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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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은 대로 똥을 누듯, 삶결 그대로 읽는 책
 [책읽기 삶읽기 95] 김남일, 《책》(문학동네,2006)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읽습니다. 사람들은 글을 씁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글을 씁니다.

 

 사람들은 삶을 꾸립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삶을 꾸립니다. 도시가 되든 시골이 되든 살림터를 찾고, 높다랗게 층층집이 되든 낮다랗게 골목집이 되든 살림자리를 돌봅니다.

 

 살아가는 곳에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는 마음결대로 책을 마주합니다. 살아가고픈 대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매무새대로 책을 다룹니다.

 

 어떤 이는 책에만 빠져들는지 모릅니다. 아름답다 여기는 생각씨앗을 얻으려고 책에 흠씬 젖어들는지 모르고, 책에서 눈을 떼고 바라보는 둘레 터전이 그닥 사랑스럽지 않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아직 책 바깥 누리가 어떠한 모습이고 빛깔이며 무늬이고 내음인지를 못 깨달았기 때문인지 몰라요.

 

 어떤 이는 책에는 등돌릴는지 모릅니다. 젊을 적부터 책읽기를 하지 않거나 책읽기를 할 겨를이 없던 나머지, 나이가 든 뒤에는 눈이 어두워지고 말아 책을 못 읽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 날 글을 깨우쳐 처음 책읽기를 할 수 있기까지 여러 해를 애써야 하듯, 늙은 몸뚱이를 이끌고 여러 해 힘을 쏟아 예순이나 일흔이나 여든에 처음으로 책읽기에 사로잡힐는지 몰라요.


.. 서점은 그저 책만 사고팔던 가게가 아니었다  ..  (20쪽)


 사람이 좋아 사람읽기를 합니다. 사랑이 따스해 사랑읽기를 합니다. 내 삶을 아끼면서 삶읽기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늘읽기를 합니다. 밤하늘 별을 좋아하면서 별읽기를 합니다. 흙을 만지며 곡식과 푸성귀를 일구는 나날, 흙읽기를 합니다.

 

 누군가는 돈읽기를 할 테고, 누군가는 정치읽기를 합니다. 누군가는 학력읽기를 할 테며, 누군가는 밥그릇읽기를 합니다. 저마다 가장 바라는 대로 살아가며 무언가를 읽습니다. 스스로 가장 잘 할 만하다 여기는 쪽으로 흐르며 무언가를 읽습니다.

 

 허물없이 살아가고자 마음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믿고 어깨동무하려는 몸가짐으로 믿음읽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책읽기를 한다면, 종이에 새긴 글을 읽는 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글만 읽는다면 글읽기이고, 글이 보여주는 정보나 지식을 읽는다면 정보읽기나 지식읽기이며, 시험공부를 하며 들여다보는 일이라 하면 시험문제읽기예요. 책읽기란, 책으로 나누려 하는 삶이나 마음이나 사랑이나 꿈이나 빛이나 생각이나 자연이나 사람을 읽는 일입니다.


.. 나는 양심을 잃은 대신 헐값에 지식을 얻었다 … 한 권의 책이 한 인간, 특히 하루에도 백 번쯤 꿈을 키웠다가 접고 접었다가 키우는 젊은 영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  (26, 214쪽)


 소설쓰는 김남일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책》(문학동네,2006)을 읽습니다. 김남일 님은 글로 쓸 때에는 한글 ‘책’이 아닌 한자 ‘冊’으로 적어야 맛이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아마, 글읽기를 할 때에는 ‘冊’이 ‘책’보다 낫다 여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더욱이, 요사이에는 ‘冊’도 ‘책’도 아닌 ‘book’을 써요. 영어조차 아닌 한글로 ‘북’을 쓰는 이도 꽤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책을 읽는 맛을 달리 느끼니까, 누군가는 ‘오피니언’처럼 ‘북피니언’을 말하고, ‘북셀러’를 말한다든지 ‘북토피아’나 ‘북클럽’이나 ‘북마케팅’을 말해요. ‘북쇼’나 ‘북시티’를 말하는 이들은 이러한 말이어야 비로소 ‘책맛’이 산다고 여기는 셈입니다.


.. 만일 그(이문열)가 싫어 그를 초라하게 만들고 싶다면, 누군가가 그가 쓰는 어떤 소설보다 더 가치 있고 더 재미있는 소설을 써서 우리 나라 독자들이 차차 그의 품에서 벗어나면 된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그가 보인 행보는 나로 하여금 이제 그런 생각조차 접게 만든다 ..  (63쪽)


 입으로 말할 때에는 그저 ‘책’입니다.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입으로 말할 때에는 늘 ‘버스’이고 ‘택시’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는 밥을 먹을 뿐입니다. 누군가 식사하자 말한대서 입으로 읊는 말이 ‘食事’가 되지 않아요.

 

 풀은 그예 풀입니다. 풀을 바라보며 느끼는 빛깔은 풀빛입니다. 중국사람은 ‘草綠’이라 적을 테고, 일본사람은 ‘綠色’이라 적을 테며, 영국이나 미국에서 사는 사람은 ‘green’이라 적을 테지요. 한국사람은 풀을 바라보니 오직 풀빛입니다. 무지개는 무지개빛이고 하늘은 하늘빛이요 바다는 바다빛입니다. 사람은 사람빛이고 사랑은 사랑빛이며 책은 책빛이에요.

 

 사람들마다 손에 쥘 책에는 어떠한 책빛이 서릴까 궁금합니다. 널리 읽히는 책이라 수십 수백만 권이 팔린다는 책에는 집집마다 어떤 빛이 드리울까 궁금합니다. 1000권이나 100권 겨우 읽히는 책에는 사람들마다 어떤 빛을 느끼면서 맞아들일까 궁금합니다. 10만 권 팔리는 책을 쓴 사람은 대단하다 여길 만하고, 10권 팔리는 책을 쓴 사람은 하찮다 여길 만할지 궁금합니다. 20만 권 팔린 책은 두루 알릴 만하고, 200권 팔린 책은 느낌글 하나 붙을 값어치 없을는지 궁금합니다.


.. 그때 마침 미군의 용병으로 간 친구가 나를 불렀다. 용산의 미8군 도서관, 그곳이 보물창고라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에 없는 것은 거기에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것. 어찌어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과연 듣던 것 이상이었다. 거기에는 특히 마오의 중국혁명에 관한 책이며 난공불락이라던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궤멸시킨 베트남의 영웅 보 응웬 지압 장군의 전술 전략서 등 … 게다가 그런 것들을 아무런 제지 없이 빌려가 볼 수 있다는 것. 나는 아마 다시 한 번 미국의 충격적인 힘의 실체를 절감했을 것이다 ..  (158∼159쪽)


 소설쓰는 김남일 님은 오직 김남일 한 사람이 태어나 살아오는 나날에 빗대어 책을 읽습니다. 때때로 겉멋에 들린 채 ‘높아 보인다’던 선배나 후배가 훑던 책을 빌리거나 사서 읽기도 하지만, 몇 장 못 넘기고 묵힌다는 이야기를 《책》에 적바림합니다. 곧, 겉멋에 들리기도 하던 책읽기는 김남일 삶읽기하고 서로 같아요. 때로는 겉멋이고 때로는 속맛이며 때로는 겉훑기이고 때로는 속치레입니다.

 

 이리로 살가이 흐르는 삶이고, 저리로 안타까이 흐르는 삶입니다. 더 낫다거나 더 모자라다거나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고 재거나 따질 수 없는 삶입니다. 김남일 님은 김남일 님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 새로운 미래는 중심으로 치닫는 데서가 아니라 오히려 ‘탈중심화’로부터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조용히’ 외치는 것이다. 어지러운 새해 벽두, 아파트에 갇혀 사는 나 또한 과거에서 미래를 보고 싶은 꿈에 사로잡힌다 ..  (255쪽)


 김남일 님은 《책》이라는 책에서 아파트 문명과 권력을 살짝 나무라는 듯하면서도 스스로 아파트에 갇힌 삶이라고 푸념합니다. 김남일 님은 아파트에 갇힌 삶에서 스스로 헤어날 낌새는 보이지 않아요. 슬그머니 푸념하는 매무새로 지나갑니다. 어쩌면, 김남일 님 소설도, 김남일 님 《책》도, 김남일 님 ‘읽는 책’도 이러한 굴레하고 한동아리 아닐까 싶습니다.

 

 ‘탈중심화를 조용히 외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어디에 선 삶인가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나한테 새로운 앞날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새로운 앞날이란 대한민국 정부가 나아갈 새로운 앞날이 아니에요. 지구별이 나아갈 새로운 앞날 또한 아니에요. 바로 나 스스로 살아갈 새로운 앞날입니다. 정부가 어찌저찌 바뀌건 말건 나 스스로 하루하루 꾸리는 삶을 새로 일구어야 합니다. 지구별을 걱정한다면, 나부터 내가 선 곳을 아름답게 돌보도록 마음을 쏟아야 해요.

 

 김남일 님 스스로 한결 사랑스러우면서 따스하게 길을 걷는다면 《책》에 감도는 맛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꿈꾸어 봅니다. 당근을 짠 물을 마시는 갓난쟁이는 당근물처럼 바알간 똥을 누고, 어머니젖을 무는 갓난쟁이는 어머니젖 내음 풍기는 똥을 눕니다. 세겹살 구워먹는 어른들은 세겹살 삭은 내음 풍기는 똥을 누고, 소주를 들이붓는 어른들은 소주 내음 짙은 똥을 눠요. 먹은 대로 똥을 누듯, 읽은 대로 글을 씁니다. 읽는 대로 책을 바라보듯, 삶 그대로 책을 느낍니다. (4344.12.31.흙.ㅎㄲㅅㄱ)


― 책 (김남일 글,문학동네 펴냄,2006.5.3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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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빵을 드세요!
오오와다 토시코 지음, 타나카 츠카사 그림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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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을 굽는 손길에는 무엇이
 [만화책 즐겨읽기 100] 타나카 츠카사·오오와다 토시코, 《맛있는 빵을 드세요!》(미우,2011)

 


 밥을 하는 손길에는 밥하는 사람 사랑이 깃듭니다. 빵을 굽는 손길에는 빵을 굽는 사람 사랑이 스밉니다. 좋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밥이든 빵이든 하지 못합니다. 좋은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밥을 하거나 빵을 합니다.

 

 타나카 츠카사 님이 그리고 오오와다 토시코 님이 글을 넣은 만화책 《맛있는 빵을 드세요!》(미우,2011)는 동네 한켠에서 조그맣게 빵집을 꾸리는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주머니는 집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옆지기을 먹여살리니까 눈코 뜰 사이 없습니다. 빵집은 날마다 열지 못한답니다. 한 주에 며칠씩 요일을 맞추어 한동안 살짝 열고는 이내 닫는답니다. 그런데 큰길가 사람들 많이 들락거리는 곳이 아닌 살림집 가득한 골목 안쪽 깊숙하게 자리한 ‘모퉁이 빵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빵은 금세 동이 난다고 해요.

 

 빵맛이 좋으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빵을 고르리라 생각합니다. 빵맛 돋우는 손길이 사랑스러우니 사람들이 요일에 맞추어 찾아와 기쁘게 방을 사들이리라 생각합니다. 빵맛이 없거나 빵맛을 돋우는 손길이 사랑스럽지 않다면 사람들은 큰길가 커다란 빵집이라 하더라도 애써 찾아가지 않습니다. 너무 배고픈 나머지, 또는 너무 바쁜 나머지 ‘맛과 손길’을 헤아릴 겨를이 없는 사람들만 ‘맛없고 손길 사랑스럽지 못한’ 빵집에서 빵을 사들여요.


- “냄새 좋다. 이게 갓 구워진 빵의 향기구나.” (27쪽)
- “아주 맛있어요. 감동 먹었어요.” “오오와다 씨도 구울 수 있어요. 천연 효모로 한번 도전해 보세요.” (81쪽)


 아이를 달래며 다독이는 손길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노래하는 손길에는 사랑이 감돕니다. 사랑이 없이 아이를 달래지 못하고, 사랑이 없는 채 아이를 안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이하고 어울려 놀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으면서 아이하고 노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함박웃음꽃을 베풀지 못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고운 웃음꽃을 피우도록 이끌지 못해요.

 

 사랑이 아니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은 다달이 일삯을 알뜰히 챙길 테지만, 막상 아이들은 사랑이 아닌 지식과 정보만 잔뜩 머리에 쑤셔넣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삶을 북돋우거나 일구는 사랑은 조금도 받아먹지 못하면서 머리통만 굵어지고 맙니다. 머리통만 굵어지는 아이들은 이웃을 아끼거나 둘레를 돌아보거나 푸나무를 내 몸처럼 보살피는 마음씨를 건사하지 못해요. 머리통만 굵어진 아이들은 스스로 밥·옷·집을 마련하며 나누는 삶을 생각하지 못해요.


-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어. 코유키는 손이 많이 가는 밀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보람이 있는 밀이었어.’ (128쪽)
- “난 그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받지 않고 정정당당히 빵을 구워서 팔고 싶어.” (185쪽)


 빨래를 하는 손길에는 사랑이 흐릅니다. 빨래를 개는 손길에는 사랑이 맴돕니다. 사랑이 없이 빨래를 하지 못합니다. 속옷을 빨든 이불을 빨든 늘 매한가지입니다. 사랑스러운 꿈을 담아 빨래를 복복 비비고 헹구며 짭니다. 사랑스러운 믿음을 모아 빨래를 널고 걷으며 갭니다.

 

 이 옷을 입을 살붙이가 어떠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옷을 입은 살붙이가 오늘 하루 기쁘게 맞이하며 예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넋입니다.

 

 제도가 훌륭하다든지 시설이 대단하다든지 복지가 빈틈없대서 좋은 삶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도가 없더라도 살림을 보듬는 사람한테 사랑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시설이 없더라도 살림을 꾸리는 사람한테 사랑이 넘실거리면 흐뭇합니다. 복지가 없더라도 살림을 아끼는 사람한테 사랑이 샘솟으면 아름다울 수 있어요.

 

 손으로 빨래하거나 기계로 빨래하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빠서 손빨래를 못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남아돌아 손빨래를 하지 않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를 사랑하는 넋으로 빨래를 합니다. 모두 아끼는 넋으로 옷가지를 매만집니다.


- ‘일단 내 손을 떠나면 그 빵이 어떤 상태로 진열되고 팔리는지 파악할 수 없는 거야. 내가 만든 빵은 내 눈이 닿는 곳에 둬야 하는 거였어. 백화점에 입점한 빵집이 그 자리에서 굽는 건 그런 이유였어.’ (157쪽)
-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정말 기뻐요. 동네에 빵집이 생겼다고 다들 많이 기뻐했어요.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272쪽)


 만화책 《맛있는 빵을 드세요!》는 책이름 그대로 맛있는 빵을 드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만화책에서 밝히는 맛있는 빵이란 가장 좋은 밀과 가장 좋은 기계로 굽는 빵이 아닙니다. 빵을 굽는 손길이 사랑스럽고, 빵으로 다시 태어나는 밀을 사랑스레 돌보았기에 맛있는 빵이 있습니다.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다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좋은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며, 좋은 꿈을 키울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을 따사로이 돌볼 수 있겠지요. 내 보금자리를 아리따이 건사할 수 있겠지요. 내 앞길을 환하게 빛낼 수 있겠지요. 우리 지구별을 서로 곱게 쓰다듬을 수 있겠지요.


- “엄마, 어떡할 거야?” “다른 국산 밀을 쓰면 되잖아?” “안 돼. 우리 집 빵은 코유키이기에 나올 수 있는 맛이란 말이야.” (275쪽)
- ‘저는 생산 관계자를 만나 계약재배해 줄 것을 부탁드려 봤습니다. 하지만 좋은 대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저 같은 개인을 위해 생산해 봤자 농가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몇 번이나 찾아뵈었습니다. 때로는 빵을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276쪽)


 내가 언제까지나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살아갈 때에 즐겁습니다.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채우고서 정년퇴직을 할 만한 일이 아니라, 늙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기쁘게 누릴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살아갈 때에 반갑습니다.

 

 어떤 일이든 다섯 살 어린이와 열다섯 살 푸름이가 함께 할 만해야지 싶어요. 일흔다섯 살 할머니와 여든다섯 살 할아버지가 힘차게 할 만한 일이어야지 싶어요. 돈버는 일자리란 ‘일’이 아니라 ‘돈벌이’입니다. 돈도 벌고 일도 찾는다는 삶이 아니라, 일을 일대로 즐기면서 사랑을 사랑대로 나누고 돈은 돈대로 알맞게 벌 수 있는 삶터에서 꿈을 펼치고 싶습니다. (4345.1.1.해.ㅎㄲㅅㄱ)


― 맛있는 빵을 드세요! (타나카 츠카사 그림,오오와다 토시코 글,한나리 옮김,미우 펴냄,2011.9.3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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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눕는다

 


 아이들이 함께 엎드린다. 갓난쟁이가 어머니 곁에서 엎드린 옆으로 첫째 아이가 나란히 엎드린다.

 

 아이들이 함께 눕는다. 갓난쟁이는 어머니 곁에서 눕고, 첫째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눕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섯 해를 함께 살았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첫째 아이는 네 해를 함께 살았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와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이제 한 해를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는 네 식구는 한솥밥을 먹는다. 한 집에서 지내며 한 방에서 잔다. 같은 책 한 권을 넷이서 돌려읽거나 나란히 읽는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먼저 읽은 글책을 아이들은 나중에 물려받아 읽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본 땅뙈기를 아이들은 나중에 함께 돌보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팔힘 다리힘이 빠진다면, 아이들이 빨래를 맡을 수 있을까. 아니, 이때에는 전기를 먹지 않는 빨래기계를 마련해서 이 집에 놓아 줄까. 아니, 아버지와 어머니 팔다리에 힘이 줄어들 무렵이면 아이들 옷가지 빨래할 일이 없을 테니, 조금 겨우 내는 힘으로도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 옷가지쯤 너끈히 손수 빨래할 수 있으리라. 이제 아이들은 저희 옷가지를 저희가 마련하고 돌보며 빨래하는 삶을 일구어야지.

 

 어버이는 아이한테 아이가 읽을 책을 내밀 수 없다. 아이는 스스로 글을 읽을 무렵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찾는다. 어버이는 아이가 바라는 대로 모두 이루어 주지 않는다. 아이가 이리 가고 저리 가며 스스로 길찾기 하는 동안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길동무가 된다.

 

 책을 읽어 받아들이는 느낌은 오직 내 마음밭 넓이에 달린다. 밥을 먹어 받아들이는 느낌은, 맛은, 기운은, 기쁨은, 오직 내 혀와 입과 몸에 달린다. 좋은 밥으로 느껴 좋은 기운을 얻는다면, 좋은 글·그림·사진을 읽어 좋은 넋을 북돋우면서 좋은 사랑을 키우겠지.

 

 아이들과 같이 눕는다. 옆지기와 나란히 눕는다. 아이들과 같이 꾸리는 삶이다. 옆지기와 나란히 사랑할 삶이다. 책은 네 식구 사이에서 얌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책은 네 식구 가슴마다 다 다른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야기열매를 맺는다.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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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섣달그믐 책읽기

 


 섣달그믐날, 시골집 인터넷이 먹통이 되다. 무슨 까닭인지 알 길이 없다. 새해 첫날을 앞두고 100을 눌러 신고를 한다. 누군가는 섣달그믐 아침 아홉 시부터 전화를 받아 고장났다는 이야기를 받는다. 누군가는 섣달그믐뿐 아니라 새해 첫날에도 작은 자동차를 몰아 마을 곳곳 인터넷 먹통이 된 집을 찾아다니며 손을 본단다. 우리 집에는 새해 첫날이나 이듬날에 일꾼이 찾아올 듯하다.

 

 섣달그믐 날을 새야 한다지만, 우리 식구는 저녁 여덟 시 반이 조금 넘어 잠자리에 눕는다. 둘째 아이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을 뿐더러,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을 깊이 못 들며 제대로 놀지 않은 탓에, 너무 힘든 하루였으니까. 불을 끄고 아이 어머니가 품에 꼬옥 싸안고 누워서야 겨우 조용해진다. 첫째 아이 때에도 이렇게 어머니를 고단하게 했지. 아이 어머니는 두 아이를 돌보면서 밤잠을 옳게 들지 못하고, 두 팔이 베개 노릇을 하느라 얼마나 뻐근할까. 나는 집일을 도맡으면서 이래저래 눈코를 제대로 못 뜨느라 여기 어설프고 저기 서툴다.

 

 새해, 모두들 한 살을 더 먹는 해에는 모두들 한 살 나이만큼 무럭무럭 자라 야무진 몸과 씩씩한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부디 튼튼하고 해맑게 한 해를 새롭게 사랑할 수 있으면 좋으리라 꿈꾼다. 꿈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꿈을 두고두고 곱씹고 싶어 글을 쓴다. 꿈을 되뇌며 책을 읽는다. 우리처럼 꿈꾸던 이웃을 찾으며 책을 읽는다.

 

 이제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도 아이들이 찾아왔으리라. 아침에 떡국을 끓여 먹고 난 뒤, 한 집씩 인사하러 다니자. 모두들 예쁘게 차려입고 어여쁜 웃음을 나누며 아리따운 하루를 누리자.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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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파 1 - 신장판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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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삶
 [만화책 즐겨읽기 102] 아시나노 히토시, 《카페 알파 (1)》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책에 깃든 좋은 꿈을 받아들입니다.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푸성귀로 좋은 밥을 짓습니다.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사랑을 담은 좋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빈틈이 없도록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 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지는 않습니다. 빼어난 솜씨로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춤을 춘다 해서 사람들 가슴을 움직이지는 않아요.

 

 빈틈이 있다 하더라도, 솜씨가 어설프더라도, 여러모로 허술하더라도, 이래저래 모자라더라도,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거나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돈으로 이루지 못하거든요. 사랑이란 이름값이나 힘줄로는 거머쥐지 못하거든요.


- “아, 자네 로보트라구? 좋겠군. 튼튼해서. 나 같은 늙은인 몸이 삐그덕거려서 말야.” “후훗, 그럼 바꿀까요?” (14쪽)
- “난 이곳이 좋아요. 이렇게 할아버지랑 얘기도 하고, 바다도 보고. 붐비고 시끄러울 때도 혼자 있을 때도 모두 좋아요.” (34쪽)


 백 살을 살거나 이백 살을 살아야 더 즐겁지 않습니다. 쉰 살을 살거나 스물다섯 살을 산대서 더 슬프지 않습니다. 내가 누릴 사랑을 오롯이 누릴 때에 내 삶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나눌 꿈을 살뜰히 나눌 때에 내 삶이 빛나요.

 

 이웃이 어렵기에 돕는다 할 적에, 누군가는 큰돈을 내놓을 수 있고 누군가는 푼돈을 내놓을 수 있는데, 누군가는 돈푼 하나 못 내놓을 수 있습니다. 돈이 없기에 밭에서 배추나 무를 뽑아서 건넬 수 있고, 품을 팔아 집일을 거들 수 있으며, 이도저도 안 되어 마음으로 사랑을 보낼 수 있어요.

 

 2만 원은 1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3만 원은 2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천만 원은 1만 원보다 크지 않으며, 1억 원 또한 1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얼마만 한 돈이 되든 마음보다 클 수 없어요.

 

 네 살 아이는 폴짝폴짝 뜁니다. 다섯 살 아이도 폴짝폴짝 뜁니다. 두 살 아이는 콩콩 뜁니다. 열 살쯤 되거나 열다섯 살쯤 된다면 껑충껑충 뛰겠지요.

 

 어떻든 모두 뜁니다. 높이 뛰든 낮게 뛰든 뜁니다. 함께 뜀박질을 하면서 놉니다. 서로 뜀뛰기를 하고 나란히 달리기를 합니다. 더 빨리나 더 늦게는 없어요. 다 같이 즐거이 어우러집니다.


- ‘요 몇 년 동안 세상도 꽤 많이 변했다. 시대의 황혼기가 이렇듯 느긋하고 평화스럽게 오는 것이라니. 난 이 황혼의 세상을 천천히 보며 간다는 생각이 든다.’ (23쪽)
- “그러고 보니 이빨을 보기 전까진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키타히로가 혼자 있기 때문에 놀러왔을지도 몰라.” (54쪽)
- ‘미사고는 이빨까지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따뜻해지자 멍해져서.’ (59쪽)


 빠른기차를 타고 몇 시간만에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빠른찻길을 내달려 몇 시간 들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가용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시간은 더 줄입니다. 퍽 멀리 볼일을 보아야 하니 빨리빨리 오갈 수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서울하고 부산만 보입니다. 누군가로서는 서울이랑 부산을 더 줄이는 길을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서울도 부산도 아닌 문경이나 영동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로서는 서울도 부산도 바라보지 않고 옥천이나 양양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기찻길이 놓이면 거칠 데 없이 시원하게 달린다고 합니다. 이 기찻길한테 자리를 내줄 시골사람은 언제나 기차소리를 듣습니다. 기차를 탈 일도, 기차를 타고 더 빨리 어디로 오갈 일도 없다지만, 시끄러운 소리와 매캐한 먼저를 늘 들이마셔야 합니다.

 

 송전탑 둘레로는 전자파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니 사람한테 안 좋답니다. 사람한테 안 좋은 송전탑이 나무나 풀이나 흙이나 냇물에 좋을 수 없습니다. 큰도시이든 작은도시이든 송전탑이 서지 않습니다. 도시에 서더라도 바깥이나 변두리에 섭니다. 도시 한복판에 송전탑이 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는 송전탑이 버젓이 서고, 송전탑한테 논이랑 밭이랑 멧등성이를 내주어야 합니다. 전기 쓸 일이 드문 시골사람은 송전탑을 끼면서 살고, 전기 쓸 일이 많은 도시사람은 송전탑은커녕 발전소조차 곁에 두지 않아요.


- ‘모두 자기 방식대로 보고 있다. 지금은 옛날만큼 계절이 분명하지 않지만, 모두 전보다도 사물에 깊이 감동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128쪽)


 우리들 살아가는 이곳은 얼마나 아름답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누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빚지 않아도 다들 잘 살아간다 하는 우리들 보금자리는 얼마나 아름답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쓰레기를 스스로 돌보지 않는 우리들 보금자리는 얼마나 깨끗하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 짓는 아파트만큼, 새로 세우는 도시만큼, 건축쓰레기를 어디로 버리고 어떻게 다루는가를 살피지 않는 이 나라는 얼마나 살 만한다 여겨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웃습니다. 사람들은 웁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면서 웃거나 우는지 궁금합니다. 팔랑거리는 나뭇잎 하나를 바라보며 웃을 줄 아는지, 지는 꽃잎을 들여다보며 우는지 궁금합니다. 밭을 일구며 지렁이를 만나 웃는지, 물고기 비늘을 다듬으며 우는지 궁금합니다. 언제 웃고 언제 울며, 어떻게 웃고 어떻게 우는지 궁금합니다.


- ‘난 로보트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얼마만큼이라도 기다릴 수 있으니까.’ (16쪽)


 아시나노 히토시 님 만화책 《카페 알파》(학산문화사,1997) 1권을 읽습니다. 느리게도 느긋하게도 한갓지게도 아닌, 살아가는 빠르기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을 읽습니다.

 

 느리게 산대서 더 나은 삶이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살거나 한갓지게 살기에 더 좋은 삶이지 않아요.

 

 저마다 알맞게 살아갈 때에 즐겁습니다. 누구나 알뜰살뜰 살림을 꾸릴 때에 기쁩니다. 패스트푸드도 슬로푸드도 우리한테 좋을 수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집에서 우리 땀을 들여 우리 손으로 거두고 우리 식구가 누리는 우리 밥그릇 하나가 좋습니다. 밥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거든요.

 

 볍씨를 갈무리해서 모를 내고 모를 심고 물을 대며 풀을 뽑고 나락을 거두어 나락을 훑고 나락을 찧고 비로소 쌀을 얻습니다. 쌀은 날로 씹어먹을 수 있고, 먼지를 잘 씻고 돌을 일어 물에 불린 다음 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빠르다 하면 가게에서 사다 먹을 때에 빠르겠지요. 느리다 하면 볍씨를 갈무리해서 심어서 거두는 삶이 느리겠지요.

 

 그러나, 무엇이 빠르고 무엇이 느린지 모르겠습니다. 빠르거나 느리다고 나누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게 돌볼 삶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좋게 사랑할 살붙이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좋게 꿈꾸는 하루를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고운 목숨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아 새롭게 빛내는 목숨을 예쁘다고 못 느끼는 쳇바퀴가 된다고 느낍니다. (4344.12.31.흙.ㅎㄲㅅㄱ)


― 카페 알파 1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199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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