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은 좋은 삶에서 태어난다
[나란히 읽는 책 1] 박태희, 안목


 사진을 찍고 사진을 말하는 박태희 님은 사진책 펴내는 일을 나란히 합니다. 2009년부터 ‘안목’이라는 이름을 붙인 출판사에서 사진책을 펴냅니다. 이 가운데 《꽃무늬 몸빼 막막한 평화》는 여느 책방에는 없어 따로 출판사에 주문해야 받아볼 수 있고, 《The Sadness of Men》는 필립 퍼키스 님이 나라밖에서 내놓은 사진책입니다.

 

 박태희 님은 2008년에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를 옮긴 뒤 더디지만 꾸준한 발걸음으로 사진이야기를 꽃피웁니다. 사진책이 안 팔리거나 안 읽힌다 하지만, 차근차근 씩씩하게 내딛는 발걸음은 틀림없이 사진꽃과 삶꽃과 책꽃과 사랑꽃을 소담스레 피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진과 책》(안목,2011.12./2만5천 원)
 글 : 박태희
 사진을 말하고 책을 말하는 이야기 한 자락. 세계사진역사라는 서양사람 틀거리에서 벗어나, 내가 발을 딛는 이 땅에서 사랑하며 어깨동무하고픈 사진과 꿈과 사람과 사랑을 들려주려는 이야기 두 자락. 사진을 찍고 사진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마땅히 사진책을 사서 읽으면서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세 자락.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안목,2011.3./9천5백 원)
 글 : 필립 퍼키스
 옮긴이 : 박태희

 사진강의를 하면서 굳이 사진교재를 내놓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강의 듣는 이는 구태여 사진교재를 들춰야 하지 않습니다. 강의를 하며 배울 사진은 교재에 없으니까요. 강의로 말하고 들을 사진은 바로 사진기를 손에 쥘 사람들이 부대낄 내 삶에 있으니까요.

 


《사막의 꽃》(안목,2011.2./3만8천 원)
 글 : 조현예
 사진 : 박태희

 좋아하는 사람 글에 나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담아 책 하나 빚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좋아하는 그림이나 사진에 글을 하나 붙이겠지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좋아하는 글에 가락을 달겠지요.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좋아하는 글에 내 온 꿈을 실은 사진을 붙이겠지요.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안목,2009.9./8천 원)
 글 : 필립 퍼키스, 막스 코즐로프, 존 브레이버맨 리바인
 옮긴이 : 박태희

 사진길을 걷는 씩씩한 사람은 사진만 말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말하면서 내 삶을 말합니다. 내 삶을 말하면서 사진을 말합니다. 그림길을 걷는 튼튼한 사람은 그림만 말하지 않아요. 흙길을 걷는 야무진 사람은 흙만 말하지 않고요. 흙을 일구는 사람하고 흙과 삶과 목숨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진을 일구는 사람하고 또.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미진사,2008.3./3만 원)
 글 : 앤 셀린 제이거
 옮긴이 : 박태희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사진을 만듭니다. 삶을 일구고 싶은 사람은 삶을 일굽니다. 삶을 꾸미고 싶은 사람은 삶을 꾸밉니다.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을 불태우고 싶은 사람은 사랑을 불태웁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사진이든 사랑이든 합니다.

 


 《꽃무늬 몸빼 막막한 평화》(안목,2009.12./2만 원)
 글·사진 : 한금선
 펴낸이 : 박태희
 
http://anmoc.com 에 들어가야 살 수 있음
 시골마을 할머니들 겨울철 양말은 여러 켤레입니다. 두 켤레를 껴신고 덧신을 신습니다. 할머니들 덧신은 똑같은 무늬가 없습니다. 가게에서 사다 신어도 덧신 무늬가 다 다릅니다. 이 어여쁜 덧신 꽃무늬는 할머니들 바지나 치마나 웃도리하고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시골집과 시골길과 시골하늘이랑 곱게 어우러집니다.

 


 《The Sadness of Men》(Quantuck Lane Press,2008/5만4천 원)
 글·사진 : 필립 퍼키스
 
http://anmoc.com 에 들어가야 살 수 있음
 아낌없이 살아가는 하루입니다. 아낌없이 사랑하는 오늘입니다. 아낌없이 바라보고 마주하며 얼싸안는 내 살붙이입니다. 좋은 꿈을 실으며 살아가는 하루입니다. 좋은 말을 나누며 사랑하는 오늘입니다. 좋은 밥을 함께 먹으며 얼싸안는 내 살붙이입니다. 새날 여는 새벽녘 보랏빛 하늘을 바라보며 참 좋습니다.

..

 

ㅅ님이 이런 페이퍼 한 번 써 보라고 하셔서

한 번 써 보았습니다~ ^^;;;;

 

아무쪼록, 사진책과 사진을 읽으려는 분들한테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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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2-03 11:08   좋아요 0 | URL
이런 페이퍼, 반갑고 고맙습니다!

파란놀 2012-02-03 11:39   좋아요 0 | URL
에고, 쑥스럽습니다 ^^;;;

페크pek0501 2012-02-04 13:18   좋아요 0 | URL
저도 메리포핀스님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지지 않고 드립니다. ㅋ

파란놀 2012-02-04 13:50   좋아요 0 | URL
하핫 ^^;;;;
에고고~~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6
알로이스 카리지에 그림, 셀리나 쇤츠 글, 이지연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아름다이 살아가는 꿈을 꽃피우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3] 알로이스 카리지에·셀리나 쇤츠,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아이세움,2002)

 


 윌리엄 스타이그 님 이야기책 가운데 《도미니크》가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을 2006년에 옮긴 판으로 읽었는데, 1981년에 일찌감치 《용감한 도미니크》라는 이름으로 나온 적 있습니다. 1981년이라면 내가 일곱 살 적인데, 그무렵 이 책이 재미있거나 좋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있었나 궁금합니다. 1981년부터 서른 해가 넘도록 이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 내놓은 이야기책을 이야기한다면 2006년에 나온 《도미니크》를 들겠지요.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1982년에 내 어버이나 둘레 어른 가운데 나한테 《용감한 도미니크》를 선물한 분이 있었다면 나는 기뻤을까요. 어릴 적부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나는 아름다운 어린 나날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우리 집 아이는 1981년판 《용감한 도미니크》와 2006년판 《도미니크》를 나란히 놓고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두 가지 책 모두 거들떠보지 않고 스무 살이나 서른 살까지 살아갈 수 있으며, 앞으로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는 2006년판 《도미니크》가 사라질 수 있어요.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는 《용감한 도미니크》이든 《도미니크》이든 사람들 마음과 생각에서 아주 잊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잊혀지는 책을 헌책으로 찾아서 읽도록 한다면, 또는 새로운 판이 예쁘게 나와서 읽을 수 있다면, 이렇게 만나는 책은 얼마나 기쁘거나 놀랍거나 반갑다 할 만할까요.

 

 좋다는 책 한 권 읽으면서 마음을 아름다이 돌볼 수 있습니다. 좋다는 책 한 권 읽지 못한다지만 마음을 얼마든지 아름다이 보살필 수 있습니다.

 

 내 어린 나날을 돌아보노라면, 나는 그리 좋다 할 만한 책을 읽은 일이 드물지만, 내 어린 나날이 슬펐다거나 심심했다거나 고달팠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책이 없어도 놀이동무가 많았습니다. 책을 읽지 못했으나 마음껏 뒹굴며 놀 수 있었어요.


.. 머나먼 스위스 두메 마을에 여러분 또래의 여자 애가 살고 있습니다. 이름은 플루리나예요. 산골짝에 여름이 찾아오면 플루리나네는 살던 집을 떠납니다. 보세요! 플루리나가 아침 일찍부터 오빠 우즐리랑 부모님이랑 함께 살림살이를 수레에 싣고 염소 떼를 몰고 사뿐사뿐 여름 목장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  (4쪽)

 


 책으로 배운 이야기는 없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책으로 익힌 삶이란 없다 할 만합니다. 집안에서는 집일이나 심부름을 합니다. 집밖에서는 끝없이 달리고 뛰며 놉니다. 내가 집안에서 들은 이야기는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입니다. 내가 집밖에서 들은 이야기는 동무들끼리 주고받는 놀이 얘기입니다.

 

 돌이키면, 어머니한테서 돈을 받아 주먹에 땀이 돋도록 꼭 움켜쥐고 가게로 달려가서 다시 집으로 씽 달려오던 심부름이 책 하나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형하고 나하고 기름통을 둘씩 들고는 기름집에 가서 보일러 기름을 사오던 심부름이 책 둘입니다. 밥을 먹고 나서 스스럼없이 설거지를 하던 형을 바라보며 아차 내가 먼저 해야 하는데 하고 깨우치던 일이 책 셋입니다. 개구진 놀이를 하던 나나 다른 동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런 개구진 짓이 얼마나 재미없고 바보스러운지 아느냐면서 똑똑하고 차분하게 짚어 주던 6학년 적 부반장 아이 말마디가 책 넷입니다. 닭똥 냄새 물씬 나는 사육장 청소를 나랑 둘이서 군말 없이 하던 내 동무 매무새가 책 다섯입니다.

 

 좋은 책은 우리 곁 어디에나 있습니다. 좋은 책은 내 삶 어느 자리에나 있습니다.

 

 좋은 책은 좋은 삶입니다. 좋은 책은 좋은 이야기입니다. 좋은 책은 좋은 웃음이요 좋은 눈물입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바닷물이 좋은 책입니다. 새하얀 구름과 소낙비 몰고 다니는 뭉게구름이 좋은 책입니다. 무지개가 좋은 책이고 수없이 반짝거리는 까만 하늘 뭇별이 좋은 책입니다. 우지끈 내리치는 벼락이 좋은 책입니다. 짠내 가득한 갯벌에서 살아가는 조개와 게가 좋은 책입니다. 바닷가 갈매기와 멧골짝 우람한 나무가 좋은 책입니다.


.. 그때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도와 주세요! 살려 주세요!” 하고 외치는 소리 같아요. 우는 소리,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 아주 작은 짐승만이 낼 수 있는 소리입니다. 산 아이 플루리나는 바위에서 벌떡 일어나 덤불 속을 샅샅이 뒤져 봅니다. 저것 좀 보세요. 여우예요! 틀림없어요. 여우가 새를 물어 가고 있어요! 플루리나가 야단을 칩니다. “이 못된 녀석, 어서 그 새 이리 내놓지 못해! 명령이야!” ..  (8쪽)

 


 널따랗고 새까만 아스팔트길은 좋은 책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골목길에서까지 싱싱 달리는 자동차는 좋은 책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쉰 층 백 층 뾰족하게 솟는 높다란 건물은 좋은 책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멧골짝부터 졸졸 흐르는 냇물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 수도물 힘으로 흐르는 겉으로만 맑아 보이는 도랑물은 좋은 책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먹고 나면 비닐쓰레기를 잔뜩 남기는 과자들 그득그득 쌓인 커다란 가게들은 좋은 책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좋은 책 하나를 찾는 마음이라면 좋은 삶 하나로 내 나날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내 가슴속에서 길어올리고, 좋은 이야기를 옆지기하고 오순도순 나누며, 좋은 이야기를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새로 피워내는 삶이 곧 좋은 책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날이 차츰 추워지는 가을에 비로소 도시를 떠났습니다. 날이 차츰 추워지는 가을부터 비로소 시골에 삶터를 마련했습니다. 나는 시골살이를 제대로 몰랐으니 가을에 삶터를 옮기고 맙니다. 시골살이를 조금이라도 짚으려 했다면, 새봄이 찾아올 때에 삶터를 옮겨, 새봄부터 땅뙈기를 일구어 내 보금자리에서 내 먹을거리 마련할 길을 찾겠지요. 겨울을 앞둔 가을날 시골로 들어선다면, 내 땅뙈기를 집 옆에 얻더라도 겨우내 푸성귀를 일구지 못해요. 날씨가 풀려 씨앗이 뿌리내려 잎을 틔울 봄까지 기다리며 푸성귀를 사다 먹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아버지요 어버이라고 느낍니다. 어른이 되어 종이로 된 책은 많이 읽었어도, 몸뚱이로 아로새길 삶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읽었더라도 옳게 삭히지 못했기에 슬기롭다 할 만한 길을 못 찾곤 합니다. 다만, 나 스스로 참 어리석거나 어설픈 길을 걸었으니, 아이들한테는 다른 길을 보여주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지 몰라요. 어쩌면, 어리석거나 어설픈 길을 걸은 나머지, 아이들한테까지 어리석거나 어설픈 길을 똑같이 보여주거나 이야기할는지 모릅니다.


.. 플루리나는 새끼새를 놓아주고 싶지 않습니다. 우즐리가 화를 냅니다. “불쌍한 새를 놓아줘. 안 그러면 새장 안에서 죽고 말 거야.” 플루리나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 새끼새를 안고 엉엉 울면서 절벽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끼새를 쓰다듬어 줍니다. 아, 플루리나가 이 조그만 목숨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요. 플루리나는 차마 제 손으로 새끼새를 놓아주지 못합니다 … 이별이란 아이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18쪽)

 


 알로이스 카리지에 님 그림과 셀리나 쇤츠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아이세움,2002)를 읽습니다. 스위스 두메에서 살아가는 두 아이 플루리나와 우즐리는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마을에서 살고, 봄부터 여름까지는 멧골에서 삽니다. 이 아이들과 어버이는 살림집이 둘이에요.

 

 참 좋네. 참 좋겠구나.

 

 어, 그러고 보니, 우리 식구도 이렇게 두 살림집을 꾸릴 수 있습니다. 아직 살림돈이 모자라고 생각이 깊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두 살림집을 꾸릴 엄두를 못 냈지만, 겨울날에는 마을집에서 지내고 여름날에는 멧골집에서 지낼 수 있어요. 마을집은 겨울날 따스히 보내며 쉬거나 책을 가까이하는 터로 삼고, 멧골집은 드넓은 멧자락 품에 안기며 내 가슴을 확 틔우는 마당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 이제 마차에 짐을 다 실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 집으로 가는 시골길로 내려갑니다. 우즐리가 고삐를 잡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플루리나는 아무도 몰래 산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새끼새에게도 손을 흔듭니다! ..  (26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마을집과 멧골집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천천히 자랍니다. 스스로 밥을 짓고 스스로 옷을 지으며 스스로 집을 짓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익힙니다. 어버이가 이모저모 가르치거나 물려주기도 할 테지만, 어버이 또한 당신이 어릴 적에 당신 어버이한테서 배우며 함께 살아갔듯, 당신 아이들한테 똑같이 삶과 꿈과 일과 놀이와 사랑과 믿음을 고이 나누겠지요.

 

 멧골아이 플루리나와 우즐리는 따로 학교에 다니는 듯하지 않습니다. 아니, 겨울철 마을집에서는 학교에 나갈는지 몰라요. 학교에 나가서 마을 동무하고 어울릴 수 있겠지요. 봄부터 이른가을까지는 멧자락에서 풀과 나무와 구름과 하늘과 새와 들짐승하고 어우러지면서 살아가고 배워요. 저녁이 되면 집에서 어버이하고 밥상 앞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성경책을 읽겠지요. 유럽 나라이니까요.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에 나오는 두 아이처럼 살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렇게 학교나 학원하고 동떨어진 채 자연하고만 지내는 아이란 없다고 할 만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동화책이나 문제집이나 논술책하고는 등진 채 멧골과 푸나무와 멧새랑 어우러지는 아이란 없다고 할 테지요.

 

 플루리나랑 우즐리는 손전화를 모르고 셈틀을 모릅니다. 오늘날 한국땅 아이들은 손전화를 잘 알고 셈틀을 잘 다룹니다. 플루리나랑 우즐리는 밥을 하고 옷을 기우며 집을 손질할 줄 압니다. 오늘날 한국땅 아이들은 무엇을 잘 할 만할까요.

 

 전철을 탈 줄 알고, 카드를 긁을 줄 알며, 영어로 얘기할 줄 아는 오늘날 한국땅 아이들은 어떤 꿈을 누구랑 어디에서 어떻게 꽃피우는 아름다운 나날을 누릴 수 있을까요. (4345.2.3.쇠.ㅎㄲㅅㄱ)


―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 (알로이스 카리지에 그림,셀리나 쇤츠 글,이지연 옮김,아이세움 펴냄,2002.4.10./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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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3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2-03 11:31   좋아요 0 | URL
올해로 서른여덟이에요.

가장이라는 짐보다는,
식구들하고 살아가는 앞길을 얼마나 제대로 생각했느냐 하는 대목에서
찬찬히 짚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하고 느껴요.

아마, 지난 여섯 해보다 더 많이 헤매면서
올 한 해 길찾기를 하는 갈림길이 아닌가 싶어요~ @.@

2012-02-03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2-03 11:34   좋아요 0 | URL
도시나 시골이나 어느 삶터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요.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도시이든 시골이든
나 스스로 어떤 삶터에 있는가를
제대로 느끼지 않으면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즐겁고 맑게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못하고 말아요.

그런데 이제 거의 모든 도시 거의 모든 살림집에서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찾을 즐거움을
스스로 살피지 않고,
이런 흐름이 더 짙어지기에
자꾸 이렇게 글을 써야 하지 않느냐 싶기도 해요.

어느 구석에선가
예쁘고 즐거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래서 한쪽으로만 쏠리는 삶이 아니라
골고루 살아가는 길을 찾는다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한나라당이 새로 바꾼 이름을 놓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많이 보입니다.

이름으로 비아냥거리는 짓은 몹시 볼썽사납습니다.

'하는 일'을 놓고 비판해야 올바릅니다.

 

진보나 개혁이나 혁명... 을 외친다는 이들 스스로

못 하거나 안 하는 일을

보수정당 우익정당 수구정당 기득권정당에서

알뜰히 해낸다면,

이런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좋을까요.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이라는 버거운 굴레를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털어버릴 수 있을까요..

 

 

[함께 살아가는 말 86] 새누리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잘 모르지만, 시골 흙일꾼이라면 ‘새누리 벼’를 압니다. ‘새누리 벼’는 농협에서 유전자를 건드려 파는 볍씨입니다. 이른바 온갖 벌레와 비바람에 더 잘 견딘다는 볍씨가 되도록 유전자를 건드리기 때문에, 이 볍씨를 심어 벼를 거둔 다음 다시 이 볍씨를 논에 심으면 알곡이 제대로 여물지 않는다고 해요. 해마다 새 볍씨를 농협에서 사야 합니다.

 

 한겨레 말글을 일찍부터 아끼거나 사랑하던 이들은 ‘새누리’라는 낱말을 퍽 좋아했습니다. 이 나라를 새롭게 바꾼다는 뜻과 느낌을 담는 ‘새누리’는 여러모로 어여쁩니다. 이 토박이말로 교회 이름을 짓는 곳이 있을 만큼 ‘새누리’라는 낱말은 싱그럽고 맑은 느낌을 두루 나누어 줍니다. 출판사 이름으로도 쓰이고, 어린이책 읽는 모임 이름으로도 쓰이며, 지역아동돌봄마당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2012년 2월에는 정당 이름으로까지 ‘새누리’가 쓰여요. 정당에서 한겨레말 ‘새누리’를 쓰는 대목은 몹시 놀랍습니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한겨레말보다 중국말을 사랑할 뿐 아니라, 어설픈 영어를 아무 데나 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거든요. 기자나 지식인이 붙인 이름이라지만, 한국사람 이름을 DJ라느니 MB라느니 하고 부르는 모습은 참 슬픕니다. 국회의원은 ‘國’이라 새긴 이름표를 붙이고 싶다 하지 ‘나라’나 ‘국’이라 적는 이름표는 붙이고 싶다 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한국에서 푸른 누리 꿈꾼다는 이들조차 ‘푸른당’이나 ‘푸른누리당’이라는 이름을 안 쓰는데, 보수 우익이라 하는 이들이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을 쓰니 더 놀랍습니다. 새누리당 사람들이 훌륭한 이름을 쓰면서 안타까운 길을 걷더라도, 훌륭한 길을 걸으려 힘쓴다는 이들 스스로 안타까운 이름을 내거는 모습을 곰곰이 톺아보기를 바랍니다. (4345.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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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2-03 12:54   좋아요 0 | URL
흠 새누리에 그런뜻이 있군요.저도 녹색당,새누리당처럼 일반 국민들에게 이름처럼 친근하게 다가갈 정당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파란놀 2012-02-03 14:28   좋아요 0 | URL
그러나,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이름만 좋은 정당이라면
하나도 좋을 수 없는 정당이라고 느껴요.

이궁...

노이에자이트 2012-02-03 17: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볍씨품종에 새누리가 있죠.군사정권 때는 통일벼 노풍 등이 있었습니다.당시 가장 질좋은 쌀은 아키바레였죠.다수확 품종이 아니라고 해서 공무원들은 심지말라고 하고...그랬죠.

파란놀 2012-02-04 05:25   좋아요 0 | URL
여러 가지 볍씨 품종이 '유전자 안 건드린 품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시골 농협에서 시골 흙일꾼한테 나눠 주는 유인물을 들여다보면, 이들 볍씨가 참말 '유전자 안 건드리고 교배로 더 나은 품종을 만들었다' 할 만한지 알쏭달쏭해요.

마을 어르신들이 새누리이든 무어든, 농협에서 사다 심는 볍씨는 세 해를 쓰지 못해, 해마다 새로 사서 쓴다고 하는데, 이런 볍씨가 유전자 건드린 볍씨가 아니면 무얼까 하고... 참... 거시기합니다.
 


 추위는 지나갑니다

 


 제아무리 꽁꽁 얼리던 추위라 하더라도 지나갑니다. 사흘 이레 보름 달포를 꽁꽁 얼린다 하더라도 추위는 물러섭니다. 추위가 물러서면 더없이 싱그러우며 해맑은 바람과 하늘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포근하며 폭한 날씨가 내 몸에 반갑다면, 나 또한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포근하며 폭한 마음씨로 마주할 때에 훨씬 반가우며 좋은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후덥지근 숨막히는 더위라 하더라도 지나갑니다. 사흘 이레 보름 달포를 후끈후끈 달군다 하더라도 더위는 물러섭니다. 더위가 물러서면 그지없이 시원하며 빛나는 바람과 하늘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시원하며 빛나는 날씨가 내 몸에 반갑다면, 나 또한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시원하며 빛나는 마음결로 마주할 때에 참말 기쁘며 고마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차가운 목소리는 얼마나 차가울까요. 마구 성을 내는 몸짓은 얼마나 무섭고 딱딱할까요. 추위를 겪으면서 비로소 내 차가운 바보짓을 헤아립니다. 더위를 치르면서 시나브로 내 어리석은 골부림을 깨닫습니다. 좋은 날씨가 그야말로 좋다면, 좋은 사랑이 그야말로 좋습니다. 좋은 사랑 담은 글이 한결 좋다면, 좋은 이야기로 넉넉한 품을 나누는 책이 한결 좋습니다. (4345.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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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03 12:52   좋아요 0 | URL
골부림이라는 낱말이 눈에 띄네요!
골을 부린다, '아마 성질을 낸다거나 짜증을 낸다는 뜻일거야'
하며 찾아봤더니 진짜로
[+골+부리-ㅁ]함부로 벌컥 화를 내는 일.
이라고 나오는군요^^

짧은 글짓기)나는야 골부림 대장.(사실에 근거한 짧은 글짓기죠..ㅡ.ㅡ;;)

파란놀 2012-02-03 14:28   좋아요 0 | URL
오오, 국어사전에 이 낱말이 실렸네요! @.@
저는 그냥 말 나오는 대로 적은 낱말이었거든요~

오호~
 
달려라, 탁샘 - 탁동철 선생과 아이들의 산골 학교 이야기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즐거울까요
 [책읽기 삶읽기 97] 탁동철,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탁동철 님이 1998년부터 2010년 사이에 쓴 교사일기를 그러모은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탁동철 님은 “아이들한테 행복해지는 걸 가르칠 게 아니라 실제로 행복해 보기도 해야지, 노는 걸 가르치고 배우기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놀아 보기도 해야지, 이건 뭐 하루 종일 가르치기만 하고, 하루 종일 배우기만 하고,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노는 시간이 하나도 없고……(304쪽)”처럼 이야기할 줄 압니다.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면서 “본 대로 쓴 것은 잘했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318쪽)” 하고 말할 줄 압니다. “사람 패는 버릇 고칠 거냐고, 고친다고 대답하면 나도 너 때린 것 사과한다고 했더니 녀석이 고친다고 해서 그럼 나도 너 때린 것 잘못했다고 했어요.(9쪽)” 하고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줄 압니다.

 

 교사일기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은 초등학교 평교사로 일하는 어른 한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나날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좋은 이야기꾸러미라고 느낍니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보여주고, 아이들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삶을 찬찬히 적습니다.

 

 교사 탁동철 님은 섣불리 교육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교사 탁동철 님은 어설피 교사론을 드높이지 않습니다. 잘못이라고 느낀 일을 잘못이라 말합니다. 잘했다고 여긴 일을 잘했다고 말합니다.


.. 어수선하다. 그래도 첫날인데 ‘어떤 선생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는데, 다들 별 관심이 없다는 얼굴이다 … 공부 시간에 왜 이런 문제도 모르냐고 나는 딱딱한 얼굴로, 사랑 없이 말했고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 옆에 있던 2학년 예원이가 “선생님은 왜 맨날 야단쳐요?” 한다. 참 야무진 말이다. 그 말 맞다 …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한쪽 길로 잡아끄는 것 또한 폭력이다. 반성했다 … 내 욕심만 없었다면, 그대로 보아줄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나 ..  (17, 84, 131, 238, 279쪽)


 책을 펼쳐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초등학생이고, 내 초등학교 담임으로 탁동철 님이 있다면, 나는 하루하루 즐거이 맞이할 수 있을까 하고.

 

 내 어린 나날 국민학교 적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국민학교 교사들은 왼손에 출석부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었습니다. 어느 교사는 오른손에 몽둥이를 든 채 교실로 들어옵니다. 이런 교사가 수업을 할 때에는 당번이 교무실에 가서 미리 출석부를 챙겨야 합니다. 출석부를 미리 챙기지 않으면 맨 먼저 당번이 교탁으로 불리고 흠씬 얻어맞습니다. 다음으로 반장과 부반장이 불리고 이들도 똑같이 얻어맞습니다. 골마루를 울리는 달음박질 소리가 이어지고, 출석부를 받은 교사는 ‘날과 달과 요일’에 따라 번호를 외면, 이 번호에 따라 ‘복습 문제 묻고 말하기’를 합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앞으로 불리고, 열 스물 서른이 줄줄이 앞으로 늘어서면,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빈 교사가 오른손으로 몽둥이를 쥐고는 엉덩이나 허벅지를 펑펑 두들겨팹니다.

 

 나는 내 국민학교 여섯 해를 떠올릴 때에 얼마나 많은 교사가 얼마나 많이 꾸짖고 윽박지르고 때리고 욕하고 했는가부터 떠오릅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을 맡다가 다른 학교로 옮긴 한 분만 몽둥이 없이 교실로 찾아와 한 차례도 때리지 않고 한 해를 보냈다고 떠올립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2학기부터 담임을 맡은 분은 가끔 때리기는 했으나 웬만해서는 소리를 높이는 일 없고 몽둥이를 드는 일 없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에 개구진 짓을 많이 하던 나는 이분 넉살이 좋아 뒤에서 몰래 업히듯 찰싹 달라붙으며 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달라붙을 때에 성가셔 하지 않고 웃은 교사는 이때에 딱 한 번 만났습니다.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탁동철 님은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어떻게 마주할까 궁금합니다.


.. 아무 일 없다는 듯 공부 시작하려는데 남자아이가 따진다. “왜 선생님 책상에는 우유 안 쏟고 우리 책상에만 우유 부었어요?” … 다른 학교에서는 다 하고 있는 급식을 우리 학교만 안 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부모님들이 급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2학기부터 학생 수가 늘어났고, 공수전분교도 급식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몇 사람한테 들었습니다. 저도 그게 옳다고 여겨서 올해는 급식이 되도록 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 정택이가 내 얼굴을 보며 “저희가 어떻게 하면 선생님 얼굴이 확 펴질까요?” 아, 미안. 잔뜩 굳었나 보다. 아이들도 고민이 많은데 학교에 와서 찌푸린 담임 얼굴을 또 보고 있어야 하는 건 불쌍하다 ..  (29, 126, 231쪽)


 교사일기 《달려라, 탁샘》에 차근차근 적은 이야기가 있을 테고, 이 교사일기에 미처 못 담았다든지 굳이 안 담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탁동철 님은 아이들하고 살가이 어울리고픈 꿈을 날마다 새롭게 꿉니다. 그러나, 꽤 자주, 어쩌면 날마다 아이들 앞에서 찌푸린 낯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이들한테 괜히 목소리를 높입니다. 곧잘 아이들을 때리거나 윽박지릅니다. 교사 자리에 서면 예나 이제나 어쩔 수 없나, 남자 교사는 다들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나, 싶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참말 교사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일이 있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만 아이들이 아니라, 집에서도 아이들이고 마을에서도 아이들이거든요. 탁동철 님은 “나는 다가가서 멱살을 잡았다. 과장되게 화를 냈다. 겁먹고 고분고분 당해 줄 아이가 아니다. 나한테 덤벼들었다. 식식거리며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며 주먹을 쥐고 노려보고 욕을 했다. 이대로 물러서면 끝장이다. 나는 더욱더 크게, 힘껏 소리 질러 가며 화를 냈다.(258쪽)” 하고 밝힙니다. 동무들한테 돌을 던지는 아이를 마주하며, 이 아이 돌팔매를 그치게 할 길이란 이때에 이러는 수밖에 없는지 모르니까요.

 

 참말 돌팔매 아이는 왜 돌팔매까지 해야 했을까요. 돌팔매 하던 아이는 왜 교사한테까지 욕을 하고 주먹을 흔들어야 했을까요. 이 아이는 집에서 어떤 아이로 살아갈까요. 이 아이는 마을에서 어떤 아이로 지낼까요.

 

 아이들은 몽둥이나 손찌검 맛을 보아야 좋은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오늘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예전에는 어른들한테서 몽둥이 맛이나 손찌검 맛을 보았을 테니, 오늘 어린이로 살아가는 이들도 똑같이 몽둥이랑 손찌검 맛을 보아야 할까요.


.. 4학년 여자아이가 말한다. “아니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어요. 내가 그린 그림을 그냥 콱 찢어 버리고 싶어요.” 아, 그렇구나.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 … 밥 냄새 맡으며 공부하는 게 즐겁다 … 요즘 아이들은 그런 일 해 본 적 없다. 아이들이 일을 못해 본 건 어른 탓이다. 그러니 아저씨가 버럭 소리 질러야 할 대상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어야 한다 … 오늘은 신나는 시험 보는 날. 학생이야 고생스럽지만 선생은 할 일이 없다. 엉덩이 털썩 붙이고 앉아서 랄랄라, 시험 채점 마치고 나서 이렇게 쉬운 걸 왜 틀렸냐고 물어 보면 그만이다 ..  (37, 93, 250, 293쪽)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우유를 먹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급식을 먹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예방주사를 놓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읽히고 시험을 치릅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들한테 우유를 마시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들이 줄을 맞추고 조용하며 얌전히 급식실에 앉아 찌꺼기 남기지 말고 그릇을 비우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예방주사가 무엇이요 어떤 성분인가를 헤아리지 않고 모든 아이가 제때 맞을 수 있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마다 다 다른 삶 다 다른 꿈인 줄 알기는 하더라도 다 같은 교과서 다 같은 지식 다 같은 학년과정을 이끕니다.


.. 광복이 덕에 처음으로 오소리 똥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더니 어떤 아이가 “나는 내일 토끼 똥 가져와야지.” 했다. 이거 좋은 공부가 되겠구나 … 오늘 아침에도 과자 너무 먹으면 뼈가 약해진다, 힘들어 번 돈을 함부로 까먹어서야 되겠나, 이야기를 하고 정 먹고 싶으면 일주일에 한 번만 먹으면 어떻겠냐 해서 모두 그러겠다고 하더니 아무 소용없다 … ‘그런 고통도 겪어 보고 분노도 느껴 봐.’ 눈을 부릅뜨고 그 모든 것을 살피는 것 또한 공부 아니겠나. 아니, 또 한편으로는 사람 막 대한다는 그따위 시시한 곳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기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46, 49, 188쪽)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집이나 마을에서 늘 아이들과 마주하며 삶을 가르치기 어려운 오늘날입니다. 따로 학교로 보내 따로 교사한테서 지식과 삶을 보고 배우도록 맡겨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아이 나이와 몸과 마음을 그때그때 살피면서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누릴 꿈과 사랑을 보듬기 어려운 오늘날입니다. 수학이든 국어이든 과학이든 영어이든 따로 전문 지식을 쌓은 이들한테서 배워야, 좋다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돈 많이 번다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오늘날입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좋을까요. 아이들한테 하나라도 더 옳은 이야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기 앞서,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좋은가를 듣고 어깨동무해야 할 노릇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찾고 알아보지 않고서, 학교 울타리 안팎에서 ‘좋은 지식’이나 ‘좋은 공부’만 찾는다면, ‘좋은 놀이’와 ‘좋은 꿈’만 생각하려 한다면, 참말 ‘좋은 무엇’부터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달려라, 탁샘》을 덮습니다. 이 책은 교사일기입니다. 교사일기에서 내가 무엇을 더 바랐는가 곰곰이 헤아립니다. 제도권 울타리인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스스럼없이 하루하루 밝히는 틀을 넘어, 어떤 사랑과 꿈을 이야기 하나로 그리기를 바랐는가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해야 좋은지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서는 좋은 교사를 만나 좋은 지식을 배워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졸업장을 따야 하고, 아이들은 더 높은 시험성적을 거두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참말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왜 교사자격증을 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왜 일기를 쓰며 하루를 뉘우치고, 교사는 왜 교사일기를 쓰며 아쉽거나 안타까운 대목을 뉘우치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런 울타리도 자격증도 이름값도 졸업장도 돈벌이도 없이, 서로서로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면서 예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탁동철 님 할머님은 “(밤) 까먹어. 이 좋을 때 부지래이 까먹어.(41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마따나 이가 좋을 때에 밤을 부지런히 까먹고, 눈이 밝을 때에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응어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탁동철 님은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사랑씨앗을 심으려 했느냐 하는 응어리 한 가지가 풀리지 않습니다. 나는 이 대목 하나를 찾고 싶지만, 450쪽까지 읽고 한숨을 쉬며 책을 덮을 때까지 왜인지 모르게 답답합니다. 어떤 글을 쓰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이야기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할 때에 다 같이 즐거울까요. (4345.2.2.나무.ㅎㄲㅅㄱ)


― 달려라, 탁샘 (탁동철 글,양철북 펴냄,2012.1.2./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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