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가연님의 "럭키짱에서 삶글에 이르기까지."

 어느 쪽으로 적든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는 '글쓴이'와 '말하는이' 마음에 따라 달라요. 어느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느냐에 따라, 아주 쉬운 말글을 쓰더라도 '문자자랑질'이 돼요. 이를테면 '톺아보다'라는 낱말도 문자자랑질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낱말을 처음 듣던 예전에는 문자자랑질이라고 느껴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낱말을 지식인 아닌 여느 흙일꾼 할아버지가 입으로 읊는 말을 한 번 들은 다음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꼭 흙일꾼 할아버지가 이 낱말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자리 어느 흐름에 맞추어 글을 쓰느냐에 따라 느낌과 결은 사뭇 달라져요. 문학을 이야기하는 글을 쓸 때에는 '삶글'이라는 낱말을 아직 사람들 앞에서 쓰기 힘들어요. 이때에는 그냥 수필과 산문이라고 처음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사이사이 '삶글'이라는 낱말을 곁들일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시나브로 '수필 = 산문 = 삶글'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런데, 요사이에는 '에세이'를 넘어 '르포'라는 말까지 들어와요. 수필이든 산문이든 자유롭게 쓰는 글이지만, 자꾸 영어를 끼워맞추면서 글 테두리를 넓힌다고 해요.

 

 이런 흐름에서는 한국말로 또 새로운 말을 빚을 수 있어야겠지요. 제가 이 책(뿌리깊은 글쓰기)에서 '글쓴이가 밝힌 풀이글이나 이야기'가 '대안'이나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까닭은, 이 책을 교과서로 삼지 말고, 스스로 말밭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삶이 달라, 스스로 좋아하며 받아들이는 말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다 다른 결을 스스로 살피면서 날마다 내 넋을 북돋우면 스스로 어느 자리에 어떤 말을 넣을 때에 서로 즐거운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이 낱말은 써야 하고 저 낱말은 안 써야 한다는 틀이란 없습니다. 이런 틀이 있다면 굴레가 될 뿐이에요.

 

 님이 쓰신 이 글에서 한 가지를 짚어 보면, "-하고 계시다"라고 적은 대목이 있는데, "-하고 있다" 아닌 '계시다'를 넣는다고 높임말이 되지 않아요. 틀린 말법이랍니다. 더구나, "-하고 있다" 또한 영어 '-ing', 이른바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이 '-중(中)'으로 번역하면서, 이 말투가 한국말에 "-하고 있다"로 탈바꿈했어요. 그러니까, '계시다'를 '있다'로 고쳐야 알맞지만, 더 밑을 살피면 '있다'를 넣은 "-하고 있다"부터 잘못 쓴 말이에요. "적혀 있지요"부터 틀리게 쓴 글입니다. "적혔지요"라고만 적어야 올발라요.

 

 그러나, 올바르게 쓰든 잘못 쓰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을 얼마나 잘 드러내거나 나누려 하느냐'가 대수롭습니다. 대수로운 대목을 살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말을 새로 익히며 글로 사랑꽃을 피우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동의하든 동의 안 하든'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아요. 옳은 대목이 없고 그른 대목이 없어요. 동의하느냐 동의 안 하느냐로, 책을 따져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요. 스스로 아름답게 돌볼 내 말삶을 깨달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도록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으니, 이 대목을 짚지 못하면, 이 책을 읽었어도 안 읽은 셈이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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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인형 미라벨 그림책 보물창고 3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이유진 옮김, 피자 린덴바움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좋은 꿈 이루고픈 삶 누리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피자 린덴바움, 《말하는 인형 미라벨》(보물창고,2007)

 


  꿈을 꾸는 삶일 때에는 누구나 꿈을 이룹니다. 날마다 따사롭고 해맑은 넋을 건사하면서 즐겁게 꿈을 꾸는 삶일 때에는, 어느 누구라도 꿈을 이룹니다.


  꿈을 꾸지 않는 삶일 때에는 누구나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꿈을 꾸지 않으니 꿈을 이룰 턱이 없습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꿈이 안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꿈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못합니다.


  꿈을 꾼다지만 따사롭지 못한 넋이거나 해맑지 못한 얼이라면 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을 꾼다지만, 꿈이라기보다 얕은 뱃속이나 검은 속셈을 키우려 할 때에도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오직 사랑을 품는 꿈일 때에 이루어집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서로 어깨동무하는 고운 꿈일 때에 이루어집니다.


.. 아빠는 꽃과 채소를 팔아서 돈을 버는데, 많이 벌진 못해요. 엄마는 돈이 남을 만큼 버는 건 힘든 일이라고 그랬어요. 하지만 나는 인형이 너무너무 갖고 싶었어요 ..  (6쪽)

 


  나한테 이루어진 꿈은 무엇일까 가만히 헤아립니다. 먼저, 나는 어른이 되려는 꿈을 품었습니다. 이 꿈이 이루어졌는지 이루어지는 길인지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어른이 되는 길에 내가 섰다고 느낍니다. 이래저래 흔들리거나 짓찧거나 넘어지거나 고꾸라지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엉터리길에 바보스레 접어들기까지 하면서, 스스로 튼튼하고 어여쁜 어른이 되는 길에 서기는 섰다고 느낍니다. 제대로 걷지 못할 뿐이로구나 싶어요.


  다음으로, 글을 쓰며 살아가자고 품은 꿈이 어느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내 어린 날 품은 ‘글을 쓰며 살아가자’던 꿈은, ‘글을 쓰자’로 그쳤을 뿐, 어떤 글을 쓰는 꿈이었는지 갈피가 서지 않았어요. 글을 쓰며 내 삶을 어떤 모양으로 그리려 하는가 하는 뜻이 아직 없었어요. 글을 쓰되, 밥과 옷과 집을 어찌 건사해야 아름다울까 하는 넋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았어요.


  곧이어, 군대라는 데에 가면 죽겠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죽을 바에는 가장 끔찍한 곳으로 뛰어들자고 어느 날 문득 생각했는데, 참말 이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죽음 문턱을 숱하게 넘었고, 스스로 지옥 같은 불구덩이에서 헤매고 허우적거리다가 살아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곳은 나 혼자만 겪지 않아요. 나를 비롯해 몇 천 몇 만에 이르는 사람이 이곳을 거쳤어요. 모두들 슬픈 생각에 젖는 바람에 이곳에 이렇게 모여 고된 나날 서로 괴롭히며 시달려야 했을까요.


  퍽 어린 날, 길게 꼬리를 드리우며 천천히 사라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다가, 아 내 마음에 사랑 하나 태어나게 해 주소서, 하고 빈 적 있습니다. 제법 커다란 도시 인천 한복판에서 별똥별을 보기란 꿈만 같은 노릇이었으나, 퍽 길게 늘어지는 별똥별을 보았을 때에, 내 마음속으로 빈 한 가지는, 내가 사랑할 한 사람을 만나도록 이끌어 주소서, 였어요. 이날 잠자리에 들기 앞서, 왜 나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이 말을 욌을까 궁금했습니다. 가난한 집에 돈벼락이 떨어지게 해 달라든지, 내 시험성적을 높여 달라든지, 내 여린 몸에 드센 기운이 찾아들어 나를 괴롭히는 동무를 한 주먹으로 때려눕히도록 해 달라든지, 이런저런 것을 왜 안 바랐을까 궁금했어요.


.. 나는 낯선 할아버지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게 좀 무섭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나는 혼자 있었고,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좋은 분 같아 보였어요. 할아버지는 울타리 문을 지나다가 마차를 잠시 세웠어요 ..  (11쪽)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은 무엇일까 곱씹습니다. 아마 많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하나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나 스스로 어느 때부터인가 꿈꾸기를 그치면서, 아예 꿈을 안 꾸고 아무것 이루지 않는 삶을 보냈다 할 만하거든요.


  꿈을 꾸지 않으면 꿈이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지만, 꿈을 꾸며 애타게 기다린다든지 꿈을 꾸며 삶을 한결 예쁘게 돌본다든지 하는 설렘과 기쁨 또한 깃들지 않습니다. 곧, 나 스스로 너무 바보스레 삶을 잊거나 내팽개친 하루하루였다고 할까요.


  가만히 되돌아보면, 나는 어린 나날 언제나 꿈을 꾸었습니다. 어린 나날 꾸던 꿈은 참말 이윽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되면 좋겠다’ 하는 꿈은 꾸었으되, ‘어떻게 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어찌저찌 하자’ 하는 꿈까지 꾸지 않았어요. 그래서 막상 ‘어떻게 되면 좋겠다’ 하는 꿈을 꾸고 나서 이 꿈이 이루어진 뒤에 우물쭈물 아무것 못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다음을 꿈꾸지 않고 한 가지에만 머물었으니까요. 곧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삶인 줄 헤아리지 않고, 내 삶을 토막토막 끊어서 바라보았어요.


  꽤 오래 이런 생각에 젖은 삶이다 보니, 하루아침에 내 삶을 고치기란 어렵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바보스럽거나 슬픈 삶에 젖었는가를 느꼈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내 삶을 어여삐 고치거나 일으켜세울 수 있어요. 이제 내가 좋아하는 길을 걷고,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삶을 찾으면 되거든요.


.. 나는 뒤뜰에 있는 내 텃밭에 그 노란 씨앗을 심었어요. 그러고는 작은 초록색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주었어요. 나는 날마다 물을 주고, 곁에 앉아 지켜보고, 또 서성거리며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그 씨앗에서 뭐가 자랄지 무척 궁금했어요 ..  (13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에 피자 린덴바움 님 그림을 담은 그림책 《말하는 인형 미라벨》(보물창고,2007)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꿈을 꾸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책을 읽는 나도 천천히 꿈을 꿉니다. 꿈을 이루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고 나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고 나서, 어떤 새로운 꿈을 거듭 꾸면서 하루하루 더 새롭고 싱그러이 빛내면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곱게 이어지는 삶이요, 착하게 이어받는 삶입니다. 어여삐 잇는 삶이며, 참다이 돌보며 물려받는 삶입니다.


  그림책 《말하는 인형 미라벨》에 나오는 어린이는 꿈을 꿉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두 어버이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꿈을 꾼 어린이는 꿈을 이룹니다. 꿈을 꾸기보다 팍팍하며 고된 삶을 예쁘게 돌보는 데에만 마음을 쓰는 어버이는 꿈을 꾸지 않았으니 이룰 만한 꿈이 없습니다.


.. 상상해 보세요! 어느 일요일 아침 텃밭에 나갔을 때, 드디어 인형이 다 자라 있었어요. 인형은 하얗고 예쁜 양말과 작은 가죽신을 신고 있었어요. 나는 인형이 얼마나 예쁜지 더 자세히 보려고 풀밭에 앉았어요. 바로 그때, 인형이 눈을 반짝 뜨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어요 ..  (18쪽)

 


  좋게 보살필 때에 시나브로 피어나는 꿈 한 자락이라고 느낍니다. 즐겁게 헤아릴 때에 찬찬히 피어나는 꿈 한 송이라고 느낍니다. 고맙게 맞아들일 때에 가만히 피어나는 꿈 한 줄기라고 느낍니다.


  좋은 꿈 이루고픈 삶 누리는 나날입니다. 기쁜 꿈 빛내고픈 삶 즐기는 하루입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됩니다. 좋은 말로 하루를 열고, 좋은 말을 들으며 스스로 이야기열매를 맺습니다.


  삶을 빛내는 어여쁜 꿈은 누구한테나 바로 한 가지, 꼭 한 가지, 오직 한 가지, 곱게 마음속에서 잠을 자면서 기다린다고 느낍니다. (4345.3.25.해.ㅎㄲㅅㄱ)


― 말하는 인형 미라벨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피자 린덴바움 그림,이유진 옮김,보물창고 펴냄,2007.5.10./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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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89] 톺아보다

 

 한국사람 가운데에는 한국땅에서 살아가지 않는 이가 있을 테고, 한국땅에서 살더라도 한국말을 안 쓰는 이가 있으리라 봅니다. 모두 똑같은 삶은 아닐 테니까요. 나는 내가 어린 날부터 내 어버이한테서 듣고 배운 말을 쓰는 한편, 나 스스로 새로 배우거나 찾거나 살핀 말을 북돋웁니다. 나로서는 누군가 나한테 사랑스럽거나 따스히 들려주는 말이 고마우며 좋습니다.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쁜 말이란 따로 없지만, 내 넋과 얼을 따사로이 보듬도록 이끄는 말마디라면 참 좋게 여길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섯 살 적에도 말을 새롭게 배우고, 열다섯 살이나 서른다섯 살에도 말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노상 새 말을 배우고 새 삶을 일군다고 느낍니다. 마흔다섯 살이나 예순다섯 살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새 말을 익히며 새 삶을 누리겠지요. 왜 그런가 하고 따질 까닭 없이, 하루하루 새로운 나날이요, 같은 살붙이하고 같은 보금자리에서 얼크러지더라도 날마다 새로 생각하고 새로 숨쉬며 새로 이야기꽃을 피워요. 1995년쯤이었나 1998년쯤이었나, ‘톺아보다’라는 한국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을 때에는 뭣하러 이런 낱말까지 국어사전에서 캐내어 쓰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 스스로 나한테 익숙한 말 틀이나 테두리에서 안 벗어나려 하면 새 말을 못 받아들여요. ‘살피다’와 ‘살펴보다’를 옳게 가려 쓸 줄 알아도 즐겁고, 여기에 ‘톺아보다’를 넣어 내 말밭을 한껏 북돋우면 훨씬 즐거워요. 곰곰이 돌이키면, 늘 새로 생각하고 언제나 새 하루 맞이하듯 노상 새 삶을 톺아보는 무지개빛 사랑이요 꿈입니다. (4345.3.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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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25 08:13   좋아요 0 | URL
왜 이글을 쓰셨는지 알겠습니다 ^^
그러고보면 아이들만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네요.

파란놀 2012-03-25 09:1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어른들이 날마다 새롭게 말을 배울 수 있으면,
아이들도 날마다 좋은 말을 즐거이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뿌리깊은 글쓰기>라든지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같은 책을 자꾸자꾸 쓴답니다. 독자들보고 말을 배우라는 뜻보다, 어버이요 어른인 나부터 말을 제대로 배우고 싶거든요.

다만, 아직 이 뜻을 알아차린 분은 얼마 없는 듯해요 ㅠ.ㅜ 앞으로는 조금씩, 때로는 한꺼번에 확~ 그러다가 누구라도 즐거이 이 뜻을 기쁘게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함께 살아가는 말 88] 노래목소리

 

 넓게 펼쳐진 논 사이를 걷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머니 손을 잡습니다. 둘째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바람이 되게 붑니다. 된바람은 첫째 아이를 휭 하고 날려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드센 바람이 부는 날 논둑길을 거닐다니 싶지만, 바람이 거세면 거센 대로 듬뿍 맞아들일 수 있는 봄날이 좋습니다. 봄이 되어 한결 홀가분하게 먹이를 찾으며 새끼를 돌볼 들새와 멧새가 휭휭 불어대는 바람을 가르며 납니다. 새들이 날며 내는 소리를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사람이 바라보기에 같은 갈래 새라 하더라도 지저귀는 소리가 다릅니다. 흔히 참새는 “짹짹”이라 하지만, 참새가 보옹 보옹 하고 날갯짓하며 지저귀는 소리를 듣자니, 어느 때에는 “째째째” 하고 어느 때에는 “찍찍찍” 하며 어느 때에는 “찌이찌이찌이” 합니다. 참새 스스로 때와 곳에 따라 스스로 읊는 소리가 다르고, 동무 참새한테 이야기하는 소리가 다를 테지요. 까마귀는 까마귀 소리로 서로 뜻을 나눕니다. 직박구리와 동박새는 직박구리와 동박새대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사람과 삶대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부르는 노랫소리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랫소리하고 아이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바람소리와 목소리와 노랫소리가 얼크러집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이스코리아’라는 풀그림을 가만히 보다가, 이제 ‘코리아’ 사람들 입에 ‘보이스’가 영어 아닌 한국말처럼 익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4345.3.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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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연님의 "럭키짱에서 삶글에 이르기까지."

국어사전에서 '톺아보다'라는 낱말을 찾아보셔요.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오자'라고 말한다면, 어쩐지 너무 싱겁네요.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거나 살피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일은 어려울는지 모르지만, 마음을 기울여 생각한다면, 말에 담을 넋을 살필 수 있어요.

 

 님이 쓰신 글에서 한 가지만 짚어 본다면, '마찬가지'라는 낱말은 외따로 쓸 수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처럼 쓰든지 '그와 마찬가지'처럼 쓰거나 해야 올발라요. 그런데, 이런 말씀씀이를 둘레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둘레 사람들도 제대로 모르니까, 모두들 잘못 말하거나 글쓰는 줄 모르면서 얄궂거나 뒤죽박죽이 되고 만 말로 넋을 담아내요.

 

 말과 글로 사랑을 빚지 못하기 때문에, 말과 글로 사랑을 빚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제 생각으로는, 에세이를 굳이 삶글로 바꾸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냥 수필이라 하면 돼요. 삶글로 쓰고 싶으면 삶글이라 하면 되지요. 시를 포엠이라 할 까닭이나 소설을 노블이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 수필은 그냥 수필이라 하고, 때로는 산문이라 하면 넉넉하니까, 에세이를 이야기할 까닭이 없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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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25 06:53   좋아요 0 | URL
왜 '톺아보다'가 '잘못 적은 글'이라고 여길까? 왜 '돌아보다'를 잘못 적었다고 여길까?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처음 듣거나 보는 낯선 낱말'이 있다면, 나 스스로 아직 배우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한 낱말이구나 하고 여기면서, 국어사전 한 번 들추어 새로 배우면 즐거울 텐데, 왜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넓고 깊으며 새롭게 배우려 하지 못할까.

'톺아보다'가 '잘못 적은 글'이 아니라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한 낱말'이라고 여길 수 있는 가슴이라면, 책 하나를 읽을 때에도 더 새롭게 거듭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