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648) 심리적 7 : 심리적 캐어

 

난 슈우헤이에게 심리적 캐어를 해 주지 않았다. 안아 주는 것도
《이시키 마코토/손희정 옮김-피아노의 숲 (20)》(삼양출판사,2012) 48쪽

 

  ‘캐어(care)’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합니다. 워낙 곳곳에 이 영어를 자주 쓰는구나 싶거든요. ‘스킨 캐어’라든지 ‘에듀 캐어’라든지 쓰기도 하는데, 이 영어가 얼마나 알맞거나 쓸모있는지 아리송해요. 영어사전을 뒤적입니다. “(1) 돌봄, 보살핌 (2) 조심, 주의 (3) 걱정, 염려” 이렇게 풀이합니다. 곧, “돌봄, 살핌, 걱정” 이렇게 세 갈래로 쓰는 영어라는 소리입니다.


  “안아 주는 것도”는 “안아 주지도”로 다듬습니다.

 

 심리적 케어를 해 주지 않았다
→ 마음을 달래 주지 않았다
→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않았다
→ 마음 달래기를 해 주지 않았다
 …

 

  일본사람이 쓴 “心理的 care”라는 말을 곱씹습니다. 일본만화를 한국말로 옮기며 이 낱말을 한글로 적기는 했으나 한국말답게 풀어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한국땅에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영어 ‘캐어’를 흔히 쓰기 때문이요, ‘심리적’이라는 중국말(또는 일본말)을 널리 쓰기 때문이리라 봅니다.


  힘든 일을 겪으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지칩니다. 몸과 마음이 고단하거나 힘들 때에는 곁에서 몸을 풀어 주고 마음을 달래 줄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가 있어야 합니다. 곁에 좋은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가 없다면, 힘든 이는 더 힘듭니다. 지친 이는 다시 기운을 차리기 어렵고, 고단하거나 아픈 이는 고단함과 아픔을 그예 쟁이기만 합니다.

 

 난 슈우헤이를 달래 주지 않았다
 난 슈우헤이가 얼마나 힘들는지 헤아리지 않았다
 난 슈우헤이를 따스히 보듬어 주지 않았다

 

  슬픔을 나누고 아픔을 덜어 줍니다. 고단함을 풀고 응어리를 녹입니다. 따스히 보듬고 포근하게 감쌉니다. 너그러이 헤아리고 아늑하게 품습니다.


  아이가 힘겨운 일을 겪을 때에 걱정하지 말라며 따스히 말 한 마디 건넵니다. 아이가 고단한 일을 치를 적에 앞으로는 한결 나아질 테니 마음을 놓으라고 살가이 얼싸안습니다.


  내 넋을 살찌울 만한 고운 말마디가 되도록 북돋웁니다. 내 사랑을 꽃피우는 좋은 글줄이 되게끔 찬찬히 어루만집니다.  (4345.3.10.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난 슈우헤이 마음을 달래 주지 않았다. 안아 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히스토리에 Historie 2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꿈을 꾸는 사람들
 [만화책 즐겨읽기 127] 이와아키 히토시, 《히스토리에 (2)》

 


  아직 옆지기를 만나지 않던 지난날,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옆지기를 만나며 함께 살아가면서도, 처음에는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옆지기가 아이를 밴 뒤로, 곧 태어날 아이하고 어떤 나날을 빚으면서 이 아이가 어떤 보금자리를 누려야 좋을까를 슬기로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닌 다음 그만두었습니다. 옆지기는 고등학교를 두 해 즈음 다닐 무렵 그만두었습니다. 나는 대학생이나 되어서 겨우 학교교육이 얼마나 부질없을 뿐 아니라 쓸데없는데다가 내 아름다운 나날을 덧없이 흘려 보내는가를 깨달아 그만두었습니다. 옆지기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일찌감치 학교교육 올가미를 깨달아 슬기롭게 그만두었습니다.


  학교 안쪽에서는 스승도 벗도 길라잡이도 이슬떨이도 찾을 수 없었고, 언제나 학교 바깥에서 스승과 벗과 길라잡이와 이슬떨이를 마주했습니다. 책 안쪽에서는 스승이나 벗이나 길라잡이나 이슬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책 바깥쪽에서는 스승이나 벗이나 길라잡이나 이슬떨이를 찾곤 했어요.


  대학교를 그만둔 나는 학교 울타리에서 안 가르치는 이야기를 스스로 찾아내어 알고 싶어 도서관이랑 헌책방이랑 새책방을 날마다 여러 곳 여러 시간 돌아다니며 책을 손에 쥐었습니다. 아직 대학교를 다닐 적에는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서 새벽 두 시부터 신문을 돌리며 이웃 신문사지국에서 다른 신문을 내 신문이랑 바꾸고는, 새벽 다섯 시부터 아침 일곱 시까지 10대 중앙일간지라 하는 신문을 읽었습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여덟 시까지는 밥을 해서 지국 형들이랑 함께 먹었고, 이때부터 한두 시간은 글쓰기를 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 갈무리하는 알바를 하며 쉴 참에 책을 읽었고, 낮밥 때에는 끼니를 굶으며 헌책방 한 군데 들러 책을 읽다가는, 다시 도서관 알바를 하거나 구내서점 알바를 한 뒤, 저녁에 일을 다 마치면 다른 헌책방 한 곳을 들러 책을 읽었어요.


  수많은 책을 때와 곳을 넘나들어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구석구석 샅샅이 짚는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몹시 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교 도서관에 책이 참 많으나, 이 책 가운데 애써 들출 까닭이 없는 종이쓰레기가 많을 뿐 아니라, 구지레한 졸업장이나 자격증 같은 데에 치우친 자료뭉치도 많다고. 헌책방마다 그득그득 쌓인 책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안 알아보며 죽은 슬프며 안타까운 책이 몹시 많지만, 사람들이 애써 읽을 만한 알맹이나 값어치가 하나도 안 보이는데 참 많이 팔리고 참 많이 읽힌 책도 많다고. 새책방에 날마다 수없이 들어오는 새책을 마주하며 생각했습니다. 이 많은 새책들은 얼마나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를 담은 책일까 하고.


- “사과하자! 같이 잘못했다고 빌자!” “훗. 괜찮아, 토르미데스. 이런 녀석한텐 안 져.” (11쪽)
- “너 대체 왜 그래? 손을! 한쪽 손을 올리면 항복했단 뜻이잖아! 거기서 끝내야지!” “뭐야. 그럼 그렇다고 먼저 가르쳐 줬어야지.” (22쪽)


  나는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책을 살짝 가까이하다가는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책을 아주 가까이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부터는 그예 책하고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라 할 만합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지내는 오늘까지도 책이랑 함께 살아가는 몸이라 할 수 있어요.


  이처럼 책하고 사귀는 동안 꼭 한 가지를 늘 떠올립니다. 책이란 참 덧없구나.


  누군가 나한테 ‘당신은 책을 참 많이 읽는데, 이 가운데 훌륭한 책을 꼽으라면 어느 책을 들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면, ‘난 어떠한 책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책 가운데 나를 일깨운 스승은 하나도 없어요.’ 하고 대꾸해요. 예나 이제나 늘 같아요. 몇몇 분들 책이 ‘읽을 만하다’고는 여기지만 ‘훌륭하다’거나 ‘아름답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옆지기와 함께 살아가며 아이를 낳을 때, 내가 아이한테 해 줄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일이란, 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일이라고 느꼈어요.


  책이나 학문이나 지식이나 자격증이나 졸업장처럼 우스꽝스러운 굴레에 얽히지 않는 홀가분하면서 어여쁘고 착한 길을 참답고 슬기로이 걸을 수 있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어요.


- “그래도 이 가문을 잇는 건 역시 장자인 히에로뉴모스다. 앞으로 네 입장에선 불만스러운 일도 많이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쪼록 네 못난 형의 힘이 되어 주거라. 알았지?” (37쪽)
- “아니, 이 녀석이, 도련님을 그냥 이름으로.” “괜찮아. 난 칼데아시의 소유물이지, 히에로뉴모스 가의 물건이 아니니까. 히에로뉴모스에겐 내 품질관리를 책임질 의무가 있어.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지.” (185쪽)


  아버지가 아이 삶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옳게 생각하며 건사하지 못했기에, 예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머니가 찬찬히 생각하며 건사하곤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태어난 아이 기저귀를 빨래하고, 아이 젖떼기밥을 먹이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 똥오줌을 가리도록 하고, 아이를 안고 동네마실을 날마다 몇 시간씩 하고는, 이 아이가 말을 익히도록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말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여러 해 보내면서 둘째를 낳습니다. 이동안 아버지는 모자란 생각을 아주 천천히 되게 굼뜨게 돌봅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서 어떻게 내 삶을 사랑하며 누리겠느냐 하는 생각을 그야말로 천천히 굼뜨게 펼칩니다.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낼 생각이라면 이 아이하고 어찌 살 생각인지 갈피를 잡아야 합니다. 아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누리며 살아갈 때에 즐거운가를 얼마나 생각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얼마나 잘 다스리면서 나부터 좋은 나날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짚어야 합니다.


  생각이 낳는 생각이 좋을 때에 내 삶이 좋거든요. 생각으로 빚는 생각이 차근차근 아름다이 이어져야 비로소 슬기로운 이야기가 꽃피울 테고요.


- ‘그야말로 그것은 내 입장에서, 글자 그대로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속 어딘가 깊은 곳에서는, 분명히 이런 목소리도 들렸다. 아아, 역시 그랬구나.’ (174쪽)
- ‘카론이란 자는 원래가 무표정한 사내로, 그때까지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늘 어딘가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아니면 그의 진짜 미소를 본 건 이것이 처음이었는지도 모른다.’ (186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05) 둘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히스토리에》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는 주인공이지만, 제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는 아이입니다. 첫째 권에서는 주인공 아이가 살아가는 마을 언저리 이야기에서 그치는데, 둘째 권에서는 주인공 아이가 제 뿌리를 알아차립니다. 스스로 캐내어 알아채지는 않고, 둘레에서 억지로 알려줍니다.


  주인공 아이는 참을 깨닫고 거짓을 알아차리면서 썩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꾸던 꿈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깨닫고, 꿈에서 만나던 사람이 바로 ‘어머니(주인공 아이를 붙잡아 양아들로 삼은 양아버지와 부하가, 노예를 얻으려고 온 마을을 뒤지고 다니다가 끔찍하게 뭇칼질을 해대며 죽인 어머니)’인 줄 알아차려요.


  꿈을 깨닫고 알아차린 아이는 차근차근 꿈을 풀이합니다. 차근차근 꿈을 풀이하면서 차근차근 삶을 풀이합니다. 차근차근 삶을 풀이하면서 이 삶을 어떻게 누리며 사랑해야 하는가 하는 대목을 풀이합니다.


  삶은 온통 수수께끼 같으나 수수께끼는 아닙니다. 삶은 온통 웃음인 듯하다가도 눈물이고, 눈물인 듯하다가도 웃음입니다. 무엇이 되풀이될까요. 무엇이 이어질까요. 무엇이 나타날까요. 무엇이 생길까요.


- ‘도서실. 이 창문으로 늘 바깥을 내다보곤 했는데. 지금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뿐. 책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이 방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여러 가지 신화들도, 그냥 그대로 믿었었는데.’ (174쪽)
- ‘다시 보니까 아직 안 읽은 책이 꽤 많네. 새삼스럽긴 하지만. 평생 읽을 수 있는 건 전체 책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 (179쪽)


  맞이하고 싶은 이야기를 꿈으로 꿀까요. 꿈으로 꾸기에 맞이하는 삶이 될까요. 이루고 싶은 이야기이기에 꿈으로만 꿀까요. 날마다 천천히 이루는 일이기에 꿈으로 날마다 꿀까요. 꿈으로 늘 꾸면서 찬찬히 이룰 수 있는 실마리를 생각하고 온몸으로 하나하나 실타래를 붙잡을까요.

  《히스토리에》에 나오는 아이는 책을 꽤 좋아합니다. 노예를 부리는 자리에서 살아가던 때에는 책을 즐겁게 읽습니다. 하루아침에 노예가 된 뒤로는 책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노예를 부리는 자리에서는 홀로 조용히 도서관에 앉아 종이를 넘기며 책을 읽습니다. 스스로 노예로 살아가고부터는 뭇사람과 부대끼고 온 들판과 냇물을 누비면서 푸나무와 하늘과 햇살이 들려주는 노래를 마음책으로 받아먹습니다.


- ‘근처에 굴러다니던 나무조각을 재료로 초짜가, 심지어 지금은 노예가 된 꼬마가 조각해서 만든 물건 따윌 그 애가 받아줄지 어떨지는 심히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한가했던 것이다.’ (194쪽)
- “보통 어린애라면 도와 달라고 울고불고 했겠지만, 넌,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울음을 참았던 거야. 뭐,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대단한 재능이지만 말야.” (209쪽)


  나는 책이란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책으로 빚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책으로 빚고, 삶을 책으로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이야기를 읽는 셈이지만, 이야기란 ‘줄거리’가 아닙니다. 이야기란 꿈이요 사랑이면서 삶입니다. 꿈이 이야기로 드러나고, 사랑이 이야기로 밝혀지며, 삶이 이야기로 꽃피웁니다. 책은 이 세 가지, 꿈과 사랑과 삶을 아름다이 빚는 이야기예요.


  이리하여, 나는 책을 읽으면서 꿈과 사랑과 삶을 생각하는데, 막상 꿈과 사랑과 삶 모두 슬기로이 엮어 아름다이 들려주는 사람이란 매우 드물거나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아요. 모두들 너무 힘들게 살아가거든요. 나도 아직 참 힘들게 살고, 만화쟁이도 참 힘들게 살며, 책마을 일쟁이도, 둘레 사람들도 하나같이 힘들게 살아요.


  즐거이 누리는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곱게 빛내는 사랑이라면 얼마나 기쁠까요. 알차게 영그는 삶이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히스토리에》 둘째 권에서는 꿈을 꾸는 사람을 보여주었으니, 이제 사랑을 밝히는 사람을 다음 권에서 보여줄 수 있는가 하고 기다립니다. (4345.3.9.쇠.ㅎㄲㅅㄱ)


― 히스토리에 2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오경화 옮김,서울문화사 펴냄,2005.5.25./4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끼고 아껴 오늘 저녁 8권을 다 읽고 이제 9권을 주문한다. 금세 읽기 싫어 아주 천천히 읽고 아주 천천히 다음 책을 주문한다. 농사일은 천천히 지어야 하듯 술빚기뿐 아니라 만화 그리기와 글 한 꼭지 쓰는 일 모두 천천히 하는 사람들이 늘기를 빈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나츠코의 술 애장판 9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12년 03월 09일에 저장
품절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읍내 초등학교 사내아이 발차기

 


  읍내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앞서, 초등학교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천 원짜리 얼음과자 하나를 산다. 마침 초등학교 마칠 무렵이라 아이들이 바글바글. 문득 생각하는데, 이 초등학교 앞 편의점은 예전에 편의점 아닌 작은 가게나 문방구가 아니었으랴 싶다. 편의점에서 파는 먹을거리 가운데 ‘초등학생한테 팔 만한 값싸고 작은 먹을거리’가 눈에 아주 잘 뜨이는 자리에 퍽 많이 놓였다.


  나는 갓난쟁이를 안고, 옆지기가 첫째 손을 이끌고 얼음과자를 산다. 나는 문간에 서서 기다린다. 초등학교 어느 사내아이가 동무인 듯한 가시내 가방에 발차기를 한다. 그런데 이 발차기가 바로 내 코앞에서 벌어졌다. 사내아이는 곧장 ‘어른인 내’ 눈치를 본다. 불쑥 한 마디를 내뱉으려다 꾹 참고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다가 눈길을 홱 돌렸다.


  사내아이는 가시내한테 무어라 한 마디를 내뱉으려 한 듯한데 더는 무언가 말하지 못하고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가며 참 우악스러운 개구쟁이 짓을 한다. 이러면서 ‘어른인 내’ 눈치를 자꾸 본다.


  편의점 바깥으로 나온다. 초등학교 나들문을 바라본다. 읍내뿐 아니라 면내 초등학교도 이와 엇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골 초등학교뿐 아니라 도시 초등학교도 이와 매한가지 아니랴 생각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아이 아버지인 내가 짜증스럽거나 뭔가 골을 부릴 때 얼굴을 보면 되게 무서운 낯빛’이라고 옆지기가 들려주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아까 그 초등학교 사내아이도 제 가시내 동무 가방에 발차기를 하다가 코앞에서 ‘덩치 크고 갓난쟁이를 앞에 안은 어른’이 뻔히 쳐다보았으니 불벼락 같은 말에다가 꿀밤이 날아왔을까 하고 두려워하지 않았겠느냐 싶다. 게다가 내가 이 녀석을 바라보며 좀 많이 짜증스럽게 노는구나, 이 따위 녀석이 다 있나, 하고 생각했으니, 내 낯빛은 보나 마나 아주 사나웠겠지.


  그러니까, 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뒤로 한몸을 빼기도 했지만, 저보다 기운센 사람 앞에서는 찍소리를 못하고, 저보다 여린 아이한테는 마구 발차기를 하는 꼴을 보면, 내가 무어라 말을 하거나 꿀밤을 먹이더라도 하나도 달라질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나쁜 일만 쳇바퀴처럼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한다. 읍내마실을 하다가 읍내 도서관 한쪽 걸상에 앉은 옆지기가 둘째한테 젖을 물리면서 나한테 하던 말을 되새긴다. 옆지기는 우리 시골마을에 학교를 하나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학교를 만들고 싶다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택시 일꾼한테 아무렇지 않게 ‘나(아버지)는 시골 도서관을 열고, 옆지기(어머니)는 시골 학교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골 도서관지기로 살아갈 테고, 옆지기는 시골 학교지기로 살아가리라는 생각이 아주 굳어진다.


  우리 아이들부터 바보스레 자라기를 바라지 않으니까.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을 누리는 또래 아이들 누구나 바보스레 크기를 꿈꾸지 않으니까.


  서로서로 좋은 사랑을 듬뿍 먹으며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부터 어른 누구나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금자리 빛내고 어여쁜 믿음으로 마을을 살릴 수 있기를 꿈꾼다. 아이들아, 네 좋은 동무한테는 발차기가 아니라 따스한 손길이랑 보드라운 눈길이랑 살가운 마음길을 나누어야지. (4345.3.9.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으로 보는 눈 177 : 어른이 되어 책읽기

 


  이 나라에 장애인이 470만 남짓 있다지만, 길거리를 나다니면서 ‘장애인 마주치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들이 길거리를 하루 내내 누빈다 하더라도 ‘이처럼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 스스로 동네마실을 하기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장날을 맞이해 두 아이를 데리고 네 식구 읍내마실을 합니다. 쉬가 마려울 때에 느긋하게 쉬를 할 만한 데를 찾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갓난쟁이 안고 다리를 쉴 만한 걸상을 찾기 벅찹니다. 마땅한 쉼터나 공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여느 도시라 하더라도 걸상이나 쉼터나 공원을 찾기는 몹시 빠듯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한복판이나 부산 한복판에서 사람들 누구나 느긋하게 다리를 쉬며 아이들이 뛰놀 만하거나 어머니가 젖을 물릴 만한 곳은 얼마나 있을까요. 옆사람 담배내음이나  손전화 시끄러운 수다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한 쉼터는 얼마나 있을까요. 따사로운 햇살을 누릴 만한 눈부신 나무숲이나 풀숲은 어디에 있을까요.


  홍윤 님이 쓴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을 읽습니다. “아침부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엄마는 활짝 핀 꽃이 눈에 띄어 집에만 있는 내게 보여준다며 사진을 잔뜩 찍어 오셨다(184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스물다섯 나이에 당신 몸이 몹시 아픈 줄 깨달은 홍윤 님은 다른 숱한 사람들처럼 쉬 바깥마실을 하지 못합니다. 집안에서도 어머니가 일으켜세워 주고 어깨동무를 해 줍니다. 홍윤 님 어머님은 마흔 먹은 딸아이를 마치 갓난쟁이 때처럼 알뜰히 보살핍니다.


  그래, 내가 이분 어머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동네에서 새로 피는 꽃송이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집 바깥에서 겪은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이 땅에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겠지요.


  추리문학을 즐겨읽던 홍윤 님은 2010년 12월 13일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죽음길로 떠났습니다. 2011년이 저물던 12월 13일을 맞이해 《물만두의 추리책방》(바다출판사)과 《별 다섯 인생》이 나란히 나왔습니다. 나는 이 두 권 가운데 《별 다섯 인생》을 먼저 장만해서 천천히 읽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픈 글을 꾸준히 적바림하는 홍윤 님 글을 읽으며,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픈 옆지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얼마나 사랑스럽게 아픈 옆지기를 돌아보며 아끼는 사람일까요. 아이로 태어나 어른으로 살아가는 오늘, 나는 얼마나 어른다운 삶을 누리면서 내 살붙이를 아끼는가 궁금합니다.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뻔뻔할까(321쪽).” 하는 말처럼, 아름다운 책은 참으로 많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많듯, 아름다운 사람이 많고,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 마음밭에도 아름다운 사랑씨앗이 많이 자라겠지요.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책 한 권에서 길어올리며 살아가나요. (4345.3.9.쇠.ㅎㄲㅅㄱ)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