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신 앞에서 노는 어린이

 


  아이들 신을 빨래한다. 햇살 좋은 날 고무통에 모두 담갔다가 비누를 바르고 복복 비빈 다음 헹군다. 햇살 드는 자리에 가지런히 놓는다. 아이는 신을 바라보고 앉아 조잘조잘 노래하면서 논다. 모처럼 모든 신을 깨끗하게 빨았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보송보송 다 마른 이듬날부터 아이는 이 신 저 신 또 갈아신고 흙밭이며 모래밭이며 개구지게 뛰논다. 하루만에 모든 신이 다시 지저분해진다. 좀 한 가지만 꿰고 놀면 안 되겠니? 하루에 한 켤레만 신으면 안 되겠니? (4345.4.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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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기계 한 달

 


  빨래기계를 쓴 지 한 달이 지난다. 빨래기계 안 쓰던 때에는 하루에 세 차례씩 빨래를 했지만, 이제 하루에 한 차례만 한다. 빨래기계로 하루에 세 차례 하자니 물이랑 전기가 아깝기도 하지만, 한꺼번에 몰아서 하기로 한다. 한꺼번에 몰아서 빨래를 하자면, 비오는 날에는 꽤 애먹는다. 그러나 이제 둘째가 제법 자랐으니 기저귀 빨래가 몇 장 줄어 이럭저럭 비오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기도 하다.


  기계를 빌지만 빨래는 언제나 내 몫이다. 기계를 쓰면 일손을 덜어 다른 데에 더 마음을 기울일 만하지 않겠느냐고 흔히들 말한다. 참말 이와 같은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기계를 쓰기에 내 일손이 더 줄어드는지 안 줄어드는지 외려 느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만, 기계를 빌어 빨래를 하니, 내 손발가락 트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집일을 하며 물을 적게 만지지 않는다. 힘들거나 고되거나 졸립거나 벅찬 날에는 몇 시간 내리 물을 만지며 집일을 하자니 손끝부터 발끝까지 지릿지릿 저린다. 손가락에 물이 마를 새 없으니, 젖은 손으로 책을 쥘 수도 없다.


  그러면 내 손은 왜 물이 마를 새 없을까. 참 마땅하지만, 사람이 빨래만 하며 살겠는가.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한다. 한 아이는 똥을 누고 한 아이는 무어가 엎지른다. 한 아이를 밥먹이고 한 아이하고 논다. 둘째가 기저귀에 똥을 누든 첫째가 오줌그릇에 똥을 누든 물을 만진다. 개구지게 먹어 옷이며 입이 지저분해진 아이들 입을 씻긴다. 설거지를 한다. 죽을 끓인다. 죽 그릇을 설거지한다. 개수대와 밥상을 닦는다. 밭일을 마치고 손을 씻는다. 이래저래 물을 만진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땀을 훔치려 낯을 씻는다.


  빨래기계 한 달을 지내며 생각한다. 기계가 있대서 더 느긋하거나 홀가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은 좀 가볍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온갖 일거리로 짓누를 때에는 내가 아무리 빨래를 좋아하거나 즐긴다 하더라도 고단한 굴레가 될밖에 없다고 느낀다. 아이 죽 먹이기도 즐기고,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기도 즐기며, 아이하고 노래부르거나 그림그리는 나날을 즐겨야지. 아이하고 걷는 들길을 즐기고, 옆지기가 나무라는 말을 즐기며, 뻑적지근한 등허리와 팔다리를 즐겨야지.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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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4-29 07:32   좋아요 0 | URL
기계 결국 들이셨군요.^^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기계 들인다고 결코 일감이 수월해진 것은 아닌게 맞습니다.
전기세 아끼느라 몰아서 빨래를 돌리다보면 빨랫줄에 빨래 너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개키는 시간도 길어지고,입어야 할 옷들의 가지수가 옷장에 확 늘어나 입을땐 좋은데,차츰 빨랫통에 빨랫감이 차오름과 동시에 옷장속에 입어야할 옷감들이 줄어들어 급할땐 정말 낭패되기 일쑤이지요.ㅋㅋ
전 속옷이랑 수건은 꼭 삶아서 널거든요.그래서 샤워 많은 계절엔 혼자서 수건이 매번 모자라 허둥지둥거려요.때론 심적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기계 종료되어야 빨래를 널 수 있기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도 꽤나 애매하여 외출할일이 있을땐 은근 신경을 써야하구요.ㅠ
또한 기계를 돌려도 며칠에 한 번씩은 손빨래를 해야 할 빨랫감도 분명 있어요.그래서 주부들은 손에 물이 마를날이 없는 것같아요.아~ 대한민국 남자들이 된장님같은 마음 같았으면 주부들의 손은 좀 덜 거칠어질 수 있을 것같은데 말입니다.^^
전 손이 선천적으로 예쁜손이 아니거든요.헌데 결혼 12년차가 되니 못난 손에다 거칠기까지 하여 참~ 남들앞에 내놓기가 좀 민망합니다.

암튼,기계를 써도 불편한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래도 기계를 환영하는 것은 기계돌아가는 그시간에 조금이라도 몸이 편하다는 것! 몸이 편하니 그시간에 더 생산적인일(?)을 할 수 있다는 것!...그맛 아니겠습니까!ㅎㅎ
널려 있는 빨래를 보니 좀 여유있어 보여 좋으네요.^^
저 많은 빨래를 손으로 다 하셨다면 어쩔뻔 했어요?
요즘엔 햇볕이 좋아 빨래가 금방 말라서 정말 행복하시겠어요?ㅋㅋ
게으른 저도 빨래가 잘 말라 행복하답니다.^^

파란놀 2012-04-29 09:2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제껏 겨울이고 장마철이고 저 빨래들을 늘 손으로 했는걸요~

그나저나 오늘 비가 올까 말까 꾸물거리네요.
얼른 뒷밭 골라 감자를 심어야 하는디... 이궁~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5) -중中 36 : 부재중 2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고정희-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 116쪽

 

  국어사전을 살피면 ‘부재중(不在中)’이 한 낱말로 실립니다. “자기 집이나 직장 따위에 있지 아니한 동안”을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부재중’을 하나씩 뜯어서 적은 풀이말입니다. “있지 아니한 동안”이란 ‘不(아니한) 在(있지) 中(동안)’이에요

.
  한국말은 “있지 + 아니한 + 동안”처럼 적습니다. 중국말은 “아니한(不) + 있지(在) + 동안(中)”처럼 적습니다. 그러니까, ‘부재중’이라는 낱말은 한국사람이 한국 삶터에 걸맞게 적바림하며 쓰는 낱말 아닌, 중국사람이 중국 삶터에 걸맞게 적바림하며 쓰는 낱말이에요. 이 중국말을 한국사람이 받아들여 깊이 헤아리지 않으며 쓰는 셈이에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자말 ‘부재중’ 뜻풀이에 ‘동안’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으레 ‘가운데 중’으로 새기는 한자 ‘中’인데, ‘동안’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는 中에 / 가는 中에 (x)
 그러는 동안에 / 가는 동안에 (o)

 

  “그러는 중에”라든지 “일하는 중에”라든지 “먹는 중에”처럼 말하는 분이 퍽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마디는 한국 말투가 아니에요. 중국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대로 적자면 “그러는 동안에”와 “일하는 동안에”와 “먹는 동안에”예요. 또는 “그러는 때에”나 “일하는 때에”나 “먹는 때에”입니다.


  누구라도 생각을 살며시 기울이면 알 만하리라 싶지만, 누구라도 생각을 살며시 기울이지 않으면 알 만할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곧, 오늘날 사람들은 늘 쓰는 말을 찬찬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말마디가 어떠한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내 동무와 이웃 말마디가 어떠한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내 말마디를 돌아보지 않기에, 내 말마디를 한결 아름다이 북돋우거나 가꾸지 못합니다. 내 동무와 이웃 말마디를 살피지 않는 터라, 내 동무와 이웃이 한껏 어여삐 살찌우거나 보듬도록 돕거나 이끌지 못합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있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

 

  서로 어여삐 잘 쓰는 말은 기쁘게 어깨동무하면 됩니다. 서로 얄궂게 잘못 쓰던 말은 즐거이 갈고닦으면 됩니다. 하나씩 다스립니다. 하나하나 바로잡습니다. 한 마디이든 두 마디이든 슬기롭게 빚습니다. 한 마디부터 천천히 알뜰살뜰 꾸립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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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후루 2
스에츠구 유키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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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배우는 꽃피는 삶
 [만화책 즐겨읽기 147] 스에츠구 유키, 《치하야후루 (2)》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으레 묻는 말 두 가지는 ‘왜 여기로 왔느냐’ 하고 ‘무슨 연고가 있느냐’입니다. 첫째, 왜 모두들 시골 떠나 도시로 가고 싶어 안달인데, 도시에서 시골로 오는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둘째, 시골 가운데 깊디깊어 도시바라기를 하는 마당에 이곳까지 온 까닭은 둘레에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어림합니다.


  나는 사람들 물음에 아주 짤막히 대꾸합니다. “좋아서요.”, “아는 사람 없어요.”


  오늘 우리 식구한테 좋은 시골이면서, 앞으로도 우리 식구한테 아름다운 시골이 되리라 느꼈기에 외진 두메시골이라 할 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아는 줄’을 꿰지 않고 ‘스스로 잘 살’고 싶어 둥지를 마련했습니다.


- “좀더 우리 셋이서, 카루타를 하고 싶었는데. 끝내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왜 우노? 우리 이만치 안 재미있었나.” (18∼19쪽)
- “카, 카루타를 같이 해 줘서 고맙다. 치하야도, 타이치도. 하지만도, 인자 영영 못 만나것제?” (33쪽)

 

 


  돌이키면, 내가 내 고향 인천에서 살던 때에도 둘레에서 흔히 묻곤 했습니다. ‘아니, 서울에 안 있고 왜 인천에 있느냐’ 하고. 처음에는 “고향이거든요.” 하고 대꾸했지만, 나중에는 “조용하고 예쁜 골목이 좋아서요.” 하고 대꾸합니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고 자랐던 인천 골목동네가 조용하고 예쁘니 좋다고 말하면, 어느 누구도 더 토를 달지 못했어요. 어쩌면, 참 싱거운 녀석이네 하고 여겼을는지 모르고, 참 주제넘거나 철없는 놈이네 하고 여겼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러다 바닥을 쳐야 비로소 뭔가 알겠지 하고 여겼을는지 모르지요.


  나는 전라남도 고흥 두메시골에 마련한 보금자리가 참 좋습니다. 조용하고 사랑스러우며 아늑합니다. 아직 우리 논밭이 없습니다만, 참 좋습니다. 앞으로 우리 논밭이 천천히 찾아오리라 생각하며 좋습니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누리니 좋습니다. 상큼한 바람과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들풀을 누리니 좋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노래하며 뒹굴 수 있어 좋습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거닐거나 뒹굴 수 있어 좋습니다.


  다시금 생각하면, ‘아무 연고 없이’ 이곳으로 왔다는 우리 삶이란, ‘사람을 보고’ 이곳으로 오지 않은 삶이란 뜻입니다. 아는 사람한테 기대어 어떤 벌이나 일자리를 거머쥐겠다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늘 마주할 좋은 자연과 꿈과 사랑을 생각하며 느끼려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 “어쩌면 아라타도, 카루타보다 소중한 것이 생긴 게 아닐까?” (55쪽)
- “청춘을 다 바쳐도 강해질 수 없다고? 그런 푸념은 일단 바치기나 하고 하거라.” (66쪽)
- ‘아라타, 가끔 만나서 카루타를 하자. 신이 아니라, 친구로 지내고 싶어.’(148쪽)

 

 


  스에츠구 유키 님 만화책 《치하야후루》(학산문화사,2010) 둘째 권을 읽으며 더 생각합니다.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아이들한테도 좋은 삶이 좋습니다. 참말 좋은 삶이 좋습니다. 돈이 넉넉한 삶은 돈이 넉넉한 삶일 테지요. 돈이 넉넉하면서 좋은 삶도 있을 테지만, 우리 식구는 그저 좋은 삶을 생각하고 꿈꿉니다.


  그예 아름다운 나날과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언제나 포근한 꿈과 빛나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내 흐트러진 몸을 다스리면서 내 어지러운 넋을 추스를 쉼터를 생각합니다. 내 거친 손길을 다독이면서 내 무딘 마음길을 어루만질 사랑터를 생각합니다. 내 모자란 말문을 차근차근 열고 내 어수룩한 말나래를 살풋살풋 쓰다듬을 놀이터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내 삶에서 나한테 가장 대수로운 한 가지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사랑하면서 아낄 한 가지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살붙이하고 가장 즐겁게 나누면서 빛낼 한 가지란 무엇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 “난 카루타에서 제일 좋은 건, 카드를 25장씩 나눠서 펼치기 직전이야. 막 두근두근해서, 좋은 상상밖에 안 들거든.” (123쪽)
- “카루타를 좋아하고 매일매일 하다 보면, 어쩌다 카루타의 신이, 소리보다 한 발 먼저 와서 가르쳐 줄 때가 있다. 할아버지는 카루타를 그만치 좋아하니까네, 아라타한테 지지 않는기라.” (137쪽)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아버지는 첫째 아이를 품에 안으며 글을 썼습니다. 첫째 아이가 제법 자라 혼자 방방 뛰고 구르며 놀 이즈음에는 갓난쟁이 둘째를 품에 안으며 글을 씁니다.


  첫째 아이 자라는 동안 이 아이가 똥오줌을 가리기까지 몇 만 장에 이르는 기저귀를 빨았습니다. 둘째 아이 자라는 동안 이 아이가 똥오줌을 언제 가릴까 생각하면서 날마다 새로 기저귀를 빨고 개며 가다듬습니다.


  호미질 하는 아버지 곁에서 호미질 하는 아이입니다. 셈틀 앞에 앉는 아버지 곁에서 셈틀 앞에서 알짱대는 아이입니다. 자전거 타는 아버지 곁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아이입니다. 나긋나긋 들길 걷는 아버지 곁에서 나긋나긋 들길 걷는 아이입니다. 논둑 풀을 뜯어 먹는 아버지 곁에서 논둑 풀맛을 천천히 되새기는 아이입니다.


- ‘그때 내가 배운 것은 카루타가 아니야. 정열이야. 아라타의.’ (28쪽)
- ‘즐거워 보여. 즐거워 보인다, 치하야. 네가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걸까? 너도, 우리하고 같이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걸까?’ (87∼88쪽)

 

 


  아이가 어버이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며 배웁니다. 그러나, 아이 때문에 내 삶을 알뜰히 다스리고픈 마음은 아니에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며 기쁘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어버이나 어른이라는 이름에 앞서,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며 기쁘게 누릴 때에 내가 아름답게 꽃피우겠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꽃피우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저희 스스로 저희 깜냥껏 아름답게 꽃피울 길을 찾거나 생각하겠지요.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이런 일 저런 일 하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가 스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니, 내가 온갖 자질구레한 일에 이끌려 내 모습을 스스로 잊느라 돌이키지 못하던 내 어릴 적 모습을 되새깁니다. 내가 내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되새깁니다. 내가 내 어버이한테 나눈 사랑을 돌아봅니다. 내가 내 삶자리에서 누린 기쁨을 곱씹습니다. 내가 내 발걸음으로 꽃피운 꿈이나 내 손놀림으로 무너뜨린 꿈을 헤아립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내 가슴에 좋은 꿈이 싹트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에는 내 가슴에 사랑스러운 빛이 감돌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놀이·삶을 누리면서 내 하루를 좋게 돌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어깨동무하면서 오늘도 어제도 모레도 글피도 한결같이 어여삐 누립니다.


- “물 속에 잠긴 단풍잎의 붉은색은, 헤어져 있어도 감출 수 없는 연모의 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면, 그 검은 잉크로 인쇄한 카루타 카드가, 곱디고운 단풍 빛깔로 보이지 않나요? 이제 아시겠어요? 제가 시를 즐기는 것과 경기 카루타는 전혀 다른.” “굉장해.” “네?” “굉장해 굉장해 굉장해 굉장해! 카나, 더 가르쳐 줘!” (178∼179쪽)
- “카나! 우리 선생님이 그러셨어. 카루타와 친해져서 친구가 되라고. 카나는 이미 100수 모두와 친구잖아? 정말 강할 거야.” (183쪽)

 


  마음을 배우는 꽃피는 삶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배웁니다. 나는 지식이나 정보를 배우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지식이나 정보를 쌓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거나 마음을 북돋웁니다.


  좋은 책 하나를 읽을 때에는 나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됩니다. 슬프거나 궂은 책 하나를 읽고 나면 내 마음까지 슬프거나 궂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슬프거나 궂은 책을 찾아 읽고 싶지 않습니다. 누가 거저로 책을 선물한다 하더라도 나한테 슬프거나 궂다 싶은 책은 맞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내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나한테 가장 아름답거나 좋거나 사랑스러울 책을 읽고 싶습니다.


  곧, 내 삶 가운데 더없이 빛나며 즐거운 하루를 통틀어 아이들하고 복닥입니다. 내 삶 가운데 가없이 해맑고 기쁜 하루를 송두리째 바쳐 옆지기하고 부대낍니다.


  서로서로 가장 좋은 삶을 누려요. 서로서로 가장 예쁜 말을 나눠요. 배가 부르도록 밥을 먹는다지만, 배가 부르면 왜 좋을까요. 배가 부를 때에는 왜 흐뭇할까요. 배가 부를 때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을 더 즐거이 누릴 수 있기에 고맙지 않을까요.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삶을 누릴 기운을 되찾고자 날마다 새롭게 밥을 먹고 밥거리를 살피며 밥상을 차리지 않을까요.


  나는 내 마음을 살찌우고 싶어 내 몸이 홀가분한 길을 걷도록 하루하루 일굽니다. 나는 내 마음을 북돋우고 싶어 내 몸이 튼튼하고 씩씩하도록 이모저모 땀흘립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 치하야후루 2 (스에츠구 유키 글·그림,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1.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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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봄 문학과지성 시인선 64
고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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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마을에 찾아든 봄
[시를 노래하는 시 16] 고정희, 《지리산의 봄》

 


- 책이름 : 지리산의 봄
- 글 : 고정희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1987.10.5.)
- 책값 : 7000원

 


  새벽 네 시 사십 분, 둘째 아이가 칭얼칭얼 소리를 내더니 뽀직뽀직 소리를 냅니다. 아하, 똥을 누네. 둘째가 밤똥을 누네.


  첫째 아이는 밤똥을 참 자주 누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도시인 인천에서 태어났고, 도시 물과 바람과 햇살을 먹고 자랐습니다. 둘째 아이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 물과 바람과 햇살을 먹으며 자랍니다.


  곰곰이 돌이킵니다. 첫째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애먼 것을 따로 먹으려 하지 않았으나, 삶터에서 늘 받아들여야 하는 물이나 바람이나 햇살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늘 듣는 소리도 자동차 소리가 훨씬 클 뿐더러, 사람들마다 손전화를 갖고 다니니, 온갖 곳에서 시끄럽습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탈라치면 온몸에서 기운이 쪽 빠질 만큼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기운이 아이한테 스며들어, 아이 몸이 헝클어지는 나머지, 자꾸자꾸 밤똥을 누며 속앓이를 했겠구나 싶습니다.


..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  (땅의 사람들 6―봄비)


  방에 불을 켭니다. 둘째 아이를 살포시 안습니다. 속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바지와 기저귀를 벗깁니다. 마침 저녁에 저녁똥을 눈 아이를 씻기느라 보일러를 돌렸기에 새벽에도 따신 물을 조금 쓸 수 있습니다. 잘 되었네.


  밑을 말끔히 씻깁니다. 아이를 내 어깨에 기대도록 하고는 똥기저귀와 똥바지를 살짝 빨아 뜨신 물에 담급니다. 아이를 안고 나와 물기를 닦습니다. 새 바지를 입힙니다. 내 무릎에 누입니다. 새벽 다섯 시를 지납니다.


  아이는 무릎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어제 하루 일을 돌이킵니다. 어제는 면내 우체국에 다녀온다며, 네 식구가 천천히 걸어서 마실했습니다. 구비구비 봄논 마늘밭 사이를 돌아서 걷는다며 오십 분 넘게 걸었고, 면내 풀숲에서 삼십 분 즈음 쉰 다음,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첫째 아이는 가는 길에 신나게 뛰고 달리며 놀다가는, 집으로 오는 길에 수레에서 잠들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가는 길에 수레에서 달게 잠들다가는, 집으로 오는 길에 방실방실 웃으며 놀았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오늘 좀 힘들게 마실한 탓에 둘째가 밤똥을 누었구나 싶습니다. 둘째는 내내 안긴 채 다녔다지만, 아직 많이 어려서 힘들겠지요.


.. 아무도 네 시체 위에 궁전을 지을 수는 없으며 / 아무도 네 봉분 깔고 앉아 / 면죄부를 나눠 가질 수는 없으리 / 즈믄 가람 스치는 소소한 바람에도 / 가던 길 옷깃을 여며야 하리 ..  (땅의 사람들 12―그대 봉분 위에 민주깃발 꽂으니)


  아침에 옆지기가 논둑 풀을 뜯었습니다. 아침에 뜯은 논둑 풀로 우리 네 식구 두 끼니를 꾸렸습니다. 싱그러운 봄풀을 먹을 수 있는 하루가 고맙습니다. 이때에 첫째 아이는 온 논둑을 뛰고 달리며 뒹굽니다. 둘째 아이는 척척 기며 따라나오더니 논으로 씩씩하게 들어갑니다. 논 한켠에 고인 물을 철푸덕철푸덕 칩니다. 진흙을 밟습니다. 진흙을 손으로 움켜쥐다가는 툭툭 던집니다.


  옆지기가 풀을 다 뜯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둘째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논에서 나와 다시 기어 마당으로 갑니다. 너 참 용한 아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둘째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옷이야 갈아입히고 빨면 되지, 너야 네 마음껏 놀면 되지.


  씩씩하게 노는 아이를 안아 번쩍 들어올립니다. 마당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가 비로소 꽃을 틔우려 하기에 후박꽃 빛깔을 보고 후박꽃 냄새를 맡도록 합니다. 겨우내 몽우리를 꽁꽁 닫더니, 봄이 되어 동백꽃이 터질 때에도 그저 꽁꽁 제 속살을 감추더니, 사월이 저물 무렵 바야흐로 활짝 흐드러집니다.


  모두 때를 맞추어 꽃을 피울 테지요. 모두 철을 살피며 열매를 맺을 테지요. 모두 해를 먹고 나이테가 굵어지겠지요.


.. 돌들도 일어나 옥문을 열어제치고 / 나무들도 일어나 한쪽으로 한쪽으로 길을 내는 대낮 / 엄숙하여라, 사람의 소리 / 어여뻐라, 사람의 발바닥 ..  (땅의 사람들 13―강물이여, 사람의 강이여)


  품에 안긴 아이는 깊이 잠듭니다. 이제 무릎에서 내려놓아도 될까 궁금합니다. 이제 혼자 바닥 담요에 누워도 잘 자려나 궁금합니다. 아버지 무릎도 좋을 테지만, 두 다리를 곧게 쪽 펴고는 마음껏 활개를 쳐도 되는 방바닥도 좋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새벽 다섯 시 십오 분, 우리 집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들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을 맞아 찾아온 제비들이 아니더라도 이무렵이면 다른 들새와 멧새가 마을을 이리저리 드나들며 지저귑니다. 봄에 앞서 겨울에도 새벽 다섯 시가 지날 무렵이면 새들은 지저귀었습니다. 가을에도 이와 같았습니다. 여름에도 이와 같았어요.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아니라면, 어느 새라 하더라도 동틀 무렵이면 깨어 돌아다닙니다. 동이 트지 않더라도 거의 같은 때에 거의 같이 깨어나 부산히 돌아다니는구나 싶어요.


  나는 시계를 보며 잠을 깨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이 내 잠을 깨웁니다.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에 내 몸이 저절로 일어나 줍니다. 그래서 나는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들새나 멧새보다 먼저 일어납니다. 도시에서는 깊은 새벽에 자동차 시끄럽게 오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시골에서는 깊은 새벽에 고즈넉하며 정갈한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요즈막에는 개구리 소리에 섞이는 풀벌레 소리도 곧잘 듣습니다. 여기에 바람 소리, 바람이 나뭇잎과 풀잎 흔드는 소리, 바람을 가르는 새들 소리를 나란히 듣습니다.


.. 숲에 별 뜨고 // 바람 부는 밤 // 모든 언어에 빗장을 지른 뒤 // 찔레꽃 향기가 심장을 가릅니다 ..  (천둥벌거숭이 노래 1)


  서른여덟 해를 살며 유채잎이나 유채줄기 먹는 줄 생각한 적 없습니다. 서른여덟 해째 살아가며 비로소 유채잎을 먹으며 냄새와 빛을 느낍니다. 유채줄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맛과 결을 헤아립니다.


  유채꽃 노랗게 물든 논둑이나 밭둑에서 유채를 먹습니다. 자운영꽃 발그스름 물든 논둑이나 밭둑에서 자운영을 먹습니다. 꽃송이도 먹고 몽우리도 먹습니다. 잎도 먹고 줄기도 먹습니다.


  풀을 뜯기 앞서, 또 뜯고 나서, 또 입에 넣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몸에 들어와 주어 고맙구나. 네 목숨이 내 목숨이 되었구나. 반갑다. 좋다. 즐겁다.


  풀을 뜯어 먹을 때에는 풀을 코앞에서 바라봅니다. 풀하고 얼굴을 맞댑니다. 풀하고 말을 섞습니다.


  풀은 나한테 먹히고 싶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풀은 언제까지나 푸르게 땅에 뿌리박고플는지 모릅니다. 나는 풀을 먹지 않아도 목숨을 이을는지 모릅니다. 나는 이슬이나 바람만 마시더라도 목숨을 이을는지 모릅니다.


.. 귀뚜라미 우는 쪽에 // 사랑을 묻었지요 ..  (천둥벌거숭이 노래 6)


  어쩌면 그래요.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참말 그래요. 내가 뜯어서 먹는 풀은 오직 이슬, 빗물, 흙기운, 햇살, 바람, 이렇게만 먹습니다. 풀은 겨울이 되어 시들어 죽으며 씨앗을 남길 테지만, 시들어 말라죽는 풀은 그동안 뿌리내린 흙으로 돌아가 흙하고 한몸이 됩니다. 흙하고 한몸이 된 풀은 제가 남긴 씨앗이 이듬해에 새롭게 돋아 싱그럽고 푸른 빛을 뽐내며 햇살을 듬뿍 받을 수 있게끔 흙을 북돋웁니다. 해마다 새로운 풀이 새롭게 흙이랑 한덩어리가 됩니다.


  아무래도 우리들 사람 또한 흙이랑 한덩어리 아닌가 싶습니다. 흙이랑 한덩어리인 풀하고도 한덩어리 아닌가 싶습니다. 흙과 풀을 살찌우는 햇살이랑 한덩어리이기도 할 테며, 지구별을 감도는 바람하고도 한덩어리이기도 할 테지요.


  사람은 물하고도 한덩어리입니다. 사람은 밤하늘 가득 채우는 별빛하고도 한덩어리입니다. 달하고도, 우주하고도, 모든 넋하고도 한덩어리입니다.


  하늘을 날거나 물을 밟으며 걷는다는 말이란, 사람 스스로 어떠한 목숨하고 한덩어리인가를 깨달으며 스스로 홀가분한 몸뚱이가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곧, 사람 스스로 나무와 한덩어리라고 느낄 때에는, 나무가 푸른 숨을 내뿜듯, 사람 또한 푸른 꿈과 푸른 사랑과 푸른 글과 푸른 노래와 푸른 춤사위를 내놓습니다. 이를테면, 사람 스스로 물과 한덩어리라고 느낄 때에는 아주 홀가분하며 아름다이 헤엄을 칩니다. 사람 스스로 햇님과 한덩어리라고 느낄 때에는 아주 따사로우며 맑은 눈빛으로 활짝 웃습니다.


.. 여자 속에 든 어머니가 매를 맞는다 / 여자 속에 든 아버지가 매를 맞는다 / 여자 속에 든 형제자매지간이 매를 맞고 쓰러진다 / 여자 속에 든 할머니가 매맞고 쓰러지고 피를 흘린다 / 여자 속에 든 하느님이 매맞고 쓰러지고 피를 흘리며 비수를 꽂는다 / 여자 속에 든 한 나라의 뿌리가 / 매맞고 피 흘리고 비수를 꽂으며 윽 하고 죽는다 // 깊은 밤 사내는 폭력의 이불 밑에 잠들고 / 세상도 따라 들어가 잠들고 ..  (매맞는 하느님―여성사 연구 4)


  고속도로 없는 시골마을에 봄이 찾아듭니다. 고속도로 없기에 자동차 싱싱 달릴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섣부른 길손이나 나그네나 구경군이 드나들지 않는 호젓한 시골마을에 예쁘며 구성진 봄이 찾아듭니다. 봄은 구름이랑 바람이랑 햇살이랑 무지개랑 소나기랑 이끌고 찾아듭니다. 봄은 냄새로도 찾아들고, 빛으로도 찾아들며, 무늬와 이야기로도 찾아듭니다.


  들판과 멧등성이를 포근하게 덮습니다. 냇물과 바닷물을 넘실넘실 감쌉니다. 하늘은 맑습니다. 땅은 푸릅니다. 나무는 새 기운을 뿜습니다. 풀은 새 잎과 꽃을 틔웁니다.


  여기에, 사람은 땀을 흘립니다. 사람은 기지개를 켭니다. 사람은 이야 좋구나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사람은 마음껏 들판을 노닐고 멧자락을 달립니다. 하늘을 껴안고 땅을 쓰다듬으며 바다를 얼싸안습니다.


..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 그래 저 십 분은 /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 또 저 십 분은 /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 그래그래 저 십 분은 /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  (우리 동네 구자명씨―여성사 연구 5)


  기찻길도 공항도 없는 시골마을 봄은 한갓집니다. 더 빨리 달려야 하는 기차가 꼭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차만으로도 참 빠를 텐데, 알맞게 달릴 수 있고, 역마다 어여삐 꾸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왜 기차역은 더 커지면서 쇼핑센터 같은 건물이 들어서야 하나 궁금합니다. 마을과 마을을 알뜰히 이어 서로 어깨동무하며 사귈 수 있을 때에 기쁠 텐데, 왜 큰도시는 더 커다랗게 되려 하고, 시골 읍내는 도시가 되고파 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아파트를 지어야 할까요. 왜 마당 예쁘게 둔 작은 집을 짓지 않을까요. 왜 아파트를 비싸게 사고팔아야 할까요. 왜 텃밭과 앞논 멋스레 둔 시골집을 오래도록 대물림할 보금자리로 삼지 못할까요.


  도시에서 아파트를 홀가분히 내려놓고 텃밭 시골집으로 살림을 옮길 줄 아는 사람이 하나둘 늘면 좋겠습니다. 도시에서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는 길은 살며시 내려놓고 앞논 시골집으로 삶자락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열스물 늘면 좋겠습니다. 도시에서 더 피터지게 싸우기보다 시골에서 더 사랑스레 메와 내와 들을 보듬으며 돌볼 줄 아는 마음씨를 기를 사람이 백 이백 삼백 사백 생기면 좋겠습니다.


.. 당신 칠십 평생 동안에 열린 산과 들의 숨소리가 / 마지막 포옹에 화인처럼 박힙니다 / 얘야, 나는 이제 너의 담벼락이 아니다 / 나는 네가 머물 반석이 아니다 / 흘러라 / 내가 놓은 짐검다리 밟고 가거라 ..  (수의를 입히며)


  도시에서는 빈집이 드뭅니다. 시골에서는 빈집이 많습니다. 내 집 없다고 푸념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왜 집이 없겠어요. 집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파트가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왜 일거리가 없겠어요. 일자리이든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연봉 높은 쇠밥그릇 직장이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삶은 목숨입니다. 하루하루 꾸리는 삶은 하루하루 누리는 내 목숨입니다. 날마다 챙겨 먹는 밥은 내 넋입니다. 내가 먹는 밥대로 생각하고, 내가 먹는 밥대로 말하며, 내가 먹는 밥대로 일합니다.


  꿈을 꾸는 어른은 꿈을 꾸는 아이를 낳습니다. 꿈을 빚는 어른은 꿈을 꾸는 동무를 사귑니다. 꿈을 꾸는 어른은 꿈을 꾸는 이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내 좋은 이웃은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이기도 하고, 내 좋은 이웃은 후박나무와 모과나무와 매화나무와 감나무이기도 합니다. 내 좋은 이웃은 제비이기도 하고 개구리나 까마귀나 사마귀나 달팽이나 마늘이나 배추이기도 합니다.


  따스히 사랑하고 싶은 사람한테 따스히 찾아드는 봄입니다.


.. 오 하느님, / 칼을 쳐서 밥을 만들고 / 창을 쳐서 떡을 만들던 손 / 그가 여기 잠들었나이다 / 우리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 우리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며 / 우리가 곤궁했을 때 기댈 등을 주던 몸 / 그가 여기 잠들었나이다 ..  (하관)


  시집 하나 읽습니다. 1991년에 마흔셋까지 나이테를 이루다 지리산 어느 결에서 고이 잠들었다던 고정희 님 시집 하나 읽습니다. 아침에 아이들 조잘조잘 복닥이고 저녁에 아이들 시끌시끌 부대끼는 시골집에서 둘째를 가슴에 눕히고 시집 하나 읽습니다. 첫째를 옆에 팔베개 하며 시집 하나 읽습니다.


.. 순전한 흙에서 태어나 // 흙과 더불어 흙을 일구고 / 온전한 흙으로 돌아간 생애 ..  (비문)


  시쓰는 고정희 님은 당신 나이 서른일곱에 비로소 당신 살림집을 마련했다 이야기합니다. 문득 돌아보니 고정희 님 시집을 읽는 나 또한 내 나이 서른일곱에 비로소 내 살림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이 살림집은 살림집일까 아닐까 잘 모르겠습니다. 나로서는 살림집이라기보다 보금자리요, 고향이고 싶거든요. 나부터 스스로 몸이랑 마음을 살포시 눕히며 쉬기도 하고 일하기도 하고 놀기도 하며 즐기는 나날이 되고픈 보금자리요 고향이고 싶어요. 아이들 언제나 마음껏 박차고 뛰놀다가는 멀디먼 마실을 떠날 수 있고 다시금 돌아와 예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좋은 품, 보금자리이면서 고향이고 싶거든요.


.. 왜 그닥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불현듯 상경하신 지난가을, 얘야, 이승길 마지막 나들이다 네가 사는 문지방 넘어보고 싶구나 왜 단호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바쁘다 매정하게 돌아서는 저에게 그냥 탈진한 사람처럼 손 흔들며 그래 내년 봄에 다시 오마 해놓고선 정작 꽃삼월엔 아주 가시다니요 이게 살아 있는 날들의 아둔함인가 싶어 하염없는 눈물만 못이 되어 박힙니다 ..  (집)


  봄날 봄빛 시를 읽습니다. 봄날 읽는 봄빛 시는 겨울을 살아낸 이야기 아닌가 생각합니다. 봄날 읽는 봄빛 시는 여름과 가을을 온몸으로 무르익히며 온마음 구수하게 삭힌 튼튼하고 알찬 빛덩어리 아닌가 헤아립니다.


  봄을 누리는 가슴은 사랑을 꽃으로 틔웁니다. 봄을 즐기는 가슴은 꿈을 잎사귀에 푸르게 새깁니다. 봄을 지내는 가슴은 눈물과 웃음을 줄기마다 차곡차곡 담습니다.


  새 아침 새 빛살 창호지문으로 곱다라니 스밉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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