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 다시 사서 간직하기

 


 어린이놀이 이야기를 펼치며, 손수 나무한 장작으로 불을 때면서 살림을 함께 꾸리는 경상북도 안동 시골마을 편해문 님이 있습니다. 편해문 님은 지지난해부터인가 사진달력을 내놓습니다. 나는 지지난해부터 편해문 님이 내놓는 사진달력을 하나씩 장만하는데, 편해문 님은 사진쟁이가 아니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편해문 님은 어린이놀이 이야기를 다루는 일을 하니, 어린이들 놀거나 어울리는 모습을 아주 보드라이 사진으로 찍습니다.

 

 옆지기랑 딸아이랑 셋이 나라밖 마실도 다니는 편해문 님이 내놓은 사진책은 《소꿉》(고래가그랬어,2009). 나는 이 사진책을 읽으면서 편해문 님이 한국 어린이를 담은 사진책도 언젠가 내놓아 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러나, 한국 어린이놀이를 사진으로 담든, 나라밖 어린이놀이를 사진으로 담든, 똑같이 어린이를 사랑하는 넋을 담고, 놀이를 아끼는 꿈을 실어요.

 

 애써 인도나 네팔이나 티벳이나 중동까지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굳이 한국땅 시골 곳곳 누벼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 만나 가장 살가운 손길로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즐거워요. 2009년 처음 나왔을 때에 곧바로 장만한 《소꿉》을 2012년에 한 권 더 장만합니다. 올해에 두 권째, 몇 해 뒤에 세 권째, 앞으로 몇 해 더 지나 네 권째를 장만하더라도 즐겁습니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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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밤달 책읽기

 


 설날이 가까운 보름달을 올려다본다. 나도 옆지기도 밤달이 참 환하다고 느낀다. 밤달을 올려다보는 마당에 한동안 서서 가만히 하늘과 들판을 바라보았다. 손이 덜 가는 흙땅이 되고, 스스로 더 싱그러이 올라서는 풀과 나무들로 우거진 멧자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 아직 이러한 자리가 못 된다면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이 이러한 마을로 집숲으로 나아가도록 애쓰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면서 이러한 보금자리가 되도록 땀을 흘릴 수 있을까.

 

 북극별조차 하얀 밤달이 베푸는 빛살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토록 환하고 하얀 빛살이라니. 이토록 온누리를 맑고 환하게 비출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어두웠던가. 나는 얼마나 조그마했던가. 나는 얼마나 옹크리며 살았던가.

 

 몸을 얼른 추슬러야겠다. 마음을 얼른 다잡아야겠다. 삶을 사랑하는 꿈을 얼른 다스리면서 북돋아야겠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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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1-11 09:19   좋아요 0 | URL
고운 단어들 속에 어떤 다짐도 엿보이기는 글이네요.
저도 어제 밤 산책 길에 달을 봤어요. 구름에 둘러싸여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분위기 있는 달의 모습이던데요.

파란놀 2012-01-11 16:56   좋아요 0 | URL
설날에 구름이 끼지 않으면,
또 큰보름에 구름이 끼지 않으면,
가장 밝은 흰달을 볼 수 있으리라 믿어요.

지난해에는 설날 달을 못 보았거든요 ㅠ.ㅜ

sslmo 2012-01-11 15:41   좋아요 0 | URL
전 어제 달이 너무 밝아...
누웠다 일어나 앉았다가 달밤에 체조를 했었다나 어쨌다나...
螢雪之功이란 고사성어의 주인공을 달로 바꿔야하는게 아닌가 뭐,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다는...

맨날 이쁘기만 한 글들을 봐서 그런가,
결의까지 느껴지니 새로운걸요~^^

저도 덕분에 희망 한자락 얻어갑니다, 감사~!

파란놀 2012-01-11 16:56   좋아요 0 | URL
힘들 때에 쓴 글이라 좀 그렇습니다 ^^;;;

2012-01-11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1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함께 아프고, 함께 살며
[시를 노래하는 시 10]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책이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글 : 박경리
- 펴낸곳 : 마로니에북스 (2008.6.22.)
- 책값 : 9000원

 


 배앓이로 스물네 시간 남짓 뒹굴었습니다. 이제 배는 엊그제처럼 당기거나 쑤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말끔하지는 않아, 자주 쿡쿡 쑤십니다. 배앓이가 조금 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옆지기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이렇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무얼 잘못 먹고 어떻게 잘못 움직여 속이 이토록 쓰리고 얹혔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옆지기 아버님은 갑자기 속이 얹혔을 때에 말이 나오지 않으나 성을 내면서라도 손가락을 따 달라고 하셨다는데, 나는 그저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린 채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또 이렇게 바보스레 몸앓이를 치르면서, 내 옆지기는 하루 한 해 온삶 어떤 몸으로 아픈 속을 달래며 지내는가를 생각합니다. 나는 고작 하루이틀쯤 배앓이로 꼼짝을 못하며 드러눕다가 모로 눕다가 엎드리다가 무릎 꿇고 엎드리다가를 되풀이할 뿐인데.

 

 저녁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밀린 기저귀 열두 장을 빨고, 둘째를 먼저 씻긴 다음, 첫째를 씻깁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차곡차곡 빨래합니다. 내 몸이 힘들다고 아이들 씻기기까지 못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막상 내 몸을 씻지 못하지만, 내 몸을 못 씻는 채 여러 날 보내더라도 아이들 씻기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더 힘듭니다.


..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산다는 것)


 빨래기계 없이 살아가고 싶지만, 빨래기계를 들여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손수 빨래하는 삶이 나쁜 나날이 아니지만, 스스로 이 일 저 일 마음을 쓰거나 품을 들이며 몸이 지치고 만다면, 애써 손수 빨래하는 삶이 되더라도 즐겁거나 보람찰 수 없구나 싶습니다. 그래, 하느님은 나를 빨래하며 삶을 보내라고 낳지 않았겠지요. 돈벌이를 하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고, 이맛살 찡그리며 살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며, 바보스레 살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지요. 참답고 착하며 곱게 살아가라는 내 목숨일 텐데, 자꾸자꾸 이 셋을 놓치거나 잊거나 저버린다면, 내 목숨을 다시 이어 하루를 새로 살며 무슨 뜻이 있고 어떤 사랑을 키울 수 있을까요.

 

 그나저나 나는 왜 빨래기계 없이 살아가려 했을까요. 어느덧 이런 생각마저 잊은 채 살아가는 나날이 아니었는지요.


.. 그러나 어머니는 / 딸이라 섭섭해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  (20쪽)


 배가 아프며 아이를 낳지 않은 몸이기에 아이들을 덜 사랑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내 몸속에 아이를 담고 열 달을 살아내지 않았으니 아이들을 덜 사랑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언제나 ‘아이가 될 씨앗’을 몸속에 담으며 살아가는 만큼, 오늘 하루 무얼 보고 무얼 들으며 무얼 하고 무얼 누리는가 하는 삶이 고스란히 내 씨앗에 스며드는구나 싶어요. 이러한 흐름과 씨앗과 삶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내 몸부터 옳게 아끼지 못하고, 내 몸부터 옳게 아끼지 못하는데, 내 곁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을 옳게 아끼지 못하겠지요.

 

 그러니까, 이제까지 나는 내 몸속에 깃든 ‘아이가 될 씨앗’을 올바로 깨닫거나 느끼거나 알아채지 않았습니다.

 

 늦게까지 잠들지 않으려 하면서 더 놀겠다는 아이한테 윽박지르듯 어서 안 자고 뭐 하니, 하고 나무란대서 아이가 잠들지 않습니다. 너 몸이 힘들지 않니, 살살 달래고 품에 따스히 안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노래 들려줄 때에 시나브로 잠듭니다.

 

 내 몸이 숱한 일을 치르며 고단하기에 날선 말이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내 몸이 무거운 일을 짊어지며 힘겹기에 골 부리는 말이 새어나오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하루하루 즐거이 누릴 마음이 못 되니까, 자꾸 날서거나 골 부리는 말이 삐져나와요.

 

 무슨 꿈으로 기운을 내고 어떤 사랑으로 삶을 일구는가를 살피지 않는다면, 온통 부질없는 일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삶을 밝히고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함께하는가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저 덧없는 하루하루입니다.


..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 서억서억 톱을 움직이며 /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 밭을 맬 때도 /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  (여행)


 살고 싶은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살고 싶은 모습을 그리며 살아야지요. 어찌저찌 되기를 빌면서 기다리거나 손을 놓는 삶이 아니라, 어떠한 그림으로 그리는 내 좋은 삶이 되도록 해야 할까를 되뇌며, 나 스스로 힘을 내야 합니다.

 

 이냥저냥 걷다가 뜻밖에 보배를 손에 쥐는 삶이란 없어요. 생각없이 살다가 난데없이 찾아오는 선물이란 없어요. 삶을 지어 삶을 누리고, 사랑을 지어 사랑을 누려요.

 

 나는 무슨 삶을 짓고 어떤 사랑을 짓는 나날인가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무런 삶도 사랑도 안 지으면서 선물을 받으려 하는 나날이 아닌가 뉘우칩니다. 그야말로 번드레하게 말만 그럴듯하고, 막상 내 자리 내 터 내 사람들을 아끼는 일은 없이 수렁에서 헤매는 몸짓이 아니냐 싶어 부끄럽습니다.


..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 개미 쳇바퀴 돌 듯 /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  (바느질)


 소설쓰는 박경리 님이 남긴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북스,2008)를 읽습니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싯말을 읽으면서, 이 싯말은 하나하나 산문하고 같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싯말이라는 틀이지만, 따로 시를 쓰는 시가 아니라, 하나둘 털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갈무리하는구나 싶어요.

 

 할 까닭이 없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할 까닭이 있는 말을 합니다. 살아가며 나눌 사랑을 생각하고, 살아가며 누릴 보람을 생각하며, 살아가며 흘릴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 다시 태어나면 /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 깊고 깊은 산골에서 / 농사짓고 살고 싶다 / 내 대답 // 돌아가는 길에 /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 왜 울었을까 ..  (일 잘하는 사내)


 아이들 옷가지를 중천장에 줄줄이 넌 방에 앉습니다. 동이 틀 무렵이면 이 옷가지와 기저귀는 다 마르겠지요. 빨래기계 장만하면서 내 일을 줄여 내가 고단하게 보내는 나날을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인터넷을 뒤져 빨래기계가 얼마나 하고 크기는 얼마만 한지 살핍니다. 읍내에 있는 대리점에 가서 물건을 보아야 할는지, 인터넷으로 장만해야 할는지 생각에 잠깁니다. 어차피 똑같은 물건일까 궁금하고, 통에 이불을 어느 만큼 넣을 만한가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만할까 궁금합니다. 빨래기계를 들이면 씻는 자리는 얼마나 좁아질까 헤아립니다.

 

 그러나 이보다 다른 한 가지 생각이 오래오래 떠돕니다. 배앓이를 하며 뒹구는 동안 나는 생각도 일도 무엇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플 뿐입니다.

 

 아픈 몸으로 스스로 손가락을 따지 못합니다.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지 못합니다. 갓난쟁이를 안아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손발과 몸뚱이 모두 차가우니 물을 만지기 싫습니다. 빨래는커녕 설거지를 꿈꾸지 못합니다. 빗자루와 걸레를 들어 방과 마루를 쓸고 닦자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 꿈에서 깨면 /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  (어머니)


 내가 아플 때에 아픈 사람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내 몸으로 찾아온 이 아픔이 가시고 난 뒤, 내 둘레 아픈 사람들 삶을 얼마만큼 헤아리거나 보듬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문득, 내 어린 나날 내 어머니는 몸이 아픈 적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플 때에 어떻게 하루하루 살림을 일구었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어린 나날 얼마나 몸앓이를 했을까 되새깁니다. 우리 집 아이들 떠올리면서, 이 아이들이 몸앓이를 하면 나로서는 얼마나 힘이 들거나 벅찰는지 돌이킵니다. 씩씩하게 놀고 튼튼하게 밥먹는 아이들일 때에 얼마나 고마우며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픈 사람한테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시킬 수 없어요. 아픈 사람이 무얼 바라는가를 묻고 들으면서 이것저것 차근차근 챙길 수 있어야 해요. 먼저 할 일을 살피고, 즐거이 함께 할 일을 찾아야 해요. 내 몸뚱이를 움직여 어느 일을 할 수 있는가 가늠하면서, 하루하루 알맞게 일거리를 잡아야 해요.


.. 각기 다르게, 그러나 모두 한길을 가는 / 목마른 삶의 모습을 / 생각하는 밤이 그 얼마인가 ..  (어머니의 사는 법)


 소설쓰는 박경리 님은 눈이 가물가물해지고 손아귀에 힘이 빠질 무렵 이 싯말을 내놓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눈이 한결 밝고 손아귀로 호미를 힘껏 쥘 무렵에는 다른 싯말을 내놓고 다른 소설말을 들려주었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글 한 줄 쓰다가 가슴이 쑤셔 끄응 하고 웅크리는 모습을 헤아립니다. 호미질 한 번 하다가 가슴이 갑갑해 끄응 하고 옹크려 앓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골방에서 글줄 붙잡으면 가슴이 더 쑤실는지 모릅니다. 흙을 밟으며 쟁기질을 하면 가슴이 조금씩 뚫릴는지 모릅니다. 골방에 너는 빨래도 하루 지나면 마르겠지만, 햇살 내리쬐는 마당에 너는 빨래는 햇살과 바람과 풀내음을 머금으며 한결 보송보송 마릅니다.


.. 밥을 예쁘게 자시던 노인네는 / 장날이 되면 소금으로 양치질하고 / 얼굴은 수건으로 빡빡 닦고 / 얹은머리를 한 뒤 / 열다섯 새 고운 베옷으로 갈아입고 / 작은 지게를 진 머슴새끼 앞세우며 / 출타하는 뒷모습이 훤칠했다 ..  (친할머니)


 갓난쟁이는 어머니가 곁에 없으면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버지가 곁에서 살가이 안고 살뜰히 달래며 사랑스레 재우곤 했다면, 어머니가 곁에 없더라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텐데 싶습니다. 포근하게 품에 안고, 넉넉하게 손을 잡으며, 싱그러이 눈을 마주치는 어버이 노릇을 얼마나 했나 하고 곱씹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바라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얼마나 살피는 내 하루일까요. 한 집에서 얼크러지는 살붙이들 몸과 마음을 어느 만큼 헤아리는 내 하루일까요.


.. 뙤약볕 아래 / 밭을 매는 아낙네는 / 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온 밭을 끌어안고 토닥거린다 ..  (92쪽)


 삶이 사랑스레 있고서야 글 한 줄 태어납니다. 삶을 사랑스레 돌보고서야 글 한 줄 거듭납니다. 삶을 사랑스레 함께하는 옆지기와 아이들을 생각하고서야 글 한 줄 여밉니다.

 

 호미질을 하지 않으면서 호미질 이야기를 글로 담지 못합니다. 살붙이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붙이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엮지 못합니다. 그저 멀거니 구경하는 듯한 이야기만 끄집어낼 뿐입니다.

 

 내 삶이 구경하는 삶이 아니라면, 내 옆지기와 아이들을 옳게 좋아하며 예쁘게 어깨동무하고 싶은 삶이라면, 나는 오늘 다시 잠자리에 누울 때에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빌어야 할까요.


..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 목이 메이게 척박했던 시절 / 그래도 나누어 먹고 살았는데 ..  (까치설)


 소설쓰는 박경리 님 시집을 다 읽고 덮습니다. 박경리 님이 한 땀 두 땀 일구며 보낸 나날을 찬찬히 갈무리한 시집을 마저 읽고 덮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흙, 사랑하는 호미, 사랑하는 연필과 종이, 사랑하는 꿈과 마음과 별이 있으니, 이렇게 싯말 하나 내놓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싯말 내놓는 사람 삶이 이러하다면, 싯말 듣거나 읽으며 살아가는 나는 어떠한가요. 마냥 듣기만 하거나 그저 읽기만 해도 홀가분할까요. 스치고 지나가는 이야기 하나여도 될까요. 눈에 담고 마음에 담는데, 온몸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에 무엇이 있을까요.


.. 거대한 산업 / 어디로 가나 세상 구석구석 / 광고의 싸락눈 안 내리는 곳이 없다 //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 붓고 / 인력을 쏟아 붓고 / 시간을 쏟아 붓고 / 그것으로 먹고산다 / 그것으로 돈 벌어 부자가 된다 / 그것은 정치 전략의 요체가 되었다 // 그것으로 먹고사는 함정에서 / 사람들은 빠져나갈 수가 없다 ..  (소문)


 함께 아프고,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즐겁고,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함께 밥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혼자 시시덕거린다면 내 삶도 우리 삶도 아닙니다. 홀로 앞장서기만 한다면, 홀로 내닫기만 한다면, 내 삶부터 될 수 없고 우리 삶은 도무지 아니에요.

 

 바보스러운 몸짓 말 마음 모두 버립니다. 아니, 살며시 내려놓습니다. 아니, 버리지도 내려놓지도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몸짓 말 마음 모두 붙잡습니다. 아니,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아니, 붙잡지도 쓰다듬지도 않습니다. 그예 즐거우며 예쁘게 누릴 삶을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 사랑스러운 몸짓이요 말이며 마음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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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11 11:36   좋아요 0 | URL
박경리도 박경리지만 리뷰가 참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래서 배앓이는 나은 거죠? 왜 그랬을까요?ㅠㅠ

파란놀 2012-01-11 16:58   좋아요 0 | URL
아직 멀었어요 ㅠ.ㅜ

하루나 이틀을 더 묵어야 할 듯해요...
에궁... ㅠ.ㅜ
 


 우리 말도 익혀야지
 (927) 가운데 1 : 아이를 돌보는 가운데

 

.. 큰 아이는 이렇게 어린 아이를 돌보는 가운데 참을성과 상상력을 기른다. 그런 한편, 어린 아이들은 큰 아이들과의 이러한 교류를 통해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  《아이카와 아키코/장희정 옮김-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 87쪽

 

 ‘인내력(忍耐力)’이 아닌 ‘참을성’이라 적은 만큼, ‘상상력’이 아닌 ‘생각힘’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큰 아이들과의 이러한 교류(交流)를 통(通)해”는 “큰 아이들과 이렇게 사귀면서”나 “큰 아이들과 이렇게 어우러지면서”나 “큰 아이들과 이렇게 어울리면서”나 “큰 아이들과 이렇게 놀면서”나 “큰 아이들과 이렇게 만나면서”로 다듬습니다. ‘성장(成長)한다’는 ‘자란다’나 ‘큰다’로 손봅니다.

 

 아이를 돌보는 가운데
→ 아이를 돌보는 동안
→ 아이를 돌보는 사이에
→ 아이를 돌보면서
 …

 

 “무엇을 -하는 가운데”처럼 쓰는 말투가 올바르지 않을 줄 느끼거나 깨닫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나부터 이 말투를 퍽 오랫동안 썼어요. 이 말투를 쓰면서 이 말투가 올바른가 아닌가를 살피지 못했어요. 아니, 이러한 말투를 애써 살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못했어요.

 

 어느 날 문득 궁금했습니다. “그러는 중(中)에 이 일이 벌어졌다”처럼 쓰는 말투는 영어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이 옮겨적으며 한국사람한테 스며든 말투입니다. 이 말투에서 한자 ‘中’을 무늬만 한글로 ‘중’으로 적는다든지 ‘中’이 “가운데 중”이니까 ‘가운데’로 풀어 적는다든지, 이렇게 쓰는 말투는 서로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 하고 궁금했습니다.

 

 그러는 中에 (x)
 그러는 중에 (x)
 그러는 가운데 (x)

 

 문득 돌아보니 세 말투 모두 올바르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문득 느꼈어요. 영어 ‘in’을 ‘인’이라고 한글로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in’이든 ‘인’이든 영어예요. “in house”를 “인 하우스”로 적는대서 한국말이 될 수 없어요. 또한 “집 속”이라 적을 때에도 한국말이 될 수 없어요. 한국사람 한국말은 “집 속”이 아니라 “집에”예요. 한국사람은 “집에 있다”라 말해야 한국말이 되지, “집 속에 있다”라 말하면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안과 밖을 나누느라 “집 안에 있다”처럼 쓸 수는 있으나, “집 속”이라 할 수 없어요.

 

 그런 한편 (o)
 그런 가운데 (x)

 

 보기글을 살피면 “그런 한편”이라는 말마디가 있어요. 오늘날 여느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도 “그런 한편”이라 쓰기보다 “그런 가운데”라고 곧잘 써요. 어느 사람은 “그런 중에”라고도 써요. 조금 예전 사람 가운데에는 “그런 中에”처럼 쓰는 분이 있기도 해요.

 

 왜 이러한 말투가 한국 말투에 스며들었을까요. 왜 우리들은 이렇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고 말까요. 이러한 말투가 우리한테 알맞거나 걸맞거나 좋다고 여기는가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쓰다 보니 익숙한 말투가 되나요.

 

 남들이 다 쓰니까 나 또한 따라서 쓰는 말투가 되는지요. 신문에 나오고 책에 실리며 방송에서 떠드니까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익숙한가요. 귀에 익고 손에 익으며 입에 익으니, 이러한 말투를 오늘날 새로운 한국 말투로 삼아야 하나요.

 

 민족주의라느니 순수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사람이 한국사람다이 한국말을 하는 얼거리와 흐름과 삶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토박이말이나 국어순화라는 테두리가 아니에요. 우리들이 으레 쓰는 말투가 얼마나 알맞거나 올바르거나 참다운가를 곰곰이 짚어야 한다고 느껴요.

 

 공장에서 찍은 가공식품을 아무렇지 않게 먹어도 목숨이 곧장 끊어지지는 않는다고 해요. 폐수나 매연이 섞인 물이나 바람을 마셔도 곧바로 숨이 끊어지지는 않는다고 해요. 몇 가지 얄궂거나 뒤틀린 말투를 쓴대서 내 마음이 어두워지거나 비뚤어지거나 망가지지 않을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나는 잘 살고 싶어요. 내 삶을 예쁘게 일구고 싶어요. 아이들과 누리는 하루를 즐거이 어깨동무하고 싶어요. 밥 한 그릇 좋게 먹고 싶어요. 말 한 마디 좋게 나누고 싶어요. 생각 한 자락 좋게 품고 싶어요. (4345.1.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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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64 : 소회所懷

 


..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든, 어떤 모습의 세상이든, 그렇게 세상 속에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어떤 소회에 젖는다 ..  《김비-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삼인,2011) 248쪽

 

 “어떤 종류(種類)의 사람들이든”은 “어떤 사람들이든”으로 다듬고, “어떤 모습의 세상(世上)이든”은 “어떤 세상이든”이나 “어떤 나라이든”이나 “어떤 누리이든”으로 다듬습니다. ‘어떤’이라는 낱말을 앞에 달면 ‘갈래가 어떠하’고 ‘모습이 어떠한’가를 가리키니, 사이에 ‘종류의’나 ‘모습의’를 넣을 때에는 군더더기나 겹말이 돼요.

 

 “세상 속에서”는 “세상에서”로 바로잡습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 넣는 ‘속’은 껍데기는 한글이지만, 알맹이는 일본사람 말투예요. 한국사람 말투는 ‘속’을 넣지 않고 “세상에서”라 합니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이 아닌 “책에 나오는 사람”이라 적어야 올바르고, “영화 속에서 본 이야기”가 아닌 “영화에서 본 이야기”라 적어야 올발라요.

 

 소회(所懷) : 마음에 품고 있는 회포
   - 소회를 밝히다 / 소회를 털어놓다 /
     자기의 소회를 적었을 것이란 것이 직감되었다

 

 보기글을 쓰신 분은 ‘소회所懷’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소회를 말하면서 한자를 밝혀요. 어떤 소회인가 하고 밝혀요.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所懷’와 한자를 달리 적는 ‘素懷’는 “평소에 품고 있는 회포나 뜻”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쓰신 분은 “여느 때에 품는 회포나 뜻”이 아닌 “마음에 품는 회포”를 이야기하고 싶어 ‘所懷’라는 한자말을 쓰고, 이 한자말에 한자 말밑을 밝힌 셈이에요.

 

 그러면 ‘회포(懷抱)’는 또 무슨 뜻을 나타내는 낱말인지 궁금합니다. 다시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이 한자말은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소회(所懷)’를 찬찬히 풀이하면 “마음에 품는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입니다. 다른 한자말 ‘소회(素懷)’를 찬찬히 풀이하면 “평소에 품는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이에요.

 

 한자를 달리 쓴다는 ‘소회’ 두 가지이지만, 두 가지 말풀이 모두 엉터리입니다. 두 가지 한자말을 풀이하며 ‘회포’라는 한자말을 쓰는 일은 아주 엉터리입니다.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한자말 ‘所懷 = 素懷 = 懷抱’예요. 이 세 가지 한자말을 서로 다른 한자말인 듯 여기며 쓸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떤 소회에 젖는다
→ 나는 어떤 생각에 젖는다
→ 나는 무언가를 생각한다
→ 나는 어떤 일을 생각한다
→ 나는 어떤 마음이 된다
 …

 

 “어떤 소회에 젖는다”라 하든 “어떤 회포에 젖는다”라 하든 똑같은 말입니다. 이와 같은 말투로는 우리 생각을 옳게 나타낼 수 없습니다. 우리 생각은 ‘생각’이라는 낱말로 나타내야 알맞습니다. 우리 마음은 ‘마음’이라는 낱말로 가리켜야 알맞습니다. 우리 넋은 ‘넋’이라는 낱말로 드러내야 알맞습니다. 우리 얼은 ‘얼’이라는 낱말로 보여주어야 알맞아요.

 

 가만히 생각하면서 국어사전을 살피고, 국어사전 말풀이가 어떠한가를 짚으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를 헤아리면 좋겠어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매이는 글쓰기나 말하기가 아니라, 참말 옳고 바르면서 착하고 참다이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내 삶인가를 톺아보면 좋겠어요. (4345.1.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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