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푸름이 책읽기

 


  노래꾼이 되고 싶다는 뜻을 당차게 밝히는 열여섯 살 푸름이는 노래솜씨 겨루는 잔치마당에서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를 목청껏 뽐냅니다. 열여섯 살 푸름이는 열다섯이나 열네 살 적에도 어른노래를 마음껏 뽐냈을 테지요. 열세 살이나 열두 살 적에도 어린이노래보다 어른노래를 한껏 즐겼을는지 모릅니다.


  열네 살 푸름이가 즐길 만한 푸른노래는 있는지 없는지 아리송합니다. 아마 없을 테지요. 열다섯 살 푸름이가 누릴 만한 푸른노래로 무엇이 있나 알쏭달쏭합니다. 아마 어른노래를 불러야 하겠지요. 내가 푸름이였던 스무 해 남짓 앞서,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에서는 동무들이 ‘어른노래 테이프’를 갖고 다니며 들으면 ‘소지품 검사’를 해서 빼앗았습니다. ‘푸름이가 이런 노래를 들으면 안 된다’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문세라든지 이선희라든지 동물원이라든지 들국화라든지 김수철이라든지 이지연이라든지 김완선이라든지 민해경이라든지 전영록이라든지 서태지라든지 …… 이런저런 대중노래, 곧 어른노래를 중·고등학교 푸름이가 듣거나 부르는 일은 ‘교칙 위반’이면서 푸름이답지 않다고 했습니다.


  내 푸르던 지난날, 푸름이인 우리들이 마음껏 즐길 노래를 가르치거나 들려준 교사나 어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갓 전교조가 생길 무렵, 전교조에서는 중·고등학교 푸름이가 즐길 노래를 지어야 한다며 여러모로 애쓰곤 했는데, 이제 전교조가 합법 노조가 되었으나, 막상 지난날처럼 푸른노래를 지으려 애쓰는 몸짓이나 움직임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예부터 합법 노조였던 곳 교사나 어른이라고 푸른노래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돌이키면, 예나 이제나 푸른노래는 이 땅에 없을 뿐 아니라, 어린이노래조차 싱그럽고 아름다이 짓는 삶가락이 없구나 싶어요. 오늘날 어른들은 오늘날 아이들한테 어떤 어린이노래를 들려주는가요. 아이들이 어떤 말로 어떤 넋을 빛내면서 어떤 삶을 일구도록 이끄는 노래를 지어서 들려주는가요.

 

 ......


  잠자리에서 두 아이를 갈마들며 재우느라 목이 살짝 쉴 만큼 어린이노래를 부릅니다. 몇 가락 부른대서 아이들이 잠들지 않습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끊이지 않고 고이 부릅니다. 이원수 님이 쓴 동시에 가락을 붙인 어린이노래만 두 아이를 팔베개로 갈마들어 눕히며 조용조용 부릅니다. 어린이노래는 어린이한테 아름답습니다. 어린이한테 아름다운 어린이노래는 푸름이한테도 아름답고, 어른한테도 아름답습니다. 어른한테 아름다운 어른노래 가운데 푸름이한테도 아름다우면서, 어린이한테도 아름다운 노래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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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 님 새책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다반,2012)가 나왔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장만하지 않았다. 머잖아 장만할 텐데, 천천히 때를 기다린다. 그동안 읽고 즐긴 호시노 미치오 님 책들을 생각한다. 몇 해 앞서 장만하고는 아직 안 읽은 《여행하는 나무》(갈라파고스,2006)를 떠올린다. 이제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기에 다른 책이 더 나올 수 없으리라 여겨, 《여행하는 나무》를 몇 해 앞서 장만하고는 곧장 읽지 않았다. 아껴 두었다. 금세 읽기엔 서운했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5)와 《노던 라이츠》(청어람미디어,2007)는 읽었기에, 《여행하는 나무》는 한 해 두 해 읽기를 미루었는데,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 이제 이 책을 읽을 때가 되었다고 여긴다. 몇 해 앞서 장만한 《여행하는 나무》를 며칠에 한 차례 몇 쪽씩 읽다가 마지막 쪽을 덮으면, 비로소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장만하겠지. 그리고, 이 책도 금세 읽기에는 아쉽다고 여겨 한 해 두 해 찬찬히 묵히겠지. 설마, 몇 해 뒤에 호시노 미치오 님 또다른 책이 한국말로 나올 수 있을까. 아직 한국말로 옮기지 않은 다른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아니, 호시노 미치오 님이 무스를 찍고 카리부를 찍으며 곰을 찍은 두툼한 사진책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까. 어린이들 읽는 판으로 꾸민 《곰아》(진선출판사,2004)와 《숲으로》(진선출판사,2005)는 있지만, 북극땅 누비며 빚은 커다랗고 두툼한 사진책은 언제쯤 어느 출판사에서 선보일 수 있을까. 글로 여민 작은 책과 나란히 놓을 만한, 사진으로 빚은 커다란 책을 기쁘게 누릴 날을 꿈꾼다.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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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간에서 똥을 눌 때에

 


  뒷간에서 똥을 눌 때에 으레 문을 살짝 연다. 똥을 누는 사이 눈으로는 들판이나 멧자락을 바라보면 마음이 푸근하다. 예부터 한겨레 살림집은 똥 누는 자리를 집 바깥에 두었다. 아직 여느 시골집은 똥 누는 데가 으레 집 바깥에 있다. 집 안쪽에 똥오줌 누는 곳이 함께 있는 일은 그리 좋지 않다고 느낀다. 도시에서는 똥오줌을 누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보거나 느낄 수 있을까. 눈은 어떻게 쉬고 귀는 어떻게 열며 마음은 어떻게 가다듬을 수 있을까. 우리 집 뒤꼍에서 한창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를 바라본다. 들새와 멧새가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어제와 그제 바람이 그토록 모질더니, 오늘은 바람이 아주 조용하다. 세 식구는 아직 꿈결이다. 호젓한 아침을 맞이하면서 따순 햇살을 듬뿍 맞는다.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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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쏘다, 활 -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 걷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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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이 비싼 책, 값이 싼 책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5] 오이겐 헤리겔, 《마음을 쏘다, 활》

 


- 책이름 : 마음을 쏘다, 활
- 글 : 오이겐 헤리겔
- 옮긴이 : 정창호
- 펴낸곳 : 걷는책 (2012.3.15.)
- 책값 : 12000원

 


  여기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100만 권을 찍었고, 책값이 2012년 4월 1일에 1만 원입니다. 쪽수는 400쪽이요, 신문과 방송과 잡지에서 널리 추켜세우며 몹시 잘 팔립니다.


  여기 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100권을 찍었고, 책값이 2012년 4월 1일에 1만 원입니다. 쪽수는 100쪽이요, 어느 신문도 방송도 잡지도 추켜세운 적 없을 뿐 아니라,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한 적조차 없습니다. 여느 책방에 들어가지 않은 책이니, 이 책을 사는 사람도 없으나 알아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도서관에조차 없으니, 이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마저 없습니다.


  두 가지 1만 원짜리 책이 한 자리에 놓입니다. 내 주머니에는 꼭 1만 원이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짜장면 한 그릇에다가 이과두술 한 병 사서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러고 돈이 남아 집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길거리에서 옷 한 벌 사서 입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빵집에 갈 수 있고, 찻집에 들를 수 있습니다. 또는 은행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귀여운 이웃 아이한테 선물로 줄 수 있습니다. 라면을 산다면 1만 원으로 몇 봉지를 살 만할까요. 과자를 산다면 이 돈으로 몇 봉지를 살 만한가요.


  널리 사랑받고 잘 알려진 1만 원짜리 두툼한 책이 내게 읽기 좋은 책일까요. 아무도 모르고 나 또한 하나도 모르는 똑같이 1만 원짜리 얇은 책이 나한테 읽기 좋은 책일까요. 같은 1만 원을 치른다 할 때에, 두툼하고 잘 알려진 책이 내 마음밭에 깊이 아로새겨질 만할까요. 같은 돈으로 책을 살 때에, 얇고 아무것도 모르는 책이 내 마음자리에 또렷이 돋을새김할 만할까요. 부피가 큰 책이 값싸다 할 만할까요. 부피가 작은 책은 비싸다 할 만할까요.


..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이지만, 계산하고 사고하지 않을 때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 낸다 … 인간 자신이 바로 비요, 바다요, 별이며, 새순이다 … 스승들은 자신이 마치 혼자 있는 듯이 행동한다 ..  (28, 87쪽)


  공장에서 찍어 만든 똑같은 과자가 둘 있습니다. 똑같은 과자 둘인데, 이 과자를 들인 가게 두 곳 값이 다릅니다. 가게가 집 가까이 있으면, 사람들은 으레 값싸게 파는 가게로 가서 삽니다. 누군가는 가게 일꾼 마음씨를 살피며 값이 조금 더 비싸다는 곳에 갈는지 모르지만, 똑같은 과자를 놓고 더 비싼 녀석을 굳이 사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똑같은 책이 두 권 있을 때에도 사람들 마음은 거의 비슷합니다. 100원이라도 더 값싸게 파는 책방으로 가서 책을 장만합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산다 할 때에도, 100원이라도 더 눅은 데를 찾습니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른 과자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여느 식품공장에서 화학조미료와 화학성분으로 만든 가공식품이고, 하나는 유기농 곡식으며 빚으면서 화학조미료는 하나도 안 씁니다. 가공식품 과자는 값이 1000원이고, 유기농 과자는 값이 2000원입니다. 이때에 사람들 마음과 눈길은 어느 쪽으로 갈까요. 한결 값싼 쪽으로 마음과 눈길이 갈까요, 내 몸에 좋거나 내 몸을 살리는 쪽으로 마음과 눈길이 갈까요.


  흙을 일구는 일꾼이 비료와 풀약을 쓰는 까닭은, 품을 적게 들이면서 더 많이 거두고 싶으며, 더 때깔 번드르르하게 거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더 잘 사다 먹으니까요. 게다가, 도시사람이 아무리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따진다 하더라도, 막상 가게에 가고 보면 더 값싼 푸성귀나 나물이나 열매를 사다 먹습니다. 제대로 일군 좋은 먹을거리를 제값 치르며 사다 먹으려는 도시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 어느 선사가 이미 벗어던진 것, 그리고 더 이상 아쉬워하지도 않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할 유혹에 빠지겠는가 … 그때서야 나는 선생님의 오른손이 갑자기 열리고, 시위를 놓으면서 순간적으로 뒤로 움직였지만,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는 덤덤하게 학생들의 실수 섞인 노력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자립성이나 독창성 등을 바라지 않고, 그저 참을성 있게 제자가 성장하고 원숙해지기를 기다린다. 양쪽 모두 서두르지 않는다. 스승은 윽박지르지 않고, 제자는 성급하게 발걸음을 놀리지 않는다 … 제자가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할 것인가는 스승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스승은 제자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자마자 제자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도록 한다 ..  (42, 65, 86, 93쪽)


  여기 책이 잔뜩 있습니다. 책을 파는 일꾼은 책을 값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100원짜리와 500원짜리와 1000원짜리와 5000원짜리와 1만 원짜리가 있습니다. 책을 사서 읽으려 하는 사람한테 1만 원이 있다면, 이 가운데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싼 100원짜리 책으로 100권을 사면 흐뭇할까요. 500원짜리 20권이면 즐거울까요. 1만 원짜리 책을 1권 사면 어딘가 찝찝할까요.


  여기 번역책이 있습니다. 이른바 “초원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옮긴 책입니다. “초원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쓴 미국사람은 “큰 숲 작은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이 소설을 연속극으로 만들었을 때에, 이 연속극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일본사람이 붙인 “草原の家”라는 이름을 껍데기만 한글로 바꾸어 “초원의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름이야 어떠하든, 이 소설책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책은 500원이고 어느 책은 5000원입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을 살피며 책을 살까요, 번역이 얼마나 제대로 되었는가를 살피며 책을 살까요.


  여기 또다른 책이 있습니다. “모비딕”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하나는 1000원이고 다른 하나는 3000원입니다. 1000원짜리는 간추린 판이고, 3000원짜리는 모두 옮긴 판입니다. 옆에 2000원짜리도 있는데, 간추렸는지 모두 옮겼는지 안 밝혔으나 두께는 모두 옮긴 판하고 거의 비슷합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을 따져 책을 살까요, 간추린 판인가 모두 옮긴 판인가를 곰곰이 따지며 책을 살까요.


..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지를 궁리하지 마십시오.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 당신은 발사 자체에 온 정신을 쏟지 않고, 미리부터 성공이냐 실패이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 왜 스승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준비 작업을 경험 있는 제자에게 맡기지 않는가? 자신이 직접 먹을 갈면 상상력이 고양되고, 꽃다발 끈을 잘라 내던지는 대신에 직접 조심스럽게 풀면 조형의 능력이 향상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  (67, 70, 88쪽)


  나와 옆지기가 책을 살펴 장만하는 삶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책을 살 때에 값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야 하는 책이면 삽니다. 사야 하는 책이 아니라 하면, 거저로 주어도 받지 않습니다. 읽어야 하는 책일 때에는 제값을 톡톡히 치러 장만합니다. 읽어야 하지 않는 책이라면 아무리 에누리를 해 준다 하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두께가 얇으나 값이 꽤 세다 싶도록 붙은 책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맞아요. 이런 책이 있습니다. 두께가 두툼한데 값이 참 눅다 싶게 붙은 책이 으레 있습니다. 놀랍지만, 이런 책이 있습니다. 내 주머니는 보배 곳간이 아닌 만큼, 사고픈 책이 있다 해서 몽땅 장만하지 못합니다. 내가 사고픈 책을 몽땅 장만할 수 있으면, 참 아름다운 책들로 내 책터를 꾸미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책에 파묻히고 말아 내 삶을 가만히 돌아보며 사랑하는 길을 놓칠 수 있습니다. 나는 늘 내 주머니에 따라 책을 사기는 하지만, 내 가벼운 주머니로 책을 산다 하더라도 푼푼이 돈을 모은 다음, 내 마음을 밝히고 내 생각을 북돋우며 내 사랑을 보듬는 좋은 삶동무 같은 책을 하나 장만합니다.


  아름다이 읽으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는 책이라면 우리한테 좋은 책이에요. 아름다이 먹으며 아름다이 기운 얻는 바탕이 되는 먹을거리라면 우리한테 좋은 밥이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옷을 짓거나 손질하고 빨래까지 하면서, 옷 한 벌을 마련하는 데에 드는 품과 겨를과 땀과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먹을거리를 손수 일구어야 합니다. 백만 평이나 십만 평 논밭을 일구어야 하지는 않아요. 다문 한 평이라도 내 밭뙈기를 일구면서 내 몸을 살찌울 먹을거리가 어떠한 품과 겨를과 땀과 사랑으로 태어나는가를 느끼며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책을 읽고 싶다면, 사람들 스스로 책을 써야 합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책시렁에 꽂힐 책이 아닌, 내 삶을 짓는 이야기를 담아, 내 아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들려줄 꿈이 피어나는 책을 써야 합니다. 스스로 책을 써 보면, 곧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으면, 비로소 ‘내 삶에 아름다이 젖어들’ 아름다운 글과 그림과 사진을 만나요. 스스로 글을 쓰며 스스로 좋은 글을 맞아들입니다. 스스로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좋은 그림을 느낍니다. 스스로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좋은 사진에 눈물을 흘립니다.


.. “당신은 배우는 과정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한시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묵묵히 참고 기다리십시오 …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몇 주, 몇 달, 몇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지금 나는 칭찬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감격할 이유는 없지요 … 그렇게 해서 백발백중 표적을 맞춘다면, 당신은 남에게 과시하는 기교적 사수에 불과합니다” ..  (100∼101, 104, 109쪽)


  오이겐 헤리겔 님이 빚은 책 《마음을 쏘다, 활》(걷는책,2012)을 읽습니다. 참 얇은 책입니다. 책값은 12000원입니다. 언뜻, 움찔, 할 사람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지난일 한 자락 떠오릅니다. 2005년 일인데, 《부처와 테러리스트》(달팽이,2005)라는 책이 갓 나왔을 적, 나 또한 움찔 하면서, 어라 책값이 좀 세네, 하고 생각했어요. 이제 와 돌이키면, 그러니까 어느새 일곱 해 지난 2012년에 더듬으며 헤아리면, 책값 6500원은 참 쌉니다. 이 책이 더 찍지 못했기에 예전 값이 그대로라 할 테지만, 책값이란 한 해 두 해 지나고 보면 모두 아무것 아니에요. 아니, 책이란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하는 돈으로 읽지 않아요. 종이를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종이에 아로새겨진 글을 읽을 때에 비로소 책이에요. 이야기와 줄거리를 마음으로 삭히면서 내 넋을 북돋울 때에 책읽기예요. 값싼 책을 읽어야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지 않아요. 아름다운 이야기와 줄거리를 읽으며 내 넋을 아름다이 돌볼 때에 비로소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요. 지난 2005년, 값에 움찔한 사티쉬 쿠마르 님 책 《부처와 테러리스트》를 읽고 나서 마음이 아주 좋아졌어요. 이야기와 줄거리가 아주 좋았거든요. 책을 덮을 무렵에는 ‘책값’이나 ‘부피’는 모두 잊었어요. 좋은 삶을 읽을 수 있기에 좋고, 좋은 삶을 읽으며 내 하루를 좋은 꿈으로 다스릴 수 있어 좋아요.


  《마음을 쏘다, 활》을 읽을 때에도 이런 느낌입니다. 나는 삶을 읽으려고 책을 읽습니다. 적은 돈으로 ‘문화 소비’를 할 마음으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값싸게 다루는 책을, 이를테면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진데다가 값 또한 싸다 하는 책을 몇 권 더 장만해서 집에 잔뜩 꽂아 놓고 읽어야 ‘내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아요. 나는 꼭 한 권만 읽을 수 있다 하더라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꿈을 사랑스레 적바림한 이야기’ 깃든 책을 손에 쥐어야 넉넉하고 즐겁습니다.


  삶을 읽는 책입니다. 삶을 가꾸는 책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책입니다. 삶을 이끄는 책입니다. 삶을 북돋우는 책입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 다시 말해, 제자는 상대를 어떻게 가장 잘 공략할 것인가를 생각하거나 탐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제자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야 한다 ..  (136쪽)


  프랑스에서 내로라하는 사진쟁이들이 《마음을 쏘다, 활》을 읽으면서 ‘사진 찍는 넋과 매무새’를 추스를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왜냐하면, 사진찍기란 “마음찍기”이기 때문입니다. 간추려 말하자면, “사진찍기 = 마음찍기”입니다. “글읽기 = 마음읽기”입니다. “글쓰기 = 삶쓰기”입니다. “그림그리기 = 꿈그리기”입니다. “노래부르기 = 사랑부르기”입니다. “춤추기 = 사랑추기”입니다. “일하기 = 사랑하기”입니다. “놀이하기 = 이야기하기”입니다. “밥먹기 = 사랑먹기”입니다. “밥짓기 = 삶짓기”입니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읽지 못합니다. 삶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읽지 못합니다. 사랑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읽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을 읽지 못합니다. 이웃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내 옆지기를 읽지 못합니다. 내 옆지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뭇목숨붙이, 이를테면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를 찬찬히 읽지 못합니다.


  마음을 찍는 사진이기에,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듣는대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마음을 찍는 사진이기에, 쉰 예순 일흔 나이까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하는 동안 아이들 낳아 돌보던 여느 어머니들이, 사진기를 처음 손에 쥐고서는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이 붓을 쥐면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이 연필을 쥐면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글로 빚어요.


  여느 자리 여느 삶에서 마음을 읽으며 누릴 때에 비로소 문화이든 예술이든 과학이든 교육이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내 삶이라 한다면, 지식이 쌓이고 정보는 늘어날 테지만, 사랑이나 꿈이나 이야기는 한 가락조차 없겠지요.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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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3.31.
 : 아기수레로 밀다

 


- 바야흐로 따순 삼월로 접어들고는 자전거를 타고 첫째 아이랑 마실 다니는 일이 줄어든다. 이제 네 식구 함께 두 다리로 걷는 마실이 된다. 논둑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멧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면소재지까지 두 아이와 함께 걸어갔다가 걸어서 돌아오기도 한다. 둘째 아이는 요즈음 한창 서기 놀이를 한다. 무언가를 붙잡고 퍽 오랫동안 서서 놀 줄 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는 못한다. 다리에 힘살이 더 붙어야 씩씩하게 걷겠지. 짧게 삼사십 분을 걷든, 조금 길게 한 시간 남짓 걷든, 둘째를 안거나 업자면 만만하지 않다. 자전거에 붙이던 수레에 앞바퀴를 하나 달아 아기수레로 쓰기로 한다. 아기수레로 삼아 둘째를 앉힐라치면, 첫째 아이도 둘째하고 나란히 앉겠다고 폴짝폴짝 뛴다. 이리하여,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닌다.

 

- 첫째 아이하고 살아오는 내내 아기수레를 쓴 일이 없다. 언제나 안거나 업으며 함께 다녔다. 아이 하나라면, 두 어버이가 서로 갈마들며 한 아이를 보듬을 만하다. 아이가 둘일 때에는 두 어버이가 하나씩 나눠 맡아야 한다. 옆지기가 튼튼한 몸이라 하다면 서로 아이 하나씩 맡을 만하지만, 옆지기 몸은 많이 힘들다. 이제 수레 힘을 빌어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로 한다.

 

- 우리처럼 아이를 곧잘 자전거수레에 태워 다니던 이웃한테서 지난겨울에 수레 하나를 받았다. 내가 자전거에 붙이던 수레는 2005년부터 썼으니 퍽 오래되었다. 내 자전거수레는 두 바퀴 모두 이음쇠가 다 닳았다. 수레도 여기저기 많이 긁히고 찢어졌다. 새로 얻은 수레도 헌 것이지만, 내가 쓰던 수레와 견주면 새 것과 같다. 자전거에는 이웃한테서 얻은 수레를 붙이고, 예닐곱 해 힘써 준 수레는 아기수레로 삼는다.

 

- 수레에 아이들 태워 걷자면 첫째가 으레 “아빠, 우리 집에는 수레만 많이 있어.” 하고 말한다. 나는 “그래, 우리 집에는 시끄러운 빠방이가 없어.” 하고 이야기한다. 수레에 아이들 태워 걷는 동안 우리 곁을 스치는 자동차를 거의 못 보지만, 어쩌다 한 대 지나갈라치면, 첫째 아이가 귀를 막고는 “아이고, 시끄러워!” 하고 외친다. 아이 키높이에서 생각하지 않고 어른 키높이에서 생각하더라도, 자동차 지나갈 때마다 소리가 되게 시끄럽다. 자동차 타는 사람은 모를 테지만, 걷는 사람들로서는 서로 나긋나긋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 만큼 참 시끄럽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새들 지저귀는 소리이든 도랑물 흐르는 소리이든 봄바람 풀잎 살랑이는 소리이든 하나도 들을 수 없다. 도시 아닌 시골이라 하더라도, 호젓한 길을 걷는 사람이 있을 때에, 사람들 곁을 천천히 조용히 지나가 주는 자동차는 아주 드물다.

 

- 두 아이는 아기수레를 얼마나 오래 탈 수 있을까. 첫째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도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울 수 있을까. 내 자전거 뒤에 붙일 외발자전거를 하나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호젓한 길을 걷는다. 둘째는 천천히 잠들고, 첫째는 잠들 낌새 없이 조잘조잘 떠든다.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째는 수레에서 내린다. 수레에서 내린 첫째는 아버지 손을 잡고 콩콩 달린다. 기운이 남고, 힘이 더 솟는지, 첫째는 신나게 달린다. 바람이 매섭지만, 시골마을 네 사람은 씩씩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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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4-03 17:55   좋아요 0 | URL
ㅎㅎ 어렸던 된장님의 큰 따님이 벌써 저리 컸네요^^

파란놀 2012-04-04 07:30   좋아요 0 | URL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