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깊은 밤 잠에서 깨어
 [만화책 즐겨읽기 106] 아베 야로, 《심야식당 (1)》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자지러지게 우는 둘째를 안습니다. 둘째는 밤에 오줌 누었다며 칭얼거릴 때에 기저귀를 갈면 어김없이 자지러지게 웁니다. 어머니가 오줌 누고 올라치면 더 자지러지게 웁니다. 둘째를 가만히 바라보면, 어머니 발걸음 소리에 더 자지러지게 웁니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한동안 들리지 않으면 이내 마음을 접는 듯하다가,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방으로 들어오는구나 싶으면 새삼스레 자지러지게 웁니다.

 

 오늘은 둘째 아이 울음소리가 첫째 아이를 깨우고야 맙니다. 첫째는 밤에 오줌을 누고 나서 잠자리에 누웠으나 꿈누리로 찾아가지 못합니다. 첫째 아이는 얼마나 오래 잠을 다시 들지 못하며 밤을 보내야 할까요.

 

 시골집 밤은 깊고, 밤에 깊이 잠들지 못하면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지 못하는데, 모두들 아침에 느즈막하게 일어나면, 다들 찌뿌둥할 뿐더러 아침인지 낮인지 헷갈리는 하루가 되고 마는데.

 

 방에 불을 넣습니다. 보일러가 한 차례 돌아가면 끄려고 아버지는 잠자리에 아직 눕지 않습니다. 방바닥이 차츰 따뜻해지고 방에 따스한 기운이 조금씩 돕니다. 깊은 밤에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원자력발전소가 뻥 하고 터지며 마을이 송두리째 날아간 일본땅 후쿠시마를 생각합니다. 후쿠시마라는 곳에서 한국은 얼마나 떨어졌나. 후쿠시마에서 일본 오키나와는 얼마나 떨어졌나. 방사능은 바닷물을 타고 한국으로도 스며들어, 이제 한국에서 잡는 조개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도 하는데, 조개를 먹어서 안 된다면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를 잡아서 먹을 수 없다는 소리요, 물고기뿐 아니라, 김이며 파래며 온갖 바닷말 또한 먹을 수 없다는 소리가 되나.

 

 무얼 먹어야 하나. 어디에서 먹을거리를 얻어야 하나. 원자력발전소가 이웃나라에서 하나 터졌기에 이제서야 걱정하는 셈인가, 한국땅 곳곳에 원자력발전소가 버젓이 있으니, 나는 먼먼 예전부터 걱정해야 했던 셈인가. 그러면, 나는 무슨 일을 어디에서 하며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대목부터 어린 나날에 차근차근 익혀야 하지 않았던가.


- “어머, 맛있겠다.” “괜찮다면, 하나 먹을래요?” “엇! 그래도 돼요? 잘 먹겠습니다아∼. 옛날에 자주 먹었는데.” “하나 더 먹을래요?” “아저씨, 얻어먹기만 하면 미안하니까 내 계란말이 좀 먹을래요?” (17쪽)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였기에 먹고 입으며 자는 일을 생각하지 않거나 배우지 않았나 헤아려 봅니다. 내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더라도, 먹고 입으며 자는 일을 앞으로 어떻게 마련해서 누려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하거나 스스로 찾아 배워야 하지 않았나 헤아려 봅니다.

 

 어린 나날 학교나 집이나 둘레에서 가르치거나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도,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 스물이 넘고 서른이 넘었다면, 이제라도 내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일구는 길을 생각할 노릇 아닌가 싶습니다.

 

 가게에 가서 돈을 치르면 내가 심거나 거두거나 일구거나 낚거나 캐거나 손질하지 않더라도 온갖 곡식과 푸성귀와 물고기와 뭍고기를 얻습니다. 곧, 돈을 잘 벌면 먹는 걱정·입는 걱정·자는 걱정이란 없습니다. 나는 어린 나날부터 오래도록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소리를 내내 들으며 이러한 삶에 익숙하게 지냈습니다. 스스로 지어서 먹고, 스스로 마련해서 입고, 스스로 집을 지어 돌보는 아름다움과 보람과 땀과 눈물과 웃음을 배우거나 듣거나 헤아리지 못하며 지냈습니다.

 

 나는 목숨으로 움직이는 사람인데, 왜 목숨보다 목숨 아닌 돈과 일거리를 배워야 했을까요. 나는 내 목숨을 스스로 돌보거나 아끼는 길을 왜 찾아 듣거나 찾아 배우거나 찾아 살아내지 못하며 오늘에 이르렀을까요.


- “여어! 어제의 카레 먹으러 왔어요.” “미안. 방금 다 팔렸어요.” “뭐야, 기대하고 왔는데.” “죄송해요. 에리카가 많이 먹는 바람에.” “?!” “진씨가 올 걸 알고는 있었는데, 이 아가씨가 워낙 잘 먹다 보니 말릴 수가 없었어요.” (29쪽)
- “나폴리탄 주세요.” “입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요.” “맛있는 건 아니지만, 먹고 싶어지는 맛이거든요.” (127쪽)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생각합니다. 어제까지는 배우지 못했고, 어제까지는 옳게 살아내지 못했으면, 오늘부터 배우면서, 오늘부터 찬찬히 옳게 살아갈 길을 찾으면 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살아갔거나 다른 살림을 꾸렸으면 내가 이렇게 시골마을 작은 보금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리려 했겠느냐고, 이렇게 좋은 시골마을로 살림을 옮길 수 있었으니 이곳에서 좋은 흙삶과 집숲이란 무엇인가를 가만히 되뇌며 길찾기를 하자고 생각합니다. 살림집하고 맞붙은 일흔 평 빈터에 흙을 알맞게 부어 씨앗 심어 푸성귀 기르는 길을 알뜰히 걷자고 생각합니다.

 

 흙은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얻은 흙은 어떻게 골고루 펴야 할까. 아직 1월인데 1월부터 씨앗을 심으면 어떻게 될까. 이랑과 고랑은 어떻게 낼까. 물골은 어디로 빠지도록 낼까. 아직 씨앗을 심기 이르다면, 어린나무 얻어서 심기에도 이를까.

 

 우리가 이 집으로 들어올 무렵 집 안팎으로 쑥이 저절로 자랐는데, 봄을 맞이하면 또 온갖 곳에서 쑥이 마음껏 자라려나. 집안 뜰과 땅뙈기에서 나는 쑥을 즐거이 뜯어 즐거이 먹으면 어떤 맛이나 느낌일까.


- “어째서 낫토 국물은 안 먹는 겁니까?” “?! 달아서 안 좋아하거든요. 당신은?” “저는 국물 좋아하는데요.” “그래요. 다음엔 간장으로 먹어 봐요. 그럼.” (76쪽)
- ‘부부싸움 덕에 투쟁 본능이 되살아난 료마는 링으로 돌아갔다. 기술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는 평판이다. 젖을 먹이면서 링에 선다고 한다.’ (154쪽)


 아베 야로 님 만화책 《심야식당》(미우,2008) 1권을 읽습니다. 깊은 밤에 문을 열어 새벽이 될 무렵 문을 닫는다는 조그마한 밥집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입니다.

 

 이곳 ‘한밤 밥집’을 찾는 사람들은 왜 그토록 늦은 한밤에 밥집을 찾을까요. 늦은 한밤에 잠들지 않고 밥집을 찾아야 하는 까닭이 있을까요. 늦은 한밤까지 돈을 버는 일을 해야 하나요. 늦은 한밤까지 무슨 걱정이나 근심에 시달리는가요. 늦은 한밤까지 사랑을 꽃피우거나 아픔을 달래는가요.

 

 늦은 한밤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이듬날 아침에는 속이 어떠할까요.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하루라면, 이듬날 아침과 낮에는 어떤 삶을 이을까요.


- “집에서 만들 수 있는데.” “남이 해 주니까 좋은 거죠.” (173쪽)


 돌이키면, 나 또한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살아가던 때에는 깊디깊은 밤까지 문을 여는 가게를 찾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밤 한두 시까지는 참 가벼이 술집을 드나들고, 밤 서너 시까지 비틀비틀 걷기 일쑤였습니다. 이러다 집으로 돌아가 이른새벽부터 다시 일어나 하루를 맞이하고, 또 아침과 낮 동안 이럭저럭 일을 끝내고 나면, 다시 되풀이되는 저녁과 한밤.

 

 도시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긴긴 하루를 보내는가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제대로 밤잠을 이루는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도시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딱히 뜻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는 밤에 별을 보아야 할 까닭이 없고, 낮에 하늘을 보아야 할 일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는 밤별이 사라질 만해요. 도시에서는 파란하늘 흰구름이 없어도 될 만해요. 도시에서는 우람한 나무가 숲으로 우거지지 않아도 될 만해요. 도시에서는 개구리랑 잠자리랑 사마귀랑 땅강아지랑 모두모두 사라질 만해요.

 

 풀무치와 베짱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도시에서는 나비들 날갯짓을 볼 수 없습니다. 겨울소리, 봄소리, 여름소리, 가을소리 따로 없습니다. 자동차가 내는 소리와 가게마다 트는 노랫소리와 건물마다 내는 냉난방기 소리만 가득하면 됩니다.

 

 외로워도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는 도시입니다. 슬퍼도 슬픈 티를 낼 자리가 없는 도시입니다. 힘들어도 힘든 다리 쉬었다 갈 터가 없는 도시입니다. 아파도 아픈 몸 누일 길 없는 도시입니다.

 

 돈이 더 있어야 하나요. 경제성장률 숫자가 그리 대단한가요. 국가보안법이 나라를 지키나요. 군대가 평화를 부르나요. 4대강 삽질이 자연을 살리나요. 대학교가 사랑을 가르치나요. 대기업이나 공무원 일자리가 삶을 빛내나요. 자가용으로 빨리 달리면 무엇이 좋은가요. 아이를 낳아 아이하고 어떤 나날을 누리나요.

 

 밤이 없지만, 낮 또한 정작 없는 도시에서, 깊디깊은 밤부터 조용히 문을 열어 왁자지껄 시끌벅적 떠들썩하지 않고 몇몇 사람 살짝 들어와 조용히 술잔이나 밥술을 뜨며 마음을 달랠 조그마한 쉼터마저 없다면, 아마 사람들은 다들 끔찍하게 미치거나 서럽게 돌아버리겠지요. (4345.1.17.불.ㅎㄲㅅㄱ)


― 심야식당 1 (아베 야로 글·그림,조은정 옮김,미우 펴냄,2008.10.1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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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에서 터진 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싸고 말이 많으면서, 정작 한국에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놓고는 우리 스스로 왜 아무 말을 하지 못할까. 안전하느냐 아니냐가 아닌, 왜 원자력발전이어야 하느냐, 여기에 왜 발전소가 있어야 하느냐, 왜 전기를 써야 하느냐, 전기는 어떻게 얻어 써야 하느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어디에서 살아야 하느냐, 왜 살아야 하느냐... 들을 생각할 노릇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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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 녹색평론사 / 2012년 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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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사에서 모처럼 책 두 권 나란히 나오다. 방사능은 전기하고 뗄 수 없는 사이. 전기는 석유하고 뗄 수 없는 사이. 석유는 도시하고 뗄 수 없는 사이. 도시는 정치권력과 경제발전하고 뗄 수 없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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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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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김은하 외 옮김 / 예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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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날이 새롭게 자라는 아이와 어른
 [어린이책 읽는 삶 18] 하이타니 겐지로,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예꿈,2008)

 


- 책이름 :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 글 : 하이타니 겐지로
- 그림 : 츠보야 레이코
- 옮긴이 : 김은하
- 펴낸곳 : 예꿈 (2008.7.25.)
- 책값 : 8500원

 


 하이타니 겐지로 님 글에 츠보야 레이코 님 그림이 어루어진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예꿈,2008)를 다 읽고 덮습니다. 책 겉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온 지 몇 해 되지 않았으나 벌써 판이 끊겨 사라진 까닭이 참 알쏭달쏭하구나 생각하며 가만히 바라봅니다. 문득, 이 책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에는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하며 노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떠오릅니다. 다만, 살짝 스치듯, 아이들이 가위바위보 놀이를 ‘이쿠’라는 어린이 둘레에서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합니다. 이 대목은 이 책에서 그리 대수롭다 할 수 없습니다. 책이름을 가위바위보 놀이를 한다는 투로 붙일 만한 고빗사위가 아니에요. 더욱이, 책 겉에 적힌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들려주는 장애 친구 이야기”라는 작은이름은 더욱 맞갖지 않습니다. 이쿠라는 아이가 여러 차례 수술 받은 가녀린 다섯 살 어린이이기는 하지만,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대서 섣불리 ‘장애 아이’라고 일컬을 수 없어요. 또한, 이 이야기책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가 장애 아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요.

 

 몸이 여리고 아프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다섯 살 어린이 이쿠가 좋은 동무들을 사귀면서, 다른 좋은 동무들이 한결 씩씩하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찾는 예쁜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책이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름도, 작은이름도 모두 내키지 않습니다. 수수한 삶 수수한 믿음 수수한 사랑을 곱게 헤아리는 몸짓으로 “우리 모두 좋은 동무”라든지 “우리 모두 착한 동무”쯤으로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지 않으랴 싶어요.


.. 이쿠를 한참 쳐다봤지만, 손도 발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쿠는 아기였을 때 크게 아팠어요. 그래서 아직은 여러분처럼 말하거나 움직이지 못해요.” … “다섯 살이면 우리랑 같은 초록반 아니에요? 네?” 지로는 보채듯 미유키 선생님 팔을 잡아끌었다. “원장 선생님이 친구가 되어 주라고 했는데 반이 다르면 어떻게 친구가 돼요?” …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의사 선생님이 아직은 이쿠의 몸이 갓난아기와 비슷하다고 하셨대. 그래서 …….” “몸이 갓난아기 같으면 마음도 갓난아기 같나요?” 요시오가 물었다 ..  (17, 19쪽)


 아이들은 웃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울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넘어져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달려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밥을 잘 먹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밥알을 흘려도 예쁩니다. 즐거우니 웃고 슬프니 울어요. 기뻐서 웃고 아파서 울어요. 발밑을 미처 못 보았거나 다리에 아직 힘이 튼튼히 붙지 않았으니 넘어져요. 시멘트나 아스팔트 땅에서는 무릎이 금세 까지거나 갈려 피가 나고, 흙땅에서는 살짝 긁히지만 이내 나아요. 깨진 무릎은 며칠 지나면 아물고, 다친 자리도 곧 새살이 돋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씩씩하게 자랍니다.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무럭무럭 씩씩하게 큽니다. 스무 살 어른은 서른 살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서른 살 어른은 마흔 살 어른으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마흔 살 어른은 쉰 살 어른으로 씩씩하게 자라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늘 지켜보며 저희 나름대로 씩씩하게 큽니다. 어버이는 제 아이들이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언제나 바라보며 당신 나름대로 씩씩하게 자라요.

 

 함께 웃어요. 같이 울어요. 함께 밥을 먹어요. 같이 누워 잠자요. 서로 발을 맞추어 천천히 걸어요. 가장 어린 아이 발걸음에 맞추어 다부지게 걸어요. 가장 여린 아이 발걸음에 맞추다가는, 가장 여린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나란히 걸어요.


.. “아픈 친구가 있으면 골치 아프니? 정말 그럴까?”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골치 아프대요.” “정말 그럴까?” “같이 노래를 부를 수도 없잖아요?” “정말 그럴까?” “같이 놀 수도 없구요.” “정말 그럴까?” … “이쿠는 여러분의 친구이긴 하지만, 여러분과 조금 달라요. 일곱 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병과 한참 싸우고 있거든요.” ..  (23, 25쪽)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면서 어떤 삶길을 걸어갈까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 서른 마흔 쉰 예순이 될 무렵 어떤 삶길을 걸어갈까요.

 

 오늘 하루 어디쯤 선 아이들인가요. 오늘 하루 어디쯤 선 어른들인가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은 밥과 꿈과 잠과 집과 들과 터를 누리는가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얼마나 좋은 밥과 꿈과 잠과 집과 들과 터로 어른들 삶을 북돋우는가요.

 

 더없이 좋은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어른인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가장 사랑할 만한 일에 넋과 얼을 기울이는 어른인지 궁금합니다. 서로서로 아주 흐뭇하고 매우 기쁜 꿈누리를 일구는지 궁금합니다.

 

 여린 아이를 안거나 업듯, 여린 이웃을 안거나 업는 어른인가요. 아픈 아이를 달래며 보살피듯, 아픈 이웃을 달래며 보살피는 어른인가요. 배고픈 아이한테 따순 밥을 차리듯, 배고픈 이웃한테 따순 밥을 나누는 어른인가요.

 

 아이가 다리 아파 더 못 걷겠다는데, 아이가 졸립다고 하는데, 어느 어른이 아픈 아이와 졸린 아이를 못 본 척할 수 있나요. 아이가 아프다는데, 아이가 넘어져서 엉엉 우는데, 못 본 척 지나치는 어른이 있나요. 아이가 배고파서 으앙 하는데, 멀뚱멀뚱 텔레비전만 보는 어른이 있나요.


.. “…… 글쎄, 어딜 보고 있을까나. 그건 할머니도 모르겠다만, 우리 이쿠짱은 지금 온몸으로 꼬마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있을 거야.” “흐∼음.” “여기가 어딘지, 착한 꼬마 친구들이 이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끼고 있을 거야.” 히로시도, 지로도, 요시오도, 치히로도, 아키라도, 세이코도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  (38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과 츠보야 레이코 님이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라는 책으로 아이들과 어른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까 하고 찬찬히 헤아립니다. 나부터 오늘 하루 아이들이랑 옆지기랑 어떤 날을 보냈는가 하나둘 돌아봅니다.

 

 잘 살았을까. 잘 웃었을까. 잘 어우러졌을까. 잘 놀았을까. 잘 사랑했을까.

 

 성적을 매기려는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뿌듯하고 보람차게 하루를 마감하며 기쁘게 눈을 감고 잠들 수 있을까요. 살살 이마를 쓰다듬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새 하루를 기다릴 수 있을까요.


.. 이쿠는 소리 없이 울었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조용히 울고 있었다 … “세이코, 이쿠는 갓난아기가 아냐. 그러니까 아기처럼 대하면 안 돼! 이쿠는 우리 친구잖아.” ..  (41, 44쪽)


 나날이 새롭게 자라는 아이와 어른이라고 느껴요. 어느 날은 한결 빛나듯 새롭게 자라요. 어느 날은 안쓰럽고 딱하게 흔들리거나 기우뚱하거나 자빠지거나 비틀거리며 고단하게 자리에 누워요. 어느 날은 웃음꽃 예쁘게 피우며 조잘조잘 즐거이 노래해요. 어느 날은 시무룩하거나 찌뿌둥하게 이맛살을 징그려요.

 

 그런데,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어 이듬날을 맞이하든, 새날은 똑같이 찾아듭니다. 새 아침은 똑같이 밝습니다.

 

 찡그린 얼굴에도 햇살은 곱게 비춥니다. 찌푸린 이맛살에도 햇살은 곱다시 내리쬡니다. 싱그러운 얼굴에도 햇살은 어여삐 듭니다. 환한 얼굴에도 햇살은 아리따이 흘러들어요.

 

 즐거운 일은 더 즐거이 피워요. 슬픈 일은 찬찬히 슬픔을 털어요. 고마운 일은 더 고마움을 느껴요. 서운한 일은 찬찬히 서운함을 씻어요.


.. 미키의 오른쪽 다리가 의자에 끼어 버린 것이다. 미키는 교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울어댔다. 이쿠는 엉엉 우는 미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느새 이쿠의 큰 눈에도 눈물이 고이더니 똑똑 한 방울씩 떨어졌다. “이쿠는 참 착하구나.” 요시오가 말했다 … 히로시는 이쿠가 탄 휠체어를 꼭 잡고 걸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쿠에게 말했다. ‘이쿠짱, 네가 우리 반에 와서 너무 기뻐. 우리도 좋은 친구가 될 거야. 내가 너를 꼭 붙잡아 줄게.’ ..  (81, 85쪽)


 인권이나 교육이나 복지나 문화로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요. 인권이나 교육이나 복지나 문화는 다른 자리를 살펴야 해요. 아픈 아이한테 더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란 사랑이에요. 배고픈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내미는 일은 사랑이에요. 헐벗거나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은 사랑이에요.

 

 교육을 생각하거나 인권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복지를 누리거나 문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안을 노릇이에요. 믿음이 샘솟는 몸가짐으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할 노릇이에요.

 

 우리 집 살림살이를 비추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교육이라 한다면, 어버이와 아이가 어떠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어떻게 돌보거나 손질하거나 가꾸며 살림을 꾸려야 아름다울까 하는 길을 찾는 일이 되어야 해요. 먹을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하는가를 스스로 찾도록 도와야 비로소 교육이에요.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을 어떻게 느끼며 맞아들여야 하는가를 깨닫도록 이끌어야 비로소 교육입니다.

 

 나는 이제껏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어요.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이니, 아이들을 낳아 살아간대서 아이들한테 제대로 된 삶을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못해요. 나부터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제대로 옳게 배워야 해요. 삶을 배우고, 밥이랑 옷이랑 집을 배워야지요. 먹을거리를 배우고, 사랑을 참다이 느껴야지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착하게 깨달아야 해요. 사랑으로 얼크러지는 사람들 꿈을 곧게 느껴야 해요. 착한 아이들은 착한 삶을 꾸리는 길을 어버이와 어른한테서 씩씩하게 배워 튼튼한 삶길을 걸어야 해요. (4345.1.1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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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39) 설명 1 : 긴 설명은

 

.. 이 글에 대해서도 긴 설명은 하지 않겠다 ..  《이오덕-삶·문학·교육》(종로서적,1987) 138쪽

 

 “이 글에 대(對)해서도”는 “이 글도”나 “이 글을 놓고도”나 “이 글을 두고도”로 다듬습니다.

 

 설명(說明) :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 새 기획안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
     친구의 설명만으로는 문제가 이해되지 않아서 /
     책에는 국어학의 주요 용어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
     신자들에게 교리를 설명하다 / 학생들에게 인수 분해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긴 설명은 하지 않겠다
→ 길게 말하지 않겠다
→ 길게 밝혀 말하지 않겠다
 …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하는 일이 ‘설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마디로 ‘밝혀 말하다’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예 ‘밝혀말하다’를 한 낱말로 삼을 수 있고요. ‘밝혀말하기’처럼 써도 괜찮으리라 봅니다. ‘-말하기’를 뒷가지로 삼으면, ‘새겨말하기-깊이말하기-거듭말하기-가려말하기’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 이야기가 끝나자
 친구의 설명만으로는 → 동무가 해 준 말만으로는
 잘 설명되어 있다 → 잘 풀이되었다
 교리를 설명하다 → 교리를 들려주다
 인수 분해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 인수 분해를 알려주셨다

 

 “밝혀서 말하다”나 ‘밝혀말하다’로 적어도 괜찮고, ‘말하다’나 ‘이야기하다’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자리에 따라서 ‘들려주다’나 ‘알려주다’를 넣기도 하고, ‘풀이하다’를 넣기도 합니다.

 

 이 글을 놓고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 글을 길게 다루지 않겠다

 

 다른 이가 쓴 글이나 책이 어떠한가를 밝히는 자리에서는 ‘다루다’라는 낱말을 넣으면 제법 어울립니다. ‘살피다’를 넣어도 어울리며, ‘살펴보다’도 퍽 어울립니다. (4339.8.24.나무./4341.7.11.쇠.ㅎㄲㅅㄱ)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71) 설명 2 : 설명해 주었다

 

.. 미유키 선생님은 코끝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 채 큰 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  《하이타니 겐지로/김은하 옮김-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예꿈,2008) 60쪽

 

 아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설명’이라는 한자말이 실리리라 생각합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들 또한 ‘설명’이라는 한자말로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풀이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말하’거나 ‘밝히’거나 ‘알리’는 자리에서도 으레 ‘설명’이라는 한자말을 쓰리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다지만, 학교에서는 ‘설명문’을 읽힙니다. 설명하는 글이라서 설명문이라 하지만, 설명이란 풀이하는 일이나 밝히는 일입니다. 쉽게 생각하자면 이야기하거나 말하는 일을 한자말 설명으로 가리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한국에서 한국 어린이한테 한국말을 가르치는 자리에서는 ‘설명문’ 아닌 ‘밝힘글’이라는 이름을 지어 가르쳐야 마땅합니다. 뭉뚱그려 설명문이라 하지 말고, 풀이글·밝힘글·알림글·얘기글이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달리 쓰이는가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옳고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큰 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 큰 소리로 이야기해 주었다
→ 큰 소리로 얘기해 주었다
→ 큰 소리로 풀이해 주었다
 …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이야기해 줄 노릇입니다. 어른으로서 아이가 들려주는 생각을 귀담아 들을 노릇입니다. 서로서로 좋은 생각을 밝히고, 서로서로 기쁜 넋을 알릴 노릇입니다. 아름다운 꿈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울 노릇이에요.

 

 큰 소리로 잘 알려주었다
 큰 소리로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큰 소리로 똑똑히 이야기했다

 

 차근차근 말하면 돼요. 똑똑히 이야기하면 돼요. 잘 알려주면 돼요. 우리들 좋은 터에서 우리들 좋은 넋을 우리들 좋은 말에 담아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주고받으면 돼요. (4345.1.1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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