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가 좋아요 크레용 그림책 36
나카가와 치히로 글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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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이 작은 사랑이 좋아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54] 나카가와 치히로, 《작은 새가 좋아요》(크레용하우스,2002)

 


  시골에서는 새벽부터 밤까지, 또 밤에서 새벽까지,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들새와 멧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람결에 풀잎과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람 따라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크고작은 들꽃이 저마다 속살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하루 내내 귀를 안 기울이더라도 자동차 소리를 듣습니다. 건물 부딪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사람들 지껄이는 소리, 가게에서 틀어대는 소리 들이 골고루 뒤섞이며 머리와 마음이 고이 쉬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도시에서 바람 결과 무늬와 소리와 내음을 느끼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흙이 있고 목숨이 살아가는 터전에서는 온갖 소리로 골고루 어우러집니다. 흙이 없고 목숨이 서로 겨루기만 하는 데에서는 온갖 소리가 서로 아웅다웅 툭탁거립니다.


  시골이라 더 좋고 도시라서 더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되도록 하자면, 서로를 살리고 살찌우며 사랑하는 소리로 가득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툭탁거리는 소리 아닌 얼크러지는 소리여야지 싶어요. 아웅다웅 치고받는 소리 아닌 살가이 쓰다듬는 소리여야지 싶어요.


.. 민수네 처마 밑 새집엔 제비가 살고, 영희네 처마 밑 새집엔 참새가 사는데, 왜 우리 새집엔 새가 없을까 ..  (3∼4쪽)

 

 


  1980년대 인천 골목동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 선풍기 없는 조그마한 교실에 아이들이 와글와글 빽빽하게 들어차던 일을 떠올립니다. 봄부터 으레 창문을 엽니다. 너무 덥고 너무 후덥지근하니 교실마다 창문을 활짝 열고 공부를 합니다. 인천 골목동네는 내 어린 날이나 요즈음이나 거의 달라진 모습이 없어, 골목집마다 한두 그루 알뜰히 돌보는 우람하게 자란 나무가 있습니다. 따로 공원이나 숲은 없으나 이래저래 텃밭과 풀밭과 나무가 있습니다. 커다란 새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참새 하나만큼은 많고, 무슨무슨 평화 행사라든지 어린이날 행사라든지 할 때면, 인천 자유공원 한켠에서 비둘기를 풀어 놓을 뿐 아니라, 곳곳에 비둘기집을 마련하는 만큼, 어린 날부터 참새와 비둘기는 흔히 곳곳에서 보았습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멍하니 있자면, 비둘기 이백 마리 남짓 무리지어 하늘을 날곤 합니다. 나는 하늘을 마음껏 무리지어 날던 비둘기만 보았기 때문에, 뒷날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몇 해 다니면서 서울사람이 비둘기를 ‘닭둘기’라 손가락질하는 소리가 못마땅하기도 했고 어처구니없기도 했습니다. 아니, 서울사람은 비둘기가 얼마나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며, 얼마나 하늘을 잘 날며, 얼마나 예쁘게 날갯짓하는지를 하나도 모른단 말인가?


  봄부터 가을까지 늘 창문을 열며 공부를 하는 교실에는 으레 참새 한두 마리쯤 들어와서 어수선을 피웁니다. 참새는 교실에서 이리저리 허둥지둥 날갯짓을 하며 벽이나 유리창에 머리를 박습니다. 때로는 골마루까지 나와 옆 교실까지 한바탕 어수선을 피우도록 합니다. 참새 한 마리는 따분하고 골 아픈 공부를 잊게 해 줍니다. 참새 한 마리는 우리더러 딱딱하고 후덥지근한 시멘트방에 갇히지 말고 밖으로 뛰쳐나와 흙운동장에서 뒹굴라고 재잘거립니다.


..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날 때는 새가 되었으면, 하늘나라에서 내려올 때 말야. 그땐 꼭 새의 알 속에 들어가서 작은 날개를 달고 태어날 거야 ..  (7∼8쪽)

 

 


  드문드문 다른 분 자동차를 얻어타고 어딘가 마실을 다닐 때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자동차를 달릴라치면 나비라든지 잠자리라든지 크고작은 새들이라든지 자동차 유리창에 툭툭 부딪히곤 합니다. 벌레들은 자동차 유리창에 부딪히면 팍 하고 몸통이 바스라지며 죽습니다. 크고작은 새들은 웬만해서는 안 부딪힌다지만 곧잘 퉁 하고 부딪히며 튕겨져 나갑니다. 어느 새는 까무라칠 테고 어느 새는 크게 혼쭐날 테며 어느 새는 목숨을 잃겠지요.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아 면내나 읍내 마실을 하다가 길가에 죽어 쓰러진 멧새를 보곤 합니다. 몸에서 따스한 기운 사라진 멧새를 지나칠 수 없어 자전거를 세웁니다. 가녀린 몸뚱이는 매우 가볍습니다. 이렇게 가벼우니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풀밭에 주검을 옮깁니다. 다음 삶에서는 부디 좋은 보금자리에서 맑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새들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니까 찻길에서 자동차한테 안 치일 만하지 않느냐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새들은 먹이를 찾아야 하는걸요. 흙땅에서 살아가는 작은 벌레를 찾아야 하거든요. 봄에는 아직 나무열매가 없으니까요. 겨울에도 나무열매란 없으니까요. 이 풀밭에서 저 논밭 사이를 날다가 그만 찻길을 가로질러야 할 때에 자동차들이 씽씽 내달리니 그만 자동차에 받힙니다. 자동차는 새를 치든 잠자리를 치든 멈추지 않습니다. 빠르기를 줄이지 않습니다. 유리닦개로 슥슥 물 뿌리며 닦으면 끝입니다. 목숨 하나 사라진 줄 느끼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달리는 어른들은 목숨을 헤아리기 어려운 삶입니다. 목숨을 헤아리기 어려운 삶인 어른들이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갑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목숨을 헤아리지 않는 어른한테서 지식을 배우고 정보를 얻습니다. 아이들은 목숨을 아끼지 못하는 어른한테서 학문을 물려받고 사회경험을 쌓습니다.

 

 


.. 집 가까이 사는 새가 좋겠어! 하루 종일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배가 고프면 나처럼 마음씨 착한 친구를 찾아가서 맛난 음식도 먹고 말야 ..  (17쪽)


  여느 자리에서 새를 마주하지 않는다면 새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느 때에 새를 마주치지 못한다면 새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느 자리에서 이웃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이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느 때에 이웃을 마주치지 못한다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서로 아끼며 돌보고 사랑할 새와 이웃입니다. 서로 믿으며 어깨동무하고 웃음꽃 터뜨릴 새와 이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만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 곁에는 햇살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 둘레에는 바람과 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 가까이에는 흙과 풀과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과 풀과 나무 언저리에는 벌레가 함께 살고, 새가 함께 살며, 짐승이 함께 삽니다. 사람은 사람만 외따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람 둘레에 뭇목숨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살아갈 길이 열립니다. 사람들만 바글바글 있대서 사람이 살아나갈 길이 열리지 않아요. 사람들만 가득한 데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아끼지 않아요.

 

 

 

.. 새들의 말을 배울 테야. 그러면, 새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잖아 ..  (29∼30쪽)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 《작은 새가 좋아요》(크레용하우스,2002)를 읽습니다. 작은 새는 좋습니다. 작은 새는 참 좋습니다. 작은 새를 좋아하는 아이가 좋습니다. 작은 새를 좋아하는 아이가 더없이 좋습니다.


  아이는 새가 속삭이는 말을 배웁니다. 아이는 마음속으로 새가 되어 서로 동무합니다. 아이는 작은 새들하고 먹을거리를 나누고 잠자리를 나눕니다. 아이는 작은 새들이 걱정이나 근심 아닌 사랑과 믿음을 속삭일 보금자리를 꿈꿉니다. 아이가 꿈꾸는 보금자리에서는 새들뿐 아니라 사람들도 마음놓고 예쁘게 살아갈 만합니다.


  새와 함께 꽃이 핍니다. 새와 함께 수풀이 우거집니다. 새와 함께 하늘이 해맑습니다. 새와 함께 바람이 상긋합니다. 새와 함께 물결이 노래합니다. 작은 새와 작은 아이와 작은 숲과 작은 이야기가 좋습니다. (4345.4.10.불.ㅎㄲㅅㄱ)


― 작은 새가 좋아요 (나카가와 치히로 글·그림,사과나무 옮김,크레용하우스 펴냄,2002.8.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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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집권자가 어떤 '나라 이름'을 붙이든, 사람들은 그예 사람들입니다. 함경도 사람이나 전라도 사람이라는 틀이 아닌, 그저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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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이흥환 엮음 / 삼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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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기행 학고재 산문선 6
시바 료타로 / 학고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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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섬에서 평화를 지키는 평화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6] 시바 료타로, 《탐라 기행》

 


- 책이름 : 탐라 기행
- 글 : 시바 료타로
- 옮긴이 : 박이엽
- 펴낸곳 : 학고재 (1998.2.20.)
- 책값 : 9800원

 


  매화꽃잎이 집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따라 말갛게 눈부시던 꽃잎이 하나둘 지면서 마늘밭 푸른 물결 사이로 톡톡 떨어집니다. 시골마을 매화나무는 이렇게 마늘밭 사이로 꽃잎을 날리는데, 도시에서 조그마한 흙자락 겨우 얻어 뿌리를 뻗는 매화나무는 고운 꽃잎을 어디로 날릴 수 있을까요. 꽃이 지고 열매를 맺어 씨를 떨굴 때에는 어디로 어떻게 새 아기들을 퍼뜨릴 수 있을까요.


  사람 발길이 거의 안 닿는 숲길을 거닐면 하늘을 가릴 만큼 뻗은 큰 나무들 밑으로 아이들 손가락 길이만큼 자란 뾰족뾰족한 풀줄기를 보곤 합니다. 숲길을 그냥 지나치며 보면 풀줄기가 솟았구나 하고 여길 테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쪼그려앉아 들여다보면 여느 풀줄기 아닌, 둘레에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들이 씨앗을 떨구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에 새로 돋은 아기나무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둘레에는 한 해를 자란 아기 느티나무부터 두 해를 자란 아기 느티나무나 서너 해를 자란 자그마한 아기 느티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어린 느티나무는 서너 해를 자랐어도 키가 아주 작습니다.


  작은 나무는 사람 발길이나 손길을 타지 않으면 마음껏 자랍니다. 마음껏 자라며 서로 얼키고 설킵니다. 얼키고 설키다가 어느 나무는 죽고 어느 나무는 높이 뻗습니다. 한 사람 삶으로는 나무들 얼키고 설키는 삶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따로 가지치기나 사이베기를 하지 않아도 나무들은 스스로 숲을 일구고 돌보며 어루만집니다. 스스로 알맞게 자라고, 스스로 죽어 거름이 됩니다. 스스로 씨앗을 내리고, 스스로 새싹을 틔웁니다.


.. 생각하면, 사대부 또는 그것을 지향하는 지식인들이나 독서생들이 거의 불모라 할밖에 없는 신학 논쟁을 5백 년이나 계속하였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보더라도 기이한 일이라 할 만하다. 중국인이나 조선인만큼 정신적 활력이 풍부한 민족이, 세계가 근대로 들어서는 가장 중요한 다섯 세기를 말장난 같은 학문에 소모해 버렸다고 하는 것은 통탄할 노릇이다 … 한국의 옛 건축물을 보고 공통적으로 느끼는 인상은 우아함과 유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근대 이전의 중국 건축과는 완연히 구별되는 듯하다. 중국의 대건축에는 정권의 위용을 형태로써 보여주고자 하는 의식이 있으나, 한국의 그것에는 설사 그것이 궁전이라 할지라도 그런 의식이 적다. 아마도 나라의 넓이가 작은 데다 단일민족이라는 요소도 가세하여, 건물로써 위압을 주어야 될 필요는 없었던 까닭인가 한다 ..  (14, 64쪽)


  봄을 맞이해 개구리가 깨어납니다. 개구리가 깨어나면 뱀도 깨어나겠지요. 이 나라에 사람들만 득시글거리며 온 골골샅샅 찻길이나 구멍이 뚫리지 않던 때에는 곰도 깨어났어요. 곰과 함께 다람쥐가 깨어납니다. 들토끼나 멧토끼는 새로 돋는 봄풀을 맛나게 뜯어먹으며 긴긴 겨울이 얼마나 춥고 힘들었는가를 떠올립니다.


  이 나라에서 마지막 멧곰이 마지막 겨울잠을 깨던 봄은 언제였을까 헤아립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멧곰 식구들한테 보금자리를 내주기 힘들 만큼 더 넓은 땅을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은 자동차를 더 빠르게 내달려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봄을 맞이한 뒤 자전거를 타고 읍내나 면내로 달리면, 길바닥에 차에 치여 죽은 짐승과 벌레를 숱하게 만납니다. 자동차는 사마귀나 방아깨비를 밟아 죽여도 느끼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모는 어른들은 길알림판이나 앞차를 바라보는 데에 바쁘지, 새까만 길바닥 한켠에 사마귀가 몸을 따뜻하게 덥히다가 그만 커다란 쇳덩이가 덮치며 납짝쿵이 되고 마는 줄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나비를 치든 잠자리를 밟든, 범나비 애벌레를 밟든 동박새를 치든, 자동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릴 뿐입니다.


  봄비 내려 논마다 물이 찹니다. 물이 찬 논마다 개구리가 웁니다. 개구리 우는 논자락에는 새들이 살포시 내려앉아 개구리 먹이를 찾습니다. 개구리 우는 논 둘레 찻길에는 멋모르고 올라온 개구리가 자동차한테 밟혀 또다시 납짝쿵이 됩니다. 개구리들 사이에는 새까만 찻길은 얼핏 따뜻하다고 여길 수 있다지만 아무 무시무시하다는 이야기를 유전정보로 대물림하지 못할까요.


.. 강재언 씨는 보기 드문 애국자다. 대한민국이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니 하고 두 쪽으로 갈라져 맞서고 있는 마당에, 애국자 노릇을 계속한다는 것은 바로 고독 그것이다 …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한국에는 지식인이 있을 뿐, 일본같이 지적인 기인이 없다는 점이다.” 하는 말을 10여 년 전 어느 한국인의 글에서 읽은 일이 있다 … 경상도 사람들이 자신의 자부심을 한껏 높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러다 보니 자기가 소속된 지역 자랑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딴 지역을 폄하하게 되는 것이다 … 문제는 문장의 교졸로 인하여 한 사람은 천상의 생활이 보장되고, 다른 수백만 명은 땅바닥에 엎드려 기는 삶을 강요당해야 하는 제도에 있다 ..  (24, 95, 103, 160쪽)


  모처럼 네 식구 다 함께 이웃 순천시로 나들이를 다녀온 지난주 일을 떠올립니다. 순천시는 이웃한 광양시보다 작고, 광양시는 광주광역시보다 작으며, 광주광역시는 대전이나 인천보다 작으며, 대전이나 인천은 서울보다 작습니다. 그러나, 순천시는 보성군이나 장흥군이나 고흥군보다 큽니다. 찻길이 넓고 시내가 넓으며 사람이 많습니다. 높은 건물과 아파트가 줄줄이 늘어섭니다.


  무엇보다 시내 가까이에 논이나 밭이 없습니다. 논이나 밭이 없는 순천 시내에서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참새 소리를 듣는다지만, 동박새나 노랑할미새나 직박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까마귀나 노랑조롱이나 종달새 소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서울보다 작고, 인천보다 작으며, 광주보다 작고, 광양보다도 작은 순천시이지만, 이 순천시에서 뱀을 만날 길은 없습니다. 개구리뿐 아니라 다람쥐도 사마귀도 방아깨비도 만날 길이 없어요.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자동차를 걱정합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 귀가 멍합니다. 바라볼 만한 푸른 숲이나 들이 없어 눈이 아픕니다.


  나도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던 나는 자동차 소리가 하나도 반갑거나 좋지 않았습니다. 어린 우리들 놀이터를 자동차가 차지하는 일이 몹시 싫었습니다. 국민학교 운동장에 자동차가 들어오면 그렇게 싫었습니다. 한창 공차기를 하는데 뒤에서 빵빵 울리며 비키라 하는 어른들 자동차가 대단히 싫었습니다. 집과 학교 사이를 걸어서 오가는 사오십 분 길을 두 귀가 멍하도록 큰길을 달리는 자동차가 참으로 싫었습니다.


  네 식구 함께 시골로 옮겨 자동차 소리하고 동떨어진 삶자락에서 지내며, 내 몸이 얼마나 시골을 바랐고, 자연을 꿈꾸었으며, 풀과 나무와 꽃을 기다렸는가 하고 깨닫습니다. 아마, 사람이라면, 여느 사람이라면, 물로 이루어지고 흙에서 태어났으며 햇살을 먹고 자라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어디에서 제 숨결을 가장 사랑스럽고 어여삐 빛낼 수 있는가를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 한 가지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은, 한국인이나 조선인은 뛰어난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일본 것을 연구하려고 들면, 어딘가 바보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일까 … 과거에 응시할 만한 사람은 우선 방대한 중국 고전을 암송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은 오직 주자의 주석을 따라야 한다. 그런 연후에 바늘끝만 한 정의를 향하여 스스로의 지성을 응축시켜야만 한다 … 그들 중에는 더러 에라스무스의 두뇌를 가진 자, 뉴턴이 될 만한 인물도 있었으련만, 몽땅 판에 박은 분재송이 되어 버렸다 … 만일 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논쟁토록 하였다면, 이후의 조선 사상사는 엄청나게 풍부하게 되었을 것이다 … 진실이란 그러한 틀 속에는 들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을 얼마만큼 나쁘게 보든 상관없으나, 자유로운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는 것을 서울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  (38, 84∼85, 87, 207쪽)


  제주섬을 생각합니다. 제주섬은 ‘제주’라는 이름이기 앞서 ‘탐진’이었고, 탐진이라는 이름이기 앞서 ‘탐라’였다 합니다. 이곳을 다스린다고 하던 나라님은 ‘탐라’가 ‘홀로 한 나라를 나타내는 이름’이기에 못마땅해서 ‘라’를 ‘진’으로 고쳤고, 나중에는 아예 ‘탐’까지 없애고 ‘진’에서 한 자리 낮추어 ‘주’를 붙였다 해요.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한국사람이 쓴 글이나 책에서 읽지 못합니다. 한국사람이 쓴 글이나 책에서는 어느 때에 어떻게 이름이 바뀌었다 하고만 나올 뿐, 왜 이렇게 이름을 바꾸어야 했는가 하고 찬찬히 밝히거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한국역사를 배웠으나, 이러한 발자취를 배운 일이 없어요. 일본사람 시바 료타로 님이 쓴 《탐라 기행》(학고재,1998)을 읽으며 비로소 이 같은 발자취를 깨닫습니다.


.. 조선이라는 나라의 까다로운 성격은, 순수한 중국인에 대하여도 꺼리고 멀리하여, 될 수 있는 한 서울에서는 살지 못하게 하였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조선 전체가 자신의 관념이 만들어낸 누에고치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 지폐 위에 찍혀 있는 이퇴계는 분명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없으나, 중국 주자학을 몇 세기 뒤에 전달해 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 조선 왕조는 도그마에 얽매인 관료들이 고의로 문명을 정체시켰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지 않으면, 무슨 동화 속의 이야기로 들리기 십상이다. 조선사람들은 짐을 짊어지고 걸어간다. 만약 수레가 있다면 얼마나 경제가 진보하고, 민생이 풍요로워질 것인가 하는 소리가 실학자들의 지론이었다 … 생각해 보면 조선은 중국의 이웃 나라일 뿐 아니라 중국을 종주국으로 받들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통적인 산업기술을 스스로 격리시켜 온 것은 그 형이상적 이유 때문이다 ..  (169, 187, 193쪽)


  남녘땅 정부는 제주섬, 이라 해야 할는지, 탐라섬, 이라 해야 할는지, 이곳 한켠에 군부대를 새로 지으려 합니다. 남녘땅 정부가 새로 지으려 하는 군부대가 이곳 한 군데뿐인가 싶지만, 남녘땅 정부는 이곳을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한 곳이 되도록 하려고 애쓸 뿐 아니라, 남녘땅에서 손꼽히는 관광도시로 키운다고 하지만,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허울을 내세워 군부대 짓기를 밀어붙입니다.


  남녘땅 사람들은 제주섬 올레길을 걷는다고 말합니다. 제주 도지사는 올레길을 닦는 데에 돈을 꽤 많이 씁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곳에 군부대가 들어섭니다.


  사람들은 옳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군부대는 평화를 어떻게 지켜 줄까요. 정부 일꾼은 제대로 살피지 못합니다. 군사시설은 평화를 어느 만큼 지켜 주나요.


  전투기가 평화를 지킬까요. 항공모함이 평화를 지키나요. 박격포와 전차가 평화를 지킬는지요.


  십억이나 백억에 이르는 돈을 베풀어야 사랑이 꽃피지 않습니다. 사랑이 꽃피려면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서울 강아랫마을 아파트를 사거나 값나가는 자동차를 산다 해서 사랑이 샘솟지 않습니다. 사랑이 샘솟자면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이룹니다. 꿈은 꿈으로 빛냅니다.


.. 제주도에 와서 반가운 일 가운데 하나는 낡은 초가집을 아직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오늘날의 문명에는 바보스러운 데가 있다. 학교를 난립시켜, 아이들을 몽땅 우리 속에 가둬 놓고 어느 우리가 더 나은지 등급을 매기고 있다. 사회나 부모가 다 아이들을 닦달하여 등급이 매겨진 우리 속에 밀어넣고 자타를 구별함으로써 안도하는 사회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신분제가 없는 사회가 되면 흡사 광장공포증에 걸린 생쥐 같은 심리 상태가 되어, 그런 우리를 만듦으로써 일종의 신분적 차별성을 향유하는 것이다 … 생각하면, 이름의 한자 따위는 허식일 뿐인 것이, 훌륭한 뜻을 지닌 한자 이름을 가졌다고 전복 한 개를 더 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  (55, 253, 264쪽)


  일본에서 내로라하던 시바 료타로 님은 한국땅 제주섬을 돌면서 책을 하나 써냅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글쟁이라면, 사진쟁이라면, 그림쟁이라면, 춤쟁이라면, 노래쟁이라면, …… 이녁은 어떠한 이야기를 빚을 수 있을까요. 제주섬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요.


  일본에서 손꼽히던 글꾼 시바 료타로 님은 한국땅 제주섬을 생각하는 이야기를 글로 여미면서 책이름에 ‘탐라’라는 말을 적습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글꾼이라면, 환경모임 일꾼이라면, 사회모임 일꾼이라면, 정치모임 일꾼이라면, …… 당신은 어떠한 이름으로 어느 한 터전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한국사람이 한국땅을 착하게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람이 이웃나라를 참답게 아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람이 지구별을 곱게 건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기를 든 평화란 평화가 아닌 ‘무기를 든 전쟁’입니다. 학력을 쥔 평등이란 평등이 아닌 ‘학력을 내세운 차별’입니다. 돈을 앞세운 사랑은 사랑이 아닌 ‘돈을 앞세운 거짓’입니다. (4345.4.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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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별이 흐르는 소리를
가락에 담아.

 

꽃송이 벌어지는 몸짓을
가락에 실어.

 

도랑물 구르는 얘기를
가락에 녹여.

 

아이들 자지러지는 웃음을
가락에 품어.

 

어머니 젖 물리는 손길을
가락에 놓아.

 

햇살이 건드리는 사랑을
가락에 두어.

 

흙이 일어나는 기지개를
가락에 삭혀.

 

내 노래는
내 하루 엮은 숨결.

 


4345.4.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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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11 00:34   좋아요 0 | URL
된장님이 제 가슴을 틔어주시는군요.
지난번 보내주신 시집도 참 좋았는데.....

방금 속상한 페이퍼를 본지라, 크게 숨을 내쉽니다.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2-04-11 05:32   좋아요 0 | URL
좋은 마음과
좋은 삶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즐겨 주셔요~
 


 앉은뱅이꽃 글 한 조각

 


  내가 인천에서 국민학교를 다니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일을 떠올립니다. 열두 해 학교를 다니며 내가 알아보는 꽃은 몇 가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도시 한복판에 흐드러지는 들꽃은 퍽 드뭅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보내느라 학교 바깥 골목꽃이 피고 지더라도 들여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교과서에 목련을 노래하는 시가 나올 때에 비로소 목련 이름을 듣습니다. 그러나 글로 적힌 목련을 읊을 뿐, 목련꽃을 두 눈으로 들여다본다거나 목련꽃이 피는 목련나무가 어떤 씨앗에서 비롯해 어떤 나무로 크는가를 찬찬히 살피며 배우지 못합니다. 교과서에 진달래 노래하는 시가 실릴 때에 비로소 진달래 이름을 듣습니다. 그러나 막상 도시 한복판에 진달래가 피고 지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를 떠나 들판이나 멧등성이로 나아가야 겨우 진달래를 바라볼 만하지만, 진달래가 흐드러지는 아침이나 한낮에 교실 아닌 들판을 뒹굴 수 있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시 이런 학교라 하더라도, 민들레만큼은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리며 노란 꽃봉우리를 터뜨립니다. 민들레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봅니다. 다만, 민들레가 꽃봉우리 터뜨리기 앞서까지는 민들레풀인지 아닌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꽃송이가 오르고 꽃봉우리가 터질 무렵 드디어 알아봅니다.


  아이와 함께 들길을 거닐다가, 민들레 곁에서 나란히 피고 지는 제비꽃을 바라봅니다. 앉은뱅이꽃 두 가지가 나란히 피고 집니다. 제비꽃이 스무 날 즈음 먼저 피었고, 이제 민들레꽃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한동안 두 꽃을 바라보다가 일어섭니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제비꽃이 피고 지더라도 제비꽃을 볼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면 제비꽃을 보지도 못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제비꽃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할 때에는 제비꽃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쓰지 못합니다. 제비꽃을 모를 뿐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동안에는 제비꽃을 사랑할 수 없고, 제비꽃을 그릴 수 없어요. 누군가 제비꽃을 노래하더라도 가슴으로 훅 끼치도록 맞아들이지 못해요.


  아는 만큼 바라볼 수 있지 않습니다. 살아내어 몸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새길 때에 비로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라볼 때에 알 수 있지 않습니다. 바라보며 마음을 열고 사랑을 피워낼 때에 바야흐로 알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꽃이 피고 새롭게 바람이 불며 새롭게 햇살이 드리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꽃은 피고 집니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바람이 불고 멎습니다. 누가 시장이나 군수가 되든 햇살은 온누리 곱게 비추며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4345.4.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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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4-09 00:15   좋아요 0 | URL
저는 '앉은뱅이 꽃'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제비꽃'이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해요.앉은뱅이라고 부르면 너무 가엽잖아요.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제비가 좋아요^^
우리가 어떻게 부르든 꽃은 저혼자 참 이쁘게도 피지요~~^^

파란놀 2012-04-09 17:26   좋아요 0 | URL
앉은뱅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꿈을 꾸면서
홀가분하게 살아가리라 생각해요.

멀리멀리 꽃씨를 날려
이듬해에는
온 곳에 꽃누리를 이루거든요~

2012-04-09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4-09 15:09   좋아요 0 | URL
음.. 글쎄... 둘 다 똑같은 듯하네요 @.@

2012-04-25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4-25 17:0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글에서는 그러할 수 있지만,
입으로는 흔히 그렇게 말해 버릇해서요.

곰곰이 생각해 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