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81 : 삶이 곧 시, 책이 바로 사랑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삼인,2012)를 엮은 이흥환 님은 “대개의 전쟁사가 전투 기록, 전략전술사로만 기술된 군사이거나 전쟁의 배경, 원인에만 치중한 정치사이다. 이런 기록은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없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생명력이 없는 기록은 그래서 잊히기 쉽다(16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죽었다 하더라도 이들 죽은 넋을 기리거나 돌이킬 수 있어야 역사일 텐데, 막상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죽었다 하는 싸움터 이야기를 들출 때에 으레 남쪽으로 쳐들어왔다느니 누가 나쁜 놈이라느니 하는 목청만 높이기 일쑤예요. 서울 어느 동네에서 마구 철거를 하며 재개발을 하려 들 때에 그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는데, 정작 이들 슬픈 넋을 기리거나 달래는 몸짓은 없이 법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는 목소리가 드높기까지 해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걸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지는 마을인걸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을 아우른다는 나라인걸요.


  민주와 평화를 바라던 1980년대 어느 날 어느 곳에 몇 천이나 몇 만이라는 숫자가 모였다고 이야기하는 일도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어느 집회나 어느 모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내세우는 일도 썩 반갑지 않습니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천이나 만 사람쯤 모여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문 한 사람이 수요집회를 하더라도 틀림없이 수요집회이고, 이 집회를 몇 분이나 몇 시간에 걸쳐 한다고 적바림할 까닭이 없어요. 한 사람이 모였건 열 사람이 모였건, 모인 사람들 뜻을 살피고, 모인 사람들 삶을 귀기울여 들으며, 모인 사람들 눈망울과 마음결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고정희 님 시집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을 다시 읽습니다. 오늘밤 이 시집을 다 읽고 덮을 텐데, 고정희 님이 당신 어머님한테 마지막 옷을 입히며 눈물을 적시는 이야기를 담은 시를 읽다가 “당신 칠십 평생 동안에 열린 산과 들의 숨소리가(수의를 입히며)”라는 글줄에 밑줄을 천천히 긋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흙을 일구던 늙은 어머니 몸과 마음에 깃들던 멧자락과 들판 내음을 맡을 수 있기에 이렇게 시를 썼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삶이 곧 시요, 시가 바로 삶이겠지요. 삶이 곧 글이며 그림이고 사진일 테지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 바로 삶일 테지요. 사랑이 시로 태어나고, 시가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꿈이 글이라는 옷을 입고, 글이 꿈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샘솟습니다.


  일본 전통놀이 ‘카루타’를 삶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책 《치하야후루》(스에츠구 유키 그림) 첫째 권을 읽으면 123쪽에, 카루타 학원 스승이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한테 “100명의 친구가 생겼다고 여기고, 사이좋게 지내라.” 하고 이야기합니다. 놀이나 경기라는 틀을 넘어, 마음으로 사귀는 좋은 벗으로 지내라는 뜻입니다. 대회에서 1등을 하거나 높은 성적을 거둘 생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웃음꽃으로 어깨동무할 벗하고 삶을 짓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책읽기는 삶읽기이면서 사랑읽기요 꿈읽기입니다. (4345.4.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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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박스 1~9 세트 1 데츠카 오사무 걸작선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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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인가 10권째 느낌글을 올렸다. 이제 박스세트 첫째 것 느낌글은 다 되었다. 낱권마다 따로따로 붙였는데, 흔히 이 만화책은 상자째 살 테고, 낱권은 모두 절판되었으니, 이 박스세트에 느낌글 아홉 가지를, 내 서재 주소로 붙인다. 이 만화책을 상자로 주문하려다가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이 느낌글을 찬찬히 살피며 즐겁게 질러 주시기를 빈다.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만화인 <불새>인 줄 깨닫는다. 생각을 안 하면서 읽는다면, 미완성 작품 <불새>를 제대로 사랑하며 내 꿈을 키울 수 없다.

 

아홉 가지 느낌글에는, 웬만하면 '본문 모습'도 사진으로 찍어서 담았으니, 미리읽기를 해 보시려는 분한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1권 느낌글 : 삶이란 아름다이 주어진 꿈빛 (2011.8.28.)

http://blog.aladin.co.kr/hbooks/5031553

 

2권 느낌글 : 한길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사랑 (2011.8.30.)

http://blog.aladin.co.kr/hbooks/5037463

 

3권 느낌글 : 모든 정부는 모든 사람을 바보로 삼는다 (2011.9.15.)

http://blog.aladin.co.kr/hbooks/5076400

 

4권 느낌글 : 개죽음·참죽음·막죽음·늙어죽음 (2011.9.20.)

http://blog.aladin.co.kr/hbooks/5088938

 

5권 느낌글 : 삶과 죽음은 모두 똑같은 이야기 (2011.9.30.)

http://blog.aladin.co.kr/hbooks/5114032

 

6권 느낌글 : 정치와 종교는 모두 하나, 쓰레기 (2012.1.26.)

http://blog.aladin.co.kr/hbooks/5377747

 

7권 느낌글 :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꿈 (2012.2.21.)

http://blog.aladin.co.kr/hbooks/5437393

 

8권 느낌글 : 놀이는 누구한테서 배워? (2012.3.8.)

http://blog.aladin.co.kr/hbooks/5479523

 

9권 느낌글 : 어딘가 일그러진 사람들 (2012.3.18.)

http://blog.aladin.co.kr/hbooks/5506770

 

..

 

지난 2011년 8월부터 써서 2012년 3월에 이르러 비로소 9권까지 느낌글을 마무리. 지난해 시월과 십일월에는 충북 음성에서 전남 고흥으로 살림집 옮기느라 거의 짬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새해를 넘기고서야 겨우 6권째 느낌글을 올릴 수 있었다. 남은 두 번째 상자도 찬찬히 곰삭여 느낌글을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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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에 싸인 ‘겉속 바뀐’ 만화책

 


  만화책 《치하야후루》 셋째 권을 주문했다. 새책은 비닐에 곱게 싸였다. 즐겁게 뜯어서 읽는다. 그런데 어째 그림결이며 줄거리가 영 딴판이다. 무언가 하고 겉종이를 벗기고 보니, 겉종이는 《치하야후루》이지만 알맹이는 《미드나이트 카페》 둘째 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배본사에서 잘못했을까. 한꺼번에 나온 여러 가지 만화책을 만들다가 이런 잘못이 생겼을까. 책을 어찌 바꾸어야 하느냐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다른 생각. 아, 이런 잘못은 출판사에 전화해 주어야 하는구나. 왜냐하면, 나 말고 다른 누군가 이렇게 엉뚱한 책을 받아볼 수 있을 테니까. 책을 보내온 곳으로도 ‘잘못된 책’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여쭈고, 출판사로도 전화해야겠다. (4345.4.25.물.ㅎㄲㅅㄱ)

 

 

.. 아아... 며칠을 기다려야 3권을 읽을 수 있을까 ㅠ.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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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5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5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고객센터 2012-05-02 12:08   좋아요 0 | URL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이미 1:1고객상담으로 문의주셔서 안내해드린것으로 조회됩니다.이후 상품평이 아닌 이용하시면서 불편하신 점은 1:1 고객상담을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2-05-03 06:06   좋아요 0 | URL
어찌 보면 '재미난' 경험이었기에
이런 글도 하나 쓸 수 있었구나 싶어요.
고맙습니다~ ^^
 
불새 10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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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
 [만화책 즐겨읽기 141] 데즈카 오사무, 《불새 (10)》

 


  봄을 맞이한 나무마다 새잎을 틔웁니다. 나무마다 틔우는 새잎을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새잎을 석 장 똑 뗍니다. 한 닢은 옆지기한테 건네고, 한 닢은 아이한테 건네며, 한 닢은 내 입에 넣습니다. 여린 나뭇잎을 잘근잘근 씹씁니다. 여린 나뭇잎에서 퍼지는 내음과 결을 느낍니다.


  풀을 먹는 짐승들은 풀을 뜯을 때마다 어떤 내음을 맡을까 어림해 봅니다. 기린이 나뭇잎을 뜯을 때에, 물뚱뚱이나 코끼리가 풀잎을 뜯을 때에, 토끼나 사슴이 풀을 뜯을 때에, 이들 풀뜯이짐승은 풀내음과 풀맛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코끼리는 논이나 밭을 일구지 않습니다. 그저 풀을 뜯어먹으며 제 몸을 건사합니다. 토끼는 푸성귀를 따로 심지 않습니다. 그예 풀을 뜯어먹으며 한겨울도 나고 한여름도 누립니다. 풀뜯이짐승은 풀밭에 약을 치지 않습니다. 풀뜯이짐승은 풀숲에 거름을 내지 않습니다. 풀을 먹고 풀똥을 눕니다. 나뭇잎을 먹고 나뭇잎오줌을 눕니다.


- “지구는 이미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종류의 인간은 받아들일 여지가 없을지도 몰라. 게다가, 지구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종족을 굉장히 박해하니까.” “아무리 힘든 생활이라도 우리 슬론인이 경험한 고통에 비한다면 참을 수 있을 거예요.” (7쪽)
- “지구가 우주의 그 어떤 별보다 아름답고 멋진 별이라는 것은, 이미 몇 백 년 전의 얘기지. 지금의 지구는 점점 나빠지고 있어. 이미 손쓰기 늦었어. 몇 백여 년 전, 그래, 1900년대를 끝으로 인간들은 입으로는 지구를 소중히 여기자고 했지만, 결국 말뿐이었어. 언젠가 지구도 멸망할 것이다. (96쪽)
- “모르겠어, 모르겠어. 왜 치히로 같은 것(로봇)은 20억 개나 만들면서 지구로 돌아오는 인간들은 막는 거지? 왜 마음이 없는 치히로가 친절을 베풀고, 마음을 가진 인간들은 우리를 죽이려 할까? 지구에 대해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가.” (156쪽)

 

 


  오늘날 도시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풀을 먹기가 몹시 힘듭니다. 풀 한 포기 돋지 않도록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꽁꽁 둘렀으니까요. 그러나, 예나 이제나 풀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풀을 먹는 사람은 풀내음과 풀빛과 풀결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풀마다 서린 느낌을 받아먹습니다. 풀마다 고이 받은 햇살을 느낍니다. 풀마다 뿌리내린 흙에 깃든 기운을 받아먹습니다.


  요즈음 도시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고기를 먹기가 매우 쉽습니다. 스스로 돼지나 소나 닭을 치지 않더라도 돈 몇 푼 치르면 쉽고 값싸게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어떤 고기를 먹든 이 고기가 된 짐승이 ‘그동안 무얼 먹으며 살점을 키웠는지’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저 고기를 먹고 먹일 뿐입니다. 고기짐승이 살점을 더 키우도록 항생제와 촉진제를 주사로 놓거나 사료에 뿌립니다. 고기짐승은 사료를 먹습니다. 사료는 화학처리를 한 화학조합물입니다. 곧, 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사료를 먹는 사람이요, 항생제와 촉진제를 먹는 사람이며, 화학조합물을 먹는 사람이란 소리입니다.


  곰곰이 살피면, 고기를 먹는 사람들 스스로 고기맛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합니다. 좁아터진 우리에 가두어 사료와 항생제만 먹여 살점을 키운 고기를 먹을 때하고, 너른 들판에서 마음껏 뛰놀며 풀을 뜯던 짐승을 잡아 마련한 고기를 먹을 때하고, 맛과 결과 느낌이 얼마나 다른가를 잘 알아채는 사람이 있고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맛을 아는 사람은 제맛과 참맛을 찾습니다. 제맛과 참맛을 찾을 때에는 제삶과 참삶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맛과 참맛을 모르거나 찾지 않을 때에는 제삶과 참삶하고 자꾸자꾸 멀어집니다.

 

 


- “당신은 아이도 낳지 않고 죽을 건가요? 왜요?” “언제 죽을 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난 어린아이고.” “역시 이 사람은 이상해. 아이도 안 낳고 죽을 건가 봐. 어딘지 좀 이상해.” “뭐가 이상해?” “그럼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사는 거죠? 자손을 잇기 위해서잖아요?” “그런 거 몰라!” “우리들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살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바로 죽게 되죠.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거니가.” (8쪽)
- “드디어, 드디어 길고긴 여행 끝에 지구에 도착했는데 하루밖에 살 수 없다니, 너무해요! 그런 잔인한 일이, 너무 가엾어요, 로미.” “괜찮아, 코무. 나는 죽기 전에 이 지구에 오는 것이 꿈이었지. 오랜 꿈이었다. 여기서 만약 인생이 끝난다 해도 나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런 일생이었어. 코무, 그보다 네가 걱정이다. 너는 나를 지구로 오게 해 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이제 끝이야. 너만은 부디 에덴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구나.” (133쪽)


  깊은 밤,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면서 생각합니다. 밝은 낮, 아이를 품에 안고 들마실을 하면서 생각합니다. 산초나무 새잎을 똑 따서 먹으면 화악 하고 산초나무 내음이 올라옵니다. 탱자나무 새잎을 똑 따서 씹으면 아하 탱자열매 맛이 이렇구나 하는 느낌이 풍깁니다. 감나무 새잎을 똑 따서 씹으면 머잖아 감알이 달게 익겠네 하고 떠오릅니다.


  지구별에 사람 숫자가 지나치게 늘었다 하는데, 지구별 사람들은 밥을 굶을 만한지 누구나 넉넉히 밥을 먹을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통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구별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기르는 짐승으로 모든 사람이 배불리 밥을 먹을 만하다고 하는데, 정작 지구별 사람들 누구나 가난에서 벗어나 배불리 삶을 나눈다고는 못 느낍니다. 밥쓰레기가 너무 많아요. 제대로 안 먹고 버리는 밥이 참 많아요. 남녘나라 밥쓰레기만 하더라도 몇 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숫자를 떠나 무얼 어떻게 먹어야 내 몸이 즐거운가를 헤아리지 않아요.


  가만히 따지면, 나부터 내 몸이 좋아할 만한 밥을 알뜰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가 먹는 밥이 내가 꾸리는 삶인 줄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물 한 모금 싱그러이 마실 때에 내 피톨이 싱그러워요. 푸성귀 한 주먹 푸르게 먹을 때에 내 살결이 푸릅니다. 쌀밥 보리밥을 먹으며 쌀과 보리가 흙땅에서 여름과 겨울을 난 느낌으로 뼈마디를 살찌웁니다.


  술을 마시면 술 기운이 온몸에 돌 테지요. 담배를 태우면 담배 기운이 온몸을 감쌀 테지요. 포도를 먹으면 포도 기운이 온몸을 감돌 테고, 고추장을 먹으면 고추장 기운이 온몸을 휘감을 테지요.


  과자는 과자 기운을 냅니다. 표고버섯은 표고버섯 기운을 냅니다. 라면은 라면 기운을 내고, 빵은 빵 기운을 내요. 감자를 먹으면 감자 방귀를 뀝니다. 초콜릿을 먹으면 초콜릿 방귀를 뀝니다. 기름방울 흐르는 세겹살을 먹으면 기름기 짙은 똥을 눕니다. 밭에서 거둔 푸성귀를 먹으면 푸른 빛깔과 내음 나는 똥을 눠요.

 

 

 


- “우리도 보내 보면 어떨까요? 여보세요. 당신은 누구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대답이 없어. 혹시 마음으로 통신할 힘이 없는 상대일지도 몰라요.” (10쪽)
- “우리들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냐? 밖을 봐. 이 바위는 차원을 넘고 있다고! 네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야. 이대로 가다간 은하계를 넘어가 버린다.” (47쪽)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요.


  아무래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좋은 삶을 아끼는 좋은 사람이라면, 지구는 참 좋은 별이겠지요.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좋은 삶을 잊은 채 좋은 꿈을 북돋우지 않으면 지구는 참 나쁜 별이겠지요.


  내 삶을 나 스스로 좋게 일굴 때에 내 보금자리가 좋고, 내 마을이 좋으며, 내 누리가 좋습니다. 저절로 지구가 좋은 별이 돼요. 내 삶을 나 스스로 아무렇게나 팽개치면 내 보금자리 또한 팽개치기 마련이요, 내 마을과 내 누리 모두 팽개치고 말아요. 시나브로 지구가 나쁜 별이 돼요.


  전쟁영화를 즐겨 보면서 지구별에 전쟁 기운을 퍼뜨립니다. 전쟁영화를 자꾸 찍으면서 지구별에 전쟁 얘기를 퍼뜨립니다. 정치꾼들 당파싸움을 신문·방송에 자꾸 실으면서 사람들한테 정치꾼들 당파싸움 얘기를 물들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신문·방송 정치꾼들 당파싸움 얘기로 수다를 떨거나 이런 생각에 젖어듭니다.


  영화가 참사랑과 참삶과 참꿈을 이야기한다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참사랑과 참삶과 참꿈을 즐거이 얘기할 테지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부터 흙을 일구며 아이들하고 나란히 흙을 일구는 겨를을 마련한다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스스로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 얻는 삶을 생각하고 익숙하게 삼겠지요. 사람들 스스로 읽는 책이 사랑스럽고 믿음직하며 아름다운 줄거리 가득하다면, 사람들 스스로 사랑스럽고 믿음직하며 아름다운 생각을 꽃피우는 좋은 나날이 이루어지겠지요.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요.

 

 


- “위원회에 너희 둘의 시체를 가져가지 않으면 안 돼. 원망하진 마라!” “마키무라 씨! 로미의 목숨은 이제 1시간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래요, 태양이 가라앉아 어두워지면 로미는 죽어요. 지금 둘이서 얘기를 나누며, 마지막 1시간을, 가장 멋진 추억으로 만들자고 하던 중이었는데.” “지구인들은 미쳤다.” “그래요! 지구는 너무나 무서워요. 인간인 주제에 인간미가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죠! 내 고향이 훨씬 더 나아요. 훨씬 더 멋지다고요!” “그래, 지금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미가 아니라 시스템과 법률쁀이지. 미안하다.” (175쪽)
- “이 별이 어떻게 될지는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당신의 결심을 듣고 싶어요.” “저는 이 나라 국민 앞에서 확실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고도 모두 눈을 뜨지 않는다면,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208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열째 권을 읽으며 자꾸자꾸 스스로 되묻습니다.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요.


  나는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요.


  나는 얼마나 좋은 생각을 품을까요.


  나는 내 살붙이한테 얼마나 좋은 말을 들려줄까요.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얼마나 좋은 이야기꽃을 피울까요.


  나는 나부터 얼마나 좋다 싶은 책을 기쁘게 읽을까요.


  나는 우리 보금자리 텃밭이랑 뒷밭을 얼마나 신나게 일굴까요.


  나는 우리 마을 뭇 새들과 벌레와 푸나무를 얼마나 아낄까요.


- “위, 나 마음이 없어요.” “마음이 없다니! 왜?” “우리들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두뇌와 메카닉뿐이죠.” “? 마음이 없다니 가엾다.” “가엾다? 의미불명.” “저기 치히로, 이 근처에 깨끗한 물이 있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있고, 생물이 사는 조용한 사람 없는 곳이 있을까? 로미가 가고 싶어해.” “이 근처는 생산 지대입니다. 나는 저 공장의 기술자죠. 저것은 도쿄. 거주 구역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조건의 땅은 없습니다.” “이쪽은?” “이 앞 약 200km는 사막 지대입니다!” “왜 이렇게 사막만 있지?” “위, 사막은 모두 우리들이 개발한 지역입니다.” (154∼155쪽)

 


  지구별 사람은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지구별 사람 스스로 돈을 더 바란다면,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경제성장율과 국민소득 같은 숫자놀음에 더 사로잡힐밖에 없습니다. 지구별 사람 스스로 꿈을 더 키운다면,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착한 사랑과 참다운 이야기로 어깨동무하는 좋은 꽃내음 넘실넘실 흐르리라 봅니다.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요. 나는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요. 한국은 얼마나 좋은 터전일까요. 이 나라 도시와 시골은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일까요. 한국에서 새로 태어나는 책은 얼마나 빛나고, 한국사람이 한글로 빚는 글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4345.4.25.물.ㅎㄲㅅㄱ)

 


― 불새 10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5.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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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자꽃 책읽기

 


  이오덕 님이 쓰신 시요 1960년대에 내놓은 시집이기도 한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다. 나는 이오덕 님 남은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여러 해 하기도 했지만, 탱자나무로 이룬 울타리를 막상 제대로 들여다본 일이 없었다. 내 어버이들 시골집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지 모르나, 내 어린 날 이런 울타리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막상 《탱자나무 울타리》를 읽으면서도, 또 지난날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면서도 탱자나무도 탱자나무 울타리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인천에서 살며 골목마실을 하던 때, 주안2동 골목집 한 곳에서 탱자나무를 한 그루 보았다. 소담스레 열매가 달렸을 때에 비로소 알아보았다. 그러고는 고흥에 보금자리 마련하며 살아가는 동안 제대로 탱자나무를 보고 탱자꽃을 본다. 면내에 있는 중학교를 지나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탱자나무 가지들이 얼키고 설킨 작은 울타리 비슷한 녀석이 있는데, 누군가 탱자나무 가지 사이에 빈 깡통을 여럿 찔러 넣었다.


  단단하고 굵직해 보이는 탱자나무 가시는 촘촘하다. 나뭇가지 사이에 박힌 빈 깡통을 빼낼 길이 없어 보인다. 팔을 뻗어 꺼내자면 팔뚝이 가시에 죽죽 긁혀 찢어지겠다 싶도록 아주 촘촘하다.


  4월 한복판 봄날, 탱자나무에 핀 하얗게 눈부신 꽃송이를 본다. 탱자나무를 가시와 열매로만 알다가, 이제 꽃으로 새삼스레 안다. 탱자꽃을 처음 보며 으아리꽃하고 살짝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으아리꽃을 먼저 보았으니 탱자꽃이 으아리꽃하고 살짝 닮았다고 생각할 뿐, 거꾸로 탱자꽃을 어릴 적부터 익히 보다가 어느 날 멧골짝에서 으아리꽃을 보았다면 으아리꽃이 탱자꽃을 살짝 닮았네 하고 생각할 테지.


  한참 탱자꽃을 바라보며 헤아린다. 모과꽃은 참 작으면서도 커다란 열매를 맺는다면, 탱자꽃은 알맞춤하다 싶은 크기에 알맞춤하다 싶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면, 귤꽃이나 유자꽃은 얼마쯤 되는 크기일까. 가만히 보니, 감꽃도 꽤 작은데 감알은 그리 작지 않다. 능금꽃이나 배꽃도 퍽 작지만 능금알이나 배알은 퍽 크다 할 만하다. 복숭아꽃도 제법 크다 싶은 열매를 맺는다.


  더 곱씹는다. 나뭇가지에 달리는 열매를 모두 따고 보면 몹시 묵직하다. 나뭇가지 하나 무게는 얼마 안 되는데, 가냘프다 싶은 나뭇가지에 묵직한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곤 한다. 더 돌이키면, 모질게 비바람이 불어도 웬만한 나무는 쓰러지거나 꺾이지 않는다.


  이들 나무가 없다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나무 없는 사람살이를 생각할 수 있을까. 책을 빚는 종이는 탱자나무로 만들지 않는다지만, 탱자나무 없이 사람살이를 꿈꿀 수 있을까. 사람들은 탱자나무를 잊거나 모르더라도, 탱자나무는 사람들을 생각하거나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 지구별을 지키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장미꽃 팬지꽃 국화꽃 튤립꽃에 넋이 나가더라도, 탱자꽃은 언제나 고요히 제 흙땅에 뿌리내리며 지구별을 돌보지 않았을까. (4345.4.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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