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순이


 네 살 딸아이는 저 혼자만 어버이랑 살아가던 나날에는 인형 콩순이를 아주 드물게 업었다. 제 어머니가 저를 업어 주던 일을 돌이키면서 아주 가끔 인형 콩순이를 업곤 했다. 한 살 갓난쟁이를 날마다 마주하는 네 살 딸아이는 제 어머니가 제 동생을 으레 업어서 달래거나 재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어머니가 동생을 업듯, 저는 인형 콩순이를 업는다. 동생을 무릎에 누여 달래면서 뜨개질하는 어머니한테 인형 콩순이를 업어 달라고 인형 포대기를 들고 흔든다.

 아버지는 곁에서 빨래를 갠다. 어머니 손을 빌어 인형 콩순이를 업은 딸아이는 아버지 곁에 아버지처럼 앉는다. 아버지가 개는 빨래를 낚아채어 제가 갠단다. 빨래를 곧잘 개는 아이가 영 밉게 갠다. 아이가 건넨 빨래를 풀며 말한다. “애써 빨래했는데 옷이 구겨지면 안 돼. 예쁘게 개야지.” 아이가 갠 빨래를 풀어서 다시 갠다. 아이는 “내가 갈래.” 하고 말하지만, “자, 어떻게 개는지 잘 보고 해야지. 먼저 다 보고 나서 해.” 하고 대꾸하면서 말린다. 아버지가 개는 양을 지켜본 아이는 아버지가 갠 빨래를 풀어 제가 다시 갠다. 이제 예쁘게 갠다. (4344.11.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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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24) 얄궂은 말투 90 : 휴먼 스케일의 개념


.. 평범한 단어들이지만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물리적 관점에서 ‘아늑함’은 휴먼 스케일의 개념을 내포한다. 즉, 높이, 형상 등이 일정 범위를 넘지 않아야 한다 ..  《임석재-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2006) 7쪽

 “평범(平凡)한 단어(單語)들이지만”은 “흔한 말이지만”이나 “수수한 낱말이지만”으로 다듬고, “중요(重要)한 의미(意味)가”는 “큰 뜻이”나 “깊은 뜻이”로 다듬으며, “담겨 있다”는 “담겼다”로 다듬습니다. 통째로 다듬어 “흔한 말이지만 뜻은 깊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물리적(物理的) 관점(觀點)에서”는 “집으로 볼 때에”를 가리킬까요. “집을 살피면”을 뜻하려나요. ‘즉(卽)’은 ‘곧’으로 손질하고, ‘형상(形象)’은 ‘모습’이나 ‘모양’으로 손질하며, ‘등(等)’은 ‘들’로 손질합니다. “일정(一定) 범위(範圍)를 넘지 않아야”는 “어느 테두리를 넘지 않아야”나 “지나치지 않아야”나 “너무 크지 않아야”로 손봅니다.

 휴먼(human) : 인간의, 인간적인, 인간미가 있는
 스케일(scale) : 일이나 계획 따위의 틀이나 범위. ‘규모’, ‘축척’, ‘크기’, ‘통’으로 순화
 내포(內包) : 어떤 성질이나 뜻 따위를 속에 품음


 책을 읽으면서 낱말 하나하나 따지지 못합니다. 잘못 쓰거나 얄궂게 쓴다 싶은 대목을 모두 헤아리면서 바로잡으려고 하다 보면 책을 못 읽습니다. 우리 말글을 바르게 쓰자고 외치는 줄거리를 담은 책조차 낱말과 말투를 옹글게 가다듬지 못하기 일쑤예요. 한국에서 나오는 책은 백 가지면 백 가지 모두 어수룩합니다. 한국말을 옳게 사랑하지 못해요. 한국글로 알맞게 추스르지 않아요.

 이른바 전문 갈래를 다룬다는 건축책이나 과학책이나 요리책은 말씀씀이가 더 모납니다. 문학책이기에 말빛을 한껏 뽐내지 못합니다. 어린이책인 만큼 말매무새 곱게 여미지 않아요.

 아무래도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뜻만 알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지 싶어요. 이렇게 적든 저렇게 적든 ‘모르는 사람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바보’인 듯 생각하기 때문이지 싶어요. 무엇보다 생각하면서 말하거나 글쓰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아늑함’은 휴먼 스케일의 개념을 내포한다
→ ‘아늑함’은 사람이 살아가는 크기를 나타낸다
→ ‘아늑함’은 살아갈 만한 크기를 보여준다
→ ‘아늑함’은 사람이 살기 좋은 크기를 뜻한다
→ ‘아늑함’은 사람이 살기 알맞은 크기를 가리킨다
 …


 ‘휴먼 스케일’이란 무엇을 가리킬는지 아리송합니다. 영어사전과 국어사전을 뒤적이면서 뜻을 풀이하며 겨우 어림합니다. ‘휴먼’은 사람을 가리킬 테고, ‘스케일’은 ‘크기’를 가리킬 테며, ‘내포’는 ‘담다/나타내다’를 가리킬 테지요. 이러한 말뜻대로 풀이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크기가 얼마쯤 되는가를 뜻한다”로 적바림한 다음, 차근차근 다듬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집 크기가 얼마쯤 되는가를 따지는 일이란 ‘사람이 살기 좋은 크기’를 이야기하는 셈이니, 이러한 줄거리대로 글월을 추스릅니다.

 곧, 사람들 살림집은 살림집대로 알맞아야 합니다. 사람들 말글은 말글대로 알맞아야 합니다. 알맞게 일구는 살림살이요, 알맞게 일구는 말글입니다. 알맞게 사랑하고 알맞게 보살피며 알맞게 북돋우는 살림이면서 말글입니다. (4344.11.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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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봉사 글쓰기


 요 한 달 사이, 자원봉사로 글을 써서 보내던 지역 누리신문에 더는 글을 보내지 않는다. 애써 글을 써서 보내도 제때 제대로 싣지 않고 쌓기만 해서, 나로서는 도무지 힘을 낼 수 없더라. 글삯을 안 받고 자원봉사로 글을 써서 보내는 마음을 모르기 때문일까.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 글 한 줄에 얼마나 땀을 들여야 하는가를 거의 모르거나 아예 모른다. 손수 밥을 지어 차리고 치우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 밥을 해서 차리는 일이 얼마나 품을 많이 들이고 겨를을 많이 바쳐야 하는가를 거의 모르거나 아예 모른다.

 따지고 보면, 밥은, 먹을 사람이 언제나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아나스타시아처럼 타이가숲에서 스스로 얻을 수 있고, 시골 흙일꾼 할매 할배처럼 구부정한 허리로 일흔이나 여든이나 아흔 나이에도 손수 심고 손수 거두어 손수 차려 먹을 수 있다. 참말, 밥은 스스로 일구고 스스로 거두어 스스로 차려야 한다. 스스로 이루지 않는 밥이란 누구한테나 참다이 밥 구실을 하지 못한다.

 어딘가 갈 때에도 스스로 가야 한다. 스스로 두 다리로 걷거나 스스로 자전거를 몰아야 한다. 자가용을 몰거나 버스·전철을 타서는 안 된다. 스스로 두 다리로 걷거나 스스로 자전거를 타야 한다. 몸으로 겪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몸으로 겪는 일’이 어떠한가를 깨달을 수 없다.

 글을 쓰려면 삶이 있어야 한다. 글을 쓰기 앞서 삶을 일구어야 한다. 글줄에는 글쓴이 온삶이 스며든다. 글쓴이가 익히거나 배우거나 받아들인 앎조각이 글줄에 서리기도 한다. 아마, 오늘날 웬만한 사람들은 앎조각이라 하는 지식·정보를 더 얻으려고 책을 장만하거나 읽으리라. 참말, 앎조각을 더 뽐내거나 선보이는 글이 몹시 많다.

 그러나, 나는 앎조각을 드러내는 글이 아주 싫다. 아주 못마땅하다. 아주 안 내킨다. 나는 앎조각 하나조차 밝히지 않는 글이 좋다. 앎조각 아닌 삶자락 들려주는 글이 반갑다. 앎조각 다스리는 따사로운 사랑과 꿈을 이야기하는 글이 즐겁다.

 글은 사랑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살아내는 사랑을 담는 글일 수밖에 없다.

 글은 꿈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하루하루 시나브로 이루는 꿈인 글일 수밖에 없다.

 자원봉사 글쓰기를 그만둔 한 달 사이, 똑같은 글을 다른 곳에 똑같이 올리느라 들이는 품이 사라진다. 이제는 애먼 품을 덜 들여도 되기 때문인지, 내 꿈과 내 사랑을 소담스레 싣는 글을 홀가분하게 한 꼭지라도 더 쓸 틈을 얻는다. 이제부터 굳이 자원봉사 글쓰기는 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자원봉사로 쓴 글을 그야말로 고맙게 여기거나 반가이 맞아들이는 곳이 아니라면 자원봉사 글쓰기를 하지 말자. 돈이 없다느니 살림이 어렵다느니 하는 이야기에 홀리지 말자. 글을 쓰는 사람은 굶어죽어도 되니까 자원봉사 글쓰기를 바랄까.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나날을 누리면서 이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한때가 좋다. (4344.1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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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식탁 7
시무라 시호코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손길이 닿아 사랑꽃이 핍니다
 [만화책 즐겨읽기 84] 시무라 시호코, 《여자의 식탁 (7)》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가만히 바라보면 참 커다랍니다. 커다란 손은 두툼합니다. 두툼한 손은 흙빛입니다. 흙빛인 손은 주름이 많이 졌고 곳곳이 갈라졌지만 참으로 따스하다고 느낍니다.

 집에서 일하고 살림하는 여느 어머니 손을 살며시 쓰다듬으면 꺼칠꺼칠합니다. 허여멀겋거나 누리끼리하기 일쑤입니다. 조물조물 주무르면 거칠거나 메마른 손에 천천히 피 기운이 돕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낳으며, 사람을 보살핀 손을 헤아립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북돋우며, 사람을 어루만진 손을 떠올립니다.

 할머니 손을 일컬어 약손이라 합니다. 할아버지 손을 가리킬 때에도, 어머니 손을 바라볼 때에도 으레 약손이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손을 두고는 좀처럼 약손이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 “단신부임도 괜찮지 않아? 어렵게 들어간 고등학교인데 전학 가긴 싫단 말이야.” “나도! 지금의 멤버라면 현 대회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으이구. 한다는 소리가 고작. 아빠가 몇 년씩이나 집에 안 계시게 되는데도 서운하지도 않니?” “그치만, 지금도 집에는 거의 없잖아.” (5쪽)
- “아하하하. 왜 따라하고 난리야. 외모보다는 내면이 중요한 거 아니었어? 완전 웃겨. 그거, 전혀 안 어울리거든?” (59∼60쪽)
- “아, 앞으로 좋은 일도 많이 있을 거예요. 반드시! 제가 보증해요.” (142쪽)



 내 손을 바라봅니다. 내 손으로 얼굴을 슥슥 비빕니다. 하루 내내 고달팠을 발바닥과 발가락과 발목을 살몃살몃 주무릅니다. 등허리와 옆구리를 꾹꾹 누릅니다. 손가락을 세워 머리통을 콕콕 눌러 주무릅니다. 눈 둘레를 주무르고 왼손으로는 오른손을 오른손으로는 왼손을 만지작만지작합니다.

 두 아이 가까스로 잠든 밤 열두 시에 밀린 빨래를 조금 합니다. 밤에 방바닥에 불을 넣으며 따순 물이 좀 나오니, 이 물이 아깝다 여겨 빨래를 합니다. 빨래는 다 하지 않습니다. 이따 새벽에 마저 하기로 합니다. 새벽에 다시 방바닥에 불을 넣을 테니, 그때에 생길 따순 물로 마저 빨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밤에 한 번 방에 빨래를 널고, 새벽에 다시 빨래를 널면 집안이 너무 메마르지 않아요. 집일을 하느라 몸이 좀 고단하다지만, 삼십 분쯤 몸을 움직이면 네 식구 즐거이 한밤을 누릴 만합니다.

 낮나절 면사무소 볼일을 보러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함께 다녀옵니다. 요사이는 새로운 길을 달리곤 합니다. 십일월 끝자락이니 낮이라 하더라도 바람이 조금 썰렁하지만, 전라남도 맨 밑자락 멧등성이 포근히 감싼 시골마을은 제법 따스합니다. 이웃 시골마을로 슬쩍 접어들어 우람한 느티나무 옆을 스칩니다. 시멘트로 바른 논둑길을 달립니다. 시멘트 아닌 흙길이나 풀길이면 더 좋으련만 하고 꿈꿉니다. 흙길이나 풀길이라면, 수레에 탄 아이가 아마 “나 내려 줘. 나 달릴래.” 하고 아버지를 불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흙길이나 풀길에서는 아이가 넘어질 때에 무릎이 안 깨집니다. 옷이나 무르팍에 흙이 좀 묻거나 풀잎 푸른 물이 살짝 뱁니다.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에서 아이가 넘어질 때에는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이 까집니다. 때로는 얼굴까지 갈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흙에서 숨을 얻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흙한테 둘러싸여야 숨을 쉽니다. 밥도 옷도 집도 흙에서 이루어집니다. 시멘트집 아닌 흙집에서 살아야 비로소 숨을 틉니다.


- ‘왜 다들 아빠가 있는 날의 전골을 하는 거야? 아아, 그렇구나. 곁에 있는 기분이 들어.’ (16∼17쪽)
- ‘괜찮은 걸까? 이대로 계속 모르는 체해도. 응, 괜찮을지도. 남친이 있다는 것도 얘기했으니까. 응.’ (41쪽)
- “그래. 용서받으려고 하는 건 비겁해. 그러고는 사과하러 와서 미안하다면서 자기가 엉엉 우는 거야. 난 ‘됐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 차인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동안 계속 뭔가 마음에 걸렸던 건, 그 친구가 나에게 화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라.” (93쪽)


 한 달을 더 지내면 다섯 살이 될 딸아이한테 ‘심순이’가 되어 주렴 하고 이야기합니다. 다섯 살을 코앞에 둔 딸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가 빨래 개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본 다음 아주 예쁘게 꼭 같이 따라합니다. 혼자서는 아직 엉성하지만, 곁에서 “이런 이런, 이렇게 개면 예쁘지 않아. 예쁘게 개지 않으면 애써 빨래한 옷이 다 구겨져.” 하고 말하면서 척척 갭니다. 옷가지마다 개는 법이 다르다고 얘기합니다. 아이는 “아, 그렇구나. 내가 할래.” 하면서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옷을 갭니다. 아이는 심부름 잘하는 예쁜 아이로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아이한테 맞는 삽은 없습니다. 철물점이든 어디에서든 어린이 삽을 만들지 않습니다. 어린이한테 땅을 파라고 시키면 강제노동이라느니 유아노동착취라느니 하고 말하려나요.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 사내아이한테는 동생을 업을 만한 나이가 되면 제 몸에 맞는 지게를 제 어버이가 나무를 하고 깎으며 다듬어서 만들어 줍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아이들 나이에 걸맞게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할 뿐 아니라. 아이들 몸과 마음과 삶에 발맞추어 호미이며 낫이며 삽이며 칼이며 도마이며 내어줄 만하다고.

 다만, 이런저런 연장을 아이한테 내주기 앞서, 아이들한테 내어줄 한 가지는 바로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넋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풀과 흙과 바람과 물과 햇살을 고루 사랑할 얼을 내어주는 어버이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날마다 새롭게 마시는 바람을 비롯해, 우리를 둘러싼 모든 목숨붙이를 예쁘게 어루만지는 손길을 내어주는 어버이로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뭐, 내가 코코아는 좀 맛있게 타는 편이지. 조금만 수고를 들이면 되거든.” “와, 나도 타는 법 가르쳐 줘.” “음, 먼저 이 순수 코코아 분말이 필요해.” “순수 코코아 분말?” “응, 설탕과 크림이 다 들어 있는 조제 코코아도 있지만, 이건 아무것도 안 들어 있어서 그냥 먹으면 쓴맛이 나. 하지만 그래서 취향에 맞게 단맛을 조절할 수 있어서 좋아.” (25∼26쪽)
- ‘우리를 잘라내는 것이 쿠니히로에게는 유일한 조절이었을지도 몰라.’ (81쪽)
- ‘분한 마음도 슬픔도, 아아, 버리기는 아까워.’ (114쪽)



 시무라 시호코 님 만화책 《여자의 식탁》(대원씨아이,2011) 7권을 읽습니다. 금세 뚝딱 읽은 다음 찬찬히 되넘기면서 곱씹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이 만화책 1권부터 7권까지 알뜰히 아낄 수 있으리라 바라며 이 만화책을 건사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서로서로 제 손길을 따사로이 돌보면서 저희 삶을 따사로이 일구리라 믿으며 이 만화책을 장만합니다.

 새해에는 8권이 나오겠지요. 이듬해에 9권이 나올는지 모릅니다. 10권에서 마무리될는지 20권까지 나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짧게 끝맺어 아쉬울 수 있고, 오래오래 나오면서 내 하루를 즐기는 길을 새삼스레 돌아보며 기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권이 나오면 새로운 권을 아끼겠지요. 짧게 마무리되면 처음 권부터 끝 권까지 가만히 되넘기면서 내 밥 내 옷 내 집 내 살붙이 내 보금자리 내 마을 내 일놀이 내 꿈을 하나하나 돌아보겠지요.


- “하지만, 주전이 못 되고도 별로 안 슬픈 게, 조금 슬프다는 생각은 했었어.” (109∼110쪽)
- ‘그때 분명히 태어났던 감정을 좀더 소중히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해.’ (129쪽)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뭐? 하고 싶은 일?” “그냥 궁금해서요.” “웬. 글쎄, 딱히.” “꿈은요?” “꿈?” (139쪽)



 손을 들어 밥을 집습니다. 손을 펼쳐 밥을 짓습니다. 손을 뻗어 밥을 풉니다. 손을 모아 밥을 담습니다.

 손길이 어리어 사랑입니다. 손길을 모두어 꿈입니다. 손길이 닿아 사랑꽃이 핍니다. 손길을 내밀어 꿈빛을 드리웁니다.

 별 하나에 사랑과 노래를 싣고, 밥 하나에 이야기와 눈물을 싣습니다. 별 하나에 꿈과 춤을 실으며, 밥 하나에 굳은살과 웃음을 싣습니다. (4344.11.25.쇠.ㅎㄲㅅㄱ)


― 여자의 식탁 7 (시무라 시호코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6.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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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1-26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 손길...문득 저의 손을 한번 쳐다봤습니다. 아이 등 긁어줄 때 손끝만으로 긁어주어도 아이는 시원하다는 거칠어진 손이지만 이 글을
그리 미워보이지만은 않네요.
연탄을 때시나요? 가스 조심하시라고요.

파란놀 2011-11-26 08:07   좋아요 0 | URL
아, 저흰 기름보일러예요.
나무를 때는 시골집은 아니구요,
요새 시골도 다 기름보일러거든요.

제 책이 널리널리 사랑받아 글삯 2억 원이 모이면, 책을 놓은 옛 초등학교 하나를 통째로 사는 꿈을 꾸고, 제 책이 더더욱 사랑받아 글삯 2천만 원 모이면, 이 돈으로 햇볕전지판을 지붕에 달아 전기나 기름 안 때고 방에 불을 넣는 꿈을 꿔요 ^^;;;;;;;

그나저나 <여자의 식탁>은 1권부터 7권까지 아주 놀랍도록 대단한 작품이에요
 

2011년 12월 6일에 시간 되는 분 나들이해 보셔요. 류가헌 갤러리라는 곳에 전화로 예약하시면 된다고 하네요. 참가비는 없어요~~ ^^ 



ㄷ. 사진으로 걷는 길
 ― 사진책잔치와 사진책



 ‘광장’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의 고건축” 가운데 1번인 사진책 《秘苑》이 있습니다. 커다란 판에 얇은 두께로 나온 《비원》은 사진쟁이 임응식 님이 찍은 사진으로 이루어집니다. 임응식 님은 “한국의 고건축” 묶음책으로 《비원》과 《경복궁》과 《종묘》와 《칠궁》을 내놓습니다. 이 책들은 1976년에 처음 나올 때에 4500원이요, 제가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2011년에 새로 장만하며 들인 돈은 25000원입니다. 몇 해 앞서 다른 헌책방에서 이 사진책들을 7000원에 장만한 적 있고, 또 다른 헌책방에서 15000원에 장만한 적 있으며, 또 다른 헌책방에서 20000원에 장만한 적 있어요. 워낙 예전에 판이 끊어졌기에 여러 헌책방에서 다리품을 팔아 싼값으로든 비싼값으로든 그때그때 장만합니다. 판 끊어진 사진책을 다시 만날 수 있기만 하다면 참으로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1976년 책값 4500원이라면 오늘날 2010년대에는 25000원보다 훨씬 센 값이라고 느낍니다. 1976년 언저리에는 짜장면 한 그릇 값이 150원 안팎이었다니까, 이때에 사진책 《비원》이나 《경복궁》이나 《종묘》나 《칠궁》을 선뜻 장만할 만한 사람은 적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2010년대에 임응식 님 사진책 《비원》을 3만 원이나 4만 원 값에 다시 찍는다 할 때에, 요즈음 사람 가운데 이 사진책을 선뜻 장만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 나라에서 사진책과 만화책은 제대로 사랑받지 못합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아도 사진책 사서 읽으며 나누는 사람이 적습니다. 만화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도 아름다운 만화책이 오래도록 새책방 책시렁에 놓이며 사랑받는 일이 드물어요. 저는 올 2011년에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를 겨우 장만했습니다. 2001년에 처음 나오던 때에는 《불새》가 정식 번역된 줄 몰랐기에, 데즈카 오사무 님 다른 만화책을 이때 장만하면서 《불새》는 놓쳤어요. 《불새》를 사야겠다고 깨달은 이듬해에는 이 책을 찾을 길이 없더군요. 열 해를 기다려 2011년에 드디어 ‘2쇄를 찍어 주었기’에 막바로 장만했어요.

 김기찬 님 사진책 《골목안 풍경》은 예전 판으로 되살아나지 못합니다. 《골목안 풍경 전집》이 새로 나옵니다. 예전 판짜임으로 다시 나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지만, 새판으로 나온 일로도 흐뭇하며 고맙습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책은 ‘외국책 구매 대행’을 거쳐 웃돈을 얹어 한 권씩 장만했다가 올해에 처음으로 정식 번역된 판이 있어 눈물까지 흘리며 한글판을 장만했어요.

 그러나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이 한글판으로 나오지는 못합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이라든지 토몬 켄 님 사진책을 한글판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이 1982년에 내놓은 《실크로드》 여덟 권 가운데 2권이 오직 한국 이야기만 다루지만, 이 사진책 하나조차 한글판으로 옮겨지지 못합니다. 어느 출판사에서든, 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든, 이 사진책 하나라도 한글판으로 옮긴다면 참 좋으련만, 이런 일은 꿈꿀 수조차 없다 싶은 한국 사진밭인 터라, 일본판 《シルクロ-ド》(集英社,1982) 여덟 권을 헌책방에서 육십만 원 가까운 돈을 치러 몽땅 장만해서 한국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시노야마 기신 같은 이름이라면 한국에도 제법 알려졌을 테지만, 시노야마 기신 님이 담은 ‘한국 문화 이야기 사진책’을 아는 분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로버트 카파 이야기책은 두 가지 한글판으로 나옵니다. 다만, 로버트 카파 사진책은 앞으로 언제쯤 한글판이 나올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슬프지만, 저작권료를 안 물고 내놓던 ‘옛 열화당 사진문고’로 나라밖 사진삶과 사진밭 흐름을 어렵사리 한글판으로 읽을밖에 없던 이 나라 책마을입니다. 에드워드 스타이겐이 일군 《인간가족》마저 1986년에 월간사진사에서 해적판으로 내놓은 조그마한 책 하나만 한글판으로 나왔어요. 정식 번역판이 없습니다.

 저는 지난 2010년에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책 하나 내놓았습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800만 원을 받고 출판사에서 1500만 원쯤 보태어 빛을 보았습니다. 그나마 지역 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기금을 보태었으니 빛을 보았지, 이런 돈이 없다면 책으로 태어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유진 스미스도 기무라 이헤이도 로버트 카파도 토몬 켄도 ‘아름다이 엮은 사진책 하나로 한국 사진 즐김이한테 알려지지 못하는’ 흐름인 터라, 홀로 사진길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진책이 선뜻 나오리라 바라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진책은 하나둘 태어납니다. 아주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진책이든, 이게 무슨 사진이냐는 손가락질을 받는 사진책이든, 돈을 참 많이 들인 그럴듯한 사진책이든, 아주 적은 돈으로 빠듯하게 꾸민 사진책이든, 이런 사진책 저런 사진책이 태어납니다.

 이름난 사진쟁이들은 이름난 사진쟁이대로 날마다 새 사진을 빚습니다. 이름 안 난 수수한 사진쟁이들은 이름 안 난 수수한 사진쟁이대로 나날이 새 사진을 이룹니다. 이 사진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신문·잡지에 실리기도 하지만, 그저 개인컴퓨터 파일로 남기만 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조용히 꿈을 꿉니다. 시골자락 언저리에서 마땅한 사진잔치 이루어지는 일은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며 일하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사진잔치에 마실 갈 겨를부터 없다 할 만합니다. 그래도, 시골 흙일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을회관이나 면사무소 너른터에서 벌어지는 사진잔치에 마실을 가는 일을 꿈꿉니다. 사진잔치까지 아니더라도 사진책 하나 예쁘고 조그맣게 태어나 전국 면사무소나 마을회관에 한 권씩 놓일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낮에 면사무소에 들르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교양도서로 뽑아 사들여 전국 시골 면사무소까지 보낸 좋다고 하는 인문책’이 이곳저곳에 놓여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아저씨가 읽을 수 있게끔 해 두더군요. 알뜰히 엮은 사진책을 전국 면 단위까지 한 권씩 놓도록 돕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사진길 걷는 젊고 늙은 모든 사진쟁이들 꿈과 사랑을 싣는 사진책을 넉넉히 펴내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 나온다면, 이리하여 시골사람이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로 가지 않고서야 구경할 수 없는 사진잔치 사진작품을 사진책에 담긴 사진으로 누릴 수 있으면, 이 얼마나 즐거운 사진누리일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지자체나 중앙정부한테 기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여느 사람인 우리 스스로 저마다 좋아하는 사진책을 마음껏 장만해서 집안을 알차게 보살피는 길을 생각합니다. 내가 즐긴 사진책을 내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습니다. 내가 즐긴 책을 뒷날 헌책방에 내놓아 앞으로 새로 태어나 살아갈 뒷사람한테 물려줄 수 있어요. 좋은 사진책 구경할 만한 ‘사진책 도서관’이 한 군데도 없는 한국이라, 저는 제가 1998년부터 그러모은 사진책을 바탕으로 2006년에 개인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저는 제가 새로 뿌리내린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자락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꾸리며 사진빛을 나눠요.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이 살아가는 고향마을에서든,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든, 꾸준히 장만해서 건사하는 좋은 사진책으로 벽 하나를 채우면서 자그마한 ‘사진책 도서관’을 이루는 꿈을 펼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으리으리한 건물을 지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아요. 대단하게 손꼽히는 사진책을 수천 수만 권 갖추어야 사진책 도서관이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며 사랑하는 사진책을 아끼면서 이웃하고 나눌 수 있다면, 어디에나 언제나 살가운 사진책 도서관이라 믿습니다. 사진책 도서관이 서면, 날마다 사진책잔치입니다. 날마다 사진책잔치이면, 이 사진책잔치를 누리는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쯤 ‘바깥밥 한 끼 사먹을 돈을 아껴’ 아름다운 사진책 한 권씩 장만할 수 있어요. 작은 길은 어디에나 예쁘게 있습니다. (4344.1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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