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책을 읽다

 


 꿈에서 어느 헌책방을 찾아갔다. 책을 여러 권 산다. 이 책들을 신나게 읽는다. 퍽 골이 아플 만한 책인데 제법 술술 읽힌다. 그나저나, 꿈에서 헌책방을 다니고 책을 읽는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나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면서 대학입시라는 굴레에 진저리를 친다. 이 즐겁고 아름다운 책이 있는데, 왜 부질없고 쓸모없는 시험문제를 달달 외우며 내 머리를 괴롭혀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이윽고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안 계시고 형만 있다. 형은 내가 학교에 안 가는 일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라고 등을 밀지 않는다. 말이 없는 형은 내가 하고픈 대로 하란다. 이렇게 여러 날 집에서 책읽기만 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모처럼 학교에 찾아가 본다. 훤한 낮에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로 찾아간다. 모두들 대학시험을 치르려고 건물에서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넓은 운동장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나는 운동장 구석 등나무 걸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이렇게 몇 시간 햇살과 바람을 누리면서 책을 읽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꿈에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고등학교란 참 바보스럽단 말이지. 어떻게 이런 데에서 하루하루 끔찍하게 나를 못살게 굴며 버틸 수 있었을까. 아, 홀가분하다. 좋다.’ 이러다가 잠을 퍼뜩 깬다. 머리가 띵하다. 이게 무슨 꿈인가. 내가 늘 품던 생각이 꿈에서 나타났을까. 내가 누리고프던 지난날 바람이 이 나이가 되어 꿈에서 그려지는가. 곰곰이 돌이킨다. 나는 고등학교를 몹시 애타게 그만두고 싶었다. 나는 중학교부터 아주 애끓도록 집어치우고 싶었다. 삶도 사랑도 사람도 없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나를 미치게 내몰았다. 꿈을 키우지 않는 학교요, 꿈을 짓밟는 학교이며, 꿈하고 동떨어진 학교이다. 나는 학교옷 예쁘장하게 차려입으며 뒷골목에서 담배를 태우는 아이들뿐 아니라, 학교옷 말끔히 갖춰입으며 학원에 앉아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뒤적이는 아이들 모두 불쌍하다고 느낀다. 무엇을 하고 싶은 아이들일까. 무슨 길을 걸으며 어떤 삶을 누리고픈 아이들일까.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배움터·꿈터·삶터·사랑터 노릇을 하는가. 꿈에서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는 내 몸과 마음은 홀가분하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 홀가분하게 살아간다고 느끼니 슬펐다. 이 모진 울타리를 스스로 박차고 뛰쳐나오며 ‘내 삶’을 즐기려 하는 동무를 만나지 못해 안타깝고 서글펐다. 쉬를 누고 물을 마신다. 어제부터 읽는 동시집 《삼베치마》를 생각한다. 《삼베치마》도 참 아름다운 글이지만,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만큼 빛나지는 않는다. 《삼베치마》는 권정생 할아버지가 아주 젊은 날 처음 시쓰기를 하며 당신 꿈을 사랑하려던 조그마한 일기장 같다. 감자떡 먹는 식구들 이야기는 《삼베치마》를 쓰던 젊은 날 적바림하셨구나. (4344.1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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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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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 아줌마가 쓴 소설 읽기
 [책읽기 삶읽기 93] 김이설, 《환영》(자음과모음,2011)

 


 전라남도 고흥에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따스합니다. 겨울이 이렇게 따스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고맙습니다. 물이 꽁꽁 언다든지 눈이 펑펑 내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을 쓰느라 바쁘지 않아 고맙습니다. 올 사월까지 길가 눈을 쓰느라 손이 안 시린 날이 없었어요. 자가용 없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시골버스 타는 우리한테는 찻길 눈쓸기를 할 까닭이 없지만, 택배 일꾼이 오가거나 웃집 사람들이 자동차 타고 오갈 때를 걱정하니까, 찻길 눈쓸기를 할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서너 차례 한두 시간 눈을 쓸면 코·귀·손·낯 얼마나 시린지. 그러나 이보다 눈쓸기를 하느라 집일할 겨를이 더 빠듯한 일이 고단합니다. 그나마 올 사월까지는 첫째 아이랑 옆지기 세 식구 살림이었기에 첫째 아이 빨래는 그닥 많지 않았어요. 다만, 이무렵 우리 멧골집 물이 언 나머지, 멧길 타고 올라가는 웃집에서 날마다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랑 설거지도 웃집에서 했어요. 다섯 달 동안.

 

 지나고 보면 아득한 일이요, 지나고 생각하면 꿈 같은 일이며, 지나고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나 싶습니다. 아마 어떻게든 살아내는 하루요, 힘들며 고단하다지만 어디부터 샘솟는지 모를 새 기운을 끌어내 견디는 나날인지 모릅니다.

 

 올여름까지 지낸 멧골집하고 견주면 따스한 겨울이지만, 고흥 시골마을 겨울도 겨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람은 드세면서 차갑습니다. 아침에 똥을 눈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빨래하고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를 빨래해서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너는데, 손가락이 꽁꽁 업니다. 빨래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기저귀들은 금세 업니다. 아침이니까 이렇게 얼지만, 차츰 따뜻해지는 낮햇살을 받으면 스르르 녹으며 바로 마르겠지요.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이러했어요. 이른아침에는 빨래들이 죄다 얼어붙다가 낮하고 가까우면 스르르 녹으며 빨리 말라요. 낮에 빨래 한 차례 더 하면 해가 저 멧등성이에 가까울 무렵 다 마르고, 해가 떨어지기 앞서 빨래 한 차례 더 해서 어른들 두툼한 옷가지 물 안 떨어지게끔 말려서 방으로 들이면 잠자리에 들어 이듬날 일어날 무렵이면 보송보송 마릅니다.


.. 쌓인 눈을 잔뜩 퍼먹으면 이 갈증이 가라앉을까 …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버스 정류장 하나 없는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이런 풍경 속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혹은 몇 시간 뒤엉켜 관계를 하는 데 돈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일당 사만 원짜리가 한 시간에 십만 원도 벌 수 있었다 … 좋은 일인가. 생전 처음 보는 사내 앞에서 옷을 벗고 받는 돈이었다 …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뜨듯한 국물을 먹는 사람들은 풍요로워 보였다 … 주인 내외는 나 같은 아줌마는 없었다며 일당백이라며 추켜세웠다. 사람 하나 더 쓰자고, 이대로는 일 못 하겠다고 뻗대지 않게 하려는 수였다 ..  (10, 16, 59, 81, 113, 168쪽)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란, 두 아이와 살아가지 않고서야 모릅니다. 세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라면 세 아이와 살아가지 않고서야 모를 테지요. 네 아이와 살아간다든지 다섯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도 그래요. 이처럼 살아내지 않고서야 알 턱이 없어요.

 

 어림은 해 보겠지요. 아이 하나와 살아가면서 두 아이 살림살이를 어림해 보겠지요.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세 아이랑 네 아이 살림살이를 어림해 볼 테지요.

 

 우리 집 첫째는 돌이 지나고부터 낮에 기저귀를 풀며 오줌 누이기를 시켰습니다. 두 달 즈음 이곳저곳 스스로 못 참고 오줌이나 똥을 누며 집일이 잔뜩 늘어났지만, 이렇게 뒷치레를 하면서 아이는 스스로 오줌가리기와 똥가리기를 익혔어요. 아이는 제 어머니 아버지하고 하루 내내 함께 붙어서 살아가고, 제 어버이를 지켜보고, 제 집식구를 바라보면서 제 삶과 버릇과 꿈을 가다듬습니다.

 

 세 살에 아직 낮기저귀를 못 떼고, 너덧 살에 아직 밤기저귀를 못 떼며, 대여섯 살까지 기저귀를 채운다면, 이 기저귀도 종이기저귀라면, 이 아이가 어떤 어버이하고 어떤 삶을 꾸리는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이 아이 어버이는 이 아이 어버이대로 얼마나 즐겁거나 신나거나 기쁘거나 좋거나 아름답다 할 만한 삶을 일구는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바라보고, 이 두 아이와 같이 먹고 자며 일어나는 옆지기를 바라봅니다. 우리들은 무슨 꿈을 키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꽃피우는 사람일까요. 우리들은 이 작은 보금자리를 어떻게 돌보면서 우리들 마음결을 어찌저찌 보살필 수 있을까요.


.. 자기는 나쁜 사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앙연히 줘야 할 돈인데 왜 제가 생색을 내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 남은 반찬만 갖다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식구도 갖다 버렸으면 싶었다 … 나는 내 안의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몰랐다 … 내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불을 끄고 잤단 말이지 … 엄마는 어디서 살아? 뭐 하고 살아?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는 해? 이런 걸 물어 보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나는 방법을 몰랐다 … 몇 년 만에 만난 모녀 사이인데, 할 말이 참 없었다. 하고 싶은 말들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말들만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26, 46, 97, 104, 143, 170쪽)


 김이설 님 소설 《환영》(자음과모음,2011)을 읽습니다. 두 아이와 옆지기하고 살아가는 김이설 님이 써낸 소설을 읽습니다. 김이설 님은 어떤 삶을 스스로 돌보고 두 아이와 일구며 옆지기랑 사랑하면서 소설을 쓸까요. 김이설 님 소설에는 김이설 님 삶이 어떻게 스며들어 빛날까요.

 

 《환영》을 펼쳐 차근차근 읽는 동안 ‘오늘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읽은 소설을 쓴 어른’은 누구였는가 생각합니다. 1970∼8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1950∼6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또 1930∼4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으레 ‘어떤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는 어른’이 썼는가 곱씹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줌마가 소설을 쓴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 나라에서 아줌마가 아줌마 눈길과 생각과 삶과 마음과 사랑과 믿음과 꿈으로 소설을 써서 내놓은 지는 얼마나 되었으려나요.

 

 197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라면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요. 195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라면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193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는 있었을까요.


.. 왜 만날 나만 돈을 내놨을까 … 떡이 되도록 취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뻔했다 … 아버지는 자식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대상은 오로지 엄마였다 … 뭘 봐요. 돈 없다는 사람 처음 봅니까? ..  (106, 108, 163쪽)


 문학·문학성·문학정신이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삶·삶빛·살림살이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백 사람이면 아흔아홉 사람이 아니라 백 사람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려 하는 오늘날, 만 사람이면 겨우 한두 사람 시골에서 살까 말까 한 요즈음, 한국문학과 한국소설에서 담아내며 나눌 이야기라면 어떠한 삶 어떠한 꿈 어떠한 빛깔이 될까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신나게 뛰고 달리며 노래하고 춤춥니다. 쉴 사이 없이 종알거리고 떠들며 꽁알꽁알합니다. 이 아이한테 어떤 밥을 먹여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이 아이랑 밥을 먹고 나서 무슨 놀이를 즐길까 생각합니다. 이 아이를 놀게 하면서 어버이는 무슨 일을 붙잡으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바깥은 바람이 찬데 집에서든 밖에서든 치마만 입겠다는 이 아이를 어찌 달래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 예쁘고 좋은 걸 보면 아이부터 생각났다 … 하루가 너무 길었다. 아이의 살냄새가 그리웠다 …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 …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첫 한 발짝 떼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  (15, 22, 30, 187쪽)


 소설책 《환영》을 덮습니다. 꿈을 꾸는 꿈으로 살아가는 실마리에서 빛을 살그머니 붙잡으며 눈물꽃 피우는 사람 하루살이를 떠올립니다. 왕백숙집 아줌마가 이럭저럭 눈물겹게 모은 돈으로 ‘버스 정류장 하나 없’다 싶은 깊은 시골마을에 작은 보금자리랑 논밭을 마련해 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꿉니다. ‘하루에 버스 몇 대 겨우 지나가는’ 시골마을에 조그마한 살림집이랑 논밭을 장만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꿉니다. 더는 물가에 얽히지 않으면서 시원한 샘물을 마시며 꿈을 꾸는 꿈으로 살림을 돌볼 수 있는 앞날이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듭 꿈을 꿉니다. 못난쟁이투성이 살붙이라 하지만 돈을 벌어 돈을 쓰고 돈으로 꾸리는 살림에서 벗어나 사랑을 벌어 사랑을 나누는 살림을 헤아릴 수 있으면, 이리하여 그림자 같은 나날이 아니요, 서로 반가운 이야기꽃 피우는 나날이라면, 더없이 좋을 텐데 하고 꿈꿉니다.

 

 글을 읽으며 “엄마한테 전화를 받다”라든지 “엄마한테 들었다” 같은 말투가 자주 보입니다. 이때에는 ‘-한테’가 아니라 ‘-한테서’ 토씨를 붙여, “엄마한테서 전화를 받다”와 “엄마한테서 들었다”처럼 적어야 올발라요. 제가 읽은 책은 5쇄인데 모두 ‘-한테’로만 나왔기에, 이 소설을 읽을 분들을 생각해서 군말 한 마디 붙입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 환영 (김이설 글,자음과모음 펴냄,2011.6.17./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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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을 만드는 아기고양이 웅진 세계그림책 30
마틴 프로벤슨.앨리스 프로벤슨 그림,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양희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고운 빛 이루는 아름다운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6]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앨리스 프로벤슨·마틴 프로벤슨, 《색깔을 만드는 아기 고양이》(웅진주니어,2002)

 


 집식구 날마다 복닥이는 모습을 바지런히 사진으로 담은 지 네 해가 지납니다. 옆지기하고 둘이 살던 때에는 한 사람만 덩그러니 찍히는 사진이었으면, 두 해 반 즈음 두 사람이 나란히 찍히는 사진이었고, 이제는 세 사람 줄줄이 찍히는 사진입니다. 날마다 새벽에 사진을 갈무리합니다. 하루 앞서 찍은 사진을 이튿날 새벽에 갈무리합니다. 저녁에는 고단해서 곯아떨어지기 바쁩니다. 새벽에 기지개 켜고 일어나 두 눈에 힘을 주며 사진을 하나하나 살핍니다.

 

 어제 사진을 오늘 갈무리하면서 어제 하루 이렇게 보냈구나 하고 되새깁니다. 참 꿈만 같습니다. 그제 사진을 돌아볼라치면 그제가 몇 주나 몇 달쯤 지난 아득한 옛날 같습니다. 지난주나 지지난주 사진은 아주 머나먼 옛날이로구나 싶고, 한두 달 지난 사진을 살피면 아이나 어른이나 참 많이 달라진 모습이에요. 새삼스레 그리운 예전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한창 들여다보다가 ‘어, 초점이 잘 안 맞은 사진이 뜻밖에 꽤 느낌이 좋은걸.’ 하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초점을 안 맞춘 사진이 아닙니다. 조리개값이랑 셔터빠르기를 모두 수동으로 맞추고 초점 또한 수동으로 맞추는데, 아이들 찍은 사진 가운데 아이들 낯빛이 가장 돋보인다 싶을 때에 ‘초점이 아직 덜 맞았으나 먼저 단추를 누른’ 사진이 있어요. 초점을 다 맞추고 나면 아이들 돋보이는 낯빛이 사그라들까 싶어 먼저 단추를 누르곤 해요. 그런데, 이렇게 찍은 사진이, 몇 초 뒤 초점을 빈틈없이 맞추어 찍은 사진과 함께 놓으면 한결 따사롭거나 무척 살갑거나 퍽 재미있곤 해요. 초점을 빈틈없이 맞추어 찍은 사진은 얼추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아이들 낯빛을 하나하나 뜯어 살피면 그닥 재미있지 않아요. 애써 종이로 뽑아서 간직할 만하다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 물감 통에는 색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하지만 고양이들은 읽을 줄 모르잖아요. 그러니 물감을 보고 이름을 맞춰야 해요. “그건 아주 쉬워.” 나비가 말했어요. “빨간색은 빨간색, 파란색은 파란색이지.” 제비가 말했어요 ..  (9쪽)


 누구라도 이러하리라 느껴요. 맞춤법이랑 띄어쓰기를 아주 빈틈없이 맞출 뿐 아니라, 온갖 그럴듯하며 멋진 낱말을 잔뜩 골라서 쓴 글이 가장 돋보이거나 즐겁거나 좋다 할 만한 글이 되지 않아요. 글을 쓰는 사람부터 가장 사랑스레 여길 만하며,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담아야 참으로 좋다 할 만한 글이에요. 읽는 사람으로서 가슴으로 스며드는 이야기와 삶을 느낄 때에 더없이 좋다 여길 만한 글이에요.

 

 그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나다 해서 좋다 하는 그림을 낳지 못해요. 사진기 다루는 솜씨가 좋다 하지만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빚지 못해요. 똑똑하다는 사람이 가장 슬기로운 삶길을 일구지 않아요. 돈이 넉넉하거나 많다는 사람이 가장 알차거나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돌본다고 할 수 없어요.

 

 참다운 삶과 착한 사랑과 고운 꿈을 가장 눈여겨보며 돌봐야지 싶어요. 좋은 이야기와 살가운 생각과 애틋한 마음을 담으며 하루하루 누려야지 싶어요. 어버이한테서 고맙게 물려받은 목숨을 예쁘게 즐겨야지 싶어요.

 

 내 삶은 온통 무지개빛입니다. 흐린 날이랑 궂은 날은 틀림없이 있을 테지요. 그런데, 바로 이 흐린 날이랑 궂은 날이 함께 있기에 내 삶이 그야말로 온통 무지개빛이에요. 흐린 날이 지나면 맑은 날이 찾아듭니다. 궂은 날은 차츰차츰 갭니다. 비가 와서 마른 땅에 물기를 머금도록 도와요. 비가 그쳐 눈부시게 파란 하늘빛을 베풀어요. 눈이 와서 땅은 더욱 포근해요. 눈이 녹아 해맑고 밝은 꽃망울이 하나둘 터져요.


.. 온 세상이 갈색으로 물들더니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어요. 밤이 깊어 가면서 색들은 포근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색깔들이 모두 사라진 밤, 나비와 제비도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어요. 나비와 제비는 꿈을 꾸었어요. 정말 멋진 꿈이었어요. 하나, 둘, 셋을 세면 빨간 장미 나무가 새하얗게 바뀌었죠 ..  (22∼23쪽)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님 글에, 앨리스 프로벤슨 님과 마틴 프로벤슨 님 그림이 얼크러진 그림책 《색깔을 만드는 아기 고양이》(웅진주니어,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누구한테나 무지개빛 삶이에요. 누구나 제 삶을 아리따운 무지개빛으로 빚어요. 누구라도 온삶을 온갖 무지개빛으로 나날이 새롭게 그려요.

 

 고운 삶인 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고운 삶인 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고운 삶을 어여삐 북돋우면서 사랑씨앗 심는 사람이 있고, 고운 삶을 어여삐 돌볼 줄 몰라 사랑씨앗을 잊거나 묵히는 사람이 있어요.

 

 솜씨 빼어나다는 사람만 무지개빛을 이루지 않아요. 재주 좋은 사람만 무지개빛이 환하지 않아요. 저마다 다른 무지개빛이에요. 저마다 곱고 기쁜 무지개빛이에요. 저마다 반가이 맞아들여 기쁘게 드리우는 무지개빛이에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는 나무판에 숯으로 그림을 그리든,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에 그림을 그리든, 언제나 가슴속으로 피어나는 예쁜 무지개빛을 담았어요. 물감을 종이에 풀어서 그린다 해서 무지개빛이지 않아요. 값진 종이에 값진 붓을 놀려 값진 물감으로 빛깔을 선보인대서 아름답거나 훌륭하지 않아요.

 

 더 나은 사랑이 없듯, 더 나은 글이나 더 나은 노래나 더 나은 그림이란 없어요. 따사로이 품는 사랑이에요. 작다 크다 가르지 못하는 사랑이에요. 하늘빛은 하늘빛이요 바다빛은 바다빛이며 풀빛은 풀빛입니다.


.. 갑자기 나비가 깨어나고 제비도 깨어났어요. 아침이었어요. 둘은 침대에서 나와 새날을 맞이했어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밝았어요. 나비와 제비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어요.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나비와 제비는 물감통을 엎지르고 말았어요. 물감들이 흘러나와 모두 섞였어요 ..  (28∼29쪽)


 그나저나, 그림책 《색깔을 만드는 아기 고양이》는 번역글이 그닥 아름답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풀밭처럼 푸른 녹색(18쪽)”이란 무엇일까요. 이 그림책이 2002년에 처음 나왔다지만, 꾸준히 새 판을 찍는 만큼 ‘綠色’이라는 일본 빛이름은 털어야 합니다. 아니, 2002년에 펴낼 때부터 이런 빛이름은 걸렀어야지요. ‘녹색’이란 낱말을 그대로 쓰고 싶다 하더라도 “푸른 녹색”은 말이 안 되는 겹말입니다. “풀밭처럼 푸른 빛깔”이라고 적어야 올발라요.

 

 “염소처럼 지혜로운 갈색(19쪽)”도 못마땅합니다. 아이들한테 ‘褐色’이 왜 ‘갈색’인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나 헤아려 보셔요. ‘갈색’ 또한 우리 빛이름이 될 수 없어요. 한국사람은 ‘밤빛’이나 ‘흙빛’이나 ‘도토리빛’을 이야기해야 걸맞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그림책에서는 ‘빛깔’을 말하지 않아요. 오로지 ‘色깔’만 말합니다. 조금 더 살핀다면, 한 번 더 들여다본다면, 다시금 곱씹는다면, 하얀빛·까만빛·노란빛·붉은빛·파란빛처럼 ‘빛’을 이야기하면서, 이 빛이 우리 가슴과 꿈과 사랑과 이야기와 삶에 어떻게 스며들면서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을 나눌 수 있어요. 고운 빛 이루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 색깔을 만드는 아기 고양이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앨리스 프로벤슨·마틴 프로벤슨 그림,양희진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2.7.30./85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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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2.25.
 : 두 아이 태운 자전거수레

 


- 자전거수레에 아이 둘을 처음으로 태우다. 마을 웃집에 세 살 민준이가 찾아왔다. 민준이 어머님이 둘째를 낳고 몸풀이를 하시느라 민준이를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며칠 맡겼단다. 마을회관에 네 살 벼리를 데리고 찾아가서 함께 놀다가, 두 아이가 회관에서 심심해 한다고 느껴 논둑길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 집으로 함께 와서 몸을 녹이고 놀다가,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 날이 좀 쌀쌀하고 바람이 제법 불어 자전거마실을 멀리까지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을 웃집 손자 민준이가 자전거수레에 탄 지 얼마 안 되어 꾸벅꾸벅 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잠든다. 아까부터 많이 졸린 얼굴이었으나 도무지 낮잠 잘 생각을 않더니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마치 우리 집 벼리를 보는 느낌이다. 벼리도 집에서 낮잠을 안 자려 들다가 자전거수레에 타고 함께 마실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꾸벅꾸벅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앞으로 푹 숙이곤 했다.

 

- 자전거수레에 앉으면 마냥 앉아서 달리니까 스르르 졸음이 오는지 모른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졸음이 올 수 없고, 앞에서 달리니 땀이 줄줄 흐른다. 아이 하나는 잠들고 다른 아이 하나도 잠들락 말락 한다. 어떡할까 하고 살작 생각하다가 면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수레에서 잠들었대서 바로 회관으로 돌아가 자리에 눕히면 금세 다시 깰는지 모른다. 면까지 다녀오면 우리 집 벼리도 사르르 잠들는지 모르고.

 

- 깊은 시골마을 면소재지는 일요일에 거의 다 문을 닫는다. 작고 깊은 시골마을 면소재지 밥집이라면 면사무소나 우체국 일꾼한테 장사를 할 테니, 애써 일요일까지는 안 연달 수 있으리라.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벼리를 수레에 다시 태울 때에는 아이가 겉옷 맨 위 단추를 안 꿰려 한다. 수레에 태울 때에는 단추를 다 꿰었는데, 아이가 답답하다며 스스로 끌렀다. 면소재지 들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졸릴까. 추울까. 시골길로 접어들어 볕이 잘 드는 조용한 데에서 멈춘다. 벗겨진 모자를 다시 씌운 다음 아이한테 단추 꿸까, 하고 묻는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추우니까 이런 날에는 단추를 다 꿰어야지, 단추를 안 꿰니 바람이 다 들어가잖아.

 

- 면으로 가는 길은 살며시 내리막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살며시 오르막. 면으로 갈 적에는 두 아이 태운 수레가 그리 힘들지 않다고 느끼나,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두 아이 태운 수레가 이렇게 무거우며 벅차다고 느낀다. 아이 둘을 수레에 태우며 다니는 분들은 허벅지와 등허리가 얼마나 딴딴하려나. 수레를 달아 끌려면 허벅지뿐 아니라 등허리가 튼튼해야 한다. 자전거도 사람도 모두 튼튼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고 여름이 찾아오면 둘째 아이도 수레에 태울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내 몸을 알뜰히 추스르고 다스려야겠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워 면내 마실을 다니자면 참말 튼튼하고 씩씩해야겠다.

 

- 호덕마을을 지날 무렵 우리 아이도 새근새근 잠든다. 그러나 집에 닿아 자리끈을 풀고 살며시 안아 방으로 들어가자니 잠에서 깬다. 아이 어머니가 말한다. “눈을 떴잖아. 벼리야, 안기지 말고 내려서 걸어.” 자리에 눕히면 다시 눈을 감고 잠들기를 바라며 살며시 눕힌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방에서 나와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저녁 차릴 준비를 한다. 아이는 내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갈 때에 다시 눈을 뜨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단다. 그냥 더 자면 덧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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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2-27 13:1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빠가 태워주는 자전거 그네로 아이들이 넘 좋아하겠네요.그나저나 한 겨울에는 좀 춥겠는데요^^

파란놀 2011-12-28 04:55   좋아요 0 | URL
지난해 더 추운 날에도 눈 맞으며 자전거를 탔는걸요~ ^^
 


 밤에 쓰는 글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겨우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하기까지 오늘을 어찌 보냈는가 돌아보며 눈을 감으며 등허리를 폅니다. 나한테 오늘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아이들한테는, 옆지기한테는 오늘 하루 어떤 나날이었을까요.

 

 갓난쟁이 둘째는 이제 날마다 네 차례쯤 똥을 누는 몸으로 시나브로 굳어져, 언제부터였던가 날마다 똥기저귀를 넉 장씩 빨아야 합니다. 똥기저귀를 빨자면, 아이들을 씻기자면, 빨래를 널자면 걷자면 개자면 갈무리하자면, 하루하루 어떻게 흐르는가를 잊습니다. 그저 이 집안에서 보내는 오늘입니다. 달력에 어떤 날짜가 적힌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날이 춥다 한들 덥다 한들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가 살았든 죽었든 나하고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 밥을 먹고, 새로 똥오줌을 누며, 새로 말을 배우고, 새로 삶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새삼스레 웃고 뛰고 박차고 달립니다.

 

 식구들 모두 잠든 밤에 퍼뜩 깹니다. 첫째 아이가 몸을 비트는 소리에 깹니다. 쉬가 마려운가, 오늘은 부디 혼자 일어나서 쉬를 누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저래 생각하며 눈을 감은 채 기다립니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기에 아이를 부릅니다. 쉬 마렵니, 쉬 마려우면 일어나서 쉬하러 가자. 조용합니다. 부시시 일어나서 아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일어날 낌새가 없습니다. 잠꼬대였나.

 

 그만 잠을 깬 바람에 그냥 일어나기로 합니다. 하루 가운데 몇 시간 살짝 조용하게 주어진 이 밤을 누리기로 합니다. 셈틀 화면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옆방에서 잠자는 세 식구를 깨우거나 잠 못 들게 하지 않기를 비손하면서, 이 밤에 글을 몇 꼭지라도 붙잡으려고 합니다. 낮에는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다잡으며 글을 쓰기 힘들다기보다, 낮 동안 아이들이랑 부대끼며 집일을 꾸려야 하니까 셈틀을 켤 수 없어요. 어제 하루 책읽기는 잠자리에 든다며 세 식구보다 몇 분 먼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책 한 쪽 훑으며 끝났습니다. 고작 한 쪽 훑었을까 싶을 때에 두 아이도 이부자리로 찾아들었고, 이부자리에 찾아든 두 아이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한동안 잠을 안 자면서 노닥거려요. 그래그래, 너희가 이래야 어린이답지, 너희가 이불을 뒤집어쓰기 무섭게 코를 골골 곤다면 어린이다울 수 있겠니. 돌이키면, 너희 아버지도 너희만 한 어릴 적 너희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잠들지 못하도록 이래저래 꽁알거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겠니. 너희가 보여주는 온갖 몸짓과 목소리가 너희 아버지가 이 밤에 씩씩하게 일어나 글을 쓰도록 해 주는 힘이 된단다. 너희 어머니, 곧 내 옆지기가 이 밤에 꿋꿋하게 눈 부비며 두 손 비비고 글을 쓰게 이끄는 기운이 된단다. 우리 네 식구 살림살이가 아니라면 이 밤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 네 식구 시골집이 아니라면 깊은 밤에 너희 오줌 누이거나 기저귀를 갈며 일어나 마당에 한두 차례 나와서 밤하늘 올려다보기를 했을까.

 

 고마운 하루는 지나갑니다. 고단한 하루는 마감합니다. 새로운 하루가 찾아옵니다. 새삼스러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하루를 보내고 하루를 누리는 삶이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글로 빚을 수 있습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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