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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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여든두 해를 살았기에
 [책읽기 삶읽기 90] 커트 보네커트,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2007)

 


 커트 보네커트라는 분이 쓴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2007)을 읽었습니다. 서울 경복궁 옆에 있는 ‘사진위주 류가헌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책잔치(포토북페어)에 사진책 이야기를 들려주러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디긴 길에 읽었습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서울까지는 참 멉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 경복궁 곁 사진전시관에서 시골마을 두 아이 아버지를 불러 줍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날고 기는 사진쟁이와 사진비평꾼이 꽤 있을 텐데, 애써 머나먼 곳에 있는 저를 불러 줍니다.

 

 내가 사진책잔치 강사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가는 나부터 스스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나는 나한테서 사진책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는 나한테서 집안일을 꾸리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펼칩니다. 잘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못나서 이야기를 못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저마다 살아가는 결에 따라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곧,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착한 결이 살아숨쉬는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러니까, 얄궂게 겉치레에 얽매이는 사람이라면 얄궂게 겉치레에 얽매이는 결이 넘치는 이야기를 흩뿌립니다.

 

 하룻밤 서울에서 자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느라 고속버스와 고속기차에서 열 시간 남짓 시달렸는데, 시골집으로 돌아와 며칠이 지나도록 몸이 풀리지 않습니다. 내가 내 몸을 한결 따사로이 돌보지 못하니까 이렇게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그래, 나부터 내 삶을 더 사랑해야 하고, 나 스스로 내 삶을 알뜰히 아껴야 합니다. 산문책 《나라 없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얘기, 이른바 커트 보네커트라는 사람이 미국땅에서 여든두 해를 살아오며 스스로 부딪히거나 부대끼거나 복닥인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줘요.


.. 내가 보기에 진화는 엉터리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우리는 은하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이 친절한 행성을 교통수단이라는 야단법석으로 한 세기 만에 완전히 망가뜨렸다 … 당신의 차에 기름을 조금만 넣으면 시속 백 마일로 달리면서 이웃집 개를 깔아뭉갠 다음, 대기권을 찢어발길 수 있다 … 한때 나는 코카인보다 더 강력한 물질에 중독된 적이 있다.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을 땄을 때였다. 다들 비켜라, 보네거트가 간다! … 내가 생각하는 진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중독 사실을 부인하는 중증의 화석연료 중독자다 ..  (19, 49, 50쪽)


 1922년에 태어나 2007년에 숨을 거두었다는 커트 보네커트 님입니다. 《나라 없는 사람》에서는 당신이 태어나 자란 나라가 미국이라 하지만,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넋없고 얼없으며 사랑없는가를 차츰 깨달았다고 밝힙니다. 커트 보네커트 님으로서는 스물여덟 나이에 이러한 글을 써서 이만 한 책을 내지는 못하겠지요. 서른여덟 나이에도, 마흔여덟 나이에도, 예순여덟이나 일흔여덟 나이에도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책을 쓸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꼭 여든둘이라는 나이에 이르러 이 책 하나 빚을 수 있었구나 싶어요.

 

 유럽나라끼리 벌인 싸움판에서 포로로 붙들려 드레스덴이라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이 일어나기 앞서 숨을 거둔 커트 보네커트 님이라면 《나라 없는 사람》을 쓸 수 없습니다. 베트남전쟁을 겪었을지라도 미국이 이라크로 쳐들어가는 일을 바라볼 수 없었다면 《나라 없는 사람》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좋은 일 궂은 일 기쁜 일 슬픈 일 아름다운 일 고단한 일 두루 차근차근 맛보며 여든두 해를 꿋꿋하게 걸었기에 《나라 없는 사람》을 쓸 수 있어요. 아름답게 살아가는 한 사람 발자국을 곰곰이 돌아볼 줄 안다면 《나라 없는 사람》을 내놓을 수 있어요.


.. 아우슈비츠의 참상도 알지만, 대학살이란 아주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1945년 2월 13일 드레스덴에서는 약 십삼만오천 명의 사람이 영국군의 폭격으로 단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려는 군사적 실험이었다 … 베트남전쟁이 나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우리의 지도력과 동기가 아주 추잡하고 본질적으로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우리는 역사상 최악의 인종인 나치에게 저질렀던 우리 자신의 추악한 행동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 베트남전쟁은 백만장자들을 억만장자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전쟁은 억만장자들을 조만장자로 만들고 있다 ..  (26, 28, 70쪽)


 글은 누구나 씁니다. 사진은 누구나 찍습니다. 그림은 누구나 그립니다. 손전화로 전화를 걸듯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자가용 운전대를 붙잡듯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셈틀을 켜서 인터넷을 누비듯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손전화를 다루지 않을 때에 글을 씁니다. 자가용을 버릴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셈틀하고 등질 때에 그림을 그립니다.

 

 사랑을 하면 돈을 잊습니다. 살림을 꾸리면 정치를 잊습니다. 삶을 일구면 예술을 잊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돈벌이에 얽매입니다. 내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내 아이들을 자꾸자꾸 학원으로 몰아세우면서 학원삯을 벌려고 아둥바둥합니다.

 

 사람들은 살림을 꾸리지 않기 때문에 자꾸 정치에 눈을 둡니다. 내 살림살이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자꾸자꾸 정치 이야기를 읽고 술을 마시며 덧없는 말다툼을 벌입니다.

 

 사람들은 삶을 일구지 않기 때문에 예술을 좇습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일구며 내 밥·옷·집을 마련하는 사람은 구태여 예술을 살피지 않아요. 내 밥·옷·집을 돈으로 장만하기 때문에 자꾸자꾸 예술이니 문화이니 문학이니 하고 떠벌입니다.


..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전세계에 나눠 준 선물(블루스 음악)은 너무나 소중하여, 오늘날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 그러나 이제는 안다. 우리의 한심한 미국이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나라로 변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권력은 우리를 타락시키고, 절대 권력은 우리를 절대적으로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  (32, 71, 74쪽)


 커트 보네커트 님은 ‘나라 없는 사람’이 맞습니다. 미국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깃든 사람들한테는 조금도 ‘나라답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나한테 한국은 나라답지 않습니다. 곧, 나 또한 ‘나라 없는 사람’입니다. 나로서는 ‘나라답지 않은 나라’에 깃들며 이 나라 사람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옆지기하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요, 나는 두 아이하고 시골살이를 하는 사람이며, 나는 내 삶길을 시골길에서 찾는 사람입니다.


.. 인생에서 끊임없이 빌리고 빌려주는 것, 다시 말해 상호 호혜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 우리 아이들은 과학기술을 물려받았지만 그 부산물들은 전시에나 평화시에나 모든 종류의 생물이 먹고 마시고 숨쉬며 살아갈 우리의 지구를 빠르게 파괴하고 있다 ..  (43, 73쪽)


 미국은 참 바보 멍텅구리입니다. 한국 또한 그지없이 얼간이 똥싸개입니다. 커트 보네커트 님은 여든둘 나이에 남김없이 까발리며 당신 삶길을 밝힙니다. 그러면, 이 나라 한국에서는 누가 이렇게 ‘나라 없는 사람’이요 하고 외칠 만할까요. 오늘날 한국땅에서 글쟁이라 내세우는 이 가운데 누가 스스로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밝히는가요. 이 나라 한국에서 누가 자가용이 얼마나 쓰잘데기없는 핵폭탄과 같은가 하고 깨닫는가요.

 

 아주 무시무시하고 못된 자가용인 줄 깨달아 아쉬움없이 헤어지는 이는 얼마나 되는가요. 어린이문학을 하던 권정생 할아버지 말고, 자가용 때문에 이라크파병을 멈출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가용을 몰기 때문에 끔찍한 전쟁과 입시지옥과 못난 정치가 판을 칠 뿐 아니라, 아파트이니 경제개발이니 4대강사업이니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잇따를밖에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요.

 

 자가용을 훌훌 버려야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사라집니다. 자가용을 기쁘게 떠나 보내야 4대강사업이 없어집니다. 자가용을 홀가분히 잊어야 아파트 투기 따위가 스러집니다.

 

 내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커트 보네커트 님은 여든둘이라는 나이에 깊이 깨달아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만, 이 나라 사람들은 여든둘이라는 나이까지 살아도 못 깨달을 듯해 참 슬픕니다. (4344.12.10.흙.ㅎㄲㅅㄱ)


―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네커트 글,김한영 옮김,문학동네 펴냄,2007.8.2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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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1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얼간이 똥싸개!^^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다른 의견들도 많을거라 생각해요. 생계수단이 되어야 더 치열하게 매진할 수 있다던가 하는.
저는 이 책을 아직 안 읽었지만 인용해주신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 끄덕거리게 되네요.

파란놀 2011-12-11 19:1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생계수단일 때에는 더 치열하게 문학이나 예술에 매진할 테지만,
가난한 삶이더라도 생계수단이나 돈벌이를 잊고
아름다운 길을 찾으려 할 때에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문학이나 예술이 꽃피운다고 느껴요.

죽은 다음에 어마어마하게 팔리면서 사랑받는
적잖은 문학이나 예술이
이러한 좋은 보기가 되는구나 싶어요... 에고... ㅠ.ㅜ
 

'우리 말 글쓰기' 묶음 셋째 권으로 내놓을 <뿌리 깊은 글쓰기> 교정을 본다.

 오늘 저녁까지 마쳐야 한다.

 눈이 핑핑 돈다.

 이제 2/3 마쳤다.

 

 

 

 

 

 

 

 

 

 

 

 

 

 

 앞선 두 가지 '우리 말 글쓰기'는

 <생각하는 글쓰기>랑 <사랑하는 글쓰기>.

 

 <생각하는 글쓰기>는 "살려쓰는 우리 말"이고,

 <사랑하는 글쓰기>는 "잘못 쓰는 겹말"이다.

 <뿌리 깊은 글쓰기>는 "엉터리로 쓰는 영어"를 다룬다.

 

 부디 저녁밥 먹을 때까지

 일을 마무리짓고 한숨을 돌릴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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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0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투의 말을 쓰는 것은 어떤가요? 이를 테면 ~에 의하면, ~에 따르면 과 같은 것이요. 한겨레신문을 보니깐 그런 것 쓰지 말라고 최인호 작가(인 듯)가 글을 기고했던대요.
피동형도 되도록 쓰지 말라는 것도 어디선가 읽었어요.

아, 어려운 글쓰기!!!

파란놀 2011-12-10 07:29   좋아요 0 | URL
번역투는 번역투이니까
아주 마땅히
우리 말투가 될 수 없어요.

한국사람은 한국 말투를 제대로 살피면서
쓸 수 있어야 옳답니다~

피동형도 번역 말투 가운데 하나예요.

순오기 2011-12-10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말 바로쓰기, 정말 어려워요.ㅜㅜ
방송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기를 빌겠습니다.`
라고 하는 말이 거슬려서, 그때마다 지적하는 나를 보고 우리 애들이 질려해요.ㅋㅋ


파란놀 2011-12-10 08:26   좋아요 0 | URL
텔레비전을 꺼야지요 ㅋㅋㅋ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말 가운데 99.9는 엉터리일 수밖에 없거든요
아이들은 텔레비전뿐 아니라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어버이 때문에
사랑스러운 말을 배우지 못해요 ㅠ.ㅜ
 


 책으로 보는 눈 172 : 흙일꾼하고 읽을 책

 


 “나 꼭 (농약) 공중살포를 중지시킬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 벼를 위해, 흙을 위해, 이것만은 꼭.” 하는 이야기가 일본만화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6권 42쪽에 실립니다. 1980년대 끝무렵 일본술 빚는 시골마을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 《나츠코의 술》입니다만, 오늘날 일본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한데, 여러모로 듣기로는 일본은 한때 ‘헬리콥터로 시골마을 들판에 농약을 뿌리던 일’을 끝없이 밀어붙이다가, 이제는 함부로 섣불리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람이 타지 않는 헬리콥터로 안전(?)하게 농약을 뿌리는 일’을 ‘친환경’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온나라 곳곳에서 펼친다고 할 뿐 아니라, ‘항공방제’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더 많이 더 자주 합니다.

 

 “(일본에서 1980년대 끝무렵에) 쌀의 연간 생산량 3조 6000억 엔, 그리고 농기계 값이 8000억, 농약값 1800억, 비료 등 그 외 비용을 전부 합치면 1조 엔 이상. 알겠냐 나츠코? 쌀은 생산량의 1/4이 기업의 먹잇감이 되는 거야.” 하는 이야기를 일본만화책으로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요. 흙일꾼이 풀약을 쳐야 하고, 농협에서 항공방제를 해 주며, 비료와 볍씨를 사서 쓰도록 하는 얼거리에서는, 정작 흙을 일구는 시골 할매랑 할배는 돈푼 제대로 만지기 어렵습니다. 농협은 해마다 살림을 키우지만, 시골 흙일꾼은 해마다 살림을 줄입니다.

 

 여태 모르고 살다가 항공방제를 알아봅니다. 우리 집 네 식구는 시골마을 한복판에서 살림을 꾸리기에 항공방제를 더 찬찬히 알아봅니다. 아직 논밭은 없고 살림집만 있는 시골살이인데, 앞으로 우리 몫 논밭을 마련해서 어린 두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함께 흙을 일군다 할 때에, 이 흙에 농협 헬리콥터가 ‘사람마저 안 탄 채’ 마구 날아와 농약을 뿌린다 하면, 우리는 어떻게 쌀을 먹고 푸성귀를 먹으며 열매를 먹어야 하나 걱정합니다. 벌써 여러 해 앞서부터 온나라에서 거두는 밤이나 열매는 항공방제를 해서 벌레가 안 먹도록 했답니다. 튼튼하고 좋은 밤을 먹는 일보다, 벌레 안 먹어 잘 팔리는 밤을 거두어 ‘농가소득증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농협과 관청 행정정책으로 항공방제를 한답니다.

 

 우리 마을 어르신들하고 《나츠코의 술》이라는 만화책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마을 어르신들 아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기에 책을 읽지 못하고,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흙을 일구느라 바빠 책을 읽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일흔이나 여든 나이에 글씨가 깨알같은 만화책을 읽으실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돋보기를 쓴들 보일까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헤아리며 푸나무와 흙과 냇물을 떠올린다면, 이 만화책을 큼지막하게 복사해서 돌려읽기를 하고 싶어요.

 

 적어도, 사람들이 아무리 바보스럽다 하더라도, 한 가지는 다들 알아요. ‘저농약 곡식’이 ‘농약으로 키운 곡식’보다 비쌉니다. ‘친환경 유기농 곡식’이 ‘저농약 곡식’보다 비쌉니다. 비싸다는 소리란, 제대로 땀을 들여 옳게 지었다는 뜻이요, 사람들 몸에 좋다는 뜻입니다. 값싼 곡식을 먹는 사람들은 주머니를 아끼는 삶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삶 모두를 갉아먹는 바보짓을 일삼는다는 뜻입니다. 옳은 목소리 외치려면 옳은 값 들여 옳은 밥 먹으며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4344.1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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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09 09:44   좋아요 0 | URL
저는 몰랐네요,
하늘에서 그렇게 농약을 뿌리는군요. 하긴, 다들 유기농 채소를 찾지만
거기에 벌레로 구멍 뚫려있다면 질색을 하니 참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죠.
벌레 구멍이 있다는 것은, 벌레가 살만한 환경이라는건데도 질색을 하니 말이예요.

몇 년 후에는 된장님의 농사 이야기도 듣게 되는게 아닐까 기대합니다. ^^

파란놀 2011-12-09 11:05   좋아요 0 | URL
비닐집을 치면 하늘에서 뿌리는 농약을 안 맞을 수 있지만,
햇볕을 바라보고 빗물을 마시며 자라지는 못해요.
이래저래
한국은 문화며 농사며 무엇이든
다 한참 뒤처지기만 해요...
 
인디언붓꽃의 전설 - 물구나무 026 파랑새 그림책 26
토미 드 파올라 지음, 김경태 옮김 / 물구나무(파랑새어린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돈버는 기계 되라고 낳는 아이가 아닙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2] 토미 드 파올라, 《인디언붓꽃의 전설》(파랑새,2004)

 


 인천에서 지내는 우리 형이 전라남도 고흥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합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형 마중을 갑니다. 가게에 들러 몇 가지를 사고 택시를 부르는 길목, 길가에 붙은 걸개천 하나를 봅니다. 어느 마을 아무개가 5급 공무원 되는 시험에 붙었다든가 5급 공무원이 되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지난달 우리 마을 할머님도 걸개천을 읍내에 하나 걸었습니다. 당신 아들이 ㅋ대학교 교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지난달 옆지기 어버이 찾아오셔서 시골집 고치는 일을 도우실 때에, 다 함께 나로도를 한번 찾아간 적 있는데, 이때 나로도 바닷마을 면내 한켠에 서울 ㄷ대학교 수시합격했다는 아이들 이야기가 걸개천으로 붙은 모습을 보았어요. 면내 우체국에 마실할 때면 면내에 있는 ㄷ고등학교 나들문 위에 대기업 붙은 아이들 이름 굵직하게 적은 걸개천이 여러 달째 나부끼는 모습을 봅니다.

 

 젊은이부터 푸름이와 어린이 모두 시골마을을 떠납니다. 젊은이부터 푸름이와 어린이 모두 시골마을을 떠나는데, 이렇게 떠나는 일을 손뼉치며 반기듯 걸개천을 내다 겁니다. 걸개천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고향마을로 돌아오는 일이 없는 듯합니다. 하나같이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크고작은 이름을 얻어 여러모로 돈벌이 잘 하면서 지냅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군인으로 지내는 어느 분이 중령인가 대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걸개천에 담기도 합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모두 기쁜 이야기라 여기며 걸개천에 담는구나 싶습니다. 기쁘게 여기지 않는다면 애써 걸개천을 걸지 않겠지요. 대학교에 붙고, 교수님이 되고, 공무원시험에 붙고, 대기업 일꾼으로 뽑히고, 계급 높은 군인이 되고 …….


.. 작은다람쥐에게도 남다른 재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죽 조각과 나무토막으로 장난감 전사들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언덕에서 따 온 산딸기로 즙을 내어 매끄러운 돌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작은다람쥐에게 특별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지혜로운 주술사는 알고 있었습니다 ..  (7쪽)


 영화 〈로빙화〉를 보면 ‘도시에서 벌이는 그림대회’에서 상을 받은 아이를 기린다면서 학교 아이들이며 마을 어른들이며 길에 줄줄이 늘어서서 손뼉을 치도록 합니다. 영화 끝자락에 ‘죽은 고아명 그림으로 세계 어린이 그림잔치’에서 큰상을 받은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마을사람들은 줄줄이 불려나옵니다.

 

 사람들을 불러내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기릴 만한 일을 기리거든요. 다만, 기쁨을 기리고 즐거움을 나누는 잔치마당을 어떻게 벌일 때에 참말 신나며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은 모르는구나 싶어요. 무엇을 어떻게 왜 기리며 서로 얼싸안을 때에 웃음꽃과 눈물열매를 어깨동무할 수 있는가는 하나도 돌아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 여인은 새하얀 사슴 가죽을 활짝 펼쳐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얀 사슴 가죽을 찾아보세요. 그걸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저녁 하늘의 빛깔을 그대로 그림에 담을 수 있을 거예요.” ..  (11쪽)


 누구한테나 기릴 만한 솜씨가 있습니다. 아니, 솜씨라기보다 삶을 일구는 빛, 곧 삶빛이 있습니다. 누구나 제 삶을 북돋우는 빛줄기를 흩뿌리면서 오늘 하루를 누립니다. 삶빛은 삶꽃이 되어 고운 내음을 나눕니다. 삶빛은 삶씨가 되어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퍼뜨립니다.

 

 백날잔치를 하고 돌잔치를 합니다. 예순잔치를 하고 혼인잔치를 합니다. 서로 기쁘게 잔치를 엽니다. 자랑이 아닌 잔치를 합니다. 뽐내기가 아닌 어깨동무를 합니다. 우쭐대기가 아닌 두레를 합니다.

 

 온누리에는 높고낮음이 없습니다. 높은 자리나 낮은 자리란 따로 없습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이름값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걸개천 내걸며 무언가를 기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걸개천으로 드날리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두 다리로 우뚝 서는 이 땅에 예쁘게 아로새기면서 새로운 사랑씨가 뿌리내리도록 이끄는 땀방울을 흘릴 뿐입니다.

 

 사장이 되건 돈을 많이 벌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인 줄 깨닫고 어른이 되면서 어버이 노릇을 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린이답게 웃음꽃 날릴 때에 예쁩니다. 푸름이답게 웃음바다 이룰 때에 예쁩니다. 젊은이답게 웃음열매 맺을 때에 예쁩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가 커다란 흰종이에 크레파스로 슥슥 그림놀이를 하다가 지난달 처음으로 ‘어른이 알아볼 만한’ 얼굴과 눈코입 있는 사람을 넉 점 그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놀랐어요. 네 살 아이는 저랑 동생이랑 어머니랑 아버지를 그렸어요. 나는 그림을 척 보며 누구를 그렸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아이는 이제 얼굴에 팔이나 다리까지 그려요. 아이는 날마다 새로운 말을 익히고, 아이 팔다리는 날마다 더 튼튼해지며, 나날이 키나 몸뚱이가 눈에 뜨이게 자라요. 아직 기기만 하는 갓난쟁이 둘째 또한 날마다 눈부시게 자랍니다. 말귀는 마땅히 알아듣고 울음소리 우렁차며 웃니 아랫니 천천히 돋습니다.


.. 작은다람쥐는 저녁마다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노을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비한 꿈속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광경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26쪽)


 토미 드 파올라 님 그림책 《인디언붓꽃의 전설》(파랑새,2004)을 읽습니다. 그림책 《인디언붓꽃의 전설》은 인디언붓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이 왜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북중미에서 으르렁거리는 커다란 나라가 서기 앞서 오래오래 그곳에서 자연대로 살아온 사람들 터전과 꿈과 사랑이 어떠한가를 살며시 보여줍니다.

 

 인디언붓꽃은 있습니다만, 양키붓꽃은 없습니다. 게르만붓꽃이나 바이킹붓꽃 또한 없어요. 어쩌면, 한겨레붓꽃이 있을까요. 일본붓꽃이나 필리핀붓꽃은 있을까요.

 

 그림책 첫머리에는 ‘인디언붓꽃’ 옛이야기 남긴 ‘작은다람쥐’가 어릴 적 어떠했는가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머리를 들여다보면, 작은다람쥐네 어버이는 작은다람쥐가 다른 아이들처럼 활쏘기나 사냥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걱정한다고 나옵니다. 어쩌면, 작은다람쥐가 태어난 겨레는 사냥하는 겨레인지 모르지요. 그러나, 참말 북중미 토박이들 삶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디언붓꽃이라 한다면, 작은다람쥐네 어버이는 작은다람쥐를 걱정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아이 이름을요. 아이는 ‘작은다람쥐’예요.

 

 아이를 걱정하는 어버이였다면 아이한테 바보라느니 멍청이라느니 느림보라느니 얼간이라느니 겁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놀렸겠지요. 그렇지만, 작은다람쥐네 어버이라든지, 동무라든지, 마을 어른이라든지, 어느 누구도 작은다람쥐를 놀리지 않았어요. 하나같이 작은다람쥐를 아꼈어요. 사랑했고 믿었고 좋아했어요. 작은다람쥐는 작은다람쥐답게 들판과 멧자락과 냇물을 누비면서 자연대로 누리는 삶을 맞아들였어요.


.. 이제 사람들은 아이를 작은다람쥐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노을을-땅에-물들인-사나이’라고 불렀습니다 ..  (39쪽)


 누군가는 활쏘기를 잘 하겠지요. 누군가는 배를 잘 뭇겠지요. 누군가는 흙을 잘 다루겠지요. 누군가는 바람흐름을 잘 읽겠지요. 누군가는 풀과 열매를 잘 꿰겠지요. 누군가는 들판에서 실을 얻어 천을 마름하고 옷을 깁겠지요. 이러면서 누군가는 모닥불 피우고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불을 덮고 드러누운 자리에서, 사람들 하루일을 마무리짓고 쉬는 자리에서, 모두한테 눈물과 웃음을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꽃을 피우겠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솜씨를 보여줍니다. 아니,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꽃을 피웁니다.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을 일구어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름값 드날려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아낄 사람입니다.

 

 그림책 《인디언붓꽃의 전설》은 이야기합니다. ‘노을을-땅에-물들인-사나이’가 대단한 그림쟁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은 내 예쁜 삶을 예쁘게 받아들여 예쁘게 돌보는 좋은 꿈을 곱다시 들려줍니다. 노을은 예나 이제나 온누리를 곱게 물들입니다. (4344.12.9.쇠.ㅎㄲㅅㄱ)


― 인디언붓꽃의 전설 (토미 드 파올라 글·그림,김경태 옮김,파랑새 펴냄,2004.2.27./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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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09 09:46   좋아요 0 | URL
제목부터 무척 공감합니다.
돈 버는 기계되라고, 입시 전쟁 치르는 기계되라고, 권력잡고 타인을 누르는 기계되라고
낳은 아이가 아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자식들을 구덩이로 밀어넣는게 아닐까 가끔 생각합니다. 제 딸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파란놀 2011-12-09 11:04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랑 받아먹으면서
좋은 사랑 나누는
좋은 어른으로 우뚝 서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1-12-09 17:40   좋아요 0 | URL
뭔가 잘못 되어가는 게 많은 세상이지요. 중요한 건 요렇게 무엇이 잘못인지를 짚어가며 살아야 하는 것...

된장님은 바른생활맨이에요. 하하~~

파란놀 2011-12-10 07:30   좋아요 0 | URL
사람들 누구나 옳은 길을 즐겁게 느끼며 예쁘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원고지를 산다

 


 400자 원고지를 산다. 이제 곧 동시를 100 꼭지 쓴다. 이렇게 쓴 동시 100 꼭지를 원고지에 옮겨적으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펴내는 출판사에 손으로 원고지에 옮겨적은 동시꾸러미를 보낼 생각이다. 한편, 동시를 그러모아 잡지를 내놓는 곳에도 몇 꼭지를 띄우려 한다.

 

 출판사에서 동시책을 내줄는지 안 내줄는지 알 길이 없으나, 내 마음은 이 동시꾸러미가 책으로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동시잡지에서 내 글을 알뜰히 여겨 아낄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알 노릇이 없으나, 내 마음은 이 글을 동시잡지에 예쁘게 실어 주리라 믿는다. (4344.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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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09 17:06   좋아요 0 | URL
바라시는대로 되길 바랍니다.ㅋㅋ

200자 또는 400자 원고지에 볼펜으로 기사를 쓰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답니다. 컴퓨터가 대중화하기 전의 일이지요. 가끔 그런 시간들이 그리워요.

파란놀 2011-12-09 17:24   좋아요 0 | URL
집에서 아이들이랑 복닥이느라,
원고지 사 놓고 아직 뜯지도 못해요
ㅠ.ㅜ
에구구
언제쯤 틈을 내어 원고지에 옮겨적을 수 있을는지...
이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