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따는 아이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1.22.



 도서관 문을 딸 때에 아이는 늘 “저가요, 저가요, 저가 할게요.” 하면서 콩콩 뛴다. 아이가 열쇠를 따고, 사이에 낀 긴못을 꺼내겠단다. 딱 아이 눈높이 자리에 있는 긴못이기에 아이가 꺼내기 좋고, 아이가 자물쇠를 따고 채우기 좋을는지 모른다. 차근차근 책더미를 끌르고 제자리를 찾고, 또 새 책꽂이를 들여 찬찬히 갈무리하면 아이가 신나게 이리 달리고 저리 뛸 책놀이터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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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3) 장족의 1 : 장족의 발전


.. “사다코가 어느 틈에 장족의 발전을 했거든!” “진짜? 잘됐네!” ..  《시이나 카루호/서수진 옮김-너에게 닿기를 (3)》(대원씨아이,2007) 106쪽

 ‘발전(發展)’은 ‘발돋움’으로 다듬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발전을 했거든”을 “나아졌거든”이나 “좋아졌거든”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진(眞)짜’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참말’이나 ‘그래’로 손보면 한결 나아요.

 장족(長足)
  (1) 기다랗게 생긴 다리
  (2) (‘장족의’, ‘장족으로’ 꼴로 쓰여) 사물의 발전이나 진행이 매우 빠름
   -  장족의 발전 / 그의 독일어 실력은 장족으로 진보했다

 장족의 발전을 했거든
→ 대단히 발돋움했거든
→ 크게 나아졌거든
→ 많이 달라졌거든
→ 아주 좋아졌거든
→ 썩 잘 하게 됐거든
 …


 다리가 길다 할 때에는 ‘긴다리’라 하면 됩니다. 다리가 짧다 하면 ‘짧은다리’라 하면 돼요. 길기에 ‘긴-’을 앞가지로 붙입니다. 짧아서 ‘짧은-’을 앞가지로 붙여요. 알맞게 말을 하고 바르게 글을 씁니다.

 그나저나 ‘긴다리’를 뜻하는 한자말 ‘長足’을 쓰는 일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으레 국어사전 둘째 뜻풀이처럼 쓰리라 생각해요.

 장족의 발전 → 매우 빨라 나아짐 / 몹시 발돋움함 / 크게 거듭남
 장족으로 진보했다 → 크게 나아졌다 / 많이 나아졌다 / 퍽 좋아졌다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쓰니까 이러한 말마디를 그냥저냥 써도 좋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이 같은 글월을 아무렇지 않게 쓰기에 이럭저럭 써도 괜찮으리라 여길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사람들이 흔히 쓰기에 나까지 그대로 써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곳저곳에 자주 쓰는 말마디이니까 나도 이 말마디로 내 넋을 나타내도 될 만한가 헤아려 봅니다.

 옳고 바르게 쓰는 말이라면 나 또한 즐거이 씁니다. 얄궂거나 비틀린 글월이라면 나로서는 달갑지 않습니다. 옳은 말로 옳은 넋을 가꾸면서 옳은 삶을 돌보고 싶습니다. 바른 글로 바른 꿈을 키우면서 바른 사랑을 펼치고 싶습니다.

 말 한 마디부터 아름답고 싶습니다. 글 한 줄부터 사랑스럽고 싶습니다. 말 한 마디이기에 더 마음을 기울입니다. 글 한 줄인 만큼 더욱 사랑을 담습니다. (4344.1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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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으로 먹는 밥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받는 너는 어떤 마음일까. 네가 배고프다 싶을 때에 너희 아버지가 알뜰히 밥을 차려 주든? 네가 먹고픈 밥을 기쁘게 차려 주든? 무언가 새롭다 싶은 밥을 차려 주든? 늘 똑같은 밥만 차려 주든? 너 밥먹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버지도 배가 고프니 밥을 먹지만, 네가 맛나게 알뜰히 밥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날에는 밥술을 뜨지 않아도 배가 부르단다. (4344.1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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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05 05:32   좋아요 0 | URL
네살 아이가 저렇게 혼자서 밥을 잘 먹는군요! 예쁘고 기특해요.
아이들이 제일 예뻐보이는 때는 역시 낮에 온갖 개구진 짓 다하여 엄마를 고단하게 한 후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모습과, 저렇게 밥상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 같아요.

파란놀 2011-12-05 08:46   좋아요 0 | URL
아이가 사랑스러운 모습을 차츰차츰 더 느끼도록
더 예쁘게 잘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하면서 새날을 맞이합니다
 
너에게 닿기를 2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날
 [만화책 즐겨읽기 85] 시이나 카루호, 《너에게 닿기를 (2)》



 두 아이가 좀처럼 잠들지 못하면서 밤이 깊으면,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도 참 힘듭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잠이 들지 못해 힘들고,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고단한 몸 쉬지 못해 힘듭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 되는데, 바보스러운 어버이는 잠들지 못하는 아이한테 그만 골을 부립니다. 그러나 아이가 왜 잠들지 못하겠어요. 어딘가 아프고 어딘가 힘들며 어딘가 괴로우니 쉬 잠들지 못할 테지요. 따사로운 손길로 살뜰히 어루만지면서 사랑해야 할 아이입니다. 너그러운 품으로 곱게 얼싸안아야 할 아이예요.

 아이가 아닌 아픈 벗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가 아닌 늙고 아픈 어버이라고 헤아려 봅니다. 내 벗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에 나는 내 아픈 벗한테 골을 부릴 수 있을까요. 내 어버이가 늙고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리에서 나는 내 늙고 아픈 어버이한테 골을 낼 수 있겠습니까.

 지난밤, 첫째 아이를 업고 집 앞 논배미를 한 바퀴 돕니다. 안아 달라 놀아 달라 업어 달라 하며 보채는 아이를 안고 놀며 업다가는, 문득 무언가 스치는 생각이 있어 아이를 업고는 밖으로 나옵니다. 서늘한 밤바람이 살랑이는 논둑길을 걷습니다.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주무시는 깜깜한 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늘에 달도 별도 조용히 자고, 논도 자고, 억새도 자고, 까치랑 까마귀랑 참새도 자고, 유채싹도 자고, 석류나무도 자고, 전봇대도 자고, 구름도 자고, 멧등성이도 자고, 모두모두 자는데 어쩜 우리 예쁜 아이만 안 자니,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업고 밤길을 살짝 걷고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나 어머니도 깊은 밤 잠들지 못하는 어린 나를 업고는 이렇게 밤마실을 한 적이 있었을까 헤아립니다. 내가 떠올리지 못할 뿐, 나도 내 아이처럼 어린 겨울날, 내 어버이랑 차가운 바람을 쐬면서 내 어버이 등판이 얼마나 따스하고 우리 집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느낀 적이 있겠지요.


- ‘행복을 느끼는 매일 속에서 나날이 고동이 높아간다. 다른 애들은 모두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랑 있는 게 즐거울까? 그랬으면 좋겠다. 좋겠다. 그랬으면.’ (22∼23쪽)
- ‘말하는 편이 좋았을까? 내가 주변에 있으면 나쁜 소리를 듣는다고. 하지만, 그걸 내 입으로 말하는 건 괴로워.’ (61쪽)
- “제대로 얘길 해야 알아듣지. 주가니 소문이니, 거기에 내 의지는 어디에도 없잖아!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냐. 내가 결정할 일이지.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너랑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얘기 나누지 않아!” (90∼91쪽)



 집으로 들어온 아이한테 쉬를 누입니다. 다시 안고 자리에 눕힙니다. 아이는 사르르 눈을 감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그러나 첫째 곁 둘째는 좀처럼 잠들지 않습니다. 자는 방에서 누여 어르다가는 아이 어머니가 옆방으로 가서 더 놀립니다. 더 놀고 더 달랜 다음 젖을 물리고 품에 안아 토닥이며 재웁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 아이를 낳은 어머니라 한다면, 내 옆지기처럼 이렇게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토닥이면서 천천히 잠이 들도록 이끌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주 마땅한 일이고, 아주 부드러운 삶입니다. 이제 막 이가 처음으로 돋으려 하는 갓난쟁이를 돌보는 어머니라는 자리는 그저 젖만 물리는 어머니 자리가 아닙니다. 온 사랑과 믿음과 꿈과 따스함을 고스란히 내어주는 자리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젖을 물리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아이한테 젖을 물리지 못하지만, 어머니보다 힘을 더 많이 씁니다. 집밖일이든 집안일이든, 아버지 자리는 어머니와 달리 아이가 넉넉하고 느긋하게 자라면서 씩씩하게 우뚝 서기까지 건사할 일이 많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맡은 몫을 서로 즐거이 나누어 짊어지면서 아이하고 예쁜 새 나날을 누립니다.


- “그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서로 정말 좋아하는구나 느끼게 돼. 그러니까 난 아직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랄까. 하지만, 나도 두 사람을 엄청 좋아하니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생각해.” (30∼31쪽)
- ‘나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돌게 됐는데, 야노랑 요시다랑 카제하야는, 날 싫어하거나 무서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언제나.’ (75쪽)



 십이월 한 달이 지나 새해가 찾아오면, 첫째 아이는 다섯 살로 접어듭니다. 첫째가 두 살일 무렵부터 둘레에서는 보육원에 넣어야 하느니 하고 이야기합니다. 세 살과 네 살을 오직 집에서 저희 어머니 아버지하고 지낸 첫째를 바라보는 둘레에서는 다섯 살이 되면 참말 마땅히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듯 여깁니다.

 때때로 생각에 젖곤 합니다. 살붙이 모두 깊이 잠든 새벽녘 홀로 조용히 일어나서 아버지 일인 글쓰기를 하며 곧잘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내가 이 작은 시골마을 보금자리에서 이 옆지기하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나는 내 아이들하고 어떤 나날을 누렸을까 하고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이 옆지기가 아니었어도 아이들하고 집에서 복닥이면서 살아갔을까요. 나는 누구하고 짝을 맺어 살림을 꾸렸어도 아이들하고 집에서 부대끼면서 지냈을까요.

 첫째 아이와 네 해를 꾹꾹 눌러 채우면서 한집에서 보낸 지난날을 되짚습니다. 이 아이가 보육원이든 어린이집이든 다녔으면, 어버이인 나는 아주 홀가분하게 이 일 저 일 많이 하거나 이 글 저 글 훨씬 많이 쓰거나 이곳저곳 마음대로 돌아다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누리는 내 삶은 얼마나 즐거웁고, 얼마나 뜻있으며,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아니, 이렇게 누리는 어버이 삶은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남기거나 물려줄 만한가요.


- ‘너 때문에 늘 행복했어. 내내 갈구하던 것들을, 내내 동경하던 것들을, 맛볼 수 있었으니까.’ (82쪽)
- ‘전부 손으로 쓴 글씨. 하긴 당연한가? 나한테 만들어 준 노트니까.’ (120쪽)



 아이하고 네 해를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집에서 늘 붙어 지낸다 하지만, 이렇게 붙어 지내더라도 아이하고 보내는 삶은 짧아요. 날마다 아이를 바라보며 살아도, 아이하고 어버이가 마주앉아 살을 부비는 겨를은 짧습니다. 아이를 업고, 아이를 안고, 아이 손을 잡고, 아이 눈망울을 바라보고, 아이를 씻기고, 아이 옷가지를 빨고,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이것저것 하는 품과 겨를과 나날은 더없이 짧습니다.

 길고 짧고를 따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인가를 온몸 가득 느끼는 나날은 아주 짧아요. “품 안에 아이들”이라기보다, 아이 스스로 아이 나름대로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어버이로서 사랑을 물려주거나 나누는 나날은 아주 짧구나 싶어요. 어버이 되는 사람은 고작 몇 해 아이하고 함께 지내지 못하면서 집밖일로 나다닐 때에는 아이가 물려받아야 할 사랑을 제대로 물려주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조차 누리도록 이끌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 ‘내 마음 역시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아. 모르니까 서로 알아 가고 싶어.’ (130쪽)
-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 모르니까 그런 소릴 하는 거야.” (152∼153쪽)



 시이나 카루호 님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대원씨아이) 2권(2007)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보낸 초등학생 나날이나 중학생 나날은 참 짧습니다. 고등학생 나날을 보내는 이 만화책 아이들은 하루하루 금세 지나갑니다. 좋은 날이든 궂은 날이든, 이 아이들 하루는 참으로 짧아요. 초등학교 여섯 해이든, 중학교와 고등학교 세 해씩이든, 아주 짧습니다.

 푸르게 빛나는 세 해는 하루하루 빛나는 나날이 모여 이루어지지만, 세 해이든 하루이든 참 금세 지나갑니다. 어느 하루이고 애틋하게 여길밖에 없고, 어느 하루이든 온마음을 들여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이 너한테 닿기를 바랍니다. 네 마음이 나한테 닿기를 꿈꿉니다. 고등학생이 서로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넋에 앞서, 아니, 고등학생이 서로를 아끼거나 보듬는 얼에 앞서,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은 하루하루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날이 아이들한테 얼마나 놀랍고 대단하며 뜻깊고 아름다운가를 보여줍니다.

 참말 아이들한테 하루하루 뜻깊지 않은 날이 없어요. 참말 아이들은 하루하루 아무렇게나 보내도 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새롭습니다. 언제나 즐겁습니다. 늘 기쁩니다. 노상 웃음꽃이에요.


- “그런 일로 상처받은 건 너잖아.” (172쪽)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까닭 때문에 집밖일로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덜 벌거나 돈을 못 벌더라도 아이하고 나눌 사랑을 깨달으면 반갑겠습니다.

 아이들은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살붙이가 반갑지, 비싼밥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는 살붙이가 반갑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지, 돈을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주 사랑할 만한 좋은 보금자리를 기쁘게 여기지, 비싼값에 사고팔 만한 부동산인 아파트를 기쁘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내 어버이 등판과 무릎과 가슴이 따스하면서 좋지, 까맣고 커다란 비싼 자가용 히터가 따스하거나 좋지 않아요. (4344.12.5.달.ㅎㄲㅅㄱ)


― 너에게 닿기를 2 (시이나 카루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10.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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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 워홀에서 히틀러까지, 688명이 말한 사진
전민조 지음 / 포토넷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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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64] 전민조,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야기를 빚습니다. 네 이야기나 남 이야기 아닌 내 이야기를 빚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내 얼굴을 찍을 수 있을 테지만,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으레 내 모습 아닌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습니다. 그러나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는 사진쟁이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빚습니다.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는 사진이라지만, 언제나 내가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내가 느끼는 모습이요, 내가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누가 나한테 사랑해 달라 바라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사랑이 샘솟기에 찍는 사진입니다. 누가 나한테 사랑을 베풀었기에 고스란히 사진으로 돌려주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쟁이 전민조 님이 쓰고 엮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는 모두 육백여든여덟 사람이 사진을 놓고 읊은 말마디를 그러모읍니다. 육백여든여섯 가운데에는 사진쟁이가 있고, 그림쟁이가 있으며, 영화쟁이가 있습니다. 사진하고 동떨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회사를 꾸리는 사장이 있고, 모델이나 글쟁이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든,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는 이야기를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사진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해서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나오미 해리스/34쪽).”는 말처럼, 사진쟁이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내가 나누고픈 이야기를 스스로 빚고, 내가 배우고픈 이야기를 기쁘게 배웁니다.

 “사진의 주제는 사진보다 더욱 중요하다(다이안 아버스/49쪽).”는 말마따나, 무엇을 찍느냐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사진이냐 아니냐, 사진문화냐 아니냐, 사진예술이냐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역사에 남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내가 무엇을 왜 찍느냐 하는 대목을 살필 노릇입니다.

 “대부분의 전쟁 사진가는 전쟁을 즐기고 있다(도널드 맥콜린/66쪽).”는 말 그대로, 전쟁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전쟁을 즐길밖에 없습니다. 알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알몸을 즐깁니다. 패션사진을 하는 사람은 패션을 즐깁니다. 다큐사진을 하는 사람은 다큐멘터리 주제를 즐깁니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날을 즐깁니다.

 “일상의 순간들이 바로 진실의 순간이다(레이몽 르파르동/82쪽).”는 말대로, 어느 하루이고 나한테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내가 누리는 삶이 참다이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나한테 가장 기쁘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빛나는 내 삶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가에게는 비밀이 있다. 너무 따지지도, 너무 집착하지도 않고서 단지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다(마릴린 리타 실버스톤/125쪽).”는 말을 돌이킵니다. 내 이야기를 담는 사진이기에 내 이야기를 내 결대로 보듬습니다. 내 걸음을 내 다리힘대로 걷습니다. 내 꿈을 내 마음밭대로 일굽니다.

 “초상 사진은 모델을 보여주어야지, 사진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강조해서는 안 된다(매리 앨런 마크/138쪽).”는 말을 곱씹습니다. 얼굴을 찍는 사진은 얼굴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골목길을 찍는 사진은 골목길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지리산을 찍는 사진은 지리산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빼어난 솜씨를 보여준대서 사진이지 않습니다. 훌륭한 재주를 선보인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빼어난 글솜씨로 문학이 태어나지 않거든요. 훌륭한 붓질로 아름다운 그림이 태어나지 않아요. 값진 사진기나 사진장비는 덧없습니다.

 “사진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어야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이다(보리스 미하일로프/163쪽).”는 말을 가만히 짚습니다. 스스로 사랑이 우러나오는 삶이 아니라면, 사진쟁이로서는 사진기를 들지 못합니다. 스스로 사랑이 우러나올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이 우러나오지 않으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사랑이 우러나와야 비로소 내 살붙이들 아침저녁을 차립니다. 사랑이 우러나오는 삶이기에 내 살붙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사진가로 볼 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모든 나라들은 자신의 나라가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얀 아르튀스 베르트랑/249쪽).”는 말이 참으로 맞습니다. 한국은 한국입니다. 일본은 일본입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입니다. 미국은 미국입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배우든 프랑스에서 사진을 배우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일본을 사진으로 담든 미국을 사진으로 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가 무엇이요, 내가 사랑할 이야기가 어떠하며, 내가 사진으로 나눌 이야기는 어떻게 가꾸는가를 생각하며 느껴야 합니다.

 “특정한 시간에 당신의 마음을 비추는 것, 당신은 그것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조지 타이스/350쪽).”는 말이 좋습니다. 나는 내가 보는 모습만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내가 못 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못 담습니다. 곧, 아는 대로 사진으로 담지 않아요. 지식에 따라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낸 발자국만큼 사진으로 담습니다. 내가 온몸으로 부딪히거나 부대낀 나날 그대로 사진을 찍어요.

 “마음이 움직여야만 사진기를 든다(토몬 켄/403쪽).”는 말이 아름답습니다. 값진 장비나 값나가는 장비로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두말할 까닭 없어요. 마음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짝꿍입니다. 마음으로 아끼는 내 꿈이요 삶이에요.

 “내가 찍은 최고의 인물 사진은 내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의 사진들이었다(펠릭스 나다르/416쪽).”는 말이 올바릅니다. 유섭 카슈 같은 사람이 ‘잘 찍은’ 사진은 이름난 사람들 얼굴이 아니에요. 유섭 카슈 스스로 ‘잘 알려고 애쓴’ 사람들 얼굴입니다. 마음을 열어 다가섭니다. 마음을 적셔 껴안습니다. 마음을 담아 마주합니다. 마음을 기울여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사진쟁이한테 사진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살림꾼한테 집일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흙일꾼한테 흙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나는 어디에 선 나일까요. 나는 무엇으로 내 삶을 말할 만할까요.

 한국땅에서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같은 책이 태어날 수 있어 고맙습니다. 다만,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에는 나라밖 사진쟁이 이야기만 실립니다. 나라안 사진쟁이 이야기를 담은 다음 책을 기다립니다. (4344.12.5.달.ㅎㄲㅅㄱ)


―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전민조 글·엮음,포토넷 펴냄,2011.10.1./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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