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둑 - 스리랑카 땅별그림책 6
시빌 웨타신하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보림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빛깔·내음·소리를 읽는 그림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2] 시빌 웨타신하, 《우산도둑》(보림,2011)



 마을 이장님이 아침에 찾아옵니다. 쌀푸대를 날라야 하니 거들어 달라 말씀합니다. 마을 이장님이 한쪽 어깨가 아파 잘 못 쓰시니 기꺼이 거들러 나섭니다.

 마을에 모두 할매와 할배입니다. 흙을 일구는 사람도, 흙을 보살피는 사람도, 푸성귀를 심어 가꾸는 사람도, 나락을 꽂고 베는 사람도, 나락을 농협에 내다 파는 사람도 모두 할매와 할배입니다.

 농협에서 일자리 얻는 일꾼은 모두 젊은이입니다. 은행 일을 보든 창고 일을 보든 가게 일을 보든, 농협 공무원은 모두 젊은이입니다.

 젊은 농협 일꾼이 늙은 흙일꾼한테서 쌀을 사들입니다. 젊은 농협 일꾼이 늙은 흙일꾼한테 무슨 볍씨를 사라 무슨 풀약을 쓰라 무슨 곡식이나 푸성귀를 심으라 하고 가르칩니다. 젊은 농협 일꾼이 해마다 사들일 쌀 무게를 따지고, 젊은 농협 일꾼이 늙은 흙일꾼이 거둔 쌀을 얼마 어치 사들이겠다고 값을 말합니다.

 늙은 흙일꾼 두 분이 사십 킬로그램 쌀푸대를 함께 싣습니다. 늙은 흙일꾼 두 사람이 허리 구부정하게 힘들여 쌀푸대를 경운기에 싣습니다. 경운기는 아주 천천히 달립니다. 아주 천천히 농협 공판장으로 달립니다. 쌀을 사들이는 농협이니까 흙일꾼이 농협으로 쌀을 가져가는 일이 마땅하달 수 있으나, 할매 할배랑 함께 쌀푸대를 짐차랑 경운기에 실으며 곰곰이 생각하니, 젊은 농협 일꾼이 시골을 돌며 ‘제발 우리한테 쌀을 팔아 주십시오.’ 하면서 ‘고맙게 쌀을 사 갑니다.’ 하고 넙죽 절을 하는 한편, ‘올 한 해에도 애쓰셨어요.’ 하고 인사를 할 때에 마땅하리라 느낍니다. 젊은 농협 일꾼이 크고 튼튼하며 빠른 짐차를 몰아서 시골마을로 찾아와 쌀푸대 척척 실으면서 이 자리에서 쌀값을 치러야 마땅하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쌀은 공장 기계에서 뽑아내지 않거든요. 쌀이든 푸성귀이든 흙에서 얻거든요. 쌀이든 푸성귀이든 마을마다 다 다른 할매 할배가 날마다 흙을 아끼고 보살피면서 거두거든요. 바람을 쐬고 물을 주며 햇살을 받도록 하면서 쌀이랑 푸성귀를 얻거든요. 젊은 농협 일꾼은 마을마다 어떤 흙살림인지를 몸소 느끼면서 쌀푸대를 받아들여 고마이 여기는 매무새로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 땀방울’ 값을 올바로 치러야 한다고 느낍니다.


.. 옛날 스리랑카섬에 작은 마을이 있었어요. 이 마을 사람들은 우산을 본 적이 없었어요. 비가 오면 바나나잎이나 얌감자잎을 쓰거나 삼베 자루나 천이나 바구니를 머리에 썼지요 ..  (2∼3쪽)


 대단한 일이 아닌 쌀푸대 나르기를 조금 거들었을 뿐인데, 이장님 댁 아주머니랑 우리 웃집 아주머니랑 큰 들통에 흰쌀 수북히 담아 찾아옵니다. 우리보고 먹으라며 당신들 한 해 일군 쌀을 갖고 오십니다. 고마우면서 미안하고, 미안하면서 고맙습니다. 풀약 안 치고 거둔 쌀이라 하는데, 사십 킬로그램 한 푸대에 오만육천 원 받고 농협에 내다 판다고 합니다.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는 이 ‘농약 안 친’ 쌀을 삼만 몇 천 원쯤 받고 여느 사람들한테 팝니다.

 우리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로 오기 앞서까지 충청남도 홍성 풀무학교생협 쌀을 받아서 먹었습니다. 홍성 풀무학교생협도 풀약을 쓰지 않으면서 나락을 일굽니다. 풀무학교생협은 농협을 안 거칩니다. 어쩌면, 풀무학교생협에서 쓰는 ‘나락 품종’을 농협에서 사들일 일이 없지 않느냐 싶어요.

 그나저나, 풀무학교생협 단골논 회원이 내는 10킬로그램 쌀값은 사만이천 원입니다. 농협에서 판다는 농약 안 친 쌀은 사만 원이 조금 안 됩니다. 이 나라 흙일꾼이 풀약을 안 치고 쌀을 거두어 판다고 할 때에, 당신들 스스로 농협이나 도매상을 안 거치고 팔 수 있는 길이 없다면, 그저 도매상이랑 농협에서만 팔며 당신 흙살림을 돌보자면, 알뜰히 거둔 쌀알로 한 해 벌이를 얼마나 할 수 있으려나요.

 일꾼 부리고 창고 세우며 쌀푸대 새로 예쁘게 꾸며서 커다란 하나로마트에서 쌀을 팔아야 할 테니, 농협은 더 적은 돈으로 쌀을 사들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정작 흙일꾼은 어떻게 되나요. 쌀을 사다 먹는 여느 사람들은 얼마나 마땅한 값을 치르면서 밥상을 차릴 만한가요.


.. 키리 마마는 몹시 마음이 상해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우산이 사라진 거예요. 가엾은 키리 마마는 너무나도 슬펐어요 ..  (12쪽)


 쌀푸대를 나르다 보니 안쪽에 쌓인 쌀푸대에 어김없이 구멍이 납니다. 안쪽 쌀푸대에는 어김없이 쥐똥이 구릅니다. 마을에 들고양이 제법 있으나, 이렇게 들고양이 눈길을 벗어나 쌀푸대에 구멍을 내어 쌀을 쏘는 들쥐 또한 제법 있군요. 재미나다면, 들쥐가 쌀을 쏠면서 알맹이를 쏙 빼먹고 겨를 벗겨 놓습니다. 요 녀석들이 알맹이만 골라서 먹네.

 구멍난 자리는 테이프로 붙이거나 실로 뀁니다. 할매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실로 꿰맵니다. 테이프로 붙이면 언젠가는 테이프가 톡 떨어질 테지만, 실로 꿰맨 자리는 다시 튿어지지 않습니다.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자란 시빌 웨타신하 님이 빚은 그림책 《우산도둑》(보림,2011)을 읽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빛깔과 내음과 소리가 물씬 묻어나는구나 싶은 그림책입니다. 참말 스리랑카 그림책이니까 스리랑카 빛깔이랑 내음이랑 소리가 묻어나야겠지요.

 스리랑카는 이런 빛깔이로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이런 내음을 누리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스리랑카는 이런 소리를 들려주는구나 하고 꿈꿉니다.


.. 키리 마마는 우산을 모두 땅바닥으로 떨어뜨렸어요. 그리고 상냥하게도 우산 도둑을 위해 우산 하나는 남겨 두기로 마음먹었지요 ..  (19쪽)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그려 한국 어린이한테 베푸는 그림책에는 어떤 빛깔·내음·소리가 깃들 수 있을까요.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자라는 스리랑카 어린이가 한국 그림책을 받아서 읽는다 한다면, 이 스리랑카 어린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빛깔·내음·소리라고 느낄 만한가요.

 한국땅 그림책은 어느 마을을 무대로 삼아야 할까요. 서울을? 일산을? 분당을? 부산을? 대구를? 제주를? 한국땅 그림책은 어디가 무대가 되고,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까요.

 젊은이는커녕 어린이 하나 만날 수 없는 시골마을 흙일꾼 보금자리에서 두 아이와 부대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시골마을 어디를 가든 어린이 뜀박질이나 갓난쟁이 울음소리 듣기 힘듭니다. 아예 없지는 않아요. 아주 힘들 뿐입니다. 더구나, 시골마을 구석구석 자동차가 몰려들어 시골 아이라 해서 마음껏 고샅길을 뜀박질하기란 힘들어요.

 우리 아이들한테는 무슨 빛깔이 있을까요. 온통 도시에서만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한테는 무슨 내음이 날까요. 오직 도시로 가도록 등떠밀리는 우리 아이들한테는 무슨 소리가 샘솟을까요.

 빛깔도 내음도 소리도 그저 잿빛 시멘트와 차가운 쇠붙이에다가 딱딱한 플라스틱인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한국 어린이는 《우산도둑》에 어리는 빛깔·내음·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 마음밥으로 삼을 만할까요. 아니, 한국 어린이에 앞서 이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사서 선물할 한국 어른은 이 그림책에 감도는 빛깔·내음·소리를 얼마나 가슴으로 살포시 받아안을 수 있나요. (4344.12.3.흙.ㅎㄲㅅㄱ)


― 우산도둑 (시빌 웨타신하 글·그림,엄혜숙 옮김,보림 펴냄,2011.10.10./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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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2-03 22:48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독특하다'하고 봤더니 스리랑카 작가로군요. 음~

파란놀 2011-12-04 02:32   좋아요 0 | URL
네, 따뜻한 섬마을 사람 내음을 잘 담았어요~
한국 그림책에는 어떤 내음을 담아야 좋을까...
참 아직 알쏭달쏭해요...
 


 사진으로 보는 삶
 ― 남기고 싶은 사진


 아이 어머니가 아이 사진 한 장 찍어 달라 이야기합니다. 아이 사진을 찍어 달라 이야기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아주 오랜만에 사진을 찍으라 이야기합니다. 아이 아버지가 늘 먼저 느껴서 사진으로 담으니 애써 말하지 않아도 된달 수 있지만, 아이들 자라나는 모습은 그때그때 스치고 지나가며 새롭게 거듭나는 만큼, 1분이나 1초를 놓치면 이 어여쁜 오늘 이곳 모습을 남기지 못합니다.

 둘째 갓난쟁이는 어머니 무릎에 누워서 잠듭니다. 졸리면서 좀처럼 잠들지 못하다가 어머니 젖을 물고 곯아떨어집니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또 잠이 깰 테지요. 아이 어머니는 뜨개질을 합니다. 뜨개질하는 어머니 무릎에 누운 채 둘째 갓난쟁이가 새근새근 잡니다.

 첫째가 둘째만 하던 나이에 아이 어머니는 매듭을 지었습니다. 첫째는 갓난쟁이일 때에 어머니 매듭 짓는 어머니 무릎에서 새근새근 꿈누리를 누볐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사진기를 들고 두 사람 모습을 담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내(아이 어머니)가 바라보는 자리에서 보이는 아이 모습”을 찍어 달라고 합니다.

 뜨개질하는 아이 어머니 뒤에 서서 아이를 내려다봅니다. 무릎에 아이를 눕히고 아이를 바라보는 눈높이에서 아이 사진을 얼마나 담아 보았나 곰곰이 떠올립니다. 아이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라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겠지요. 이 사진기를 어머니가 쥐어야 어머니 눈길이 될 테지요.

 한식구가 담는 한식구 사진은 말 그대로 한식구 눈높이와 눈길과 눈썰미입니다. 이웃이나 동무가 담는 어느 한식구 사진은 말 그대로 이웃이나 동무가 담는 눈높이요 눈길이며 눈썰미예요. 다큐사진을 찍는 사람은 다큐사진 찍는 눈높이와 눈길과 눈썰미일 테지요. 패션사진을 하는 사람은 패션사진을 하는 눈높이와 눈길과 눈썰미일 테고요.

 누구나 저마다 살아가는 결에 따라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누구든 저마다 사랑하는 매무새 그대로 담는 사진이면서 즐기는 사진이에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오늘 이 보금자리 꿈을 사진으로 영급니다. 나한테 가장 보배스러운 사랑을 담는 글이고 그림이며 사진입니다. (4344.1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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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박나무 빨래


 사람들은 으레 ‘내 집 갖고 싶어’ 하고 말하지만, 정작 ‘내 집 갖기’를 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느 사람들이 장만한다는 ‘내 집’이란 거의 다 ‘아파트’이면서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하고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면서, 내 아이들이 저희 아이들을 낳아 두고두고 살아갈 만한 보금자리를 ‘내 집 갖기’라는 꿈으로 꽃피우는 사람을 만나기란 너무 힘들다.

 우리 네 식구는 ‘우리 집’을 장만했다. 우리한테 있는 돈으로 장만한 집은 아니다. 우리 네 식구가 살아오며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일구는 책이 밑힘이 되어 둘레에서 도움을 받아 장만한 집이다. 살림집과 책터가 아직 함께하지는 못한다. 우리한테 알맞춤한 책터이면서 살림집을 제대로 꿈꾸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겨우 살림집만 우리 집으로 마련했다. 앞으로 참답고 예쁘면서 착하게 책터를 함께 꿈꾸어서, 이 고운 살림집과 마주할 어여쁜 책터를 일구자고 생각한다.

 네 식구 살림집에는 마당 한켠에 후박나무 예쁘게 자랐다. 몸무게 이십 킬로그램이 안 되는 첫째 아이는 나무타기를 하며 오를 만하다 싶지만, 제대로 나무타기를 하자면 우리 아이 때까지는 힘들고,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낳을 아이 때는 되어야지 싶다.

 이 후박나무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생각에 젖는다. 후박나무를 이만큼 돌본 할머님이 고맙고, 이 고마운 할머님 손길처럼 나와 옆지기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나무를 물려주면서 아이들이 저희 삶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어버이 손길이 될 만한가 하고 생각에 젖는다. 나는 살구나무를 좋아하고 옆지기는 잣나무를 좋아하는데, 따스한 날씨인 이곳 보금자리에 잣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궁금하지만, 잣나무 몇 그루 우리 집터에 심고 싶다. 살구나무는 꼭 두 그루만 우리 집에 심고 싶다. 살구꽃과 잣꽃이 어우러지는 내음은 어떤 느낌일까.

 볕이 좋던 며칠 앞서, 무거운 빨랫대를 밖에 내놓고 다시 들이고 하다가, 비로소 빨랫줄 걸어야지 하고 느끼면서 후박나무 가지 사이에 줄을 엮는다. 나무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스럽고, 나무에 한쪽을 건다 하면 다른 한쪽은 처마에 박힌 못에 걸어야 하는데 집이 견딜 만한가 근심스러웠다. 틀림없이 이불을 널기는 벅차겠지. 그러나 둘째 기저귀 빨래는 얼마든지 널 만하다고 느낀다. 아니, 이제서야 느낀다. 가벼운 빨래를 널면 되잖아.

 새 보금자리에 깃든 지 한 달 보름만에 빨랫줄을 건다. 일찍부터 걸고는 싶었으나 미처 못 건 빨랫줄을 후박나무 가지에 걸친다. 오늘 비가 뿌리겠네 하고 생각했으나 비오기 앞서 조금이라도 바람에 마르라며 새벽빨래를 해서 기저귀를 내놓는다. 바람을 맞으며 팔랑거리는 기저귀는 햇살과 구름과 바람에다가 후박나무 기운이랑 동백꽃 내음을 함께 맞아들이겠지.

 빽빽히 걸면 기저귀 여섯 장을 널 만한 후박나무 빨래줄을 바라보면 나 혼자 그저 즐겁다. 빨래를 널 때에도, 빨래를 걷을 때에도, 빈 빨랫줄을 쓰다듬을 때에도 즐겁다. 후박나무야, 우리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네 아이들한테도 곱게 사랑을 나누어 주렴. (4344.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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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 장 보면서 눈물 흘리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41] 《the children of this world》(stern,1977)



 사진책만큼 안 팔리거나 사랑 못 받는 책이 드뭅니다. 사람들이 사진기를 장만하려고 여러모로 알아본다든지 돈을 모은다든지 하는 일을 돌아본다면, 사진기를 장만해서 ‘사진찍기 즐기려’는 사람들이 ‘사진을 사랑하는 길’에서 자꾸 엇나가는 셈 아닌가 싶어 슬픕니다.

 어느 사진쟁이는 ‘다른 사람 사진은 안 본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 사진을 보면 ‘내 사진을 찍는 길이 흔들리거나 다른 사람이 사진 찍는 길이 스며들’기 때문이랍니다. 사진쟁이 아닌 여느 사진즐김이 가운데 ‘훌륭하다는 사진을 본들 따라갈 수 없고, 내가 작가로 살아갈 마음이 없으니 구태여 사진책까지 사서 볼 까닭이 없다’고 말하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이런 말 저런 까닭을 들며 사진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말, 사진책 하나 장만하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사진잔치에 마실을 가는 사람이 많아요.

 사진책이 하나 태어나기까지 돈이 적잖이 듭니다. 사진책치고 값싼 사진책은 얼마 안 됩니다. 사진기 하나 장만하는 데에도 살림돈이 휘청거리는데 사진책을 어떻게 사느냐 한숨을 쉴 만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도서관 가운데 사진책 알차게 갖춘 데는 없습니다. 만화책과 문학책 갖추어 빌려주는 대여점은 있고, 어린이가 즐길 그림책을 갖추는 어린이책 도서관이 새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어린이나 푸름이나 어른 누구나 ‘사진을 즐기거나 누릴 도서관’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온갖 사진책 골고루 갖추어 사진을 곱게 즐기도록 돕는 책쉼터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사진책 도서관을 여러 해 꾸리는 사람으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라고 돈이 많지 않은데다가, 마땅한 돈벌이가 없습니다. 나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에 사진책을 꾸준히 살피고 틈틈이 장만합니다. 여느 사진책 한 권 장만하자면 여느 글책 열 권 장만하는 돈이 들기 일쑤입니다. 어느 사진책 한 권은 여느 글책 스무 권이나 서른 권 값을 하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니, 으레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진잔치에 찾아갈 수 없습니다. 사진잔치에 어쩌다 한두 번 찾아간들, 이 사진잔치가 끝나고 나면 어떤 사진이 걸렸는지를 되새길 수 없습니다. 마치, 연극을 보고 나서 연극이 어떠했는가를 나눌 ‘그림’이 없는 일하고 같습니다.

 사진책은 사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책입니다. 글책은 글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책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예쁘게 살아가며 일구는 예쁜 이야기를 ‘입으로 주고받다’ 보면 ‘듣는 사람은 어느새 잊’거나 ‘듣는 사람이 되새기더라도 엉뚱하게 되새기’는 일이 잦습니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 잊을 때가 있어요. 이리하여, 입과 입으로 주고받던 이야기를, 가슴과 가슴으로 물림하던 이야기를, 사랑과 사랑으로 나누던 이야기를, 사람들이 글에 알뜰히 담고 종이로 묶어 책 하나로 태어나도록 합니다. 사진책은 사진잔치를 벌이고 나면 잊힐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서로서로 더 따사롭고 더 오래도록 건사하면서 나누고픈 이야기를 담는 책인데, ‘그릇만 사진’입니다.

 《4th world exhibition of photography : the children of this world》(stern,1977)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을 들여다봅니다. 내 사진책 도서관에는 이 사진책이 하나 있습니다. 2000년 첫무렵이었나, 김기찬 님 사진책 《골목안 풍경》을 어느 분한테 선물로 드리고 나서 이 사진책을 선물로 받은 적 있습니다. 독일 ‘stern’이라는 출판사와 유니세프가 뜻을 모아 마련하는 ‘온누리 사진잔치’ 열매를 그러모은 사진책입니다. 1977년에 넷째 사진잔치를 열었고, 이때 사진감은 ‘어린이’였으며, 모두 아흔네 나라 이백서른여덟 사진쟁이가 일군 오백열다섯 사진을 담습니다.

 《the children of this world》를 들추면 최민식 님이 담은 ‘부산 가난한 어린이’ 사진도 보입니다. ‘Abisag Tulllmann’이라는 사람이 담은 한국땅 구두닦이 사진도 있어요. 일본사람이 담은 일본 어린이 사진이 있고, 서양사람이 담은 중국과 일본 어린이 사진이 있습니다. 웃는 어린이, 우는 어린이, 즐거운 어린이, 슬픈 어린이, 전쟁에 시달리는 어린이, 가난한 어린이, 노는 어린이, 동생을 돌보는 어린이, 일하는 어린이, 배우는 어린이, 태어나는 아기 들이 나옵니다.

 1970년대에 꽃피운 《the children of this world》를 일구던 사진쟁이는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어린이들 앞에서 사진기를 들었을까 궁금합니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진쟁이는 어떤 사랑과 몸짓으로 아이들 앞에 서면서 사진기를 들는지 궁금합니다. 2010년대 오늘날 한국땅 사진쟁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베트남이나 라오스나 필리핀에서, 독일이나 덴마크나 영국에서, 스리랑카나 아르헨티나나 볼리비아에서 …… 저마다 어떤 어린이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사진을 빚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지난달에 헌책방에서 《the children of this world》라는 사진책 한 권을 새로 장만합니다. 한 권 갖추었으나 여러 사람한테 보여주느라 책이 퍽 닳고 찢어지는 바람에 새로 장만합니다. 새로 장만한 헌 사진책 《the children of this world》도 머잖아 닳거나 찢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사진책을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어 1970년대 어린이 삶과 꿈과 넋을 헤아리는 길동무로 삼고 싶습니다. 나한테 사진책은 눈물 흘리며 즐겁게 누리는 한삶을 담는 이야기입니다. 나한테 사진책은 웃음꽃 피우며 신나게 즐기는 한삶을 싣는 이야기입니다.

 톨스토이나 윤동주처럼 되고 싶어 톨스토이나 윤동주 문학을 글책으로 읽지 않습니다. 다만, 톨스토이나 윤동주가 일군 글빛을 느끼면서 내 삶빛을 보듬고 싶으니, 이분들 남긴 책을 읽습니다.

 나는 스티글리츠나 앗제나 임응식이나 배병우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이분들이 이룬 사진빛을 느끼면서 내 삶빛을 돌볼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사진책 《the children of this world》를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이 사진책에 나온 어린이 사진처럼 우리 집 아이들을 사진에 담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예 내가 사랑할 우리 집 아이들을 헤아리고 싶으며, 내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결을 고스란히 싣는 사진을 날마다 기쁘게 찍고 싶어요.

 나부터 내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 사랑을 받으면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일굽니다. 우리 아이는 나와 옆지기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뛰어놉니다.

 좋은 넋이라면 좋은 눈길로 바라보며 좋은 손길로 사진기를 쥘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좋은 얼이라면 좋은 사랑을 담아 좋은 꿈을 북돋우는 사진읽기를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삶이기에 사진책을 마련합니다. 웃음을 짓는 나날이기에 글책을 장만합니다. (4344.12.3.흙.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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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잡다


 이웃집에서 얻은 고구마가 두 상자 있는 줄 한참 깨닫지 못하다가 엊그제 비로소 깨닫고는 썩둑썩둑 썰어 고구마볶음을 한다. 살짝 여린 불에 기름 조금 두른 스텐냄비를 미리 잘 달구고서 볶는다. 튀김을 한 만한 기름이 없기도 하지만, 기름 많이 쓰는 밥을 안 좋아하니까, 으레 물로 볶았는데, 모처럼 한 번 기름 조금 둘러 고구마볶음을 했더니 아이가 아주 좋아하며 잘 먹는다. 어른 둘이랑 아이 하나 먹을 때에는 고구마 한 알이어도 넉넉하다. 고구마 두 알 썰어 볶으면 배불리 먹고 조금 남는다. 조금 남으면 두었다가 먹는다. 따뜻할 때에도 식은 뒤에도 괜찮다.

 겨우내 날마다 고구마볶음을 한 차례 하면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적어도 십이월 한 달은 너끈히 먹겠지. 십이월 한 달 너끈히 먹은 뒤에는 읍내 장마당에서 감자를 사서 감자볶음을 해 볼까.

 작은 상에 동그란 접시를 올리고 방에 들인다. 셋이 나란히 앉아서 먹는데 둘째가 뽀르르 기어와서는 상 한쪽 귀퉁이를 잡는다. 스윽 끌어당긴다. 요놈, 제 누나처럼 갓난쟁이 때에도 힘이 좋네. 처음 한 번, 아버지가 상을 잡아당긴다. 다시 둘째가 상을 척 붙잡아 끌어당긴다. 이제 첫째가 상 다른 귀퉁이를 잡고는 당긴다. 3초쯤 둘이 줄다리기를 하지만, 한 손만 쓰는 둘째가 두 손을 이기지 못한다. 둘째야, 너도 곧 이가 나니 젖떼기밥을 먹고 이 고구마볶음도 나중에 함께 먹으렴. 무럭무럭 크면 언제라도 해 줄 테니까. (4344.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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