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 님 새책을 다 읽고 나서 요즈음 나온 다른 책을 살피려고 찾아보니, <여운형 이야기> 그림 그린 책이 하나 뜬다. 이런 책이 나왔구나. 글은 뻔하리라 느낀다. 창작과비평사에 나온 이시형 시인이 쓴 평전만큼 이야기를 담았으리라고는 느끼기 어렵다. 그나저나, 웅진인물 이야기에서 연변조선족 작가 리혜선 님이 김학철 님 삶을 다룬 책이 하나 있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일본 과학자 노구치를 다룬 평전도 눈에 뜨인다. 이런 사람들 이야기가 아이들한테 널리 사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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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이야기- 자유 찾아 만리길
리혜선 지음, 강소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년 10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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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치 이야기- 현미경 속 세상에 우뚝 선 조막손이
정지아 지음, 최민지 그림 / 웅진주니어 / 2010년 5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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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이야기- 자주독립을 향한 올곧은 양심
신동진 지음, 강우근 그림 / 웅진주니어 / 2011년 8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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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0) 선하다善 3 : 선하고 깊은 밤색 눈동자


.. 이 어린 아르덴 소년은 생김새가 무척 고왔습니다. 선하고 깊은 밤색 눈동자와 발갛게 홍조를 띤 얼굴에, 특히 목 언저리에서 살짝 삐친 금발 머리가 사랑스러웠지요 ..  《위다/노은정 옮김-플랜더스의 개》(비룡소,2004) 27쪽

 “발갛게 홍조(紅潮)를 띤 얼굴”은 잘못 적은 겹말입니다. ‘홍조’는 붉어진 모습을 가리키거든요. “붉어진 얼굴”이라 적거나 “홍조를 띤 얼굴”이라 적어야 올바릅니다.

 ‘특(特)히’는 ‘더욱이’나 ‘무엇보다’나 ‘게다가’로 다듬고, “금발(金髮) 머리”는 “금빛 머리”나 “노란 머리”나 “보리빛 머리”나 “샛노란 머리”나 “노랑 머리”로 다듬습니다. ‘금발’은 “금빛 머리털”을 뜻하니, “금발 머리”처럼 적을 때에도 잘못 쓰는 겹말이 돼요.

 선하고 깊은 밤색 눈동자
→ 착하고 깊은 밤빛 눈동자
→ 상냥하고 깊은 밤빛 눈동자
→ 따스하고 깊은 밤빛 눈동자
 …

 착한 넋으로 살아가는 아이 눈동자를 들여다봅니다. 아이 눈빛이 착합니다. 상냥한 매무새로 살아가는 아이 눈동자를 바라봅니다. 아이 눈빛이 상냥합니다. 따스한 몸짓으로 살아가는 아이 눈동자를 마주봅니다. 아이 눈빛이 따스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결 그대로 눈빛을 가꿉니다. 저마다 사랑하는 마음씨 그대로 눈빛을 드러냅니다.

 착한 어른은 착한 동무를 사귀면서 착한 아이와 사랑스럽습니다. 상냥한 어른은 상냥한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상냥한 아이와 즐겁습니다. 맑은 어른은 맑은 사람으로 하루를 누리면서 맑은 아이와 살갑습니다.

→ 부드럽고 깊은 밤빛 눈동자
→ 맑고 깊은 밤빛 눈동자
→ 싱그럽고 깊은 밤빛 눈동자
 …

 착한 눈을 들여다보면서 부드러운 사랑을 헤아립니다. 상냥한 눈을 바라보면서 맑은 꿈을 살핍니다. 따스한 눈을 마주보면서 싱그러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마음을 착하게 보살피면서 말마디를 착하게 보살피는 사람들 삶자락을 생각합니다. 사랑을 착하게 보듬으면서 글줄을 착하게 여미는 사람들 삶무늬를 헤아립니다. (4344.11.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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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건축 1 - 비원
임응식 지음 / 광장 / 197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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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연에서 쉴 수밖에 없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68] 임응식, 《韓國의 古建築 ① 秘苑》(광장,1976)



 1970년대 끝무렵에 커다란 판으로 나온 얇은 사진책 묶음 “韓國의 古建築” 1번은 《秘苑》(광장,1976)입니다. 1970년대 끝무렵이란 새마을운동에 따라 시골마을 옛집이 거의 사라질 즈음입니다. 서울이나 크고작은 도시 커다란 기와집이나 궁궐이나 성곽은 문화재로 삼아 이럭저럭 건사하지만,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은 깡그리 무너지거나 허물려야 했어요. 대통령이 노랫말까지 붙여 ‘새마을운동’을 널리 퍼뜨리기에, 시골마을 흙길은 시멘트길로 바뀝니다. 소가 일구고 소가 갈던 논밭은 기계가 일구고 기계가 갑니다. 소는 흙에서 난 밥을 먹고 흙으로 거름을 돌려줄 뿐 아니라 제 몸뚱이인 고기까지 내줍니다. 기계는 기름을 먹고 배기가스를 내보낼 뿐 아니라 어느 만큼 나이를 먹으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됩니다. 풀약 없이 흙을 일구고 비료 없이 곡식을 거두던 시골마을은 사라집니다. 참말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풀약이나 비료가 따로 없더라도, 비닐이나 비닐집이 굳이 없더라도, 모두 한 끼니 밥을 먹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나라와 땅임자한테 바치는 세금이 만만하지 않았더라도 그럭저럭 밥술은 들 만했습니다. 이제 이 나라 흙일꾼은 나라와 땅임자한테 세금을 톡톡히 바치면서, 풀약과 비료와 기름과 기계를 대느라 더 많은 품과 겨를과 돈과 땀을 바쳐야 합니다. 이러면서 참다운 밥과 싱그러운 물과 달콤한 바람을 맞아들이지조차 못해요.

 “韓國의 古建築”은 1번부터 7번까지 궁궐이나 성곽을 다룹니다. 이 가운데 꼭 하나, 강운구 님 《내설악 너와집》이 있으나, 이 나라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 이야기는 끼어들지 못합니다. “韓國의 古建築” 9번과 10번 은 제주섬 살림집 이야기라 하는데, 책으로 나왔는지 못 나왔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직 저는 “韓國의 古建築” 9번과 10번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주섬 살림집 또한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테두리에 깃듭니다. 어쩌면, 책이름부터 ‘옛 건축’이라는 낱말이니까,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은 이 테두리에 낄 수 없다 할 텐데요, ‘건축’이라는 한자말은 ‘짓집기’나 ‘지은 집’을 일컫습니다. 절집도 집이요 살림집도 집입니다. 기와집도 집이며 풀집도 집이에요. 임금님 살던 집도 집이면서 흙일꾼 살던 집도 집이에요.

 곰곰이 살피면,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면서 가장 뿌리깊으면서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가장 살가운 한편 가장 고맙고 거룩한 집이란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입니다. 이를테면, 2010년대에는 크고작은 도시에 가득한 아파트나 빌라가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이 될는지 모릅니다. 1950∼80년대에는 이때에 걸맞게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이 있겠지요.

 골목동네 작은 사람들이 작게 일구는 텃밭과 꽃그릇 또한 ‘좋은 건축’입니다. 임금님이 쉬던 뒤뜰에 마련된 연못만 좋은 건축일 수 없습니다. 시골마을 흙일꾼이 알뜰히 일구는 논밭 또한 아름다운 건축입니다. 우람한 성곽이나 산성만 아름다운 건축일 수 없습니다. 바닷가 김밭과 미역밭과 조개밭, 이른바 뻘밭 또한 어여쁜 건축입니다. 멧자락 나물밭과 풀숲 또한 훌륭한 건축입니다. 나무마다 열매를 떨구어 오랜 나날에 걸쳐 이룬 나무숲 또한 거룩한 건축이에요.

 “후원은 창덕궁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궐의 후원을 말하는데, 이곳은 정무에 시달리던 역대 임금들이 생활의 여가를 자연과 더불어 휴식하며 즐기던 곳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 창덕궁 후원이었던 비원은 왕이 생활의 여가를 자연과 더불어 휴식하고 즐기는 곳이었으므로 궁궐의 외전이나 내전과는 기본의장이 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비원의 건물들은 지형과 산록의 모양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건립되었고 이에 수반된 연못들도 자연풍경에 따라 만들어져 은근하고 아담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42쪽/김원).”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나라일에 바쁘며 지친 임금님이 쉬던 뒤뜰이라는 ‘후원’이자 ‘비원’이라고 하는데, 나라님은 궁궐 한켠에 ‘숲을 따로 만들어서 쉬어야’ 했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살아숨쉬는 터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부러 가꾸어 쉬도록 한 터라고 해요.

 자연 그대로 살리면서 풀숲과 나무밭과 연못 한켠에 조그맣게 논이랑 밭을 두었으면 참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먼 옛날 임금님이랑 신하가 아침저녁으로 푸성귀 잎을 솎고 김을 매거나 논물을 살필 줄 알았다면 아주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쪽에는 닭을 치고 소한테 풀을 뜯길 수 있겠지요. 염소를 두어 젖을 짤 수 있으며, 돼지나 개가 다른 한쪽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나부터 내 삶터를 돌아보면, 아직 내 손으로 씨앗을 심어 밭을 돌보거나 나무를 가꾸지는 못합니다. 추위를 앞둔 늦가을에 새 보금자리로 옮겼으니 씨앗을 심기에 너무 늦었달 수 있습니다. 올해를 묵고 이듬해부터 씨앗을 심을 만한지 모르지만, 우리 집 뒷자락 빈터 쓰레기를 고르고 물골을 낸 다음 씨앗을 심으며 가만히 기다려도 좋으리라 꿈을 꿉니다. 바람이 고요히 잠들고 햇살이 따스히 내리쬐는 날, 첫째 아이랑 함께 호미로 땅을 쪼아 씨앗 몇 알 심고 싶습니다.

 나도 옆지기랑 아이하고 우리 집 뒷자락을 뒤뜰이나 뒷밭이나 뒷터로 삼아 쉬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나무를 씨앗으로 심어 천천히 돌보고 싶습니다. 우리 살붙이는 씨앗을 심어 뿌리를 내려 줄기를 올리는 모습을 누리고, 우리 살붙이가 낳아 돌볼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새로 돌볼 아이들은 우리 살붙이가 처음 씨앗을 심은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 아름드리가 될 모습을 누리면 돼요.

 사진책 《秘苑》을 다시금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임금님이건 흙일꾼이건 쉬어야 일을 합니다. 일을 한 다음에는 쉬어야 합니다. 오늘날 회사원이건 공무원이건 대통령이건 교사이건 노동자이건 쉬어야 합니다. 기자이건 판사이건 쉬지 않고서는 다시 일하지 못합니다.

 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쉬는 나날인가요. 쉬는 터는 어떻게 마련하거나 찾아야 좋을까요. 어떠한 곳을 찾아가야 비로소 느긋하게 쉴 만한가요.

 극장에서 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놀이공원이나 서울 명동이나 동대문 같은 데에서 쉴 만한지 궁금합니다. 술집이 늘어선 골목이나 여관이 줄지은 골목에서 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찜질방에서 쉬나요. 횟집에서 쉬나요. 포장마차에서 쉬나요. 노인정에서 쉬나요.

 사람이 사진기를 만들어 자연을 사진으로 담는 까닭은, 사람 스스로 빚은 물건과 사람 스스로 빚은 물건을 다루는 사람 모두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영갑 님은 제주섬 오름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쉬었습니다. 안승일 님은 삼각산 한라산 백두산을 오르내리며 쉬었습니다. 전민조 님은 섬을 떠돌면서 쉬었습니다. 강재훈 님은 시골 분교를 찾아다니며 쉬었습니다.

 나는 헌책방 책밭이랑 골목길 텃밭을 찾아다니며 쉬었다든지,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쉰다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내 옆지기는 이 시골집에서 느긋하게 쉴 만한지 곱씹어 봅니다. 쉬는 사람일 때에 쉬는 자연이며, 쉬는 자연은 쉬엄쉬엄 따사로운 사랑을 쓰다듬습니다.

 자연에서 쉴 수밖에 없던 임금님입니다. 억지로 애써 뒤뜰을 만들지 않고서는 버틸 재주가 없습니다. 자연에서 쉴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억지로 애써 4대강을 손질한다며 법석을 떨밖에 없습니다. 자연에서 쉴 수밖에 없는 사진쟁이입니다. 패션사진을 하건 다큐사진을 하건 사진기와 사람이 너그러이 쉴 사진을 함께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빛도 그림자도 꿈도 사랑도 사진이야기로 갈무리하지 못합니다. (4344.11.20.해.ㅎㄲㅅㄱ)


― 韓國의 古建築 ① 秘苑 (임응식 사진,김원 글,광장 펴냄,1976.9.1./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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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46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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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
 [만화책 즐겨읽기 81] 미우치 스즈에, 《유리가면 (46)》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데 웃는 척하는 얼굴로 아이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절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꾸밀 수 없는 웃음이요 꾸미지 않는 사랑이며 꾸밈없는 하루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밥을 하고 밥상을 차리며 설거지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를 헤아립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한테 인사를 하고, 잠자리를 갭니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합니다. 하루 더 자란 아이하고 무슨 일과 놀이를 누릴까 생각합니다. 어제와는 다른 날씨를 받아들이고, 밤새 방에서 마른 옷을 갭니다.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를 빨고는 살짝 기지개를 켭니다.

 날마다 같다 싶은 일을 되풀이한다 여길 수 있지만,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똑같은 밥을 먹는다 여길는지 모르나, 날마다 새롭게 먹는 밥입니다. 날마다 새로 얼굴을 마주하고 새로 말을 섞으며 새로 생각합니다. 새로 바라보는 하늘이요 새로 들여다보는 밭자락 풀이고 새로 살피는 얼굴입니다.

 오랫동안 쓴 칼이 날이 무디기에 숫돌 하나 장만하고 새 칼을 하나 마련합니다. 새 칼을 마련해서 능금을 깎다가 엄지손가락 벱니다. 커다란 부엌칼 아닌 작은 과일칼을 써야 하지만 으레 커다란 부엌칼로 능금을 깎아 버릇했는데, 잘 드는 새 칼인 줄 까맣게 잊고 무딘 칼 쓰듯 새 칼을 쓰다 손가락을 벱니다.

 손가락을 베니 손에 물 닿는 일을 하기 까다롭습니다. 그렇다고 손에 물 닿는 일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밥을 안 하거나 걸레질을 안 하거나 빨래를 안 하거나 아이들 안 씻길 수 없어요. 띠종이 하나 붙이며 물 만지는 일을 합니다. 벤 자리 뜨끔뜨끔하지만 바쁜 일손을 놀립니다.

 금세 아물겠거니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른 아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쩌면 손가락을 베거나 팔꿈치가 시큰하거나 어디가 어떠하다는 느낌을 잊습니다. 돌아볼 겨를을 내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갑니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는데 어느새 손가락 벤 자리가 아뭅니다. 아차 여기 베었잖아 함부로 물 만지면 안 되는데 하고 깨닫다가 물이 닿아도 쓰라리지 않다고 느껴 슬며시 들여다봅니다. 살점 깎인 곳에 새살 돋고, 허옇게 덜렁거리는 살은 조금 커다란 거스러미 같습니다.


- “그래! 아유미. 네 눈이 소리 나는 쪽을 보고 있어! 시선이 맞는다고! 그 눈빛이야! 그렇게 소리를 봐! 소리를 보라고!” (11쪽)
- ‘이 소리는? 머리핀이 공기를 가르고 날아가는 소리! 지금까진, 머리핀이 물건에 부딪치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는데! 하지만 느껴져! 공기를 가르는 소리! 난 그동안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지극히 일부의 소리만 듣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세상엔 분명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수많은 소리가 있을 거야.’ (18쪽)
- “내버려 둬! 사쿠라 코지!” “예?” “지금은 혼자인 게 나아! 괜히 동정했다간 더 상처만 받을 거야! 배우에겐 어떤 경험이든 헛된 건 없어. 언젠가 자기 안에 묻어 뒀던 경험도 잘 숙성되어 발효되는 경우가 있지.” (106쪽)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기울여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생각을 돌이키며 글을 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생각을 쏟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연극을 하거나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껏 살아온 나날을 곰곰이 되씹으면서 꿈을 펼칩니다.

 스스로 사랑받은 삶을 돌이키며 글을 쓸 때와 ‘사랑받을 때에는 이러한 느낌 이러한 이야기가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글을 쓸 때에는 다릅니다. 스스로 이웃이나 동무나 자연을 사랑하며 글을 쓸 때하고 ‘사랑할 때에는 이러한 모습 이러한 꿈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글을 쓸 때에는 달라요. 몸소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아이와 살아내는 나날로 어린이책을 쓸 때랑 아이들한테 예쁘거나 좋다 싶은 어린이책을 선물하고 싶다며 글을 쓸 때에는 다릅니다.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몸짓은 스스로 살아낸 나날을 녹여낸 몸짓하고 사뭇 다릅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는 스스로 살아낸 나날을 곰삭인 목소리하고 아주 다릅니다.


- “알아요.” “예?” “알고 있다고요. 저도!” (34쪽)
- ‘마스미 씨. 보라색 장미의 사람! 당신한테서 미움받는 게 이토록 아프고 힘들고 슬픈 일일 줄이야!’ (70쪽)
- ‘앞으로 난 뭘 의지해 연기를 해야 하나요? 그 사람한테 ‘홍천녀’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마스미 씨, 당신을 좋아해요! 이토록 좋아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하지만 이제 포기해야만 하겠죠? 이번에야말로. 마스미 씨에게는 내 마음 따위 귀찮기만 할 테니까, 폐가 될 뿐이니까! 나 같은 건! 하지만, 당신을 좋아해요! 마스미 씨!’ (112∼113쪽)


 맑은 날이 이어지다가 궂은 날이 이어집니다. 바람 자는 날이 이어지다가 바람 드센 날이 이어집니다. 포근한 날에 이어 쌀쌀한 날이 찾아옵니다. 스산한 날에 이어 따사로운 날이 찾아듭니다.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과 새벽이 되풀이됩니다.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잠을 잡니다. 웃고 떠들다가 슬프며 시무룩합니다. 너른 땅에 새싹이 돋고 줄기가 오르며 흐드러지게 꽃이 핍니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씨앗을 냅니다. 커다란 나무는 커다란 열매를 맺고 작은 풀은 작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나무이든 작은 풀이든 모두 참으로 작은 씨앗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씨앗 하나에는 온 목숨이 서리고 뭇 삶이 스밉니다.

 쌀알 하나가 볏짚을 남기면서 수백 쌀알로 다시 태어나고, 옥수수알 하나는 커다란 수숫대를 남기면서 수백 옥수수알로 새로 태어납니다. 볏짚이랑 수숫대는 사람들이 달리 쓰기도 하고, 그대로 땅에 놓으면 쌀알과 옥수수알을 낳은 흙이 새 기운을 얻는 거름으로 바뀝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가서 흙에서 태어납니다. 사람들 삶은 사랑으로 태어나고, 사랑은 사람들 삶에서 무르익습니다. 사람들 삶에서 무르익으며 새로 태어나는 사랑이요, 이 사랑은 다시금 사람들 삶을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 “당연하지. 약혼녀니까. 왜 그런 걸 묻지?” “훗. 약혼녀라 사랑한다, 그렇군요. 하긴 사랑해야 할 사람이긴 하죠.” “뭐?” “죄송해요. 솔직히 제 눈에 사장님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거든요!” (73쪽)
- ‘믿고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을 당하고도.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지? 그런 눈으로 똑바로 바라본다면, 분명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거야. 마음을 빼앗기고 말겠지. 마스미 님, 당신의 마음을 이젠 알 것 같습니다.’ (168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1) 46권을 읽습니다. 살림집 옮기느라 부산을 떠는 바람에 한국말로 옮겨진 지 다섯 달이 지나고서야 새책 소식을 알아채고는 겨우겨우 장만해서 읽습니다. 한 권 두 권 새로 나올수록 ‘홍천녀 배역’을 맡고 싶은 마야와 아유미 두 사람이 벌이는 연기 솜씨 겨루기는 깊어집니다. 그런데, 두 아이 마야와 아유미는 연기 솜씨 겨루기만 깊어지지 않습니다. 삶이 함께 깊어집니다. 어느덧 두 아이 마야와 아유미는 《유리가면》 1권에 나올 적 모습하고 크게 다를 뿐 아니라, 생각도 몸짓도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크게 다릅니다.

 새로우며 아름다운 꿈을 찾던 삶은 참말 새로우며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 길을 걷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따사로이 돌아보면서 앞으로 꽃피울 사랑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사랑이란 이름도 돈도 힘도 아닙니다. 사랑이란 오직 사랑입니다. 참다우며 착하고 고운 빛이 사랑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나날을 딛고 일어설 때에는 그동안 못 보고 못 느끼며 못 듣던 새로운 누리를 엽니다. 새로운 누리를 열어젖히며 한 걸음 내딛으며 올라선 자리에는 이제 환한 빛살이 내리쬡니다.


- ‘그게 당신의 진심! 가면 아래 숨겨진 당신의 진짜 얼굴!’ (137쪽)
- “버려요. 이름도 과거도. 돌고 돌아 이렇게 여기 있잖아요. 그것만으로 족한 거 아닌가요? 아코야만의 것이 되어 줘요. 당신은 또 하나의 나, 나는 또 하나의 당신. 사랑스러운 당신.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139쪽)


 마야는 마야답게 마야 삶을 누리면서 ‘홍천녀 배역’에 다가섭니다. 아유미는 아유미답게 아유미 삶을 갈고닦으면서 ‘홍천녀 배역’하고 가까워집니다. 어느 쪽이 되든 홍천녀는 홍천녀가 됩니다. 처음 홍천녀를 선보인 츠기카게 선생님은 츠기카게 선생님 삶결에 따라 홍천녀가 되었고, 새로운 홍천녀가 되고픈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삶길을 걸으며 홍천녀가 되려 해요.

 그러면, 두 아이는 왜 홍천녀가 되려고 할까요. 두 아이는 왜 홍천녀가 되어야 하나요. 홍천녀는 어떤 목숨인가요. 홍천녀는 어떤 사람인가요. 홍천녀는 어떤 사랑인가요.

 홍천녀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홍천녀는 무엇을 하며 사랑하는가요. 홍천녀는 무엇을 하며 사람들한테 ‘무엇’을 나눌는지요. 마야는 ‘보라빛 장미 사람’이 스스로 덮어쓴 허물을 거의 다 씻습니다. 아유미는 스스로 누리던 가멸찬 삶에 깃든 껍데기를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아코야’는 곧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4344.11.20.해.ㅎㄲㅅㄱ)


― 유리가면 46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6.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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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11-2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리가면> 샀어요~~ 벼르고 벼르다가 마흔여섯권 질렀네요 ==;; 바라만봐도 흐뭇~~흐뭇~~ㅋㅋㅋ

파란놀 2011-11-24 18:29   좋아요 0 | URL
오... 마흔여섯 권을 한꺼번에... @.@
47권도 얼마 앞서 따끈따끈하게 나왔답니다~
 

<네에게 닿기를> 1권부터 4권까지 먼저 샀고, 1권과 2권을 읽는다. 느낌글을 쓰기까지 3권 읽기는 멈추어야겠다. 13권까지 나왔구나. @.@ 아아... 13권이라! 멀고도 멀구나! 그러나 연재가 이렇게 더 남았으니 볼 이야기는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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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닿기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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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닿기를 7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11월
4,200원 → 3,780원(10%할인) / 마일리지 21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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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닿기를 6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6월
4,200원 → 3,780원(10%할인) / 마일리지 210원(5% 적립)
2011년 11월 19일에 저장
구판절판
너에게 닿기를 5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2월
4,200원 → 3,780원(10%할인) / 마일리지 21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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