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없는 사람들 - 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평화 발자국 8
김성희 외 5인 글.그림 / 보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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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떠날 때에 좋은 삶
 [만화책 즐겨읽기 131] 김성희·김수박·김흥모·심흥아·유승하·이경석,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서울이라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꽤 넓습니다. 그러나 서울이 제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지나치게 많습니다. 지나치게 넓은 땅이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돈을 벌 구멍이 다른 곳보다 훨씬 많다 할 테지만, 이만큼 돈을 못 벌거나 힘겨운 사람도 더욱 많다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돈구멍을 잘 뚫어 크거나 비싸다 하는 집에서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서울에서 돈구멍을 좀처럼 찾지 못해 자꾸자꾸 옆이나 뒤로 밀리다가는 그예 작은 보금자리 하나조차 누리지 못하며 쫓겨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꽤 배불리 살아가는 사람도 많고, 퍽 굶주리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좀처럼 두 사람들이 밥술을 나누지 못합니다.


  새 자동차가 끊임없이 팔립니다. 새 옷가지가 끊임없이 팔립니다. 새 아파트가 끊임없이 올라섭니다. 새 방송국이 끊임없이 생기고, 새 풀그림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새 연예인이, 새 영화가, 새 연속극이, 새 노래꾼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이와 달리, 새 숲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새 흙일꾼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새 멧새가 태어나 깃들 보금자리는 차츰 줄어듭니다. 새 골짜기나 냇물이 이루어질 틈이 없습니다.

 

 


- 남자가 야구나 축구에는 관심을 안 가질지언정, 설거지에는 관심을 가지기 바라는 아내. (10쪽)
- 이제 첫 이주민인 그 사람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 보라. ‘선생은 나무도 많이 심고, 울타리도 튼튼하게 쳐 두고, 우물도 파고, 창고와 주택도 지었습니다. 선생의 노동으로 인해 이 농장에 많은 가치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의 땅은 이전만큼 비옥하지 않습니다. 선생의 노동으로 가꿔 온 모든 것들의 가치를 충분히 셈해 드릴 테니 모두 나에게 팔고 가족을 데리고 새로운 지역으로 다시 이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웃고 말 것이다. (28쪽)


  한국땅에서 서울은 너무 끔찍하게 부풀었습니다. 이 다음으로 부산이 끔찍하게 부풀었으며, 이 다음으로는 대구와 인천이 끔찍하게 부풀었고, 이 다음으로 대전과 광주와 울산이 끔찍하게 부풀었습니다. 뒤따라 수많은 도시들이 끔찍하게 부풀어오릅니다.


  끔찍하게 부풀어오르는 곳마다 가난하다는 사람들 작은 집이 헐립니다. 가난하다는 사람들 작은 집이 쉰 해가 넘는 삶터였든 백 해쯤 되는 삶자리였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삶터를 빼앗긴 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삶자리 잃은 사람들한테 고향이 이러쿵저러쿵 되거나 말거나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아파트 재개발로 시끌벅적하기 앞서, 적잖은 동화쟁이와 소설쟁이는 ‘고속도로 낸다며 논·밭·집·고향 잃은 사람들’ 이야기를 동화나 소설에 담았습니다. ‘댐을 놓는다며 논·밭·집·고향 빼앗긴 사람들’ 이야기를 동화나 소설로 그렸습니다.


  이제 ‘고속도로나 댐 때문에 고향을 잃거나 앗긴 사람들’ 이야기를 동화나 소설로 담거나 그리는 글쟁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속도로를 놓아야 나라가 더 발돋움한다고 여깁니다. 댐을 놓아야 큰물을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고속철도를 놓으며 더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공항을 마련하고 공장을 늘려 한국 경제가 살아난다고 생각해요.

 

 

 


- 가진 것 적어도 서로 오가며 음식도 나눠 먹고 집도 서로 고쳐 주면서 정을 나누던 동네, 용산 신계동. 작은 마을이지만 뉴타운 건설 전까지는 돈 없이도 넉넉하게 살고, 친척 없이도 화기애애한 주민들이었다. (44쪽)
- “엄마. 엄마.” “아, 왜 그래.” “일어나 보니 앞집이 없어졌어.” “너 어두울 때 와서 몰랐구나.” “어떻게 하루아침에, 몇 십 년 된 집을. 흔적도 없이 싹 사라졌네. 우리 집도 저렇게 되는 거야?” (52쪽)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자며 등허리가 휩니다. 쌀, 보리, 옥수수, 배추, 무, 당근, 토마토, 배, 능금, 복숭아, 포도, 귤, 감, 미역, 김, 파래, 고등어, 오징어, 조기, 조개, 굴, …… 모두 시골사람이 거두어들여 도시사람을 먹입니다. 도시사람 스스로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스스로 마련하거나 찾거나 거두어들이지 못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날이 갈수록 ‘밥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릴 줄 아는 동화쟁이나 소설쟁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화쟁이와 사진쟁이도 이와 엇비슷합니다. 하나같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하나같이 도시에서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터전에 따라 생각하고, 생각하는 길에 따라 이야기를 빚어요. 저마다 사랑으로 꿈꾸는 빛줄기를 보여줄 만하지만, 하나같이 사랑 없는 생채기와 얼룩과 응어리를 동화나 소설이나 만화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노래나 춤이나 영화로 담고 맙니다.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보리,2012)을 읽다가 문득 떠올립니다. “가진 것 적어도 서로 오가며 음식도 나눠 먹고 집도 서로 고쳐 주면서 정을 나누던 동네, 용산 신계동(44쪽).”이라 하는데, 막상 이 만화책에서 ‘서로 오붓하게 사랑을 나누던 오순도순 살가운 모습’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거 용역이 주먹과 발길을 휘두르는 모습’만 나타납니다.


  아픈 이야기를 보여주고, 생채기 난 자국을 드러내며, 얼룩진 슬픔을 그립니다.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고단한 이웃을 들여다보지 않는 차갑고 메마른 도시살이를 보여줍니다. 힘겨운 삶을 드러내며, 힘겨운 동무와 어깨동무하지 못하는 어둡고 그늘진 도시살이를 드러냅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프고 슬프며 지친 모습이나마 만화로 그려 남길 수 있어 고맙다 여길 만합니다. 이렇게 깨지고 다치며 짓밟히는 모습이라도 만화로 빚어 선보일 수 있어 고맙다 할 만합니다. 다만, 이뿐이에요.

 

 

 


- 이날 스무 명 가운데 열여덟 명이 119에 실려 가고 모두들 정말 심하게 다쳤어요. 갈비뼈가 부러져 여러 차례 수술 받은 사람도 있고 실명할 뻔한 사람도 있고. 그런데 용역 깡패 놈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죠. 이 일이 있은 뒤로 다 떠나고 단 세 가구만 남게 되었어요. (145쪽)


  지난 2011년 12월 즈음, 포스코에서는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마을 한켠에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밝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골마을은 대한민국에서 큰도시하고 아주 멀리 떨어진 한갓진 데거든요. 우리 시골마을하고 나란히 ‘새 화력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손꼽히는 곳은 전남 해남입니다. 고흥이랑 해남은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참 멀디먼 땅끝이에요. 대전에서도 멀고, 대구나 인천이나 광주에서도 참 멉니다.


  한편, 화력발전소를 짓겠다 하는 데는 고흥이랑 해남 바닷가예요. 화력발전소를 지으려 하는 고흥이랑 바닷가는 모두 국립공원입니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에요. 도시사람 쓸 전기가 모자라다며 국립공원으로 손꼽히는 시골마을 한복판에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들 해요.


  이 나라 건설부 하는 일을 살피면, 국립공원 한복판에 굴을 파고 하늘차를 놓습니다. 국립공원 멧자락 올라가기 좋도록 아스팔트길을 길게 내고 주차장 넓게 마련합니다. 제주섬은 통째로 아름다운 삶터라 한다지만, 제주섬에 새 해군기지를 마련한다며 시끄럽습니다. 맑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누구라도 말라비틀어지고 말 테지만, 남녘땅 굵은 물줄기뿐 아니라 시골자락 조그마한 냇물줄기마저 시멘트를 퍼부어 물길을 반듯하게 펴느라 돈과 품을 아주 엄청나게 들여요.


  이런 나라 이런 건설부인 만큼, 새 아파트를 도시 한켠에 더 높직하게 올리려 하면서, 가난한 달동네 마을을 한꺼번에 밀어붙여 없애는 일쯤이야 아무것 아니라 여길 만합니다. 가난한 사람한테든 가멸찬 사람한테든, 오래도록 뿌리내려 사랑할 고향을 마련하지 못하도록 밀어붙이거나 내몰려 하는구나 싶어요. 가난한 사람한테나 가멸찬 사람한테나, 집을 집으로 여기지 않고 부동산으로 여기도록 몰아붙이려 하는구나 싶어요.

 

 


- “학생들 서명 좀 부탁해요.” “집이 강제로 철거돼서 서명운동 하고 있어요. 부탁해요.” “아줌마들!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서명 받는데? 학생은 뭐야?” “저 이 학교 총학생회장인데요, 여기서 이런 거 하면 안 돼요!” “아니, 학생! 대학생이면 어려운 사람과 함께하고 도와줘야지!” “저희는 비운동권 총학생회라서 이런 거 반대해요. 여기서 서명운동 같은 거 하지 마세요! 빨리 가세요, 가!” (159∼160쪽)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가난하거나 가난하지 않거나 고향마을을 둘 수 없습니다. 신림동이든 봉천동이든 현저동이든 이문동이든, 어느 동네라 하더라도 서울사람한테는 고향마을이 되기 어렵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 쉰 해 일흔 해를 뿌리내려 살았다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삶자리를 빼앗긴 채 떠나야 할는지 모릅니다. 돈이 많고 집이 크다 하더라도 재개발 테두리에 들면 모두 꼼짝없이 떠나야 합니다. 아파트에서 산다 하더라도 서른 해만 지나면 다른 새 아파트로 떠나야 할 판입니다. 무슨무슨 팰리스가 쉰 해나 일흔 해를 버틸까요. 무슨무슨 캐슬이 여든 해나 백 해를 이을 수 있을까요. 아파트를 짓는다며 쫓겨난 사람이든, 아파트를 지어 들어온다는 사람이든, 서울에서는 모두 고향 없는 사람입니다. 느긋하게 쉬며 아이들한테 물려줄 좋은 보금자리를 꾸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고향도 삶도 보금자리도 없는 이런 서울인데, 사람들은 왜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려 할까 궁금합니다. 고향도 삶도 보금자리도 마련할 수 없는 이런 서울에서, 사람들은 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품지 못하나 궁금합니다.


  너무 뚱뚱해진 서울에서 벗어나야 삶길이 열릴 텐데요. 지나치게 뚱뚱해진 서울에서 풀려나야 삶자리가 마련될 텐데요.


  빼앗긴 권리를 찾는 일도 크고 대단합니다. 그런데, 삶을 찾고 사랑을 나누는 나날을 누리는 일이란 더없이 크고 대단합니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서울을 홀가분하게 떠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제 고향마을 품에 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새 고향마을 찾아 동해로 김해로 옥천으로 예천으로 벌교로 삽교로 양양으로 밀양으로 구례로 삼례로 고흥으로 장흥으로,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찾아나서며 뿌리내리면 좋겠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서울을 떠나 서울이 홀쪽해지면, 서울에서 권력과 주먹과 돈을 휘두르던 이들은 그만 제풀에 지쳐 쓰러지겠지요. (4345.3.23.쇠.ㅎㄲㅅㄱ)


― 떠날 수 없는 사람들 (김성희·김수박·김흥모·심흥아·유승하·이경석 글·그림,보리 펴냄,2012.1.2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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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특별한 날 - 타샤 할머니가 들려주는 열두 달 이야기 타샤 튜더 클래식 2
타샤 튜더 글.그림,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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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좋은 이야기가 모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50] 타샤 튜더, 《타샤의 특별한 날》(윌북,2008)

 


  낮부터 내린 비는 밤새 지붕을 때리고 들판과 멧자락을 적십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적시려나 하고 생각하며 잠듭니다. 깊은 밤, 지붕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비가 그칩니다.


  빗줄기가 그치지 않던 봄날 낮나절, 아이 둘을 데리고 마실을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비가 오든 말든 가붓이 걸을 만하지만, 아직 두 아이 모두 어리다고 느껴, 집안에서만 내내 맴돕니다.


  해가 떨어진 저녁나절, 둘째를 품에 안고 섬돌에 앉아 빗소리를 듣습니다. 첫째는 어느새 뽀르르 좇아 나옵니다. 나란히 섬돌에 앉아 저녁 빗소리를 듣습니다. 저녁 빗소리를 들으며 노래 몇 가락 불러 봅니다.


  비가 내려 온 들판은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습니다. 도랑물은 더 잘 흐르고 골짝물이나 냇물 모두 한결 잘 흐를 테지요. 새눈을 틔우고 새꽃을 피우는 봄풀 봄나무 모두 좋은 빗물을 마시며 더 기운을 차릴 테고요. 사람도 나무도 풀도 짐승도, 이처럼 알맞춤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있어 목숨을 이어요. 햇살이 비추고 빗방울이 들며 바람이 살랑이는 날씨를 누리며 저마다 제 보금자리를 곱게 건사합니다.

 


.. “할머니, 엄마가 저만 했을 때는 어땠어요?” “정말이지, 즐거운 날이 아주 많았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아이들은 모닥불을 피웠어. 다들 모닥불 주위에서 춤추며 큰소리로 외쳤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8쪽)


  내 어버이는 형을 낳고 나를 낳으며, 두 아이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궁금합니다. 서울이나 인천 언저리에서 달삯 더 받을 만한 일자리를 얻어 예순 언저리까지 느긋하게 살림을 꾸리다가 연금 푼푼이 받으며 지내는 삶을 바랐을까요. 두 아이가 저마다 좋아하는 길을 찾아 저마다 사랑하는 삶을 꾸리기를 바랐을까요.


  좋은 옆지기와 함께 아이 둘을 낳고 살아가는 나는, 우리 집 두 아이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아름다울까 하고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떤 삶을 누리면서 어떤 사랑을 나눌 때에 저마다 아름다운 빛을 곱게 드리울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버이로서 나부터 어떤 나날을 누리면서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하루하루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무엇을 가르칠 만할까요.


  나로서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어느 하나 제대로 못 갖추었는지 모릅니다. 나로서는 내 가슴에 아이들한테 물려줄 모든 열매를 건사하는지 모릅니다.

 

 


..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자그마한 우체국이 있었단다. 참새 우편으로 밸런타인데이 카드가 도착했지. 물론 인형 가족도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받았어. 코기 강아지들도 선물을 받았고.” ..  (12∼13쪽)


  타샤 튜더 님 그림책 《타샤의 특별한 날》(윌북,2008)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온통 즐거운 날’이었다던 옛날 옛적 삶을 떠올리는 할머니가 아이들한테 ‘무엇이 그토록 즐거웠던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겨레도 예부터 이렇게 온갖 이야기 누리며 살았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다 다른 삶 다 다른 놀이 다 다른 즐거움을 누렸어요. 커다란 명절이 있기에 즐거운 나날이 아닙니다. 작은 한 가지 모두 즐겁습니다. 짚신을 삼아도 즐겁고,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짊어져도 즐겁습니다. 아버지가 지게를 만들어 내놓는 날도 즐겁고, 어머니와 빨래를 하고 다듬이질을 하고 풀을 먹이고 길쌈을 하는 모든 일이 즐겁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거리라 여길 수 있지만, 끝도 없이 누리는 삶이라 여길 만합니다. 서로 돕고 함께 어깨동무합니다. 서로 믿고 함께 사랑합니다. 씨앗을 갈무리하고 나물을 말립니다. 씨앗을 건사하고 장을 담급니다. 집을 손수 짓고 손질합니다. 이웃이 찾아와 집을 함께 고치고 나란히 잔치마당을 엽니다.

 


.. “11시 간식 시간에는 사과나무 아래 아이스티와 쿠키를 차려놓고 맛있는 파티를 열었단다.” ..  (27쪽)


  유럽에서든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중국에서든 필리핀에서든, 나라와 겨레마다 다 다른 터전에 걸맞게 다 다른 삶을 누립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즐겁게 삶을 누리는 사람들한테는 꼭 한 가지만 없습니다. 서로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전쟁 한 가지가 없습니다. 마을이나 나라를 다스린다는 정치꾼이나 임금님 같은 사람 이야기가 깃들지 않습니다. 임금님이 마을을 ‘행차’ 하는 일이란 대수롭지 않을 뿐더러, 딱히 바라지 않습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아무개가 없어도, 사람들 스스로 조그마한 마을에서 1월부터 12월까지 즐겁게 얼크러집니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젊은이도 푸름이도 총싸움이나 칼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몸에 알맞게 일거리를 나누어 받고, 저마다 제 마음에 맞게 놀이거리를 찾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걷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사랑하는 길을 살핍니다. 사람들은 다 함께 사랑하는 길을 북돋웁니다.


  다달이 무언가 남달리 기리는 날이 있기도 하다지만, 어느 하루만 남다르지 않아요. 한 해 가운데 어느 하나를 더 기리거나 생각한다지만, 이 하루만 바라보며 한 해를 살아가지 않아요. 언제나 모든 하루가 대단합니다. 늘 모든 하루가 좋습니다.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하루요, 노상 기쁜 하루입니다.

 

 


.. “9월에는 잔치가 열리는 달이지. 노동절에는 인형들의 잔치가 열리곤 했어. 당연히 모든 인형들이 총출동했지. 그 친구들도 모두 나오고. 우리는 단추를 돈으로 삼았단다. 인형 크기의 케이크랑 파이, 사고 싶은 건 뭐든 단추만 있으면 살 수 있었어.” ..  (40∼41쪽)


  내 어릴 적을 되새깁니다. 내가 즐겁게 웃으며 떠들 수 있던 까닭이란 무엇이었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내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내가 오늘 하루 집식구하고 맑게 웃으며 떠들 수 있자면 무엇이 있어야겠느냐고 돌아봅니다.


  날마다 좋은 삶을 누리자면, 어버이로서 무슨 사랑으로 내 삶을 돌보아야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날마다 좋은 삶을 즐기자면, 어버이로서 이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빚어야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좋은 짝꿍이랑 날마다 좋은 삶을 빛내자면, 옆지기로서 어떤 꿈을 가꾸어야 아름답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이제 비는 멎고, 바람은 조용합니다. 들새와 멧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비가 더 흩뿌리지 않는다면 들판과 길바닥 물기는 시나브로 마르겠지요. 구름은 걷힐까요. 햇살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까요. 기저귀 빨래를 마치고 나서 오늘 하루 어떤 이야기를 네 식구 같이 예쁘게 누릴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5.3.23.쇠.ㅎㄲㅅㄱ)


― 타샤의 특별한 날 (타샤 튜더 글·그림,공경희 옮김,윌북 펴냄,2008.10.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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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곱 시 오 분부터
저녁 여섯 시 오십 분까지
두 시간에 한 차례
읍내로 나가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

 

어른 1500원
어린이 800원.

 

20분 길을 구비구비
느긋하게 달린다.

 

걸어가면 두 시간,
자전거로 사십 분,
다섯 살 두 살
아이 데리고
옆지기와
아직 3000원이면
재미나게 마실.

 


4345.3.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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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6 : 오만방자


염라대왕의 총애를 듬뿍 받는다더니, 과연 오만방자하군요
《주호민-신과 함께 (이승편 上)》(애니북스,2011) 155쪽

 

  “염라대왕의 총애(寵愛)를 듬뿍 받는다더니”는 “염라대왕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더니”나 “염라대왕이 더없이 귀여워하고 아낀다더니”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과연(果然)’은 ‘참’이나 ‘참말로’나 ‘아주’나 ‘매우’로 다듬어 줍니다.


   사람들은 ‘오만방자’라는 꼴로 적잖이 생각을 나타내지만, 막상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따로 네 글자 한자말이 아닙니다. ‘오만’이랑 ‘방자’를 더한 낱말입니다. 먼저, ‘오만(傲慢)’은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을 뜻합니다. ‘방자(放恣)’는 “어려워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없이 무례하고 건방지다”를 뜻합니다. 곧, 오만이든 방자이든 ‘건방지다’는 소리입니다. 주제넘는다는 소리요, 젠체하는 꼴입니다.

 

 과연 오만방자하군요
→ 참 건방지군요
→ 참말 버릇이 없군요
→ 매우 버르장머리없군요
→ 이것 참 콧대가 높군요
→ 듣던 대로 잘난 척이군요
 …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건방지다’ 뜻을 살펴보면 “젠체하며 지나치게 주제넘다”라 나오고, ‘주제넘다’ 뜻을 찾아보면 “말이나 행동이 건방져 분수에 지나친 데가 있다”라 나옵니다. 두 낱말이 어떻게 다른가 풀이하지 않아요. ‘건방지다 = 주제넘다’로 풀이하고, ‘주제넘다 = 건방지다’로 풀이해요. 오락가락 돌림풀이입니다. 이래저래 엉망풀이예요.


  어쩌면, 국어사전 엮는 국어학자부터 한국말을 옳게 살피지 못하니, 여느 자리 여느 사람까지 한국말을 살뜰히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사람부터 한국글을 옳게 쓰지 않으니, 국어사전 엮는 국어학자마저 한국글을 엉터리로 쓴다 할 수 있어요.


  주제넘은 소리가 되겠습니다만, 한국땅 어른들은 한국땅 아이들한테 말다운 말을 못 가르치거나 안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한국땅 지식인들은 한국말을 올바로 쓸 줄 모를 뿐더러, 슬기롭게 빛내지 않는구나 싶어요. 이 땅에서 이 나라 사람들이 사랑스러우며 아름답게 말꽃을 피우고 삶꽃을 나누도록 이끄는 길을 저마다 깨닫지 못하거나 헤아리지 않는구나 싶어요. (4345.3.22.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염라대왕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더니, 듣던 대로 버릇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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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타이 도쿄 - 핸드폰으로 담아 낸 도쿄, 그 일상의 세포
안수연 지음 / 대숲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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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여기에 있고 저기에 없다
 [찾아 읽는 사진책 86] 안수연, 《케이타이 도쿄》(대숲바람,2007)

 


  새봄을 맞이하며 날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을 봅니다. 봄까지꽃을 보고, 별꽃을 봅니다. 매화꽃을 보고 광대나물을 봅니다. 나는 누가 이 꽃들한테 이런 이름 저런 이름을 붙였는지 잘 모릅니다. 풀꽃도감을 살펴보면서 이름을 헤아리고, 풀꽃 이름과 사진을 나란히 붙인 책을 읽으며 이름을 살핍니다. 어머니나 둘레 어른들이 가리키는 이름을 들으며 이름을 곱씹습니다. 때로는 내 마음대로 내가 바라보는 느낌을 떠올리며 이름을 가늠해 봅니다.


  우리 마을에서 우리 식구가 맨 처음 만난 봄꽃은 ‘봄까지꽃’입니다. 나는 이 꽃을 ‘개불알풀꽃’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들었고, 나중에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왜 ‘봄까치꽃’이라 일컬을까 궁금해서 말밑을 찾아보는데, ‘-치-’라 적은 대목은 잘못이고 ‘-지-’로 적어야 올바르다 합니다. ‘봄까지꽃’이 올바르게 적는 이름이라 해요. 따뜻한 마을에서는 늦겨울부터 이른봄 사이에 피고 진대서 ‘봄까지꽃’이라 이름을 붙였다더군요.


  그렇지만, 잘못 붙었다는 이름 ‘봄까치꽃’이 훨씬 널리 알려진다고 해요. 아마 ‘개불알풀꽃’이라는 이름도 이와 마찬가지일 테지요. 일본 풀꽃학자가 이 이름을 붙여 그만 일제강점기에 이 이름이 들어왔다던데, 이 대목까지 살필 줄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나도 이냥저냥 이런 이름 저런 이름 깊이 살피지 않으며 쓰지 않았겠느냐 생각해요.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 어떻게 알려줄까 하고 생각하며 찾아보는 이즈음에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옳게 살피고 제대로 생각하며 바르게 살아갈 때에 아이들한테 옳은 이름 좋은 생각 바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나는 나대로 ‘봄까지꽃’한테 새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대로 붙인 새 이름은 내 아이한테 이어지고, 내 아이한테 이어진 이름은 내 아이가 낳을 아이한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찬찬히 이어지는 이름이 되면, 이 이름은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마을에서 따로 일컫는 이름으로 뿌리내려요. 별꽃도, 매화꽃도, 광대나물도 그래요. 나는 별꽃을 바라보며 참 작은 별 같구나 생각했는데, 참말 이름이 별꽃이었습니다. 매화꽃은, 글쎄, 매화라 하니 매화라 말하기는 했는데, 이 꽃을 바라보며 무엇을 떠올릴 만할까 하고 더 생각하면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요. 광대나물도 그렇고요.


  손전화에 딸린 사진 찍는 기능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안수연 님이 내놓은 《케이타이 도쿄》(대숲바람,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손전화 기계는 손전화 기계이지 사진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손전화 기계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화질이나 빛느낌이나 파일크기 모두 여느 사진 기계하고 대면 아무것 아니거나 초라하다 할 테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손전화 기계 또한 ‘사진기 구실’을 하고, 손전화로도 얼마든지 ‘사진 이야기’를 빚을 만해요.


  원고지에 써야만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 되지 않아요. 광고종이 뒤켠에 글을 써도 시가 되고 소설이 되며 수필이 돼요. 붓에 물감을 묻혀 종이에 그려야 그림이 되지 않아요. 모래밭에서 나뭇가지로 그려도 그림이 돼요. 오래 남아야 그림이고, 밀물에 쓸려 사라지면 그림이 아니란 법은 없어요.


  내 마음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하늘에 대고 손가락으로 그릴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눈망울에 그릴 수 있어요.


  사진이란 내 삶이 되고, 내 사랑이 되며, 내 이야기가 됩니다. 내 삶을 빛내는 길을 찾을 때에 사진이고, 내 사랑을 나누는 꿈이 되면 사진이요, 내 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받는 자리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렇게 몰래 찍으며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 순간이 내게 준 울림들이 알 수 없는 온기로 남아 케이타이를 쥔 손이 약간은 따뜻해져 왔다(14쪽).”고 하듯, 스스로 따뜻한 기운을 느끼거나 나눌 때에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 흐름과 섞임의 조화가 묘한 울림을 준다. 어느 장소인들, 당신이 발 딛고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런 울림이 없으랴만(91쪽).” 하고 읊듯, 내가 살아가는 어디에서라도 사진을 빚고, 사진을 일구며, 사진을 펼칩니다. 서울에 가야 사진을 배우지 않고, 도쿄에 갔기에 사진을 배우지 않으며, 한국땅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기에 사진을 못 배우지 않아요.


  “도쿄의 저녁 시간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그들의 생활 풍경이 유난히 푸른빛 저녁 시간과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98쪽).”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좋아하는 삶일 때에 좋아하는 손길로 좋아하는 사진을 빛냅니다. 사랑하는 삶일 때에 사랑하는 눈길로 사랑하는 사진을 읽습니다. 내 매무새가 내 손길이고, 내 몸짓이 내 춤사위입니다.


  “방법은 그 다음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왜 나는 사진을 찍고 있는가? 왜 나는 사진을 선택했는가? 그럼 그는 왜 사진을 찍고 있는 걸까(172쪽)?” 하고 늘 물을 수 있으면, 언제나 생각할 수 있으면, 노상 되뇔 수 있으면, 내 가슴속에 사진이라는 씨앗이 살포시 뿌리내리겠지요. 사진이라는 씨앗이 천천히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리겠지요. 이윽고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겠지요. 마지막으로 새로운 씨앗을 내놓을 테고요.

 

 


  스스로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가르칩니다. 스스로 가르치는 사람은 스스로 배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사진을 찍습니다.


  어느 사진학과에 들어가야 이름난 사진쟁이가 된다, 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로 배움길을 떠나야 멋진 사진길을 걷는다, 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이 마음이 작은 씨앗이 된다면, 스스로 사진을 키울 수 있습니다. 사진을 키우는 나날이란, 곧 내가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남자들의 마음속엔 영원한 소년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난 여자들의 마음속엔 소중히 물을 주어 정성껏 기르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202쪽).”는 이야기처럼, 내 마음밭에 뿌린 씨앗이 나무 한 그루로 자라도록 돌보는 나날이, 내가 살아가는 나날이요, 내가 이루려는 꿈을 가꾸는 나날입니다.


  사진은 저기에 없지만, 저기에 있다고 여기면 저기로 가면 됩니다. 사진은 여기에 있으나, 여기에서 못 본다고 느끼면 여기에서 떠나면 됩니다. 좋은 삶 궂은 삶이 없듯, 좋은 사진 궂은 사진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삶을 마음껏 누리고, 사랑하는 나날을 즐겁게 빛내면 언제나 아름다이 활짝 웃는 사진이고 이야기가 됩니다. (4345.3.22.나무.ㅎㄲㅅㄱ)


― 케이타이 도쿄 (안수연 사진·글,대숲바람 펴냄,2007.7.3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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