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신문 책읽기


 지난 월요일 면사무소 다녀오는 길에 면사무소 일꾼한테 한 마디 여쭈었다. ‘이면지 상자’에 담긴 철지난 신문 가져가도 되느냐고. 얼마든지 가져가서 보시라 하기에, 전라남도에서 나오는 일간지와 주간지에다가 농어민신문까지 열 몇 가지를 챙긴다. 집으로 돌아와 하나씩 펼친다. 한두 가지 지역신문은 이름을 들었으나 다른 열 가지에 이르는 신문은 이름을 처음 듣는다. 인천에서 살던 때에도 ‘나고 자란 인천’이라지만 이름 낯선 지역신문이 제법 많았다.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서 지내던 지난 한 해에도 이름이 도무지 가까워지지 못한 지역신문이 참 많았다. 그렇다고 이들 지역신문에 광고라도 많이 실리지 않는다. 참말 누가 이 지역신문을 읽을까.

 30분이 채 안 되어 지역신문을 다 넘긴다. 넘기기는 하지만 읽을 만한 글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문득 깨닫는다. 광고 얼마 없는 지역신문이기는 한데, 마치 ‘관보’와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구나. 이렇게 지역 군·읍·면 행사와 소식은 빼곡하게 실으니까, 지역 군청·읍사무소·면사무소에서는 신문값 내면서 받겠구나. 그렇지만 정작 면사무소에서조차 겉봉투를 안 뜯은 채 이면지 상자에 차곡차곡 쌓겠구나. 시골 면에까지 헌 종이 모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데, 그야말로 ‘읽으라’ 하는 신문이 아니라 ‘돈을 버는 구멍을 찾으려’ 하는 신문이구나.

 그나마 농어민신문은 조금 읽을거리가 보인다. 농민신문은 조금 찬찬히 읽는다. 이 두 가지 신문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얽혀 시골마을에 어떤 피해가 오는가를 표를 그려 밝혀 준다. 곡식과 푸성귀와 뭍고기와 물고기와 얽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시골마을은 어떻게 되는가를 어림할 수 있는 자료가 실린다.

 문득 궁금하지만 애써 찾아볼 마음은 없다. 서울에서 나오는 중앙일간지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얽혀 어떤 글이 실릴까. 자동차라든지 공산품을 미국에 더 많이 팔아 나라살림 북돋울 수 있다는 글이 실릴까. 시골마을 사람들 삶이 어떻게 되는가를 낱낱이 파헤치거나 살피는 글이 실릴까. 서울이나 크고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앙일간지라는 신문을 읽으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참말 이 나라에 어떻게 파고들거나 이 나라 삶자락을 어느 만큼 뒤집는가를 헤아릴 수 있는가.

 지난 한 주, 우리 시골마을 면사무소 일꾼들 책상맡에 인문책이 잔뜩 놓였다. 갑작스레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면사무소 일꾼 가운데 어느 분이 ‘창고 갈무리를 하다가 몇 해 앞서 문화부에서 받은 우수교양도서를 꺼내어 올려놓았다’고 한다. 곧, 서울(중앙 행정기관)에서 뽑은 우수교양도서가 시골마을 면사무소로 들어올 때에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서울(중앙)에서는 온 나라에 문화와 복지와 예술을 퍼뜨린다(보급)고 하면서 목돈 들여 우수교양도서를 뽑아 장만해서 이렇게 두루 보낼 텐데, 책을 둘 자리부터 없고, 책을 읽을 사람 또한 없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도록 하는 나라정책이요 나라살림인데, 우수교양도서를 뽑아 장만해서 시골로 보낸들 누가 읽을 수 있을까. 그냥 서울에서 책 신나게 만들고, 그냥 서울과 큰도시 학교로 책을 보내며, 그냥 서울과 큰도시에 도서관 수십 군데 더 짓는 일이 낫겠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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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68) 간결


..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까? 한마디로 쉽고 간결하게, 이것이 동화 문장의 요체다 ..  《이오덕-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삼인,2011) 33쪽

 “동화 문장(文章)의 요체(要諦)다” 같은 글월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이대로 두어야 할는지요, 한국말 흐름과 결과 무늬에 맞게 걸러야 할는지요. 예전 분들이 쓰던 말투이니 그대로 둘 때가 나을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새 사람들 말투로 가다듬을 수 있어야 나을까요.

 보기글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文章)을 어떻게 써야” 또한 곰곰이 살필 대목입니다. 이대로 두어야 좋을는지요, 아니면 “글을 어떻게 써야”로 손볼 때에 좋을는지요. ‘글’이랑 ‘문장’은 어떻게 다르다 할 만한가요. 아니, 서로 다른 구석이 있을는지요.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쓰는 ‘글’은 깊이와 너비와 무게를 알뜰히 다질 수 없는 노릇인가요.

 ‘문장(文章)’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고 느낍니다만, ‘글’로 손볼 수 있어요. “동화 문장의 요체(要諦)다”는 “동화 문장을 쓰는 길이다”나 “동화를 쓰는 길이다”나 “동화 글을 쓰는 알맹이이다”로 다듬습니다. 또는, 글월을 통째로 다듬어서 “동화는 이와 같이 써야 한다”나 “동화를 쓰려면 글을 이렇게 가다듬어야 한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간결(慳結) : [불교] 자기의 신명과 재물을 아끼는 마음
 간결(簡潔)
  (1) 간단하고 깔끔하다
   - 간결한 복장 / 그녀는 매우 검소하고 간결하게 살고 있다
  (2) 간단하면서도 짜임새가 있다
   - 간결한 문체 / 그의 글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 매우 간결하게 표현했다

 쉽고 간결하게
→ 쉽고 깔끔하게
→ 쉽고 정갈하게
→ 쉽고 깨끗하게
 …


 국어사전에는 두 가지 한자말 ‘간결’이 실립니다. 하나는 불교 낱말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불교 낱말이라기보다, 먼 옛날 이 나라에 불교가 들어올 때에 중국사람이 적바림한 낱말이라고 해야 할 테지요. 아직 한국말로 옮기지 못한 낱말이요, 중국말 그대로 내버리고 만 낱말입니다.

 한국땅에는 불교와 함께 천주교와 개신교가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쓰는 낱말은 ‘영어’나 ‘라틴말’이나 ‘프랑스말’이 아닙니다. 한국땅에서 천주교나 개신교를 믿는 이들은 한국말로 옮긴 믿음말을 나눕니다.

 이와 마찬가지예요. 한국땅에서 불교를 믿으면서 나눈다 할 때에도 중국말을 날것 그대로 쓰지 말고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내 이웃이랑 동무랑 살붙이하고 오순도순 나눌 낱말과 말투로 옮겨야 합니다. 라틴말로 나눌 믿음인 천주교가 아니에요. 영어로 주고받을 믿음인 개신교가 아닙니다. 중국말로 나눌 믿음인 불교일 수 없어요.

 간결한 복장 → 깔끔한 옷차림 / 다소곳한 옷매무새 / 차분한 옷맵시
 그녀는 매우 검소하고 간결하게 살고 있다
→ 그 여자는 매우 수수하고 깔끔하게 산다
→ 그 사람은 매우 알뜰하고 가볍게 산다
→ 그이는 매우 꾸밈없고 정갈하게 산다


 다른 한자말 ‘간결(簡潔)’을 생각해 봅니다. 이 한자말은 “간단하고 깔끔하다”를 뜻한다고 나오는데, ‘간결’과 같은 한자말을 만나면 골부터 아픕니다. 이러한 한자말 풀이를 국어사전에서 뒤적이면 아주 뻔한 돌림풀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간단’도 ‘간략’도 ‘간편’도 모두 매한가지예요. 서로서로 돌림풀이입니다.

 그래도 다시금 골 아플 일을 견디면서 국어사전을 펼칩니다. ‘간단(簡單)’은 “(1) 단순하고 간략하다 (2) 간편하고 단출하다 (3) 단순하고 손쉽다”라 합니다. ‘간략(簡略)’은 “간단하고 짤막하다”라 합니다. ‘간편(簡便)’은 “간단하고 편리하다”라 합니다.

 자, 이 말풀이를 잘 살펴보셔요. 간결은 간단이 되고, 간단은 간략이나 간편이 됩니다. 간략이나 간편은 간단으로 돌아갑니다.

 돌고 도는 낱말풀이를 헤아리면 ‘간결’은 “손쉽고 깔끔하다”인 셈이에요. 다른 한자말들 ‘간단-단순-간략-간편’ 또한 밑바탕은 “쉽다”이고요.

 어쩌란 소리일까요. 어쩌란 한자말들인가요. 사람들은 이 한자말 뜻이나 쓰임이나 느낌을 얼마나 제대로 알면서 쓰는가요. 아니, 말뜻을 한 번이라도 곱씹으면서 이런 말마디를 혀로 굴리거나 손으로 놀릴는지요.

 한편, 조금 생각을 기울일 줄 안다면, 이들 한자말이 얼마나 껍데기요 겉치레인가 깨닫습니다. “간결 = 간단하고 깔끔하다”가 아닙니다. ‘간결’은 ‘깔끔하다’라는 한국말을 밀어낸 중국말입니다. ‘간단’은 ‘단출하다’와 ‘손쉽다’라는 한국말을 밀어낸 중국말이에요. ‘간략’은 ‘짤막하다’라는 한국말을 밀어낸 중국말입니다. ‘간편’은 ‘손쉽다’와 ‘수월하다’와 ‘단출하다’ 모두를 밀어낸 중국말이에요.

 간결한 문체 → 깔끔한 글투 / 단출한 글투
 그의 글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 그 사람 글은 짧고 또렷했다
→ 그는 단출하고 환하게 글을 썼다
 매우 간결하게 표현했다 → 매우 단출하게 나타냈다 / 매우 정갈하게 드러냈다


 참으로 쉽게 살필 노릇이구나 싶습니다. 더없이 쉽게 돌아볼 노릇이구나 싶어요. 쉽게 생각하고 쉽게 살아가며 쉽게 나누는 말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될 말입니다. 깔끔하게 다스리면 좋을 말입니다. 정갈히 보듬으면 알찬 말입니다. 단출히 아끼면 예쁜 말이에요.

 삶과 넋과 말을 알맞게 다스립니다. 삶과 넋과 말을 어여삐 돌봅니다.

 사랑할 만한 말을 나누면서 사랑할 만한 내 삶으로 일굽니다. 마음을 깊이 기울여 내 삶을 보살피듯, 마음을 고이 기울여 내 말을 어루만집니다.

 굳이 군더더기를 달아야 하지 않습니다. 애써 껍데기를 씌워야 하지 않습니다. 애먼 겉치레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사랑을 담으면 넉넉한 말이요 넋이며 삶입니다. 내 사랑을 담아 내 이웃이랑 동무하고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말이면서 넋이고 삶이면 흐뭇합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올바로 느끼면서 참다이 아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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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웃음 시와시학사 시인선 18
박상률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도시에서) 시만 쓰는 사람은 배고픕니다
 [책읽기 삶읽기 88] 박상률, 《배고픈 웃음》(시와시학사,2002)



 그제 낮 봉우리가 터질 듯 말 듯하던 동백꽃인데, 어제 아침에는 봉우리가 살며시 벌어지더니, 낮에는 봉우리가 활짝 열립니다. 이제부터 날마다 새 꽃봉우리가 발그스름잔치를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네 식구는 12월을 맞이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동백꽃이랑, 이 동백꽃 곁에서 함께 피어날 후박꽃을 누릴 수 있어요.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이웃집 너머로 바라보던 ‘마당 안쪽 꽃’을 처음으로 ‘내 집 마당 꽃’으로 맞이합니다. 이웃집 꽃이었을 때에도 ‘너 참 곱다’ 하고 말하면서 쓰다듬었고, 내 집 꽃일 때에도 ‘너 참 어여쁘다’ 하고 말하면서 쓰다듬습니다. 흰눈 함초롬히 쌓일 때에도 동백꽃 핀다는 말을 비로소 느낄 수 있구나 싶습니다.


.. 나를 바라보자. 지독한 도시의 먼지가 나의 얼굴과 두 눈의 안경에 가득 묻어 저물도록 나를 대신한다. 별 탈 없이 내리 십 년을 이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도시의 속살과는 거리가 멀어 ..  (방생)


 날마다 고이 여기며 바라보거나 쓰다듬으니까, 날마다 고이 여기며 바라보거나 쓰다듬는 사랑 살며시 피어납니다. 저절로 동백 이야기와 후박 이야기를 글로 적습니다. 시나브로 동백꽃 시와 후박꽃 시를 씁니다. 동백꽃잎 스치는 바람 내음과 후박꽃잎 감도는 바람 빛깔을 온몸으로 누리면서 시 한 줄 적바림합니다. 공책을 펼쳐 “따순 햇살 먹으며 자라는 동백꽃은 따순 사랑을 나누어 주는구나.” 하고 끄적입니다. 내가 나한테 선물하는 글줄입니다. 내가 내 하루를 좋아하면서 내 마음껏 즐기는 글월입니다.

 겨울에 곱게 피는 꽃을 바라보다가는 이 꽃나무 처음 심은 사람 손길과 넋을 헤아립니다. 맨 처음에는 어떻게 이 꽃나무를 심었을까요. 어린나무를 얻거나 사들여 심었을까요. 동백씨를 받아 한 알 알뜰히 심고 한 땀 알뜰히 흘리면서 돌보아 이렇게 어른나무로 키웠을까요.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어떤 씨앗 심어 어떤 나무를 키우면서 내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고운 꽃잎 물려줄 수 있을까 꿈을 꿉니다.


.. 되는 대로 석사흘쯤 쏟아지는 저 말들 / 저 웃음들 ..  (환절기)


 네 살 딸아이는 밤오줌이건 낮오줌이건 아주 잘 가립니다. 똥을 예쁘게 누고 웬만한 심부름 척척 해냅니다. 동생이 태어나고 한동안 밤에 이불에 쉬를 했지만, 이제 이런 일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밤에 쉬를 누이고 나서 좀처럼 다시 잠이 들지 않아 애먹이곤 했으나, 이제는 쉬를 누고 나서 곧바로 꿈나라를 찾아갑니다.

 이 착한 아이는 어디에서 착한 싹이 움트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있을 착한 씨앗이 아이한테 옮아갔을까요. 어머니랑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한테서 천천히 물림하면서 아이한테까지 옮겼을까요. 아이가 곧잘 부리는 억지와 땡깡이라면, 이 또한 이 아이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 또 이 아이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한테서 찬찬히 이어온 억지와 땡깡일까요.


.. 그가 죽어 그의 꽃 망태기도 같이 묻혔다. 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났다 ..  (꽃 동냥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이 어리는 빛을 담는 씨앗을 빚습니다. 미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슬픔이 감도는 눈물이 깃든 씨앗을 일굽니다. 흙을 만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흙기운 서린 땀방울을 흘립니다. 기계를 만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기름내 풍기는 땀방울을 흘립니다. 사무실에서 펜대나 셈틀을 만지작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시멘트와 플라스틱 내음 짙게 밴 땀방울을 흘립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에서 꿈을 꿉니다. 사랑스러운 꿈이건 돈내 나는 꿈이건, 저마다 제 삶자리에 알맞게 꿈을 꿉니다.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꿈이건 홀로 밥그릇 차지하며 떵떵거리려는 꿈이건, 저마다 제 일자리에 걸맞게 꿈을 꿉니다. 살가이 이야기꽃 피우는 이웃이 되어 오순도순 북돋우는 마을살이 꿈이건, 빽빽한 시멘트 층집 귀퉁이에서 위아래층 소리에 시달리다가는 나 또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서로 악다구니가 되는 도시살이 꿈이건,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 마땅하게 꿈을 꿔요.


.. 등에 업은 것 하나 보고 살아온 당신은 ..  (어머니)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누구랑 무슨 꿈을 어떻게 꾸나요. 우리 아이들은 늘 곁에서 바라보며 살을 부비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꿈을 읽나요. 우리 아이들은 이웃집 동무나 오빠 누나 언니 동생한테서 어떤 꿈을 듣나요. 우리 아이들은 이웃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어떤 꿈을 보나요.

 난 어린이집이 아주 무섭습니다. 노란버스에 아이들 태우며 집집을 돌며 태우거나 데려다주는 어린이집이 몹시 무섭습니다.

 왜 어린이집에 버스가 있어야 하나요. 왜 학원에 버스가 있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저희 두 발로 이 땅을 거닐거나 박차거나 뛰놀 수 없나요. 왜 아이들은 저희 두 손으로 이 땅을 만지거나 부비거나 껴안을 수 없는가요.

 어린이집은 아이들한테 무슨 꿈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궁금합니다. 어린이집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느끼도록 이끄는지 궁금합니다. 어린이집 교사가 되기까지 어린이집 어른들은 어디에서 무얼 배우며 어떤 꿈을 키웠는지 궁금합니다.


.. 꼭 그 시간이면 나타나 새벽을 내려놓고 대신 내 어두운 찌꺼기는 남김없이 치워 가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 ..  (청소원 아무개 씨)


 노란버스 한 대 굴리지 않는 어린이집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학원버스 없는 학원이 있을는지, 자가용을 타지 않는 원장이나 교사가 꾸리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버이가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찾아가는 어린이집이 있는지, 어버이가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함께 찾아오는 어린이집이 있는지, 원장과 교사 모두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는 어린이집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는 일은 끔찍합니다. 아니, 아이들이 아파트에 살도록 하는 일부터 끔찍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들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참 끔찍합니다. 보금자리가 될 수 없는 데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보금자리를 보여주거나 느끼도록 하거나 깨닫도록 하지 못합니다. 보금자리는 쉽게 허물고 쉽게 다시 세우는 부동산이 아닙니다. 보금자리는 값이 껑충 뛰거나 폭삭 주저앉는 부동산이 아닙니다. 보금자리는 어버이와 아이 모두 느긋하게 쉬면서 삶을 예쁘게 일구는 곳입니다. 보금자리는 나무를 심어 땅을 살리는 곳이요, 보금자리는 흙을 어루만지며 숨을 돌보는 곳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 무슨 꿈을 누리는가를 잊는 어른이라면, 아이를 둘 셋 넷 다섯을 낳는대서 어버이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돈이 넉넉하거나 가방끈이 기니까 어버이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얼굴이 예쁘거나 힘줄 끗발이 있기에 어버이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씨앗이 자랄 수 있는 터에서 나무를 보듬는 손길일 때에 바야흐로 어버이요 어른입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자리에서 풀꽃을 사랑하는 마음길일 때에 비로소 사람이며 목숨입니다.


.. 율곡 할아버지와 퇴계 할아버지 초상화도 있지만 품격은 역시 왕이 높으시다. (거참 희한하지? 왕조 시대도 아닌데) ..  (세종대왕 초상화 1)


 박상률 님이 지은 시를 그러모은 《배고픈 웃음》(시와시학사,2002)을 읽습니다. 박상률 님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결을 보듬으며 시를 꽃피웁니다. 박상률 님이 서울 아닌 진도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삶을 보듬었으면, 또다른 이야기 피어나는 말꽃을 돌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상률 님을 비롯해, 글깨나 쓸 줄 아는 사람은 하나하나 서울로 몰립니다. 글줄 읽고 글월 아낄 만한 사람은 하나둘 서울로 끌립니다.

 시골집에서 동백나무 동백꽃 누리면서 시를 쓰는 사람은 아주 줄어듭니다. 도시에서라도 오동나무 오동꽃 느끼면서 시를 쓰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동백꽃하고 멀어지면서 오동꽃이든 장미꽃이든 풀꽃이든 바라볼 겨를을 잃습니다. 동백꽃하고 등지면서 할미꽃이든 참꽃이든 머위꽃이든 들여다볼 틈을 잊습니다.

 시집 《배고픈 웃음》에서 샘솟는 웃음이 풀씨 하나 만날 수 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꿈꿉니다. 시집 《배고픈 웃음》에서 꼬르륵거리는 몸이 흙을 일구어 푸성귀랑 곡식이랑 열매를 거둔다면 어떠했을는지 꿈꿉니다.

 (도시에서) 시만 쓰는 사람은 배고픕니다. (시골에서) 시를 쓰는 사람은 배부릅니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 배고픈 웃음 (박상률 글,시와시학사 펴냄,2002.11.10./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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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고 생각하며 담는다. 몸이 힘들어 드러누워서 박상률 님 시집 <배고픈 웃음>을 읽고 나서 문득 생각나서 살펴보니 여러 가지 못 읽은 책이 보인다. <배고픈 웃음>은 2002년에 나왔는데 2011년에서야 읽었네 @.@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십 년 뒤의 약속
박상률 지음, 박영미 그림 / 을파소 / 2011년 3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11년 11월 30일에 저장
품절

방자 왈왈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11년 6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1년 11월 30일에 저장

청소년문학의 자리- 경계의 문학, 소통의 문학, 청소년문학을 말하다!
박상률 지음 / 나라말 / 2011년 8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11년 11월 30일에 저장
구판절판
도마 이발소의 생선들
박상률 지음, 이유진 그림 / 시공주니어 / 2010년 6월
6,500원 → 5,850원(10%할인) / 마일리지 320원(5% 적립)
2011년 11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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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낱권책, 또는 새 잡지로 《헌책방 아벨서점 단골 스무 해》를 만들기로 한다. 오늘부터 글을 모아 엮는다. 지난 하루 몸살이 났는지 여러 시간 끙끙 앓고 나면서, 이대로 쓰러져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내가 할 일을 가다듬는다.


 2011년 12월에 될 수 있나 모르겠지만, 2012년 1월까지 《헌책방 아벨서점 단골 스무 해》를 만들기로 한다. 그동안 찍은 필름을 찾아서 새로 긁어야겠다. 힘을 내자.
 

(책 편집 어느 만큼 되면 예약주문을 받아 볼까? ^^;;;;; 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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