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닿기를 3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앞으로 빛날 나날
 [만화책 즐겨읽기 93] 시이나 카루호, 《너에게 닿기를 (3)》

 


 아이들은 앞으로 빛날 목숨이겠지요. 나 또한 어린 나날을 보낼 때에 내 어버이가 나를 바라보며 앞으로 빛날 목숨으로 여겨 곱게 보살피셨기에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살아갈 수 있겠지요.

 

 아이들은 틀림없이 앞으로 빛날 목숨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앞으로뿐 아니라 바로 오늘도 빛나는 목숨입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빛나면서 앞으로 새롭게 빛날 목숨이에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은 한창 빛나는 목숨입니다. 그리고, 한 살 열 살 나이를 먹어 늙은 몸이 될 때에는, 이처럼 늙은 몸뚱이가 되면서 빛나는 목숨이에요. 어느 누구도 섣불리 겪거나 누릴 수 없는 늙은 빛줄기를 뽐내는 목숨이 돼요.


- “난 형제가 없는데, 부럽다.” “넌, 그 말이 걸려?” ‘웃음소리. 복닥복닥한 방.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 내가, 같이 있어도 되는 거지?’ (14∼15쪽)
- “모, 모두 같이 웃고 떠들고 엄청 재밌거든. 너도 있으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자전거 타고 날아갈게. 기다려!” (19쪽)


 아이들한테 어린 나날은 한 번뿐입니다. 푸름이한테 푸른 나날은 한 번뿐입니다. 젊은이한테 젊은 나날이란 한 번뿐입니다. 여기에, 나이든 사람들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이라는 나이 또한 한 번뿐이에요.

 

 열다섯 살 아름다운 나이가 되듯 스물다섯과 마흔다섯과 일흔다섯은 참으로 아름다운 오직 한 번 있는 나이입니다. 언제나 한 번 누릴 수 있는 나이요, 한 번 보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이에요.


- ‘내가 모르는 카제하야다. 어떤 중학생이었을까? 연습 많이 하는 연습벌레였을까?’ “한번 보고 싶다.” “아, 이제 곧 체육대회잖아! 아마 카제하야 소프트볼 경깅 나갈걸?” “아 맞다.” ‘그렇구나. 난, 앞으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야! 이제부턴. 모두와 사진을 찍어서 남기기도 하고 수많은 일을 함께할 수 있어!’ (21∼22쪽)
- “오늘 정말 재밌었어.” “그래, 재밌었어.” “앞으로도 이런 날은 아주아주 많을 거야!” “응!” ‘친구들과 함께한 토요일 밤은 내 자신이 거기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모두가 함께 웃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37∼38쪽)


 나는 언제부터 내 나이를 느꼈는지 잘 모릅니다. 아주 어린 나날부터 내 나이를 생각하며 살았는지, 나이를 제법 먹은 뒤 내 나이를 곱씹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저 내가 떠올리기로는, 퍽 어리던 국민학생 때에도 ‘내 올해는 오직 한 번’이라고 여겼어요. 아쉬울 일을 남기지 말자고 여겼어요. 마음껏 놀고 신나게 뛰며 즐거이 어울렸어요.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요. 어디에서 읽었을까요. 집에서 보던 텔레비전으로 듣고 알았을까요.

 

 아마 나는 무척 신나게 뛰노는 한편 홀로 고요히 생각에 잠기던 때도 꽤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건 학교로 가는 길이건 으레 혼자서 걸었어요. 우리 동네에는 우리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참 많았으나 다들 두 정류장 길을 버스 타며 다녔어요. 나는 두 정류장 길을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덥건 춥건 그냥 걸었어요. 날씨를 느끼고 철을 받아들이면서 걸었어요.

 

 안개 낀 날은 안개가 끼어 좋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날은 바람이 몰아쳐서 좋아요. 햇볕 쨍쨍 쬐는 날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니 좋아요.

 

 거의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혼자 걸으며 내 하루를 돌아봅니다. 거의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길을 홀로 거닐며 내 오늘을 되새깁니다. 집이나 학교나 동네에서는 개구쟁이 노릇이지만, 이렇게 하루에 두 차례 혼자 보내는 겨를을 누리면서 내 나이 내 삶 내 길 내 앞날 내 꿈 내 사랑을 돌아볼 수 있었구나 싶어요.


- ‘긴장했다! 방금 진짜로 긴장했었어! 그나저나 요즘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 (111쪽)
- ‘쿠루미가 너무 예뻐서 부러웠고, 그래서 나도 예뻐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120쪽)


 나는 중학생이던 나날 세 해를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나는 중학생이던 나날을 내 머리와 마음에서 지우기로 생각하며 세 해를 보냈습니다. 너무 끔찍하고 모질며 슬픈 나이가 중학생이라고 느껴, 이러한 곳에서 세 해를 썩힌다는 일이 괴롭고 아팠습니다. 열넷 열다섯 열여섯이라는 나이라지만, 나한테 열넷도 열다섯도 열여섯도 거의 어떠한 일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떠올리는 일은 있으나, 나한테 중학생은 ‘예비 입시 고등학생’으로 이름표가 붙는 나이였어요. 내 둘레 어디에서도 예쁜 열네 살이라든지 어여쁜 열다섯 살이라든지 아름다운 열여섯 살이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요.

 

 상업잡지라 하지만, 《하이틴》이라든지 《주니어》라든지 하는 잡지에서 열넷∼열여섯을 살짝살짝 곱다시 보여주곤 했어요. 김수정 님이 빚은 만화 《홍실이》나 《자투리반의 덧니들》이나 《소금자 블루스》나 《오달자의 봄》에서 겨우겨우 빛나는 푸른 이야기를 살필 수 있었어요.

 

 우리 집 두 아이가 열네 살이 되면, 열다섯 살을 보내면, 열여섯 살을 맞이하면, 이때에도 우리 아이들은 아무런 빛도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실타래도 이루지 못하면서 제 푸른 나날을 잊으려 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 또래 동무들은 중학교라는 데에서 무슨 빛을 볼 수 있고 무슨 빛을 누릴 수 있으며 무슨 빛을 펼칠 수 있나요.


- ‘그렇구나. 카제하야도 긴장을 하는구나. 카제하야도 똑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나 봐.’ (162∼163쪽)
- ‘카제하야한테 특별한 사람이 생긴다고? 그걸 내가 돕는 거야?’ “윽, 미안해. 아무래도 난 안 될 것 같아! 나한텐 도저히 무리야!” (176∼180쪽)


 시이나 카루호 님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대원씨아이,2007) 3권을 읽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아니 바로 오늘까지도 빛날 일이 없던 아이들이라 하지만, 이제부터 예쁘게 빛나면 되는 나날이라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래요. 중학교를 다니며 빛을 보지 못했다면, 중학교를 마치면서 빛을 보면 돼요. 고등학교를 마치는 때까지 또 빛을 못 보고 만다면,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빛을 보면 돼요. 대학교에 간다든지 회사살이를 해야 한다든지, 또 뭐를 해야 한다면서 빛을 보기 힘들다면, 이러저러한 굴레와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빛을 보면 되겠지요.

 

 앞으로 빛날 삶이니까요. 가만히 보면, 이제까지 곱게 빛나는 삶이었으나 둘레에서 어느 누구도 이 빛을 느끼거나 깨닫거나 아끼지 못했을 뿐이니까요. 맑게 빛나는 푸른 꿈이지만, 이토록 빛나는 푸른 꿈을 둘레에서 감추거나 숨기거나 가린 나머지, 나 스스로 못 느끼거나 못 깨달았을 뿐이니까요.

 

 아이들은 누구나 예쁘기 때문에, 아이들이 빚는 사랑은 예쁩니다. 어른이 된 사람도 누구나 예쁘니, 어른이 된 사람들이 이루려는 사랑 또한 예쁩니다. 예쁘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요. 예쁘지 않은 꽃이나 예쁘지 않은 나무나 예쁘지 않은 풀이나 예쁘지 않은 햇살이 있던가요. (4345.1.2.달.ㅎㄲㅅㄱ)


― 너에게 닿기를 3 (시이나 카루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11.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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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이 쓰는 글

 


 혼자 살아가는 때에는 혼자서 생각하고 밥먹으며 쓰는 글입니다. 둘이 살아가는 때에는 둘이서 생각하고 빨래하며 쓰는 글입니다. 셋이 살아가는 때에는 셋이서 생각하고 마실하며 쓰는 글입니다. 넷이 살아가는 때에는 넷이서 생각하고 복닥이며 쓰는 글입니다.

 

 네 사람은 서로 한식구이지만 서로 다른 목숨입니다. 네 사람은 함께 한 집에서 지내지만 서로 다른 몸과 마음으로 움직이며 집일을 건사합니다. 네 사람은 네 가지 빛깔로 무지개를 그립니다. 네 사람은 네 가지 꽃을 피우고 네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넷이 쓰는 글은 넷이 일구는 삶입니다. 넷이 읽는 글은 넷이 사랑하는 삶입니다. 넷은 서로서로 안고 부빕니다. 넷은 서로한테 안기고 새근새근 잠듭니다. 넷은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로 손을 내밀며 서로 눈을 맞춥니다. 좋은 날을 맞이하면 좋은 생각을 빛냅니다. 좋지 못한 날을 맞이하면 좋은 생각으로 잘 타이릅니다.

 

 두 살, 다섯 살, 서른세 살, 서른여덟 살, 이렇게 네 사람은 새해 첫날을 엽니다. 아침 일찍 똥을 두 차례 푸지게 눈 두 살 아기는 서른여덟 살 아버지가 씻기고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넙니다. 다섯 살 아이랑 서른여덟 살 아버지는 감 여덟 알을 썰어서 먹습니다. 두 살 아이는 서른세 살 어머니 품에서 젖을 물며 잠듭니다. (4345.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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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야 비로소 오리지널 판으로 내놓는다는 유리가면. 헉! 헉! 헉! 그러면 이제껏 내놓은 유리가면은 모두 오리지널 판이 아니라는 뜻. 하기는, 유리가면만이 아니라 다른 일본 번역 만화를 읽을 때면 옆이나 아래가 잘린 모습을 보았으니, 참 어처구니없다고 여겼다. 그나마, 유리가면은 오리지널 판으로 나온다니 고맙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만화가, 그림이, 사진이, 또 글이... 처음 빚은 사람들 꿈과 사랑 그대로 담아내는 결이 아니었으면, 그동안 얼마나 엉터리였다는 말인가. .. 다시 사야 마땅할 테지만 엄두 안 나는 유리가면... ㅠ.ㅜ 1권 하나만 사 놓을까? 된장 된장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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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1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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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유리가면의 오리지널 판을 내놓는데여?
이거 참 손가락이 근질거리는데, 몇권이려나... 아직 끝나지도 않은 작품을.

그나마 작가가 돌아와서, 생전에 완결시킬 결심이라니, 정말 그건 감사하더라구요.
1권만 사놓을까 에서, 저도 같은 고민으로 웃습니다. ㅋㅋㅋㅋㅋ

파란놀 2012-01-02 18:33   좋아요 0 | URL
저는 전질이 다 있는데 옛날 판이에요.
그래서 굳이 다시 안 사도 되기는 한데.
참... -_-;;;;;

분꽃 2012-01-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올려 놓은 책이 오리지널 판이라는 건가요??

참... 종규님, 예쁜 아가들과 예쁜 아가엄마... 올해에도 더욱 건강하고 기쁜 일 가득하기를 바랄게요~ 꾸벅!!

파란놀 2012-01-03 20:56   좋아요 0 | URL

이제서야 원판이 그대로 나온다고 하네요... @.@

분꽃 님도 춘천에서 고운 새해 맞이하셔요~
 

 

 '-적' 없애야 말 된다
 (411) 철학적 1 : 철학적 차이

 

.. 좋게 말해서 철학적 차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의견 차이는 질병의 원인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책임 문제를 둘러싼 것이다 ..  《데브라 데이비스/김승욱 옮김-대기오염 그 죽음의 그림자》(에코리브르,2004) 17쪽

 

 “우리의 의견(意見) 차이(差異)”는 “우리 생각”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서 “철학적 차이”라 하면서 ‘차이’라는 낱말이 나왔거든요. 또는, 이 글월을 통째로 손질해서 “좋게 말해서 철학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우리들은”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와 같이 글월을 통째로 손질할 때가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낱말 하나하나만 놓고 다듬기는 어렵습니다.

 

 “질병(疾病)의 원인(原因)에 대(對)한 지식”은 “질병이 왜 생기나 하는 지식”이나 “병이 생기는 까닭을 다루는 지식”으로 손질하고, “그 지식”은 “이 지식”으로 손질하며, “둘러싼 것이다”는 “둘러싼 데에서 비롯한다”나 “둘러싸고 부딪힌다”로 손질합니다. 앞 글월을 “우리 생각은”으로 다듬으면 뒷 글월은 “둘러싼 데에서 비롯한다”로 손질하고, 앞 글월을 “우리들은”으로 다듬으면 뒷 글월은 “둘러싸고 부딪힌다”로 손질하면 됩니다.

 

 철학적(哲學的) : 철학에 기초를 두거나 철학에 관한
   - 철학적 사고 / 철학적인 문제 / 릴케의 시가 철학적으로 해석되는 이유
 철학(哲學)
  (1)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2)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
   -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활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

 

 철학적 차이라고 할 수 있는
→ 철학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 생각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다고 하는
 …

 

 철학이란 딱딱하거나 머리 아픈 학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느끼고 헤아리며 살피는 마음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삶에 밑바탕을 두는 학문이요, 삶이 없는 철학은 헛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거짓말이기 일쑤이고요. 그래서 이런 철학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는 말은 알맞게 가다듬어야 우리 생각과 삶을 알뜰하게 담아낼 수 있습니다. 어설피 말장난을 한다든지, 얄궂게 말자랑을 한다든지, 어리석게 말재주를 부린다고 해서 철학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낱말에 ‘-적’을 붙인다고 해서 뜻이나 느낌이 한결 깊어지지 않습니다. 더욱 ‘학문을 잘 다룬다’는 깊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철학적 차이”라고 했을 때는 먼저 ‘철학이라는 학문’이 다르거나 ‘이 학문을 바라보고 느끼고 아는 테두리’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앞엣것이라면 “철학이 다르다”로 풀면 됩니다. 뒤엣것이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나 “생각이 다르다”로 풀면 됩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와 같이 풀어서 쉽게 써야 할 노릇 아니랴 싶습니다. 처음부터 ‘철학 + 적’ 같은 말투로 우리 넋과 얼을 나타내려고 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철학적 사고
→ 철학에 바탕을 둔 생각 / 깊은 생각
 철학적인 문제
→ 철학 문제 / 바라보는 문제 /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
 철학적으로 해석되는 이유
→ 철학으로 풀이되는 까닭 / 깊이있게 읽히는 까닭
 …

 

 ‘철학’이라는 낱말을 써야 하는 자리라 한다면 이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사상’이든 ‘종교’이든 ‘학문’이든, 이 같은 낱말을 알맞고 올바르게 써야 합니다.

 

 구태여 쓸 까닭이 없는 자리에는 쓰지 않아야 합니다. 구태여 쓸 까닭이 없는데 ‘-적’붙이 말투를 자꾸 쓰고 있다면, 나 스스로 사람들 앞에서 내 지식을 으스대거나 자랑하려는 얕은 매무새가 아닌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이 어떠한가를 제대로 모르거나 놓치면서 껍데기만 잔뜩 들씌우지 않나 하고 곰곰이 살펴야지 싶습니다.

 

 좋게 말해서 생각이 다르다 할 수 있는 우리는
 좋게 말해서 생각이 다른 우리는
 좋게 말해서 서로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할 만한 우리는
 좋게 말해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할 만한 우리는
 …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써야 합니다. 생각을 하면서 번역을 해야 합니다.

 

 이 보기글을 다시금 헤아려 봅니다. 이 글을 우리 말로 옮긴 분은 맨 처음 영어로 글을 쓴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어찌어찌 짜맞추어 한글로 옮겼으나, 무엇을 말하려는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둘 또는 여러 사람이 “생각이 다르다”고 하는데, 왜 생각이 다른가 하는 문제는 두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이를 옳게 풀어내지 못합니다.

 

 통째로 손질해서 다시 적어 봅니다. “좋게 말해서 우리는 생각이 서로 다른데, 하나는 병이 왜 생기느냐 하는 생각이 다르고, 이 병이 생기는 까닭을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다르다.” 또는, “좋게 말해서 생각이 다른 우리는, 병이 왜 생기는가를 다르게 생각하고, 이에 따라 병을 고치거나 병을 일으킨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또한 다르게 생각한다.”

 

 수백 쪽에 이르는 책에서 이 글월 하나만 어줍잖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글월 하나를 손질해 본다 한들 다른 글월이라고 더 낫거나 좋지 않으니 답답하고 까마득합니다. 아쉬우나마 다문 한 줄이라도 우리 글답게 가다듬으면서 읽고 싶을 뿐입니다. (4339.1.15.해./4343.1.29.쇠./4345.1.2.달.ㅎㄲㅅㄱ)

 


 '-적' 없애야 말 된다
 (1085) 철학적 2 : 철학적인 성격

 

.. 나의 사진에는 사회성이 담겨 있으며 철학적인 성격도 들어 있다 ..  《최민식-사진이란 무엇인가》(현문서가,2005) 114쪽

 

 “나의 사진에는”은 “내 사진에는”이나 “내가 찍은 사진에는”으로 고칩니다. “사회성(社會性)이 담겨”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우리 삶터 이야기가 담겨”로 손볼 수 있고, “담겨 있으며”는 “담겼으며”로 손보며, “들어 있다”는 “들었다”로 손봅니다.

 

 철학적인 성격도 들어 있다
→ 내 철학도 들었다
→ 내 생각도 있다
→ 내 마음도 담았다
→ 내 생각도 깊이 담았다
→ 내 온갖 마음도 들었다
 …

 

 사진에 담긴 ‘철학’ 하나 놓고, 사진에 담긴 ‘생각’을 하나 놓아 봅니다. 온누리를 보는 눈, 온누리를 헤아리는 눈길, 온누리를 보듬는 눈썰미는 ‘철학’이라는 낱말로 가리킬 때 알맞을까요, ‘생각’이라는 낱말로 가리켜도 넉넉한가요.

 

 내 사진에는 우리 사회 모습이 담겼으며, 깊은 생각도 들었다
 내 사진에는 우리 삶터 이야기와 온누리를 보는 눈길도 담긴다
 내 사진에는 우리 삶터 이야기를 담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담는다
 …

 

 ‘사회’라는 낱말을 쓰듯 ‘철학’이라는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낱말을 잘 다독이면서 올바르게 쓰면 됩니다. 여기에, ‘삶터’라는 낱말을 생각하고 ‘눈길’이라는 낱말을 돌아보는 한편 ‘생각’이라는 낱말을 곱씹으면서 하나하나 추스를 수 있습니다. 쓰는 사람 나름입니다. 쓰기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사진밭뿐 아니라 우리 말글밭을 더 알차게 일굴 수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사진밭과 말글밭을 기름지게 가꿀 수 있습니다. 우리 슬기로 우리 사진밭이며 말글밭을 한결 아름답고 싱그러이 돌볼 수 있습니다. (4341.3.18.불./4343.1.29.쇠./4345.1.2.달.ㅎㄲㅅㄱ)

 


 '-적' 없애야 말 된다
 (1557) 철학적 3 : 철학적 분석

 

.. 바로 그 신문편집의 숨은 권력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이 책의 주제이다 ..  《손석춘-신문편집의 철학》(풀빛,1994) 7쪽

 

 “신문편집의 숨은 권력에 대(對)한”은 “신문편집에 숨은 권력을”이나 “신문편집에 숨은 권력이 무엇인가를”로 손질합니다. “이 책의 주제(主題)이다”는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이다”나 “이 책에서 다룬다”로 손봅니다.

 

 숨은 권력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 숨은 권력을 철학으로 분석하기가
→ 숨은 권력을 깊이 살펴보기가
→ 숨은 힘을 차근차근 파헤치기가
 …

 

 사람들은 어느새 이 보기글 같은 글투에 익숙해집니다. 아니, 오늘날 거의 모든 지식인은 이 글투로 글을 쓰고 이대로 말을 합니다. 요즈음 이러한 글투나 말투를 놓고 얄궂다고 느끼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신문편집에 숨은 권력을 깊이 살피고자 이 책을 쓴다
 바로 이 같은 신문편집에 숨은 힘을 차근차근 파헤치고자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신문편집에 숨은 힘을 낱낱이 살펴본다
 이 책은 바로 이 같은 신문편집에 숨은 힘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

 

 한국사람이라면 한국사람다이 나눌 말투를 찾아서 내 이야기를 내 이웃한테 내 사랑을 펼치면서 나누어야지 싶습니다. 누구한테 떠넘기거나 모르는 척 지나칠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 터전을 즐겁고 튼튼하며 곱게 여미고픈 꿈을 키우려 한다면, 차근차근 살피고 깊이있게 돌아보며 알차게 가다듬어야지 싶습니다. 좋은 넋을 좋은 말에 담아 좋은 뜻을 이루는 좋은 땀이 되도록 애쓰면 고맙겠습니다. (4343.1.29.쇠./4345.1.2.달.ㅎㄲㅅㄱ)

 


 '-적' 없애야 말 된다
 (1639) 철학적 4 : 철학적인 메시지

 

.. 캐릭터를 잘 살린 ‘원숭이’ 시리즈는 귀엽고 재치 있는 이야기로 재미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  《이토우 히로시/김난주 옮김-원숭이 동생》(비룡소,2003) 2쪽

 

 ‘캐릭터(character)’나 ‘시리즈(series)’나 ‘메시지(message)’는 이제 영어라 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그저 한국말로 삼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저, 이 글월이 실린 자리를 헤아린다면, “그림을 잘 살린 원숭이 그림책은 …… 생각까지 담는다”쯤으로 적어도 넉넉했으리라 봅니다.

 

 “재치(才致) 있는 이야기”는 “번뜩이는 이야기”나 “톡톡 튀는 이야기”로 다듬어 봅니다. “담고 있다”는 “담았다”나 “담는다”로 손봅니다.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 깊은 생각까지 담았다
→ 너른 생각주머니까지 담아냈다
→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 깊이 생각하도록 돕는다

 

 보기글을 통째로 손질하면 어떨까 생각하며, “살가운 그림을 잘 살린 원숭이 이야기책은 귀엽고 재미나며, 깊이 생각하도록 이끈다”처럼 적어 봅니다. 아이들 읽는 책에 쓰는 말인 만큼, 캐릭터이니 시리즈이니 메시지이니 하는 영어뿐 아니라, 철학적이니 재치이니 하는 한자말도 살포시 내려놓으면 좋겠어요.

 

 살가이 말을 하고 손쉽게 글을 쓰면 좋겠어요. 따사로이 말을 하고 어여삐 글을 쓰면 좋겠어요. 생각을 조금 깊이 하면 되니까요. 생각을 차근차근 기울이면 되니까요. 생각을 넓히면 즐거워요. 생각을 담뿍 담으면 아름답습니다.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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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1-02 11:48   좋아요 0 | URL
아, 어려워요. 저도 글 쓸 때 이 표현이 나은가, 저 표현이 나은가, 또 이 낱말이 나은가, 저 낱말이 나은가 하고 고민하곤 하는데 어느 게 나은지 잘 모를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는 시간이 생겨요. ㅋ

된장님의 이 글은 글 쓰는 사람들 모두 읽어보면 좋겠어요.

파란놀 2012-01-02 18:33   좋아요 0 | URL
오래도록 생각하며 차근차근 가다듬으면 돼요~
 
함께 짓기 아나스타시아 4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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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짓기·집짓기·옷짓기는 사랑짓기·삶짓기·사람짓기
 [환경책 읽기 33] 블라지미르 메그레, 《아나스타시아 (4) 함께 짓기》

 


- 책이름 : 아나스타시아 (4) 함께 짓기
- 글 : 블라지미르 메그레
- 옮긴이 : 한병석
- 펴낸곳 : 한글샘 (2008.11.28.)
- 책값 : 1만 원

 


 (1) 밥짓기


 밥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삶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퍽 예전부터 느낍니다. 쌀을 사다가 먹는지, 쌀을 손수 논에 심어서 먹는지, 가을걷이를 할 때에 낫질을 한 번이라도 해 보았는지, 모내기를 할 때에 곁에서 지켜본 적 있는지, 한여름 뙤약볕에서 김매기를 해야 한 적 있는지, 텃밭에서 돌을 고른 적 있는지, 아이하고 밭에 씨를 뿌리거나 심은 적 있는지, …… 내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길은 여러 갈래이며, 내 먹을거리를 내 몸뚱이 어떻게 움직이며 마련하는가 하는 길도 여러 갈래입니다. 그런데 나날이 사람들 밥상은 가게에서 돈을 치러 먹을거리 장만하는 흐름으로만 바뀌어요. 더구나, 가게는 더욱 커지고, 가게로 가는 길은 더 멀어지며, 가게에서 한꺼번에 사들이는 먹을거리는 훨씬 늘 뿐 아니라, 먹고 버리든 먹지 못해 버리든 하는 쓰레기는 끝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 스스로 생각할 겨를을 내지 못해요. 밥상에 무엇을 올려야 좋을는지를 생각하지 못해요. 너무 바쁘거든요. 생각할 일이 아주 많거든요.

 

 정치도 걱정하고 문화도 생각하고 경제도 근심하고 예술도 헤아리고 하다 보면, 운동경기 들여다보고 사건사고를 신문과 방송으로 살피다 보면, 아이들 낳아 학원에 넣거나 학교에 보내다 보면, 그야말로 내 삶이 어디에서 비롯해 어디로 가는가를 읽거나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 “모든 증거와 우주의 모든 진리는 사람 모두의 마음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어. 부정확이나 거짓은 오래 살 수 없어. 마음이 그것을 저버리지. 여러 해석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야. 거짓은 계속 새 옷을 갈아입어야 해.” … “하느님은 꿈 에너지를 갖고 있었어. 그는 모두를 자기 내부에 받아들이고, 모두를 균형잡고, 화해할 수 있었어.” … “아름다움을 따라잡으려는 자들은,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내부에 그와 똑같은 것을 지녀야 함을 알지 못한 거야.” ..  (8, 18, 95쪽)


 시골에서는 스스로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시골집을 얻어 지내는 우리는 아직 우리 텃밭이나 빈땅에 무엇을 심을 만하지 않습니다. 무얼 심으려고 얻은 빈땅이 아니다 보니, 이 땅을 어떻게 골라서 어떻게 무얼 심어야 할까를 가누기가 살짝 벅찹니다. 좋은 이웃 어르신들이 김치를 주시고 무랑 배추랑 베풀어 주셔서 크게 도움을 받아요.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이 시골집에서 오래오래 뿌리를 내려 살아갈 뒷날에는, 이웃 어르신들처럼 우리가 밭에서 일군 푸성귀를 다른 이웃한테 넉넉히 나눌 만큼 거두겠지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일, 아직 이루지 않은 일이지만, 그날 그 느낌이 어떠할까 하고 떠올리면, 참 신나며 즐겁습니다.

 

 읍내 장마당에서 사다 먹는 감자랑, 우리 밭에 심어서 거두어 먹는 감자랑 같은 맛일 수 없어요. 씨가 난 감자를 알맞게 잘라 깊이 잘 묻어 거두어서 이 감자알을 익혀 먹으면, 그렇게 달디달 수 없어요.

 

 내 땀을 흘렸기에 달디단 감자일까요. 어쩌면 이와 같을는지 몰라요. 그리고, 내 땀뿐 아니라 내 땀에 서린 내 몸과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이야기가 흙으로 스며들면서, 우리 집 감자알이 ‘내 몸을 살찌우는 기운’을 조금씩 키워서 좋은 밥으로 나한테 찾아오는지 모릅니다.


.. “사람이 지금 숨쉬는 공기로는 정말로 영양을 채울 수 없지. 지금 공기는 죽어 있고 때론 몸과 마음에 해로워.” … “사람의 육은 그의 영과 마음이 원하는 해만큼 살 수 있었어 … 당신이 담배를 피우거나 음주할 때, 공기가 역한 냄새로 자욱한 도시로 들어갈 때, 죽은 음식을 섭취할 때, 그리고 화로 자기 자신을 갉아먹을 때, 블라지미르, 말해 봐, 당신 스스로가 아니면 누가 죽음을 가까이 부르는 거지?” … “모든 여자들이, 전투를 벌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고, 그래서 후손을 낳지 않는다면, 어떤 남자가 전쟁을 하려 하겠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결론적으로 자기는 물론이고 자기의 모든 후손까지 죽이는 셈이잖아.” ..  (32, 35, 72쪽)


 누런쌀을 날로 씹어 먹든, 오래 불려 밥으로 지어 먹든, 입안에 침을 모아 천천히 씹으면, 이 쌀알이 어느 땅에서 어떤 햇살·물·바람·비·흙·지렁이·거미……들 기운을 고루 받았는가 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저절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너무 바쁜 나머지 헐레벌떡 밥그릇 비워야 한다면, 제대로 씹지 않을 뿐더러 어떤 그림조차 그리지 못해요.

 

 집식구랑 다 함께 바깥밥을 사다 먹어야 할 때면, 이 대목이 퍽 아쉽습니다. 사람들 복닥거리는 밥집에서는 자꾸 빨리 먹어야 하는 듯 내몰립니다. 빨리 먹고 일어서야 하는 듯 몰아세워요. 그래야 장사가 될 테니까요. 이때에는 내가 손에 쥐는 그릇에 담긴 밥을 고마이 여길 틈이 없습니다. 천천히 느끼고 차근차근 사랑할 겨를이 나지 않아요.

 

 집에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밥을 먹는 일이란, 이 밥을 마련한 사람한테 고마움을 느끼는 일뿐 아니라, 이 밥에 서린 모든 기운을 천천히 받아들여 내 기운을 새로 북돋우려는 일이라고 느껴요. 밥을 한두 시간에 걸쳐 천천히 먹는다면, 이렇게 얻는 기운이 아주 크며 빛나리라 느껴요.


.. “마음이 꿈에서 무엇인가를 지향하면, 그건 모두 반드시 실현돼.” … “그 편리함들이란 허상이야. 짧아진 자기 수명으로, 고통으로, 인류 모두는 매일 그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어. 생명이 없는 기기들을 얻으려고 사람은 마치 노예처럼 싫어하는 일을 일평생 할 수밖에 없어. 생명 없는 기기들이, 삶의 우주적 본질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정도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주변에 나타나지. 당신은 사람이야! 주변을 좀더 유심히 살펴봐. 또 하나의 기계 장치를 얻기 위해서 죽음의 매연을 뿜어대는 공장이 지어지고 물은 생명을 잃고 있어. 그리고 당신, 사람인 당신은 그것을 위해 일평생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해. 기계가 당신에게 봉사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기계한테 (봉사)하는 거야.” …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계획하면 따로 일꾼들이 필요치 않을 거야. 주변의 모든 것이 기꺼이, 사랑으로 당신과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봉사할 거야.” ..  (99, 102∼103, 226쪽)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어버이는 밥술 제대로 뜰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참 그렇습니다. 집에서 할 일이 매우 많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집일이 매우 많다는 틀에 사람들 마음과 생각을 가두지 않을까요?

 

 집일이 적지 않아요. 집일이 적을 수 없어요. 그러나, 이 집일에 사람이 매인다는 생각을 사람들마다 잘못 받아들여 엉뚱하게 바라보도록 가두지 않나요? 그래서, 젊은 사내이고 가시내이고, 집에서 일하기를 꺼리며 자꾸자꾸 집 바깥으로 나돌도록 내몰지 않나요?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잊도록 몰아세워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잃도록 밀어붙여요. 내 몸을 살피지 않고 돈벌이를 살피는 밥을 할밖에 없는 밥집에서 비싼 값을 치르면서 내 몸을 살찌우지 못하는 굴레에 스스로 허덕이고 말아요.

 

 아무리 값싼 것들로 차린 밥이라 하더라도, 밥을 차리는 사람 손길과 마음길과 사랑길과 생각길에 따라 새롭게 태어납니다. 소시지이든 라면이든 좋을 턱이 없겠지요. 어묵이든 두부이든 가게에서 파는 먹을거리는 뭐가 좋겠어요. 그런데, 이런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리면서 손길·마음길·사랑길·생각길마저 어둡거나 바빠맞는다면 어떡하나요. 달걀부침을 하든 감자볶음을 하든, 내 온 사랑과 숨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해요.

 

 밥이란, 목숨이 차려진 먹을거리이니까요. 밥먹기란, 목숨을 먹어 목숨을 잇는 아름다운 일이니까요.


.. “당신에겐 속세의 지위가 중요하지.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리잖아.” … “지구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가문의 나무를 길러야 하느니라. 그가 죽으면 그 나무는 후손들에게 좋은 기념이 될 것이야. 그건 또한 후손들이 숨쉬고 살 공기를 정화할 것이니 우리 모두는 좋은 공기를 숨쉬어야 한다.” … “우선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당신이 살고 싶은 곳을 말이지. 자기 후손들도 살았으면 하는 곳으로.” … “다양한 색의 나무들을 심는 거야. 자작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잣나무. 불타는 색의 빨간 열매가 송이송이 달리는 마가목을 덧심고, 그 사이에 까마귀밥나무를 사이심기 할 수 있지. 벚꽃과 라일락에도 장소를 할애할 수 있겠지. 처음부터 모든 걸 잘 계획하는 거야. 무슨 나무가 높이가 얼마나 자라는지, 봄에 꽃은 어떻게 피는지, 어떤 향이 나는지, 어떤 나무에 어떤 새가 모이는지 모두 다 관찰해야 해. 당신의 울타리는 새들이 노래하고 좋은 향이 넘치고 매일 색조가 조금씩 변화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될 거야.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황금 색채로 불탈 거야.” ..  (205, 212, 220, 224쪽)


 사람들 누구나 밥짓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어린 나날부터 밥짓기를 곁에서 지켜보며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맛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려받고, 어머니와 아버지 손맛을 딸아들 함께 물려받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물려받고, 따사로운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2) 집짓기


 사랑스레 마련해서 사랑스레 즐길 밥이듯, 사랑스레 지어서 사랑스레 살아갈 집입니다. 높다란 층층집에서 살든, 여러 식구들 빼곡하게 들어차는 다세대 골목집에서 살든, 나 스스로 내 살림집이 될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아직 내 살림집을 살림집다이 건사하는 길을 걷지 못합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내 좋은 살림집 그림을 그리지 못했거든요.

 

 다만 두 가지 그림은 그렸습니다. 하나는 열다섯 동 오층짜리 층층집에서 살던 어린 나날 살림집입니다. 층이 낮고 동과 동 사이가 넓어 아이들 놀이터이자 동네사람 쉼터가 무척 넓었어요. 모래밭 놀이터는 두 군데 널따랗게 따로 있었고, 층층집 둘레로 층층집 높이만 한 나무가 우람하게 자랐어요. 층층집 옆으로는 인천 신흥동3가 제일제당 공장에서 날마다 엄청나게 뿜어대는 쓰레기물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층층집 동네를 둘러싼 나무들이 이 냄새를 막아 주었구나 하고 요즈음 깨달아요. 나무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스스로 잘 돌봐 주었어요. 우람한 나무 곁 울타리로는 까마중이 잔뜩 열려 동무들이랑 입에 새까매지도록 따먹었습니다. 국민학교 오학년인가 육학년에 처음 알았는데, 우람한 나무 곁에는 딸기가 자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하고 식물채집 숙제를 하며 풀을 모으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어머나, 딸기가 여기에서도 자라네!” 하면서 놀라셨어요. 식물채집 표본을 되돌아보는 요즈음 생각하자니, 이때 본 딸기는 덩굴딸기가 아닌 나무딸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으레 먹는 딸기였으나 딸기가 어떤 풀로 자라는가를 몰랐어요. 어머니는 금세 알아보셨고, 나는 오래도록 딸기풀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생각했지요. 이 딸기풀을 캐서 표본으로 삼느냐, 아니면 이 자리에 딸기풀이 있구나 하고 여기며 날마다 들여다보느냐.

 

 끝내 캐서 신문종이 사이에 눌러 표본을 만들고, 나중에 이 표본을 들고 다니며 딸기풀이 또 자라는가 하고 살펴보지만 똑같거나 비슷해 보이는 풀을 찾지는 못합니다.

 

 그나저나, 내 어린 나날을 보낸 5층짜리 층층집은 바로 코앞이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요, 바로 옆이 인천 부두가 줄줄이 늘어선 곳인데, 동네 안쪽에서 가만히 해바라기를 하는 동안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나 짐배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아주 크게 울리는 뱃고동 소리만 들었어요.


.. “블라지미르, 지금 아이들한테 외국어로 쓰고 말하도록 가르치고,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는 걸 금지한다면, 당신의 후손들은 무엇을 통해서 오늘에 대해 알까? 과거의 지식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새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주입하기는 쉬워. 이들에게는 부모에 대한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지. 말이 없어지면 그와 함께 문화도 없어져. 그런 속셈이 있었어. 하지만 그 목적을 추구하던 자들은, 진리의 새싹이 사람의 마음 안 보이는 곳에 항상 남아 있다는 걸 몰랐어. 깨끗한 이슬방울을 흠뻑 마시기만 하면 새싹은 쑥쑥 자라서 크는 거야.” … “오직 부모만이 자식의 능력이 자기를 뛰어넘도록 진실로 원해.” … “자기의 딸들이, 아들들이 신성한 길을 가도록 하느님은 매일매일 희망을 잃지 않아. 지시가 아니라, 공포가 아니라, 자유 의지로서 사람들이 함께 짓고, 부활하고, 또한 그걸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는 길을 택하기를 고대하고 계셔.” … “아이에게 어떤 세계관을 주입할지, 배움이 아이들에게 어떤 운명의 멍에를 지울지 종종 알지도 못한 채, 자기 자식을 학교에 맡기고 말아. 알지 못하는 것에 자기 아이를 맡김으로써 자기 자식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거야. 그렇게 맡겨진 아이는 또 자기 엄마를 잊게 되는 것이고.” ..  (11, 26, 93, 270쪽)


 어린 나날 그린 두 번째 집 그림은 100층을 넘는 건물입니다. 이 그림은 서울에 63빌딩이 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렸어요.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라나 하며 내세우는 63빌딩은 고개를 들어 층 숫자를 세며 목이 빠지곤 했어요. 서울에 사는 작은아버지 댁을 찾아가며 버스나 택시나 전철로 지나가며 으레 층수를 세 보는데, 끝까지 옳게 센 적이 없습니다.

 

 멀리에서는 아무것 아닌 듯싶으나 곁에서 지나치면 참 높았어요. 그렇지만 속으로 생각하기를 ‘칫, 그렇게 높이를 자랑하고 싶으면 딱 100이라는 숫자를 채워야지, 어설프게 63이 뭐람?’

 

 학교에서 동무들이랑 그림놀이를 하며 100층짜리 집을 그립니다. 이 100층짜리 집 밑에는 사람들이 오글오글 몰려다니면서 노는 널따란 지하놀이터가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인천은 지하상가가 꽤 많아서 이 지하놀이터를 생각하며 그려 보았는데, 내가 꿈을 꾸어서라기보다 나 말고 누군가도 꿈을 꾸었을 테니, 서울 삼성동 밑자락 널따란 지하놀이터 같은 터가 생겼으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 좋을 살림집은 그리지 못했어요. 내가 내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우러질 보금자리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 “사랑하는 부모는 자기 자식을 결코 집에서 내쫓지 않아. 사랑하는 부모는 스스로 고뇌하면서도 자기 자식이라면 어떤 죄도 용서해 줘.” … “살랑이는 나뭇잎과 새들의 노래로, 하느님은 자기의 딸과 아들이, 일어나는 사건을 반추하고 다시 동산으로 돌아오도록 여전히 호소하셔 …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이용하여 우리 스스로 삶을 짓는 거야.” … “사람은 지금까지도 모두 분해하고, 꺾고, 모든 구조물을 알려 하고, 순간 멈춘 생각으로 조악한 것들을 만들고 있지 … 블라지미르, 사람은 원래 지어지기를, 하나도 분해하지 않아도 돼. 사람한테는. 어떻게 말해야 알아듣기 쉬울까? 사람한테는 마치 암호화된 형태로 모든 것의 구조가 이미 저장되어 있어.” … “학과나 과학에 대한 지식이 목표를 위한 목표가 돼서는 안 돼. 행복해지는 법, 이게 최고 중요한 거야. 그것은 부모들만이 자기 예를 보여 가며 가르쳐 줄 수 있어.” ..  (59, 60, 66, 256쪽)


 옆지기를 만나고 아이 둘을 낳고 새 시골마을에 새 터를 이루면서 우리 보금자리를 비로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고픈 살림집 그림을 이제 그립니다.

 

 늦었을까요. 가장 알맞춤하다 싶은 때일까요. 그동안 이런 생각을 안 했다는 대목에서 할 말이 없고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제도권학교 탓만 할 수 없고, 왜 내 어버이는 이러한 그림을 그리도록 돕지 못했느냐고 아쉬워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나 스스로 이러한 길을 찾으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으니까요. 나 또한 내 보금자리나 살림집을 전세 얼마 월세 얼마 하는 돈셈으로만 생각했으니까요. 이 집에서 살아갈 내 마음밭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고, 이 집에서 얼마나 오래오래 뿌리내리며 우리 아이들이 사랑스레 자란 다음, 아이들이 어버이 곁에서 살든 어버이 곁을 떠난 다음 나중에 놀러오든, 이런저런 이야기밭 일굴 만한 터가 되도록 하는 보금자리인가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 “생각해 봐. 당신의 딸 뽈리나가 갑자기 당신 앞에서 뭔가를 단조롭게 말하는 걸. 문장에는 자기도 모르는 단어들을 섞어 쓰고. 아버지인 당신한테 딸의 그런 대화가 마음에 들어?” … “육신만의 합체에서 얻은 만족은 충만하지 못하고 순간일 뿐이야 … 육신의 재미와 그 슬픈 결과로 아이들이 태어났어. 이 아이들에겐 신성한 꿈을 이루기 위한 사려 깊은 열의가 없었어. 여자들은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기 시작했어. 그리고 아이들은 자라며 고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거야.” … “텃밭의 오이와 차이가 나는 것은 자라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섭취했기 때문이야. 텃밭의 조건에서는, 식물을 다른 종의 것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막고, 또 식물의 성장을 비료로 촉진하니까, 식물은 필요한 모두를 자기 안에 담지 못해. 그래서 스스로 충분하지 못한 거야.” ..  (79, 90, 110∼111쪽)


 내가 살아가며 얻는 목숨(밥)은 흙에서 얻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흙으로 집을 지어서 살아야 내 목숨을 옳게 건사할 만합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밥을 삼을 터를 이루는 흙하고 같은 흙으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파묻는 흙땅이 아니라, 목숨이 살아숨쉴 흙땅이어야 합니다. 내 하루하루 살림에서 쓰레기를 내는 삶이 아니라, 꿈을 낳고 사랑을 피우는 삶이어야 합니다.

 

 덜 쓰고 아끼는 삶이 아닙니다. 아름다이 누리며 착하게 꾸리는 삶입니다.

 

 물질문명을 내다 버리는 삶이 아닙니다. 물질이나 문명에 매이지 않으면서 아름다이 누리며 착하게 꾸리는 삶입니다.

 

 우리 식구는 자가용을 사귀지 않습니다. 자가용 사귈 돈이나 자가용 굴릴 돈이나 자가용 모실 돈이 하나도 없으니 안 사귄달 수 있으나, 자가용을 사귀면 돈벌이에 바삐 움직일 테니, 자가용을 몰 돈구멍이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다만, 우리 식구가 자가용을 사귀지 않는대서 버스나 기차나 전철을 아예 안 얻어타지 않아요. 타야 할 때에는 타지만, 애써 즐겨타거나 찾아서 타지 않아요.

 

 네 식구 함께 두 다리로 풀숲길을 거닐고 멧길을 걸으면 즐겁습니다. 아직 몇 차례 못 했으나, 앞으로 기쁘게 늘 누리며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관광이라든지 삼림욕이라든지 이런저런 구실을 붙이는 마실이 아니에요. 그저 흙을 밟고 햇볕을 쬐며 바람을 마시는 나들이가 좋아요.


.. “블라지미르, 당신은 지금 타이가 속에 있어. 주변을 봐. 나무들이 얼마나 커. 그 기둥은 얼마나 육중하냐고. 나무들 사이에는 풀이 있고 관목이 자라지. 산딸기도 있고 구즈베리도 있어. 그 외에도 타이가에는 수없이 많은 좋은 것들이 사람을 위해서 자라지. 그런데 지난 수천 년간 단 한 번도 그 누구도 타이가에 비료를 준 적이 없어. 그런데 땅은 비옥하거든. 누가 어떻게 비료를 주었다고 생각해? … 타이가에서는 당신 세상 사람들이 사는 곳만큼 그리 심하게 하느님의 생각과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타이가에서는 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지고, 바람에 잔가지가 부러지지. 나뭇잎과 잔가지 그리고 벌레들이 타이가 흙을 비옥하게 하는 거야 … 낙엽은 우주의 많은 에너지를 담고 있으니까. 별도 보고 해도 보고 달도 본 낙엽이야.” … “자기 자식을 키워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지는 우선 부모들이 마음을 정해야 하니, 단일 교육제도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 …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이 방해가 되는지 알아야 해. 난 진정으로 행복한 아이들 얘기를 하고 싶어. 자기 훈육이 바로 아이 훈육이야.” … “부모가 손수 가꾼 숲에 그가 묻히고 그 몸에서부터 풀이 나오고 꽃이며 나무 그리고 관목이 솟아나지. 당신은 그걸 보고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어. 부모의 손으로 가꾼 생지의 조각과 매일 접촉을 하게 되고, 또 무의식적으로 부모를 부르고 부모는 화답하는 거야.” ..  (227, 239, 246쪽)


 집짓기는 삶짓기입니다.

 

 밥짓기는 사랑짓기입니다.

 

 그러면 옷짓기는 어떤 짓기가 될까요.

 

 날마다 아이들과 옆지기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노상 느껴요. 나한테 옷짓기라면 사람짓기가 되겠구나 싶어요.

 

 밥을 지으며 내가 일구며 아낄 사랑을 짓습니다. 옷을 지으며(옷을 기우며, 옷을 빨래하며, 옷을 손질하며) 나하고 같은 보금자리에서 뒹구는 사람들 꿈과 몸을 어여삐 짓습니다. 집을 지으며(집을 건사하며, 집을 돌보며) 내 삶을 짓고 내 살붙이들 삶을 나란히 짓습니다.

 

 나는 고등학교도 중학교도 일찌감치 그만두고 싶었으나 남우세스럽게도 그만두지 못했어요. 그나마 대학교는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둘 수 있었어요.

 

 중·고등학교에서는 집짓기도 밥짓기도 옷짓기도 가르치지 않았어요. 대학교에서도 아무런 짓기를 가르치지 않았어요. 중·고등학교 교사나 동무들 누구도 삶짓기랑 사랑짓기랑 사람짓기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학교에서는 더더욱 어느 누구도 이 대목을 돌아보거나 살피거나 깨달으려 하지 않았어요.

 

 옆지기와 나는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넣을 까닭이 없다고 느껴요. 그러나, 시골 초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삶짓기·사랑짓기·사람짓기를 가르치려 한다면, 조금이나마 건드린다면, 아이들이 이 대목을 생각한다면, 우리 집 두 아이는 이곳 시골 초등학교로 나들이를 다닐 수 있겠지요.

 


 (3) 아나스타시아가 함께 짓고 싶은 꿈


 짓고 지으며 또 짓는 꿈을 이야기하는 책 ‘아나스타시아’ 넷째 권 《함께 짓기》를 읽습니다. 넷째 권은 책이름 그대로 우리가 함께 지으며 즐거울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먼저 스스로 짓고, 내가 사랑하며 아끼는 살붙이나 동무나 이웃이랑 함께 짓는 꿈이란 무엇일 때에 그야말로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 “이거 봐, 블라지미르, 작은 씨앗이지. 하지만 땅에 심으면 우람한 잣나무로 자라. 참나무도 아니고 단풍도 아니고, 장미도 아닌 바로 잣나무가 자라나지. 잣나무는 다시 자그마한 씨앗을 낳고, 그 씨앗엔 처음 씨앗과 똑같이 태초의 정보 전부가 들어 있어.” … “사람의 시선은 다정할 수 있고, 동시에, 살아 있는 모두를 파괴의 차가운 시선으로 덮어버릴 수도 있어.” … “상점에 들어가서 당신은 물론 선택을 하지. 하지만 그 상점이 권하는 테두리를 절대 벗어날 수는 없어 … 정말로 당신의 몸이 필요로 하는 식품이 상점에 구비된 것일까? … 당신한테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되었나 생각해 보는 것까지 잊어버렸어.” … “사랑은 누구를 놀리지도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야. 누구와도 영원히 살고 싶어 해. 하지만 사람은 자기만의 생활양식을 선택하게 되고, 그 생활양식이 사랑의 에너지를 놀라게 하는 거야. 사랑은 파괴에 영감을 선사하지 못해. 사랑의 열매는 고통 속에 살 수 없어.” … “사랑은 신성한 창조를 바라는 거야. 사랑의 공간을 지으려는 사람을 영원히 따뜻하게 해 줘.” ..  (9, 25, 114∼115, 236, 237쪽)


 사람은 작습니다. 사람은 큽니다. 곧, 사람은 작지도 크지도 않고 그예 사람입니다.

 

 씨앗은 작습니다. 씨앗은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곧, 씨앗은 작지도 크지도 않고 그저 씨앗입니다.

 

 아나스타시아는 수수하고 자그마한 아가씨입니다. 아나스타시아는 수수하고 자그마한 아가씨이기 때문에 거룩하며 놀라운 하느님입니다. 곧, 아나스타시아는 그대로 아나스타시아라는 한 사람입니다.

 

 사랑을 할 줄 알기에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사랑을 받을 줄 알기에 사랑을 물려줄 줄 압니다. 사랑을 먹을 줄 알기에 사랑을 빚습니다.

 

 사람들 숨을 살리는 흙은 먹을거리를 빚고 똥오줌을 받아들여 예쁘게 삭힙니다. 사람들 몸을 살찌우는 햇살은 하루 반토막을 따사로이 내리쬐고 하루 반토막을 고요히 잠재웁니다.


.. “모두 알고 있었지. 사랑 에너지는 따지는 일이 없다고.” … “그가 무얼 바라는지 내게 말해 줘.” “함께 지어서 모두가 같이 바라보는 기쁨이야.” … “너는 그것들을 보되, 쪼개지는 말거라. 온 우주의 그 누구도 이성으로는 그걸 풀 수 없단다.” … “블라지미르, 현대의 여러 가지 상황이, 지상의 여신들을 매일매일 부엌에 묶어 두는 거야. 당신이 그랬지, 내가 짐승 같고, 나의 생활방식이 원시적이고, 당신이 사는 곳의 사람만이 문명인이라고. 그럼 왜 당신이 사는 문명사회의 여자들은 좁은 부엌에서 삶의 일부를 보내지? 방바닥을 닦고, 상점에서 무거운 것을 날라야 하지? 당신 세상의 문명을 그리 자랑하면서, 그곳은 왜 그리 지저분하지? 지상의 아름다운 여신들을 왜 청소부로 전락시키지?” … “손자들이 세울 집의 재료는 할아버지가 심고 또 엄마 아버지가 사랑한 나무들이야.” ..  (39, 48, 56, 73, 233쪽)


 나는 밥을 먹고 살아가듯 꿈을 먹고 살아갑니다. 나는 밥을 먹으며 기운을 차리듯 꿈을 마음으로 먹으며 기운을 차립니다.

 

 책을 읽어 마음밥을 먹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에 고운 생각씨앗 뿌리고 생각꽃을 피운 다음 생각열매를 거두기에 마음밭 살찌우며 흐뭇합니다. 수많은 좋은 책은 어김없이 마음밥이라 할 만하지만, 나 스스로 내 마음밭을 옳게 다룰 줄 모른다면, 어떠한 책도 마음밥이 되지 않아요.


.. “점령자들이 그 전투에서 얻은 만족은 순간이었어. 그래서 또 다른 정벌에 나섰고 전쟁을 계속했어. 한 나라를 취하고 또 다른 나라가 넘어갔어도 돌아오는 건 기쁨이 아닌 걱정이었어. 전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 “지구의 사람들은 왜 추구해야 할 목적을 갖지 않는지, 이것도 외계인들에게는 큰 비밀이고 풀리지 않는 문제인 것이지.” …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수확을 얻어서 팔려고 애쓰지. 땅보다는 돈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 자기가 태어난 둥지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지 않아.” ..  (105, 186, 228쪽)


 아나스타시아가 《함께 짓기》에서 들려주려는 말은, 나 스스로 착하게 사랑할 삶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기운입니다. 지식으로 내 삶을 덮어씌우거나 괴롭히거나 내팽개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보로 내 사랑을 가리거나 숨기거나 모른 척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부터 스스로 짓지 않는 사랑이라면, 내 곁에서 아무도 사랑을 지어서 나누지 못합니다. 나부터 스스로 짓지 않는 꿈이라면, 내 둘레에서 어느 누구도 꿈을 지어서 베풀지 못합니다.

 

 밥이든 집이든 옷이든 이와 똑같습니다. 나부터 스스로 밥을 짓고 집을 지으며 옷을 지어야 해요. 누가 맡아서 해 주는 짓기가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가다듬을 짓기입니다. 내 어버이한테서 배우고 내 이웃과 동무한테서 배우며 푸나무랑 뭇짐승이랑 햇볕과 흙한테서 배웁니다.

 

 착한 길을 배우고 참다운 길을 배웁니다. 고운 길을 배우며 포근한 길을 배워요. 억지스레 가르치지 못하고, 엉뚱하게 배우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면, 그야말로 사랑스레 가르치면서 배워요. 아이가 어른을 가르치고 어른이 아이를 가르친다고 말하는 까닭은 오직 하나예요. 참말 사랑스레 가르치면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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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서 말씀하신 '아나스타시아'가 이 시리즈군요.
코알라 읽기에는 어렵겠는데요. 사실 제게도 만만치 않네요.

된장님, 거기 너무 춥지 않으세요? 오늘부터 다시 추워진대요.
따스하게 불넣고 지내세요.

마음을 옳게 다스리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마음밥이 되지 않는다는 문구
담아갑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시기를. 옆지기님 몸 빨리 추스리시고
예쁜 따님의 건강한 깡총임을 계속 보기 바라며 둘째 아드님의 피부도 빨리 좋아지기를.

파란놀 2012-01-02 18:34   좋아요 0 | URL
전라남도 고흥은 따스하답니다.
얼음이 얼지 않으니까요 ^^;;;;;

아나스타시아는 사람들 마음 읽기를
좋아하거나 즐길 줄 아는 이라면
초등학교 높은학년도 읽을 만한 책이에요.

좋은 마음밥이 있을 때에는
한번 도전해 보시면 기쁘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