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지음 / 북하우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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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사진과 골목건축 기록
 [찾아 읽는 사진책 47] 임석재,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2006)



 대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치면서 서울 시내 이곳저곳 다리품을 팔며 사진을 찍어 글을 쓴 다음 책으로 내놓는 임석재 님이 2006년에 선보인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을 읽었습니다. 2006년에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어쩌면 골목길과 골목사람과 골목동네 보는 눈썰미가 이토록 얕을 수 있나 싶어 슬펐습니다. 2010년에 다시금 살피고 올 2011년에 찬찬히 되읽으면서 찬찬히 헤아립니다. 임석재 님 《서울, 골목길 풍경》은 책이름에 ‘골목길 풍경’이라 적었으나, 어느 사진도 ‘골목길 풍경’이 아닙니다. 사진쟁이 김기찬 님이 내놓은 《골목안 풍경》은 책이름 그대로 김기찬 님 사진삶이 ‘골목 안쪽에 깃드는 풍경’을 사랑하는 넋이 고스란히 담겨요. 그러나, 건축쟁이 임석재 님 《서울, 골목길 풍경》은 책이름만 ‘풍경’이자 ‘골목길’일 뿐, 막상 이 책에 실은 이야기는 모조리 ‘골목건축 기록’입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서울, 골목길 풍경》을 쓴 임석재 님은 260쪽에 이르러 비로소 ‘골목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길 사진’ 한 장 보여줍니다. 이때부터 서너 장쯤 ‘골목길 사진’을 보여줘요. 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 사진을 보여주는 자리에서는 글도 남다릅니다. “이 길을 걸으면 기분이 참 좋다(262쪽).” 하고 말해요.

 《서울, 골목길 풍경》은 279쪽으로 끝납니다. 건축쟁이 임석재 님이 겨우 ‘골목길 사진’을 느낀다 싶을 때에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제부터 무언가 이야기가 피어날 만하다 싶더니 그만 끝장입니다.

 임석재 님은 “살아 있는 생명의 아름다운 소리다. 거슬리게 크지도 않고 힘없이 작지도 않은 알맞은 크기의 소리들이,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길에 듣기 좋게 메아리친다(201쪽).”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골목동네 사람들 소리란 어떤 소리인가를 또렷하게 밝히지는 못해요. 골목건축을 살피러 다리품을 파는 학자답게 바지런히 기록을 합니다. 기록을 하느라 바빠 여느 골목사람처럼 골목동네에서 깃들어 살아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아요.

 곧 《서울, 골목길 풍경》이라는 책은 “이 동네도 언젠가는 불도저로 밀리고 아파트 투기에 휩쓸 것이다. 단순히 내 개인사를 넘어, 기록을 해 두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95∼96쪽).”는 말마따나, ‘골목건축 기록’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임석재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시에 깃든 골목동네 가운데 몇 곳을 골라 ‘건축 기록’을 하자는 틀에서 골목동네를 살핍니다.

 왜 기록을 해야 할까요. 기록은 어떤 값을 하나요.

 두 아이를 낳아 옆지기와 살아가는 나는 네 식구 한삶을 기록해야 하나요. 네 식구 한삶을 사진이나 글로 적바림(기록)하는 일은 얼마나 값이 있나요.

 아니, 나는 내 아이들과 옆지기를 사진이나 글로 적바림해야 한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옆지기이기 때문에 저절로 사진을 찍고 아주 마땅히 글로 써요. 마음으로 새기는 아이들 삶과 옆지기 나날입니다. 마음으로 담는 아이들 목소리와 옆지기 노래예요.

 어느 누구도 이녁 아이들과 옆지기 삶을 적바림해 놓으려고 사진첩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이녁 아이들과 옆지기를 사랑하는 결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을 느끼기에 열 일을 젖히면서 사진첩을 마련합니다.

 그러니까, 임석재 님은 《서울, 골목길 풍경》 같은 책을 내놓을 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 “서울, 골목건축 기록”처럼 책이름을 붙여야지요. 골목길 삶과 사람과 이야기를 생각하던 사람이 《서울, 골목길 풍경》이라는 책이름을 보고 이 책을 골라 장만한다면 참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밖에 없습니다. 골목삶과 골목빛은 한 가지도 스미지 못하는걸요. 온통 건축 이야기인데, 책이름 어디에도 ‘건축 연구 보고서’인 줄 밝히지 않아요. ‘건축 논문’인 책인데, 책이름과 머리말과 맺음말에는 마치 논문이 아닌 듯 껍데기를 씌워요.

 이야기 아닌 논문인 《서울, 골목길 풍경》이기 때문에, 건축쟁이 임석재 님은 골목동네 삶자락을 잘못 읽고 맙니다.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온통 ‘골목사람 삶하고 동떨어진 눈길로 내려다보는 슬픈 몸짓’투성이입니다. 몇 가지만 짚습니다.

 ㉠ “골목길이란 무엇인가. 친숙하고 누구나 다 아는 단어인 동시에 아스라한 추억의 단어다 … 물리적 관점에서 ‘아늑함’은 휴먼 스케일의 개념을 내포한다(7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길이 왜 추억이지요? 임석재 님이 다닌 골목동네 사람들한테 골목길은 ‘오늘 삶’, 이른바 ‘현실’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추억을 들이밀어서는 어떠한 이야기 하나 길어올리지 못합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골목길이 ‘친숙’하다고 말할 자유는 있습니다만, 무엇이 어떠할 때에 ‘친숙’인지 궁금합니다.

㉡ “우리는 골목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문화재이다(10쪽).” 하고 말하는데, ‘우리’라는 낱말을 덜어 주십시오. ‘우리’가 아니라 ‘나(임석재)’라고 밝혀야 옳습니다. 곰곰이 짚거나 찬찬히 헤아리지 않은 사람은 건축쟁이요 공무원이며 정치꾼이자 개발업자입니다. 골목사람은 늘 골목길을 생각합니다. 골목길은 삶터요 삶입니다.

㉢ “주의하라는 안전신호일 수도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읽히기도 한데, 아마 단순하게 반복되는 지루함을 덜어 주기 위한 배려인 듯하다(25쪽).” 하고 말하는데, 시멘트 계단에 형광페인트를 바른 까닭은 깊은 밤에 등불 빛살이 어둡거나 잘 안 들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이든 젊은 사람이든 시멘트 계단에 무릎이 부딪히거나 넘어지기 쉬워, 부디 잘 다니라는 뜻입니다. 형광페인트를 바르며 숫자를 적는 뜻은 밤에는 집집이 비슷비슷 보이니 숫자를 덧적으면 알아보기 한결 수월합니다. 술 한잔 알딸딸히 마신 분이라면 엉뚱한 집에 잘못 들어갈 수 있으니, 이런 숫자는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 “가게 앞에 평상을 깔아 놓고 테이블도 놓았지만 사람들은 물건만 사서 쌩하니 가 버릴 뿐 모이지 않는다(32쪽).” 하고 말하는데, 바쁜 사람은 그냥 지나칩니다. 아니, 다른 볼일 볼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모든 사람이 평상에 앉지 않아요. 평상에 앉는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임석재 님부터 평상에 앉으면 됩니다. 사람이 모이니 평상이 생기지, 평상이 있는데 사람이 안 모인다는 말은 앞뒤가 어긋날 뿐더러, 밑삶을 등지는 소리입니다.

㉤ “창과 문이 아무렇게나 뚫린 듯하면서도 구성미가 뛰어나다(39쪽).” 하고 말하는데, 사람들 살림집에 창과 문을 아무렇게나 뚫는 일은 없습니다.

㉥ “건축 전공자처럼 골목길의 공간적 우수함을 짚어내지는 못했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 앞에 모여 앉아 담소하는 다정스러운 모습이나 주고받는 이런저런 얘기 속에는 골목길의 의미를 정의해 줄 수 있는 키워드 같은 단서들이 있었다(146쪽).” 하고 말하는데, 학자들은 ‘골목길의 의미를 정의해 줄 수 있는 키워드’를 모르겠지요. 그리고, 이 열쇠말을 모르면서 ‘골목길의 공간적 우수함’을 짚는다고 해 보았자 무슨 훌륭함을 짚으려나요. 집과 삶과 사람과 길을 하나도 모르면서 무슨 건축 연구나 학문을 할 수 있나요.

㉦ “구성미는 문 몇 개가 어우러지면서 종합적 합으로 분할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몬드리안의 구성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문의 숫자는 많지도 않다 … 그러나 이것들이 내놓는 구성미는 절묘하다(184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집을 지은 사람은 몬드리안을 모르며 알 까닭이 없습니다. 몬드리안이 없어도 사람들은 골목집을 지어 골목동네를 이룹니다. 몬드리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예부터 사람들 살림집 나무문살 창호종이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몬드리안이 한국땅 살림집 나무문살을 보고 나서 ‘몬드리안 구성미’를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일, 골목길 사는 사람이 하루를 보내면서 한다고 하는 일은 분명히 시시한 것들이다. 이런 시시한 일 하나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무척 길다. 이러다 보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도 한두 시간 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다 보니 무료함과 권태에 대한 면역력이 강해지고, 동네 경치를 즐길 여유도 생긴다. 느림의 미학이다(264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길이 시시한데 뭣 하러 다니는지 아리송합니다. 시시하니 심심하고, 심심하니 게으를까요. 학자들이 골목길 삶터를 가리켜 ‘느림의 미학’ 같은 그럴싸한 이름표를 갖다 붙이는 일은 참말 자유이기는 하나, 참말 골목길을 아름다이 바라보려는 뜻, 그러니까 ‘골목길 풍경’을 들려주고 싶으면, 제발 골목동네에 자그마한 살림집 하나 얻어서 열 해쯤은 살아 보셔요. 몸소 골목동네 사람, 그러니까 골목사람이 된 다음에 천천히 골목이웃으로 녹아들면서 골목길 빛살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셔요.

 학자나 학생 들은 으레 다리품(답사)을 팔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문화유적지를 다니고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다리품을 팝니다. 어떤 이는 한두 번 다리품을 팔고 나서 보고서나 연구서를 내놓습니다. 어떤 이는 수십 수백 차례 다리품을 팔고 나서 보고자료나 연구자료를 내놓아요. 그런데, 어떤 논문이나 책이라 하든 다리품을 천 번 만 번 판다 해서 제대로 바라본 이야기가 되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천 번 다리품을 팔 때보다 한 번 살아갈 때 한결 깊고 넓게 느끼니까요.

 바라본대서 알 수 없습니다. 바라볼 때에는 내 지식에 따라 내가 받아들인 모습만 생각하고 맙니다. 살며 느껴야 비로소 속알맹이를 짚어요.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림을 꾸리면서 사랑하는 나날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알아채려 힘쓰지 않는다면, 임석재 님이 앞으로 내놓을 책이든, 다른 사진쟁이가 골목길을 ‘바라보’거나 ‘들여다보’며 내놓을 책이든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그칩니다. 유홍준 교수 답사기하고 다를 구석 없습니다. 답사기는 구경한 이야기로 끝나지, 살아가는 사랑이나 믿음이나 꿈으로 이어지지 못해요.

 잘 생각하고 깨달아 주기 바랍니다. 전쟁터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가 전쟁터를 답사해서 길을 잘 익히면 되겠습니까. 전쟁터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는 목숨을 내놓는 군인하고 똑같이 사진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아가 죽곤 합니다. 죽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길 풍경’ 사진이라고 밝히려는 책이라 한다면, 아주 마땅히 골목동네 사람으로 살아가며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다른 아무것도 쓸모없습니다. 학위도 학벌도 돈도 값진 장비도 덧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이라면 똑딱이로 찍든 1회용 필름사진기로 찍든, 그야말로 ‘골목을 말하고 밝히는 참답고 착한 사진’을 이룹니다.

 이 느낌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밝히는데, 2006년 봄에 이 사진책 《서울, 골목길 풍경》을 보고 나서 참말 속에서 불길이 치솟더군요. 이렇게 골목동네 터전을 깡그리 짓밟듯 얕잡을 수 있나 싶어 슬프더군요.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살아가는 인천 골목동네 삶자락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기로 다짐했습니다. 2010년 가을에 시골로 살림집을 옮기고 나서는 이제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더는 못 찍습니다만, 2006년 4월부터 2010년 가을까지 날마다 이백 장 남짓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빚었어요. 내 삶터요 내 보금자리이며 내 이야기터이자 내 사랑터를 느끼며 살을 섞은 빛느낌을 지난 2010년 여름에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았습니다. 가만히 돌이키자니, 임석재 님이 《서울, 골목길 풍경》을 내놓지 않았으면 나는 골목길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겠다고 생각할 일이 없었을 테고, 인천 골목동네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일굴 일 또한 없었겠구나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나한테는 고마운 책인 《서울, 골목길 풍경》입니다. (4344.11.25.쇠.ㅎㄲㅅㄱ)


― 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사진·글,북하우스 펴냄,2006.3.3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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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타는 마음


 자전거를 타면서 찻삯 들 걱정이 없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참 자전거를 달려 볼일을 다 볼 무렵 비로소 깨닫습니다.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을 때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 바깥 볼일을 보면서 돈을 어디에 얼마나 썼나 돌아볼 때에도 깨닫지 못합니다. 숨을 돌리고 밥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아이를 재우고 새벽녘 조용히 일어나 글쓰기를 할 무렵 시나브로 생각하면서 깨닫습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면에 다녀오자면 찻삯으로 1300원을 내던가, 잘 모르겠습니다. 읍에 나갈 때에는 군내버스 찻삯이 1500원인데 면까지 가면서 버스를 타지는 않으니 참 모르겠습니다. 면에 나갈 때에는 늘 자전거만 탔어요.

 면에서 택시를 타고 동백마을 시골집으로 돌아오자면 4000원을 치릅니다. 시골집과 도화면 사이는 2.1킬로미터. 네 살 아이와 아주 천천히 동네마실 하며 걸어갔더니 한 시간 십 분 걸립니다. 이 길을 자전거로 슬금슬금 달리면, 하늘하늘 에돌아 달려도 십 분이면 너끈합니다. 1킬로미터를 5분에 달리는 셈이라면 그야말로 아주 천천히 달리는 노릇일 테니까요.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두발자전거에 탈 나이가 된다면, 1킬로미터를 10분에 걸쳐 달려야 알맞겠지요. 앞으로 예닐곱 해쯤 뒤, 네 식구가 자전거 넉 대를 저마다 신나게 타고 면내마실을 할 수 있다면, 참 볼 만하면서 재미나겠구나 싶습니다.

 논둑길을 달릴 수 있고, 멧골길을 달려도 됩니다. 마을길을 거친다든지 바닷가길을 달려도 좋아요. 자전거마다 깃발 하나씩 꽂아 멀리서 자동차가 쉬 알아보도록 합니다. 무리지은 자전거를 보는 자동차는 원 어디에서 예까지 자전거마실을 나왔나 궁금해서 들여다볼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시골마을 시골사람으로서 시골자전거를 탈 뿐인걸요. 우리는 네 식구 모두 시골바람 맞고 시골햇살 누리며 자전거를 즐길 뿐인걸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 아버지 자전거수레를 더는 탈 수 없을 때에는 아버지 자전거에 달린 수레는 짐바구니 노릇을 합니다. 네 식구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알뜰히 담아 네 식구 홀가분히 이웃 군이나 시에 마실을 떠날 수 있어요. 자전거를 몰며 우리 나라 한 바퀴 돌 수 있어요. 녹동으로 자전거를 몰아 배로 갈아탄 다음 제주섬 휘휘 둘러보고 나서 우리 시골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함께 움직이고 함께 쉽니다. 함께 바라보고 함께 느낍니다. 함께 웃고 떠듭니다. 함께 힘들고 함께 고단합니다. 함께 밥먹고 함께 이야기꽃 피웁니다. (4344.1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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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저귀갈이 책읽기


 갓난쟁이 둘째 기저귀를 간다. 기저귀를 갈기 앞서 손에 그림책 하나 쥐어 준다. 누나한테 동생도 책 함께 보게 해 주라 이야기하는데, 처음 한동안 같이 보는 듯하더니 이내 옆으로 슬금슬금 옮기며 혼자서 본다. 둘째한테 그림책 하나 보라며 따로 쥐어 준다. 이제 여섯 달 나이 겨우 지나는 둘째는 아귀힘이 꽤 좋아 그림책을 두 손으로 받쳐들며 누웠는데 잘 버틴다. 어머니가 기저귀를 갈아도 책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참으로 용하고 참말로 대단하다. 그러나 아이 손에 책 아닌 호미나 소쿠리를 쥐어 주었더라도 이렇게 용하면서 대단했겠지. 짚을 삼아 새끼를 꼬는 어버이 곁에서 크는 아이라면 돌쟁이 무렵부터 짚을 만지면서 새끼꼬기를 익숙하게 해내는 아이로 살아가겠지. 이 아이한테 일찍부터 한글을 가르치면 참말 일찍부터 한글을 깨칠 테고, 이 아이한테 일찍부터 착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을 어버이 온몸으로 보여주면, 이 아이는 일찍부터 착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겠지. (4344.1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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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책인지 미리보기를 할 수 없고, 책은 일찌감치 품절되었고... 알라딘중고샵 책은 '품질무보증'이라 하고.. 참 딱하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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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치히로 글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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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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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할머니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17
이규희 지음, 윤정주 그림 / 보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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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 아버지가 피우는 꿈이야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0] 윤정주·이규희, 《부엌 할머니》(보림,2008)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집에서 지낸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납니다. 집임자가 빈 채 낡아 먼지를 먹던 집을 치우고 고치느라 부산하게 지냈기에 한 달인지 한 주인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엊그제 드디어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면내 밥집에서 낮밥 한 끼니 대접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마을에 자가용 모는 분은 없고 이장님 댁에 짐차 하나 있으나, 면내 밥집으로 가는 길에는 차를 얻어타야 합니다. 마침 밥집에서 봉고차를 끌고 와서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다음 차로 할머니들을 모십니다. 깊은 시골이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따로 자리를 잡습니다. 밥집에서든 버스에서든 언제나 할멈 자리와 할아범 자리가 갈립니다.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벌일 때에도 할멈 밥상과 할아범 밥상이 똑 떨어져요.

 오늘날 아저씨 아주머니 사이에서는 서로 자리를 나누어 앉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 사내와 가시내라면 서로 자리를 나누어 앉을 까닭이 없겠지요. 할멈과 할아범이 자리를 따로 나누는 삶은 시골마을 할멈과 할아범이 모두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갈 무렵 시나브로 사그라들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그러니까, 부엌일은 언제나 할멈 몫입니다. 밥상을 치우거나 반찬을 더 내오거나 하는 몫은 노상 할멈 몫입니다. 할아범이 밥상을 차리거나 치우는 일은 없습니다. 할아범이 반찬 그릇에 손을 대거나 설거지를 맡는 일은 없어요.

 그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만, 마을 어르신들 밥잔치 자리에 네 살 딸아이와 함께 끼면서 ‘아버지라는 사람이 딸아이한테 밥과 반찬을 하나하나 집어서 먹이는’ 일을 마을 어르신들이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궁금합니다. ‘사내가 칠칠맞다’고 여기셨을까요. ‘이제 온누리가 달라졌으니 젊은내가 이렇게 할 수 있겠지’ 하고 받아들이셨을까요.


.. 혼자 멀뚱멀뚱 앉아 있으려니 봄이 할멈 생각이 더 나는구먼. 시집온 지 사흘 만에 조심조심 부엌 문지방을 넘어오던 모습이라니! 새색시가 그날부터 아궁이에 불을 활활 때서 가마솥에 물 끓이고, 중솥에다 밥 짓고, 옹솥에 국 끓이느라 정신이 없었지. 식구들이 좀 많아야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에 군식구까지 모두 한솥밥 먹으며 북적북적 살 때였거든 ..  (8쪽)


 빈 시골집을 아직 얻기 앞서 이장님 댁에서 여러 날 묵었습니다. 빈 시골집을 계약하고 나서 집식구 모두 시골마을로 찾아왔을 때 아직 집에서 물을 쓸 수 없기에 이장님 댁 바깥수도로 둘째 오줌기저귀를 빨았습니다. 이장님 댁에 묵으면서 설거지라도 거들려 했지만 아주머님이 손사래를 쳤습니다. 바깥수도에서 손빨래를 할 때에 ‘빨래는 애 엄마한테 시키지’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두 아이와 옆지기와 내 옷가지’ 모두를 도맡아 빨래하는 아버지가 이 나라에 몇이나 될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예 없지는 않겠지요. 기계빨래 아닌 손빨래로 네 식구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집일을 하는 아버지가 이 나라에 얼마나 될는지 아리송합니다. 하나도 없지는 않을 테지요.

 그렇다고 내가 집일을 잘 한다고 할 수 없어요. 집일을 도맡지만 많이 엉성합니다. 집일과 집살림을 몽땅 거느린다지만, 집살림을 알뜰살뜰 여미지 못해요. 시나브로 나아지리라 믿으며 애를 쓰고 용을 써요. 이제껏 옳게 못했다지만, 앞으로 알차게 다스리고 싶다는 꿈을 꿔요.


.. 우린 그렇게 옥신각식하며 지냈어.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아이들도 하나둘 태어났지. 가을볕에 아람 여물듯 여물어 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찌나 대견하던지. 그 아이들이 다 내 자식 같고 손자 같았거든 ..  (16쪽)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 밥상에 차리며 가만히 헤아립니다. 첫째 아이가 밥을 먹고 둘째 아이도 머잖아 밥상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밥을 먹을 나날을 찬찬히 그립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으레 아버지가 차리는 밥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랄 텐데, 먼 뒷날 아이들이 어른으로 씩씩하게 자라고 나면,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한테 저희 아이를 낳아 찾아온다면 ‘할머니 손맛’이 아닌 ‘할아버지 손맛’을 느낄 밥을 나누어 먹잖아요. 언제쯤 뒤가 될는지 모르겠는데,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 또는 마흔 해쯤 뒤에, 아니면 쉰 해쯤 뒤에, 내가 그무렵까지 튼튼하게 내 삶을 꾸릴 수 있다면, 예순 일흔 여든 나이에 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한테 ‘시골 할아버지 밥차림’을 베풀 수 있을까요. 우리 마을에 새로운 젊은 이웃이 생겨 젊은 이웃이 낳은 아이가 무럭무럭 커서 저희 아이들을 낳고 우리 집에 마실을 온다면, 이때에 ‘이웃 할아버지 밥대접’을 나눌 수 있을까요.


.. 아이들이 자라서 하나둘 도시로 나가자 봄이 할멈은 자나 깨나 빌었어. “조왕 할멈, 부디 내 새끼들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게 해 주오!” 막둥이가 장가들어 손녀딸 봄이를 낳은 뒤로는 더욱 지극 정성이었지. “조왕 할멈, 조왕 할멈. 부디 우리 귀한 손녀 병 없이 탈 없이 잘 자라게 해 주오!” 첫새벽이면 조왕 보시기에 물을 떠 놓고는 빌고 또 빌었어. 그 지극 정성을 보고 내가 어떻게 가만있겠어 ..  (20쪽)


 윤정주 님 그림과 이규희 님 글로 엮은 그림책 《부엌 할머니》(보림,2008)를 읽습니다. 부엌에서 온삶을 보내는 ‘사람 할머니’와 이 사람 할머니 곁에서 다독이고 타이르며 나무라거나 일깨우는 ‘조왕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부엌 할머니》를 읽습니다.

 시골집에서 할머니는 으레 부엌 할머니입니다. 논일을 하는 할머니라든지 낫질을 하는 할머니보다 부엌에서 살림을 맡는 할머니입니다. 사람들은 으레 이렇게 바라보고 이렇게 여깁니다. 나무를 하는 할머니나 지붕을 이는 할머니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러나 시골 할머니는 부엌일부터 논밭일 집일 모두 맡습니다. 어느 일이나 할아버지와 함께 합니다.

 할머니가 있기에 시골마을이 굴러갈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있어서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있는 터라 사람들이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있는 만큼 사람들은 따순 방에서 느긋하게 잠들며 쉴 수 있습니다.

 그림책 《부엌 할머니》는 할머니가 맡은 숱한 집일 가운데 오직 한 가지 ‘부엌일을 하는 삶’을 보여줍니다. 이제 시골마을 할머니들이 하나둘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가고 나면 사라지고 말 부엌살림과 부엌살이가 어떠한 그림과 이야기였는가를 들려줍니다. 할머니가 있기에 아이들이 태어나 자랐고, 할머니가 있어서 아이들이 젖과 밥을 먹으며 컸습니다. 할머니가 있기에 아이들은 정갈하게 씻었고, 할머니가 있어서 아이들은 다소곳하게 옷을 입었어요.

 책을 덮습니다. 처마가 보드라이 기우듬하지 않은데다가 너무 밭아 눈비가 몽땅 들이칠 만하게 그린 기와지붕집 그림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책을 덮습니다. 살가운 이야기를 한결 살가우면서 올바로 담아내는 그림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자료사진을 많이 살폈을 테고, 옛 살림집을 틀림없이 드나들며 살폈겠지만, 막상 그림쟁이 스스로 옛 기와집이든 풀집이든 시골집에서 ‘바로 오늘’ 살림을 꾸리지 않을 때에는, 부엌 할멈 삶자락 드리우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밝히기에 만만하지 않구나 싶어요.

 그래도 《부엌 할머니》는 반갑습니다. 네 식구 복닥거리는 우리 시골집을 떠올리도록 해 주니 고맙습니다. 우리 집 어린 두 아이가 앞으로 야물딱지게 자라서 이 시골집 곁에서 새 흙집을 지어 예쁘게 살아갈 때에 어떤 부엌을 마련해서 어떤 부엌살림을 꾸리려나 꿈꾸도록 도와주니 기쁩니다. 부엌 할머니가 부엌에서 한삶을 마무리지으면서 돌아본 당신 아이들 이야기와 이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이 펼칠 새로운 이야기가 이제부터 어떤 빛깔로 빛날까 하고 돌아보면서 재미납니다.

 부엌은 사랑 담은 밥이 보글보글 끓는 곳입니다. 부엌은 믿음 실은 국이 부글부글 끓는 자리입니다. 부엌은 꿈 보듬는 이야기가 오순도순 피어나는 터입니다. (4344.11.24.나무.ㅎㄲㅅㄱ)


― 부엌 할머니 (윤정주 그림,이규희 글,보림 펴냄,2008.2.25./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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