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패러독스 - 극단적인 남자들, 재능 있는 여자들, 그리고 진정한 성 차이
수전 핀커 지음, 하정희 옮김 / 숲속여우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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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남자가 할 일, 여자가 사랑할 삶
 [책읽기 삶읽기 87] 수전 핀커,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

 


 집식구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언제나 좋다고 여겼습니다. 빨래를 하면서 온갖 꿈나라를 마음껏 누빌 수 있거든요. 그런데 내 마음 갉아먹는 생각이 하나둘 스며들던 어느 때부터인가 빨래를 하면서 꿈나라 누비기하고 동떨어집니다. 빨래를 복복박박 하면서 꿈나라를 누비지 못한다면, 이 일은 무척 고됩니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따갑고 물을 만지면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춥습니다.

 

 어린 나날 어머니 도마질 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어느 노래보다 부드러운 소리요 결이며 무늬라고 여겼습니다. 늘 듣고 으레 듣는 도마질 소리이고, 냄비 보글보글 끓는 소리이며, 밥이 익는 냄새였기에, 이 소리와 냄새와 결이 내 몸으로 스며들면서 ‘집에서 일하며 나누는 즐거움’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을 아름다이 꽃피우는 생각을 어디로 뻗고 어떻게 이으면서 내 삶을 일구어야 할까 하는 데까지는 생각을 가누지 못했어요.

 

 바늘에 실을 꿰어 튿어진 데를 기우자면 한 시간은 너끈히 들여야 합니다. 올 한 해 동안 바늘을 손에 쥔 적이 있었나 곰곰이 되새깁니다. 글쎄, 없지 않았나. 바느질이든 다른 집일이든 노상 품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 집일은 없습니다. 품을 들이니 힘든 집일이 아닙니다. 기꺼이 품을 들일 만하기에 집일이요, 신나게 품을 들이면서 다 같이 아름다울 수 있기에 집살림이에요. 튿어진 데를 기우는 일을 면내 빨래집에 맡기기만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저희 옷가지를 손수 바느질하며 기우는 일을 보지도 겪지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사랑스럽게 살아가고 싶으니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삶이니 마음을 찬찬히 기울입니다. 마음을 찬찬히 기울이니 날마다 조금씩 힘을 들입니다. 꼭 이것을 하고 반드시 저것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저것을 신나게 누리는 일입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면, 나로서는 이것도 저것도 기쁘거나 신나게 맞아들이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나는 왜 기쁜 실마리를 살피지 못했을까요. 나는 왜 신나는 실타래를 붙잡지 않았을까요.


.. 어렸을 때 학습, 언어, 대인관계 능력과 자제심의 면에서 앞서던 여자아이들이 반드시 최고 지위나 최고의 수입을 보장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 여자들에게 ‘남성적’ 선택을 하도록 권하는 것은 그녀들에게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라고 부추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  (14, 362쪽)


 내가 하고픈 대로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내가 꿈꾸고픈 대로 꿈꾸는 사람일까요. 내가 살고픈 대로 삶을 짓는 사람일까요. 내가 아끼고픈 대로 아끼는 사람일까요.

 

 하루 스물네 시간에 걸쳐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지 않으나 아주 적지 않습니다. 날마다 알맞게 누리면 되고, 날마다 즐거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늘 몫을 오늘 하루만큼 짊어지면서 예쁘게 건사하면 됩니다. 살붙이 먹을 밥을 어떻게 차려야 좋을까 헤아리고, 밥을 다 먹고 홀가분하게 치워 갈무리하면 되며, 이불을 털고 방바닥을 훔치면 됩니다. 다 마른 옷가지를 개고, 새로 나온 빨래를 하면 됩니다.

 

 언제나처럼 따스한 기운 흩뿌리며 뜨는 햇살을 느낍니다. 언제나처럼 서늘한 밤바람 흐르며 지는 어스름을 느낍니다. 밤이 되기에 달과 별을 올려다봅니다. 한낮이 되기에 가장 따뜻한 볕을 온몸으로 받습니다.

 

 할 일을 생각합니다. 할 만한 일을 생각합니다. 가만히 방바닥에 드러누워 발베개를 한 채 생각해도 좋습니다. 아침에 깨어난 아이를 배에 눕히고 함께 생각에 젖어도 좋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불을 걷어 마당에서 함께 터는 동안 생각에 잠겨도 좋습니다. 아이를 곁에 두고 빨래를 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을 기울여도 좋습니다.


.. 남성은 공격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경쟁자를 제치려 하고, 계급서열에서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며, 그 위치를 지키려는 성향이 여자에 비해 더 강하다. 분노, 질투, 공격적인 언어 사용에는 남녀 차이가 없는 반면에, 도둑질과 폭력과 전쟁을 통해 주도권을 잡는 일은 대대로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 어린 남자아이들은 일찌감치 태생적으로 여자아이들보다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렇듯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교실 안에서 더 많이 돌아다니고, 부주의하며, 충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크게 외치고, 다른 아이들을 끊임없이 앞서려고 다투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다 … 경쟁과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표준 독신남성의 접근방식에 맞춰서 설계된 직장과 근무일정은 타고난 지성과 높은 교육수준과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낸 많은 여자들의 의욕을 꺾는다 ..  (52, 53, 356쪽)


 살아온 날을 되짚으면서 살아갈 날을 톺아봅니다. 오늘까지 보낸 삶을 헤아리면서 앞으로 이룰 삶을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예쁘게 살았으면 앞으로는 얼마나 어떻게 예쁜 삶이 되도록 꾸릴까를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그닥 예쁘지 않게 살았으면 이제부터 예쁜 삶이 되도록 어떻게 건사해야 즐거울까를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을 좋게 누릴 때에 좋은 손길로 좋은 밥을 짓습니다. 내가 내 일을 좋게 붙잡을 때에 좋은 눈길로 좋은 꿈을 짓습니다. 내가 내 말을 좋게 다스릴 때에 좋은 마음길로 좋은 이야기를 짓습니다.

 

 수전 핀커 님이 지은 책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를 읽습니다. 남성은 어떤 사람이고 여성은 어떤 사람인가를 찬찬히 밝히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남성이 사랑하는 삶과 여성이 사랑하는 삶은 서로 어떠한가를 곰곰이 돌아보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다만,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여성과 남성이라는 테두리에서는 달라요. 여성과 남성 또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는 삶자리에서 달라요. 한식구라 하지만, 태어난 자리와 마주하는 이웃에 따라 다른 삶길을 걸어요.


.. 그녀들은 엄청난 업무시간에 진저리를 쳤고, 구성원 변호사가 되거나 또는 샌드러처럼 일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 기업의 법률고문으로 옮긴 다음에도 여전히 무자비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결국은 일을 그만두었다 … 높은 수준의 일부 직업들이 요구하는 일에 대한 집중은 고용인들에게 마치 진공 상태에서 일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최정상의 단계에서는 일이 다른 모든 관심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직업의 성공이 제1 목표라면 이것은 아무런 불협화음도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여러 개라면 협상이 필요하다. 만일 여자들이 덜 극단적인 직업이나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녀들은 자신이 가진 우선권을 적용하면서 삶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들의 소득을 줄일지 모르지만 만족감은 높일 수 있다 ..  (219, 250쪽)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앞으로 찾을 일거리를 다르게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학교에서 다르게 배우고 다르게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남학생한테 밥하기와 집일과 아이돌보기를 알뜰살뜰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남·녀학생 모두한테 집일과 집살림을 요모조모 일러 주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남·녀 아이들 누구한테나 바느질과 뜨개질과 호미질과 낫질을 제대로 보여주거나 느끼도록 거들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앞서 집부터 사내랑 가시내를 따로 가릅니다. 사내와 가시내한테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기 앞서 계급과 울타리를 높이 쌓고 말아요.

 

 아무래도, 새로 아이들을 낳은 어른들부터 어릴 적 사랑스럽고 따사로우며 너그러운 삶을 누리지 못한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부터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으로 이끄는 어른이 없이 ‘남자이니까’와 ‘여자이니까’라는 굴레에 젖어들어야 했을 수 있어요. 사랑해야 할 삶과 사랑할 만한 사람을 어여삐 만나지 못한 탓일 수 있어요.


.. 그때 나는 도시 근교에서 중산층으로 사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벌려면 어떤 노동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수 년을 길에서 보낸 덕분에 세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아내를 대학원에 보냈으며, 자신도 성공적으로 법조계로 전업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외롭고 육체적으로 지치는 일이었으며, 그 당시의 많은 직장 풍경이 그랬듯이 99퍼센트가 남자들이었다 … 하지만 나는 여자들이 우리 아버지가 수 년 동안 몸담았던 그런 종류의 일은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버지의 수입은 다섯 식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옷가방을 나르고 혼자 떠돌아다니면서 가족과 친구를 거의 만나지 못하는 일을 여자들이 하려고 할까? … 더 적은 시간을 일하기로 선택한다거나 더 만족스럽지만 임금은 더 적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비록 그 때문에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고 해도, 여자들이 성적 편견의 희생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달리 한번 생각해 보자. 여자들의 직업과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사회는 평등한 기회의 귀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  (8, 11∼12, 354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따스한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로 저희 삶을 일굴 수 있기를 꿈꿉니다. 이리하여 나는 아이들과 나란히 좋은 꿈과 생각으로 나날이 기쁘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내가 보는 좋은 햇살은 아이들이 보는 좋은 햇살입니다. 내가 마시는 싱그러운 물은 아이들이 마시는 싱그러운 물입니다. 내가 쓰다듬는 보드라운 억새풀은 아이들이 쓰다듬는 보드라운 억새풀입니다. 내가 지내는 따사로운 보금자리는 아이들이 지낼 따사로운 보금자리예요.

 

 어버이로서 집숲을 가꾸면서 집마당을 살뜰히 돌보면, 어버이부터 즐겁고, 이 즐거운 터전에서 아이들이 즐거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맑고 밝게 노래를 부르면, 어버이부터 신나며, 이 맑고 밝은 노래를 듣는 아이들은 예쁘게 노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의 패러독스》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빛줄기를 곰곰이 파헤치는 이야기책입니다. (4344.12.19.달.ㅎㄲㅅㄱ)


― 성의 패러독스 (수전 핀커 씀,하정희 옮김,숲속여우비 펴냄,2011.4.21./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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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잠들기

 


 이틀째, 산들보라가 아버지 무릎에서 잠든다. 일곱 달 함께 살아오며 드디어 이렇게 잠이 든다. 아이는 졸음이 쏟아져 이래저래 눈가가 벌개지거나 악을 쓸 무렵, 누구라도 업어서 포대기로 싸고 천천히 거닐거나 노래를 부르면 사르르 잠든다. 어머니가 업든 아버지가 업든 할아버지가 업든 할머니가 업든, 누구라도 업어 주면 널쩍한 등판에서 포근히 잠든다. 이렇게 업힌 채 새근새근 잠들던 아이가 스스로 졸음에 겨워 업히지 않은 채 무릎에서 잠든다.

 

 처음 무릎에서 잠들던 때에는 아버지 혼자 아이를 보았기에 한참 가만히 앉히고 토닥이다가 살며시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힌 다음 다른 이불을 덮었다. 두 번째로 맞이한 ‘무릎 잠들기’는 뜨개질하는 옆지기를 불러 사진 하나 남겨 달라 이야기한다. 무릎에서 잠든 어린 동생을 어머니가 사진으로 담으려 하니, 옆에서 신나게 춤추며 놀던 첫째 아이가 아버지 다른 무릎에 척 하니 올라선다. 녀석아, 너는 십오 킬로그램이고 네 동생은 십일 킬로그램이야. 게다가 너는 아버지 무릎에서 방방 뛰잖아.

 

 무릎에서 잠드는 둘째 아이를 받치는 오른손이 좀 저린다. 엊그제처럼 살며시 바닥에 누인다. 한동안 잘 잔다. 둘째도 앞으로는 무릎 잠들기를 자주 보여줄 테고, 무릎 잠들기를 지나면 저희 누나처럼 졸음이 가득 쌓여도 잠을 미루며 더 놀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때를 맞이할까. 대견스레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며 없는 기운을 차린다. (4344.12.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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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루빛 글쓰기

 


 누런쌀을 가루로 빻고, 누런쌀을 볶아 가루로 빻는다. 이 가루를 국그릇에 알맞게 담아 작은 상에 올린다. 옆지기가 이 가루를 먹고, 옆지기가 이 가루를 물에 알맞게 섞어 아기한테 먹인다. 첫째 아이는 제 어머니 곁에 앉아 이 가루를 먹는다.

 

 빛깔만 고운 가루일까. 따스한 손길 듬뿍 담긴 가루일까. 햇살과 바람과 맑은 물과 흙내음 고루 밴 가루일까.

 

 곡식가루는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곡식가루가 새로 불어넣은 숨은 사람을 살린다. 새로운 숨으로 살아나는 사람은 씩씩하게 두 발을 디디며 하루를 연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잠들던 꿈누리에서 깨어나며 빛나는 새날을 맞이하겠지. 나이 마흔이 된 어른이든 나이 여든이 된 어른이든,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언제나 빛나는 새날을 나란히 맞아들이겠지.

 

 오늘은 읍내 장날. 네 식구 함께 마실을 다녀올 수 있을까. 마실을 다닌다면 어떤 먹을거리를 장만하면 좋을까. 톳이나 물미역을 장만할까. 다른 싱그러운 먹을거리로 무엇을 헤아리면 좋을까.

 

 달게 잠을 자고 일어날 새 아침에, 어제 하루 쌓인 찌뿌둥한 기운이 말끔히 씻기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다. 내 몸과 마음에 고운 가루빛처럼 고운 생각빛이 천천히 움을 트며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다. 나 스스로 따스한 생각빛을 키우면서 따스한 나날을 누릴 때라야, 내 손으로 짓는 밥이 따스할 수 있다. 고운 가루빛마냥 고운 생각빛을 북돋울 때에 비로소, 내 손을 거쳐 태어나는 글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하고, 따사로이 생각하며, 넉넉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자. 살아가는 결 무늬 내음 빛깔이 찬찬히 어우러지면서 꽃이 된다. 어떤 꽃이 되고픈지는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4344.12.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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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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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버는 어른과 일하는 어린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3] 백남호,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철수와영희,2012)

 


 아침은 언제나 지난밤 옷가지들 빨래를 하면서 엽니다. 밤새 나온 둘째 오줌기저귀랑 아침에 눈 똥 묻은 기저귀랑 바지랑, 첫째가 엊저녁 쉬를 누다 버린 속옷이랑 치마를 빨래합니다. 뜨거운 국에 손을 척 집어넣으며 크게 덴 둘째는 왼손을 붕대로 친친 감습니다. 붕대를 하루에 두 차례 갈며 이 붕대를 함께 빨래합니다. 붕대를 세 벌 갖고 감으니까 새 붕대로 갈 적마다 바지런히 빨래해야 합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날마다 여러 차례 빨래하면서 막상 내 옷은 여러 날에 한 번 겨우 빨래합니다. 두 아이를 날마다 씻기면서 날마다 새 빨랫거리 쌓이지만, 정작 나는 며칠에 한 번 머리 감고 씻으며 내 빨랫감을 내놓습니다.

 

 나는 내 옷도 내가 빨고 집식구 옷도 내가 빱니다. 나는 내 밥도 내가 차리고 집식구 밥도 내가 차립니다. 나는 내가 지내는 살림집을 내가 스스로 쓸고닦으며, 내가 손수 걸레를 빨아 방바닥이며 책걸상이며 개수대며 훔칩니다.

 

 아, 집안일이란 날마다 쉼없이 하고 또 해도 끝나지 않는 법. 그러나 이만큼 하더라도 어설프고 어수선한 티가 물씬 나는 법.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버지 집일을 어느 만큼 덜어 주려나 꿈꿉니다. 아이들이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이 되면, 빨래하기랑 밥하기랑 쓸고닦기를 웬만큼 거들어 주려나 바랍니다. 아니, 아이들은 저희가 빨래하기랑 밥하기랑 쓸고닦기를 몸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믿어 봅니다. 저희 몸을 움직이고 저희 마음을 기울이며 저희 삶을 저희 손으로 일구는 기쁨을 누리리라 믿어 봅니다.


.. 우리 아빠는 버스 정류장에서 떡볶이를 팔아. 순대랑 어묵이랑 김밥도 팔지. 출출한 저녁 시간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해. 아빠가 바쁠 때는 눈코 뜰 새도 없어. 음식 담아 주랴 먹은 거 치우랴 양념 더 넣으랴,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대 ..  (20∼21쪽)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집식구 빨래를 한 가득 합니다. 빨래는 마당에 이은 빨래줄에 넙니다. 그제는 바람이 꽤 모질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한낮에도 바람이 퍽 드세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잔잔합니다. 새벽에 쉬하러 마당으로 나와 대문을 열고 논둑에 서며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에도 바람은 안 불었습니다.

 

 후박나무랑 처마에 이은 빨래줄에 잘 빨고 잘 턴 기저귀를 살그머니 넙니다. 바람이 살랑 스칩니다. 빨래집게로 집습니다. 빨래를 널 때면 으레 첫째 아이가 쪼르르 달려나와 거들었는데, 오늘 아침은 아직 꿈나라입니다. 뭐, 어때. 언제나 나 혼자 하던 일인걸. 기저귀를 빨래줄에 너니 바람은 불지 않습니다. 햇볕이 따뜻합니다. 오늘은 빨래가 잘 마르겠는걸, 하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켭니다. 빨래를 다 널고 방으로 들어오니 둘째는 새 오줌기저귀 하나 내놓습니다. 음, 빨래를 다 하고 난 말끔한 기운을 금세 지우시는군.

 

 새 오줌기저귀는 빨지 않습니다. 앞서 빨래하며 나온 헹굼물을 한 바가지 대야에 받았기에, 대야에 새 오줌기저귀를 담습니다.

 

 방바닥에 깔던 담요를 걷습니다. 방바닥을 한 차례 비질합니다. 담요를 들고 마당 끝에 서서 탕탕 텁니다. 손바닥으로 펑펑 두들깁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납니다. 이럭저럭 다 털고 들어와서 바닥에 곱게 깝니다. 둘째는 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드는데, 어느새 첫째가 깨어납니다. 이윽고 둘째 또한 얼마 잠들지 못하고 깨어나며 웁니다. 아침 아홉 시 십이 분.

 

 새벽 즈음 일어나 아침 일찍 회사로 ‘일하러’ 나가는 여느 아버지들은 집에서 여느 아이 어머니가 몇 시쯤 일어나서 어떤 집일을 건사하고 어떻게 아이들을 보살피며 어떻게 밥을 차리는가를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깨닫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요. 겪지 않으면서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깨닫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으려나요.


.. 우리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깨끗하게 빨아 주지. 뜯어진 옷도 깁고, 얼룩도 지우고, 구겨진 옷도 다려서 빳빳하게 펴지. 아빠는 손이 빨라. 세탁기 돌리고, 다리미질하고, 재봉틀로 옷도 고쳐. 엄마는 발이 빨라. 빨랫감을 모아 오고 다시 가져다주지. 아빠는 세탁 담당, 엄마는 배달 담당, 나는 잔심부름꾼이야.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자기 옷보다 더 소중하게 다뤄 ..  (32∼33쪽)


 아홉 시 이십 분. 첫째한테 아침에 일어났으면 이 그림책이라도 보렴, 하고 말합니다. 첫째는 재미없는데, 하면서 그림책을 받고는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을 아이가 아는 말로 구시렁구시렁거립니다. 둘째는 누나가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목을 죽 늘어뺍니다. 둘째야, 그러면 누나한테 가 보렴, 하고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둘째는 앙 하고 웁니다. 머리를 그만 살짝 콩 찧었거든요. 그러나 누나가 노래부르며 이불을 새로 여며 주니 잘 놉니다. 그런데 누나가 또 다른 데 가니 앙 하고 웁니다. 아이를 품에 안아 엎드리게 합니다. 누나가 노래를 부르면서 놉니다. 둘째가 좋다고 소리지르면서 방바닥을 팡팡 두들깁니다. 자, 그러면 이제 아버지 무릎에서 벗어나 네가 가고픈 대로 기어 보렴.

 

 첫째는 여느 사람들이 몸을 씻으며 앉는 작은 걸상을 들고 와서 올라섭니다. 아이는 춤노래를 보여줄 때에 으레 요 씻는걸상에 올라서서 발을 구르면서 노래를 부르고 종을 울리며 하모니카를 불러요.

 

 아이한테 선물로 준 작은 디지털사진기를 들고는 아이가 춤노래를 보여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습니다. 네 살 아이는 아버지가 날마다 수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노니까 저 혼자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잘 놉니다. 네 살 아이는 이 디지털사진기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을 줄 알아요. 한창 찍는데 몇 초 안 남습니다. 아이가 이 사진기를 갖고 놀며 금세 메모리카드 4기가가 그득 찹니다.


.. 우리 엄마는 음식 만드는 일을 가장 좋아해. 보글보글 국 끓이고, 달강달강 반찬 만들고, 칙칙폭폭 밥 짓는 일이 마냥 신난대. 식구들에게 몸에 좋고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래. 엄마가 집에 있다고 가만히 쉬고만 있을까? 우리가 어질러 놓은 방 청소해야지, 더러워진 옷도 빨아야지, 시장에 가서 장도 봐야지, 하루 종일 우리 엄마는 바쁘고 바빠 ..  (52∼53쪽)


 아침에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어르면서, 오늘은 또 어떤 밥을 차릴까 머리를 기울이다가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참말 오늘날 사람들이 “일을 한다”고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참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렇게 느낍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내 살림을 꾸리고 내 삶을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돈을 얼마쯤 벌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때에 버는 돈은 ‘큰 돈이나 작은 돈’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버는 돈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삶을 꾸리거나 누리거나 일굴 만한 돈’이에요.

 

 스스로 좋다고 여길 만한 일을 찾는 사람은 ‘이 일이 내가 좋아할 만하며 내 삶을 가꿀 만한가’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돈벌이가 얼마나 되느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예 안 따지지는 않겠으나 첫째나 둘째 까닭으로 삼지 않아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내 삶을 사랑하면서 아낄 만한 내 좋은 일’이 되느냐를 살핍니다.


.. 우리 엄마는 멀리 베트남에서 왔어. 아빠랑 결혼해서 우리 나라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대. 말도 안 통하고, 사는 모습이 엄마 나라와는 모두 달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우리 말도 잘하고 시장에서 물건값도 잘 깎아. 엄마랑 시장에 가면 내가 가끔 엄마 통역을 해. 엄마에게 아직 어려운 우리 말이 있거든. 나는 우리 말도 잘 하고 베트남말도 잘 해 ..  (61쪽)


 백남호 님이 빚은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모두 열여섯 가지로 나옵니다.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열여섯 가지뿐이겠습니까만, 십육만 가지이든 천육백 가지이든, 온갖 일 가운데 열여섯 가지를 추려서 보여줍니다.

 

 빨래집을 꾸리고 떡볶이를 팔며, 짜장면을 나르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그림책에 나온 모습으로 읽으며 곰곰이 돌이킵니다. 참말 이 나라에는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신 딸아이와 아들아이와 사랑스레 살아가고 싶어서 “일을 찾고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이러한 이야기들을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소설책에서 다룬 일은 드뭅니다.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에서도 ‘공장에서 부품을 맞추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을 좀처럼 다루지 못해요.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자락을 살뜰히 담아내지 못해요. 소설책이든 시집이든 ‘호미와 괭이와 낫을 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온삶을 조곤조곤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건드리는 사람은 있어요. 보여주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살아내며 함께 웃거나 우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사람이 적어요.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라고 해서 빈틈없이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또한 아쉬운 대목이 있고 모자란 구석이 있습니다. 그림을 조금 더 잘 그릴 수 있었고, 더 자잘하고 하찮다 할 자그마한 이야기를 더 따스하게 돌아보며 담을 수 있었어요. 낱말 하나 더 다스리거나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많은 옷을 빨아야(34쪽)”가 아니라 “옷을 많이 빨아야”처럼 적어야 올바르고, “계란찜과 달걀말이(54쪽)”를 섞어서 쓴 말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는 참말 ‘대학교와 신문·방송에서 자잘하고 하찮다고 여기며 거의 안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루는 일터’ 사람들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자잘하다고 푸대접하는 대목을 더 살피고, 하찮다며 거들떠보지 않는 구석을 더 사랑하면서 그림과 글을 엮을 수 있었습니다.


.. 어느 날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왔어. 엄마가 다니는 회사가 사정이 안 좋다며 엄마를 쫓아냈대. 함께 일하던 엄마 친구들도 같이 쫓겨났어. 엄마랑 엄마 친구들이 계속 일하게 해 달라고 말해도 회사에서는 엄마 말을 안 들어 줘. 그래서 엄마는 친구들이랑 함께 회사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싸우고 있어. 텔레비전에서는 엄마가 아주 나쁘고 무서운 사람처럼 자꾸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 우리 엄마는 집에서 방구 뿡뿡 뀌는 착한 엄마란 말이야 ..  (74쪽)


 나는 집에서 방귀 뿡뿡 뀝니다. 옆지기이자 아이 어머니도 집에서 방뀌 뽕뽕 뀝니다. 두 아이도 방뀌 봉봉 뀝니다. 다들 착한 사람이고, 모두 고운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꿈대로 집에서 살림을 도맡으면서 갖은 일거리를 붙잡습니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스스로 좋아하는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사랑에 걸맞게 저희 꿈을 참다이 일구는 길을 즐거이 걷겠지요.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온누리 아이들 모두 “돈을 버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보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돈을 버는 사람보다 삶을 사랑하면서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니까, 어버이인 나부터 아이들하고 돈을 더 버는 나날이 아닌 아이들이랑 알콩달콩 일놀이를 함께 즐기는 나날을 보내고 싶습니다. (4344.12.18.해.ㅎㄲㅅㄱ)


―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철수와영희 펴냄,2012.1.7./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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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풀먹기

 


 두 아이 어머니요 내 옆지기가 밥먹기를 바꾼다. 이제부터 날푸성귀만 먹기로 밥먹기를 바꾼다. 쌀밥을 먹더라도 날푸성귀를 많이 먹던 옆지기는 당근을 짠 물이랑 날무와 날배추와 날곡식가루를 먹기로 한다. 날푸성귀를 먹는 옆지기는 예전부터 둘째 갓난쟁이 산들보라한테 무 한 조각이나 배추 한 잎을 쥐어 주곤 했다. 이제 일곱 달쯤 함께 살아가는 갓난쟁이 산들보라는 제 어머니가 건네는 무조각이나 배춧잎을 한손으로 꼭 움켜쥐며 놀다가는 입으로 스윽 넣는다. 아주 조그맣고 앙증맞은 앞니가 둘 났다고, 요 앙증맞은 앞니로 무를 갉아먹곤 한다. 요 앙증맞은 앞니로 배추를 잘라 입에 넣었다고 캑캑거려서 손가락으로 빼내 주곤 한다. 네 좋은 어머니가 날푸성귀를 즐겨먹으니 너도 날푸성귀를 좋아할 수 있겠니. 우리가 이 시골집에서 뒤꼍 빈터를 알뜰살뜰 돌보면서 풀누리를 이룬다면, 너와 어머니는 흙땅을 마음껏 밟으며 몸을 살찌우는 풀을 뜯어서 먹을 수 있겠니. 날푸성귀를 먹고 배춧잎과 무조각을 건네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네가 요즈음 누는 똥에는 온통 풀기운이 배는구나. 네 아버지는 네 똥기저귀를 아침저녁으로 신나게 빨아 후박나무 빨래줄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킨단다. (4344.12.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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