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 - 어떻게 낳을까 고민하는 예비 엄마를 위한 임신 출산 포토 에세이
오오노 아키코 지음, 이명주 옮김, 미야자키 마사코 사진 / 브렌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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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입니까
 [찾아 읽는 사진책 57] 미야자키 마사코,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브렌즈,2010)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브렌즈,2010)은 사진책이라 할 수 있으나, 사진책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이 쓴 글이 바탕이 되니, 여느 글책이라 할 수 있는데, 오오노 아키코 님 글은 이녁이 꾸리는 조산소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기와 아기를 낳는 어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미야자키 마사코 님 사진이 어우러지면서 빛을 냅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찬찬히 읽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 이 책을 만났거나 옆지기하고 살기 앞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첫째는 2008년 8월에 태어났고 둘째는 2011년 5월에 태어났습니다. 이 책은 2010년에 나왔어도 나는 201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옆지기랑 한참 살아간 뒤, 두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이 책을 읽습니다.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은 ‘아기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한테 아픔이나 생채기가 되지 않을 아기낳기’를 꿈꿉니다. 아니, 아픔이나 생채기가 되지 않을 아기낳기가 아닌 ‘기쁨이나 사랑이 될 아기낳기’를 꿈꾸어요.

 

 

 

 

 

 

 

 

 “평평한 분만대에 누워 진통촉진제를 맞았고 간호사가 내 배에 올라타 아이를 밀어냈다. 지금도 생생한 그때의 감정을 말로는 잘 표현할 수가 없다. 경악과 공포, 그리고 이제껏 맛본 적 없는 비애라고나 할까. 아이를 낳았다는 감동 따위는 없었고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뿐이었다(15∼16쪽).” 하는 아픔과 생채기를 받았기에 스스로 조산소를 연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입니다. 이와 같은 삶인 오오노 아키코 님 곁에서 아기랑 아기 어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미야자키 마사코 님이라면 ‘바라보는 눈길’이 사뭇 다르겠지요. 바라보는 사람을 헤아리는 넋 또한 다르겠지요.

 

 이야기책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읽는 내내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아니, 한 가지를 아주 깊이 생각합니다. 미야자키 마사코 님은 누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입니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오노 아키코 님은 누구를 바라보며 아기를 받는 사람입니까, 하고 생각합니다. 곧, 나는 어떤 사람들하고 살붙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옆지기는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에 사랑스러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대체 어떤 출산 과정을 거쳐 태어났을까. 그 부모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녀를 키웠을까 … 엄마가 되기로 한 여성이 모성을 키워 가는 데 방해받지 않는 출산이 필요하다(38∼39쪽).” 하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기를 돌보아 씩씩하고 튼튼한 사람으로 보살필 수 없습니다. 곧, 사랑이 아니고서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노래를 부를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영화를 찍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바탕이랑 오로지 사랑이에요.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진쟁이 스스로 사랑을 깨닫도록 이끄는 사람인 셈입니다. 사진을 읽으며 말하는 사람은 사진쟁이가 사진에 담은 사랑이 어떠한 결과 무늬인가 하고 느끼면서 널리 나누려는 사람인 셈이에요.

 

 “출산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귀하게 대접받음으로써 얻는 안도감이 어린 생명을 소중히 보살필 수 있는 힘을 키워 준다 … 이번에 출산한 산과의사가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제왕절개를 선택했다면 나중에 임상에서 직면하게 될 출산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기다림을 선택할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131, 170쪽).” 하는 말마디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겪지 않는대서 모를 수 없다지만, 겪을 때와 겪지 않을 때는 달라요. 머리로만 알 때하고 몸으로 맞아들일 때는 다릅니다. 마음 깊이 사랑을 담아 생각할 때와 머리로 얼핏 생각할 때와는 달라요.

 

 어버이가 아이를 쓰다듬는 손길과 아이가 어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을 몸으로 느껴 볼 때하고 머리로 생각할 때에는 사뭇 다를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내 손으로 떠서 먹을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어버이나 아이 손으로 받아 먹을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할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은 기운으로 하루를 씩씩하게 살아갈 때, 이러한 삶을 스스로 겪지 않고 머리로 생각해서만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꿈속 이야기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인 사랑입니다. 머나먼 데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바로 내 곁에서 이루어지는 일인 사랑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찍기는 내가 어디에 서서 누구를 바라보며 어떠한 넋으로 무슨 이야기를 이루고 싶은가 하는 마음을 담는 일이 됩니다.

 

 “그런 특별한 명칭이나 이치를 공부했다고 해서 엄마가 아기를 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아기를 엄마가 가슴에 안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 사랑 없이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사랑을 받았습니다(181, 275쪽).” 하는 말을 되새깁니다. 글을 쓴 오오노 아키코 님 말로 그치지는 않겠지요. 이 책에 사진을 담은 미야자키 마사코 님 ‘사진 찍는 손길’로 고스란히 이어지겠지요.

 

 “분유 성분이 꾸준히 개량되어 모유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분유를 개량하는 목표가 모유와 같아지기 위해서인 이상, 모유보다 좋을 수는 없다(241쪽).” 하는 이야기는 아기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길에서만 나누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을 왜 찍을까요. 사진은 나한테 어떻게 스며들까요. ‘더 나은’ 사진이란 있을까요. ‘좋은’ 사진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나요.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은 아기를 함께 낳는 시인입니다. 산과의사이면서 시인이기 때문에 “임신 기간이 8개월 정도 되니 자연히 계절이 바뀝니다. 그렇게 매일 걷다 보면 어제는 피지 않았던 꽃이 피고, 바람 냄새가 달라지고, 하늘 색도 변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자동차로 다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 자전거를 타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260쪽).” 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기 낳는 사람들 곁에서 사진을 찍어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함께 빚은 미야자키 마사코 님 또한 사진쟁이이면서 시인입니다. 시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문득 오늘 이 나라 삶을 돌아보면, 이야기책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에 실린 사진은 너무 슬프면서 부럽고 아픕니다.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는 곁에 아버지가 있도록 하는 병원을 찾아보기 몹시 힘들거든요.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는 곁에 있는 아버지나 살붙이가 사진기를 들고 ‘놀랍고 아름다우며 고맙고 사랑스러운 빛줄기’를 사진으로 갈무리하는 꿈을 이끌도록 따순 손길을 펼치는 산과의사를 만나기 아주 힘들거든요. 아니, 사진찍기에 앞서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따사로이 쥐며 아기를 만나도록 돕는 산과의사는 어디에 몇이나 있을까요. 어머니 둘레에 어머니를 보살필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힘을 북돋운다면, 한국땅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는 어떤 몸짓 매무새 눈길 손길 마음자락이 되어 새 아기를 받으려 할까요.

 

 한국에서도 ‘아기를 맞이합니다’ 하는 이야기로 사진 실타래를 솔솔 풀 사진쟁이 한 사람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예 없지 않겠지요. 어디에선가 구슬땀을 흘리겠지요. 어느 곳에선가 눈물과 웃음을 함께 지으면서 빛나는 사진삶 이루겠지요. (4345.2.8.물.ㅎㄲㅅㄱ)


―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 (미야자키 마사코 사진,오오노 아키코 글,이명주 옮김,브렌즈 펴냄,2010.12.2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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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주란 목소리

 


 노래 하나로 살아온 사람 목소리를 가만히 새겨듣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 한 줄에 이녁 온삶을 바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 한 장에 당신 온꿈을 싣는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 한 칸에 스스로 누린 온사랑 빚는다.

 

 노랫말에, 노랫가락에, 노래를 읊조리는 몸짓에, 삶도 꿈도 사랑도 담지 못한다면, 이이를 노래꾼이라 일컬을 수 없다. 글줄에, 글자락에, 글을 쓰는 손길에, 삶도 꿈도 사랑도 싣지 못한다면, 이이를 글꾼이라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길까.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길까.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말이 몹시 못마땅했다. 어떻게 보아도 올바르지 않다고 느꼈다. 사람이 어찌 이름을 남기나. 사람은 삶을 좋아하며 즐기고 누린 사랑을 남긴다. 사람은 삶을 좋아하며 즐기고 누린 사랑을 함께한 사람하고 어깨동무한 넋을 남긴다.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 그러나, 사람이 이름을 남긴들 무엇 하나. 이름이 얼마나 값지다고 이름을 남기나. 사람한테는 이름 아닌 사랑과 넋이 아름답고 대수롭다.

 

 범한테는 무엇이 아름답거나 대수로울까. 범한테 가죽이 아름답거나 대수로울까.

 

 나는 이 옛말 아닌 옛말이 더없이 거슬렸다. 범한테는 제 새끼가 아름답거나 대수롭지 않은가. 범은 죽어 새끼를 남기지 않을까.

 

 나무는 죽어 씨앗을 남긴다. 풀도 죽으며 씨앗을 남긴다. 모든 목숨은 제 온 삶이랑 사랑이랑 꿈을 담은 목숨씨를 남긴다. 목숨씨를 건사하는 넋을 함께 남긴다.

 

 노래꾼 문주란 님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문주란 님은 구비구비 걸어온 나날을 당신 목소리에 애틋하게 담았구나. 문주란 님은 웃고 울며 부대낀 하루를 이녁 목소리에 고이 실었구나. 문주란 님은 참말 사랑하고 아끼는 노래넋을 문주란 님 노래결에 찬찬히 아로새기는구나. (4345.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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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2-08 13:49   좋아요 0 | URL
ㅎ,ㅎ...문주란이요?
저 문주란 '동숙의 노래' 알아요.
좀 좋아하죠.
따라는 부르는데, 혼자는 저얼때 못 부르는 노래요~^^

파란놀 2012-02-08 16:30   좋아요 0 | URL
문주란 님이 "나야 나"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트로트가수다에서)
아주 훌륭하게 부르셨어요.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어 보셔요.
저는 '적우'라는 분한테
이와 같은 노래와 힘과 소리를 바랐답니다..
 


 군내버스 책읽기

 


 읍내마실을 아주 오랜만에 혼자 다녀왔다. 으레 네 식구 함께 다녀오고, 적어도 첫째 아이랑 함께 다녀오는데, 그제는 나 혼자 가방을 꾸려 버스 때에 맞추어 헐레벌떡 달려나갔다.

 

 혼자 다녀오는 길이라 책 한 권 가방에 넣는다. 버스삯 1500원을 치르고 자리에 앉는다. 장날이 아닌 여느 날 한낮에 군내버스를 타면 자리가 널널하다. 한쪽에 느긋하게 앉아 책을 꺼낸다. 구비구비 시골길을 도는 버스 움직임에 맞추어 창가에 기댄다. 덜덜 흔들리지만 책을 읽는다. 깊이 마음을 기울여 읽을 책이 아닌 훌훌 훑을 책이라 어렵잖이 끝까지 읽어낸다. 20분 버스길에 200쪽쯤 읽었나.

 

 모든 책을 똑같이 읽을 수 없다. 어느 책은 스무 쪽을 읽을 때에 20분이 걸릴 테지만, 참말 어느 책은 200쪽을 읽는 데에 20분조차 남아돈다.

 

 20분 만에 200쪽을 읽어치우자니 머리가 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 아무리 훑어읽기라 하더라도 ‘훑자고 마음을 기울이’며 읽으니까 힘들기 마련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에는 아이들이 꽤 많이 탄다. 낮에서 저녁으로 바뀔 무렵, 읍내 중·고등학교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저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모두들 이 버스를 놓치면 집에 못 간다. 그러니, 아이들 학교 마치는 때에는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서서 간다.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가득 담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손잡이를 잡으며 생각한다. 이 군내버스를 타고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 가운데 책을 펼치는 아이가 있을까. 굳이 종이책을 펼쳐야 책읽기는 아닐 테니까, 버스 창문 바깥으로 펼쳐지는 들판과 멧자락과 바다를 바라보며 삶읽기를 하기도 할 테지. 이 시골 아이들은 집에서 시골마을 아이답게 흙을 만지거나 밟거나 보살피며 살아갈까. 이 아이들 어버이는 시골마을 어른답게 흙을 돌보거나 다루거나 아끼며 살아갈까.

 

 숲 사이를 달리는 버스일 때에는 종이책을 펼치지 못한다. 바닷가를 달리는 버스일 때에는 종이책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파란 빛깔 눈부신 하늘을 느끼는 버스일 때에는 종이책을 살피지 못한다. 푸른 들판과 누런 들판 아리따운 사이를 달리는 버스일 때에는 종이책을 꺼내지 못한다.

 

 도시에서 살아가자면 종이책을 안 읽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종이로 빚은 책에 서린 나무 내음을 맡는다. 종이로 엮은 책에 담긴 나무들 뿌리내리던 흙 내음을 헤아린다. 종이로 이룬 책에 깃든 나뭇줄기 곱게 받던 햇살조각 꿈꾼다. (4345.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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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08 13:09   좋아요 0 | URL
윽~차멀미 심하게 하는 저는 책읽는 건 엄두도 못 일이죠.
이어폰 꽂고 영어 강의나 음악도 못 들어요.
그나마 제가 직접 운전할 때는 멀미 안 나니 다행이죠^^;
멀미가 아니더라도 저는 차 타고는 책 안 볼거예요.
차 타면 풍경 감상해야죠!
경치(시골 경치면 더 좋지만 도시라도 괜찮아요)보면서
내 마음도 물 흐르듯이 술술 정리되고 얼마나 좋아요^^

파란놀 2012-02-08 17:44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스스로 몰면 멀미를 안 하지만
남이 몰면 으레 멀미를 한다더라고요.

그만큼 차가 사람 몸에 안 좋다는 뜻이
아니랴 싶어요... ㅠ.ㅜ

sslmo 2012-02-08 13:55   좋아요 0 | URL
전 제가 운전할때 빼고는 차멀미를 심하게 해서...책읽는 건 상상도 못해요.

근데, 숲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파란 하늘이라면...
책이 없이도 황홀하겠는걸요.
아니, 제대로 멀미 나려나?

잘 지내시죠?^^

파란놀 2012-02-08 17:43   좋아요 0 | URL
언제나 해롱거리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흠...
 
봄을 찾은 할아버지
한태희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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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긴 겨울이 가고 긴긴 봄이 오겠지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6] 한태희, 《봄을 찾은 할아버지》(한림출판사,2011)

 


 겨울은 막바지로 흐릅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한 해 가운데 2월이 겨울 막바지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을 지내고 겨울을 기다리던 사람은 이제 겨울을 얼마쯤 누리고서는 아쉽게 떠나 보냅니다.

 

 겨울이 겨울인 까닭은 추위로 온누리를 꽁꽁 얼리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추운 철이요, 춥지 않고서야 겨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춥지 않은 겨울이 되면 뒤틀린 철이며 날씨인 탓에, 온누리 또한 뒤틀리고 말아요.

 

 봄은 따스해야 봄입니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입니다. 가을은 시원해야 가을입니다. 철마다 다른 빛이요 다른 삶이며 다른 꿈입니다. 모든 씨앗은 겨우내 고이 쉬거나 잠들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모든 씨앗은 봄을 맞이해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립니다. 모든 씨앗은 여름에 흐드러진 잎사귀를 뽐내어 꽃을 피우고는, 가을날 열매와 새로운 씨앗을 맺어요.


..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짚신을 삼거나 바느질을 하면서 춥고 긴 겨울을 보냈습니다. 먹을 것은 넉넉해서 걱정이 없었지만 늘 집 안에만 있으려니 참으로 지루했어요 ..  (7쪽)

 

 


 내 마음도 철과 같이 흘러, 어느 때에는 봄이요 어느 때에는 겨울입니다. 내 마음이 포근하게 넓은 날이 있으나, 내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차디찬 날이 있습니다. 흐르는 날처럼 움직이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낄 만하지만, 내 마음이 서늘하거나 차갑거나 시릴 때에는 몹시 답답합니다. 나는 왜 서늘한 마음 차가운 마음 시린 마음으로 살아야 하나요. 언제나 봄으로 살아갈 수 없을 터이나, 한겨울에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우는 겨울꽃 겨울풀처럼, 나는 한결같이 포근하면서 따사로운 넋으로 살아갈 때에 한껏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추위가 모두 걷히고 나면 땅뙈기에 삽이 잘 들어가겠지요. 포근한 날씨가 온 땅을 따사로이 감싸면, 논도 밭도 삽이나 괭이로 쪼면서 갈아엎을 수 있겠지요.

 

 한겨울에는 삽질을 하기 힘듭니다. 얼어붙은 땅뙈기는 삽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마, 얼어붙은 겉흙 밑에는 포근한 속흙이 흙벌레들을 고이 감쌀는지 몰라요. 겨울잠을 포근히 자라며 따사로이 보듬을는지 몰라요.

 

 흙벌레도 풀벌레도 모두 고요한 겨울입니다. 늦가을과 이른겨울까지 노래하던 흙벌레와 풀벌레는 한겨울로 접어들며 모두 소리를 죽입니다. 새봄이 찾아오고 한참 있어야 비로소 기지개를 켭니다. 무당벌레도 겨울을 나고 사마귀알도 겨울을 견딥니다. 누렇게 말라죽은 풀이 가득한 들판은 머잖아 푸른 빛깔 새 옷을 입습니다. 말라죽은 풀은 새로 돋아날 풀이 씩씩하게 자라날 좋은 밥이 됩니다. 한 삶이 흘러 다른 한 삶이 찾아옵니다.


.. “꿩아, 꿩아! 예쁜 꿩아! 주먹밥 하나 줄 테니 봄이 어디 있는지 알면 가르쳐다구!” 할아버지가 주신 주먹밥을 맛있게 먹고, 꿩이 말했습니다. “나도 봄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  (20쪽)

 

 


 한태희 님이 빚은 그림책 《봄을 찾은 할아버지》(한림출판사,2011)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젖습니다. 겨울이 얼마나 길다고 봄을 찾으러 길을 떠날까? 할아버지가 이제껏 한두 해 살아오지 않았을 텐데, 할머니가 말리는 손길을 뿌리치며 애써 봄맞이 길을 떠나야 하는 까닭이 있을까?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겨우내 쉽니다. 흙도 쉬고 푸나무도 쉬며 사람도 쉽니다. 가을까지 바지런히 일하며 겨우내 쉴 밥과 옷과 집을 갈무리합니다. 쉬는 동안 짚신도 삼으나 바구니도 짜고 새로운 봄부터 쓸 온갖 연장을 마련합니다. 힘껏 움직인 몸이 새롭게 움직이도록 차근차근 다스리고 돌봅니다.

 

 그런데, 멧골짜기 흙일꾼 살림집에 할머니랑 할아버지 둘만 있습니다. 당신 아이들이 없고, 당신 아이들이 낳았을 아이들이 없습니다. 오직 둘만 남습니다.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요. 아이가 없는 두 늙은 흙일꾼일까요. 아이가 있으나 아이들은 멀리멀리 다른 데로 시집장가를 가서 기나긴 겨우내 한 차례조차 안 찾아올까요. 아이들을 그리던 나머지 봄이라도 부르고 싶어 애먼 길을 나서야 했을까요. 늙은 두 사람만 호젓하게 남는 멧골집이란 오늘날 이야기 아닌 멀디먼 옛날 옛적 이야기일까요.


.. 쏟아져 내리는 눈 때문에 할아버지는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따뜻한 봄을 집으로 가져갈 수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  (23쪽)

 

 


 봄은 억지로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봄뿐 아니라 여름도 억지스레 찾아들이지 못합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악지스레 잡아당기지 못합니다. 겨울이라 해서 악지로 몰아내지 못합니다. 날과 달과 철이 얼크러지며 흐르는 하루예요. 고마운 추위가 있어 고마운 더위가 있고, 고마운 바람이 있어 고마운 햇살이 있습니다. 기나긴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을 누린 사람들은 기나긴 겨울날 오순도순 모여 앉아 기나긴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손바닥과 발가락과 볼과 가슴에 찬찬히 새긴 이야기꾸러미를 저마다 살포시 풀어놓습니다.

 

 새로운 봄은 새로운 바람과 함께 새롭게 찾아옵니다. 새로운 꽃은 새로운 햇살과 나란히 새로운 빛을 뽐내며 찾아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멧골집에서 하얀 눈나라 마음껏 누리면서 고구마를 불에 익혀 자셔요. 고구마가 동이 날 무렵 바야흐로 무지개빛으로 예쁘게 차려입은 봄이 인사하러 올 테니까요.


 따스한 햇볕 아래 매화꽃이 한 줄기 탐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 따스한 햇볕을 쬐며 매화꽃이 한 줄기 활짝 피었습니다

 

 향기로운 꽃내음에 취해 어지러울 때
→ 향긋한 꽃내음에 홀려 어지러울 때

 

 아이가 다가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 아이가 다가와 할아버지 손을 잡았습니다

 

 꽃향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꽃내음이 차츰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제야 슬며시 후회가 되었어요
→ 그제야 슬며시 뉘우쳤어요


 그림책 《봄을 찾은 할아버지》를 아이와 함께 읽다가 곳곳에 금을 죽죽 긋고는 새말을 적어 넣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혼자 이 그림책을 읽는다 하면, 새봄과 같은 말을 살피며 마음속 깊이 고운 말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새말을 적바림합니다.

 

 

 

 매화꽃이든 개나리꽃이든 “햇볕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어디가 아래이고 어디가 위일까요. 꽃이든 나무이든 풀이든 “햇볕을 쬐”거나 “햇볕을 받”습니다. 꽃은 ‘활짝’ 핍니다. 한자말 ‘향기(香氣)’는 “좋은 냄새”를 뜻합니다. “향기로운 꽃내음”은 알맞지 않아요. “짙은 꽃내음”이라 하거나 “향긋한 꽃내음”이라 해야 알맞습니다. 그림책 맨끝에서는 ‘꽃내음’이라 적지만, 그림책 곳곳에서는 ‘꽃향기’로 적는데, 이 대목은 알뜰히 추슬러야겠습니다. 우리 말은 ‘점점(漸漸)’이 아닌 ‘조금씩-차츰-천천히-찬찬히’입니다. 아이들 읽을 그림책이라 한다면 ‘후회(後悔)’보다는 “뉘우치다”라는 낱말을 넣을 때에 알맞으리라 생각해요. 멧골짝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떠한 말을 나누며 살았을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면서 그림책 말마디를 다스리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을 살피면, 11쪽에는 까망고양이가 나오지만, 맨 뒷자리 속종이에는 까망개로 나옵니다. 33쪽 춤추는 할아버지 곁에서 기지개 켜는 짐승도 고양이보다는 개로 보입니다. 고양이 수염을 안 그렸고, 얼굴도 개 모양입니다. 11쪽 벽에서 사라진 옥수수가 33쪽에는 다시 나옵니다. 깜빡 잊을 수 있을 텐데, 그림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면 좋겠습니다. (4345.2.8.물.ㅎㄲㅅㄱ)


― 봄을 찾은 할아버지 (한태희 글·그림,한림출판사 펴냄,2011.3.30./11000원)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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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줌싸개 책읽기

 


 아버지랑 자전거를 함께 타고 면내마실을 다녀온 첫째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수레에서 사르르 잠들었다. 잠든 아이를 헤아리며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집에 닿은 다음, 아이를 품에 안아 내려서는 자리에 곱게 누인다. 두 시간 즈음 새근새근 자던 아이는 으앙 울면서 잠에서 깬다. 잠에서 깬 아이는 잠자리에 쉬를 했다. 이불에 오줌 자국 흥건히 남기고는 쉬 마렵다며 오줌그릇에 쉬를 더 눈다. 둘째 오줌기저귀랑 옷가지를 한창 빨래할 무렵 깬 첫째는 오줌으로 젖은 바지랑 속바지랑 속옷을 내놓는다. 한 차례 빨래를 끝냈으니 더 빨래하지는 않기로 한다. 나도 쉬고 싶으니까. 밤에 잠들 무렵, 또는 새벽에 하자고 생각한다. 다 마친 빨래를 옷걸이에 꿰어 방에 넌다. 빨래널기를 하며, 그래 이렇게 자다가 쉬를 누는 우리 집 아이는 아직 아이인걸, 아이는 아이답게 무럭무럭 자라며 꿈을 꾸도록 어버이가 더 따스하게 보살펴야지, 하고 되뇐다. 오줌싸개 이름을 훌훌 털어낼 때에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사랑을 나누는 사람으로 우뚝 설까. (4345.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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