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아눕는 책읽기

 


 몸이나 마음이 아프는 일이 즐겁다고 여기지는 않으나 거리끼지는 않는다. 몸이 아프건 마음이 아프건 나 스스로 어딘가 잘못한 구석이 있으니, 아주 마땅히 아프고야 만다고 여긴다.

 

 몸앓이를 된통 하건 마음앓이를 모질게 하건, 이렇게 앓아누워 여러 날 보내고 나면 내 삶을 조금 달리 추스르곤 한다. 그러나 이내 예전 몸앓이랑 마음앓이를 잊고는 바보스러운 굴레에 빠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제대로 앓아눕지 않았기 때문일까.

 

 앓아누워 갤갤대면서 내 옆지기 몸과 마음은 어떠한가 헤아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벅차고, 손발이 모두 차갑게 식으며 끙끙거리는 동안 생각도 꿈도 집일도 어느 하나 건사할 수 없다. 참말 몸이나 마음 한켠 아픈 사람들은 어찌 목숨을 건사하나. 어찌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 말짱한 듯 살림을 꾸릴 수 있나.

 

 튼튼한 몸이란 어버이한테서 받은 놀랍고 대단하며 멋진 선물이다. 이와 함께 여리며 아픈 몸이란 어버이한테서 받은 뜻있고 사랑스러우며 값진 선물이다. 튼튼하건 여리건 고운 목숨이다. 어떠한 목숨이건, 나는 사랑스러운 꿈을 마음밭에 심으면서 이 땅에 태어난다. 튼튼하기에 더 일하거나 튼튼하기에 더 훌륭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여리거나 아프기에 아무것도 못하거나 하찮게 살아가지 않는다.

 

 흔히들, 한국땅 권정생 할아버지하고 일본땅 하이타니 겐지로 님을 나란히 놓곤 하는데, 나는 권정생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으레 일본땅 미우라 아야코 님을 나란히 꿈꾸곤 한다. 아픈 몸과 마음에서 피워내는 어여쁜 꽃송이를 나누는 넋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살가운지.

 

 이제 아픈 몸을 어느 만큼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을 듯하다. 내 하루는 어떠한 길로 접어들 수 있을까. (4345.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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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 뻥뻥 차는 어린이

 


 공을 제법 잘 찬다. 잘 안 튀는 바람 빠진 공이지만 꽤 잘 찬다. 바람 꽉 찬 잘 튀는 공이라면 얼마나 멀리 찰까. 아이는 후박나무 그늘 자리에 서서 아버지보고 더 뒤로 가라 하면서 공을 찬다. 바람 빠진 잘 안 튀는 공이기에 멀리 가지 못한다. 나는 아이 말을 안 들으며 앞으로 다가가서 공을 받고 되찬다. (4345.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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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자라는 아이들 - 엄마와 보육사가 함께 슨 솔깃한 자연교육이야기
아이카와 아키코 지음, 장희정 옮김 / 호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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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뜻
 [사랑하는 배움책 3] 아이카와 아키코,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

 


- 책이름 :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
- 글 : 아이카와 아키코
- 옮긴이 : 장희정
- 펴낸곳 : 호미 (2011.10.24.)
- 책값 : 13000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간대서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며 살아가기에 더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훌륭하게 삶을 짓는 사람은 어떠한 얼거리나 터전에서도 훌륭하게 삶을 짓습니다. 홀가분하게 삶을 빚는 사람은 어떠한 곳 어느 때라도 홀가분하게 삶을 빚습니다.

 

 일본사람 아이카와 아키코 님이 쓰고 엮은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에 나오는 ‘숲 유치원’에서 아이를 함께 키운 어느 어머니는 “육아를 하기 전까지는 간단하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했지만, 아이를 앞에 놓고 작은 일이지만 날마다의 삶을 신중하게 다시 돌아보곤 한다(195쪽).”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한테 들어맞을 말은 아닐 테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지 않는 동안 ‘작은 데까지 꼼꼼히 살피며 내 삶 되짚기’를 못하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작은 데까지 찬찬히 헤아리며 내 삶 돌아보기’를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아요.


.. 아이들은 이백 미터 남짓 한 산길을 한 시간쯤 걸려 천천히 이동하면서 벌레하고 놀기도 하고 나무 열매나 낙엽, 꽃잎을 줍기도 한다 … 움직이는 동물들은 표정이 있다. 웃고 찡그리는 표정에서 아이들은 감정을 느낀다 … 산골짜기에서 나는 이른 봄의 풀 냄새, 흙냄새, 짐승들의 똥 냄새, 향긋한 꽃향기 ……. 자연에는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다양한 냄새가 있다 ..  (20, 25, 35쪽)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에 온누리를 더 두루 살피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내 삶을 더 낱낱이 헤아리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때에는 아이가 언제나 내 곁에 붙으며 같이 움직이니, 이 아이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길로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이 아이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길에서는 아이 삶과 어버이 삶이 어떠한가를 톺아보기 마련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면서 온누리를 밝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녁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을 한결같이 올바로 추스릅니다. 아이를 낳으며 살아간대서 온누리를 밝게 헤아리는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이 한꺼번에 생기지 않아요. 웃고 울며 뛰고 놀며 먹고 자며 아프고 일어서는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앞으로만 치닫던 내 발걸음’을 멈추거나 그치면서 차근차근 ‘함께 살아가기’를 되뇔 때에 비로소 무언가 깨닫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았어도 퍽 이른 나이부터 학원에 넣는다든지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보내고는 오직 돈벌이에 얽매인다면, 이러한 삶을 보내는 어버이는 아무것도 못 느끼거나 못 깨닫거나 못 바라보거나 못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삶을 느끼도록 이끌지 않으면서 꽤 이른 나이부터 영어이니 수학이니 한자이니 하며 ‘나중에 대학입시 치를 준비’로 아이를 몰아세우는 어버이 또한 아무것도 못 느껴요. 푸름이가 된 아이한테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는 어버이라 해서 다르지 않아요. 대학교는 시험을 치러야 들어가는 데가 아니에요. 대학교는 ‘대학교 마친 다음 돈 잘 버는 일자리 수월하게 얻도록 자격증이랑 졸업장 따는’ 데가 아니에요. 곧, 중·고등학교란 문제집과 참고서를 잔뜩 짊어지고 ‘대학입시 공부를 하는’ 곳이 될 수 없습니다. 푸른 빛 흘러넘치는 아이들이 푸른 꿈 마음껏 꽃피우도록 이끄는 곳이어야 합니다. 푸른 빛 흘러넘치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아이들한테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서 안기면 안 돼요. 살아숨쉬는 책을 선물하든지, 살아숨쉬는 이야기를 들려주든지, 어버이 스스로 살아숨쉬는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살림을 일구어야 해요.

 

 아이들은 집에서 어버이와 함께 삶을 누리면서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참다이 배우는 길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간다 할 때에는, 이제부터 공부뿐 아니라 삶짓기까지 스스로 살피면서 익히는 길을 찾을 마음이어야 합니다.


..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 … 아무리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 음식을 먹을 때, 엄마는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야 몸에도 좋은 법이다 … 아이들은 자신도 똑같이 자기 엄마한테서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기에 다른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24, 30, 115쪽)


 나는 참 오래도록 삶을 짓는 일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막상 삶짓기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밥과 옷과 집을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해서 어떻게 누리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아끼고 자연을 생각하며 푸나무를 보살필 줄 안대서 삶을 짓는 길에 접어드는 매무새는 아닙니다. 진보를 외치거나 개혁을 부르짖거나 보수를 움켜쥔대서 삶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일구는 삶도 짓는 삶도 누리는 삶도, 진보나 보수나 개혁이나 수구라는 틀로는 다가설 수 없습니다. 봄햇살은 모두한테 따사로운 봄햇살이고, 겨울햇살은 누구한테나 포근한 겨울햇살이듯, 삶짓기란 사상이나 철학이나 학문이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그 무엇으로도 재거나 따지거나 다가서거나 알아챌 수 없습니다.

 

 삶짓기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거든요. 나부터 참다이 사랑하고,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착하게 사랑하는 나날을 차곡차곡 누리면서 삶짓기를 이루거든요.

 

 손꼽히는 책을 읽는대서 삶을 깨닫거나 느끼거나 알아보지 않아요. 손꼽히는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었기에 삶을 바로보거나 톺아보거나 들여다보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가고픈 삶을 생각하고 찾으며 씩씩하게 걸어갈 때에 스스로 깨닫거나 바로보는 내 모습이에요. 내가 바라보는 대로 내 삶이 돼요.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 나날이 돼요. 내가 뿌리내리는 대로 내 삶이 돼요.


.. 지금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인공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면 한평생 자연과 접촉할 기회 없이 살아갈는지도 모른다 … 텔레비전은 리모컨으로 조절하고, 휴대전화는 조작 단추만 누르면 신호가 간다. 그러나 숲과 같은 자연은 리모컨이나 조작 단추로 작동시킬 수 없다. 오로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변할 뿐이다 … (시청이 밀어붙이려 하던) 공원조성계획은 엄마들의 의식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들은 ‘골짜기’라는 낱말을 자주 썼다. 자연으로써 ‘골짜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 엄마들의 생각은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다른 지역의 골짜기를 찾을 때에도 “논이 있네.” “올챙이고 살고 있을까?” 하고 관심을 두게 되었다 ..  (51, 89, 156쪽)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나오는 ‘숲 유치원’은 아이들을 흙에서 뛰놀며 자라게 합니다. 숲놀이라는 길을 걸으면서 아이와 어버이가 저마다 생각하는 삶이 되도록 이끕니다. 누가 몰아세우거나 등떠미는 놀이나 배움이 아니에요. 대학입시를 일찍부터 채근하는 학습이나 자기주도나 창의력이나 무슨무슨 대단한 이름이 붙는 일이 아니에요. 흙땅을 맨발로 걷습니다. 나무를 두 손으로 쓰다듬습니다. 꽃잎과 풀잎을 어루만집니다. 물웅덩이에서 뒹굽니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구름과 바람을 느낍니다. 햇살을 내리쬐고 멧자락을 오르내립니다. 고드름을 따고 얼음을 주머니에 넣습니다. 나뭇가지를 줍고 동무들과 어울려 숲에서 도시락을 먹습니다.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따로 외울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 보고 모레 보며 글피 보면서 아주 천천히 나하고 가까워지는 꽃이나 풀이 되면, 시나브로 마주하는 벗이 돼요.


.. 엄마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볼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은 아이마다 체력과 발달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럴 때 모든 아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어리고 신체 발달이 느린 아이한테 맞추는 것이다 … 자기 아이를 사랑하고 다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면, 그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  (86, 197쪽)


 어른은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뜻을 늘 되새길 수 있어야 어른이에요.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내 몸속 목숨으로 빚은 아이가 없으나, 나와 같은 목숨을 빛내는 숱한 이웃 어른과 ‘곧 어른이 될 새 목숨’이 함께 어우러질 사랑스러운 터전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내 아이부터 찬찬히 바라보면서 이 땅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레 발을 디딜 터전을 꿈꾸면서 삶을 빛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빛내는 꿈을 이루는 사랑을 따사로이 보듬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4345.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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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모질게 불었다. 기저귀 잔뜩 넌 빨래대 그만 와장창 소리 내며 쓰러진다. 빨래대를 받친 무겁고 큰 돌은 부질없었다. 후박나무 빨래줄에 넌 빨래들은 빨래집게가 틱틱 풀어지며 마당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보다 못해 빨래줄 빨래를 모두 걷는다.

 

 바람은 벽에 건 온도계를 날려 깨뜨린다. 천천히 몸이 낫는가 싶었으나, 된바람 맞으며 빨래를 널다가, 또 걷다가 그만 덜덜 떨다가 몸살까지 걸린다. 빨래를 옷걸이에 꿰어 방에 걸고 나서 자리에 드러눕는다. 갤갤 앓는 소리 몇 시간쯤 낸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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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 1 - 개정완전판
후지코 F. 후지오 지음, 박종윤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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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바보. 그러면 어떻게?
 [만화책 즐겨읽기 107] 후지코 F 후지오, 《도라에몽 (1)》

 


 전쟁이란 바보들이 벌이는 짓이라고 느낍니다. 전쟁을 벌이려고 군대를 키우고 사람들을 군인으로 끌어들이는 짓 또한 사람들을 아주 바보로 밀어붙이는 짓이라고 느낍니다.

 

 오늘날 온누리 곳곳에는 직업군인이 있습니다. 군인이 직업이 됩니다. 군인이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사람 죽이는 재주를 익히면서 돈을 벌고 연금을 받아요.

 

 군대가 나라를 지킨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군대는 정치권력자가 사람들을 바보로 몰아세우면서 돈과 힘을 거머쥐도록 하는 방패막이 구실을 한다고 느낍니다. 이러면서 직업군인이 되려는 이들한테는 나라사랑이라는 사탕발림을 내놓습니다. 군대에 아이를 보낸 어버이한테도 나라사랑하는 셈이라고 외칩니다. 군대가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군대가 있을 때에 나라를 지키는 법은 없어요. 나라가 아닌 정치권력자와 경제권력자를 지킬 뿐이에요.


- “이젠 무서운 게 없을 거야.” “어느 쪽에 붙으면 되는 거야?” “적당히 해.” “정의로운 데를 도와야지.” “어느 쪽이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어. 전쟁이란 다 그런 거니까. 가까운 쪽 대장을 잡아서 상대편 대장한테 넘기면 전쟁은 끝나는 거야.” (106∼107쪽)


 나는 모든 직업이 거룩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들 마음이 거룩하다면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거룩할 수 있지만, 사람을 죽이는 재주를 가르치거나 배우거나 익숙해지거나 길드는 군인이란, 어떠한 마음이 되든 거룩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또한 착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거룩할 수 없다고 느껴요. 무기를 새로 빚는 과학자나 기술자 또한 아무리 착하며 고운 마음씨로 이웃사랑을 나눈다 하더라도 거룩할 수 없다고 느껴요.

 

 부디 서로를 아끼는 일자리를 찾으면 좋겠어요. 제발 서로를 사랑하는 일터에서 살아가면 좋겠어요. 아무쪼록 서로 어깨동무하는 마을과 보금자리가 되도록 땀을 흘리면 좋겠어요.

 

 경제성장은 안 해도 돼요. 국토개발이나 사회발전은 없어도 돼요. 아니, 참다이 살아가며 살림을 북돋운다면 좋아요. 내 보금자리 깃드는 마을을 예쁘게 보듬으면서 사람들 누구나 흙·햇살·바람·물·푸나무·벌레·들짐승하고 사랑을 골고루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아요.


- “그런 거야 아무렴 어때. 나는 널 무서운 운명으로부터 구해 주려고 왔어.” “30분 후에 목을 매달고, 40분 후에 불에 달구어진다고?” “그 정도는 새발에 피야. 넌 나이가 들어 죽을 때까지 아주 재수가 없어.” “엑!!” “허풍 치지 마!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아냐?” “난 알 수 있어.” (7쪽)


 언제인지 떠오르지 않는 나한테 아주 먼 어린 나날, 만화책 《도라에몽》을 읽으며 아주 즐거웠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가끔가끔 말할 뿐 아니라, 동무들하고 다투거나 싸우는 일 또한 얼마나 덧없고 나쁜가를 틈틈이 말하는 《도라에몽》이 재미있었습니다.

 

 진구를 들볶거나 괴롭히는 동무들을 곯리거나 앙갚음 해 주는 도라에몽이지만, 도라에몽은 어느 때이건 지나치는 법이 없어요. 진구만 바보스레 지나치게 나아갑니다. 진구는 도라에몽이 말리는 소리에 손사래치며 마구 나아가다가 그만 제풀에 걸려 넘어져요.

 

 도라에몽은 진구가 앞으로도 궂은 일만 겪으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줄 미리 알고는 도우려고 머나먼 앞날에서 찾아왔는데, 진구는 도라에몽이 곁에 있든 없든 자꾸 바보스러운 쪽으로 가요. 사랑스레 받은 도움을 알뜰히 누리면서 동무들과 더 사이좋게 나아가는 길에서 자꾸 엇갈립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란 이렇게 금세 잊거나 함부로 내달리는지 몰라요. 그러나, 아이들 스스로 금세 잊거나 함부로 내달린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가장 가까운 어른인 어버이와 마을 어른이랑 동무들하고 복닥이면서 하나둘 스며들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북돋우기도 하지만, 둘레를 돌아보면서 따르거나 젖어들기도 해요.


- “와앗, 깨졌다! 선생님 꽃병인데 우짤래? 우짤꼬!” “용서 빌 거야.” “혼날 텐데. 저녁때까지 손 들고 있으라고 할걸. 그러다 선생님은 깜박 잊고, 널 세워 둔 채 집에 가실 거야.” (43쪽)
- “위험하잖아! 길에서 축구를 하다니. 미안하다고 사과해!” “내가 차긴 했지만 공 주인은 너잖아.” “축구 하자고 말 꺼낸 건 너야.” “나, 난, 학교 운동장에서 하자고, 그랬는데, 퉁퉁이가 괜찮으니까 길에서 하자고 해서.” “야야, 잠깐, 잠깐, 중요한 건 말야, 진구가 공을 잘 피했으면 됐잖아.” “맞아, 나라면 피했을 거야.” “나야말로 잽싸게 피했지롱.” “난, 되받아 찼을 거야.” “딴생각 하면서 걸으니까 그렇지.” “맞는 녀석이 한심해.” (83∼84쪽)


 진구는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진구를 괴롭히는 동무도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모두 착한 아이요, 착한 삶을 사랑할 아이들이에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무리지어 놀며 자꾸자꾸 ‘무리지은 몹쓸 큰힘’을 부리려 해요. 혼자서는 아무것 아니면서 무리지을 때마다 작고 여린 동무를 못살게 굴곤 해요.

 

 서로 거짓말을 안 하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서로 참말을 나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서로 도우면서 따사로운 손길이랑 눈길을 나누면 얼마나 고울까요. 서로 기대고 토닥이면서 예쁘게 얼싸안으면 얼마나 신날까요.


- “뭐하러 이렇게 케케묵은 걸 잔뜩 모았냐?” “우하하하, 네가 알 리가 없지. 이런 고급스런 취미를. 우리 집처럼 말야, 자동차나 에어콘, 전자레인지 같은, 편리한 것이 다 갖춰져 있으면, 오래된 것이 무지 그리워지는 법이지! 진구, 너희는 오래된 것 없지?” “있어. 우리 집 텔레비전은 10년이나 됐다구!” (68쪽)
- “우리 조상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산속에서 사냥을 하셨다지. 새나 들짐승을 잡아서 근근히 살아온 모양이야.”“시시해!” (98쪽)


 전쟁은 바보짓이에요. 전쟁은 몹쓸 짓으로 첫손 꼽을 만해요. 전쟁을 생각하거나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전쟁일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사랑을 꽃피우지 못해요.

 

 사랑은 착한 삶이에요. 사랑은 아름다운 일 가운데 첫손 꼽을 만해요. 사랑을 생각하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사랑하는 마음씨로 일을 하고 놀이를 나눈다면 나와 이웃과 동무 모두 빛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어요.

 

 만화책 《도라에몽》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요. 머나먼 앞날에서 진구를 도우려고 찾아온 도라에몽은 그저 ‘진구가 어려울 때에 앞장서서 나서는 로봇’은 아니에요. 진구가 앞으로 겪을 수많은 어려움과 힘겨움과 가시밭길을 어떠한 넋과 얼과 꿈과 사랑으로 맞아들이면서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가야 좋은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길동무예요.


- “천만에! 이 연필만 있으면 땡이라구! 도라에몽, 너도 데려갈게.” “흥.” “저 눈.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쳇, 알게 뭐람! 내일은 기필코 쓰고 말 거야!” (137쪽)
- “남들도 하는데 너라고 못하겠냐! 상처투성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연습하는 거야!” “도라에몽은 너무해.” …… “뭐야, 이렇게 간단한데. 지금까지는 왜 못했을까?” “그것 봐!” (190쪽)


 사랑을 말하는 동무가 반갑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동무가 고맙습니다. 사랑을 꽃피우며 열매맺으려고 땀을 흘리는 동무가 살갑습니다. 나는 옆지기랑 아이들이랑 좋은 사랑을 씨앗 한 알로 우리 보금자리에 심고 싶습니다. 예쁘게 자라고, 예쁘게 살며, 예쁘게 누리면서 한삶을 마무리짓고 싶습니다. (4345.1.11.물.ㅎㄲㅅㄱ)


― 도라에몽 1 (후지코 F 후지오 글·그림,박종윤 옮김,대원씨아이 펴냄,1995.8.30./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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