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너머

 


  무지개 너머에는 어떤 누리가 있을까요. 무지개 너머에는 싸움과 다툼과 미움도 없는 누리가 있을까요. 무지개 너머에는 슬픔도 아픔도 고단함도 괴로움도 없는 누리가 있을까요.


  나는 무지개 너머가 어떤 누리인지 모릅니다. 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살아가거든요. 나는 무지개 너머를 꿈꾸지 않습니다. 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꿈을 꾸거든요.


  무지개 너머에서만 싸움과 다툼과 미움이 없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무지개를 바라보는 이곳에서도 싸움과 다툼과 미움이 없어, 내가 바라보는 저 무지개 너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 곧 ‘저쪽 사람들한테는 무지개 너머’가 될 이곳이 사랑과 꿈과 믿음과 따스함과 너그러움과 포근함이 감돌 수 있으면 아주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래를 듣습니다. 무지개 너머 어떤 삶을 읊는 노래 하나를 듣습니다. 열여섯 살 한국 푸름이가 노래꾼이 되기를 바라며 어떤 무대에 서서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노래 부르는 매무새로 본다면 빈틈이 없구나 싶지만, 내 마음에 무언가 뭉클하고 움직이는 느낌이 샘솟지 못합니다. 한국 푸름이가 부른 이 노래를 ‘처음 부른 나라 노래꾼’은 어떻게 불렀을까 궁금하기에 요모조모 찾아서 세 가지 노래를 듣습니다. 먼저, 무척 오래된 영화에 나오는 노래 두 가지를 듣습니다. 두 가지 노래 모두 아주 보드라우면서 따사로운 산들바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유럽을 휩쓴 무시무시한 전쟁이 끝나고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을 웃음으로 얼싸안는 기쁨과 눈물이 고이 깃듭니다.


  아마 미국이구나 싶은 어떤 노래무대에 선 어린이가 부르는 무지개 너머 노래도 한 가락 듣습니다. 한국에서 요즈음 널리 퍼진 ‘노래꾼 뽑기’와 같은 자리로구나 싶은데, 서양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에는 ‘마음 한 자락’이 살포시 깃듭니다. 노래하는 마음이 묻어나고, 노래를 함께 들을 사람들이 나눌 마음이 묻어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들려주고픈 사랑 어린 마음이 묻어납니다.

 

 ......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꿈을 찬찬히 글로 적고 싶습니다. 사랑 스민 이야기를 펼치며 누리는 하루를 찬찬히 사진으로 찍고 싶습니다. 즐거이 얼크러진 하루 이야기를 보드라이 가락에 담아 내 살가운 사람들하고 기쁘게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무대에서 1등을 하려고 부르는 노래일 수 없어요. 글잔치에서 1등을 받으려고 쓰는 글일 수 없어요. 사진공모에서 1등을 얻으려고 찍는 사진일 수 없어요. 사랑하며 쓰는 글이고, 사랑을 꿈꾸며 부르는 노래이며, 사랑을 나누려고 찍는 사진이에요. (4345.3.25.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2-03-26 13:10   좋아요 0 | URL
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꿈을 꾸거든요....

너무 예쁜 글귀예요. 어떤 누리가 있는지 모른다, 어떤 세상이란 말에 비해서
빛나는 어떤 것처럼 느껴지네요.... 저 너머만 바라보며 동동 구르는 제 모습을 슬쩍 봅니다. 된장님, 즐거운 한주되셔요. 건강하시구요.

파란놀 2012-03-27 06:00   좋아요 0 | URL
나중에 인터넷에서 'over the rain' 노래를 찾아서 들어 보셔요.
미국 아주 어린 아이가 부른 노래가 있는데
k팝스타 박지민 같은 푸름이가 부른 노래하고 견줄 수 없이
아주 잘 불렀어요.

k팝스타이든 다른 경연 무대이든,
한국에서 가수 되려는 이들은
노래에 어떤 마음을 실어야 하는가를
영 모르더군요...
 

 


장작으로 삼을 나무를
멧골로 들어가서
도끼로 패어
지게에 짊어지고,

 

솥에 쌀이랑 안칠 물을
냇가로 가서
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조물딱조물딱 무칠 나물을
들판과 논둑에서
한 손 두 손 캐고 뜯어
소쿠리에 담고,

 

아삭아삭 씹을 무랑 배추를
밭뙈기에서
어여쁜 씨앗으로 심어
즐겁게 거두고,

 

어르신들
아이들
모두 불러
한 자리에 마주앉아,

 

한솥밥
한식구
한사랑
한삶.

 


4345.3.22.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가연님의 "럭키짱에서 삶글에 이르기까지."

 어느 쪽으로 적든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는 '글쓴이'와 '말하는이' 마음에 따라 달라요. 어느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느냐에 따라, 아주 쉬운 말글을 쓰더라도 '문자자랑질'이 돼요. 이를테면 '톺아보다'라는 낱말도 문자자랑질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낱말을 처음 듣던 예전에는 문자자랑질이라고 느껴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낱말을 지식인 아닌 여느 흙일꾼 할아버지가 입으로 읊는 말을 한 번 들은 다음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꼭 흙일꾼 할아버지가 이 낱말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자리 어느 흐름에 맞추어 글을 쓰느냐에 따라 느낌과 결은 사뭇 달라져요. 문학을 이야기하는 글을 쓸 때에는 '삶글'이라는 낱말을 아직 사람들 앞에서 쓰기 힘들어요. 이때에는 그냥 수필과 산문이라고 처음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사이사이 '삶글'이라는 낱말을 곁들일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시나브로 '수필 = 산문 = 삶글'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런데, 요사이에는 '에세이'를 넘어 '르포'라는 말까지 들어와요. 수필이든 산문이든 자유롭게 쓰는 글이지만, 자꾸 영어를 끼워맞추면서 글 테두리를 넓힌다고 해요.

 

 이런 흐름에서는 한국말로 또 새로운 말을 빚을 수 있어야겠지요. 제가 이 책(뿌리깊은 글쓰기)에서 '글쓴이가 밝힌 풀이글이나 이야기'가 '대안'이나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까닭은, 이 책을 교과서로 삼지 말고, 스스로 말밭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삶이 달라, 스스로 좋아하며 받아들이는 말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다 다른 결을 스스로 살피면서 날마다 내 넋을 북돋우면 스스로 어느 자리에 어떤 말을 넣을 때에 서로 즐거운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이 낱말은 써야 하고 저 낱말은 안 써야 한다는 틀이란 없습니다. 이런 틀이 있다면 굴레가 될 뿐이에요.

 

 님이 쓰신 이 글에서 한 가지를 짚어 보면, "-하고 계시다"라고 적은 대목이 있는데, "-하고 있다" 아닌 '계시다'를 넣는다고 높임말이 되지 않아요. 틀린 말법이랍니다. 더구나, "-하고 있다" 또한 영어 '-ing', 이른바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이 '-중(中)'으로 번역하면서, 이 말투가 한국말에 "-하고 있다"로 탈바꿈했어요. 그러니까, '계시다'를 '있다'로 고쳐야 알맞지만, 더 밑을 살피면 '있다'를 넣은 "-하고 있다"부터 잘못 쓴 말이에요. "적혀 있지요"부터 틀리게 쓴 글입니다. "적혔지요"라고만 적어야 올발라요.

 

 그러나, 올바르게 쓰든 잘못 쓰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을 얼마나 잘 드러내거나 나누려 하느냐'가 대수롭습니다. 대수로운 대목을 살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말을 새로 익히며 글로 사랑꽃을 피우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동의하든 동의 안 하든'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아요. 옳은 대목이 없고 그른 대목이 없어요. 동의하느냐 동의 안 하느냐로, 책을 따져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요. 스스로 아름답게 돌볼 내 말삶을 깨달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도록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으니, 이 대목을 짚지 못하면, 이 책을 읽었어도 안 읽은 셈이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하는 인형 미라벨 그림책 보물창고 3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이유진 옮김, 피자 린덴바움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좋은 꿈 이루고픈 삶 누리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피자 린덴바움, 《말하는 인형 미라벨》(보물창고,2007)

 


  꿈을 꾸는 삶일 때에는 누구나 꿈을 이룹니다. 날마다 따사롭고 해맑은 넋을 건사하면서 즐겁게 꿈을 꾸는 삶일 때에는, 어느 누구라도 꿈을 이룹니다.


  꿈을 꾸지 않는 삶일 때에는 누구나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꿈을 꾸지 않으니 꿈을 이룰 턱이 없습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꿈이 안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꿈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못합니다.


  꿈을 꾼다지만 따사롭지 못한 넋이거나 해맑지 못한 얼이라면 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을 꾼다지만, 꿈이라기보다 얕은 뱃속이나 검은 속셈을 키우려 할 때에도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오직 사랑을 품는 꿈일 때에 이루어집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서로 어깨동무하는 고운 꿈일 때에 이루어집니다.


.. 아빠는 꽃과 채소를 팔아서 돈을 버는데, 많이 벌진 못해요. 엄마는 돈이 남을 만큼 버는 건 힘든 일이라고 그랬어요. 하지만 나는 인형이 너무너무 갖고 싶었어요 ..  (6쪽)

 


  나한테 이루어진 꿈은 무엇일까 가만히 헤아립니다. 먼저, 나는 어른이 되려는 꿈을 품었습니다. 이 꿈이 이루어졌는지 이루어지는 길인지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어른이 되는 길에 내가 섰다고 느낍니다. 이래저래 흔들리거나 짓찧거나 넘어지거나 고꾸라지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엉터리길에 바보스레 접어들기까지 하면서, 스스로 튼튼하고 어여쁜 어른이 되는 길에 서기는 섰다고 느낍니다. 제대로 걷지 못할 뿐이로구나 싶어요.


  다음으로, 글을 쓰며 살아가자고 품은 꿈이 어느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내 어린 날 품은 ‘글을 쓰며 살아가자’던 꿈은, ‘글을 쓰자’로 그쳤을 뿐, 어떤 글을 쓰는 꿈이었는지 갈피가 서지 않았어요. 글을 쓰며 내 삶을 어떤 모양으로 그리려 하는가 하는 뜻이 아직 없었어요. 글을 쓰되, 밥과 옷과 집을 어찌 건사해야 아름다울까 하는 넋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았어요.


  곧이어, 군대라는 데에 가면 죽겠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죽을 바에는 가장 끔찍한 곳으로 뛰어들자고 어느 날 문득 생각했는데, 참말 이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죽음 문턱을 숱하게 넘었고, 스스로 지옥 같은 불구덩이에서 헤매고 허우적거리다가 살아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곳은 나 혼자만 겪지 않아요. 나를 비롯해 몇 천 몇 만에 이르는 사람이 이곳을 거쳤어요. 모두들 슬픈 생각에 젖는 바람에 이곳에 이렇게 모여 고된 나날 서로 괴롭히며 시달려야 했을까요.


  퍽 어린 날, 길게 꼬리를 드리우며 천천히 사라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다가, 아 내 마음에 사랑 하나 태어나게 해 주소서, 하고 빈 적 있습니다. 제법 커다란 도시 인천 한복판에서 별똥별을 보기란 꿈만 같은 노릇이었으나, 퍽 길게 늘어지는 별똥별을 보았을 때에, 내 마음속으로 빈 한 가지는, 내가 사랑할 한 사람을 만나도록 이끌어 주소서, 였어요. 이날 잠자리에 들기 앞서, 왜 나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이 말을 욌을까 궁금했습니다. 가난한 집에 돈벼락이 떨어지게 해 달라든지, 내 시험성적을 높여 달라든지, 내 여린 몸에 드센 기운이 찾아들어 나를 괴롭히는 동무를 한 주먹으로 때려눕히도록 해 달라든지, 이런저런 것을 왜 안 바랐을까 궁금했어요.


.. 나는 낯선 할아버지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게 좀 무섭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나는 혼자 있었고,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좋은 분 같아 보였어요. 할아버지는 울타리 문을 지나다가 마차를 잠시 세웠어요 ..  (11쪽)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은 무엇일까 곱씹습니다. 아마 많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하나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나 스스로 어느 때부터인가 꿈꾸기를 그치면서, 아예 꿈을 안 꾸고 아무것 이루지 않는 삶을 보냈다 할 만하거든요.


  꿈을 꾸지 않으면 꿈이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지만, 꿈을 꾸며 애타게 기다린다든지 꿈을 꾸며 삶을 한결 예쁘게 돌본다든지 하는 설렘과 기쁨 또한 깃들지 않습니다. 곧, 나 스스로 너무 바보스레 삶을 잊거나 내팽개친 하루하루였다고 할까요.


  가만히 되돌아보면, 나는 어린 나날 언제나 꿈을 꾸었습니다. 어린 나날 꾸던 꿈은 참말 이윽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되면 좋겠다’ 하는 꿈은 꾸었으되, ‘어떻게 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어찌저찌 하자’ 하는 꿈까지 꾸지 않았어요. 그래서 막상 ‘어떻게 되면 좋겠다’ 하는 꿈을 꾸고 나서 이 꿈이 이루어진 뒤에 우물쭈물 아무것 못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다음을 꿈꾸지 않고 한 가지에만 머물었으니까요. 곧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삶인 줄 헤아리지 않고, 내 삶을 토막토막 끊어서 바라보았어요.


  꽤 오래 이런 생각에 젖은 삶이다 보니, 하루아침에 내 삶을 고치기란 어렵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바보스럽거나 슬픈 삶에 젖었는가를 느꼈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내 삶을 어여삐 고치거나 일으켜세울 수 있어요. 이제 내가 좋아하는 길을 걷고,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삶을 찾으면 되거든요.


.. 나는 뒤뜰에 있는 내 텃밭에 그 노란 씨앗을 심었어요. 그러고는 작은 초록색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주었어요. 나는 날마다 물을 주고, 곁에 앉아 지켜보고, 또 서성거리며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그 씨앗에서 뭐가 자랄지 무척 궁금했어요 ..  (13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에 피자 린덴바움 님 그림을 담은 그림책 《말하는 인형 미라벨》(보물창고,2007)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꿈을 꾸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책을 읽는 나도 천천히 꿈을 꿉니다. 꿈을 이루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고 나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고 나서, 어떤 새로운 꿈을 거듭 꾸면서 하루하루 더 새롭고 싱그러이 빛내면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곱게 이어지는 삶이요, 착하게 이어받는 삶입니다. 어여삐 잇는 삶이며, 참다이 돌보며 물려받는 삶입니다.


  그림책 《말하는 인형 미라벨》에 나오는 어린이는 꿈을 꿉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두 어버이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꿈을 꾼 어린이는 꿈을 이룹니다. 꿈을 꾸기보다 팍팍하며 고된 삶을 예쁘게 돌보는 데에만 마음을 쓰는 어버이는 꿈을 꾸지 않았으니 이룰 만한 꿈이 없습니다.


.. 상상해 보세요! 어느 일요일 아침 텃밭에 나갔을 때, 드디어 인형이 다 자라 있었어요. 인형은 하얗고 예쁜 양말과 작은 가죽신을 신고 있었어요. 나는 인형이 얼마나 예쁜지 더 자세히 보려고 풀밭에 앉았어요. 바로 그때, 인형이 눈을 반짝 뜨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어요 ..  (18쪽)

 


  좋게 보살필 때에 시나브로 피어나는 꿈 한 자락이라고 느낍니다. 즐겁게 헤아릴 때에 찬찬히 피어나는 꿈 한 송이라고 느낍니다. 고맙게 맞아들일 때에 가만히 피어나는 꿈 한 줄기라고 느낍니다.


  좋은 꿈 이루고픈 삶 누리는 나날입니다. 기쁜 꿈 빛내고픈 삶 즐기는 하루입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됩니다. 좋은 말로 하루를 열고, 좋은 말을 들으며 스스로 이야기열매를 맺습니다.


  삶을 빛내는 어여쁜 꿈은 누구한테나 바로 한 가지, 꼭 한 가지, 오직 한 가지, 곱게 마음속에서 잠을 자면서 기다린다고 느낍니다. (4345.3.25.해.ㅎㄲㅅㄱ)


― 말하는 인형 미라벨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피자 린덴바움 그림,이유진 옮김,보물창고 펴냄,2007.5.10./88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 살아가는 말 89] 톺아보다

 

 한국사람 가운데에는 한국땅에서 살아가지 않는 이가 있을 테고, 한국땅에서 살더라도 한국말을 안 쓰는 이가 있으리라 봅니다. 모두 똑같은 삶은 아닐 테니까요. 나는 내가 어린 날부터 내 어버이한테서 듣고 배운 말을 쓰는 한편, 나 스스로 새로 배우거나 찾거나 살핀 말을 북돋웁니다. 나로서는 누군가 나한테 사랑스럽거나 따스히 들려주는 말이 고마우며 좋습니다.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쁜 말이란 따로 없지만, 내 넋과 얼을 따사로이 보듬도록 이끄는 말마디라면 참 좋게 여길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섯 살 적에도 말을 새롭게 배우고, 열다섯 살이나 서른다섯 살에도 말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노상 새 말을 배우고 새 삶을 일군다고 느낍니다. 마흔다섯 살이나 예순다섯 살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새 말을 익히며 새 삶을 누리겠지요. 왜 그런가 하고 따질 까닭 없이, 하루하루 새로운 나날이요, 같은 살붙이하고 같은 보금자리에서 얼크러지더라도 날마다 새로 생각하고 새로 숨쉬며 새로 이야기꽃을 피워요. 1995년쯤이었나 1998년쯤이었나, ‘톺아보다’라는 한국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을 때에는 뭣하러 이런 낱말까지 국어사전에서 캐내어 쓰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 스스로 나한테 익숙한 말 틀이나 테두리에서 안 벗어나려 하면 새 말을 못 받아들여요. ‘살피다’와 ‘살펴보다’를 옳게 가려 쓸 줄 알아도 즐겁고, 여기에 ‘톺아보다’를 넣어 내 말밭을 한껏 북돋우면 훨씬 즐거워요. 곰곰이 돌이키면, 늘 새로 생각하고 언제나 새 하루 맞이하듯 노상 새 삶을 톺아보는 무지개빛 사랑이요 꿈입니다. (4345.3.25.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2-03-25 08:13   좋아요 0 | URL
왜 이글을 쓰셨는지 알겠습니다 ^^
그러고보면 아이들만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네요.

파란놀 2012-03-25 09:1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어른들이 날마다 새롭게 말을 배울 수 있으면,
아이들도 날마다 좋은 말을 즐거이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뿌리깊은 글쓰기>라든지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같은 책을 자꾸자꾸 쓴답니다. 독자들보고 말을 배우라는 뜻보다, 어버이요 어른인 나부터 말을 제대로 배우고 싶거든요.

다만, 아직 이 뜻을 알아차린 분은 얼마 없는 듯해요 ㅠ.ㅜ 앞으로는 조금씩, 때로는 한꺼번에 확~ 그러다가 누구라도 즐거이 이 뜻을 기쁘게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