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장난감 2 - 애장판
오바나 미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을 믿고 아끼는 어머니
 [만화책 즐겨읽기 90] 오바나 미호, 《아이들의 장난감 (2)》

 


  어버이가 아이를 안고 재우는 겨를은 얼마쯤일까 헤아려 봅니다. 밤잠이나 낮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아이를 가슴에 올려놓거나 팔베개를 하거나 무릎에 누여 재우는 나날은 얼마나 될까 가늠해 봅니다. 아이가 세 살 네 살이 되도록 품에 안고 재워야 할 수 있겠지만, 이 아이들은 너덧 살이 되고 대여섯 살이 되면 스스로 잠자리에 들어 스스로 달게 꿈나라로 가리라 느낍니다. 일고여덟 살이나 열두어 살쯤 된다면 으레 혼자 잠자리에 들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많이 어린 아이를 안거나 달래며 보내는 하루는 길다고 여길 만합니다. 아이하고 함께 놀거나 어울리는 하루란 참 길다고 느낄 만합니다. 스물네 시간 아이 곁에서 말을 걸고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옷을 입히고 몸을 씻기고 놀이를 하자면, 참말 어버이로서 다른 일은 도무지 못 챙기거나 못 하기 마련입니다.


  어버이로서 이제껏 하던 다른 일에 애가 달아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보면, 이동안 아이들은 홀로 남겨집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놀거나 홀로 놀거나 홀로 지내야 합니다. 어버이가 이제껏 누리던 다른 일에 아주 살짝 마음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아이들로서는 너무 오래 너무 길게 심심하거나 외롭거나 따분한 겨를을 보내야 하는 셈입니다.


- “언제였던가 엄마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이유는 잊었지만. 으음, 그러니까 ‘현실 같은 거, 나중에 크면 싫어도 알게 되니까, 지금은 몰라도 된다’고, ‘꿈을 꾸어도 된다’고, ‘어린아이는 그러면 되는 거’라고.” (29쪽)
- ‘난 역시 레이가 첫사랑이었다고 생각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야?’ (58쪽)
- ‘좋다 이거야. 훨씬 더 멋진 끈, 연인을 찾고야 말겠어.’ (67쪽)

 

 


  곁에 있대서 그저 좋을 수 있다고 느끼지 않아요. 곁에 있기에 더 따스히 바라보고, 곁에 있는 만큼 함께 누릴 일놀이를 살펴야 한다고 느껴요. 곁에 있기는 하지만 모두들 따로따로 제 일놀이를 달리 누리거나 즐긴다면, 막상 곁에 있다 하더라도 서로 남남인 노릇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란 함께 사랑하는 나날이어야 하고, 한솥밥을 먹는 삶이란 서로 복닥이거나 부대끼는 삶이어야지 싶어요.


  시원한 산들바람을 다 함께 누립니다. 차가운 된바람을 다 같이 견딥니다. 따스한 봄햇살을 다 함께 쬡니다. 추운 겨울햇살 한 조각 조금씩 나누어 쬡니다.


  곱게 흐드러지는 매화꽃을 올려다봅니다. 볕바른 고샅길에는 동백꽃 붉은 잎이 툭툭 떨어지기까지 합니다. 같은 마을인데 우리 집 마당가 동백꽃은 아직 필 낌새가 없으나, 조금 안쪽에 깃든 이웃집에는 벌써 함초롬히 벌어져 길바닥에 툭툭 떨어지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어쩜.


  그러고 보면, 우리 집 옆으로는 텅 비었습니다. 우리 집 옆도 예전에는 자그마한 살림집이 촘촘히 있었을 테지만, 이제 모두 비어 헐리고는 마늘밭으로 바뀌었어요. 겨우내 잘 자란 마늘을 봄에 캐면 감자밭도 되고 고구마밭도 되며 배추밭이나 무밭으로 달라지기도 할 테지요. 우리 이웃집은 서로서로 기대어 바람을 달래는 집으로 둘러싸였지만, 우리 집은 덩그러니 있어, 바람을 고스란히 쐬어야 합니다.


- “하야마?” “또 뭐야?” “그때 왜 키스했어? 아무래도 잊을 수가 없는걸. 그런 일은.” “……. 싫지 않으니까.” (53쪽)
- “아니, 정말, 날 위해 화내 준 게 기뻐서 그래. 폭력은 반대지만. 그래서 별로 슬프지 않아.” (103쪽)

 

 


  나는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흙땅을 누린 적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나고 자란 인천 골목동네에서 흙길을 달리거나 흙길에서 놀이를 하거나 흙길을 뒹군 일이 있었나 아리송합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안 덮인 개천가나 갯벌이나 못가나 늪가에서 얼크러져 논 일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으레 시멘트 바닥이거나 아스팔트 바닥이었어요. 놀이터 모래밭은 있었지만, 발이 푹푹 빠지니 공을 차거나 치며 놀기에는 걸맞지 않았어요. 그러나 놀이터 모래밭에서는 비오는 날마다 물골을 내고 집을 지으며 재미나게 놀았어요. 씨름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잡기놀이를 즐길 수 있었어요.


  우리 집 첫째 아이를 낳아 처음 이태를 살던 인천에서는, 내 어릴 적과 마찬가지로, 이 아이한테도 흙길이나 흙땅을 누리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이한테 흙땅이나 흙길이 얼마나 좋으며, 풀밭이나 풀섶이나 풀숲이 아이 삶을 아름다이 살찌울 수 있는 줄 깨닫지 못했어요. 아마, 나부터 어린 나날 이러한 흙삶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일 테고, 오래도록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길들여진 나머지, 나 스스로 흙내음을 잊었기 때문일 테지요.


  첫째 아이가 자라 세 살을 넘어서고 네 살이 될 무렵 둘째 아이가 태어납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곳은 멧골자락입니다.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와 달리 흙을 느끼고 나무와 멧새하고 얼크러질 만한 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난 멧골자락도 앞마당은 시멘트 바닥이었고, 집 옆으로 아스팔트길이 죽 펼쳐졌어요. 멧골자락이라지만 자동차 다니기 좋도록 깐 길이 훨씬 더 많아요.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옮긴 새 살림집 있는 시골마을은 멧자락하고 살짝 떨어졌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흙땅이요 들판이며 멧등성이입니다. 다만, 이곳 시골도 한국땅 어디를 가더라도 똑같은 시골이기에, 고샅길은 시멘트로 덮이고, 시골집 마당도 시멘트로 바닥을 합니다.


-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야마. 넌 장남이니까, 저, 정신 바짝 차려! 자, 눈썹 치켜올리고!” (77∼78쪽)
- “위자료를 5천만 엔이나 줬어.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니야!” “돈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깟 5천만 엔 던져주고 그 사람들 나머지 인생을 책임졌다 이거야?” “건방진 꼬마들이구나, 너희들.” “시끄러워, 빈대머리! 어디 사는지 정도는 알아둬야 할 거 아냐!” (112쪽)
- “우리 ‘아빠’가 궁금해? ‘없어’. 그저 그뿐이야.” “그럼, 너희 엄마는, 계속 독신이었던 거야?” “아니, 18살에 결혼했다 20살에 이혼했대.” (128쪽)

 

 


  나부터 어린 나날 어떠한 삶을 누리느냐에 따라 내 앞날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린 나날 누린 삶과 다르게 내 어른인 나날을 달리 누릴 수 있을 테지만, 내 어린 나날 받아들인 숱한 이야기가 마음과 몸에 깊이 아로새겨진다고 생각해요. 푸나무와 새와 벌레를 가까이한 아이와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플라스틱을 가까이한 아이는 같지 않아요. 씨앗을 심고 풀을 뽑으며 들바람을 마시던 아이와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는 같지 않아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와 어버이한테서 따순 눈길이나 손길을 못 받으며 자란 아이는 같지 않아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 자가용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스스로 자가용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골머리를 썩이거나 못마땅해 하거나 힘들어 한다면, 아이들이 시나브로 느낄 뿐입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 ‘우리 재산’으로 종이에 새겨진 집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 집’이 전세이건 월세이건 아니건 대수롭지 않아요. 함께 살아가는 이 집에서 맑게 웃고 기쁘게 얼크러질 수 있으면 좋습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집이지, 재산이 될 수 없는 집이에요. 즐겁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집이면 넉넉하지, 비싼 값을 한다거나 부동산 값어치가 있는 집이건 말건 아랑곳할 까닭이 없어요.


  어버이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또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결같다 할 만해요. 우리는 누구나 돈을 벌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즐겁게 살아가야 할 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삶을 누리는 일을 찾아서 즐기고, 이러한 일을 즐기며 내 먹고사는 살림을 알맞게 꾸릴 만큼 돈을 얻으면 됩니다. 돈이 남아돌아 은행에 넣어야 하지 않아요. 돈을 남겨 적금을 부어야 하지 않아요. 먼 앞날을 걱정하며 보험을 들 까닭이 없어요.


  다만, 가을에 씨앗을 갈무리할 줄 알면 됩니다. 가을에 씨앗을 남겨 이듬해에 새로 심도록 건사할 수 있으면 됩니다. 기쁘게 웃으며 가을걷이를 하고, 즐겁게 땀흘리며 새 씨앗을 심는 나날을 누리면 됩니다. 함께 먹고, 함께 나누며, 함께 어깨동무하는 한삶일 때에 신나며 재미납니다.

 


- “좋은 일 아닙니까. 이 두 사람이 친해짐으로써 3반의 문제가 많이 줄었다고 들었는데요. 모처럼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 거기에 굳이 스톱을 거는 것도 교사로서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160쪽)


  어머니라 한다면 아이들을 믿는 어머니일 때에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라 한다면 아이들을 믿는 아버지일 때에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사랑해야 비로소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해야 시나브로 아버지입니다.


  어머니가 되는 사람한테 바랄 대목이란 오직 하나입니다. 그저 어머니답게 아이를 반갑게 낳아 기쁘게 돌보고 사랑스레 보듬으면 됩니다. 아버지가 되는 사람한테 바랄 모습이란 오직 하나입니다. 그예 아버지답게 아이를 반갑게 맞이해 기쁘게 보살피고 사랑스레 쓰다듬으면 됩니다.


  아이는 사랑어린 밥을 먹으며 자랍니다. 아이는 비싼 밥을 먹으며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좋게 땀흘려 거둔 곡식과 열매로 지은 밥을 먹으며 자랍니다. 아이는 큰돈 벌어 영양 넘친다는 밥을 먹으며 자라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됩니다. 사랑을 먹으며 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새 짝꿍을 사귀고 새 아이들을 낳습니다. 차근차근 사랑을 대물림합니다. 오래오래 사랑을 이어갑니다. 두고두고 사랑이 꽃핍니다.

 


- “너의 평소 밝은 모습은, 전부 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171쪽)
- “난, 이래 봬도 너한테 엄청, 감사하고 있어. 그러니까, 저기, 그게, 그러니까, 난, 네가, 풀죽어 있거나, 그러면, 힘이 되어 주고 싶다, 고, 생각하고 있다, 이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울고 싶어지만 나한테 와.” (188∼190쪽)


  오바나 미호 님 만화책 《아이들의 장난감》(학산문화사,2004) 둘째 권을 읽습니다. 《아이들의 장난감》 둘째 권에서는 어린 나날부터 어버이 사랑을 못 받은 사내 아이하고 어린 나날부터 어버이 사랑을 받은 가시내 아이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하는 대목은 누가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못해요. 언뜻 보기에는 사랑을 못 받고 미움만 받으며 자란 아이로 바라볼 수 있지만, 이 아이 또한 어머니가 따숩게 믿고 살가이 아끼던 품에서 차근차근 컸어요. 좋은 사랑을 나날이 누리며 자라기 마련이에요. 스스로 못 느끼거나 스스로 못 알아챌 수 있지만,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사랑을 누리기에 씩씩하게 크고 튼튼하게 섭니다.

 


- “자기 아이를 싫어하는 부모는 없잖아, 라고 내가 생각하는 건, 네 엄마놀이 때문인데, 정작 넌 네 엄마를 믿지 못하는 거야?” “아,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고민하지 마. 사사건건. 애초에, 너희 엄마가 널 싫어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부모한테서 미움이나 받는 아이가 너처럼 제대로 자랄 수 있겠냐?” “그렇게 생각해?” “응. 난 그렇게 생각해. 게다가, 뭐야? ‘즐거운 생활이 엉망이 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엉망이 되면 다시 잘 고치면 되잖아.” (185쪽)
- ‘극히 평범한 모녀 사이에서는 ‘넌 주워 온 아이야’라는 말을 장난 삼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집에서는 그것이 사실이기에 전혀 우습지가 않다. 나나 딸이나 그 일 자체가 불행이라고 생각한 적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행복한 첫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결혼 3년째에 접어든 20살 때, 나는 아이를 가지기 어려운 몸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혼의 원인은 다른 것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나는 그 일에 가장 큰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 (257쪽)


  어른이 되기까지 볼썽사나운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사랑을 받은 나날을 되새기지 못하거나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구나 싶어요. 저마다 가슴속에서 피어날 고운 사랑꽃을 느끼지 못하는 나머지, 스스로 환하게 빛날 사랑열매를 맺지 못하니, 자꾸 비뚤어지거나 엇나가는구나 싶어요.


  모든 사람은 가슴에 사랑씨앗 하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가슴에 깃든 사랑씨앗을 바로 스스로 밭에 심고 스스로 물을 주며 스스로 햇살을 쪼이고 스스로 바람을 쏘이며 스스로 북을 돋우며 키웁니다. 다른 누가 내 가슴속 사랑씨앗을 심어 주거나 돌봐 주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이 사랑씨앗을 심어 돌볼 뿐입니다.


  사랑씨앗 예쁘게 갈무리해서 심을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내 이웃이랑 동무한테 따숩게 손을 내밉니다. 사랑씨앗 알차게 북돋우며 돌볼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내 살붙이하고 맑은 꿈과 믿음을 이룹니다. 사랑씨앗 흐드러지게 열매 맺는 길을 걷는 사람일 때에, 온누리 따사롭게 비추는 무지개 햇살을 나눕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사랑 담은 눈길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사랑 담은 밥 한 그릇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저희랑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스스로 가슴속 사랑씨앗 어여삐 보살피며 좋은 삶을 일구며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4345.3.19.달.ㅎㄲㅅㄱ)


― 아이들의 장난감 2 (오바나 미호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4.10.25./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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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3-19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니 만화책에 푹 빠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네요. 만화 본 지 오래됐어요.ㅋ

아이한테 흙땅이나 흙길이 좋은 것 : 그런데 흙땅이 하나씩 시멘트로 덮혀 가고 있어요. 동네 농구장도 먼지가 난다며 시멘트로 덮더라고요. 어른한테도 흙이 좋은데요...안타까운 일이에요.

파란놀 2012-03-19 18:27   좋아요 0 | URL
음,
좋은 만화에
사랑스럽게 빠지셔요.

아무 만화는... 그냥.. 그저 그렇거든요.
참말 아름다운 만화에 빠지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저 스스로 오래도록 즐기고 싶은 만화만
'별 다섯'을 준답니다 ^^;;;
줄거리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또는 그림을 잘 그린다 하더라도,
별 다섯은 아무 만화에도 주지 못해요.

아무튼~
도시이든 시골이든
흙자리가 잘 살아남기를 빌어요...
 

묶음표 한자말 167 : 노염(老炎)


아직은 끈끈한 더위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 노염(老炎)이라고 했지만 아직 더위는 늙지 않았다
《호원숙-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2006) 41쪽

 

 “우리의 인내심(忍耐心)을 시험(試驗)하는 것 같다” 같은 글월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조금 더 따사롭고 싱그러이 생각을 기울인다면 이와는 좀 다르게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 끈끈한 더위를 느끼는 나라면, 이 글을 “내 참을성을 건드리는 듯하다”나 “내가 얼마나 잘 참는지 알아보려 하는 듯하다”나 “내 참을성을 자꾸 건드린다”쯤으로 적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적기보다는 “아직은 끈끈한 더위가 참기 힘들다”쯤으로 적으면 한결 단출하리라 생각해요.


  ‘노염(老炎)’은 “늦더위”를 뜻하는 한자말이라 합니다. ‘노염’이라고 한글로만 적었다면, 아마 저는 못 알아보았겠구나 싶은데, 뒤에 한자를 밝혔어도 쉬 알아보지 못합니다. 국어사전을 뒤지고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읽다 문득 생각합니다. 설마, ‘늦더위’라는 한국말을 한자로 옮겨 ‘老炎’으로 적었나 하고.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늦더위’뿐 아니라 ‘늦여름’이나 ‘늦장가’나 ‘늦바람’처럼 이야기합니다. 으레 쓰는 앞가지 ‘늦-’이에요. ‘더위’ 또한 흔히 쉽게 쓰는 낱말이에요. ‘노염’을 풀이해 ‘늦더위’가 아니라, ‘늦더위’를 중국사람 중국글로 ‘老炎’이라 적는다 해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노염(老炎)이라고 했지만
→ 늦더위라고 했지만
→ 느즈막히 찾아온 더위라고 했지만
→ 더위 막바지라고 했지만
→ 막바지에 이른 더위라고 했지만
 …

 

  사람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 늙은이로 죽습니다. 일찍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태어나 자라서 늙고 죽어요. 이러한 삶 모습을 빗대어 ‘늙은 더위’와 같다 해서 ‘늦더위’처럼 말할 수 있다 할 텐데, 이보다는 ‘이르다-늦다’라는 얼거리로 ‘이른더위-늦더위’처럼 쓴다고 해야 올바르지 싶어요. 이 글월에서는 이제 더위가 물러서고 가을이 찾아올 법한데, 늦게까지 떠나지 않으니, 사람 나이와 빗대어 무언가 이야기하려 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습니다. 글로 빚는 이야기라 한다면, 더 마음을 써서 더 아름다이 영글도록 할 수 있잖아요. “노염(老炎)이라고 했지만 아직 더위는 늙지 않았다”라 글을 쓰기보다는 “늙은더위라고 했지만 아직 더위는 늙지 않았다”처럼 쓰면 차라리 낫지 않으랴 싶기도 한데, 이도 저도 꾸미지 말고 “늦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는다”라고만 적으면 될 텐데 싶어요.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아직은 끈끈한 더위가 내가 얼마나 잘 참는지 살피려는 듯하다. 늦더위라고 했지만 아직 더위는 기운을 펄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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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찾아온 멧새
[고흥살이 9] 흙을 밟고 누리는 삶 (12.03-18)

 


  엊저녁 빨래한 옷가지를 아침에 마당에 내다 넙니다. 어제는 맑았으나 오늘은 비가 뿌릴는지 모른다고 생각해, 비가 듣는다면 그때까지라도 밖에서 말라 주기를 바랍니다. 처마 밑에 둔 빨래대에 하나하나 널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이때 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봅니다. 멧새 한 마리, 마당가 동백나무 앞에서 무언가 콕콕 쫍니다. 어떤 새일까. 무얼 쫄까. 궁금하니까 살며시 다가서고 싶지만, 궁금하다며 한두 걸음 멧새 쪽으로 다가선다면 금세 알아채고는 포르르 날아갈 테지요.


  마루문을 연 채로 둡니다. 발소리를 죽여 방으로 들어갑니다. 고개만 빼꼼 내놓은 채 바라봅니다. 몸을 낮춰 대청마루에 엎드린 채 멧새가 무얼 하는지 찬찬히 살펴봅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동백꽃 송이 하나 떨구어 쪼나. 어떤 열매 하나를 쪼나.


  열매 하나를 놓고 한참 쪼더니 마당가 꽃밭으로 올라서고, 돌담으로 올라선 다음,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 열매를 다시 쫍니다. 멧새는 산초나무 가느다란 가지에 가뿐하게 올라앉고, 이리저리 가볍게 통통 튀듯 마당을 걷습니다. 봄이라 하더라도 새벽이나 이른아침에는 좀 쌀쌀합니다. 멧자락이나 들판에서 살아가는 새들은 깃털을 잔뜩 부풀려 몸을 따스하게 지키겠지요. 겉보기로는 좀 토실해 보이는 새라 하더라도 막상 이 새를 잡아 손에 쥐고 보면 몸피가 아주 작아요.


  멧새가 이리 뛰고 저리 걷는 마당은 시멘트로 발라졌습니다. 이 시멘트 마당은 아이들이 뛰노는 터가 되기도 하고, 돗자리 깔아 해바라기하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시멘트로 발리기 앞서는 그저 흙땅이었습니다. 시멘트가 없던 옛날에는 아주 마땅히 흙마당으로 두었을 테고, 그무렵에는 집을 흙집으로 지었을 테며, 어느 길이든 흙길이었어요. 흙길은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보다 덜 단단하다 할 텐데, 흙길을 걷고 흙집에서 살던 무렵에는 크고작은 자동차가 오갈 일이 없으니 흙길로 넉넉합니다. 사람도 짐승도 수레도 모두 흙길로 즐거이 다녔어요.


  흙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넘어져도 무릎이 깨지지 않습니다. 흙마당에서는 아이들이 기거나 뒹굴어도 흙먼지를 툭툭 털면 그만입니다. 흙마당에서는 이런저런 풀도 돋고 이런저런 벌레도 깁니다.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온 멧새는 이곳으로 내려앉아 열매를 쪼지 않았더라면 시멘트바닥에 제 발바닥을 댈 일이 없겠지요. 시골에도 전봇대는 많아, 전깃줄이나 시멘트 전봇대에 내려앉기도 할 테지만, 멧새나 들새는 으레 나뭇가지에 앉고 풀섶에 앉습니다. 나뭇가지로 엮은 둥지에서 자고, 나뭇잎 깔린 흙땅에서 몸을 쉽니다.


  모든 목숨은 햇살을 머금고 바람이랑 물을 마시는 흙에서 비롯한다지요. 흙에서 비롯한 목숨은 흙으로 돌아간다지요. 멧새도 들짐승도 사람도 모두 흙에서 비롯하고 흙에서 먹이를 얻으며 흙에서 쉴 터를 누려요. 씨앗은 흙이 품어야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요. 시멘트나 아스팔트 덩이는 씨앗을 품지 않고 뿌리내릴 틈을 내주지 않아요.


  나날이 사람들은 길바닥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고는 시멘트와 쇠붙이와 플라스틱을 써서 집을 짓습니다. 흙을 멀리하거나 잊으며 집안에 흙을 들이지 않을 뿐더러 흙을 손으로 만지거나 살갗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밥도 옷도 집도, 물도 바람도 햇살도, 도시에서는 흙하고 동떨어집니다. 자그마한 연장이나 책걸상 둘레 어디에도 흙먼지가 묻는 일이 없습니다.


  한참 마당을 내다 보다가 문을 닫습니다. 마루문을 닫아도 멧새는 그 자리에서 놉니다. 이제 아침빨래를 하며 새 하루를 열 즈음입니다. 오늘은 바람이 얼마나 불는지 생각하고, 오늘은 식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누리면 좋을는지 헤아립니다. 다섯 살을 맞이한 첫째 아이는 유치원에 가지 않습니다.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 동생하고 함께 놀며 지냅니다. 해가 높이 걸리고 햇살이 맑게 드리우는 한낮, 마을길을 거닐며 이웃집 돌담에 흐드러지는 매화나무 흰 꽃송이를 올려다봅니다. 막 터진 봉우리가 있고 곧 터지려는 봉우리가 있습니다. 살짝 쓰다듬습니다. 코를 대며 냄새를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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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19 05:17   좋아요 0 | URL
파란대문, 그 앞에는 사름벼리가 들고 놀던 파란공, 옆에는 동백나무...집 마당에 동백나무라니, 저 어릴 때엔 도시에 살더라도 집 마당에 꽃나무 있는 것이 예사였는데 이제는 이렇게 드문 일이 되었네요.
이 작은 땅덩이 나라에서도 조금 위쪽 지방과 아래 쪽 지방이 이렇게 다르군요 꽃 핀걸 보니...

파란놀 2012-03-19 08:56   좋아요 0 | URL
이웃집을 보면
꽃이 훨씬 많이
아주 예쁘게 피었어요 ㅠ.ㅜ

우리 집은 볕이 적게 드는
좀 추운 데인가 보더라구요. 이궁~

2012-03-19 0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3-19 08:56   좋아요 0 | URL
다 사람 그림이에요~
아주 멋진 그림이랍니다~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늘바람 2012-03-19 20:19   좋아요 0 | URL
서울에는 꽃집에나 가야 꽃을 보는데
참 이쁘네요 멧새도 이쁘구요

파란놀 2012-03-20 06:12   좋아요 0 | URL
서울에서도 골목골목 가만히 살펴보면
예쁜 들꽃이 곳곳에 있으리라 믿어요~

카스피 2012-03-20 22:50   좋아요 0 | URL
사진이 선명하지 않아서 그런데 멧새라고 한다면 참새와 비슷한 종류의 새인가요? 요즘 서울은 참새보기도 참 힘들어요ㅜ.ㅜ
 


 산들보라 빨래집게 와장창

 


 날마다 몇 차례씩 뒤집어 널브러뜨리는 빨래집게. 빨래집게 담은 통을 뒤집는 일이 뭐 그리 재미난지 날마다 또 뒤엎고 다시 뒤엎으며 새로 뒤엎는다. 마당에 빨래를 널 때마다 다시 주워담아야 하고, 저녁에 발에 밟히면 발바닥이 아프니 또 주워담아야 한다. 너로서는 빨래집게가 궁금하고 재미있느냐. 앞으로 무럭무럭 키 커서 네가 마당 빨래줄에 빨래를 콕콕 집어 주렴. (4345.3.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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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우산 접는 어린이

 


 한낮에 우산놀이를 하는 어린이는 우산을 혼자 접고 싶습니다. 이래저래 용을 쓰지만 잘 안 되는데, 한참 용을 쓴 끝에 드디어 우산접이를 해냅니다. 햇살은 마당을 따사롭게 내리쬐고, 우산놀이를 하는 아이는 우산을 빙빙 돌리다가는 우산을 폈다가는 살짝 접었다가는, 우산을 쓰고 걸상에 앉았다가는, 우산을 들고 콩콩콩 달음박질을 합니다. (4345.3.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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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3-19 17:26   좋아요 0 | URL
어릴 적 우산 몇 개 이어서 펴 놓고 그 안에 들어가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안에 들어가면 아늑했어요. 참 좋았어요. ㅋ 아이에겐 우산도 재밌는 장난감이겠죠.

파란놀 2012-03-20 06:11   좋아요 0 | URL
줄줄이 우산이라.... 음, 저도 그 비슷하게 놀지 않았을까 싶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