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 - 심장으로 진실의 순간을 포착하라
오동명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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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되고 싶은 젊은이한테
 [찾아 읽는 사진책 98] 오동명, 《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시대의창,2010)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닌대서 ‘사진작가’가 될 수 있지 않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니지 않았대서 ‘사진쟁이’가 될 수 없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진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스스로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면 됩니다. 졸업장은 사진작가 이름표가 아닙니다. 자격증은 사진쟁이 딱지가 아니에요. 어느 이름난 사진쟁이한테서 사진을 배웠으니까 ‘사진 찍는 사람’이라고 내세울 수 있지 않습니다. 값나가는 사진장비를 갖추었으니 ‘사진작가’라고 우쭐거리거나 자랑할 수 있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사진작가입니다. 사진을 좋아할 때에 사진쟁이입니다. 사진을 사랑하며 사진과 함께 살아갈 때에 ‘사진 찍는 사람’입니다.


  수십만 원이나 수백만 원이나 수천만 원에 이르는 사진장비를 갖출 때에만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편의점에서 1회용 사진기를 장만할 때에도 사진을 찍습니다. 손전화 기계로도 사진을 찍습니다. 놀이공원 같은 데에서 ‘기념사진 찍어 주는 이’한테 얘기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연필과 종이가 있으면 그림을 그린다 합니다. 그런데, 종이가 없더라도, 또 연필이 없더라도,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돌멩이로 돌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조개껍데기로 모래밭에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남길 수 있어야 그림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남기는 작품을 빚어야 그림쟁이가 되지 않습니다.


  연필에 종이를 갖추면 글을 쓴다 하지요. 그러나, 종이가 없어도, 또 연필이 없어도, 입으로 종알종알 이야기꽃 피우며 글을 쓸 수 있어요. 내 마음속에 이야기보따리를 갖추어, 언제 어디에서라도 말꽃을 피우는 ‘말글’을 쓸 수 있어요. 따로 책으로 묶어야 글쟁이가 아닙니다. 어느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실어야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아요.


  오동명 님이 대학교에서 한 해 동안 맡은 사진강의 이야기를 갈무리한 《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시대의창,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강의는 이 책처럼 대학교에서 교수 한 사람이 학생을 그러모아 조곤조곤 생각을 들려주거나 실기 수업을 하며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다만, “이들은 하나같이 사진 한 장이 글 백 마디보다 힘이 세다고 주장하는데, 제때 제대로 활용했을 때에만 올바른 힘이 됩니다(15쪽).” 하는 말처럼, 사진을 사진답게 바라보면서 사진을 사진다이 다룰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강의’가 된다고 느껴요.


  오동명 님은 “사진 기술이 뛰어난 사람은 많습니다(18쪽).” 하고 말합니다. 누구라도 이처럼 말해요. 사진기라는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은 많다고 흔히 말해요. 곧, 사진기를 잘 다룰 줄 알거나, 값지거나 값비싼 사진장비를 갖춘다 해서 ‘사진찍기(창작)’를 한다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곧, 대학교 사진학과를 마쳤다든지 나라밖으로 사진공부를 다녀왔다든지 했기에 ‘사진읽기(비평)’를 한다 말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사진기를 쥔 사람 스스로 삶이 있어야 사진을 새로 찍습니다(창작). 사진책과 사진작품을 바라보는 사람 스스로 삶을 누려야 사진을 새로 바라봅니다(비평).


  이리하여, 오동명 님은 “글쓰기 능력은 사진기자가 기본으로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62쪽).” 하고 덧붙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글을 쓸 줄 알아야 사진을 찍을 줄 알아요. 책을 읽을 줄 알아야 사진을 읽을 줄 알아요. 글은 못 쓰면서 사진만 잘 찍지 않습니다. 책은 읽을 줄 모르면서 사진만 잘 읽지 않습니다.


  달리 얘기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이 있어야 ‘내 사진기로 바라보는 내 이웃들 삶이 어떠한가를 느끼면서 읽고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사랑을 빛내야 ‘내 사진기로 담는 사진 한 장에 사랑 한 자락 실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삶이 없을 때에는 사진을 못 찍고 못 읽습니다. 나 스스로 사랑을 꽃피우지 않을 때에는 사진을 못 이루고 못 나눕니다.


  이제 사진교수 일을 하는 오동명 님은 “더러웠던 건 100달러라는 문명의 관습으로 그들을 현혹하려 했던 알량한 우리였고, 더 미개했던 것 역시 편협하게, 오히려 외양으로만 그들을 단정해 왔던 우리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100쪽).” 하고 뉘우칩니다. 스스로 뉘우칠 줄 아는 까닭은, 스스로 오동명 님 삶을 읽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인을 찍은 사진 대부분이 그럴듯해 보이는 까닭은, 사진가의 촬영 능력보다는 노인의 주름이 전하는 삶의 궤적의 힘이 크기 때문입니다 … 아쉽게도 노출과 구도 등으로 기계적 멋만 잔뜩 부린 패션사진이 너무 흔합니다. 괴이함을 독특함으로 혼돈하기 때문입니다(109쪽).” 하고 외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오동명 님 스스로 ‘기계자랑’이나 ‘기계멋’을 부리지 않겠다고 외칠 수 있어요. 남들 얘기가 아니라 오동명 님 스스로 ‘할머니 할아버지 주름살 깊이가 들려주는 꿈’이 사진에서 새롭게 피어날 수 있도록 하고프다는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동명 님한테서 사진을 배운 학생들은 무엇을 느끼거나 배웠을까요. “연출을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연출은 있을 수 없지요. 연출은 연출일 뿐입니다(123쪽).” 하는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무엇을 느끼거나 배웠을까요. 자연스러운 연출이 없기에, 연출은 연출입니다. 왜냐하면, 연출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이 아니라, 따로 꾸미는 겉모습이거든요.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일 때에는 어떠한 모습이든 ‘자연스럽’고 ‘삶’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담기는 사람과 사진 한 장으로 적바림하는 사람 모두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일 때에 참으로 아름다이 빛나는 사진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사진책을 읽으며 시집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시를 씁니다.


  나는 오동명 님 사진책을 읽으면서 손세실리아 님 시집을 읽습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 시골살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내가 우리 보금자리에서 누리는 사랑을 시로 씁니다.


  좋아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좋아하는 넋이기에 사진을 찍자고 생각합니다. 좋아하기에 시를 읽습니다. 좋아하는 얼을 북돋우며 시를 즐겁게 쓰자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기쁘게 사진을 누립니다. 겉멋 아닌 즐거움을 맛보며 사진을 누립니다. 스스로 기쁘게 하루를 누립니다. 누군가한테 자랑하려고 보내는 하루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며 누리는 하루입니다. 남한테 보여주려는 내 삶이 아니라, 내 꿈과 사랑을 가장 아끼며 보듬는 내 삶입니다.


  “자기 멋에 빠져든 글을 모두 시라고 하지 않듯,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168쪽).” 하는 말처럼, 사진도 글도 삶도 사랑도 겉멋에 빠져들 수 없습니다. 겉치레로 흐를 수 없습니다. 남한테 보여줄 사진이나 글이나 삶이나 사랑은 없습니다. 내가 즐기는 사진이요 글이며 삶이고 사랑입니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찾을 노릇입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될 노릇입니다. 오동명 님은 《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를 내놓습니다. 이 작은 책 하나는 사진강의 한 해 발자국이라 할 수 있지만,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니고 싶은 푸름이한테 먼저 맛보기로 보여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태여 대학교 사진학과를 찾아가지 않고 이 책 하나 읽으며 스스로 사진을 배우거나 익히는 길을 찾도록 돕는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진학과뿐 아니라 대학교조차 애써 들어가지 않아도 ‘사진 찍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살며시 보여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4345.5.22.불.ㅎㄲㅅㄱ)

 


― 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 (오동명 글·사진,시대의창 펴냄,2010.7.1./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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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삶과 책읽기" 자리에 띄우던 글 가운데

한 갈래를

"꽃과 책읽기"라는 갈래를 새로 나누었어요.

 

지난해에 살던 시골에서는

꽃 이야기를 얼마 안 썼는데,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날마다 숱한 꽃을 보니,

아주 저절로 꽃 이야기를

자주 쓸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게시판도 새로 나누어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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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23 22:36   좋아요 0 | URL
ㅎㅎ 된장님이 글쓰기를 보면 넘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언제 저 많은 글을 올리시는지 무척 궁금해지네용^^

파란놀 2012-05-24 09:50   좋아요 0 | URL
쓸 수 있을 때에 즐겁게 쓸 뿐입니다~
 


 찔레꽃잎

 


  찔레꽃잎은 먹는다. 찔레나뭇잎은 먹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을 나고 새봄을 맞이해 처음으로 돋은 보들보들한 찔레나뭇잎도 먹을 수 있을 테지. 새봄에 막 돋은 느티나뭇잎도 먹을 수 있으니까.


  찔레꽃잎을 먹는다. 아이와 함께 천천히 씹어서 먹는다. 꽃잎 하나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으니 찔레꽃잎 내음이 입안으로 확 퍼진다. 자그마한 꽃잎은 꽃잎 맛이 난다. 배고플 때에 잔뜩 따서 먹을 수 있겠다고 느끼는데, 한 움큼이나 두 움큼 따서 먹는다고 얼마나 배고픔이 가실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몸으로 들어온 찔레꽃잎은 내가 살아가는 흙을 떠올리도록 이끌고, 내가 맞이하는 햇살을 되새기도록 이끌며, 내가 마시는 빗물을 헤아리도록 이끈다.


  저녁이 되어 들꽃 하나둘 잎을 오므리는데, 찔레꽃은 잎을 펼친 채 있다. 뉘엿뉘엿 기울어 어두워지는 들판에서 찔레꽃잎 하얀 빛깔은 더 하얗다. 봄을 부른다는 알록달록 어여쁜 꽃들 모두 지고 온 들판과 멧등성이에 푸른 빛깔 짙을 때에, 찔레꽃 작은 송이는 소담스레 저희끼리 옹크리면서 작은 무리를 이룬다. 푸른 들판에서 길을 잃지 말라며 하얗게 빛난다. (4345.5.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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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牛) - 김진선 사진집
김진선 사진 / 사진과예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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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에서 찾는 사랑스러운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96] 김진선, 《소(牛)》(사진예술사,2008)

 


  마당 한쪽에서 스스로 자라는 풀꽃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뒤꼍에 마련한 뒷밭에 첫째 아이와 함께 물을 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다른 분들은 봄날 어떤 봄꽃을 구경하고 사진으로 담는지 모르나, 나는 내가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 날마다 마주하는 들꽃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새로 돋는 풀이 어여쁩니다. 자운영 꽃빛이 예쁘다 느낍니다. 모과나무에 맺힌 앙증맞은 꽃송이를 쓰다듬습니다. 감잎 푸른 사이사이 막 몽글려고 하는 몽우리를 봅니다. 뽕나무는 오디가 맺히는데, 오디가 되기 앞서 피어난 꽃송이는 뽕잎 빛깔하고 같습니다. 느티꽃은 느티잎하고 꽃빛이 같은데, 뽕꽃도 뽕잎하고 꽃빛이 같습니다.


  봄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봄날 들판과 멧자락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빛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봄빛을 사진책으로 살며시 옮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봄날 봄빛을 사진으로 옮기는 이들 가운데 ‘사진쟁이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마주하는 봄내음’을 누리면서 사진길을 걷는 이는 드문 듯합니다. 여름날 여름빛을 사진으로 옮기든, 가을날 가을빛을 사진으로 옮기든, 겨울날 겨울빛을 사진으로 옮기든, 스스로 뿌리내려 살아가는 터에서 사진빛을 나누는 이는 퍽 드물지 싶어요.

 

 


  가난한 사람들 찾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터에서 마주하는 이웃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가멸찬 사람들 찾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더라도, 또 내로라하는 이들 찾아 인물사진을 찍더라도, 언제나 내 삶터에서 가장 가까운 데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마주하며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꼭 어느 호텔 어느 전시장에서 마련하는 잔치마당에서 패션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패션쇼라는 이름이 붙는 곳에서 모델을 앞세워야 패션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도 패션사진은 태어납니다. 내 작은 집 작은 방에서도 패션사진은 태어납니다. 나 스스로 생각할 때에 내 사진이 태어납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결을 살피거나 살릴 때에 내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사진책 《소(牛)》(사진예술사,2008)는 강원도지사로 일하던 김진선 님이 내놓았습니다. 김진선 님은 “사진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제시해야 하는 사진, 누구보다 자신있어 그 내밀한 진실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내 사진은 어떤 것일까? 그런 고심의 시간,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인식한 내 기억을 모두 꺼내놓고 샅샅이 뒤져 보았다(4쪽)”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스스로 물은 다음 “그러고 보면 강원도 사람, 소, 사진이 갖는 기본적 공통점이 ‘정직’이다. 강원도지사가 소(牛)를 테마로 한 사진작품을 내놓는 이유다(5쪽).” 하고 스스로 밝힙니다.

 

 


  소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으나 아주 없지 않습니다. 소를 사진으로 찍되, 일소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훨씬 적습니다. 이와 함께, 싸움소를 사진으로 찍는다든지, 농장에서 풀을 뜯다가 고기로 팔릴 소를 찍는다든지, 좁은 우리에서 사료만 먹으며 젖을 내놓다가 머잖아 고기로 팔릴 소를 찍는다든지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어쩌면, 고기소 될 소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남녘땅 곳곳을 돌며 일소를 사진으로 담는 분은 있다 할 테지만, 남녘땅 곳곳 소우리를 찾아다니며 가엾게 갇힌 소를 사진으로 담는 분은 몇 사람쯤 될까요. 젖을 내놓다가는 고기소가 될 젖소를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는 분은 몇 사람쯤 있을까요.


  김진선 님이 내놓은 사진책 《소(牛)》에는 ‘들판에서 풀을 뜯다가 고기소로 팔릴 날을 기다리는 소’가 나옵니다. 김진선 님은 소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고, 소 멀찍이 떨어진 채 바라보기도 합니다. 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는 사진이 있고, 소가 어떤 생각을 품는지 가늠하는 듯한 사진이 있습니다. 쉬는 소가 있고 움직이는 소가 있습니다. 무리지은 소가 있고 외따로 떨어진 소가 있습니다.

 

 


  사진책 《소(牛)》를 빚은 김진선 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었을까요. 사진책 《소(牛)》는 우리들한테 무슨 삶을 보여줄 만한 이야기밭이 될까요. 김진선 님이 어린 나날 보던 소와 사진책에 담긴 소는 서로 얼마나 떨어진 채 ‘같은’ 소라는 목숨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까요. 사진책으로 소를 마주하는 오늘날 사람들은 밥상에 오르는 소고기와 사진책에 나타나는 소를 어떻게 맞대어 생각을 북돋울까요.


  김진선 님은 소 아닌 돼지를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당신 꿈을 보여줄 수 있나요. 돼지 아닌 메뚜기를 찍거나, 메뚜기 아닌 개구리를 찍거나, 개구리 아닌 뱀을 찍거나, 뱀 아닌 갈매기를 찍거나, 갈매기 아닌 오징어를 찍는다면, 이때에도 당신 사랑을 보여줄 수 있나요.


  사람들은 마른오징어도 먹고 물오징어도 먹습니다. 오징어 잡는 고깃배가 바다를 넘실넘실 가로지릅니다. 누군가는 오징어잡이배에 올라타고는 오징어 낚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겠지요. 누군가는 바닷속으로 풍덩 들어가서 바닷속 헤엄치는 오징어 모습을 사진으로 옮기겠지요.


  양식장에서 넙치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갯벌에서 조개 캐는 할머니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굴을 까고 조개를 까는 아줌마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스쳐 지나가는 사진이 아니라, 곁에서 오래오래 지켜보거나 함께 일하면서 찍는 사진으로 빚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이들 모습을 예쁘게 찍자면,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며 예쁘게 웃는 어른으로 지내면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난하게 살아가는 힘겨운 나날을 찍어 온누리에 알리자면, 나 스스로 가난한 사람들하고 한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며 힘겨운 나날을 몸소 겪으면 됩니다. 사진책 《소(牛)》를 내놓은 김진선 님은 ‘들판에서 풀을 뜯다가 고기소로 팔릴 날을 기다리는 소’를 바라보면서 어떤 넋이었고 어떤 얼이었으며 어떤 빛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소를 바라볼 때에 왜 ‘올바르다(정직)’고 여길까요. 흙에 기대어 흙을 일구는 사람이 아주 드문 오늘날에도 소는 옛날처럼 ‘올바르다’고 여길 짐승으로 삼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 소는 참말 무엇이고, 김진선 님이 사진으로 아로새긴 소에 서린 이야기와 꿈은 이 땅에서 참말 무엇이라고 말해야 좋을까 궁금합니다.


  해거름에 둥지로 돌아오는 처마 밑 제비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제비들은 새벽 일찍 깨어나 노래하며 먹이를 찾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지런히 먹이를 얻어 새끼들을 먹입니다. 시나브로 새끼들은 어른이 되겠지요. 어른이 된 제비는 날갯짓을 바지런히 익혀 가을날 무르익는 들판을 바라보며 더 따스한 곳으로 날아가겠지요. 그러고는 이듬해 따사로운 새봄에 옛 둥지로 찾아오겠지요. 문득,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처마 밑 제비를 사진으로 담으며 이야기 엮는 사진쟁이는 한국에 몇 사람쯤 될까 궁금합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 소(牛) (김진선 사진,사진예술사 펴냄,2008.5.28./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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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입에서 나오는 말
[말사랑·글꽃·삶빛 9] 고사성어 아닌 삶말

 


  우리 집 첫째 아이가 다섯 살을 살아가는 어느 날 아침입니다. 이슬이 들판을 곱게 적십니다. 나란히 햇살을 받으며 마당에 섭니다. 들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한 마디 합니다. “아버지 왜 (저 새들은) ‘은지 은지 은지’ 해요?” 함께 들새 노랫소리 듣던 아버지는 ‘찌삣 찌삣 찌삣’처럼 들었으나, 아이는 ‘은지 은지 은지’처럼 듣습니다. 아이 말을 되새기며 들새 노랫소리를 맞추어 봅니다. 아버지와 아이는 들새 이름을 모르지만, 이 들새가 노래하는 소리는 ‘은지 은지 은지’라 해도 잘 들어맞는구나 싶습니다. 다른 분들이 이 들새 노랫소리를 듣는다면 이와는 달리 적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마당에 놓인 자전거를 타려다가 “어, 젖었네.” 하면서 옷섶으로 자전거 안장을 닦습니다. 아버지는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젖지 않았어. 거기엔 이슬이 앉았어.” “이슥?” “아니, 이슬. 자, 여기도 봐. 여기 풀잎에 물방울이 맺혔지. 이 물방울을 이슬이라고 해.” “아, 이·슬.”


  차츰 밝고 노랗게 빛나는 햇살을 올려다보다가는, 마당 빙 둘러 자라는 들풀에 맺힌 이슬을 함께 내려다봅니다. 아이는 한손을 휘휘 저으며 손가락마다 이슬을 붙입니다. 풀잎 이슬을 아이 손가락으로 옮기는 이슬놀이를 합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와 이불을 빨래합니다. 손으로 비누를 바르고 비빔질을 하다가 빨래기계에 넣습니다. 아버지는 아이한테 ‘빨래기계’라 말하기에,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는 ‘빨래기계’라는 말을 익힙니다. 우리 시골집에 나들이하는 다른 분들은 우리 식구가 드디어 ‘세탁기(洗濯機)’를 들이며 손빨래에서 벗어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 아이는 바깥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는 ‘세탁기’라는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익힙니다.


  아이 어머니가 당근을 갈아서 잔에 담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당근즙(-汁)’이라 말하면 아이는 ‘당근즙’이라는 말을 들으며 배웁니다. 아이 어머니가 ‘당근 간 물’이라 말하면 아이는 새삼스레 ‘당근 간 물’이라 들으며 배웁니다.


  아이는 “나 밥 먹을래.” 하고 말합니다. 아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늘 ‘밥’을 먹기 때문입니다.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느 때에 “자, 우리 식사(食事)하자.”처럼 말했다면, 아이는 “나 식사 할래.” 하고 말하겠지요.


  얼마 앞서 읽은 책 《어머니전》(호미,2012)을 생각합니다. 《어머니전》이라는 이야기책은 섬마을 두루 도는 분이 섬마을 할머니들 삶을 조곤조곤 여쭙고 들은 말마디를 하나하나 아로새깁니다. 25쪽을 보면, “첫 숟갈에 배부를까. 방죽을 파 놔야 머구리(개구리)가 뛰어들제. 그물코도 삼천 코면 걸릴 날 있다고, 차분히 맘먹고 사시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43쪽을 보면, “마도를 똥막대기 만든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섬마을 할머니, 곧 ‘섬할매’ 입에서는 “첫 숟갈에 배부를까”라든지 “방죽을 파놔야 머구리가 뛰어들제”라든지 “그물코도 삼천 코면 걸릴 날 있다고”라든지 “똥막대기 만든다”라든지, 당신들 살아오며 몸으로 겪은 말마디가 톡톡 튀어나옵니다. 하나둘 샘솟습니다.


  한국말을 살피는 학자들은 섬할매 말마디를 으레 ‘속담(俗談)’이라든지 ‘격언(格言)’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리킵니다. 또다른 이름으로 ‘상말(常-)’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상말’ 뜻을 찾아보면 “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이라 나옵니다. 여느 사람들이 으레(常) 쓰는 말이기에 ‘상말’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여느 사람들이 으레 쓰는 말이 “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이라 합니다. ‘상(常)스러운’이란 무슨 뜻일까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상스러운 말’이란 어떤 말일까요? ‘상스럽다’는 “말이나 행동이 보기에 천하고 교양이 없다”를 뜻한다 합니다. ‘속담’이란 “속된(俗) 말(談)”을 가리킵니다. ‘속되다’는 “(1)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 (2) 평범하고 세속적이다”를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 살피는 학자들 학문에 따른다면, 섬할매들 말마디는 ‘속되거나 상스러운 말’인 셈이요, 낮고 나쁜 말이라 일컫는 셈입니다.


  섬마을 두루 도는 어느 분이 섬마을 할매들을 만나지 않고, 서울이나 부산에서 교수님이나 학자님을 만났더라면 아마 ‘속담’이나 ‘상말’이 아닌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를 으레 들었으리라 봅니다. 이녁이 책을 낼 때에도 이녁 책에는 고사성어와 사자성어가 가득하리라 생각합니다.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란 ‘한자로 엮은 말’입니다. ‘고사성어’는 ‘중국 옛일을 한자로 적은 말’이요, ‘사자성어’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자 넉 자로 적은 말’이에요.


  아이들은 늘 배웁니다. 아이들은 둘레 어른들이 나누는 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아가면 전라남도 고흥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경상남도 통영에서 살아가면 경상남도 통영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시골할매하고 만나며 살아가면 아이들은 시골할매 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면 아이들은 학원 강사나 학교 교사 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면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말을 듣고 배웁니다.


  어른들도 노상 배웁니다. 어른들 스스로 어디를 일터로 삼느냐에 따라 어른들 스스로 듣고 배우는 말이 달라집니다. 어른들 스스로 찾아 읽는 책이나 신문이나 잡지에 따라 어른들 스스로 읽고 배우는 말이 바뀝니다.


  고장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고장말을 듣고 익힙니다. 사자성어나 고사성어 같은 한자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사자성어나 고사성어 같은 한자말을 익숙하게 여기며 익숙하게 씁니다. 영어를 으레 듣고 자라는 아이는 영어를 으레 받아들이며 영어로 아이 생각을 밝히며 살아갑니다.


  고운 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고운 말로 생각하며 이야기를 꽃피웁니다. 맑은 글을 읽고 자라는 아이는 맑은 글로 생각을 키우며 사랑을 나눕니다. 살가운 말을 들으며 자라는 아이는 살가운 말로 생각하며 꿈을 이룹니다. 따스한 글을 읽고 자라는 아이는 따스한 글로 생각을 돌보며 믿음을 다스립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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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21 13:23   좋아요 0 | URL
어머, 이뻐라,
벼리가 '왜 새가 은지은지 해요?' 하던가요?
그렇게도 들리는구나... 하기사, 짹짹 삐약삐약 등 하나의 말로 한정짓기엔
너무 아까운 아름다운 소리잖아요.

댓글 달면서, '한정짓기엔'을 우리말로 풀어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망설이는데
생각나질 않아요. 가르쳐주세요, 된장님.

파란놀 2012-05-22 04:47   좋아요 0 | URL
'뭉뚱그리다'라 하면 돼요.

또는 "삐약삐약 같은 말로만 적기엔"처럼 적어도 되고요.

토씨 '-만'이 있으니
알맞게 잘 살리면 됩니다~

hnine 2012-05-21 15:51   좋아요 0 | URL
지난 번에 읽은 이정록 시인의 책에도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는 대목은 저도 모르게 따라 읽어보게 되던데요. 이 책도 그럴 것 같아요. Thanks to하고 구입합니다 ^^

파란놀 2012-05-22 04:46   좋아요 0 | URL
어머니전 장만하시는가 봐요?
오오~
아무쪼록 즐거이 누려 주시리라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