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소리 2
우사미 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앞으로 듬뿍 사랑받을 테니까
 [만화책 즐겨읽기 95] 마키 우사미, 《사랑 소리 (2)》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둘째 아이가 낑낑대는 소리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함께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나날입니다. 돌이켜보면, 첫째 아이가 갓 태어나 함께 살아가던 첫무렵에도 두 어버이는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밤에 기저귀에 쉬를 하면 그때그때 기저귀를 갈아야 했거든요. 더구나, 첫째는 갓난쟁이였던 때에 얼마나 잠투성이 대단했는지, 아이 어머니가 한두 시간 노래를 부르며 다독여도 도무지 잠들려 하지 않았어요. 두 어버이가 갈마들며 업고 한두 시간을 달래도 자리에 눕히면 또 왁왁 울어대면서 고달팠습니다.

 

 첫째 아이랑 한 해를 넘기고 두 해를 접어들면서 비로소 밤에 잠투정이 조금씩 가십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드는 때마다 쉬가 마렵다느니 물을 마시고 싶다느니 하면서 자꾸 잠자리에서 일으킵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도 한두 시간은 가벼이 종알종알거리면서 두서너 차례 쉬를 누겠다며 다시 일어나고, 물을 마시겠다며 두세 차례 다시 일어나게 했어요. 이러다가, 첫째 아이가 밤오줌을 말끔히 가릴 수 있던 때부터 비로소 밤잠을 느긋하게 잘 수 있습니다. 2008년 8월에 태어난 아이가 2011년 3월에 밤오줌을 가렸으니, 서른두 달째에 바야흐로 ‘두 다리 쭉 뻗고 자기’를 이룬 셈이에요. 그래도, 아이가 밤에 쉬 마렵다고 하면 깨어나서 쉬를 누여야 했지만, 이렇게 한 번 깨서 아이한테 쉬를 누이는 일은 하나도 고단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쉬를 누게 한 다음 나도 시골마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쉬를 누면 되니까요.


- ‘이제 곧 밤이 찾아온다. 아빠, 걱정하고 계시겠지? 바람이 차가워. 돌아가야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가고 싶지 않아. 갈 수 없어. 계속 곁에 있고 싶어. 안 갈 거야.’ (5∼6쪽)
- “이 녀석(다친 길고양이)은 내가 데려갈게.” “어?” “이 녀석이 어떻게 살아갈지 지켜보고 싶어. 나도 사랑을 해 보고 싶어졌거든.” (34∼35쪽)


 느긋한 밤잠을 누리던 2011년 3월부터 5월까지 얼마나 한갓졌는지 몰라요. 이제 우리 아이 다 컸구나, 이제 우리 아이 씩씩하구나, 이제 우리 아이 야무지구나, 노래노래 하며 지내는데, 2011년 5월에 둘째가 태어나고부터 싹 바뀌어요. 다시금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되고, 새삼스레 첫째 또한 둘째랑 갈마들며 두 어버이가 잠을 못 자게 깨웁니다.

 

 둘째는 오늘도 어김없이 밤잠을 못 이루도록 깨웁니다. 그러나, 갓난쟁이일 때에 어버이 손길을 더 타고프다는 부름말인지 몰라요. 무언가 갑갑하거나 어딘가 답답하니까 낑낑대면서 제발 나(갓난아기)를 도와주라고 부르는 소리인지 몰라요.

 

 둘째 오줌기저귀를 한 차례 가는데, 이내 또 깨어서 칭얼거립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기저귀를 갈고 곧바로 다시 오줌을 누었어요. 오줌을 두 차례 푸지게 누고는 낑낑거리는군요.

 

 깊은 새벽 쉬를 두 차례 잇달아 누며 깬 둘째는 눈이 말똥말똥합니다. 이 깜깜한 밤에 안 자며 놀겠다고?

 

 부시럭거리며 시끄러우니 첫째 아이까지 잠을 깹니다. 쉬를 눈다며 일어났다가 둘째처럼 눈이 말똥말똥합니다. 깊은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글쓰기를 하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 아무 일을 못하게 하더니, 슬슬 잠이 들 듯해 살며시 안아들며 자리에 눕혔더니, 자리에 눕자마자 번쩍 눈을 뜨면서 노래노래 부릅니다. “엄마, 밖이 깜깜해.” 하고 말하는 녀석이 잠을 잘 생각은 안 하면서 노래를 부르다니. 산토끼 토끼야 노래를 부르다가는, “엄마 짝은 토끼 귀여워, 해 줘. 엄마엄마 나 좀 짝은 토끼 귀여워, 해 줘.”라는 말을 자꾸자꾸 되풀이합니다.


- “이치고, 소용없어. 너도 들었잖아. 사람 안 따른단 얘기.” “그치만, 이대로 두면.” “버림받은 시점에서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아.” “것 봐. 사랑받지 못한 놈은 원래 그런 거야.” “그렇지 않아! 아직 살아 있어. 괜찮아, 나비야. 이제부터 사랑받으면 돼. 넌 앞으로 듬뿍 사랑받을 거야.” (15∼18쪽)


 이 아이들은 앞으로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며 서른 살이 될 무렵, 저희가 한 살이던 나날과 두 살이던 나날과 세 살 네 살이던 나날을 얼마나 떠올릴 수 있을까요. 몸과 마음 깊숙한 데에는 아로새겨지려나요.

 

 생각해 보면, 나한테도 내 한 살 적과 두 살 적과 세 살 적과 네 살 적이 몸과 마음 어딘가에 깊숙히 아로새겨졌겠지요. 나는 좀처럼 그무렵 일을 떠올리지 못하나, 내 몸과 마음 어느 곳에는 내 어린 나날 이야기가 깊이 새겨졌겠지요.

 

 내 갓난쟁이 적은 어떠했을까요. 내 한 살 적과 두 살 때는 어떤 나날이었을까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어떤 사랑을 어떻게 받았을까요. 내 어린 날, 나 또한 내 아이들처럼 밤에 내 어버이를 잠 못 들게 하면서 들볶았을까요. 내 어린 날, 칭얼칭얼 낑낑대었을 나는 내 어버이한테 어떤 아이로 자리매겼을까요. 잠이 들지 못하면서 꽁꽁거리는 나를 내 어버이는 어떻게 달래면서 재웠을까요. 내 어버이는 두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나날을 어떤 사랑과 꿈과 믿음으로 보냈을까요.


- (학교에) ‘일요일 같은 건 없어도 되는데. 빨리, 빨리 보고 싶다.’ (71쪽)
- ‘평소랑 똑같은 교실. 늘 똑같은 수업시간. 그런데 이 모든 게 만화경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아. 너와 같은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83∼84쪽)


 마키 우사미 님 《사랑 소리》(대원씨아이,2009) 2권을 읽습니다. 아주 어린 나날 사랑받지 못한 생채기를 푸름이 나이까지 짊어지는 ‘몸과 얼굴은 젊고 싱그러우나 마음과 꿈은 갈기갈기 찢기거나 조각조각 너덜거리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인 나는, 이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줄 수 있고 생채기를 남길 수 있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오늘 하루 어찌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집 두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을 수 있고, 미움이나 생채기만 가득 남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물려받았기에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요. 사랑을 물려받지 못했으나 사랑을 물려주려고 힘쓸 수 있어요.

 

 아니, 생채기가 잔뜩 남았다지만, 생채기를 남기던 어버이 또한 생채기 아닌 사랑을 나누고 싶었을 텐데, 어버이로 살아가는 마음자리와 꿈자리와 사랑자리를 제대로 모르던 설익은 나이여서, 그만 당신 아이한테 생채기를 남기고는 오래도록 가슴앓이를 할 수 있어요.


- “우리가 서로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니까.” (112쪽)
- ‘코우키도 나랑 똑같구나. 어떤 고백보다도 더 잘 전해져. 네 마음의 소리.’ (150∼151쪽)


 어버이는 누구나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줍니다. 서툰 사랑이든 어설픈 사랑이든 예쁘게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누구나 아이한테 꿈을 물려줍니다. 어줍잖은 꿈이든 어리숙한 꿈이든 달콤하게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누구나 아이한테 이야기를 물려줍니다. 마무리짓지 못한 이야기이든 뚱딴지 같은 이야기이든 고스란히 물려줍니다.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았으면, 앞으로 사랑을 듬뿍 나누며 살아가면 됩니다. 사랑을 거의 못 받았다 싶으면, 이제부터 내가 내 아이들한테 사랑을 듬뿍 나누며 살아가면 됩니다.

 

 내가 받은 만큼 물려주는 사랑이 아니에요. 내 가슴으로 키우는 사랑을 송두리째 물려주어요. 내가 얻거나 누린 만큼 물려주는 사랑일 수 없어요. 내가 아끼며 좋아하는 사랑을 스스럼없이 몽땅 물려줍니다.

 

 이제부터 사랑합니다. 오늘부터 사랑합니다. 어제까지 사랑하지 못했어도 괜찮아요. 그제까지 사랑을 잊은 채 지냈어도 괜찮아요. 오늘부터 사랑하는 삶이면 돼요. 이제부터 사랑을 꿈꾸는 나날이면 즐거워요.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라 하는 마음밥을 먹어야 새로 힘을 내며 아름다이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4344.12.24.흙.ㅎㄲㅅㄱ)


― 사랑 소리 2 (마키 우사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9.4.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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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2.13.
 : 포근한 겨울날

 


-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택배 부칠 일이 있을 때에 으레 우체국에 전화를 걸었다. 가깝다 싶은 우체국조차 칠 킬로미터 넘게 자전거를 달려야 하니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책꾸러미를 실으며 이만 한 길을 달리기란 그닥 힘들다 할 수 없지만, 수레에 아이랑 책꾸러미를 싣고 멧등성이를 넘다 보면 무게가 자꾸 뒤로 쏠린다. 몸이며 자전거며 몹시 고단하다. 전라남도 시골집에서는 택배 부칠 일이 있을 때에 딱히 전화를 걸지 않는다. 가까운 면 우체국까지 이 킬로미터만 달리면 되기도 하지만, 이만 한 길은 수레에 아이와 책꾸러미를 태우고 사뿐사뿐 달리며 즐겁다. 책꾸러미 무게가 제법 되어도, 옆 마을을 살짝 에돌며 달리곤 한다. 더구나 십이월 한복판에 접어들었으나 날씨가 포근하다. 아이는 수레에 가만히 앉기만 하니까 찬바람 때문에 추울까 걱정스러운데, 면에 닿으니 아이는 “나 더워. 옷 벗을래.” 하고 말한다. 참말 날이 포근하다.

 

- 우체국에 닿아 책꾸러미를 부친다. 아이를 수레에 태워 문방구에 갈 즈음, 지죽 가는 길목에 있는 도화헌미술관 아저씨하고 스친다. 도화헌미술관 아저씨는 새로 하는 전시를 알리는 책자를 들고 이곳 우체국까지 왔다. 그렇구나. 고흥군을 두루 돌면서 도화헌미술관 전시를 알리는구나. 나는 자가용 없이 자전거로만 다니는데, 자전거를 몰며 우리 도서관 행사를 알리러 다닐 수 있을까.

 

- 약국에 들른다. 뜨거운 국에 손을 온통 덴 둘째한테 쓸 천을 산다. 문방구로 간다. 문에 바를 창호종이를 사려 한다. 그런데 문방구는 문이 잠겼다. 벌써 밥때가 되었나. 아직 열두 시가 안 되었는데 문을 잠그셨네.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망설인다. 아이가 걷고 싶다 하기에 걸으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버스역 옆 가게에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싶어, 아이한테 자전거에 타라 이르고는 그리로 간다. 가게 앞에 갑오징어며 여러 물고기를 늘어놓은 가게 아주머니한테 여쭌다. 창호종이가 있다. 한 장에 800원씩 한다. 여섯 장 산다.

 

- 더 볼일 없겠지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집에서 전화가 온다. 둘째가 붕대 감긴 손을 이래저래 휘두르다가 붕대가 쏙 빠졌단다. 부지런히 집으로 달린다. 땀이 비질비질 난다. 이맘때 인천에서 자전거를 몰면 으레 손이 시리니 장갑을 끼는데, 이곳에서는 아직 장갑을 끼지 않는다. 장갑을 끼지 않아도 손이 시리거나 차갑지 않다. 따스한 날씨는 그야말로 고마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식구들 다 함께 보건소 마실을 한다. 집에서 보건소까지는 걸어서 오 분쯤.

 

- 집으로 돌아와 헌 수레에 앞바퀴를 붙인다. 새로 받은 수레는 자전거에 붙인 채 그대로 둔다. 벌써 일곱 해째 나와 함께 달린 수레는 그야말로 애 많이 썼다. 이 수레는 그동안 길을 얼마나 달렸던가. 짐을 얼마나 실었던가. 서울에서 두 딸아이 자전거수레에 태우던 아저씨가 쓴 수레를 받았다. 두 딸아이는 벌써 중학생이라 하던가. 중학생이니까 수레에 탈 수 없겠지. 우리 집 첫째는 아버지가 일찍부터 자전거에 붙이고 끌고 다니던 수레에 오래오래 탔고, 둘째는 머잖아 이 수레에 함께 타겠지. 나중에 우리 둘째가 무럭무럭 크고 나면 이 새 수레도 퍽 헐거나 닳으리라. 그때에는 이 수레도 헌 수레처럼 더는 달리기 힘들 때를 맞이하겠지. 더 달릴 수 없을 만큼 낡고 닳으면 깨끗이 닦아서 도서관 한쪽에 세우고는 예쁘게 꾸며 주리라.

 

- 첫째 아이 벼리가 앞바퀴 붙은 헌 수레를 밀면서 마당에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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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23 08:47   좋아요 0 | URL
벼리는 확실히 치마를 좋아해요 ^^
그런데 둘째는 어쩌다가 손을 데었나요 에구...

파란놀 2011-12-24 06:35   좋아요 0 | URL
치마돼지랍니다... -_-;;;

뜨거운 국에 손을 척 담갔거든요 ... @.@
 

자전거쪽지 2011.12.22.
 : 동짓날 자전거

 


- 생각해 보니 곧 예수님나신날이요 새해이다. 한 해 끝무렵에는 우체국 일꾼이나 택배 일꾼 모두 바쁘다. 이맘때에 편지를 띄우자면 서둘러야 한다. 부랴부랴 소포꾸러미 여럿을 싼다. 경기도 일산에서 살아가는 옆지기 어버이와 충청북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내 어버이한테 보낼 우리 집 두 아이 사진을 꾸린다. 우체국에 전화를 건다. 택배를 가져갈 수 있느냐고 여쭌다. 오늘은 가져가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가져갈 수 있단다. 접수가 늦으면 택배도 늦게 가겠지. 동짓날을 맞이해 바람이 대단히 드세게 불며 온도가 뚝 떨어졌지만, 이 바람을 뚫고 우체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 집을 나서려 하는데 옆지기가 “버스 타고 가요.” 하고 말한다. “아, 버스?” 버스 지나가는 때를 살핀다. 읍내에서 16시 40분에 나오는 버스가 있다. 그렇다면 17시 00분에 우리 마을에 지나가겠구나. 시계를 보니 딱 17시 00분. 문을 열어 내다 본다. 아직 버스 지나가는 소리 없고 버스 지나가는 모습 보이지 않는다. 부리나케 가방을 메고 양말을 신고 신을 꿰며 달음박질을 한다. 십 분을 기다린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 집으로 돌아온다. 버스가 오늘은 일찍 지나간 듯하다. 자전거에서 수레를 뗀다. 자전거로만 면에 다녀오기로 한다. 대문을 나서려다가 아차, 발목끈을 묶지 않았다. 바보스럽군.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발목끈을 한다. 또 빼먹지 않았겠지, 살피며 벙어리장갑을 끼고 달린다.

 

- 옛 흥양초등학교 옆을 지날 무렵, 몹시 드센 바람으로 귀가 시리다고 느끼다. 그래, 이런 날은 털모자를 써서 머리와 귀를 가려야지. 장갑만 끼어서 되나.

 

- 면으로 가는 길은 살그마니 내리막이라 퍽 빨리 달릴 만하다. 우체국 때에 늦지 않는다. 가게에 들러 땅콩을 산다. 신집에 들러 털신을 산다. 6000원. 지난해와 견주어 1000원 오른다. 나는 2004년부터 고무신을 신었고, 이때부터 지난해까지 털신 값은 5000원이었다. 고흥에서는 고무신만으로 겨울을 날 수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동짓날만큼은 발이 시려 안 된다. 지난겨울까지 신던 털신은 쥐가 쏠아서 못 신기에 새 털신을 산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살그마니 오르막. 더군다나 더욱 드센 맞바람을 가르며 달려야 한다. 아주 힘겨이 발판을 밟는다. 맞바람이 대단히 드세기에 자전거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걸을 때보다는 한결 빠르지 않니?’ 하고 생각하며 힘을 낸다. 용을 쓰며 맞바람을 뚫었고, 드디어 마을 어귀에 닿는다. 파란대문 우리 집 앞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자전거에 수레를 다시 붙인다. 바람이 많이 부니 자전거랑 수레를 붙여야 넘어지지 않는다. 벙어리장갑은 퍽 좋다. 둘째가 무럭무럭 크면 쓰라고 미리 산 벙어리장갑인데, 나한테는 살짝 작으나 손가락장갑보다 한결 따스하다. 자전거를 달릴 때에는 손가락을 나누어 잡는 장갑보다, 이렇게 손가락이 하나로 모이는 장갑이 살과 살이 서로 닿으며 더 따스하다고 느낀다.

 

- 이제 바깥문을 밀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골이 띵해 비틀거린다. 찬바람이 너무 셌나 보다. 골도 띵하고 뒤꼭지도 아프다. 다음에는 털모자 쓰기를 꼭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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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는 쉴 수 없구나

 


 아침 빨래를 마치고 나서,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떤다. 한창 바삐 손을 놀려 밥과 국과 고구마떡볶음을 마무리지어 밥상에 올리기만 하면 끝인데, 이장님 마을 방송이 흐른다. 마을회관에 낮밥을 차렸으니 마을 분들 모두 나와서 드시라고 이야기한다. 오늘 무슨 날이기에 마을회관에 모여서 밥을? 아이 둘한테 옷을 입히느라 한참 걸린다. 첫째는 머리도 제대로 안 빗은 채 이 바람 드센 날 엉터리로 옷을 입겠다고 억지이고, 둘째는 기저귀를 가는데 끝없이 울어대서 골이 띵하다. 어찌저찌 옷을 입히고 둘째를 안아서 마을회관으로 간다. 어르신들은 일찌감치 모이셨다. 할아버지들은 벌써 다 드시고 두 분만 남고, 할머니들만 남았다. 마을회관에 모이라는 방송이 나오면 언제나 우리 집이 꼴찌.

 

 할머니들이 오늘 동짓날이라 함께 팥죽을 먹는다며 어여 자리에 앉으라 말씀하신다. 그렇구나. 동짓날이라 다 함께 팥죽을 드시는구나.

 

 팥죽을 세 그릇 먹고 둘째를 다시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하고 복닥거리느라, 또 아침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듯 집일을 한 터라, 졸음이 가득한 두 아이를 재우면서 나도 자고 싶다. 그런데, 둘째가 똥을 눈다. 그래, 똥을 누었으면 똥을 치워야지. 아침에 두 차례 누고 낮에 한 차례 더 누네. 젖을 먹으면 젖 먹은 대로 똥이 나오겠지. 따순 물을 받아 밑을 씻긴다. 낯도 씻긴다. 똥기저귀는 바로바로 빨아야 똥물이 빠진다. 똥기저귀를 빨래한다. 빨래하는 김에 옆지기 두툼한 옷가지도 빨래한다. 옆지기 옷가지를 빨래하는 김에 아침부터 낮까지 나온 둘째 오줌기저귀도 빨래하고, 첫째 옷가지 여러 벌을 함께 빨래한다.

 

 바람이 드세고 온도가 똑 떨어진 탓에, 후박나무 빨래줄에 건 빨래는 얼어붙는다. 구름이 지나가 햇살이 나면 바람에 날아갈 듯 펄럭거리던 얼어붙은 빨래가 사르르 녹는다. 고흥은 겨울에 그닥 춥지 않지만, 겨울바람은 되게 드세구나.

 

 어제 해 놓고 다 말렸으나 아직 안 갠 빨래를 갠다. 첫째 아이가 곁에서 거든다. 아침에 해 놓고 다 마른 빨래를 갠다. 첫째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논다. 나 혼자서 갠다. 그예 저녁까지 내처 집일을 한다. 열 시에 곯아떨어진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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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장갑 빨래

 


 옆지기 말을 들어 고무장갑 빨래를 하기로 한다. 네 식구 손빨래를 하자니 하루에 서너 차례를 해도 금세 다음 빨래가 쌓다. 집에서 빨래만 하지 않으니 손에 물기 마를 새가 없다. 이러다가 손이 너무 트고 갈라지고 뻣뻣해지고 거칠어질 테니까 빨래를 할 때만큼 고무장갑을 끼어 보기로 한다. 1995년에 홀살이를 할 때부터 손빨래를 했으니까, 열여섯 해 만에 맨손 빨래 아닌 고무장갑 빨래를 하는 셈.

 

 그렇지만, 둘째가 똥을 누어 밑을 씻기고 나서 똥기저귀를 빨래할 때에는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둘째 밑을 고무장갑 끼며 씻길 수 없으니까. 부엌일을 하다가 빨래를 하거나, 첫째를 씻기고 나서 빨래를 할 때에도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손에서 물기를 말릴 몇 분이 아까우니 그냥 맨손 빨래가 된다.

 

 요 며칠 두 차례쯤 고무장갑 빨래를 한다. 그러니까, 요 며칠 예닐곱 차례는 그냥 맨손 빨래가 되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면, 물이 찬지 뜨거운지 잘 못 느끼겠다. 옷가지가 잘 비벼지는지, 때는 잘 빠지는지, 잘 모르겠다. 오래도록 맨손 빨래를 한 나머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는 아직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

 

 먼먼 옛날 사람들한테는 고무장갑이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내 어머니 젊을 적까지도 고무장갑이란 있을 수 없다. 빨래기계는커녕 고무장갑조차 없던 나날 집일을 도맡던 어머니들은 빨래를 하며 손이 까칠까칠해지고 트고 갈라지고 꾸덕살투성이가 되면서 어떤 마음 어떤 생각 어떤 꿈이었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남자가 여자한테 빨래기계 사 줄 돈은 없어 고무장갑 겨우 사 주며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에 곧잘 실리곤 했고, ‘고무장갑 사 줄 돈조차 없어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이나 동화책에 가끔 실리곤 했다고 떠오른다. 빨래기계 안 사 주어도 되고, 고무장갑 안 사 주어도 되니까, 좋은 보금자리 꾸려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함께 손빨래를 하면 즐거웠을 텐데. 집일을 서로 도우면서 하고, 아이를 함께 사랑하면서 보살피면 참으로 아름다웠을 텐데.

 

 나는 네 식구 빨래를 도맡으면서, 네 식구 빨래하며 쓸 고무장갑도 내가 가게로 자전거 타고 마실하면서 장만한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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