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보니

 


 새벽 내내 아이들 칭얼거림에 시달리다가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무렵 겨우 잠들었더니, 아침이 밝았다 싶어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열 시. 날이 찌뿌둥하면서 비를 뿌려서일까. 아침이 밝아도 날이 좀 흐려, 열 시나 된 줄 느끼지 못했다. 마침 장날이라 읍내 마실을 하기로 한다. 빨래를 하고 두 아이 옷을 입힌다. 둘째는 아버지가 안고, 첫째는 어머니 손을 잡고 걸린다. 칠 분쯤 기다려 네 식구 군내버스를 탄다. 버스삯 3000원.

 

 집을 나서기 앞서 둘째는 젖을 조금 먹었고, 읍내로 가는 버스길 20분에 사르르 잠이 든다. 설을 앞둔 대목 장날은 여느 장날보다 복닥인다. 우리는 무얼 사면 좋을까. 우리는 무얼 사서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들고 가면 좋을까. 두 아이 옷가지만으로도 가방이 넘치니 많이 들고 갈 수 없다. 여러 날 곰곰이 생각하며 얘기한 끝에 매생이랑 굴을 사서 갖고 가기로 한다. 매생이 세 뭉치 9000원, 굴 10000원 어치를 산다. 감 여든 알 즈음 든 꾸러미 하나를 15000원 치르고 산다.

 

 읍내 밥집에 들러 천천히 밥을 먹는다. 신을 벗고 들어가서 느긋하게 앉을 수 있는 밥집을 찾느라 삼십 분쯤 걸었다. 처음에는 중국집에 가려 했는데, 버스역과 가까운 데에 있는 중국집에서 우리보고 문가에 앉으라 하기에 도로 나왔다. 아기를 안고 문가 걸상에 어찌 앉나. 그저 빨리 시켜 빨리 먹고 나가기를 바라는 셈일까. 집이 아닌 밖에서 밥을 먹을 때에는 후딱 먹고 후딱 나가고 싶지 않다. 다리도 쉬고 몸도 쉬며 한숨을 돌리고 싶다. 아이들 안고 걸리며 데리고 다니면 얼마나 지치는데.

 

 택시를 타고 돌아갈까 하다가 집으로 갈 적에도 군내버스를 타기로 한다. 두 아이랑 돌아가니 자리에 앉아야겠다 싶어 시외버스역으로 간다. 시외버스역에는 우리처럼 자리에 앉으려고 몰린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다. 나와 둘째가 앉을 자리가 없었는데, 고맙게 자리 내어준 분이 있다. 둘째는 버스에 타기 앞서부터 아버지 품에서 잠들었고, 자리에 앉은 뒤에는 새근새근 고이 잔다. 늘 그렇지만, 읍내에 나올 때이든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이든 군내버스에 아기를 데리고 타는 어버이는 우리뿐이다. 아이와 살아가는 젊은 어버이라면 아마 모두들 자가용이 있겠지.

 

 버스에서 내릴 때에 두 아이는 모두 잠들었는데, 내리고 나서 낑낑 안아 집으로 들어오니 하나씩 잠을 깬다. 쳇. 집에서 더 잠들어 주면 좀 좋니. 쳇쳇. 아버지는 아주아주 졸립고 뻑적지근하다구. (4345.1.1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붉은 소파 - 세상에 말을 건네다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지음, 민병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사진으로 만나는 사람들한테서
 [찾아 읽는 사진책 53]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붉은 소파》(중앙books,2010)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님은 ‘붉은 소파’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이렇게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님 사진이 어떠하고, 당신이 사진과 영상으로 담은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런 얘기 저런 소식을 듣는다 하더라도 막상 한국말로 옮겨진 사진책이 없다면 어떠한 작품으로 어떠한 사진이야기를 엮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지난 2010년 6월에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님 사진책 《붉은 소파》(중앙books)가 한국말로 나와 무척 반갑게 장만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님뿐 아니라, 온누리 곳곳에는 남다르며 빛다른 결로 사진이야기 엮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한국땅에서만 살아간다면 이런저런 수많은 온누리 사진흐름을 알거나 읽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아주 좁게 바라보고 아주 작은 대목만 헤아릴 테지요. 적어도 이웃 일본으로는 찾아가서 사진책을 살피거나 사진잔치를 돌아볼 수 있어야 사진흐름을 읽을 만하달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찾아가서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잔치를 돌아보아야 비로소 온누리 사진흐름을 읽었다 할 만하달 수 있어요.

 

 《붉은 소파》를 찬찬히 읽습니다. 먼저 사진을 읽고, 다음으로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님은 당신이 사진과 영상으로 담은 사람들한테 몇 가지를 똑같이 묻는데, 사람들이 이 물음에 모두 대꾸했는지, 몇 가지만 대꾸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사진 왼편에 적힌 이야기를 보면, 모든 물음에 찬찬히 대꾸한 사람이 있지만, 몇 가지만 대꾸한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한 가지 놀랍다면, 다시 태어난다 했을 때에 마하트마 간디라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 셋이나 돼요.

 

 폭신폭신한 걸상에 앉도록 하고서 이야기를 나누기에 사진으로 찍힌 사람들이 한결 느긋하면서 스스럼없이 말문을 열 수 있는가 하고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폭신폭신한 걸상이 아닌 딱딱한 걸상이라면, 이를테면 나무걸상이나 돌걸상이나 쇠걸상이라면 어떠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걸상이 다르대서 다른 이야기가 나오겠느냐 싶으면서, 걸상이 다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을 사진관(스튜디오)으로 불러서 사진으로 찍을 때랑, 사람들은 내 집으로 불러서 사진으로 찍을 때랑,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때랑, 어느 자리나 똑같지는 않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찍고 싶은 모습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들이 조금 더 느긋하며 홀가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라는 사진쟁이라면 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하겠지요. 사람들한테서 ‘무언가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어 ‘무언가 다른’ 빛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면, 이와 같이 사진을 찍을 만한 자리를 만들겠지요. 느긋하거나 홀가분한 자리를 마련한대서 더 대단하지 않습니다. 딱딱하거나 남다르거나 빛다르거나 무언가 새롭다 싶은 자리를 만든대서 더 놀랍지 않습니다. 어떠한 자리를 마련하든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적바림할 때에 사진이 됩니다.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님은 굳이 ‘붉은 소파’가 없더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애써 ‘붉은 소파’를 들고 다니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러 ‘붉은 소파’를 들고, 추운 땅과 더운 땅 어디이든 찾아갑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멧골이든 ‘붉은 소파’와 함께합니다. 참 재미납니다. 그래요, 재미나게 살아갑니다. 사진으로 찍힐 사람들은 저 재미난 사진쟁이 앞에서 말문을 틉니다. 굳이, 애써, 부러 찾아온 사진쟁이를 마주하면서 참 재미나다고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이녁을 찾아온 사진쟁이가 참 뭔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느끼는구나 싶어요.

 

 《붉은 소파》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른바 더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이름나다’는 사람이 있고, 그닥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일이 없을 ‘이름 안 났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느 사람이 있을 테고, 수수한 사람이 있을 테지요. 잘난 사람이 있을 테며, 알려진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나,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어요. 이 사람 가운데 누가 ‘여느’ 사람이고 누가 ‘대단한’ 사람이며 누가 ‘수수한’ 사람이고 누가 ‘놀라운’ 사람인지 알 수 없어요. 그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나와 ‘똑같은’ 목숨을 누리는 사람이요, 나와 ‘똑같이’ 사랑스러운 나날을 누리는 사람이에요.

 

 사진으로 만나는 사람들이기에 더 적바림할 만한 값이 있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담기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더 적바림할 만한 값이 없지 않습니다.

 

 내가 내 아이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서 사진으로 담아도 인류학이 됩니다. 내가 이제껏 나한테 낯선 길손 한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를 들은 다음 사진으로 담아도 인류학이 됩니다. 내가 잘 안다고 여기는 사람을 사진으로 담든, 내가 영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을 사진으로 담든, 언제나 사람 이야기예요.

 

 내가 누군가를 안다면, 나는 이 누군가를 얼마나 잘 밝히는 앎으로 이이를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내가 누군가를 모른다면, 나는 이 누군가를 얼마나 못 보여주거나 얼마나 못 담는 사진을 찍을까요.

 

 사람들이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람들이 사람들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습니다. 사람들이 사람들 이야기를 눈여겨봅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마귀가 알을 낳습니다. 연어가 알을 낳습니다. 거미가 알을 낳습니다. 사람이 아기를 낳습니다. 짐승이 새끼를 낳습니다. 모두들 제자리를 찾아 목숨을 잇습니다. 밤을 적시는 비가 내리고, 새벽을 밝히며 동이 틉니다.

 

 ‘붉은 소파’는 바람을 맞으며 달립니다. ‘붉은 소파’는 바닷물에 젖고 빗물에 젖으며 냇물에 젖습니다. 어린이 궁둥이를 품에 안던 ‘붉은 소파’는 할머니 궁둥이를 품에 안습니다. 독일에서 노르웨이를 거쳐 아이슬란드를 지나 프랑스를 밟고 영국을 스칩니다. 어쩌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중국이나 페루나 칠레나 볼리비아도 거칠는지 몰라요. 스리랑카나 티벳이나 몽골이나 부탄이나 네팔을 지날는지 몰라요. 일본에서는 정치꾼을 앉힐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일꾼을 앉힐 수 있을까요. 중국에서는 공장 일꾼을 앉힐 수 있을까요. 페루에서는 누구를 앉히고 스리랑카나 베트남에서는 누구를 앉힐까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사랑할 만한 보금자리를 찾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사랑할 만한 짝꿍을 사귑니다.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사랑할 만한 삶을 누립니다. 사진이 사람을 담는다 한다면, 사진으로 담기는 사람들 이야기란 오직 하나, 사랑이 되겠지요. 사랑은 가까운 곳에도 있고 먼 곳에도 있습니다. 사랑은 이곳에도 있고 저곳에도 있어요. 사랑은 나한테도 있고 당신한테도 있습니다. (4345.1.19.나무.ㅎㄲㅅㄱ)


― 붉은 소파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사진,민병일 옮김,중앙books 펴냄,2010.6.28./198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늘 하는 일, 빨래

 


 둘째 아이가 새벽 두 시 십 분에 깬다. 새벽 두 시 오십 분에 똥을 눈다. 새벽 세 시 사십 분에 잠이 든다. 새벽 두 시 오십오 분에 기저귀를 갈고 밑을 씻긴다. 새 기저귀를 채우고는 똥기저귀를 빨래한다. 똥기저귀 빨래하는 김에 지난밤 나온 오줌기저귀 두 장을 함께 빨래한다.

 

 똥기저귀는 똥기를 뜨신 물로 씻고 애벌비누질 한다. 밤에 보일러를 한 차례 돌렸으니 뜨신 물 잘 나온다. 오줌기저귀는 뜨신 물 살짝 부은 다음 비누질을 한다. 그러고서 오줌기저귀 두 장을 대야에 담아 헹구고, 이렇게 헹군 물로 똥기저귀에 부어 두벌비누질과 세벌비누질을 한다. 오줌기저귀는 새 물로 헹구니 차츰 빨래가 끝나고, 똥기저귀는 닷벌비누질을 할 즈음 똥기가 거의 모두 사라진다.

 

 이윽고 오줌기저귀를 일곱 차례 헹구니 헹굼물이 말갛다. 여덟 차례 헹구고 나서 꾹꾹 짜고 턴다. 오줌기저귀 한 장이 더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빨기로 하고, 여덟째 헹굼물을 담은 작은 대야에 넣는다. 이제 남은 새 물로 똥기저귀를 헹군다.

 

 모처럼 밤똥 빨래를 하다가 생각한다. 첫째 아이 때에는 밤똥 빨래를 꽤 자주 했을 뿐 아니라, 밤오줌 빨래 또한 참 자주, 아니 날마다 여러 차례 했다. 둘째는 아직 돌이 안 되었는데 밤오줌을 몇 차례 누지 않는다. 사내는 가시내보다 오줌을 덜 누기는 덜 누니, 참말 밤에 한결 느긋하다 할 만하다. 그러나,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밤에 칭얼거리기는 둘 모두 똑같다. (4345.1.19.나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12-01-19 08:23   좋아요 0 | URL
빨래 아빠가 하셔요? 와
당연한 육아분담이지만 참 대단하셔요.
쉽지 않은 일이지요

파란놀 2012-01-19 10:07   좋아요 0 | URL
육아분담이라기보다...
옆지기가 워낙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
집일은 다 제가 해요.
그래서... 집살림이 꽤나 엉성하답니다 -_-;;;;;;
 
법정, 나를 물들이다 -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서로 물들이는 어여쁜 삶
 [책읽기 삶읽기 96] 변택주, 《법정, 나를 물들이다》(불광출판사,2012)

 


 흙으로 돌아간 법정 스님을 되새기는 이야기책 《법정, 나를 물들이다》(불광출판사,2012)를 읽습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비우기(무소유)’를 말하지 않았다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법정 스님은 ‘함께 살아가기’를 말했다는 줄거리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 “법정 스님이 신념을 가지고 말씀하셨어요. 문화, 사회, 역사를 봤을 때 종교 목적이 종단 구성일 수는 없다고.” ..  (21쪽/장익)
.. 1982년 전시회 때문에 귀국한 방혜자 선생. 고국에 돌아와서 흙도 밟아 보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 위만 걷다가 돌아가게 되었다며 후배에게 하소연했다 ..  (53쪽/방혜자)


 곰곰이 헤아리면, ‘비우기’란 ‘함께 살아가’는 밑거름입니다. 내 가진 것을 비우거나 내려놓을 때에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내 가진 것을 비우거나 내려놓아야 비로소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 이름값을 움켜쥐면서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내 돈을 거머쥐면서 이웃을 만나지 못합니다. 내 콧방귀를 높이면서 살붙이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칭얼대는 아이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모든 아이들한테 어머니입니다. 이녁이 아이를 낳기 앞서 변호사였다든지 회계사였다든지 의사였다든지 대통령이었다든지 시장이었다든지 하는 이름값은 부질없습니다. 아이는 그저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어린이하고 손을 잡고 노는 아버지는 모든 아이들한테 아버지입니다. 이녁이 아이들과 복닥이기 앞서 공무원이었다든지 군인이었다든지 회사원이었다든지 흙일꾼이었다든지 하는 이름은 덧없습니다. 아이는 그예 아버지하고 놀 뿐입니다.

 

 어버이가 돈이 많대서 아이들이 기뻐할 까닭이 없습니다. 흙을 일구려고 호미를 쥔 사람이 국회의원이건 택시기사이건 흙이 달리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햇살은 청소 일꾼한테도 비추고, 큰회사 사장실에도 비춥니다. 바람은 바닷가 고기잡이한테도 불고, 초등학교 교무실 창문으로도 붑니다.

 

 스스로 돈과 이름과 힘을 비우거나 내려놓아야 비로소 눈을 밝힙니다. 눈을 밝힐 때에 마음을 밝히고, 마음을 밝힐 때에 사랑을 밝힙니다.


.. “서울 살았으면 얼마를 더 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건 가상이잖아요. 이루어지지 않은, 생각 속 손해는 손해가 아니에요. 서울 사는 시간을 줄여서 큰 병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보면 시골 가길 얼마나 잘했어요.” ..  (127쪽/이계진)
.. 노일경 목사는 시골교회 목회를 할 때, 가는 곳마다 있는 서낭당을 보면서, ‘개신교에서는 서낭당을 왜 죄악이라며 깎아내리고 무시할까?’ 갸웃거렸다. 민간 무속문화인 서낭당은 누군가에게 기대고자 하는 마음일 뿐인데, 그 대상이 나무든 돌이든 짐승이든 사람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조심스런 마음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자기들만이 유일하다고 얘기하며 종교를 빌미로 권력을 휘두르고 ..  (200쪽/노일경)


 누구한테서 무얼 배워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을 때에는 못 배운다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이기에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누구라서 못 배우지 않습니다.

 

 훌륭하다는 스승이나 제자란 따로 없습니다. 모자라다는 스승이나 제자 또한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같은 사람이면서, 늘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프랑스로 배우러 떠나야 그림을 배우지 않습니다. 미국으로 배우러 떠나야 의학을 배우지 않습니다. 쿠바로 배우러 떠나야 생태나 공동체를 배우지 않아요. 티벳으로 배우러 떠나야 불교나 깨우침을 배우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재주를 가르치겠지요. 무슨무슨 기술이라 하는 이런 재주와 저런 재주를 가르치겠지요. 교과서를 읽으며 지식이나 정보를 얻겠지요. 교과서를 잘 익혀 시험점수 잘 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무슨 재주가 있기에 훌륭하다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술이 빼어나대서 훌륭하다 말하지 않아요. 시험점수 높으니 똑똑하거나 훌륭하다 말하지 않습니다.

 

 싱싱 내달릴 수 있기에 자동차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계를 잘 만지작거리기에 기술자가 아닙니다. 예술작품을 빚기에 예술쟁이가 아니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이 있을 때에 쟁이가 되고 장이가 되며 꾼이 돼요.


.. 법정 스님에게 조선대 법대에 들어갔다고 말씀드리니, 스님은 “법학을 하는 데 왜 사회학이 중요하고, 정치학이 중요하고, 심리학이 중요한지 아느냐? 그 기반 위에 법이 있기 때문이다. 바탕을 닦지 않고, 법학만 한다면 그저 시험공부일 뿐인 죽은 공부다. 특히 철학책은 꼭 읽어야 한다. 사유와 성찰이란 커다란 물줄기에서 법학은 새 발에 난 피일 뿐이다. 무식한 놈이 되지 않으려면 폭넓게 사유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씀했다 ..  (224쪽/문현철)
.. “제가 출가하는 봄에 불일암을 짓기 시작해서 계를 받는 날 낙성식을 했으니, 불일암과 제 출가 나이가 똑같아요. 그때 촛대처럼 가는 후박나무 묘목을 심었어요. 불일암에 갈 때마다 후박나무를 만지며 숨결도 느껴 보는데, 그 가냘팠던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서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요.” ..  (287쪽/현장)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 나오는 사람들은 법정 스님을 떠올리면서 한결같이 이야기합니다. 당신들이 그닥 거룩하거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당신들이 만나면서 알고 지낸 스님 한 분은 ‘우상’이나 ‘거룩한 님’으로 섬기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모두 같은 사랑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와 누군가가 서로 좋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만난다면 누군가와 내가 좋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지만, 웃물이든 아랫물이든 같은 물이에요. 골짝물도 냇물도 바닷물도 똑같이 물이에요. 빗물도 우물물도 샘물도 나란히 물입니다.

 

 흐르는 자리가 조금 다르겠지요. 선 자리가 살짝 다르겠지요. 모양과 빛깔과 내음이 저마다 다르겠지요.

 

 흐르는 자리가 달라 모두 예쁜 물이 됩니다. 선 자리가 달라 서로 고운 물이 됩니다. 모양과 빛깔과 내음이 이래저래 달라 한결같이 맑은 물이 됩니다.

 

 법정 스님은 여러 사람들을 물들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법정 스님을 물들였습니다. 서로 즐겁고 기쁘게 물들이면서 함께 살았습니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따스하고 너그러이 물들였습니다. (4345.1.19.나무.ㅎㄲㅅㄱ)


― 법정, 나를 물들이다 (변택주 씀,불광출판사 펴냄,2012.1.5./1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하는 글쓰기

 


 지식을 담아 쓰는 글은 지식으로 읽습니다. 지식으로 읽는 글은 내 머리에 지식으로 쌓입니다. 정보를 담아 쓰는 글은 정보로 읽습니다. 정보로 읽는 글은 내 머리에 정보로 담깁니다.

 

 사랑을 담아 쓰는 글은 사랑으로 읽습니다. 사랑으로 읽는 글은 내 가슴에 사랑으로 뿌리내립니다. 꿈을 담아 쓰는 글은 꿈으로 읽습니다. 꿈으로 읽는 글은 내 가슴에 꿈으로 스며듭니다.

 

 비판을 담아 쓰는 글은 비판으로 읽습니다. 비판으로 읽는 글은 내 눈길에 비판으로 자리잡습니다. 비평을 담아 쓰는 글은 비평으로 읽습니다. 비평으로 읽는 글은 내 손길에 값을 따지는 얼룩으로 물듭니다.

 

 미움을 담아 쓰는 글은 미움으로 읽습니다. 기쁨을 담아 쓰는 글은 기쁨으로 읽습니다. 짜증을 담아 쓰는 글은 짜증으로 읽습니다. 웃음을 담아 쓰는 글은 웃음으로 읽습니다. 아픔을 담아 쓰는 글은 아픔으로 읽습니다. 땀방울 담아 쓰는 글은 땀방울로 읽습니다.

 

 나는 내 삶을 담으며 글을 씁니다. 나는 내 삶을 비추며 글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을 되새기면서 하루하루 맞이합니다. 내 삶을 고운 사랑으로 알뜰히 빛내고 싶다면, 나는 언제나 내 온 사랑을 그득그득 싣는 글을 아름다운 넋으로 즐거이 쓸 노릇입니다. (4345.1.18.물.ㅎㄲㅅㄱ)

 

 

 

 

 

 

 

 

 

 

 

 

 

드디어

사랑하는 글쓰기

다음 책이 나왔는데

언제쯤 책방에 들어갈까...

기다리고 기다린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2-01-18 11:47   좋아요 0 | URL
지난번 말씀하신 책, 나왔나 찾아보니 아직이네요..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초조하고도 가장 즐거운거 같아요. ^^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파란놀 2012-01-18 12:18   좋아요 0 | URL
아마 금요일쯤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야 설을 앞두고 주문을 받을 테니까요 @.@
이구궁~

stella.K 2012-01-18 14:47   좋아요 0 | URL
오, 책이 또 나오는군요.
참 부지런도 하십니다.
축하합니다.^^

파란놀 2012-01-18 15:38   좋아요 0 | URL
제 일이 이런 일이라서요...
에고고공 ^^;;;;

2012-01-18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9 0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