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질 할래 어린이

 


  도서관에 새로 들인 책꽂이를 자리잡느라 못질을 한다. 헌 못은 빼고 새 못을 박는다. 곁에서 말끄러미 지켜보던 아이는 아버지가 망치를 놓고 낑낑대며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책꽂이를 날라 자리를 잡는 동안 슬쩍 망치를 들고 못을 쥐며 망치질 놀이를 한다. 그래, 너도 못질을 하고 싶니? 아이가 이곳저곳에 톡톡톡 못질을 한 모습을 보니 썩 잘 한다. 아버지는 못질을 하면 한 번쯤 손가락을 쿵 하고 내리찍는데, 넌 재미있게 잘 하는구나.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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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03 10:57   좋아요 0 | URL
벼리가 머리 자르고 나니, 훨씬 더 큰 것처럼 보이는군요.
키가 좀 컸지요? 예쁘네요...

파란놀 2012-04-03 16:12   좋아요 0 | URL
이제 아마 1미터가 넘을 듯해요~
 


 내 사랑 손바닥책

 


  손바닥책 담은 상자를 끌른다. 열 차례 남짓 살림집을 옮기면서 손바닥책을 꾸리는 일이 퍽 힘들었다. 처음에는 끈으로 묶어서 날랐는데, 책짐 나르기를 거들던 사람들은 으레 책뭉치를 밟거나 던진다. 처음부터 책뭉치를 밟거나 던지는 사람도 있으나, 일이 하도 힘들어 나중에 가서야 밟거나 던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책뭉치를 밟거나 던질 수 없다. 밟거나 던질 책뭉치라 한다면, 처음부터 이들을 건사하지 않을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숱하게 살림집 옮기며 어느 책보다 손바닥책이 크게 다쳤다. 더 작아서 더 아껴야 할 책이요, 더 가벼워 더 잘 다치는 책이기에, 손바닥책이 찢어지거나 눌린 모습을 볼라치면 눈물이 난다. 상자에 구겨지지 않게 손바닥책을 챙겼는데, 책짐을 나르던 일꾼들은 책뭉치뿐 아니라 책상자마저 휙휙 던졌다. 책상자를 그리 던질 줄 모르던 나로서는 깜짝 놀라지만, 예닐곱 시간 등짐을 져서 날라야 하니, 기운이 빠져 어쩌는 수 없겠지 하고 받아들였다. 어느덧 여섯 달 되었나. 이제 아련한 옛일처럼 느끼는데, 손바닥책 담은 상자를 끌러 한쪽으로 눌린 책 모습을 보니, 누구를 탓할 수 없고, 그저 안쓰러이 쓰다듬을밖에 없구나 싶다.


  새로 얻은 커다란 책꽂이에 손바닥책을 차근차근 꽂는다. 제자리를 잡는 책들이 기지개를 켠다. 하루 한두 시간 짬을 내기에 빠듯하지만, 이동안 바지런히 책상자를 끌르자고 다짐한다. 어린 두 아이를 보살피는 사이사이 더 넉넉히 품을 못 들여 아쉽다 여길 수 없다. 어린 두 아이를 옆지기가 홀로 맡는 한두 시간을 며칠에 한 번씩 얻을 수 있는 일을 고맙게 여길 노릇이다.


  신구문고, 정음문고, 을유문고, 박영문고, 중앙문고, 전파과학문고, …… 그저 꽂기만 한다. 이 손바닥책들은 같은 크기에 같은 모양새요, 번호가 차곡차곡 붙는다. 아직 번호까지 맞추어 갈무리할 틈은 없다. 상자에서 벗어나 숨통을 트도록 할 뿐인데, 이렇게 해 주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하고 좋다. 사랑스러운 책도, 사랑스러운 살붙이도, 사랑스러운 벗님도, 모두모두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내어 씩씩하고 맑게 살아가면 참으로 기쁘겠구나 하고 느낀다. 스스로 좋게 품는 마음으로 스스로 좋게 누리는 삶이 되리라 믿는다.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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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03 10:59   좋아요 0 | URL
손바닥책이 문고판 책을 말씀하시는건가요?
저도 30년 가까이 된 손바닥 책이 저 안켠에 있는데, 계속 가지고 있게 될거 같아요.
어릴적 몇번씩 탐독했던 책이라서 소중하거든요. 참 많이 가지고 계시네요.
정갈하게 꽂힌 모습이, 좋습니다.

파란놀 2012-04-03 16:11   좋아요 0 | URL
다 꽂아 놓고 오래오래 즐기려고요.
'문고본'이나 '문고판' 모두 일본사람이 지은 말이에요.
저는 한국사람답게 새로 이름을 빚어 이렇게 말합니다~

카스피 2012-04-03 18:00   좋아요 0 | URL
손바닥 책이라 참 정겨운 말이네요.된장님 말씀처럼 문고본은 일본 사람들이 지은 말이지요.워낙 서구의 지식 습득에 열중했던 일본인들은 책 가격을 줄이면서도 내용은 그대로 들어갈수 있는 손바닥 책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정말 축소지향의 일본이이지요.
그나저나 신구문고, 정음문고, 을유문고, 박영문고, 중앙문고, 전파과학문고 참 오랫만에 들어 보는 이름들이네요.저도 예전에 많이 있었으나 이사 몇번에 어디로 다들 사라졌는지... ㅜ.ㅜ
저런 문고본은 이젠 헌책방에서도 자주 보기 힘들더군요.

파란놀 2012-04-04 07:31   좋아요 0 | URL
사는 사람이 그닥 안 많으니
헌책방에서도 드문드문 들어와요
 

찻집과 커피숍
[말사랑·글꽃·삶빛 3] ‘세 가지 말’ 쓰는 한국사람

 


  한국사람은 세 가지 말을 씁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옳게 깨닫지 못합니다만, 한국사람은 세 가지 말을 쓰며 살아갑니다. 첫째,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씁니다. 둘째, 한국사람은 한자말을 씁니다. 셋째, 한국사람은 미국말을 씁니다.


  다시금 말하자면,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이라고 여기는 한국말’을 씁니다. 한국사람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쓰는 한자말’, 곧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한자말로 삼아 씁니다. 한국사람은 영국 영어 아닌 미국 영어, 곧 ‘미국사람이 쓰는 말’인 미국말을 씁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말 그대로 한국말이라 할 테지만, 오늘날 한국사람 한국말은 참다이 한국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외국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익힌다 할 때에는 ‘한국말 아닌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무척 힘들어 합니다. 외국사람은 ‘한국말’에다가 ‘한자말’이랑 ‘미국말’을 함께 배워야 하는 만큼, 자그마치 세 나라 말을 한꺼번에 익혀야 해요. 이는 서양사람이 일본말을 익힐 때에 한자까지 익혀야 하느라 힘들어 하고, 중국말을 익힐 때에도 한자를 나란히 익혀야 하니 힘들어 하는 일하고 같습니다.


  말만 배울 때에는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힘들지 않아요. 말을 담는 글까지 함께 배우려 하니, 글이 한 갈래가 아니라 힘들어 합니다. 일본사람은 히라가나하고 가타가나만 써도 넉넉하지만, 여러모로 한자가 깃들면서 곱배기로 글을 익히고 맙니다. 중국사람도 이와 같아요. 그래서, 중국사람 가운데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한자’를 모르고 ‘중국말’을 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거꾸로, 한국에도 ‘한글’을 모르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아직 꽤 있어요.

 

 ㄱ. 한국말
 ㄴ. 한자말
 ㄷ. 미국말

 

  무엇보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이 쓰는 말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말을 모르고도 말을 한다지만, 좀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을는지 모르는데, 참말 말을 모르고도 말을 하는데, 스무 살이 되건 서른이나 마흔이나 쉰 살이 되건, 한국사람은 스스로 말을 옳고 똑똑히 익히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옳게 알지 못하는 스물이나 서른 살이라 한다면, 이 나이에 사랑하는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은 뒤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말을 익히지만, 이에 앞서 제 어버이한테서 말을 익혀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 말투와 말씨를 물려받아요. 제 어버이가 옳고 바르게 말하는 매무새라면 아이들 또한 옳고 바르게 말하는 매무새예요. 제 어버이가 핀란드사람이면 핀란드말을 물려받아요. 제 어버이가 몽골사람이면 몽골말을 이어받아요. 제 어버이가 경상도사람이면 경상도말을 물려받겠지요. 제 어버이가 서울사람이면 서울말을 이어받을 테고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그릇된 말투로 말을 하더라도 ‘그릇된 줄’ 모르고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거칠거나 일그러진 말글을 일삼더라도 ‘거칠거나 일그러진’ 줄 모르며 이어받습니다. 아이들이 뇌까리는 막말은 모두 어른들이 으레 뇌까리는 막말이에요. 그러니까, 요즈음 아이들이 바르고 참다우며 좋고 보드라이 말하기를 바란다면, 어른들부터 누구나 바르고 참다우며 좋고 보드라이 말하도록 삶을 고치고 바로잡으며 추슬러야 합니다.


  마흔이나 쉰 살이 되어도 내 말글을 다스리지 못하면, 또 예순이나 일흔 살이 되어도 내 말글을 다스리지 못하면, 내가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한테 잘못된 말투나 뒤틀린 말씨를 물들입니다. 귀여운 손자 손녀를 만난 자리에서 ‘엉터리로 뿌리내린’ 말투를 들려주면 귀여운 손자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서 ‘엉터리로 뿌리내린’ 말투를 배워요. 일흔이나 여든 살 나이라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을 옳게 살피고 바르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한테 슬픈 모습을 물려줄 뿐 아니라, 비틀리거나 일그러지거나 잘못된 말로 살아가는 어른부터 스스로 비틀리거나 일그러지거나 잘못된 매무새가 몸에 박힌 채 떨어지지 않으니 더없이 슬프거든요.

 

 ㄱ. 찻집
 ㄴ. 다방
 ㄷ. 커피숍

 

  한국사람은 세 가지 말을 쓴다고 밝혔습니다. 첫째, 한국말로는 ‘찻집’입니다. 둘째, 한자말로는 ‘다방(茶房)’입니다. 셋째, 미국말로는 ‘커피숍(coffee shop)’입니다. ‘차’라는 말은 ‘茶’라는 한자라 하지만, “차를 마셔요” 하고 말하는 사람 가운데 이 낱말이 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차는 그냥 ‘차’입니다. 그러나 ‘다방’이라 할 때에는 달라요. ‘다방’이 무엇인지 알자면 ‘다’와 ‘방’이 어떤 낱말인가를 새롭게 새겨야 합니다. ‘커피숍’도 이렇게 말마디를 하나하나 뜯어 살펴야 합니다.


  빵집을 두고 ‘빵집’이라 하면 빵을 파는 곳입니다. ‘제과점(製菓店)’이라 하면 낱말을 뜯어야 합니다. ‘베이커리(bakery)’라 할 때에도 새삼스레 낱말을 뜯어야 해요. 언제부터인지 스며든 ‘브런치(brunch)’라는 미국말 또한 낱낱이 뜯어야 합니다. 한국사람은 한자말로 ‘점심(點心)’이라 했지만, 예부터 익히 ‘낮밥’이라고들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침-낮-저녁’이듯 ‘아침밥-낮밥-저녁밥’이기 때문입니다. 시골 흙일꾼만 ‘낮밥’이라 말하지 않았어요. 말놀이 삼아 ‘아점’이라고도 했는데, 옳게 말놀이를 했다면 ‘아낮’이라 해야 올바르겠지요. 그러니까, ‘브런치’는 한국말 아닌 미국말이면서 한국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쓰는 낱말입니다. ‘점심’이나 ‘다방’이나 ‘제과점’은 한국말 아닌 한자말이지만, 한국사람 스스로 여느 한국말을 잊은 채 이냥저냥 쓰는 낱말입니다. 이리하여, 한국말을 배우려 하는 외국사람은 이 낱말들을 모조리 외워야 합니다. 세 갈래 말을 하나하나 외우면서 한국사람하고 사귀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옳게 살피지 못하고 제대로 가누지 않은 나머지, 이제 ‘커피숍’하고 ‘다방’하고 ‘찻집’은 다르다 여기는 사람이 생깁니다. ‘낮밥’이랑 ‘점심’이랑 ‘브런치’는 다르다고 여기는 사람이 생깁니다. 이와 함께, ‘부엌’이랑 ‘주방(廚房)’이랑 ‘키친(kitchen)’은 모두 다르다 여기는 사람이 생겨요.


  한국사람 스스로 틀을 세웁니다. 서양에서 새로 들어온 무언가를 문화나 문명으로 누릴 때에는 서양에서 쓰는 낱말을 써야만 한다고 여깁니다.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서양 문화나 문명 또한 서양말을 고스란히 살려야 한다고 여깁니다.


  한국사람은 겉모습은 한국사람이지만,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나누던 삶과 매무새를 스스로 잃습니다. 낱말도 잃지만, 낱말을 엮는 말투와 말씨 또한 잃습니다. 한국말에는 ‘현재진행형’이나 ‘과거분사’ 꼴이 없는데, 영어를 배우고 외국말을 익히면서 그만 ‘현재진행형 번역 한국말’이나 ‘과거분사 번역 한국글’을 써요. 일본사람이 일본말을 하며 붙이는 ‘の’를 섣불리 ‘-의’라는 토씨로 바꾸어 아무 곳에나 쓰는데다가, 미국사람이 미국땅에서 미국 이웃이랑 주고받을 때에 쓰던 미국말을 거침없이 받아들입니다. 중국사람이 중국땅에서 중국 이웃이랑 주고받거나, 일본사람이 일본땅에서 일본 이웃이랑 주고받던 한자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맞아들입니다.

 

 사랑방 안방
 곳간 뒷간

 

  곰곰이 생각하면, 한국말에는 ‘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느 고을에서 여느 흙을 일구던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는 ‘방’이 없었어요. 한자말로 ‘초가삼간’이라 했어요. 여느 사람들은 한자를 안 쓰고 한국말만 썼으니, 여느 사람한테는 그저 ‘풀집’이지만, 여느 사람을 바라보던 지식인과 권력자는 중국글을 빌어 ‘草家三間’이라 적었습니다. 곰곰이 옛 흙집을 헤아립니다. 옛 흙집에는 참말 ‘방’이 없습니다. 중국글 ‘草家三間’처럼, 한국땅 여느 한국사람 살림집은 ‘간(칸)’만 나눕니다. 곳간, 뒷간, 정지간처럼 이야기했어요. ‘사랑방’이나 ‘안방’은 기와를 얹은 집에서 살아가던, 돈과 이름과 힘이 있던 사람들 살림새입니다. 이들은 중국글을 들여와서 누리던 사람이요, 중국글을 들여와 중국글로 집살림을 가리켰습니다. 이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늘날 아파트에는 ‘중국글인 한자’ 아닌 ‘서양글인 영어(또는 미국말)’로 이름을 붙입니다.


  나한테는 외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온 벗이 없어 잘 모릅니다만, 한국에 찾아와 한국사람을 사귀는 외국사람은 여러모로 머리가 아프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하나를 보러 간다 할 때에도, 한국사람은 ‘영화’라는 말마저 안 써 버릇해요. ‘무비’에다가 ‘씨네’라고까지 합니다. 한국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노래’라는 말을 안 쓰고 ‘음악(音樂)’이라는 한자말이랑 ‘뮤직(music)’이라는 미국말을 써요. 노래를 조금 손질하는 일, 이를테면 ‘노래고치기’를 놓고 예전에는 ‘편곡(編曲)’이라는 한자말로 가리켰지만, 요사이는 미국말 ‘리메이크(remake)’를 무척 널리 씁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한국땅 삶자락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한국땅에서 좋은 한국사람을 동무나 이웃으로 사귀면서 내 넋과 얼을 아름다이 빛내거나 북돋우는 길을 살피지 않습니다.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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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03 11:00   좋아요 0 | URL
사방으로 찔리는 좋은 글이세요...
배워온 것도, 지금 접하고 읽는 것들도 다 섞인 말들이라 어렵네요. ㅠ

파란놀 2012-04-03 16:12   좋아요 0 | URL
워낙 모두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좋게 다스리기'란 어려울 노릇이지만,
'좋게 다스리는 삶과 말'을
이야기하거나 생각하지 않으면
그대로 굳겠지요...
 


 열여섯 살 푸름이 책읽기

 


  노래꾼이 되고 싶다는 뜻을 당차게 밝히는 열여섯 살 푸름이는 노래솜씨 겨루는 잔치마당에서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를 목청껏 뽐냅니다. 열여섯 살 푸름이는 열다섯이나 열네 살 적에도 어른노래를 마음껏 뽐냈을 테지요. 열세 살이나 열두 살 적에도 어린이노래보다 어른노래를 한껏 즐겼을는지 모릅니다.


  열네 살 푸름이가 즐길 만한 푸른노래는 있는지 없는지 아리송합니다. 아마 없을 테지요. 열다섯 살 푸름이가 누릴 만한 푸른노래로 무엇이 있나 알쏭달쏭합니다. 아마 어른노래를 불러야 하겠지요. 내가 푸름이였던 스무 해 남짓 앞서,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에서는 동무들이 ‘어른노래 테이프’를 갖고 다니며 들으면 ‘소지품 검사’를 해서 빼앗았습니다. ‘푸름이가 이런 노래를 들으면 안 된다’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문세라든지 이선희라든지 동물원이라든지 들국화라든지 김수철이라든지 이지연이라든지 김완선이라든지 민해경이라든지 전영록이라든지 서태지라든지 …… 이런저런 대중노래, 곧 어른노래를 중·고등학교 푸름이가 듣거나 부르는 일은 ‘교칙 위반’이면서 푸름이답지 않다고 했습니다.


  내 푸르던 지난날, 푸름이인 우리들이 마음껏 즐길 노래를 가르치거나 들려준 교사나 어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갓 전교조가 생길 무렵, 전교조에서는 중·고등학교 푸름이가 즐길 노래를 지어야 한다며 여러모로 애쓰곤 했는데, 이제 전교조가 합법 노조가 되었으나, 막상 지난날처럼 푸른노래를 지으려 애쓰는 몸짓이나 움직임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예부터 합법 노조였던 곳 교사나 어른이라고 푸른노래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돌이키면, 예나 이제나 푸른노래는 이 땅에 없을 뿐 아니라, 어린이노래조차 싱그럽고 아름다이 짓는 삶가락이 없구나 싶어요. 오늘날 어른들은 오늘날 아이들한테 어떤 어린이노래를 들려주는가요. 아이들이 어떤 말로 어떤 넋을 빛내면서 어떤 삶을 일구도록 이끄는 노래를 지어서 들려주는가요.

 

 ......


  잠자리에서 두 아이를 갈마들며 재우느라 목이 살짝 쉴 만큼 어린이노래를 부릅니다. 몇 가락 부른대서 아이들이 잠들지 않습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끊이지 않고 고이 부릅니다. 이원수 님이 쓴 동시에 가락을 붙인 어린이노래만 두 아이를 팔베개로 갈마들어 눕히며 조용조용 부릅니다. 어린이노래는 어린이한테 아름답습니다. 어린이한테 아름다운 어린이노래는 푸름이한테도 아름답고, 어른한테도 아름답습니다. 어른한테 아름다운 어른노래 가운데 푸름이한테도 아름다우면서, 어린이한테도 아름다운 노래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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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 님 새책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다반,2012)가 나왔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장만하지 않았다. 머잖아 장만할 텐데, 천천히 때를 기다린다. 그동안 읽고 즐긴 호시노 미치오 님 책들을 생각한다. 몇 해 앞서 장만하고는 아직 안 읽은 《여행하는 나무》(갈라파고스,2006)를 떠올린다. 이제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기에 다른 책이 더 나올 수 없으리라 여겨, 《여행하는 나무》를 몇 해 앞서 장만하고는 곧장 읽지 않았다. 아껴 두었다. 금세 읽기엔 서운했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5)와 《노던 라이츠》(청어람미디어,2007)는 읽었기에, 《여행하는 나무》는 한 해 두 해 읽기를 미루었는데,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 이제 이 책을 읽을 때가 되었다고 여긴다. 몇 해 앞서 장만한 《여행하는 나무》를 며칠에 한 차례 몇 쪽씩 읽다가 마지막 쪽을 덮으면, 비로소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장만하겠지. 그리고, 이 책도 금세 읽기에는 아쉽다고 여겨 한 해 두 해 찬찬히 묵히겠지. 설마, 몇 해 뒤에 호시노 미치오 님 또다른 책이 한국말로 나올 수 있을까. 아직 한국말로 옮기지 않은 다른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아니, 호시노 미치오 님이 무스를 찍고 카리부를 찍으며 곰을 찍은 두툼한 사진책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까. 어린이들 읽는 판으로 꾸민 《곰아》(진선출판사,2004)와 《숲으로》(진선출판사,2005)는 있지만, 북극땅 누비며 빚은 커다랗고 두툼한 사진책은 언제쯤 어느 출판사에서 선보일 수 있을까. 글로 여민 작은 책과 나란히 놓을 만한, 사진으로 빚은 커다란 책을 기쁘게 누릴 날을 꿈꾼다.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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