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교육을 헤아리는 책읽기

 


 지난 2011년 12월 24일, 읍내 장마당을 다녀오는 버스길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연말특집’이라며 ‘시청자 의견 대상’을 뽑으며, 대상으로 뽑힌 사람한테 텔레비전을 준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대상으로 뽑힌 아주머니는 “아이 교육 때문에 집에 있던 텔레비전 망가져도 그냥 있었는데, 이번에 좋은 선물로 텔레비전을 받아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기’에 집에 있던 텔레비전이 망가져서 볼 수 없어도 갈거나 새로 장만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어디에선가 거저로 선물을 주면 그냥 받아도 될까.

 

 열흘쯤 이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는다. 라디오 방송 시청자의견 대상을 받은 아주머니는 참말 ‘아이들 교육’을 생각했을까. 아니, 라디오 방송부터 왜 선물을 텔레비전을 줄까? 라디오 방송이라면 ‘좋은 라디오’를 주어야 걸맞지 않을까? 라디오 방송이라면 전기 없이 햇볕을 쬐며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선물로 줄 때에 알맞지 않을까?

 

 아주머니 아이들 교육을 헤아리다가 문득 스친 생각 하나, ‘라디오 방송국 선물은 텔레비전’이라는 대목에 쓴웃음이 난다. 이를테면, 자전거 대회에서 1등 한 사람한테 자동차 한 대 선물하는 꼴 아닌가. 생채식을 하는 사람한테 유기농 소고기 한 근을 선물하는 일은 올바르다 할 만한가.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한테 연극표를 선물한다면, 거름을 내어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 비료와 풀약을 선물한다면, 갓난쟁이한테 천기저귀 대는 어버이한테 물티슈와 종이기저귀와 가루젖을 선물한다면, 고양이한테 소젖(우유)을 따뜻하게 덥혀서 먹인다면, 소한테 돼지고기 살점을 먹이로 준다면, 이 지구별은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는 꼴이 될까 알쏭달쏭하다.

 

 아이들 교육을 헤아린다며 집에서 텔레비전을 아예 안 보거나 되도록 덜 보는 분이 퍽 많다. 그러면, 이 텔레비전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흐르기에 아예 안 보거나 되도록 안 보려고 할까.

 

 가만히 헤아려 본다. 텔레비전에 흐르는 이야기란 방송국에서 찍는데, 방송국은 모조리 도시에 있고, 도시 가운데 커다란 도시에 있으며, 이 가운데 서울에 가장 크게 쏠린다. 아니, 서울에서 만드는 이야기가 온 나라 집집마다 놓인 텔레비전에서 똑같이 흐른다 할 만하다.

 

 서울에서 살며 서울에서 일하는 방송국 일꾼은 서울 아닌 데로 출장을 가서 무언가 찍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이야기는 서울에서 생기는 일을 다룬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예술도 과학도 운동경기도 온통 서울에서 생기는 일부터 다룬다. 서울 아닌 곳 이야기라 하면, 둘째가 경기도요, 셋째가 부산이랑 대구쯤 된다. 그러니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 열째도 스무째도 …… 온통 도시 이야기가 된다. 연속극이든 연예인 나오는 방송이든 이와 매한가지이다. 다큐멘터리라는 풀그림마저 도시 이야기가 되곤 한다. 멀디먼 나라 들짐승 이야기를 빼고, 이 나라 시골마을 이야기를 곱다시 들려주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알고 보면 하나도 없다 해서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들 교육이 걱정스러워 텔레비전을 안 보여준다’는 이야기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이들한테 그닥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 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들 데리고 아파트 구경집(모델하우스)에 찾아가지 않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와 지하철을 타기는 하겠으나, 아이들하고 공장 견학을 가면서 쇳내음이나 고무내음을 흠씬 들이마시지 않는다. 출판사 편집자조차 인쇄소와 제본소와 코팅공장 ‘견학’을 가는 일이 매우 드물다. 인쇄소와 제본소와 코팅공장에서 풍기는 냄새가 얼마나 코를 찌르는가를 옳게 알거나, 이러한 공장에 이주노동자가 입가리개조차 안 쓰며 일하는 줄 모르기 일쑤이다. 한 마디로 간추리면, 도시에서 아이들 데리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갈지언정, 도시에서 아파트 사이를 누비며 ‘이 멋진 건축물을 보렴!’ 하고 말하는 어버이는 없고, 서울 종로를 누비며 ‘이 놀라운 도시 빌딩들을 올려다보렴!’ 하고 외치는 어버이는 없으며, 서울 강남이나 압구정이나 명동 밤거리를 쏘다니며 ‘이 대단한 도시 밤문화를 즐기렴!’ 하고 읊을 어버이는 없다.

 

 그러나, 이 나라 거의 모든 어버이는 서울이나 서울 가까이에서 살아가며, 서울과 똑같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아직 서울이나 서울 둘레나 서울과 닮은 도시에서 살지 않는 어버이는 언제쯤 서울이나 서울 비슷한 언저리에서 살아갈 수 있나 하고 기다린다. 이리하여, 도시에서 텔레비전을 안 본다 하더라도 막상 아이들 교육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모양새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4345.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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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1-08 19:44   좋아요 0 | URL
세 번째 문단에서, 저 웃었어요. 그런데 웃으면 안 되는 것이죠?ㅋ

이 세상엔 생각할 거리들이 매우 많은데(따라서 개선해야 할 점도 많고), 된장님이 좋은 걸 찾으셨네요. 정말 생각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져요.

파란놀 2012-01-08 20:11   좋아요 0 | URL
고흥은 읍내 시골 장날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가 그야말로 할머니 할아버지로 꽉꽉 차서, 설 자리마저 없어 자칫하면 버스를 못 타기까지 해요 ㅠ.ㅜ

나중에 다른 글로 쓸 텐데,
도시에서는 '경로우대'라 해서 어르신한테는 표값 안 받잖아요.
그런데 시골버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라
어르신한테 표값 안 받으면 아마 버스회사 다 문닫으리라 생각해요 ㅋㅋ

아무튼, 이런 시골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기사 아저씨들 라디오 소리를 가끔 어쩌다가 들으며
참 라디오란 텔레비전 못지않게
엉터리같구나 하고 느껴요.

에궁~
 


 전남 고흥 박지성운동장

 


 읍내마실을 다녀오다가 군내버스에서 ‘박지성운동장’ 길알림판을 보았습니다. 어? 고흥 읍내에 있는 운동장 이름이 ‘박지성운동장’이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를 합니다. 박지성 선수 고향을 놓고 여러모로 말이 많았는지, 박지성 선수가 태어난 곳을 찾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래저래 한참 뒤적인 끝에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나고, 어릴 적 경기도 수원으로 집을 옮겼다고 나옵니다. 2002년 세계축구대회와 얽힌 짤막한 기사 하나도 봅니다. 그무렵 국가대표 축구선수 가운데 박지성 선수와 김태영 선수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자랐다며, 두 선수 고향마을에서는 마을 어귀에 두 선수가 잘 뛰라는 응원글을 적은 걸개천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박지성 선수가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에서 뛰는 프로선수가 되지 않았어도 박지성 선수 고향 이야기가 말밥으로 불거졌을는지 궁금합니다. 그저 한국에서, 또는 일본에서 축구선수로 살았으면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경기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며 컸다고만 이야기하지 않았으랴 싶어요.

 

 나라안에 이름난 사람 많고 이름 안 난 사람 많습니다. 이 고을에 이름난 사람이 이래저래 있다 한다면, 저 고을에 이들 못지않게 이름난 사람이 여러모로 많아요. 전남 고흥에서 화가 천경자 님이 태어났다면, 강원 양구에서 화가 박수근 님이 태어났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프로레슬링선수 김일 님이 태어났다면, 서울에서 권투선수 홍수환 님이 태어났어요.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나는 내가 태어난 고향 인천을 떠올립니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 님은 1948년에 인천 배다리에서 헌책방을 열며 책을 만나고 사귀며 배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경리 님한테 인천은 ‘고향’이 아닐 뿐더러 ‘오래 되새기는 터’는 아니에요. 다만, 당신이 젊은 날 인천 배다리에서 헌책방을 꾸리면서 당신 옆지기와 아이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키웠다고 합니다. 인천에서 오늘도 헌책방거리를 지키는 분들은 이러한 박경리 님 발자취를 고마우며 애틋하게 여겨요.

 

 박지성 선수한테 전남 고흥과 경기 수원은 어떠한 터일까 궁금합니다. 전남 고흥과 경기 수원은 박지성 선수를 어떻게 바라볼는지 궁금합니다. 박지성 선수한테 고향이 어디면 어떠하고, 뿌리내려 살아가는 데가 어디면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꿈을 살찌우고 사랑을 꽃피우면 어디에서든 아름다운 노릇 아니랴 싶어요.

 

 전남 고흥은 박지성 선수가 태어난 곳인 만큼 박지성운동장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습니다. 경기 수원은 박지성 선수가 살아가던 곳인 만큼 박지성길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어요.

 

 박경리문학공원은 통영도 인천도 아닌 원주에 있습니다. 박경리 님은 원주에서 살아가며 글을 쓰셨어요. 통영에서는 박경리 님을 기리는 무언가를 세울 수 있어요. 인천에서도 박경리 님을 그리는 무언가를 지을 수 있어요.

 

 아름답다 여기는 꿈과 사랑이라 한다면, 통영도 인천도 원주도 아닌 어느 곳에서든 박경리 님을 헤아리는 무언가를 꾸릴 수 있어요. 춘천에서든 곡성에서든 양양에서든 제주에서든, 기리며 아끼고픈 누군가를 마음껏 기리며 아낄 수 있어요.

 

 한 사람이 읽어 한 사람한테만 뜻있는 책이란 없어요. 책이라는 옷을 입고 태어나면, 사람마다 이 책을 집어들어 펼치면서 저마다 다 다른 꿈과 사랑을 길어올려요. 한 사람한테만 값있거나 빛나지 않아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은 사람만 누리는 빛이 아니에요. 누구나 스스럼없이 맞아들이며 누리는 빛이에요. (4345.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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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헌화가 - 번역가 이종인의 책과 인생에 대한 따뜻한 기록
이종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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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을 잘하는 길이 있다면
 [책읽기 삶읽기 95] 이종인, 《지하철 헌화가》(즐거운상상,2008)

 


 새로운 책이 태어납니다. 먼저 태어난 책이 즐거이 힘겨이 고마이 숨을 잇다가는 어느결에 조용히 숨을 거두면서 새책방 책꽂이에서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새책방이라는 곳이 새로 나오는 책들을 모조리 건사하려고 크기를 키우는 일이 드뭅니다. 도서관이라는 데가 새로 나오는 책을 알뜰히 건사하겠다며 건물을 늘리는 일이 드뭅니다. 이 나라에서는 새로 나오는 책에 발맞추어 묵은 책들은 하나둘 자리를 내주며 어디론가 사라져야 합니다.

 

 내가 살아온 나날을 가만히 되짚습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와 함께 살면서도 여러 차례 살림집을 옮겼습니다. 네 식구 살림집을 처음 옮기던 인천 골목동네에서는 더 시골스러운 골목집으로 옮겼고, 아예 시골로 옮긴 이듬해를 지나고 새해를 맞이한 다음에는, 더 깊다 하는 시골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집옮기기를 살피자니, 시골스러운 살림도 시골스러운 살림이지만, 책을 건사하는 자리가 늘 더 넓어지고 커집니다.


.. 장모님은 내가 ‘믿을 만한 직장에 다니는 보통 남자’라는 점 하나만 보고서 딸을 나에게 줄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다 … 아내는 신혼 9개월 동안 도곡동의 영동아파트에서 단둘이 살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당시 건설회사를 다니던 나는 결혼 9개월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되어 3년 동안 헤어져 살아야 했다 … 내가 없는 동안 아내는 매운 시집살이를 했다. 그때 아내가 보낸 편지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생활을 견디게 해 준 큰 힘이었는데 ..  (32∼33쪽)


 앞으로 더 넓고 큰 데로 또 옮겨야 할 일은 없으리라 굳게 믿으며 오늘 네 식구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아끼고 싶습니다. 새로 옮길 살림살이가 아니라, 튼튼히 뿌리내리면서 나중에 책자리를 새로 마련해서 늘리는 길을 꿈꾸고 싶습니다. 책에 따라 옮기는 삶이 아니라, 사람이 사랑스레 어우러지는 터에서 책이 나란히 어여삐 꿈날개를 펴도록 마음과 힘을 쏟고 싶어요.


.. 1994년 봄, 세 번째이자 마지막 직장인 한국 브리태니커를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아내에게 이제 번역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가겠다고 말하자 두 사람은 아주 난감해 했다 … 결국 아내는 내가 전업 번역가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동복 가게를 내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  (56∼57쪽)


 어머니나 아버지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면, 아이는 저절로 곁에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다만, 책만 읽는다면, 그저 책에만 파고든다면, 온통 책에만 마음을 빼앗긴다면, 아이들은 어버이 책읽기 삶을 기쁘게 받아안지 못해요. 삶이 있고 책이 있어야 해요. 삶으로 녹아드는 책읽기여야 해요. 삶을 알뜰히 꾸리면서 책을 즐기는 나날이어야 해요.

 

 맛나게 밥을 짓고 나서 배부른 몸을 쉬면서 책을 읽습니다. 신나게 옷을 빨래하고 널고 개고 옷장에 넣고 나서 기지개를 켜면서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 먼저 재우고 나서 십 분쯤 눈에 힘을 주면서 책 몇 쪽 펼치며 같이 잠듭니다. 홀로 볼일 보러 도시로 살짝 다녀올 때에 버스길이나 기차길에서 책을 읽습니다.

 

 좋은 삶이기에 좋은 책을 살피며 좋은 이야기를 얻습니다. 좋은 이야기 얻은 좋은 책을 발판 삼아 내 하루를 좋은 나날이 되도록 더 좋은 힘을 냅니다.

 

 지식을 쌓으려고 책을 읽지 못합니다. 책을 읽는들 지식이 쌓이지 않습니다. 자격증을 따거나 시험에 붙거나 무엇무엇을 꾀하며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지만, 막상 책을 읽어 자격증을 따거나 시험에 붙을 수 없어요. 책은 자격증도 시험문제도 돈도 자기계발도 아니거든요. 책은 오로지 책을 쓴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들 삶을 빛내는 좋은 길동무이거든요.

 

 길동무로 느끼지 못한다면 책을 읽어 본들 삶이 나아지지 않아요. 길동무로 삼지 않는다면 책을 많이 파거나 다루거나 내거나 만지더라도 책으로 일구는 사랑씨앗이 무엇인지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해요.

 

 책이 마음밥이 된다면, 내 마음을 따사로이 보듬으면서 내 삶을 더욱 힘차게 일구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에요. 몸을 살찌우는 밥을 지나치게 먹거나 너무 덜 먹어서는 몸이 버티지 못하듯,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라면 한켠으로 치우쳐서 먹으면 안 될 뿐 아니라, 마음밥을 먹으면 이렇게 먹은 대로 삶을 사랑스레 돌봐야지요.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라면 어떠한 밥(책)을 찾아서 먹어야 할까요. 몸을 살찌우는 밥을 아무것이나 아무렇게나 장만해서 입에 쑤셔넣어도 되지 않겠지요. ‘자기계발’을 한다며 밥을 아무렇게나 먹어도 되나요. ‘자격증’이나 ‘시험문제’에 맞추어 아무 밥이나 함부로 먹어도 되나요.

 

 우리들은 누구나 돈이 아닌 삶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돈이 아닌 삶을 아끼면서 마음을 살찌울 책을 손에 쥐어야 해요.


.. 이 책들을 읽을 때마다 우리 조상이 이 아름다운 글들을 전부 한글로 썼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특히 문집총간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명사들의 한문 문집을 보면서 이것들이 처음부터 한글로 씌어졌더라면 아니, 하다못해 번역이라도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141쪽)


 번역하는 이종인 님이 내놓은 산문책 《지하철 헌화가》(즐거운상상,2008)를 읽습니다. 번역하는 이야기랑, 이종인 님이 살아온 나날을 찬찬히 들려주는 이야기를 싣는 산문책입니다. 이종인 님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요, 대단한 책을 옮긴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산문책 또한 대단하지 않아요.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단한 책 또한 없습니다. 저마다 아끼거나 사랑할 좋은 터전에서 좋은 삶을 누리면서 쓰는 글이고 엮는 책입니다. 나라밖에서 나온 이와 같은 ‘좋은 터전에서 좋은 삶을 누리면서 쓴 글’을 한글로 옮기는 일 또한 ‘더 좋은 일’이 아니라, 수수하면서 투박한 삶이에요.


.. 당시 서울 시내 헌책방이라면 어디든 다 가 보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우연히 중대 앞을 지나다가 허름한 헌책방 하나를 발견했다. 오래 전이라 서점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주 착하게 생긴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몇 권의 책을 고르니 아주머니가 내 눈치를 보면서 가격을 말하곤 너무 비싸게 부르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분명 싼값이었는데 나는 더 깎아 달라고 했던 것 같다 ..  (142∼143쪽)


 나는 《지하철 헌화가》를 읽으며 다른 어느 글보다 헌책방 나들이를 즐긴 삶을 찬찬히 읽습니다. 찬찬히 읽다가 몇 군데에서 아차 싶도록 아픕니다. 이종인 님은 헌책방에서 곧잘 에누리를 하는 분이었군요. 헌책방에서 책방 일꾼이 부르는 책값을 함부로 깎지 말자는 이야기를 붙이기도 하지만, 막상 이종인 님은 당신도 모르게 책값 에누리를 하기도 했다고 스스럼없이 털어놓습니다.

 

 누구나 이와 비슷해요. 헌책방에서 에누리 안 하며 기쁘게 책값을 고스란히 치르는 사람이란 아주아주 드물어요. 거의 없다시피 해요. 헌책방은 책을 싸게 사는 곳이 아니라, ‘어느 한 사람 손을 거쳐 어느 한 사람 집에서 빠져나온 책’을 사고파는 곳이에요. ‘어느 한 사람 손을 거쳤으되 어느 한 사람 집에 더는 머물 수 없는 책’이 흘러나와 이 책들을 고이 모시거나 섬기거나 다루면서 사고파는 헌책방이에요.


.. 외국어 실력이 곧 번역 실력은 아니다. 번역을 시작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번역 실력을 테스트 받는 것이 필요하다 ..  (59쪽)


 외국말을 잘한대서 번역을 잘할 수 없습니다. 거꾸로, 한국말을 잘한대서 국어교사나 국어학자 노릇을 잘한달 수 없어요. 더구나, 외국말 잘하고 한국말 잘하기에 번역이나 통역을 잘할 수 있을까요.

 

 나는 생각합니다. 번역이든 통역이든 하려면 말만 잘해서는 안 돼요. 사람으로서 됨됨이가 착하고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해요.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어요. 일하는 솜씨가 틀림없이 있어야 하고, 웬만큼 똑똑하기도 해야 할 테지만, 이보다 훨씬 더 대수로운 대목은 대통령 되려 하는 사람이 참말 착하고 아름다운가예요. 착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고, 공무원이 되어서도 안 되며, 교사가 되어서도 안 돼요.

 

 착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어버이 노릇을 해서도 안 되며, 동무 구실조차 할 수 없으며, 장사꾼이 될 수도 없어요. 착하고 아름다울 때에 비로소 출판사 편집자 일을 합니다. 착하고 아름다울 때에 바야흐로 번역쟁이 일을 맡고, 만화쟁이가 되며, 노래쟁이 글쟁이 춤쟁이 사진쟁이 영화쟁이 같은 길을 걸어요. 무엇보다 온누리 지구별에서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아름다운 넋이기에 흙을 만지며 흙에서 목숨을 거두는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4345.1.8.해.ㅎㄲㅅㄱ)


― 지하철 헌화가 (이종인 글,즐거운상상 펴냄,2008.1.10./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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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 다 널었으면 날아

 


 아버지가 아침마다 신나게 해서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너는 빨래를 바라보며 슬슬 좇아나와 함께 빨래널이를 하는 첫째 아이. 너도 일손 거들며 다 널었으면, 이제 신나게 마당을 달음박질치다가 껑충 뛰어 활짝 날렴. 너는 훨훨 날며 온누리를 마음껏 돌아볼 수 있겠지. (4345.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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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1-08 19:54   좋아요 0 | URL
행복한 따님입니다. ^^

파란놀 2012-01-08 20:12   좋아요 0 | URL
날마다 늘 즐거울 수 있도록
예쁘게 사랑하자고
날마다 다짐해요~
 
장미 별장의 쥐
왕이메이 글, 천웨이 외 그림, 황선영 옮김 / 하늘파란상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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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짓는 작은 집 사람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2] 천웨이·황샤오민·왕이메이, 《장미 별장의 쥐》(하늘파란상상,2010)

 


 둘째 아이가 새벽 다섯 시 반 즈음까지 내처 칭얼거리다가 어머니 품에서 드디어 새근새근 잡니다. 겨우 한숨을 돌리는구나 싶으면서 이제 아버지는 새벽 글쓰기를 할까 싶을 무렵, 첫째 아이 이불을 여미는데 첫째 아이가 “아버지, 손.” 하면서 나지막하게 부릅니다.

 

 곁에 누워서 첫째 아이 손을 잡습니다. 첫째 아이는 제 동생이 제 어머니 품에 안기듯 제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아버지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손을 조물락거립니다. 얼마쯤 이리 있으면 아이가 잠들까 헤아리는데, 아이는 안기거나 손을 잡은 채 옹크리고 싶어 합니다.

 

 한참 흐르고서야 첫째 아이가 새근새근 잡니다. 나도 얼핏 같이 잠들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글쓰기를 하고 싶으나 몸이 매우 무겁습니다. 셈틀을 끕니다. 도로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가 착 달라붙은 좁은 자리에서 잠을 부릅니다.


.. 항상 할머니 혼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상처 입은 달팽이와 새, 강아지 그리고 젊은이를 돌봐 준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들은 상처가 낫자마자 별장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5쪽)


 첫째한테는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처럼 어머니랑 아버지 손을 나란히 잡고 잠들 날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밤에 불을 끄고 자는 동안, 언제나 둘째 갓난쟁이를 품에 안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길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어머니는 첫째 아이를 살필 틈이 거의 없습니다. 둘째 아이는 어머니가 쉬 하러 마당으로 나갔다 하면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주 울보요 엄마쟁이입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둘째만 아니라 첫째도 엄마쟁이요 울보였습니다. 밤새 칭얼거리며 어머니 잠 못 재우기로는 둘째보다 첫째가 훨씬 더했습니다. 첫째가 둘째처럼 갓난쟁이였던 때, 아직 걸음마를 못 떼고, 이제 막 걸음마를 떼며 무럭무럭 크던 때(그렇다고 요즘 안 큰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밤잠이 얼마나 모질었는지 몰라요. 게다가 첫째 아이는 밤에 잘 잘 수 있는 때를 맞이한 뒤에는 잠자리에 눕고 한두 시간쯤 으레 “나 쉬 마려.”라든지 “나 물 마실래.” 같은 말을 끝없이 되풀이했어요.

 

 모든 치레를 다 하고 가까스로 자리에 누워 뻑적지근한 허리를 펴며 살짝 잠이 들 무렵 쉬 마렵다며 앵앵거리는 꼴이란. 다시 일어나 쉬를 누이고 눕혔더니 이제는 또 물을 마시겠다며 징징거리는 꼴이란. 물잔에 물을 따라 주어 마시게 했더니 이제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리는 꼴이란. 조용해지는가 싶으며 어느덧 다시 잠이 들라치니 또 쉬가 마렵대며 앵앵거리는 꼴이란 ……. 날마다 두 시간 즈음 이런 밤놀이 아닌 밤놀이로 어머니 아버지를 지치게 한 나이가 세 살 막바지와 네 살 첫무렵. 어쩌면, 둘째 아이가 제 누나 뒤를 고스란히 밟으며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 등허리를 고부자리게 할는지 몰라요.


.. 장미 할머니는 겨우내 먹을 빵과 잼을 충분히 준비해 놓았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쌀톨이는 할머니 곁에서 빵을 먹었습니다. 함께 겨울을 보낼 친구가 생겨서 할머니는 몹시 기뻤어요 ..  (8쪽)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아이 하나만 있대서 아이 하나만 오롯이 사랑을 받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아이 둘이 있으면 두 아이가 사랑을 나누어 받지 않습니다. 아이가 셋이거나 넷이거나 다섯이라서 다를 수 없습니다. 아이가 하나이든 둘이든 여럿이든,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모든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아이가 둘이라면, 첫째는 둘째한테서, 둘째는 첫째한테서, 어버이가 나누는 사랑하고는 또 다른 사랑을 서로 듬뿍 주고받습니다.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허구헌날 온몸이 찌뿌둥합니다만, 아침부터 새삼스레 갖은 집일을 하며 조각조각 겨를을 내어 생각을 하노라면, 이 찌뿌둥한 몸뚱아리만큼 아이들과 옆지기한테서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구나 싶어요. 참 대단히 사랑받는다는 뜻이라, 가끔은 조금 덜 받아도 좋겠네 싶지만, 서로서로 주고픈 사랑이 놀랍도록 큰데, 애써 손사래칠 까닭이 없어요. 남김없이 받고, 스스럼없이 베풀어야지요.


.. 쌀톨이는 울고 있는 장미 할머니를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울어 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  (15쪽)


 날마다 집식구 빨래 무던히 해치우면서 이렇게나 빨래 내놓는 집식구를 ‘미워’하는 어버이가 있겠습니까. 마땅히 치를 빨래요, 마땅히 차릴 밥이며, 마땅히 받아들일 ‘밤잠 못 이루는 칭얼거림 쟁쟁거림 앵앵거림 징징거림’이에요.

 

 천웨이·황샤오민 님 그림에 왕이메이 님 글이 깃든 그림책 《장미 별장의 쥐》(하늘파란상상,2010)를 읽습니다. 사랑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이이한테 사랑 한 점 주고 저이한테 사랑 두 점 주지 않습니다. 이이한테도 저이한테도 온사랑을 고스란히 줍니다.

 

 장미집 할머니는 쥐한테도 고양이한테도 온사랑을 고스란히 듬뿍 내어줄 뿐입니다. 하나만 장미집에 남아야 하지 않아요. 둘 모두 장미집을 떠나야 하지 않아요. 장미집에서 다툼이 없기를 바라는 할머니는 두 쥐와 고양이한테 온사랑을 남김없이 주고픈 사람일 뿐입니다.


.. 쌀톨이는 서둘러 장미 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저 멀리 장미 넝쿨 아래 앉아 있는 뚱이가 보였지요. 바람에 날려 하얀 장미꽃잎이 우수수 떨어졌지만 뚱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  (26쪽)


 사랑받으면서 사랑받는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줄 모르는 사람도 많을까요. 아마, 둘 다 서로 비슷비슷하리라 싶어요. 살그마니 떨어져 지내면 깨닫겠지요. 다른 이웃이나 동무 틈에 끼어 보면 금세 느끼겠지요.

 

 사랑은 스스로 밝히지 않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노상 옳고 크게 느끼도록 빛나지 않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곱게 비추는 햇살은 그예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 햇살사랑을 듬뿍 느끼며 고마이 여기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우리 몸속을 도는 핏물은 흙을 타고 흐르는 싱그러운 물을 고맙게 마시면서 비로소 스며들어 고운 목숨으로 되었어요. 그렇지만 내 몸속 핏물과 흙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고마이 여기는 사람은 매우 적어요.

 

 어버이가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예쁜지 깨닫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아이가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고운지 알아채는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모두들 잘 알거나 느끼면서 살아가나요. 모두들 사랑을 잘 알거나 느끼기에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르치며 어디에서 어떤 삶을 일구는가요.

 

 《장미 별장의 쥐》에 나오는 달팽이랑 젊은이와 새와 강아지는 사랑이 무언지 모르거나 알려 하지 않으면서 멀리 떠났어요. 《장미 별장의 쥐》에 나오는 쥐와 고양이는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는 눈물에 젖어요.

 

 그래도 《장미 별장의 쥐》에 나오는 달팽이랑 젊은이와 새와 강아지는 나중에까지 사랑을 못 깨달을는지 모를 테고, 《장미 별장의 쥐》에 나오는 쥐와 고양이는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는 눈물을 거두어 웃음으로 꽃피울 삶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손수 일구려 힘쓰겠지요. (4345.1.8.해.ㅎㄲㅅㄱ)


― 장미 별장의 쥐 (천웨이·황샤오민 그림,왕이메이 글,황선영 옮김,하늘파란상상 펴냄,2010.4.3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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