히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아프리카란 어떤 땅이고, 케냐란 어떤 나라이며, 이집트는 어떠한 삶터인가요. 세 가지 궁금한 대목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애써 마흔 날에 걸쳐 두 나라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막상 사진으로 빚는 이야기는 못 태어나는 셈 아닌가 싶어요. 참말, ‘구경하는 사진(인상)’으로 머물면서, ‘살아가는 사진’으로는 새로 태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이 사진책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살가우며 수더분해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삶으로 깊숙히 스며들며 담은 이야기를 찾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마실하는 날이 넉넉하지 못해 오래 머물지 못하기에 겉스치는 ‘느낌(인상)’을 담는 사진이 된다 하겠으나, 겉스칠 때에는 겉스치며 마주하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즐기면 돼요. ‘반짝 하는 놀라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짧은 동안 마주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살포시 담는 사진’을 보여주면 넉넉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기쁘게 담으면 되거든요. 이를테면, 귀여운 손자가 명절날 찾아와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더라도 이 며칠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나로서는 더없이 사랑스럽다 여긴 사진을 찍습니다. 고작 하루만 머물다 돌아가든, 하루조차 아닌 몇 시간만 머물고 돌아가든 나는 내 손자를 아주 예쁘게 여기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나한테 마흔 날 어디 홀가분하게 마실을 다녀오라 한다면 어디를 다닐 만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내 옆지기라면 우리 보금자리 뒤에 깃든 천등산부터 걸어 소백산맥 길을 따라 지리산을 지나고 태백산을 아울러 오대산과 설악산 있는 데까지 멧길 천천히 걷기를 할 텐데, 나라면 마흔 날 동안 어떤 마실을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일본 도쿄 헌책방거리를 마흔 날 동안 쏘다니며 책을 살피고 장만하며 누리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꿈꿉니다. 고흥 시골마을을 골골샅샅 누비며 맞아들이면 얼마나 즐거우랴 하고 꿈꿉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 따라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바닷마을을 휘 돌아볼 수 있어도 무척 기쁘겠구나 하고 꿈꿉니다. 자전거 타고 한국땅 헌책방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마실을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습니다. 문닫은 시골 작은학교를 자전거 타고 찾아다니고, 작은학교 깃든 시골마을 작은가게에 들러 깡통맥주 하나 마시면서 사진을 찍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요즈음도 ‘대한민국 사진전람회’에서 큰 사진상 받는 이한테 나라밖 마실을 보내 주는지 궁금합니다. 요즈음도 나라밖으로 마실을 보내 준다면, 사진쟁이 스스로 가고프다는 곳으로 보내 주지 말고, 지구별 나라들을 하나씩 콕콕 집어, 해마다 다른 나라로 보내면서, ‘해마다 다 다른 나라 삶과 사람과 삶터를 다 다른 사진쟁이가 다 달리 담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해에 한 나라씩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하도록 이끈다고 할까요. 이러면서 작은 사진상 받는 이한테 나라안 골골샅샅 돌아보도록 이끌어, 해마다 두 가지 사진열매 빚을 수 있어요. 하나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지구별’을,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한국땅’을.

 

 아이를 여섯 낳아 돌본 어머니이기 때문에 꼭 여섯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거나, 여섯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을 때에 이 여섯 아이들네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섯 아이 삶을 두고두고 사진으로 갈무리한다면, 장을선 님으로서는 아직 한국에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놀라운 ‘사진 육아일기’를 여섯 권 빚을 수 있고, 이 여섯 아이들네 아이들 이야기까지 갈무리하며 ‘사진 생활일기’를 수없이 빚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프리카도 좋고, 록키산맥도 좋아요. 그런데 장을선 님이 선보일 첫 사진책이 《아프리카의 인상》이니 서운합니다. 두 번째 사진책은 《The Spring of Rockies》이니 슬픕니다. 장을선 님 아이들이 당신한테 힘이 되고 사랑이 되며 믿음이 되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막상 장을선 님 아이들 삶과 사랑과 믿음을 고루 갈무리한 사진으로는 사진책을 일구지 못하니 쓸쓸합니다.

 

 작품이 되어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진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에요. 삶이 될 때에 사진이에요. 사진은 삶을 사랑하는 꿈을 보살피는 좋은 길동무 가운데 하나예요. (4345.3.2.쇠.ㅎㄲㅅㄱ)


― 아프리카의 인상 (장을선 사진·글,사진예술사 펴냄,199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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