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걱정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2.30.

 


 도서관 책꽂이가 아주 많이 모자란다. 그런데 어떤 책꽂이를 마련해야 할는지 선뜻 생각을 갈무리하지 못한다. 커다란 책꽂이 마흔 개는 있어야 교실 두 칸에 널브러진 책들을 꽂을 수 있다. 이 널브러진 책을 꽂아야 비로소 도서관 꼴이 나서 사람들한테 둘러보라고 할 수 있고, 교실 한 칸에 그럭저럭 꽂은 책도 이래저래 자질구레한 것을 치울 틈이 생긴다.

 

 그러나, 살림집 끝방부터 아직 제대로 치우지 못했고, 살뜰히 건사하지 못하는 집일을 돌아보느라 몸이 그만 지쳐, 도서관 책꽂이 일을 자꾸 뒤로 미룬다. 나 스스로 책꽂이를 짤 겨를을 낸다면 모르나, 책꽂이를 짤 겨를이 없다면 목돈이 들더라도 하루 빨리 새 책꽂이를 마련해야 한다.

 

 면내 우체국에 소포꾸러미 보내러 가는 길에 살짝 들러 한 시간 즈음 책 갈무리를 한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이렁저렁 치워서 교실 한 칸이나마 어설프더라도 열어 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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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를 만들자 과학 그림동화 18
울리 쉬텔처 글 사진, 곽성화 옮김 / 비룡소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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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사랑스러운 집을 함께 짓자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9 : 울리 쉬텔처, 《이글루를 만들자》(비룡소,2003)

 


 아이들과 즐기는 사진책 《이글루를 만들자》(비룡소,2003)를 읽다가 문득 궁금합니다. 어, 이 사진책에 나오는 어른들은 쇠톱으로 얼음을 잘라 얼음집을 만드네. 온통 얼음나라요 눈나라인 곳에서 쇠톱을 언제부터 썼지? 쇠톱이 없던 나날 이곳 사람들은 얼음집을 어떻게 지었지?

 

 예전에는 톱이 아닌 막칼이 있었을까. 기다랗고 잘 드는 칼이 있었을까. 아니면 돌을 잘 갈아서 눈을 자르거나 썰었을까. 굳이 옛날 사람들 이글루 짓기를 보여주어야 하지는 않다지만, 이 궁금함을 풀 만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구나.

 

 아마 남녘땅에서는 눈을 잘 썰어 눈벽돌을 만든 다음 차근차근 그러모아 눈집을 짓는 일을 꿈꿀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깊디깊은 멧골이라면 눈이 꽤 펑펑 쏟아지기도 하지만, 눈벽돌을 할 만큼 오래도록 단단히 눈이 쌓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추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보금자리를 헤아리도록 돕는 사진책입니다. 우리처럼 흙을 쉬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멘트 얻기도 만만하지 않을 추운 나라에서 살림집을 어떻게 꾸리는가를 알려주는 사진책이에요. 눈집 짓기는 그림으로 곱게 그려서 보여줄 만하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또렷하게 보여주는 일도 좋습니다. 그림일 때에는 결이 고울 테지만, 사진일 때에는 ‘참 춥’고, ‘참 눈 덮은 나라’이며, ‘참 만만하지 않으나 이렇게 눈집을 지을밖에 없’네 하고 느낄 수 있어요.

 

 그나저나, 아이들 읽는 사진책인 《이글루를 만들자》는 책이름이 “이글루를 만들자”로군요. 이 나라 아이들 누구도 눈집을 지을 만하지 않습니다. 눈사람이라도 굴릴 만할까요? ‘과학 그림동화’로 내놓은 책이라 한다면, “만들자”라는 말마디보다 “눈짓 짓기”나 “이글루 짓기”처럼 수수하게 붙이는 말마디가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은 오직 ‘지식’만 보여주니까요.

 

 문득 또 한 가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알뜰히 보여주는 어린이책 《이글루를 만들자》인데, 이 사진책 내놓은 출판사에서 “흙집 짓기”라든지 “풀집 짓기” 같은 어린이 사진책을 함께 내놓았을까요. 앞으로 이러한 사진책을 내놓을 생각을 할까요. 그예 지식으로 바라보는 사진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라는 틀을 넘어, 나중에 어른이 되면서 스스로 제 보금자리를 짓는 꿈을 꾸는 길잡이가 되게끔, ‘어린이가 읽으며 배우는 나무집 짓기’라든지 ‘어린이가 어른이랑 함께 하는 흙집 짓기’ 같은 사진책을 예쁘게 보여준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더 돋보이는 사진이 아니어도 됩니다. 더 볼 만한 사진이 아니어도 됩니다. 땀흘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실으면 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이 제 밥·옷·집을 옳게 들여다보면서 슬기로이 깨닫도록 이끌면 됩니다. 아이들이 저희 두 손과 두 발을 써서 삶을 짓는 아름다운 꿈을 꾸도록 도우면 됩니다.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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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증보판 창비시선 20
신동엽 지음 / 창비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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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어느 날 쓴 글을 이래저래 많이 다듬어서 비로소 올립니다 ^^;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꽂는 대통령 바란 시인
[시를 노래하는 시 8]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책이름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글쓴이 : 신동엽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79.3.30)
 - 책값 : 5000원

 


 시를 읽습니다. 찬찬히 읽습니다. 덜컹거리는 전철이나 사람 많은 곳에서 소리내어 읊기는 어려워, 속으로 읽습니다. 시는 눈으로만 읽어서는 맛보기 힘듭니다. 소리내어 읊을 때 ‘아!’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마음으로 가만히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술을 많이 마신 날은 속이 쓰립니다. 이놈 술을 작작 마셔야 할 테지만, 들이부으며 어질어질하는 느낌이 좋아서 붓고 또 붓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부터 쓰린 속을 달래며 배를 쓰다듬기도 하고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기도 합니다. 엎드려 속을 달래다가 문득 생각나는 한 가지가 있어 신동엽 님이 남긴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손에 쥡니다.


.. 강산은 좋은데 / 이쁜 다리들은 털난 딸라들이 / 다 자셔놔서 없다 ..  (발)


 “강산은 좋은데” “이쁜 다리”들은 “털난 딸라들”이 “다 자셔” 놔서 “없다”고 하는 말 한 마디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라 발자취를 안다면 말입니다. 이 나라 발자취를 모른다면 그저 가벼운 입놀이로 느낄 테고요.

 

 그런데 술로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며 왜 이 시가 떠올랐지? 다시 책장을 넘깁니다.


.. 또 어느 날이었던가. 광화문 네거리를 거닐다 친구를 만나 손목을 잡으니 자네 손이 왜 이리 찬가 묻기, 빌딩만 높아가고 물가만 높아가고 하니 아마 그런가베 했더니 지나가던 낯선 여인이 여우 목도리 속에서 웃더라 ..  (진이의 체온)


 “빌딩만 높아가고” “물가만 높아가고” 하니 “손이 찹”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손이 찬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우 목도리 속에서 웃는 여인”이 있습니다. 1960년대엔 여우 목도리라면 2000년대엔 무엇일까요? 1930년대엔 또 무엇이었을까요? 2020년대나 2050년대에는 무엇이 되려나요? 차가운 손보다도 마음이 더 차가워집니다.

 

 그나저나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린 녀석이 이 시를 왜 읽지? 술이 덜 깬 탓인가? 술이 안 깬 탓인가?


.. 몸은 야위었어도 /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  (빛나는 눈동자)


 그래요. 몸은 야위어도 넋은 빛나야지요. 마음은 빛나고 가슴도 빛나서 우리가 품는 꿈과 생각도 빛나야지요. 하루 세 끼니 먹지 못하고 두 끼니만 먹어도, 한 끼니만 먹어도, 밥굶기를 밥먹듯 해도 마음은 빛나야지 싶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이 시를 읽고 싶었구나.

 

 그렇지만 내 눈빛은 어떠한가. 내 눈빛은 얼마나 맑은가. 아니, 술을 마셨대서 눈빛이 흐리멍덩할 수는 없어. 술이 다 깬 나는, 아주 말짱하다는 나는, 자전거를 타고 대여섯 시간 쉬지 않고 달리며 땀을 흘리는 나는, 헌책방 책시렁을 뒤적이며 내 마음 흔드는 책을 찾겠다고 용쓰는 나는, 얼마나 맑은 눈빛인가.

 

 국민학생 때, 나를 만나는 이웃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너 참 눈이 맑구나.” 하고 얘기했는데. 나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선 나날부터, 또 고등학생으로 뒹굴던 나날부터, 군대에서 죽을 뻔하던 나날부터, 대학교 그만두고 신문딸배를 하고 출판사 일꾼으로 지내던 나날부터, 아니 어쩌면 먼먼 옛날 옛적부터 흐리멍덩한 눈빛은 아니었을까.


..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 태백줄기 고을고을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 진달래, 개나리, 복사 ..  (아사녀)


 봄이 오는 바람결과 꽃내음은 독재자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권력자라 하더라도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는 봄을 못 오게 할 수 없습니다. 1억 원을 내밀며 노동조합에서 나오라고 검은 뒷꿍꿍이를 할 수는 있다지만, 100억 원을 주든 1000억 원을 던지든 봄마다 피어나는 살구꽃과 복숭아꽃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피어나는 곧은 바람·꿈·생각·사랑을 돈이든 이름이든 힘이든 어느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꺾거나 막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바보스레 방바닥에 엎드린 엉거주춤한 꼴로 생각에 잠깁니다. 나부터 기쁘게 품을 마음이란 “어느 누가 막아도 오고야 마는 봄” 같아야지 싶어요. 억만금을 주어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큰 이름과 많은 돈과 드센 힘을 안겨 주어도 손사래칠 수 있는 마음, 시나브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며 잎이 지는 아름다운 철과 같은 마음, 이런 마음이어야지 싶습니다.


.. 노오란 무우꽃 핀 / 지리산 마을. / 무너진 헛간엔 / 할멈이 쓰러져 조을고 ..  (풍경)


 노란 무꽃을 볼 수 있는 눈이 좋아 신동엽 님 시를 읽습니다. 노란 무꽃을 보기만 할 뿐 아니라 시로 담아낼 수 있는 손길이 좋아 신동엽 시집을 늘 끼고 지냅니다. 노란 무꽃을 보며 느낀 이야기를 우리한테 나누어 주려는 마음이 좋아 신동엽 님 시를 되읽습니다.

 

 이 셋이 어우러집니다. 참 수수하고 덤덤한 싯말인데 왜 이리도 따뜻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오란 개나리꽃이라 했으면 그냥 지나쳤을까요. 노오란 수선화라고 했어도 얼렁뚱땅 건너뛰었을까요. 노오란 국화도, 노오란 장미도 마음을 울리지 못했을까요. 노오란 원추리라 했다면 조금 달랐을까요.

 

 늘 먹는 무, 곁에 늘 있는 무가 무럭무럭 익기 앞서 피어나는 꽃을 보았다는 이 대목, 아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무가 흐드러지게 피우는 꽃을 시로 담아냈다는 모습, 살가운 시 하나로 무꽃 같은 삶과 사람들을 말하려고 했다는 마음이 반갑습니다.

 

 감자꽃이 좋고 배추꽃이 좋습니다. 당근꽃이 좋고 호박꽃이 좋습니다. 참외꽃이랑 오이꽃도 좋고 수박꽃이랑 감꽃도 좋습니다. 오얏꽃이며 살구꽃 모두 좋아요.

 

 나는 꽃이 좋아 꽃처럼 살고 싶어요. 나는 꽃이 좋으니까, 내 어버이는 나를 꽃처럼 낳았겠지요. 나는 꽃이 좋은 나머지, 꽃잎 같은 사랑을 만나 꽃잎 같은 씨앗을 심겠지요.


.. 수운이 말하기를 / 강아지를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 개에 의해 / 은행을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 은행에 의해 / 미움을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 미움에 의해 멸망하리니, / 총 쥔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 그, 사랑에 의해 구원받으리라 ..  (수운이 말하기를)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차츰차츰 다시 낮아집니다. 잦아들던 목소리는 거듭 올라갑니다. 이제 방바닥에서 뒤집기를 합니다. 등을 바닥에 깝니다.


..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 / 기껏해야 뻐스길 삼백리 서울로 왔지 ..  (종로오가)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 온 고구마가 / 흙묻은 얼굴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라는 시 하나를 읽으며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칫. 바보로군. 그래, 바보라서 바보스레 사람들이 들이붓는 술을 냉큼냉큼 비우고는 뱃속이 바보처럼 되었지. 바보처럼 살며 바보스레 엎드려 뒹굴며 바보스러운 시를 읽지.

 

 쳇. 바보로군. 시를 읽는 사람이나 시를 쓴 사람이나 바보로군. 바보는 바보끼리 좋아서 시시덕거리나. 아니야. 바보는 바보끼리 즐거워서 함께 웃고 함께 울어.

 

 나는 이 사내아이를 그릴 수 있거든. 이제 열서너 살 될까 말까 한 키 작은 아이가, 햇볕에 잘 그을린 투박한 얼굴로 서울에 왔는데, 새로 산 운동화가 비에 젖을까 봐 벗어서 살그마니 가슴에 품는 모습을 그릴 수 있거든. 등허리에 담은 고구마 보퉁이를 그릴 수 있거든.


.. 닦아라, 사람들아 / 네 마음속 구름 /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나는 어떤 일을 어느 곳에서 하는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음, 내 꿈 가운데 하나는 중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어. 온통 거짓부렁이 문학이 아닌, 눈물을 흘리는 문학을 가르치며 아이들이랑 나랑 함께 울고 싶은 사람이었어. 시험문제는 도무지 안 가르치면서 문학을 가르치고 싶었어. 내가 맡은 아이들이 수학을 하든 정치를 하든 공무원이 되든, 문학을 읽는 마음을 곱게 건사하면서 사랑을 돌볼 수 있기를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럴 수밖에 없잖아. 나는 중학교랑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문학작품을 읽으며 눈물짓는 사람을 아무도 못 만났거든. 나는 국민학교 다닐 적에도 동시나 동화를 읽으며 눈시울 적시는 사람을 하나도 못 보았거든.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를 읽으면서 눈물을 안 흘릴 수 있겠니. 방바닥에 드러누워 눈물로 볼을 적시는 내가 철부지 멍텅구리 얼간이 똥싸개이니.


.. 너그럽고 / 빛나는 / 봄의 그 눈짓은, / 제주에서 두만까지 / 우리가 디딘 /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  (봄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자리에 반듯하게 앉습니다. 허리를 폅니다. 기지개를 켭니다. 나한테는 시읽기가 가장 좋은 해장국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술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어 속이 고달픈 날은, 이렇게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시인은 우리 스스로 논밭을 가꾸라고 말합니다. 내가 디디고 선 이 땅에서 논밭을 가꾸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말없이 허리 숙여 논밭을 가꾸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가운데 참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이 ‘아름다운’ 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땅이 아닌 다른 땅을 디디려 하고, 다른 나라에 있는 논밭을 가꾸고 싶어합니다. 멀디먼 깨끗하다는 나라로 여행을 떠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씁니다. 가까운 시골마을로 자전거마실을 다니지 않습니다. 이 나라 시골마을에 조그맣게 보금자리 마련해서 살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다들 이런 판이니까 하늘을 볼 수 없겠지요? 하늘을 보았다고 말하는 우리들이 보는 하늘은 거짓이라고, 눈속임이라고, 아프고 슬프고 안타깝고 힘들어서 그예 울부짖을 테지요?


..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 많이 있었지만 / 하늘은 너무 빨리 / 나를 손짓했네. // 언제이던가 /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 그대의 소맷 속 /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 아퍼 못 다한 /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 가벼운 눈인사나, / 보내다오 ..  (담배 연기처럼)


 신동엽 시인은 당신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줄 알았을까요? 느꼈을까요?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한테 사랑도 못하고, ‘너무 빨리’ 하늘로 떠나야 하는 줄 알았을까요?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 달라고 말해야 했을까요?

 

 모르는 노릇이나, 나도 일찌감치 흙으로 돌아갈는지 모릅니다. 모르는 노릇이니까, 나는 이 사람 저 사람 죽는 꼴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늦디늦게 흙으로 돌아갈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시인과 같으며, 시인과 같은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겠다 싶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수수하고 투박하지만, 내가 두 발로 버티고 선 땅을 아름답게 느끼면서 갈고닦는 사람은 모두 시인이겠다 싶습니다. 어디에서 거저로 얻는 봄이 아니라, 내 두 손과 두 발로 땀흘려 가꾸어 얻는 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시인이지 싶어요. 내가 디딘 이 땅에서 참된 하늘을 보고, 티없고 해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겠어요.

 

 신동엽 시인은 이 아름다운 땅을 갈고 일구며 가꾸는 사람들한테 가벼이 눈인사를 보내면서 싱긋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애틋한 시마다 고이고이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신동엽 시인은 시를 쓰기보다 이 아름다운 땅을 당신 스스로 갈고 일구며 가꾸고 싶었어요. 고운 넋으로 고운 땀을 흘려 고운 터에 고운 집을 이루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신동엽 시인을 가르쳐 준 일이 생각납니다. 그무렵, 고등학교 국어교사는 으레 신동엽 시인이 쓴 시를 두루 맛보게 가르치지는 못하고 〈껍데기는 가라〉랑 〈금강〉이랑 〈아사녀〉 같은 작품을 썼다고만 가르쳤다고 떠오릅니다.


..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산문시 1)


 술주정을 하듯 뇌까린 시일까요. 아니 술주정을 할밖에 없던 이 나라에서 맨넋으로 읊은 시일까요.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줄줄줄 늘어놓은 푸념일까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꿈을 조곤조곤 적바림한 사랑노래일까요.

 

 아, 이런 대통령,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는 대통령, 이런 대통령이 없던 어둡던 독재정권 시퍼런 칼날과 총칼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송이 같은 시가 〈산문시 1〉일까요.

 

 신동엽 시인은 묻습니다. 아니, 묻지는 않아요.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가를 찬찬히 밝혀요.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라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거듭나겠다고 다부지게 밝힙니다. “총 쏘는 야만엔 가담지 않기로 작정”하려는 굳은 믿음과 사랑을 씩씩하게 보여줍니다.

 

 시는 말을 붙잡는 예술이요, 시는 말을 노래하는 예술이며, 시는 말을 사랑하는 예술이겠지요. 가슴으로 와닿는 말이 싯말이 되고, 가슴으로 스며드는 말이 싯말이 되며,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말이 싯말이 될 테지요.

 

 고단하고 아픈 신동엽 시인은 다른 사람한테 외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아요. 시인 스스로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입니다. 일옷 뒷주머니에 책 하나 늘 꽂고 다니면서 당신 스스로 가꾸고 삶을 즐겨요

 

 그래요. 꿈이 꿈 아닌 삶인 곳에서 부르는 손짓을 따라 하늘나라로 가면서, 우리들한테 사랑씨앗 하나 남겨요.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꽂는 대통령을 바라면서, 신동엽 시인 스스로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꽂고 멀디먼 마실을 떠났어요. 몸뚱이는 갔어도 마음은 살아숨쉬어요. 쇠붙이보다 돈붙이가 더 무시무시한 나라가 되었어도 사랑꽃 싯말마다 가득 피어나요. (4338.1.25.불./4345.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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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3 : 동시를 쓰는 사람

 

 

 나와 옆지기가 도시살이를 그대로 이었어도 우리 집 두 아이를 헤아리면서 동시를 쓸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어디에서 살아가든,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이 된다면 동시를 쓸 만하겠지요. 그런데, 아이를 사랑하자면 먼저 어버이로서 내 삶부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권정생 님이 1967년에 손수 묶었다는 동시꾸러미를 고스란히 엮어 내놓은 《동시 삼베 치마》(문학동네어린이)가 2011년 7월에 선보였습니다. “옥수수네 엄마는 / 좋은 엄마지 / 뙤약볕이 따가워 / 꽁꽁 싸 업고 / 칭얼칭얼 한종일 / 자장 불러요 // 옥수수네 엄마는 / 가난한 엄마 / 소낙비가 뿌려도 / 우산이 없어 / 치마폭만 가리고 / 걱정하셔요(옥수수).” 하고 노래하는 동시를 그러모은 예쁜 책을 고맙게 읽습니다. 두 아이랑 옆지기하고 살아가는 나는 내 삶을 돌아보면서 즐거이 읽습니다. 먼 뒷날 우리 집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한글을 깨쳐 스스로 책을 읽을 무렵, 이 동시집도 읽을 수 있겠지요. 권정생 님이 열다섯 앞뒤였을 무렵 어떤 나날이었는가 하고 돌아보며 썼다는 동시이니, 1952년 앞뒤 즈음 이야기를 적바림한 동시라 할 텐데, 우리 집 아이들은 열 살 무렵이든 스무 살 무렵이든 서른 살 무렵이든 이 동시집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열 살 때에는 열 살 가슴으로 맞아들일 테고, 스무 살 때에는 스무 살 마음으로 받아먹겠지요. 서른이나 마흔에 되읽는다면 되읽는 나이에 새롭게 받아들일 테며, 쉰이나 예순에 처음으로 읽는다면, 이렇게 처음 읽는 나이에 맞게 기쁘게 아로새기겠지요.

 

 “노랑 나비 / 노랑 꽃에 / 노랑 꽃물 먹고 / 노오랗게 닮아 버렸다(나비).” 하는 노래를 읽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에 걸맞게 마음씨를 다스립니다. 햇살 곱게 내리쬐는 푸른 들판이랑 멧자락을 옆에 끼며 살아간다면, 햇살 곱게 내리쬐는 마음씨가 되면서, 푸른 들판이랑 멧자락처럼 푸른 마음씨로 살아갑니다. 자동차들 붕붕 싱싱 내달리는 터전에서 살아간다면, 자동차마냥 붕붕 싱싱 내달리는 마음씨 되어 살아가요. 흙을 밟거나 만지며 살아간다면, 흙내음 물씬 나는 마음씨로 살아갑니다.

 

 “호박 넝쿨은 / 사이 좋게 어울려 / 빈자리 없이 퍼런 이파리를 / 덮는다 // 호박 넝쿨은 / 전쟁하지 않고 / 정답게 돌담 가득 / 꽃피웠다(호박 넝쿨).” 하는 노래를 읽습니다. 싸우는 사람은 바보요 밉보입니다. 싸우는 사람은 이웃과 동무를 괴롭히지만, 누구보다 나 스스로 괴롭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과 동무를 아끼지만, 누구보다 나 스스로 사랑스럽습니다.

 

 어여쁜 이야기꾸러미 《동시 삼베 치마》는 참말 권정생 님이 아니라면 쓸 수 없을 동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권정생 님처럼 어여삐 살아간다면, 어여쁜 마음결 살포시 담는 동시를 쓸 수 있습니다. 어여삐 살아가고자 하지 않으니까 어여쁘다 싶은 글을 쓰지 못해요. 어여쁜 삶이 어여쁜 말을 낳고, 어여쁜 말이 어여쁜 넋이 되어, 어여쁜 넋으로 어여쁜 꿈과 사랑을 꽃피웁니다.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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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은 손으로 쓴다

 


 글은 손으로 쓴다. 연필을 잡고 쓰는 글이 아니고, 자판을 두들기며 쓰는 글이 아니다. 이 손으로 살아가는 결이 고스란히 글로 다시 태어난다. 이 손으로 집식구를 따스히 쓰다듬거나 어루만진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를 따스히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는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집식구 맛나게 먹을 밥을 마련해서 차린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한테 맛나게 즐길 마음밥 될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내 살붙이 고마운 옷가지 정갈히 빨래한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 누구나 아프거나 고단한 마음을 달랠 정갈한 사랑씨앗 깃드는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집식구 따스한 보금자리 포근히 보살핀다면, 이웃과 동무 어우러지는 터전 포근히 보살피는 넋 북돋우는 글을 빚는다.

 

 다섯 살을 하루 앞둔 아이가 플라스틱칼로 빵을 썬다. 서툴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손놀림으로 빵을 썬다. 아이는 아이 손에 맞게 빵을 썬다. 아이는 손을 거쳐 제 몸을 움직인 하루를 깊이 아로새기겠지. 아이는 온몸으로 글을 쓰고, 온삶으로 글을 빚으며, 제 열 손가락 고루 움직이면서 글을 쓴다. 글은 손으로 쓴다.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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