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책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장석봉 님이 한국말로 옮긴 “시튼의 야생동물 이야기” 여섯 권이 나왔다.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 《회색곰 왑의 삶》, 《뒷골목 고양이》, 《위대한 늑대들》, 《표범을 사랑한 군인》, 《다시 야생으로》인데, 이무렵 이 책들을 하나하나 사서 읽으면서, 이 아름다운 문학이 새로 옷을 입고 나온 일은 더없이 기쁘고 고맙지만, 틀림없이 이 책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질밖에 없겠다고 느꼈다. 나는 이 책들이 아주 아름답고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기도 했으나, 이때에는 나 혼자 살아가던 나날이었지만, 나중에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 하면, 우리 아이들이 시튼 문학을 맛보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에, 더 알뜰히 이 책들을 건사하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다짐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참말 이 책들은 하나하나 사라졌다. 그나마 몇 가지 책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모르는 일인데, 아직 살아남은 책들도 창고에 있던 책이 띄엄띄엄 다 팔리고 나면 다시 찍는 일 없이 그야말로 조용히 잊혀지지 않을까. 이렇게 잊혀지고 나서 스무 해쯤 뒤, 이를테면 2030년이나 2040년에 또다시 새로 옷을 입고 태어날는지 모르리라.


  그러나, 나는 새옷이 썩 반갑지 않다. 아름다운 문학인 만큼 아름다운 번역이 되도록 아름답게 느낄 말글로 꽃피우는 책이 되어야 반갑다. 껍데기만 새롭다 해서 새로운 책이 아니다. 알맹이가 새로울 때에 비로소 새로운 책이다. 옷을 새로 입힌다 해서 새로 태어나는 책이 아니다. 알맹이를 새롭게 일구면서 가꿀 때에 바야흐로 새로 태어난 책이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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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13 11:36   좋아요 0 | URL
덧붙이면, 잿빛곰 이야기는 재판을 찍으며 겉그림이 달라졌다.
넷째 이야기는 늑대들부터는 겉그림 짜임새가 달라졌다.
넷, 다섯, 여섯, 이 책들도 하나, 둘, 셋 책들처럼
겉을 꾸미면 한결 멋스러웠으리라고 나 혼자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궁...
 

엊그제부터 <뒷골목 고양이>를 읽는다. <뒷골목 고양이> 번역이 아주 훌륭하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우리 나라에서 생태환경 책 번역으로 나온 책으로 보자면, <수달 타카의 일생>과 맞먹을 만큼 번역을 잘 했다고 느낀다. <뒷골목 고양이>는 <회색곰 왑의 삶>과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와 나란히 나왔던 시튼 동물기 가운데 하나로, 2003년에 장석봉 님 번역으로 선보였다. 2012년에 나온 김성훈이라는 분 번역은 얼마나 읽을 만할까? 2012년 번역책이 1970년대 박화목 님 번역보다 한결 말끔하거나 살가울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시튼 님 책이 나오는 일은 늘 반갑지만, 어떤 번역이요, 얼마나 마음을 기울인 번역인지가 더 살필 대목이다. 번역이 시원찮으면 너무 슬프다. 이 아름다운 글과 문학과 삶과 사랑이 깃든 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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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2년 03월 1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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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1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언제부터 '톰슨'이 '톰프슨'으로 바뀌었나...'톰프슨'이 맞는구나 싶기도 하면서, 어째 영 씁쓸하다. 이렇게 이름을 고쳐 준다면, 왜 '반 고흐' 이름은 제대로 바로잡지 않을까? '반 고흐'라는 이름은 국적도 정체도 알 수 없는 한국 이름이다. 어쩌면, 일본사람 입을 거쳐 들어온 뚱딴지 이름인지 모른다.

네덜란드사람 'Van Gogh'는 네덜란드말로 '퐌 호흐'라 읽는다.

요즈음은 어떠한가 모르겠으나, 1994년에 한국외대 네덜란드말 학과에 들어갔을 때에, 교수들이 맨 처음 가르쳐 준 말이 딴 학생은 몰라도 네덜란드말 학과 학생들은 'Van Gogh' 이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이리스트는 고치기(수정)가 안 되어 덧글로 덧붙여 적는다.

페크pek0501 2012-03-13 13:1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경우 봤어요.
<고독의 위로>의 저자가 조선일보에선 엔서니 스토, 로 돼 있는데,
알라딘에선 앤터니 스토, 로 돼 있는 거예요.
이럴 땐 어떤 게 맞는 건지... 이런 것 좀 통일했으면 해요.

파란놀 2012-03-1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립국어원 통일안은 있어요.
그런데 모든 외국사람 이름을 '영어 발음식'으로 통합을 하다 보니까
'통일'이 아니라 해서
출판사에서는 이를 잘 안 받아들이곤 해요.

일본사람도 프랑스사람도 독일사람도 에스파냐사람도...
영어투로 이름을 적어야 한다면
참 짜증스럽겠지요...
 

[함께 살아가는 말 87] 낮밥

 

 초등학교 아이들이 롯데리아나 케이에프시나 맥도널드라는 곳에 찾아가서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는 푸름이한테 말합니다. “런치세트 주셔요.” 스무 살을 넘고 서른 살을 웃도는 젊은 사람들이 ‘브런치 카페’를 찾아갑니다. 그래도 아직 웬만한 회사원들은 낮 열두 시 즈음 되어 ‘점심’을 먹으러 바깥으로 나돌겠지요.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는 이들 가운데 ‘런치’나 ‘브런치’를 모를 분은 없겠지만, ‘점심’을 먹을 만한 밥집을 찾아다니며 이녁 나름대로 맛집을 헤아리겠지요. 아침에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하고 나서 낮으로 접어들 무렵 밥을 차립니다. 흔한 말로 ‘아점’이라 할 만한 밥으로 하루 첫 끼니를 즐깁니다. 여느 사람들이 낮밥을 먹을 즈음 우리 네 식구는 첫밥을 먹습니다. 아침에 먹을 때에는 아침밥이고, 낮에 먹을 때에는 낮밥이며, 저녁에 먹을 때에는 저녁밥입니다. 밤에 무얼 먹는다면 밤밥이 될 테지요. 새벽에는 새벽밥을 먹습니다. 새벽에 듣는 새소리는 새벽소리입니다. 밤에 듣는 새소리는 밤소리입니다. 달은 낮에도 걸리곤 해 낮달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밤에는 새까만 하늘을 가득 채우는 밤별과 함께 밤달을 올려다봅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며 개구지게 뛰놉니다. 아이들 빨랫거리는 하루에도 숱하게 쏟아집니다. 아침빨래, 낮빨래, 저녁빨래를 하면서 하루가 저뭅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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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책 문지아이들 73
앨런 앨버그 지음, 자넷 앨버그 그림,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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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공룡 책’이 재미없고 안 궁금해요
 [환경책 읽기 36] 앨런 앨버그·자넷 앨버그, 《지렁이 책》

 


- 책이름 : 지렁이 책
- 글 : 앨런 앨버그
- 그림 : 자넷 앨버그
- 옮긴이 : 김서정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2006.4.24.)
- 책값 : 7500원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면 지렁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는데 지렁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퍽 무섭습니다. 지렁이가 살아가지 못하는 땅이란 사람 또한 살아갈 만하지 않은 데라 할 테니까요.


  몇 해 앞서부터 정부가 앞장서며 4대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온나라 물줄기를 곧게 펴는 일을 벌입니다. 수많은 삽차가 땅을 파고 끝없는 짐차가 돌을 퍼붓다가는 시멘트를 어마어마하게 들이붓습니다. 작은 시골 냇물조차 이렇게 망가져요. 아마, 어느 누구도 땅속에서 살아가는 지렁이를 살피거나 들여다보거나 생각하지 않겠지요. 지렁이뿐 아니라, 쑥이든 억새이든 갈대이든 민들레이든 무어든 무어든 냇가나 물가나 냇둑에서 자라던 숱한 풀들이 뽑히거나 잘리거나 죽는 일은 아랑곳하지 않겠지요. 피라미 송사리 죽든 말든 생각조차 않겠지요.


  도시에서 재개발을 한다며 옛집 허물고 아파트를 올려세울 때에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예전에 아주 가끔 아파트 공사터를 멀찌감치 바라본 적 있는데, 몹시 깊이 파헤친 땅속은 되게 무서웠습니다. 도무지 어떠한 목숨이라고는 깃들지 못할 듯한 흙덩이만 보였어요. 시뻘겋거나 시커먼 흙덩이도 틀림없이 흙일 테지만, 이 흙덩이를 밑에 깔고 높이높이 올리는 시멘트 건물이란 사람들 몸에 얼마나 좋을는지 알쏭달쏭해요.

 

 


.. 지렁이들은 보통 걱정없이 태평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지렁이로 사는 일도 만만치 않답니다. 축구의 인기가 날로 높아 가는 것도 지렁이에게는 심각한 골칫거리예요 ..  (7쪽)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입니다. 예부터 봄이면, 꽃이 피고 새가 운다고 했어요. 우리 집 창호종이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며 아침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 빛살처럼 따사롭게 온 집안을 감도는 봄기운이 고맙습니다. 꽤 이른 새벽에는 참새가 재재거리며 날아다니고, 이윽고 참새보다 덩치 큰 새가 날아다닙니다. 얼마 앞서부터는 참새나 딱새나 박새를 잡아먹는 꽤 큰 새를 몇 마리 보았습니다. 아직 들판에는 누런 빛깔이 더 많은데, 하루가 다르게 푸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들새와 멧새 먹이가 될 벌레도 많이 깨어나겠지요.


  그러나, 이런 꽃 피고 새 우는 봄을 오늘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느낄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꽃송이나 새소리로 봄을 느끼던 일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달력을 보며 봄을 말할 뿐입니다.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봄을 들을 뿐입니다. 아가씨들 옷차림에서 봄을 본다 할 뿐입니다.


  참말 봄이란 ‘백화점 에누리’가 봄이 되어도 될까요. 참으로 봄이란 ‘초·중·고등학교 새학기’가 봄이 되어도 되나요.


  꽃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맞이하는 봄이란 얼마나 봄다운가요. 새를 느끼지 못하면서 맞아들이는 봄이란 얼마나 봄이라 할 만한가요.


  봄이 없는 데에 여름이 없습니다. 여름이 없는 데에 가을이 없습니다. 가을이 없는 데에 겨울이란 없습니다.

 


.. 지렁이야 세상 어디 가나 다 똑같지 않겠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  (18쪽)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찹니다. 봄바람이라고 마냥 따사롭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봄에도 찬바람이 붑니다. 아직 봄이니 살랑이는 따순바람과 함께 서늘한 찬바람이 함께 찾아듭니다. 그래도 봄인 만큼 햇살은 더 눈부시고 햇볕은 더 따뜻합니다. 후박나무 빨래줄 기저귀는 금세 마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마당에서 뒹굽니다. 더 따스해지고 더 포근히 바람이 불면, 이제 들판과 멧자락으로도 마실을 다니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 두 해 자라나면서 아이들 스스로 멧길을 타고 들판을 내달리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터전에서 좋은 살림을 일굽니다. 좋은 살림을 일구며 좋은 생각을 빚습니다. 좋은 생각을 바탕으로 좋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좋은 하루입니다. 좋은 밥이고, 좋은 벗이며, 좋은 일입니다.


  좋게 어우러지면서 씨앗 하나 심습니다. 씨앗이 며칠쯤 지나 싹이 틀까 기다립니다. 싹이 튼 씨앗은 얼마나 씩씩하게 줄기를 올릴는지 다시 기다립니다. 줄기를 올릴 새싹이 언제쯤 새잎을 틔우며 씩씩하게 푸른 옷을 입을는지 거듭 기다립니다.


  꼭 모든 사람이 밭을 일구지 않아도 된다 여길 수 있지만, 다문 한 평이라도 스스로 밭을 일구지 못한다면 너무 슬픈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문 한 평조차 내 두 다리로 밟을 흙이 없고 만질 흙이 없으면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싶습니다.


  흙에 뿌리내리는 풀을 보고 꽃을 볼 때에 내 마음속에서도 사랑이 자라고 믿음이 꽃피운다고 느껴요.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렁이를 보고 벌레를 보면서 내가 어디에 어떻게 기대며 삶을 누리는가를 돌아본다고 느껴요.

 


.. 지렁이는 태초에 시간이 시작될 때부터 이 땅 위에서, 아니지, 땅 속에서 살았습니다. 공룡들이 시끄럽게 쿵쾅거리고 다니면서 서로 치고받고 할 때, 지렁이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  (22쪽)


  앨런 앨버그 님과 자넷 앨버그 님이 함께 빚은 《지렁이 책》(문학과지성사,2006)을 읽습니다. 지렁이를 기르는 이야기라든지, 지렁이가 이 지구별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이야기라든지, 지렁이 한 마리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이야기는 없는 책입니다. 그저 ‘지렁이 책’입니다.


  지렁이 그림이라지만, 지렁이마디를 그리지 않습니다. 지렁이 눈을 사람 눈처럼 그립니다. 그래도, 이 《지렁이 책》에 나오는 지렁이들은 예쁘장합니다. 참말 예쁘장한 지렁이들이 나옵니다.


.. 지렁이는 우리가 이 땅에 살기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아마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여기 있을 거예요. 지렁이는 땅의 제왕이랍니다 ..  (34쪽)

 


  아마 지렁이 스스로 저희가 대단하게 무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지렁이가 무얼 먹으며 지구별 쓰레기를 없애는가를 낱낱이 밝히지 않아도 돼요. 지렁이가 누는 똥 때문에 흙이 살아난다는 대목을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돼요. 지렁이는 그저 아주 오래오래 이 지구별에서 이름도 자취도 훈장도 도서관도 딱지도 재산도 토지문서도 아무것도 없이 슬기롭게 살아왔어요. 때로는 삽날에 찍혀 죽고, 때로는 두더쥐한테 잡아먹히고, 때로는 가뭄에 말라죽고, 때로는 큰물에 휩쓸려 죽으면서, 이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한삶을 누렸어요.


  찬찬히 돌아보면, ‘공룡 책’보다 놀랍다 여길 만한 ‘지렁이 책’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먼 옛날 말라비틀어 죽었다는 공룡들 모습을 되살리려고 용을 씁니다. 공룡 화석을 모으고 공룡 박물관을 만듭니다. 공룡 유전자를 살피고 공룡뼈가 어떻다는 둥 떠듭니다. 공룡 그림책을 만들고 공룡 영화를 찍어요.


  참 웃기지 않나요. 공룡이 지구별에서 무얼 했다고 공룡을 그렇게 떠들거나 섬기거나 노래하나요. 콩쾅거리며 시끄럽게 싸우며 살던 공룡은 몽땅 숨을 거두었다는데, 왜 이들 공룡을 그토록 찾고 살피며 그리려 하나요. 마치, 사라진 옛 문명을 되새기는 일하고 같지 않나 싶어요. 화산재를 맞고 사라졌다는 옛 문명을, 서로서로 끔찍하게 죽이고 죽으며 사라졌다는 옛 나라들을, 엄청나게 돈을 들이고 품을 들여 되살리려는 일하고 다 똑같구나 싶어요. 그저 전쟁으로 일삼던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왜 자꾸 들먹이면서 되새기는데다가 ‘역사’라는 이름까지 붙여 아이들한테 가르치는지 모르겠어요. 서로 죽이고 죽던 일이 어떻게 역사가 되거나 학문이 될 수 있나요.


  나는 공룡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오늘 아침 들은 새소리가 서로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인가 하는 대목이 궁금해요. 나는 우리 뒤꼍 땅뙈기에서 지렁이가 몇이나 살아가는지 궁금해요. 땅이 조금 더 폭신폭신해질 무렵 밭갈이를 할 때에 지렁이가 얼마나 나올는지 궁금해요.


  고구려 아무개 임금님이 땅을 얼마나 넓혔는지 하는 이야기보다, 고구려 무렵에는 어떤 지렁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발해라든지 옛조선 이야기보다 발해나 옛조선 무렵 지렁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공룡들이 서로 죽이고 물어뜯을 무렵 지렁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라는 마을에서 살던 지렁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땅 영광과 기장이라는 마을에서 살아갈 지렁이는 어떤 모습일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도 지렁이가 있을까요. 부산에도 지렁이가 사는가요. 도시에서 지렁이들은 어떻게 삶을 버티는가 궁금합니다. 헬리콥터로 온 들판과 멧자락에 농약을 뿌려대는데, 이런 판에 지렁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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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3-1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이들도 이책 참 재밌어했어요.
손에 착 들어오는 책크기도 알맞구요.^^

파란놀 2012-03-13 18:15   좋아요 0 | URL
네, 참 재미나게 엮었어요.
그래도 어딘가 한 구석 아쉬운 대목이 있어요.
재미나게만 엮느라
막상 지렁이가 무언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로도 밝히지 못했어요...
 
빨간 금붕어 난 책읽기가 좋아
스테파니 블레이크 지음,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시험공부 때문에 망가지는 어린이
 [어린이책 읽는 삶 19] 스테파니 블레이크, 《빨간 금붕어》(비룡소,2008)

 


- 책이름 : 빨간 금붕어
- 글 : 스테파니 블레이크
- 옮긴이 : 심지원
- 펴낸곳 : 비룡소 (2008.1.18.)
- 책값 : 6500원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시험을 참 많이 치렀습니다. 학교는 무엇인가 배우러 다니는 곳이라 하지만, 그때나 이때나 가만히 돌아보면, 학교는 시험을 치르는 곳이 아니랴 싶습니다. 늘 시험을 치르고, 언제나 시험문제를 외도록 내모는 곳이라고 느껴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배우는 즐거움’이나 ‘배운 무언가를 나누는 기쁨’을 맛볼 겨를이 없어요. 어쩌면, 처음부터 이러한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 데가 학교라 할 수 있어요. 배움도 가르침도 나눔도 없이, 시험문제와 성적표만 남는 데가 학교인지 몰라요.


.. 나는 알리스와 함께 교실에 들어갔어요. 곧 수학 시험이 시작되었지요.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어요. 옆을 슬쩍 보았더니 알리스는 거의 다 푼 거 있죠. 난 하나도 풀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나는 알리스의 시험지를 베끼려고 했어요. 그러자 알리스가 신경질을 내더니 큰 소리로 외쳤어요. “선생님! 잔이 내 걸 훔쳐봐요.” ..  (8∼9쪽)


  학교가 학교다움을 잃은 모습이 ‘한국땅다운 학교 모습’으로 뿌리내렸다고 느낍니다. 초·중·고등학교 모두 대학교만 바라보도록 이끌어요. 대학교를 바라보는 눈길은 내 꿈이나 뜻이나 사랑이 아닌 성적표 한 가지입니다. 막상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꿈이나 뜻이나 사랑은 아랑곳없이 학점과 자격증과 이력서만 살피고 맙니다. 학문도 자유도 생각과 사랑도 없는 톱니바퀴입니다.


  왜 학교에서는 삶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즐거이 놀도록 놓아주지 않을까요.


  학교를 세우는 까닭은 모든 아이들 머리속에 틀에 박힌 지식조각을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교를 보내는 까닭은 모든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도록 미리 담금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외우는 교과서로 아이들 모두 똑같은 넋 똑같은 몸짓 똑같은 차림새로 닦달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동무를 만나고 언니 오빠 동생 누나 형하고 어울리려고 학교에 갑니다.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마을에서, 저마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그동안 차근차근 받으며 북돋운 꿈과 뜻과 사랑을 다 함께 예쁘게 나눌 뜻으로 한 자리로 모입니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회초리가 있거나 출석부가 있거나 교과서가 있으면 학교가 아닙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시험지가 있거나 성적표가 있거나 행동발달사항을 따질 때에는 학교가 아닙니다. 흙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풀이 자랄 때에 학교입니다. 시멘트 건물에다가 플라스틱 잔디를 운동장에 깔고는 주차장이 자동차로 득시글거린다면 학교가 아닙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삶을 함께 나눌 때에 비로소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생각을 주고받을 때에 바야흐로 학교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여러 해 먼저 더 살아온 나날을 슬기로이 빛내며 좋은 꿈을 들려줄 때에 시나브로 학교입니다.

 


.. 수학은 아무래도 모르겠는데 어쩌라고요 … “수학을 빵점 맞았어요. 아무것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이제 학교에도 가기 싫어요!” “잔, 들어 보렴.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야. 넌 국어랑 체육, 음악, 미술을 아주 잘하잖니.” ..  (10, 13쪽)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던 일은 언제나 괴롭게 떠오릅니다. 수도 없이 치른 시험 가운데 즐거웠던 일은 한 차례조차 없습니다. 시험공부도 괴로울 뿐이요, 시험을 치르고 나서 온 학교가 몽둥이찜질 소리로 가득 퍼질 때에도 괴로울 뿐입니다. 가을이면 시골집마다 콩 터는 소리 가득하다지만, 시험을 치르고 나면 교실마다 교사란 이름을 단 어른들이 학생이란 꼬리표 붙은 아이들을 흠씬 두들겨패며 엉덩이 살점 떨어지도록 털어대는 소리만 맴돌았어요. 나로서는 이런 끔찍한 감옥살이를 학교라 느낄 수 없어요.


  문득 생각합니다. 왜 옆 짝꿍한테 답을 알려주면 안 될까요. 왜 나는 옆 짝꿍한테서 답을 들으면 안 될까요. 서로서로 잘 모르니, 서로서로 머리를 맞대어 문제 하나 풀 수 없는가요. 여럿이 모둠을 지어 어려운 길을 헤쳐 나가도록 할 수 없을까요. 조금 더 잘 하는 아이는 조금 더 못 하는 아이를 돕습니다. 조금 더 똑똑한 아이는 똑똑한 머리를 씁니다.


  몸이 재거나 튼튼한 아이만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던지며 놀아야 하지 않아요. 몸이 굼뜨거나 여린 아이도 함께 섞이고 얼크러지면서 즐거이 공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해요. 서로 돕고 서로 마음을 기울이며 웃음꽃이 피고 땀열매를 맺을 때에 ‘체육’이고 ‘교육’이며 ‘학교’예요.

 


.. 안느 아줌마는 예순 살이에요. 아줌마는 화가이기 때문에 자기 집에서 일해요. 아줌마는 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간 아주 크고 화려한 그림을 그려요. 나는 아줌마가 쓰는 색깔들을 무지무지 좋아하지요. 그 색깔들을 보고 있으면 빨래 집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져요. 안느 아줌마는 늘 즐거워 보여요. 자기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 같아요 ..  (18쪽)


  이 사회가 온통 돈 이야기로만 흐르는 까닭이 어디 한 가지 때문이겠습니까만,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과외니 영어니 뭐니 뭐니 하면서 지식조각만 머리에 집어넣다가는 초등학교 들어서기 무섭게 입시지옥 굴레에 가두니까,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돈 아니고는 헤아리지 않으리라 느껴요.


  이 사회가 몸이 아프거나 힘든 이웃을 살피지 못하는 밑뿌리도, 이 사회가 서로서로 예쁘게 얼크러지는 길로 나아가지 않는 밑바탕도, 이 사회가 오직 도시를 키우고 불리며 먹여살리는 흐름에서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밑모습 또한, 하나같이 학교 때문이라고 느껴요. 시험만 치르는 학교, 성적표만 만드는 학교, 아이들 머리통만 커다랗게 부풀리는 학교, 이런 학교가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삶터를 망가뜨리는구나 싶어요.

 


.. 오늘은 아빠가 쉬는 날이에요. 아빠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어요. 아빠는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방바닥에 커다란 천을 깔아 주었지요. 나는 온종일 그림을 그렸어요. 학교나 뱅상, 알리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죠 ..  (27쪽)


  스테파니 블레이크 님이 빚은 조그마한 이야기책 《빨간 금붕어》(비룡소,2008)를 읽습니다. 시험공부 때문에 망가지는 어린이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 슬픈 어린이 곁에는 지난날 똑같이 시험공부 때문에 망가질 뻔하다가 씩씩하게 살아난 ‘예순 살 그림쟁이 할머니’가 있습니다. 예순 살까지 살아오며 즐거이 그림을 빚는 할머니는 고작 열 살쯤 되었을까 싶을 어린 벗한테 슬기로운 꿈을 곱게 들려줍니다. 열 살쯤 되었을까 싶을 어린이는 예순 살 그림쟁이 할머니를 좋은 벗으로 삼아 ‘삶넋’을 맞아들입니다.


  학교에서는 한 마디조차 듣지 못하던 삶넋입니다. 동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아이한테 속삭이지 않던 삶넋이에요. 교사도 교장선생도 어느 누구도 이 가녀린 어린이한테 예쁜 꿈이나 멋진 뜻이나 좋은 사랑을 나누지 않았어요. 학교에서는 어른이나 어린이나 몽땅 삶넋하고는 동떨어지고 말았어요.


  《빨간 금붕어》에 나오는 어린이는 학교 따위 금세 때려치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이는 학교를 굳이 때려치우지 않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무 가운데 하나를 좋아하거든요. 이 어린이는 아프고 슬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고 북돋웁니다. 예순 살 할머니를 동무로 삼으며 삶넋을 찬찬히 받아들이면서 제 꿈을 살찌우고 사랑을 꽃피웁니다. 이리하여, 바보스러운 학교 바보스러운 교사 바보스러운 학급동무를 차근차근 바꾸어 내요. 살가운 손짓 하나로 바꿉니다. 따스한 눈짓 하나로 바꿉니다. 포근한 몸짓 하나로 바꿉니다.


  살아가는 밑힘은 사랑입니다. 살아가는 밑넋은 꿈입니다. 살아가는 밑앎은 슬기입니다. 이제라도 학교가 학교다움을 찾으려 한다면, 바로 사랑·꿈·슬기가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곱게 아낄 수 있어야 합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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