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책읽기 2

 


 술을 마시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며 무슨 글을 쓸 수 있고, 술을 마시며 무슨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옛날 옛적부터 흙일이 무척 고되면 술을 마시며 새힘을 불러일으켜 다시금 연장을 쥐었다는데, 알딸딸하고 살며시 해롱거리는 기운으로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는데, 이렇게까지 하며 일을 하고 나면, 온몸이 그예 솜뭉치처럼 된다. 일하는 사람한테는 술이 무엇일까.

 

 술을 마시면서 아기를 볼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아기한테 젖을 물릴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배를 몰아 고기를 낚을 수 있을까. 술기운에 헤엄을 치면 얼마나 물살을 잘 가를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할 수 있을까.

 

 술을 만드는 회사는 아주 크다. 술을 만드는 회사는 회사원을 어마어마하게 거느린다. 술을 만드는 회사는 온 나라 곳곳에 큼지막하게 광고판을 붙인다. 온 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술을 아주 쉽게 사서 마실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셔야 할까. 술을 마시며 무엇이 기쁘거나 흐뭇하거나 재미나거나 좋을까.

 

 술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은 아닌가. 술이란, 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멈추도록 하거나 생각을 않도록 하거나 생각을 잊도록 내모는 고임돌은 아닌가.

 

 사람들이 술을 마시도록 내모는 나라나 사회라면, 이러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이 살아갈 만할까. 술을 마시며 읊는 사랑과 평화는 얼마나 즐겁거나 너그러울까.

 

 사람을 틀에 가두는 나라에서 사람이 술을 마시도록 몰아세운다고 느낀다. 사람들 생각을 틀에 갇히도록 하는 나라에서 자꾸자꾸 술을 마시도록 밀어붙인다고 느낀다.

 

 아주 모처럼 보리술 몇 잔을 마시며 알딸딸하다. 알딸딸한 나머지 생각이 슬기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생각이 그만 멈추면서 멍하니 있고 만다. 이런 넋이라면 스스로 생각을 빚는 꿈을 키우지 못한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흘리는 이야기에 그저 빠져들밖에 없다. 그렇구나. 방송이란, 언론이란, 신문이란, 모두 술과 같지 않을까.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힘을 키워 삶힘을 일구도록 돕는 방송이나 언론이나 신문이 있을까. 사람들 생각을 한쪽으로 밀거나 가두는 방송이나 언론이나 신문이 아닐까.

 

 책을 읽을 때에는 이 책을 손에 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막상 곰곰이 헤아리노라면, 손에 쥔 책에서 밝히는 이야기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일쑤이다. 역사책은 어떤 역사를 밝히는가. 역사책에 적히는 역사란 누가 살아온 발자국인가. 역사책에 담는 역사란 내 삶에 얼마나 빛이랑 소금이랑 꿈이랑 사랑이 될 만한가.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낳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여느 수수한 밥과 옷과 집을 담아내지 않는 역사책이란, 얼마나 예쁘거나 싱그럽다 할 만한가.

 

 문학책은 어떤 문학을 보여주는가. 철학책은 어디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 생각을 들려주는가.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 값지고 뜻깊을 책이란 어떤 이야기일까.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나눌 만한 책은 누가 쓸 수 있는가. 어린이한테 읽히면 좋다는 책은 무슨 이야기를 다루는가. 아니, 책은 참말 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깊거나 너르게 북돋우는 이야기밭 구실을 하는가.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힘을 다스리거나 넓히거나 아끼는 기운을 펼치는가.

 

 술을 마시면서 생각이 멈춘다.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생각을 살찌우지 못한다. 술을 마시도록 하면서 생각을 가로막거나 억누른다. 술을 마시지 않는 곳에서조차 생각이 비틀리거나 뒤틀리거나 비비꼬이도록 흔든다. (4345.1.15.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울 진오기굿 한국의 굿 20
조흥윤 지음 / 열화당 / 1993년 3월
평점 :
절판


김수남 님 <한국의 굿> 사진책 스무 권 가운데 오직 하나만 검색됩니다. 그나마 이 한 권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20번 사진책으로 소개하는 글을 쓸까 하다가, 아무래도 상징성이 있어, 저는 1권으로 소개글을 씁니다.

 

 

 


 내 이웃과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4] 김수남, 《한국의 굿 1 황해도 내림굿》(열화당,1983)

 


 1983년 7월 20일 첫선을 보인 ‘열화당 한국의 굿’ 스무 권 1번을 빛내는 《황해도 내림굿》(열화당,1983)은 첫 사진 첫 글을 “81년 6월 23일 서울 석관동에 있는 황해도 큰만신 김금화의 집에서 내림굿이 있었다(17쪽).’로 엽니다. 첫 장으로 깃든 사진은 책 뒤쪽에도 자그맣게 실립니다. 이 사진 한 장은 자그마치(?) 스무 권으로 꾀한 《한국의 굿》을 여는 실타래가 되면서, 이제껏 한겨레 굿놀이와 굿판과 굿잔치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보거나 가르치거나 생각하도록 이끌던 흐름을 따사로이 보듬으려는 손길이 됩니다. 엉뚱한 눈길을 바로잡는다든지, 터무니없는 손길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저 곱게 바라보는 사랑과 꿈을 이야기합니다.

 

 사진책 《한국의 굿》 스무 권을 펴낸 열화당 출판사 편집부는 책머리에, “무속사진을 찍는 사람이 학자일 경우에는 사진이라고 하는 전달매체의 특징을 백분 살리는 데에 미흡하여 무속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놓치기 쉽다. 그와 반면에 사진전문가일 경우에는 무속 내용에 대한 이해에 한계가 있어 그 본령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있다. 때문에 때로는 본래의 의미와 품위를 왜곡 변질시키는 무속사진이 시각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공개되는 경우조차 없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무속이 어찌해서 우리 문화의 고향일 수밖에 없는가를 깨닫고 느끼게 하기보다는 사라져 가고 있는 관광자료에 불과한 민속이나 미신이라고 설명하려는 무속사진들이 더이상 쏟아져 나오기 전에, 전국의 무속을 정리하고 무속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시점에 이르렀다(이 책을 간행하면서,12쪽).” 하고 적습니다. 나는 이 첫머리 글을 읽던 고등학생 때(1991년)나 오늘(2012년)이나 늘 같은 마음입니다. 책 하나 내놓으며 이렇게 머리글을 붙이던 일이란 1976년에 태어난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이곳에서 1981년에 내놓은 《민중 자서전》이랑, 1983년에 내놓은 《한국의 발견》 뒤로는 처음이자, 이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이러한 말마디를 새로 듣기 어렵지 않나 싶어요.

 

 곰곰이 헤아리면, 이와 비슷한 말마디를 내놓은 책으로 ‘대원사 빛깔있는 책들’이 있다고 느껴요.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삶에서 문화를 읽고 전통을 느끼며 역사를 살피는 이야기책이 거의 태어나지 못하는 채, 으레 연구실과 자료실에서 쌓이는 연표와 통계는 온통 ‘수수한 여느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력자’ 쪽에서 바라보는 책만 쏟아지는데, 《한국의 굿》 스무 권은 이러한 사진밭 흐름에 좋은 사랑씨앗이 되려고 했구나 싶어요.

 

 더 되짚으면, 이들 책에 앞서 예용해 님이 1963년에 빚은 《인간문화재》(어문각)라는 책이 있기에, 한겨레 삶자락을 살가이 돌아보는 기틀을 닦을 수 있다고 말할 만합니다. 따로 책이라는 틀로 무언가 보여주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스레 살았어요. 애써 역사나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하루하루 즐거우며 고맙게 맞이했어요. 누군가 조선 막사발을 첫손 꼽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막사발을 썼고 수저를 썼어요. 한겨레 문화와 역사와 예술과 전통이라 한다면, 밭을 일구는 호미 한 가락입니다. 쌀겨나 티를 까부르는 키 하나입니다. 옷을 기우는 바늘 하나이고, 갓난쟁이한테 대는 기저귀 하나예요. 궁중에서 입는 옷이 되어야 전통이나 문화가 되지 않아요.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살림집에서 늘 입는 옷이 바로 전통이나 문화예요. 그런데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서는 이러한 옷을 전통이나 문화라고 바라보지 않아요. 그저 삶입니다.

 

 사진책 《한국의 굿》 스무 권에 나오는 굿판 굿마당 굿잔치 굿놀이 사람들 몸가짐과 차림새 또한 남다르다고 여길 모습이 아닙니다. 그저 예부터 이녁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랑한 모습이에요. 애써 돋보이도록 꾸미는 모습이 아니에요. 여느 삶 모습이에요. 일부러 도드라지게 덧대는 모습이 아니에요. 꾸밈없이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더 높지 않으나, 더 낮지 않습니다. 더 높여야 하지 않고, 더 낮춰야 하지 않아요.

 

 이리하여, 한겨레에서 문화를 찾거나 예술을 바라거나 전통을 지키려 하는 어떤 흐름이 있다면, 김수남 님이 사진기를 들고 ‘한국의 굿’을 찍었다 할 때에, 어느 자리에선가는 ‘한겨레 옷’을 찍을 법했어요. ‘한겨레 집’을 찍고 ‘한겨레 밥’을 찍으며 ‘한겨레 길’과 ‘한겨레 논밭’과 ‘한겨레 바다’와 ‘한겨레 마을’을 찍을 만했어요. 이리하여, ‘한겨레 마을’까지는 아니나 《제주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단 자그마한 이야기책이 반석이라는 출판사에서 꽤 많이 나온 적 있어요. 엮음새가 너무 투박하기는 했으나, 제주섬에서 제주 마을만 돌아본 ‘제주의 마을 시리즈’는 참으로 소담스러운 선물이라 여길 ‘여느 사람 삶을 톺아보려는 사랑몸짓’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유산을 두루 돌아다니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문화유산을 두루 밟으며 한겨레 옛삶을 살필 만해요. 이러한 데에 애틋하게 눈길을 보내는 삶이라 한다면, 언젠가는 ‘한겨레 오늘 삶’을 깨달아, 전통이든 역사이든 문화이든 예술이든 어디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는 하나도 없는 줄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우리는 ‘엉뚱하게 적바림되며 참뜻하고 동떨어질까 걱정스러운’ 한국굿 이야기를 소담스레 담은 《한국의 굿》 스무 권을 만날 수 있어요. 아쉽다면,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만난다 할 텐데, 아직 우리 스스로 우리 오늘 삶을 착하며 곱게 돌아보거나 보듬는 손길이랑 눈길을 북돋우지 못한 탓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아직 ‘한겨레 골목길’조차, ‘한겨레 숟가락’조차, ‘한겨레 비녀’조차, ‘한겨레 바지랑대’조차, ‘한겨레 구멍가게’조차 꾸밈없이 바라보며 얼싸안지 못해요.

 

 201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한테 1980년대는 서른 해나 지난 아스라한 옛삶입니다. 2040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한테는 2010년대 오늘은 참 아스라한 옛삶이에요. 2070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2010년대는 무척 아스라한 옛삶이에요.

 

 전통이나 문화나 역사나 예술은 어디 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오늘 우리가 두 발 디딘 이 자리 삶자락이 전통이요 문화요 역사이며 예술이에요. 내가 살아내는 하루가 전통이에요. 내가 누리는 보금자리가 문화예요. 내가 먹는 밥이 역사예요. 내가 살붙이랑 나누는 이야기가 예술이에요.

 

 《한국의 굿 1 황해도 내림굿》 책날개 뒤쪽에 김수남 님이 적은 맺음말을 읽습니다. “아마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일 게다. 어차피 사회와 시대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까지 되어 버린 굿을 찍으면서 지난 10여 년간의 작업이 최소한 하나의 증언,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 한 계층이 처한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 속한 사회에서 변모해 가는 삶의 현장을 남기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나로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김수남 님은 ‘굿판을 사진으로 찍었다’기보다 ‘사람들 살아가는 터전’을 사진으로 찍은 셈입니다. 김수남 님 좋은 이웃을 예쁘게 사귀면서, 이 이웃들하고 사진으로 이야기꽃을 피운 셈입니다. (4345.1.14.흙.ㅎㄲㅅㄱ)

 


― 황해도 내림굿 (김수남 사진,김인회·최종민 글,열화당 펴냄,1983.7.20./판 끊어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2-01-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굿』이라는 책을 지난달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살펴본 적이 있었답니다. 정말 인상적이고도 다양한 사진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어찌보면 우리들 삶의 깊숙한 뿌리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도 딱 한권의 책만 있던데, 알라딘 서재에서 이 책에 관한 멋진 글을 만나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름답고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2-01-14 23:09   좋아요 0 | URL
예나 이제나
이만 한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는 늘 틀에 박힌 대로만 배우고 길들여지니
학교를 다니며 사진을 배우면 찍지 못한다 할 텐데,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 이렇게 남겼으니
고마운 노릇이라고 여겨야 할까 싶기도 해서
많이 슬프답니다...
 


 속일 수 없는 마음

 


 어린이문학 한 권 느낌글을 다 쓰고 나서 한숨을 쉰다. 이 어린이문학 한 권을 읽으며 조금도 기쁘지 않았고, 이 어린이문학을 우리 아이한테 읽혀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둘레에서 이 어린이문학을 읽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가 재미있어 할까 싶어 너무 슬펐다. 느낌글을 써야 하나 망설이다가 느낌글을 쓴다. 느낌글을 쓰면서 ‘그래도 영 꽝이라 한다면 아예 안 써야 낫지 않겠니?’ 하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쁘다는 말은 굳이 안 해도 되잖니?’ 하고 되뇌지만, 막상 글을 쓰고 보니, 내 마음에서 술술 흐르는 이야기를 도무지 어찌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낱말, ‘감동’이라는 한자말을 빌어서 말할밖에 없다.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내려 하면 몹시 슬프다. 왜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야 할까. 왜 억지로 사람들을 웃기거나 울려야 할까. 참말 눈물이 날 만한 이야기라서 눈물이 나면 될 텐데. 참말 웃음이 날 만한 이야기라서 웃음이 터지면 될 텐데.

 

 나는 내 마음을 속일 수 없다. 기쁠 때에 기쁜 마음을 속일 수 없다. 슬플 때에 슬픈 마음을 속일 수 없다.

 

 좋은 사랑을 하면서 좋은 낯빛으로 좋은 말을 나누고 싶다. 좋은 삶을 일구면서 좋은 꿈을 좋은 살붙이하고 함께하고 싶다. 속이지도 감추지도 덮지도 내동댕이치지도 않는 좋은 나날이고 싶다. 있는 그대로 사랑스러운 내 넋이요 몸뚱이가 되고 싶다. 있는 그대로 좋아할 우리 옆지기이면서 아이들이고 싶다.

 

 오늘 낮, 마을잔치를 한다며 발포 바닷가 쪽에 있는 어느 고기집에 마을 어르신들 모두 찾아가서 밥과 술을 즐길 때에, 둘째 갓난쟁이 안은 옆지기가 앉은 자리 뒤로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 마른 풀줄기 모습을 보며 참 예쁘다고 느꼈다. 억새도 옆지기도 아이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이곳 살림살이도 참 예쁘다고 느꼈다. (4345.1.14.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용의 아이 타로오 창비아동문고 230
마쯔따니 미요꼬 지음, 타시로 산젠 그림, 고향옥 옮김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 다섯 가운데 별 하나만 매기는 일이란 너무 슬프다.

그러나 내 마음을 속일 수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못한 작품에 별 둘조차 붙일 수 없다.

 


 나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어린이책 읽는 삶 15] 마쯔타니 미요꼬, 《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

 


- 책이름 : 용의 아이 타로오
- 글 : 마쯔타니 미요꼬(마쓰타니 미요코)
- 그림 : 타시로 산젠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창비 (2006.11.30.)
- 책값 : 8500원

 


 밤에 쉬를 누러 마당으로 나와 논둑에 섭니다. 시골마을 고샅길 곳곳에 등불이 밝습니다. 고샅길 등불이 없다면 이 시골마을은 아주 깜깜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샅길 등불이 있더라도 밤하늘 별이 초롱초롱합니다. 맑고 환하게 빛납니다. 불빛 하나 없다면 달빛이랑 별빛이 훨씬 맑고 환하겠다고 느끼지만, 시골마을 등불은 달빛이랑 별빛을 못 누리게 할 만큼 거치적거리지 않습니다.

 

 겨울날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이니 마땅히 차갑겠거니 생각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땅에 불빛이 적으면 하늘에 별빛이 가득하고, 땅에 불빛이 많으면 하늘에 별빛이 사라집니다. 땅에 풀빛이 가득하면 하늘에 파란빛 넘실거리고, 땅에 까만 아스팔트빛 넘치면 하늘에 시커먼 잿빛이 그득합니다.


.. 뚝배기 깨지는 소리로 노래만 불러댔습니다.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경단을 먹었습니다. 토끼가 있으면 토끼와 함께, 쥐가 있으면 쥐와 함께 먹었습니다 ..  (11쪽)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니 좋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막상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이 시골에서 밤에 한두 시간 즈음 아주 느긋하게 별을 올려다본 적은 없구나 싶습니다. 살짝살짝 나와서 올려다보았을 뿐입니다. 파랗고 높은 낮하늘을 올려다볼 때에도 이와 비슷해요. 살짝살짝 나와서 올려다볼 뿐, 막상 흙을 밟거나 보살피며 오래오래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이 겨울이 가고 봄을 맞이하면 아주 흙에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겨울에 겨울대로 겨울흙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봄이라 해서 갑작스레 달라지는 삶이 될까요. 아이들이 모두 더 자라 스스로 걷고 달리고 호미를 쥘 무렵에야 비로소 흙하고 마음껏 뒹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부터 만날 흙이고, 바로 오늘부터 부대낄 바람이며, 바로 오늘부터 등에 질 햇살이에요. 내 삶이 집에서 빨래하고 밥하며 청소하는 삶이 아니라 한다면, 빨래랑 밥이랑 청소는 이대로 즐거이 누리면서 흙을 보듬는 삶이라 한다면, 이 좋은 결을 곱게 즐기면서 누리는 쪽으로 조금씩 거듭나야 합니다.


.. “할머니는 어른이 돼야 한다고 했지만 난 못 기다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엄마를 찾아올게. 옛날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어서 할머니한테 데려올 거야. 갑자기 용이 됐으니까 틀림없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할머니, 꼭 기다려야 해!” ..  (42쪽)


 마쯔타니 미요꼬 님이 쓴 동화책 《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를 읽는 내내 곰곰이 생각합니다. 곡식 얻을 땅뙈기가 너무 모자란 멧골 깊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널따란 논을 얻는 줄거리가 나오는 동화책인데, 어쩐지 그닥 가슴이 울렁울렁 뛰지 않습니다.

 

 왜 논에 모를 심고 벼를 거두어 쌀을 얻은 다음 밥을 해서 먹어야 하나요. 사람은 쌀만 먹어야 살아갈 수 있나요. 사람이 목숨을 건사할 만큼 먹을 곡식은 어느 만큼 거두어야 하나요. 사람한테 얼마나 널따란 땅뙈기가 있어야 하나요.

 

 무나 당근이나 감자나 고구마나 온갖 푸성귀랑 열매랑 다른 곡식이 있지 않나요. 풀을 뜯고 잎을 먹으며 뿌리를 캘 수 있지 않나요. 물고기를 잡거나 들짐승을 잡을 수 있지 않나요.


.. 타로오는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화를 냈습니다. “농부들에게 가장 소중한 물줄기를 가지고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단 말이지. 좋아, 내가 꼭 없애 주겠어.” ..  (70쪽)


 용이 되고 말았다는 어머니를 다시 사람으로 돌리고픈 꿈을 품은 아이 타로오는 머나먼 길을 떠나고, 온갖 모험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흙일꾼을 성가시게 구는 이를 죽여서 없애는 일이 참말 흙일꾼을 돕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나쁜 동화나 아쉬운 작품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집어넣으려 하는 교훈이 너무 뻔하게 드러납니다. 전쟁이 싫으면 더 힘이 세져서 전쟁에서 이기면 될까요. 주먹다짐으로 괴롭히는 이가 못마땅하다면 주먹힘을 더 키워서 이 몹쓸 녀석을 물리치면 되나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전쟁을 전쟁으로 이길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밴 어머니가 얼마나 크게 잘못을 했기에 ‘용이 되는 벌’을 받고 ‘두 눈까지 잃어야 하는’지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르게 느낍니다. 논일을 하기에 흙일꾼한테 물줄기가 “가장 소중하다” 말할 수 있을 테지만, 물이란 “흙일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이 아니라, 모든 목숨이 살아숨쉴 때에 밑바탕이 되는 무엇이 아닌가 싶어요. 물과 바람과 햇살이 없으면 어떠한 목숨도 살 수 없어요. 곧, 흙일을 하는 흙일꾼한테는 무엇보다 ‘흙’이 가장 대수로우며 거룩하지 않느냐 싶어요.


.. “그렇지만 이런 보물을 그저 아낌없이 죄다 먹어치울 순 없어. 씨앗으로 둠세. 어때, 우리도 벼농사를 짓자고.” ..  (130쪽)


 《용의 아이 타로오》를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이 동화책을 쓴 분은 아이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찬찬히 돌아봅니다. 나는 내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 무엇보다 ‘나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아름다운 길과 옆지기한테 아름다운 길과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길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 함께 아름다운 길을 걷는 삶이라면 어떠한 모습과 매무새와 몸짓이어야 할까 하고 찬찬히 돌아봅니다.

 

 옆지기는 나한테 교훈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나는 옆지기한테 교훈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가장 사랑하는 꿈을 나눌 뿐입니다.

 

 꿈이란 무엇일까, 그래, 동화라 한다면, 동화 아닌 어른문학이라 하더라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라 하든 문학이라 한다면, 바로 ‘어떤 꿈을 들려줄 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깊고 넓게 다룬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나는 《용의 아이 타로오》를 읽는 내내, 이 문학에서 아이들하고 나누고픈 ‘꿈’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읽지 못했습니다.


.. 용은 말없이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이 아이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거야.’ ..  (164쪽)


 옛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일이 훌륭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옛날 옛적 이야기이든 오늘날 이야기이든 앞으로 맞이할 이야기이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면, ‘어떤 사랑을 담는 사람들 꿈’인가를 조곤조곤 밝혀야지 싶어요. ‘어떤 사랑을 담는 사람들 꿈’인가를 낱낱이 드러내지 못한다면, 살가이 꽃피우지 못한다면, 어여삐 북돋우지 못한다면, 이러한 작품은 어린이문학으로나 어른문학으로나 글맛이 없는 노릇이구나 싶어요. 글맛이 없다면 삶맛 또한 없는 셈이구나 싶어요.

 

 애써 옛이야기를 빚으려 하지 않아도 좋아요. 꼭 문학이나 작품이나 예술이나 문화라는 틀에 넣지 않아도 돼요. 좋은 사랑과 착한 꿈과 빛나는 슬기를 이야기 한 자락에 담으면 기쁘겠어요.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아름답구나 싶은 삶을 누리면, 나는 오늘부터 가장 좋은 문학이 될 이야기를 일군다고 느껴요. 이 이야기는, 내가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간 뒤에, 내 아이들과 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사랑스러울 ‘옛이야기’가 되리라 믿어요. 굳이 ‘오늘 옛이야기 틀을 만들어 뭔가를 써야’ 문학이 되지 않아요. (4345.1.14.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치 글쓰기

 


 고단하게 하루를 보내고 나서 잠자리에 들 무렵, 등허리를 펴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며 푼다. 오슬오슬 추위에 살짝 몸서리를 치다가 조금씩 몸이 따뜻해진다. 쑤신 머리통을 꼭꼭 누른 다음 부시시 일어난다. 바야흐로 깊이 잠들기 앞서 오늘 하루치 글을 쓰자고 생각한다.

 

 살아낸 이야기를 떠올린다. 살아갈 이야기를 되새긴다. 살아가는 옆지기와 아이들 모습과 얼굴과 손발을 헤아린다. 내 삶을 글 한 줄에 모두 담을 수 없고, 내 삶은 글쓰기로 갈무리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글 한 줄에 앞으로 꽃이 될 씨앗과 같은 내 삶자락 이야기를 싣는다. 오늘 하루 어떠한 삶씨가 내 보금자리에 드리웠는가를 돌아보고 싶다. 하루하루 꾸준하게 돌아보지 않는다면, 나는 내 고마우며 아름다운 나날을 그만 잊거나 아무렇게나 흘리고 만다고 느낀다.

 

 꼭 글을 써야 하지는 않다. 굳이 글을 안 써도 되는 일은 아니다. 우러나오는 글이기에 쓰고, 샘솟는 말이기에 나눈다. 우러나오는 사랑이기에 꽃을 피우고, 샘솟는 믿음이기에 열매를 맺는다. 두 아이 새근새근 색색 숨소리를 듣는다. 아버지는 글을 쓰고, 어머니는 뜨개질을 한다. (4345.1.14.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