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발, 글을 쓰는 발


 날마다 저녁에 아이를 씻긴다. 아이를 씻기며 발가락 하나하나 사이사이 때가 끼었나 살핀다.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을 씻기며 내 어린 날 내 어머니가 나를 씻기던 일을 떠올리고, 손가락 사이나 발가락 사이에 까만 때가 끼는 모습을 되새긴다.

 신나게 놀며 웃옷 등판이 땀으로 흥건할 때에는 으레 손발가락 사이에 때가 낀다. 마음껏 놀며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를 때에는 아주 마땅히 손발가락 사이뿐 아니라 손목과 발등을 문지르면 때가 벗겨진다.

 아이들 다 씻기고 한숨을 돌리며 자리에 드러누울 무렵, 첫째도 둘째도 잠을 이루지 않으면서 더 놀려 한다. 아버지가 드러누워 수첩에 글조각 끄적이니, 첫째도 ‘나도 공부 할래.’ 하면서 제 작은 수첩을 가져와서 꼬물꼬물 그림을 그린다. 꼬물그림을 그리며 공부하는 아이는 발가락을 쉴새없이 꼬물락꼬물락 한다. 요리 꼬고 조리 꼬면서 꼬물꼬물 그림을 조그마한 수첩에 가득 채운다. (4344.11.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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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소년 10
시무라 타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따뜻한 꿈을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만화책 즐겨읽기 87] 시무라 타카코, 《방랑소년 (10)》



 얼마 앞서 면내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면서 온도계 하나 장만했습니다. 집 바깥벽에 걸 온도계입니다. 온도계를 둘 더 장만해서 그늘진 바깥벽이랑 집안 온도를 함께 따지며 적으면 어떨까 하고 헤아립니다. 날씨를 알리는 방송이나 소식하고 우리 살림집 온도는 다르거든요.

 요 며칠 날이 포근합니다. 다른 곳도 날이 포근하다 하는데, 다른 곳은 얼마나 포근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살림집 온도를 본다면, 밤에는 14도였습니다. 아침에 동이 틀 무렵 17도쯤 되더니, 해가 멧마루로 올라서는 아홉 시 반 무렵에는 22도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영 도 밑으로 한참 내려가던 날, 우리 집 바깥은 4도였어요. 집안은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도 17도가 이어졌고, 한밤에 16도인 적이 있습니다. 남녘이라 따뜻하구나 싶으면서, 날이 또 포근하니까 좀 사라진다 싶던 파리가 다시 살아납니다.

 마을 어르신들 모두 흙을 일구는 시골마을에서 우리 집만 보일러를 ‘자주’ 돌린다고 느낍니다. 우리 집은 아이들을 씻겨야 하니 보일러를 ‘자주’ 돌립니다. 지난 한 달 사이 보일러 기름을 얼마나 썼나 살피니 100리터를 썼습니다. 앞으로 십이월과 일월에 기름을 얼마나 쓰나 모르겠는데, 이대로 간다면 가을겨울에는 다달이 백 리터를 쓰는 꼴이 될 수 있구나 싶어요. 올여름까지 살던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서는 가을겨울에 다달이 삼백 리터 기름을 썼어요.

 우리가 깊이 잠든 때에만 이웃집에서 보일러를 돌리는지 모르지만, 이웃집에서 보일러 돌리는 소리는 좀처럼 못 듣습니다. 밤과 새벽에 쉬를 누러 바깥으로 나오면서 아직 한 번도 보일러 소리를 못 들었어요. 어쩌면 전기장판을 쓰시며 기름을 아끼느라 보일러 소리를 못 듣는달 수 있겠지요.

 포근한 터전에서 처음 살아가면서 날씨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는 이제껏 가을겨울 포근한 데에서 살았던 적이 없습니다. 십이월이 코앞이지만, 나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반바지와 반소매를 입습니다. 한낮에는 땀을 흘립니다. 아직 기름보일러를 쓰지만, 밑돈을 마련하면 우리 살림집에 햇볕판을 달아 햇볕힘으로 물을 끓여 따순 물을 쓰고 싶어요.


- “그거 벗어 봐, 가발. 머리를 기르면 좋을 텐데.” “나도 사실은 기르고 싶어.” “보브 컷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그! 넌 왜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거야?” (11∼13쪽)


 날이 포근하니까 저녁에 둘째 오줌기저귀를 찬물로 빨고 헹구어도 손이 시리지 않습니다. 외려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포근한 날씨는 하늘이 내리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매서운 날씨 또한 하늘이 내리는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에요. 추위를 느끼면서 내 몸과 내 살붙이 몸과 내 이웃 몸을 돌아보거든요.

 포근한 날씨를 누리면서 우리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 삶을 헤아립니다. 벌써 나흘째, 우리 집 돌울과 맞닿은 마늘밭에 비닐을 씌우는 두 어르신은 허리가 아주 꺾인 모습으로 밭을 돌봅니다. 두 어르신은 이렇게 온삶을 바쳐 일하며 아이들을 사랑했을 테고 아이들을 가르쳤을 테며 아이들을 서울로 보냈겠지요. 두 어르신네 아이들은 서울에서 ‘엄마 아빠가 돌본 마늘’을 받겠지요. ‘엄마 아빠가 시골에서 돌본 마늘’을 어떤 마음으로 먹을까요.

 어제 새벽 이장님이 마을 방송을 합니다. 마을 방송은 으레 새벽 여섯 시나 여섯 시 반에 합니다. 시골에서 새벽 여섯 시는 모두들 논일 밭일 들일을 한창 하는 때예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마을 방송을 듣자니, 풍양면 농협에서 쌀을 사들이는 값을 읽어 주시는데, 80킬로그램 한 가마에 나락 품종에 따라 사만이천 원부터 사만칠천 원까지 한답니다. 무농약 친환경으로 키운 품종은 오만이천 원에서 육만칠천 원까지 한답니다. 그런데 농협에서 사들이는 품종은 일반쌀 세 가지, 무농약 친환경 쌀 두 가지뿐입니다. 농협에서 판 볍씨로 심어 거둔 품종이 아니면 농협에 쌀을 팔 수 없는 듯합니다. 마을 어르신께 여쭈니, 농협에서 파는 볍씨는 세 해를 심지 못한다고 합니다. 첫 해 거둔 볍씨를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한 번 더 심을 수 있으나, 이듬해에 거둔 볍씨를 갈무리해서 다시 심으면 벼가 잘 안 되고 병이 들거나 작다고 해요. 그래서 다들 해마다 볍씨를 새로 사서 심는답니다.

 궁금한 나머지 충청남도 홍성 풀무학교생협에 전화를 걸어 여쭙니다. 우리는 풀무학교생협 단골논을 여러 해 하면서 쌀을 받거든요. 풀무학교에서는 풀무학교에서 심어 거둔 볍씨를 갈무리해서 그대로 심는다는군요. 어느 품종인지 미처 여쭈지 못했으니 다음에 여쭐 텐데, 풀무학교는 농협에 팔지 않고 몸소 사람들하고 고리를 이으니까, 유전자 건드린 품종을 굳이 안 쓰리라 생각합니다.


- “남자 중에도 그런 사람 있잖아. 요시노는 남자로 오해받기 위해 남자 옷을 입어? 그렇다면 그건 단순한 변장이네.” “넌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하겠니?” “솔직히 말하라면서? 예전에는 훨씬 당당했어.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 같아서 근사했는데. 지금은 여자로 있는 게 싫을 뿐인 것 같아.” (42∼43쪽)


 농약과 비료를 안 치는 쌀을 거둔다 할 때에, 이 쌀을 볍씨로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다시 쓰는 일만 헤아렸지, 이 볍씨를 이듬해나 이 다음해에 못 쓰리라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여태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나라(정부, 농협)에서 밝히는 ‘친환경 무농약’ 쌀이라 하더라도 농약과 비료를 안 쓰고 애써 거두기는 했지만, 볍씨 품종은 ‘유전자를 건드린 쌀알’입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볍씨 품종이라면 ‘구태여 농약과 비료를 안 써서 거둘’ 까닭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옆지기가 이야기할 때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던 생각 하나 떠오릅니다. 옆지기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로서는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던 일이라 마냥 듣기만 했어요. 옆지기는 ‘나 스스로 심어서 거두지 않으면서, 유기농 곡식을 사다 먹는 일이, 참으로 내 몸을 살찌우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 “무시하는 거라면 두 번 다시 입지 않을 거야.” (90쪽)


 시무라 다카코 님 만화책 《방랑소년》(학산문화사,2011) 10권째 읽습니다. 1권에서 10권으로 오는 동안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 숫자가 부쩍 늡니다. 띄엄띄엄 읽는다면 뒷권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사람들 이름이 헷갈릴 만하구나 싶어요. 여러 달에 한 권 옮겨지니까, 꼬박꼬박 챙겨 읽으면서도 이름이 자꾸 헷갈립니다. 앞 이야기도 좀 헷갈려요.

 1권부터 9권까지 어떤 줄거리로 흘렀는가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방랑소년》에 나오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초등학생이었고, 이제는 중학생입니다. 머잖아 고등학생이 될 테지요. 그리고, 《방랑소년》 앞권에 나온 ‘내 뿌리와 줏대대로 살아가는 어른’들처럼, 이 《방랑소년》 아이들도 저희 삶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걸어가겠지요.


- “음, 그러니까, 난 남자친구를 사귀는 게 처음이었잖아. 처음이었어.” “그건, 나도야.” “그래서 슈이치한테서 고백받았을 때 기뻤어. 난 여태 고백받아 본 적이 없거든.” “안나가? 그렇게 귀여운데?” “그, 그런 소리를 잘도 한다! 난 항상 사람들이 무서워한다고 할까.” (195∼196쪽)


 《방랑소년》 아이들은 아직 헤맵니다. 헤맬 수밖에 없다 할는지 모르나, 이 《방랑소년》 아이들은 부딪히고 깨지고 울고 웃고 싸우고 마음을 풀면서 천천히 자랍니다. 천천히 꿈을 꿉니다. 천천히 제 삶을 사랑합니다. 천천히 맞서고, 천천히 어깨동무하며, 천천히 얽히다가, 천천히 두 팔을 벌립니다.

 갠 날이 있기에 흐린 날이 있어요. 궂은 날이 있으니 맑은 날이 있어요. 따순 날에 이어 추운 날입니다. 추운 날을 씻는 따순 날이에요.

 씨앗은 난로로 덥힐 수 없습니다. 씨앗은 오직 씨앗이 깃든 흙 품에서 햇살과 바람과 물과 짐승과 푸나무 주검이 삭은 거름 기운으로 살아갑니다. 따스한 흙 품에서 따스한 기운 받아들이는 씨앗으로 뿌리를 내려요.

 비닐집에서 푸성귀를 키우면 아주 추운 겨울에도 푸성귀를 먹겠지요. 맨땅에서 푸성귀를 키우면 한겨울에는 푸성귀를 맛보기 힘들겠지요. 그러나, 날이 포근한 데에서는 비닐집이 없어도 맨땅에서 푸성귀를 얻어요. 날이 추운 데라면 한겨울에는 ‘포근하던 가을까지 갈무리해서 말린 푸성귀’를 끓여서 먹어요.

 날에 따라, 곳에 따라, 철에 따라, 터에 따라, 사람들 살아가는 매무새는 저마다 다릅니다. 시래기를 만들어야 하는 곳에서는 시래기국이 맛납니다. 무를 흙에 박고서 어느 때이든 파서 먹을 수 있는 곳에서는 무국이 맛납니다.

 《방랑소년》 아이들은 제 삶길을 제 결대로 찾으려고 애씁니다. 눈치를 보는 삶길이 아니에요. 남들 뒤꽁무니를 좇는 삶길이 아니에요. 돈을 더 벌거나 이름값 더 누리려는 삶길이 아니에요. 저마다 가장 사랑하면서 아낄 삶길을 찾아요. 저마다 더없이 좋아하면서 보듬을 삶길을 살펴요.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추운 곳에서 따뜻한 꿈을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4344.11.28.달.ㅎㄲㅅㄱ)


― 방랑소년 10 (시무라 타카코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9.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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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읽는 CEO - 한 장의 사진에서 배우는 통찰의 기술 읽는 CEO 4
최건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사진비평·사진교육·사진책
 [찾아 읽는 사진책 69] 최건수, 《사진 읽는 CEO》(21세기북스,2009)



 사람들은 사진기는 쉽게(라고 말하기는 좀 알맞지 않을 듯하지만, 그래도 쉽게) 장만합니다만, 사진책은 쉽게(라고 말할 수밖에 없도록, 참말 쉽게) 장만하지 않습니다. 사진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진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기 이야기를 찾아 읽거나 나누거나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사진책 이야기를 찾아 읽거나 나누거나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면서 사진책을 장만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을 놓고 할 말이 없습니다. 사진책을 안 읽는대서 사진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려는 사람은 아주 마땅히 사진책을 장만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책(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을 장만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책(글로 이야기를 빚는 책)을 장만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책(노래가 담긴 이야기보따리, 곧 노래테이프나 노래시디나 노래파일)을 장만합니다. 내가 내 그림을 사랑하면서 그림을 그리기에,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담아 좋아할 만한 다른 그림을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만나요. 내가 내 글을 사랑하면서 글을 쓰기에,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실어 좋아할 만한 다른 글을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만나요.

 글을 읽듯 그림을 읽습니다. 만화를 읽듯 사진을 읽습니다. 노래를 읽듯 춤을 읽습니다. 사랑을 읽듯 사람을 읽습니다.

 최건수 님이 내놓은 《사진 읽는 CEO》(21세기북스,2009)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 읽는 CEO》는 사진비평과 사진교육 사이에 선 ‘자기계발책’입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자기계발을 이루자’고 하는 줄거리로 엮은 책입니다. 사진이야기를 놓고 자기계발책을 쓸 수 있구나 하고 놀랄 만한데, 오늘날 어디에나 사진이 두루 쓰이는 모습을 돌아본다면, 이만 한 사진책은 진작 나왔음직합니다. 좀 늦었달까요. 퍽 더디달까요.

 청소기 광고이든 화장품 광고이든 사진을 씁니다. 이름난 야구선수이든 이름 덜 난 핸드볼 선수이든 사진에 찍혀 신문에 기사로 실립니다. 삼성이라는 회사 이재용이라는 사람이든, 이웃 동네 할아범이든 기자한테든 아들내미한테든 사진으로 찍히기 마련입니다. 찍힌 사진을 읽을 때에 찍는 사진을 읽고, 보이는 사진을 읽을 때에 보는 사진을 읽어요.

 이리하여 “이런 류(더글러스 던컨)의 사진가들은 카메라의 셔터가 고장 날 정도로 많이 찍는다. 이들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살고 있는 사진가들이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카메라가 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 자연히 카메라도 기동성이 좋은 것을 애용한다. 다음으로는 중형부터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서 천천히 느리게 찍는 유섭 카슈 같은 사진가들이다. 이들은 찍기 전에 찍어야 할 셔터 찬스가 이미 마음속에 그려져 있다. 예견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철저히 사전 준비를 하고 한 번의 기회에 결정적으로 셔터를 누른다(301쪽).” 같은 이야기를 알뜰히 싣는 사진책 《사진 읽는 CEO》입니다. 온통 사진에 둘러싸였으면서 사진을 못 느끼거나 못 알아채는 사람들한테 ‘마치 나 스스로 최고경영자인 듯 여기’면서 내 둘레 사진부터 찬찬히 읽어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은 것과 큰 것이 따로 없으니, 작은 곳이라 여기는 무언가를 바라보든 큰 곳이라 여기는 무언가를 바라보든,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눈길로 곱게 바라보며 느끼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최건수 님은 “윤주영의 경우는 단순히 취미와 도락으로 사진을 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이 넘볼 수 없는 자신의 또 다른 성 하나를 쌓은 것이다(110쪽).” 하고 말합니다. 이는 사진밭에서만 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어느 갈래 어느 밭에서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취미와 도락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취미와 도락으로 글을 쓰면서 문학상 받거나 문학기금 타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취미와 도락으로 쓴 글은 아름다움이나 즐거움하고는 동떨어져요. 삶을 바쳐 누리는 사진이 될 때에 아름다운 사진이요 즐거운 사진입니다. 삶을 바쳐 누리는 일이 될 적에 아름다운 일이면서 즐거운 일이에요.

 사진은 “빛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사진 찍는 자의 몫이다(228쪽).” 하는 말처럼, 빛을 잘 알고 읽을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그러나, 빛을 잘 안다는 일이란 빛크기나 빛세기나 빛줄기를 읽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빨주노초파남보를 가르거나 존 시스템을 헤아린대서 빛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에요. 빛이란 내 삶이면서 목숨이에요. 내 삶과 목숨을 얼마나 옳게 읽느냐에 따라 사진읽기와 사진찍기가 달라져요.

 요즈음 한국땅 사람들은 한여름과 한겨울을 잘 몰라요. 한여름과 한겨울을 잘 모르니 사진 또한 잘 몰라요. 한여름 땡볕이 있어 곡식이 잘 여물어요. 한겨울 강추위가 있어 잔벌레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서 거름이 돼요. 1도만 높아져도 날이 몹시 가물어 곡식이 타들고 말아요. 1도만 낮아져도 날이 몹시 썰렁해 곡식이 얼어죽고 말아요.

 빛이란 온 목숨을 살리는 숨결이에요. 빛이란 내 삶을 가꾸는 따순 손길이에요. 빛 한 줄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나날이고, 빛 한 모금에 기대어 예쁜 꿈을 꾸는 오늘이에요. 사진이란 빛을 사랑하는 이야기이고, 빛을 사랑하는 이야기란 삶을 사랑하는 한길이에요.

 그런데 《사진 읽는 CEO》에서 최건수 님은 “사진 분야에서 제일 접근하기 쉬운 분야가 다큐멘터리 분야라 할 수 있다(110쪽).” 같은 말을 톡톡 내뱉습니다. 이처럼 생각하는 일을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습니다만, ‘가장 쉬운 사진 갈래’나 ‘가장 어려운 사진 갈래’는 있을 수 없어요. ‘가장 쉬운 글쓰기’나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있을 턱이 없어요.

 동시나 동화가 더 쓰기 쉬운 글이 되지 않아요. 다큐사진이 더 찍기 쉬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글은 모두 같은 글이에요. 사진은 다 같은 사진이에요. 옳고 착하며 예쁘게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길을 못 찾는 오늘날 사람들은, 옳고 착하며 예쁘게 삶을 꾸리는 길을 못 찾는 사람들이에요. 먼저 내 삶부터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때에 사진 또한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수 있어요.

 한국땅 사진비평을 읽으면,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삶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국땅 사진교육을 들여다보면,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삶을 교수나 교사 스스로 일구지 않을 뿐더러, 이러한 삶을 가르치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내지 못하니 스스로 가르칠 수 없고, 스스로 살아내지 않으니 스스로 배울 수 없겠지요.

 하나하나 짚자면, 최고경영자가 되어서야 사진을 읽는다면 참 늦습니다. 아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누구나 내 삶을 일구는(경영) 사람입니다. 누구나 여느 내 삶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안철수 님이 내 수수한 삶을 일구거나 사랑해 주지 않습니다. 박원순 님이나 이명박 님이 내 자그마한 삶을 일구거나 사랑해 주지 않아요.

 지식이나 이름값으로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힘줄이나 돈줄로 읽는 삶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 하나로 이야기를 할 때에 태어날 사진비평이요, 오로지 사랑 하나로 나누려 할 적에 샘솟는 사진교육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책은 사랑을 사진으로 담아 엮는 책입니다. (4344.11.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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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80] 김떡순

 인천은 어느 도시나 시골보다 분식이라는 먹을거리가 발돋움했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터에 수많은 학교와 살림집이 다닥다닥 붙은 채 일제강점기 공장도시요 항구도시로 크던 데라 이와 같은지, 이러한 흐름이 해방 뒤로도 서울로 물건 올려보내는 공장도시요 항구도시 구실을 이었기에 뿌리깊게 퍼졌을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ㄹ이라는 곳이 온 나라 곳곳에 새끼가게를 수없이 차릴 때에 인천 시내 한복판에 들어선 ㄹ은 오래 못 버티고 구석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런저런 이름난 새끼가게가 들어서더라도 분식집 햄빵이 예나 이제나 널리 사랑받을 뿐 아니라, 인천 신포시장 분식집은 온 나라에 ‘분식집 새끼가게’를 퍼뜨리기까지 합니다. 인천을 떠나 처음 서울이라는 곳에서 분식을 먹던 1994년, 서울 종로에 줄지어 선 포장마차 분식집에서 ‘김떡순’이라 적은 글월을 처음 보았습니다. 포장마차 분식집마다 김떡순이라 적기에 뭔 소리인가, 무슨 여자 이름을 이렇게 짓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한참 지나고서야 김떡순이란 “김밥 + 떡볶이 + 순대”인 줄 알았어요. 누가 맨 처음 이 이름을 지었는지, 언제부터 이 이름이 퍼졌을는지 모릅니다. 번뜩 떠오른 생각으로 지은 이름일는지, 포장마치 분식집 일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다가, 또는 술 한잔 함께 기울이다가 빚은 이름일는지 모릅니다. 일본사람은 ‘달걀부침 얹은 볶음밥’을 ‘오믈렛 라이스’도 아닌 ‘오무라이스’라는 이름을 붙인다지만, 한국사람은 예쁘게 ‘김떡순’이라는 이름을 빚어 곱게 부릅니다. (4344.11.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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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9] 집밥

 나이든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서 밥을 차려 대접하는 일은 참 기쁩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오늘, 내 두 아이와 밥상 앞에 마주앉아 도란도란 말꽃을 피우면서 몽실몽실 올라오는 따끈따끈한 밥을 나눌 수 있는 일은 몹시 즐겁습니다. 아마 그리 멀지 않은 옛날까지 누구나 집에서 이렇게 밥을 나누었겠지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 아이들한테 밥을 나누고, 당신 아이들이 자라면서 당신 아이들이 당신과 당신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한테 밥을 나누던 삶을 이었겠지요. 이제 요즈음 사람들 누구나 집에서 밥을 나누는 일이 줄어듭니다. 이제 오늘날 사람들 누구나 으레 바깥에서 밥을 대접하는 일이 좋은 일이거나 섬기는 일인 듯 여깁니다. 혼인잔치를 할 때이든 돌잔치를 할 때이든 마을잔치나 동네 도르리가 되지 못합니다. 집에서 흙을 일구어 거둔 나락으로 밥을 지어 나누지 않기 때문에, 더욱이 돈을 벌어 돈을 써서 돈으로 바깥밥을 사먹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나락이 얼마나 나고 다른 푸성귀나 곡식은 얼마나 거두는가를 헤아리거나 느끼지 않습니다. 집에서 밥을 차리고, 집에서 밥을 나누며, 집에서 밥자리를 치우는 삶을 잊을 때에는 집에서 내 살붙이하고 사랑을 꽃피우는 조그마한 이야기를 하찮게 여겨 밀어젖힙니다. (4344.11.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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