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드롭스 3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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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할 내가 심는 나무
 [만화책 즐겨읽기 148]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3)》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예전 시골집에서 오늘 살아가는 시골집으로 옮기며 살구나무 두 그루도 파서 옮길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무였으니 옮겨도 될 만하다 싶었는데, 그냥 두고 왔습니다. 아쉽거나 안쓰럽기에 그대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새롭게 살아갈 터에서는 새롭게 누리는 우리 아이들 두 나무 새 씨앗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릴 적 나무를 옳게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듣던 얘기는 많아, 나도 내 나무 한 그루 건사하고 싶었습니다. 예부터 가시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 했어요. 가시내가 무럭무럭 자라 시집을 갈 무렵 오동나무 또한 무럭무럭 자라, 옷장 하나 짤 만큼 우람하게 자란다 하더군요. 그렇다고,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 어른들이 오동나무 심는 모습은 못 보았어요. 더 먼 옛날, 사람들이 흙에 기대어 흙집 짓고 흙밥 먹던 때에나 오동나무를 심었다 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그러면 가시내 말고 사내가 태어나면 무슨 나무를 심나요?’ 하고 물으면, 딱히 무어라 말이 없습니다. 사내가 태어날 때에 사내더러 아끼거나 사랑할 만한 나무를 굳이 어느 한 가지로 삼지는 않았다고 할까요.

 

 


- “음, 그러니까, 린 학교 입학 기념으로 나무를 심는 거야.” “기념.” “그러니까, 추억 같은 거지.” … “난 비파가 좋아!” “비파?” “응! 이거! 급식 때 나온 비파 씨앗이야.” “씨앗을, 심겠다고?” “비파 맘대로 먹게.” (11, 14∼15쪽)
- “야, 코우키! 놀고만 있으면 생활 시간 끝나버리잖아! 빨리 앉아서 그림 그려! 쟤네들 따라서 딴짓 하면 안 돼!” (152∼153쪽)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며 늘 ‘내 나무’는 어떤 나무로 심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 집도 내 땅도 없는 주제라 할 테지만, ‘내 나무’를 꿈꾸었습니다. 오동나무? 감나무? 배나무? 이런 나무 저런 나무를 떠올립니다. 그러다가 이내 입시지옥 생각으로 빠지며 나무 생각을 잊습니다. 한창 학교 수업을 받거나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하다가 나무를 생각하곤 했는데, 내 꿈생각은 오래 갈 수 없었습니다.


  2008년에 첫째가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도시에서 살림집을 거느리느라 ‘내 나무’는커녕 ‘아이 나무’조차 바라지 못합니다. 2011년에 둘째가 태어납니다.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 세 식구가 시골로 살림을 옮겼기에, 이제 세 식구 나무를 생각할 만합니다. 먼저 ‘두 아이 나무’를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우리 시골집을 떠올리도록 할 만한 나무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한 끝에 어린 살구나무 두 그루 마련해서 마당 가장자리에 심었어요. 그런데 어린 살구나무 두 그루 심고 나서 여섯 달 뒤에 새터로 옮깁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커서 어른이 될 무렵 ‘우리 집은 살구나무 두 그루 예쁘게 자라는 집’이라 말하고 싶었으나, 이 꿈이 깨집니다. 이 꿈이 깨지니, 딱히 살구나무까지 파내어 새터로 옮기고 싶지 않더군요.

 


- ‘솔직히 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딱히 위험하지도, 멀지도 않은 길을 린이 걸어다니는 것뿐인데.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유치원에 혼자 걸어서 다녔고, 그것도 린보다 먼 거리였던데다가 자전거 타고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했을 정도였는데.’ (51쪽)


  오늘 살아가는 우리 시골집은 여러 나무가 함께 살아갑니다. 이 시골집에서 예전에 살던 홀로 남은 할머니하고 어깨동무하던 나무들입니다. 딸아들 모두 도시로 보내고 시골에 남은 할머니는 나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후박나무하고 동백나무하고 감나무하고 무슨 이야기를 속삭였을까요. 뒤꼍 뽕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매화나무와 옻나무와 탱자나무와 모과나무하고는 어찌저찌 이야기꽃 피웠을까요.


  봄을 맞이한 나무들이 새잎을 틔우고 새꽃을 피울 때, 곁에서 나뭇가지와 잎사귀와 꽃망울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을 건넵니다. 참 예쁘구나, 참 곱구나, 참 좋구나. 너희는 어쩜 이리도 어여쁜 꽃과 푸른 잎을 달며 튼튼하게 잘 자라니.


  후박나무 꽃봉우리 터질 때, 둘째를 번쩍 안아 휘휘 위로 던져 올리며 후박꽃 내음을 맡도록 했습니다. 좋은 마음 고운 생각 맑은 꿈을 서로서로 싱그러이 북돋우며 이곳에서 다 함께 즐겁게 살자고 바랍니다.


  문득, 옛 생각 하나 떠오릅니다. 국민학교 다니던 무렵인데, 내 나무 한 그루 심을 데 없던 도시였지만, 길과 골목마다 모든 아이들이 제 이름을 걸고 나무 하나 심도록 할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꼭 멀디먼 멧자락을 찾아가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보금자리 이루어 살아가는 곳에서 예쁘게 심고 예쁘게 돌보면 넉넉하리라 생각했어요. 메마른 도시라 한다면, 푸른 기운 넘실거리며 사랑스러운 도시가 되도록 아이들이 새롭게 나무를 심어 스스로 ‘내 나무’를 돌보고 사랑하도록 하면 좋으리라 꿈꾸었어요. 이렇게 하면, ‘내 나무’를 돌보던 아이들이 커서 고향을 떠난다 하더라도, 어릴 적 돌보던 ‘내 나무’를 그리며 고향을 찾아갈 테고, 나중에 아이를 낳아 아이들 손을 잡고 어린 나날 ‘내 나무’ 우람하게 자란 모습을 올려다보며 굵직한 줄기에 온몸을 맡기며 나무내음을 맡을 수 있어요.

 

 


- “박스를 다루는 업무는 우리 회사에서 누구나 항상 하는 일입니다. 바쁠 때는 부장님도 상품을 포장하고 짐을 나르기도 합니다. 음, 뭐, 확실히 지루한 업무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건 단순작업이 아닙니다. 고객에게 가는 출고, 고객에게서 오는 반품, 거래처에서 오는 입고, 거래처로 보내는 출고, 촬영용 샘플, 회의용 샘플, 겉보기에는 똑같은 갈색 박스들이지만, 내용물의 의미는 제각각 다릅니다.” (86쪽)
- “으이그 이것아! 여기 일은 여자들한테 무리야.” “어머! 요새는 모집공고에 성별 구분 하면 안 된다고요!” “여자라도 남자 못지않게 팔힘이 있고, 피부 같은 거 신경 안 쓰면 상관없어.” (95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08) 셋째 권을 읽으며 자꾸자꾸 나무 생각이 떠오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둘레 어른들이 나무 이야기를 자꾸자꾸 되새겨 주니 참 부럽도록 좋겠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나무를 생각하고 나무를 그리며 나무를 바라보며 자라는 아이는 언제나 나무 한 그루 소리와 내음과 빛깔과 무늬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겠지요. 나무를 이루는 작은 씨앗을 생각하고, 작은 씨앗으로 큰 나무 이루어질 앞날을 그리며, 크게 자란 나무에서 다시 얻을 씨앗을 바라는 아이는, 늘 좋은 사랑과 착한 믿음을 고이 건사하겠지요.


- ‘슬프도다.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번다. 애 키우려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수입도 준다. 다들 대체 어떻게 잔고를 맞추고 있는 거지? 내 경우엔 확실히 월급이 줄긴 했지만, 입사 9년차 기본급은 챙겨 받고 있으니까, 린 하나쯤이야 별 문제 없이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엄마 혼자 버는 집은 사정이 어떨까?’ (119쪽)
- ‘입으로는 투덜대지만, 이 녀석들은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린의 어머니처럼 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123쪽)

 

 


  나무 한 그루는 어미나무가 맺은 씨앗이 흙에 떨어져 새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사랑으로 맺은 씨앗이 얼크러져 새로 자랍니다. 씨앗 한 알에는 온누리 뭇사랑이 깃듭니다. 씨앗 한 알은 지구별을 아름다이 어루만집니다. 씨앗 한 알에서 새 삶이 열리고, 씨앗 한 알부터 새 이야기 펼쳐집니다.


  나무와 살아가는 아이는 나무와 함께 꿈을 꿉니다. 아이를 곁에서 바라보며 무럭무럭 크는 나무는 아이와 함께 사랑을 맺습니다. 봄을 맞고, 여름을 누리며, 가을을 즐기다가는, 겨울을 기다립니다. 봄에는 봄 이야기를 맺고, 여름에는 여름 이야기를 피우며, 가을에는 가을 이야기를 엮다가는, 겨울에는 겨울 이야기를 일굽니다.


- “린. 네가 키운 용담꽃 갖고 가면 할아버지도 좋아하시겠지만.” “그치? 그치? 그렇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네가 오는 거 자체를 제일 좋아하실 거야. 분명히. 그게 1위야.” (169쪽)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많지 않다. 외할아버지 집은 외삼촌 집으로, 내 집은 나와 린의 집으로, 변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208∼209쪽)


  어떤 나무를 어디에 어떻게 심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살림을 꾸릴 때에 내 하루가 즐거울는지 생각합니다. 내 둘레 어떤 나무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생각으로 사랑하거나 아낄 때에 내 꿈이 빛날는지 헤아립니다.


  나한테서 좋은 생각이 솔솔 퍼져 내 둘레 나무들한테 스며듭니다. 내 둘레 나무들한테서 좋은 내음이 살살 퍼져 내 몸으로 깃듭니다. 손바닥을 나무줄기에 댑니다. 볼을 나뭇잎에 댑니다. 손가락을 꽃잎에 댑니다. 이마를 나무열매에 댑니다. 콩닥콩닥 뛰는 숨소리를 느낍니다. 콩닥콩닥 노래하는 숨결을 주고받습니다.


  신나게 들길을 걷다가 우뚝 서서 두 발바닥으로 지구별 숨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기쁘게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살짝 멈추어 두 발바닥으로 지구별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할 사람은 곁에 있습니다. 사랑할 나무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4345.5.14.달.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3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08.12.2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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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머리 씻기는 어린이

 


  그리 크지 않는 통에 두 아이가 나란히 들어가서 씻는다. 한 아이가 들어가 다리 뻗고 씻을 만한 통인데 두 아이가 좁은 틈바구니에서 살을 부비며 함께 씻는다. 둘째가 얼른 스스로 자라 제 다리로 우뚝 서며 걸어야 비로소 더 큰 통에서 둘을 함께 씻기자 생각한다. 그때에는 한여름 물놀이를 마당에서 더 큰 통에서 즐길 수 있을 테지. 다섯 살 누나는 두 살 동생 등도 씻어 주고 배랑 머리도 씻어 준다. 저희 아버지가 동생을 씻기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 결 그대로 씻긴다. 나는 두 아이 곁에서 빨래를 하다가 사진 몇 장을 찍는다. 둘째와 첫째가 한참 씻으며 슬쩍 졸린 낌새가 보일 무렵 물기를 닦으며 방으로 들인다. 아이들 씻던 물로 빨래를 헹구려 했으나, 저녁을 차리느라 빨래 헹구기는 건너뛴다. (4345.5.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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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15 18:26   좋아요 0 | URL
ㅎㅎ 따님이 벌써 동생 머리를 감겨줄정도로 컸네요.얼마전에 포대기에 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산들보라 죽 먹다 잠들기

 


  이른아침부터 두 아이와 북적이며 놀리고 다니고 하다가 둘째 죽을 먹이는데, 둘째가 처음 1/4은 잘 받아먹더니 이 다음부터는 악을 쓴다. 둘째가 악을 쓰리라 뻔히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클수록 악을 쓰며 지르는 소리가 대단히 크다. 첫째도 많이 배고파 하기에 첫째 밥상을 차려 주고서 다시 죽을 먹이려 하는데, 이 녀석 둘째가 악을 쓴다. 산들보라야, 네 죽을 1/4 떠먹이는 동안 누나는 배고파도 잘 참고 기다려 주는데, 너는 네 누나 밥을 푸고 국을 떠서 밥상에 올리는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하겠니? 돌을 코앞에 둔 너한테 몇 초 기다리기란 너무 힘들고 괴롭니? 첫째더러 조금 더 기다려 달라 하며 둘째 죽을 마저 먹여야 했을까 생각하며 둘째를 무릎에 누인다. 무릎에 누여 죽을 일곱 숟가락 더 먹인다. 죽그릇 1/3까지 비운다. 이제 둘째는 입술을 더 달싹이지 않는다. 일곱 숟가락까지는 눈은 감고 입술만 달싹이며 꿀꺽꿀꺽 하더니, 깊이깊이 꿈나라로 접어든다. 팔은 축 처지고 살살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 첫째한테 밥 잘 먹으라 말하고는 둘째를 안아 자리에 눕힌다.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나도 밥술을 뜬다. (4345.5.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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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33 : 사연과 얘기

 


편지 뭉치 속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사연이 달랐다. 편지의 주인공들이 자기들끼리도 서로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이흥환 엮음-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삼인,2012) 9쪽

 

  “편지의 주인공(主人公)들”은 “편지에 나오는 사람들”이나 “편지 주인공들”이나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자기(自己)들끼리’는 ‘저희들끼리’로 손보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는 “얘기하는 듯했다”나 “얘기하는 느낌이었다”로 손봅니다.


  한자말 ‘사연’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事緣’은 “일의 앞뒤 사정과 까닭”을 뜻한다 합니다. 다음으로 ‘辭緣/詞緣’은 “편지나 말의 내용”을 뜻한다 해요. 이 보기글에서는 어느 한자말로 썼을까요.


  그런데, ‘사정(事情)’은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뜻하는 한자말이에요. ‘事緣’ 말풀이는 겹말인 셈입니다. ‘내용(內容)’은 “줄거리”를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이모저모 살피면, 한자말 ‘사연’은 어떤 일이 일어난 앞뒤 까닭이나 흐름이나 이야기”를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저마다 사연이 달랐다
→ 저마다 얘기가 달랐다
→ 저마다 삶이 달랐다
→ 저마다 숨결이 달랐다
→ 저마다 속삭임이 달랐다
 …

 

  보기글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앞에 나오는 ‘사연’은 ‘얘기’나 ‘이야기’로 고쳐쓸 때에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얘기’가 다시 나오고, 뒷자리 ‘얘기’는 쓰임새가 다릅니다.


  앞이나 뒤나 ‘얘기’로 적어도 좋습니다. 다만, 앞뒤에 같은 낱말을 넣고 싶지 않다면 찬찬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앞에서는 “삶이 달랐다”나 “속삭임이 달랐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편지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만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나 느낌이 어떠한가를 헤아립니다. 어느 때에는 속삭임이나 속살거림이라 할 테지요. 어느 때에는 숨결이나 목소리라 할 테지요. 어느 때에는 삶이나 꿈이나 사랑이라 할 수 있어요.


  가장 알맞다 싶은 말마디는 내가 가장 슬기롭게 생각을 기울일 때에 얻습니다. 가장 어울린다 싶은 글줄은 내가 가장 생각힘을 빛날 때에 찾습니다. (4345.5.13.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편지 뭉치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삶이 달랐다.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서로 얘기한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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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의 소원 비룡소의 그림동화 116
소피 블랙올 그림, 시린 임 브리지스 글, 이미영 옮김 / 비룡소 / 2004년 3월
평점 :
일시품절


 


 꿈을 키우는 생각과 말과 몸짓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8] 소피 블랙올·시린 임 브리지스, 《루비의 소원》(비룡소,2004)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은 때때로 ‘가르치기’가 될 수 있지만, 거의 모든 때에는 가르치기하고 동떨어지리라 느낍니다. 학교에 보내는 일이란 말 그대로 ‘학교 보내기’이지 ‘가르치기’는 아니니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들은 으레 ‘동무라도 잘 사귀’면 좋겠다고 여깁니다. ‘성적이 잘 나와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다시금 손꼽히는 큰 회사에 돈 많이 받으며 다닐 수 있기’를 바라곤 합니다.


  예나 이제나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 좋다 나쁘다 그르다 옳다 하고 가르자는 소리가 아니라, 학교란 무슨 뜻이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하고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어버이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익히’고 ‘어떤 삶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가 헤아려 봅니다. 동무들과 착하게 서로 어깨동무하는 삶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랄까요. 이웃들을 따사로이 바라보며 내 삶을 아끼고 이웃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학교에서 익힐 수 있기를 바랄까요. 몸과 마음을 한결같이 곱고 튼튼히 돌보는 매무새를 학교에서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랄까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깨끗한 먹을거리를 얻고, 스스로 바느질을 해서 정갈한 옷가지를 얻으며, 스스로 나무를 다듬어 살림집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이어받을 수 있기를 바랄까요.


.. 중국에서 빨간색은 축하의 색이에요. 아이들은 설날에 행운의 돈이 들어 있는 빨간색 봉투를 받고, 신부들은 결혼식 날 빨간색 옷을 입어요. 그런데 루비는 날마다 빨간색 옷을 입겠다고 우겼어요. 엄마가 사촌들처럼 수수한 색 옷을 입혔을 때도, 루비는 새까만 머리에 빨간색 리본을 매곤 했지요 ..  (7쪽)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여느 어른들은 어떤 꿈을 품을까 헤아려 봅니다. 교사가 되기까지 여느 어른들은 대학교를 비롯해 초·중·고등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교사가 되려는 사람한테 대학교와 나라와 정부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교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 때에 ‘교사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교과서 지식을 잘 집어넣을 때에 교사다운가요. 아이들이 삶을 삶다이 꾸리는 길을 스스로 찾도록 돕거나 이끌 때에 교사다운가요. 교과서란 어떤 지식을 담고, 교과서를 빚은 어른들은 어떤 넋이었을까요. 교과서 지식으로 치르는 시험은 아이들 삶을 어떻게 흔들까요.


  이모저모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오늘날 한국땅 학교란 무슨 뜻이거나 무슨 보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며 아이들이 어떤 꿈·사랑·이야기를 배우면서 스스로 좋은 넋과 착한 얼과 참다운 슬기를 빛낼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 남자 애들만큼 공부를 잘 하려면 루비는 훨씬 더 열심히 해야 했어요. 남자 아이들은 공부가 끝나면 자유롭게 놀 수가 있었지만, 여자 아이들은 요리와 집안일을 배워야 했거든요. 사실 엄마들은 여자 아이는 이런 것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여자 아이들은 하나둘 공부를 그만두었어요. 루비만 빼고 모두 그랬지요 ..  (12쪽)

 


  우리 집 두 아이를 학교나 시설에 맡기지 않으면서 내가 더 뛰어나거나 슬기롭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하게 무언가를 가르치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니, 나는 아직 우리 집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얼마나 더 홀가분하게 놀며 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얼마나 더 풀과 흙과 들과 멧자락을 껴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버이 된 내가 얼마나 더 사람답게 살아가는 꿈을 키우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찬찬히 사랑하며 누릴 한삶으로 엮자고 생각합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바쁘면서, 하루하루 즐기자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은 아니고, 아이들이 천천히 씩씩하게 자라면서 저희 삶터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은 생각입니다.


  다만, 어버이로서 내 몸가짐이 이리 흔들리거나 저리 고꾸라지곤 합니다. 이런저런 일로 아이들한테 골을 부리고, 요런조런 일로 나 스스로 더 기쁘게 내 일감을 갈무리하지 못하곤 합니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면서, 아이들 손을 잡거나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거나 품에 안으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나부터 싱긋 웃으면 아이들도 웃고, 나부터 얼굴 찌푸리면 아이들도 얼굴 찌푸립니다. 나부터 노래하면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나부터 풀내음 맡으면 아이들도 풀내음 맡습니다.


  제비집을 올려다보며 날마다 인사합니다. 빨래를 널고 개면서 옷가지 결을 쓰다듬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과 별한테 손을 흔듭니다. 바람이 건드리는 나뭇잎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나 또한 내 삶입니다. 나 스스로 내 나이 마흔이거나 예순이거나 여든이거나 새롭게 느끼며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깨달으면서 새롭게 즐기는 하루입니다.

 


.. 어느 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시를 써 보라고 했어요. 루비는 이렇게 썼지요. “아, 슬프다! 여자로 태어난 이 몸, 그보다 더한 불행은 남자만을 위하는 집에서 태어난 것이다.” ..  (15쪽)


  소피 블랙올 님 그림과 시린 임 브리지스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루비의 소원》(비룡소,2004)을 읽습니다. 빨간 옷을 좋아하는 그림책 ‘루비’는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한집안 다른 사내들처럼 배우기에만 온마음을 쏟을 수 없습니다. 루비는 가시내이기 때문에 사내들과 달리 집안일을 함께 배워야 합니다. 루비한테 주어진 집안일을 날마다 맡아야 합니다. 루비는 루비 마음대로 이것저것 신나게 배울 수 있지만, 이것저것 신나게 배우려면 날마다 주어진 집일을 치러야 합니다.


  곰곰이 돌이킵니다. 루비네 집안은 살림이 넉넉하니까 ‘집안 어린 사내’들이 가정교사한테서 느긋하게 배운 다음 홀가분하게 놀 수 있습니다. 루비네 집안 살림이 가난하다면, 가정교사는커녕 제도권학교조차 못 다닐 만합니다. 가난한 집 어린 사내들이라면 어버이하고 함께 들일을 하거나 바닷일을 하거나 장사일을 하거나 함께하겠지요. 이때에는 어린 사내들뿐 아니라 어린 가시내들도 제도권학교는커녕 글을 배우거나 책을 읽을 엄두를 못 내리라 느낍니다.

 


.. 할아버지가 부드럽게 말했어요. “아가, 네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정말로 알고 싶구나. 남자 아이들에게 어떻게 더 잘 해 준다는 거니?” … 루비가 자신의 빨간색 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남자 애들은 대학에 가고 여자 애들은 결혼하게 된다는 거예요.” (17, 21쪽)


  돈이 넉넉한 집안이라서 더 넉넉히 배울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돈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집일이나 돈벌이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하겠으나, 그만큼 어버이와 함께하는 겨를이 적구나 싶어요. 돈이 적은 집안에서는 집일이나 돈벌이를 오래오래 살펴야 한다 하겠으나, 그래도 어버이와 함께하는 겨를이 많을 수 있어요. 저잣거리 장사를 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꽃 피울 수 있겠지요. 들판에서 논밭을 일구더라도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란히 서서 일노래 부르며 땅을 갈 수 있어요.


  아이들은 어버이와 함께하면서 배운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살결을 스치고 어버이 손을 맞잡으면서 배운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목소리를 듣고 어버이 품에서 따스함을 느끼면서 배운다고 느낍니다.

 


.. 루비는 (설날) 행운의 빨간 봉투를 열 때 온 가족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여러분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알겠어요? 그건 돈이 아니었어요. 돈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었지요 ..  (24쪽)


  그림책 루비는 대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림책 루비는 다른 자매들이나 이웃 자매들과 달리 ‘시집살이’ 아닌 ‘대학살이’를 합니다. 더 넓다는 누리를 누리고, 더 깊다는 학문을 파고듭니다. 더 너른 나라를 돌아다니고, 더 깊은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꿈을 키우는 생각과 말과 몸짓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루비네 집안이 가난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텐데, 가난한 루비네 집안이라 한다면 루비는 또다른 모습으로 또다른 삶을 꾸리면서 또다른 배움길을 걸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루비가 배움길을 못 걷고 살림길을 걸었다 하더라도, 루비는 집안일을 하면서 얼마든지 또다른 배움자리를 찾아 또다른 배움빛을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루비한테는 돈도 이름도 무엇도 대수롭지 않아요. 루비한테는 날마다 좋은 생각과 기쁜 꿈과 맑은 사랑이 대수롭습니다. 루비한테는 제도나 사회나 문화가 대단하지 않아요. 루비한테는 고운 이야기와 환한 웃음꽃과 싱그러운 눈빛이 대단하게 자리해요. 따스한 바람이 봄날 시골마을 들판을 골고루 보듬으며 산들산들 붑니다. (4345.5.13.해.ㅎㄲㅅㄱ)

 


― 루비의 소원 (소피 블랙올 그림,시린 임 브리지스 글,이미영 옮김,비룡소 펴냄,2004.3.1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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