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책읽기

 


  시골에서 열 해쯤 살아야 시골사람이 된다고들 말합니다. 사진을 한다 할 때에 열 해쯤 해야 비로소 눈이 트인다고들 말합니다. 인천에서 살 적에 인천물을 열 해쯤 먹어야 바야흐로 인천사람이라 할 만하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 열 해가 지난 누군가를 바라보며 당신 시골사람이요, 당신 사진하는 사람이요, 당신 인천사람이요, 하고 받아들이는 듯하지는 않습니다. 울타리 하나를 세워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이 울타리를 넘으면 다른 울타리를 세워 다시 몰아붙이며, 이 울타리를 또 넘으면 새삼스러운 울타리를 거듭 마련해 자꾸 닦달합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하루를 살아도 시골사람입니다. 사진기를 갓 장만했어도 사진으로 바라보는 눈을 새로 틉니다. 인천에서 한나절을 보냈어도 인천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스무 해를 살아야 시골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마흔 해를 뿌리내려야 토박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순 해 한길을 걸어야 사진빛을 뽐내지 않습니다. 시골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시골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할 사람은 꼭 한 번 사진기를 손에 쥐어도 좋은 빛과 사랑스러운 그림을 빚습니다. 스스로 가장 즐겁게 누릴 삶을 헤아린다면, 어디이든 이녁한테 고향이 되고 보금자리가 됩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며 늘 나무를 바라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나무입니다. 도시로 마실을 나오며 나무만 바라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높고낮은 건물과 아스팔트와 자동차로 득시글거린다 하지만, 내 눈에는 나무만 한껏 들어옵니다. 나무가 숨쉬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노래하거나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웃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잠을 자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꿈을 꾸는 소리를 듣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무는 참으로 가녀립니다. 늘 아프고 늘 콜록거립니다. 도시에서 뿌리내린 나무는 참으로 앙상합니다. 잎이 시들시들하고 힘알이가 없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모두 나무입니다. 모두들 봄맞이 푸른 잎사귀 달려고 힘쓰는 나무입니다.


  도시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처럼 힘알이가 없으며, 갖은 때와 먼지를 잔뜩 머금었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스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뿌리내려야 하는 나무처럼 가냘프고 아프며 힘들구나 싶습니다.


  모두들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저마다 아름다이 뿌리내리며 어깨동무하기를 바랍니다. 서로서로 예쁘게 어깨동무하면서 고운 나날을 빛내는 꿈을 꿉니다. 내 시골집 나무를 그립니다. 내가 나들이를 온 도시에서 가만가만 바라보는 나무를 떠올립니다. 이 나무들과 함께 내가 살아가고, 내 목숨과 함께 나무들이 숨을 쉽니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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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5 10:05   좋아요 0 | URL
어릴때부터 보아온 커다란 나무 혹은 추억이 깃든 나무는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에 안식이 될 것같아요. 존재감만으로도 힘이되는 게 나무네요. 전 딱이 생각나는게 없지만 집에 있었던 작은 포도나무 하나가 생각나네요

파란놀 2012-05-05 11:28   좋아요 0 | URL
좋은 나무 한 그루가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이어가리라 믿어요~

순오기 2012-05-05 12:3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러 주욱 훑어봤습니다~~~~ 요즘 서재 마실도 못했거든요.
네식구가 파주로 마실 하셨네요~~ ^^

파란놀 2012-05-06 07:41   좋아요 0 | URL
네, 처가 식구 있는 일산 거쳐
오늘 시골집 고흥으로 돌아간답니다 !!!
@.@
 

[함께 살아가는 말 91] 나중에 내요

 


  파주책도시로 마실을 나옵니다. 파주 책도시에서 사진잔치를 열기에 전남 고흥에서 퍽 먼 마실을 나옵니다. 바깥으로 나온 만큼 바깥에서 밥을 사다 먹고, 잠을 잘 자리를 따로 얻습니다. 이틀을 묵은 파주에서 나오며 1층 손님맞이방에 열쇠를 돌려주는데 “‘바우처’로 하시면 되지요?” 하고 묻습니다. “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되묻습니다. 문득, ‘바우처라 하는 말이 나중에 다른 분이 삯을 치르도록 하는 일을 가리키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 님이 나중에 돈을 치러 주신다는 말이지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 식구 함께 짐을 꾸려 나오며 다시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인데 한국사람이 알아들을 만한 말을 쓰지 않는 일이 너무 흔한 이 삶이 얼마나 좋거나 얼마나 아름답거나 얼마나 즐거웁다 할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한국에 호텔이라는 곳이 옛날부터 있은 적이 없으니 ‘호텔’이라는 이름부터 영어에서 가져다 쓴다 하지만, 이런 낱말 저런 낱말 몽땅 영어로 적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를 한국에서 처음 만들지 않았으니 자동차를 이룬 곳곳을 가리키는 이름도 한국말로 따로 없을밖에 없으나, 굳이 ‘백미러’라 할 까닭 없이 ‘뒷거울’이라 하면 됩니다. 내 이웃을 생각하고 내 삶을 사랑할 줄 안다면, 잠을 자는 호텔 이름부터 이곳에서 쓰는 숱한 말마디를 한결 예쁘며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겠지요. 아이들한테 물어 보셔요. 아이들하고 좋은 말을 함께 생각해 보셔요.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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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빨래

 


  식구들 함께 움직이는 나들이를 할 때에는 언제나 빨래비누 한 장 챙긴다. 어디에 묵든 어디로 움직이든 늘 빨래를 한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하루치 옷가지를 몽땅 빨래하기도 하지만, 갓난쟁이가 내놓는 기저귀를 틈틈이 빨래한다. 비누를 꺼낼 겨를이 되면 비누로 빨고, 비누를 꺼낼 겨를이 안 되면 물로만 헹구어 빨래한다. 빨래한 옷가지는 비닐봉지에 담기도 하고, 가방에 걸치기도 한다. 자동차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눈치껏 옷걸이에 꿰에 손잡이에 걸기도 한다.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길에는 짐받이 아래쪽에 빨래를 잔뜩 널기도 했다.


  둘째 아이가 아침마다 똥을 푸지게 눈다. 아주 고맙다. 집에서는 하루에 너덧 차례 똥을 누더니, 마실길에는 하루에 한 차례 아침에 몽땅 내놓는다. 아이도 집이 아니라 길에서 움직이는 줄 알기 때문일까. 아이 몸이 느끼고 아이 마음이 생각하면서 이렇게 될 테지.


  새벽바람으로 둘째 아이 똥기저귀와 똥바지를 빨래하는 김에 내 머리도 감는다. 시골집에서는 여러 날에 한 번 감지만, 도시에서는 먼지를 많이 먹는 만큼 날마다 감아야 한다고 느낀다. 아이들도 옷을 자주 갈아입히며 틈틈이 빨래한다. 시골집은 한결 따스한 날씨이지만 후덥지근하지는 않다. 시골집에서는 아이들한테 긴소매옷을 입혔는데, 도시로 오니 푹푹 찌는 날씨인 터라 몽땅 반소매옷으로 입힌다. 아침에 입힌 옷은 낮에 갈아입혀 빨고, 낮에 입던 옷은 저녁에 다시 갈아입히며 빤다. 푹푹 찌는 날씨인 만큼 빨래는 참 금세 마른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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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 만한 책이 있을까

 


  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으레 ‘읽을 만한 책’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이 말마디 ‘읽을 만한 책’을 들을 때면 늘 가슴이 답답하다. 온누리에는 ‘읽을 만한’ 책이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찍을 만한’ 사진이나 ‘그릴 만한’ 그림이나 ‘부를 만한’ 노래도 없다고 느낀다. 나로서는 ‘읽을’ 책과 ‘찍을’ 사진과 ‘그릴’ 그림과 ‘부를’ 노래가 있다. ‘먹을 만한’ 밥을 먹으면 혀와 목구멍과 배 모두 아프거나 쓰리다. ‘먹을’ 밥을 먹으면 혀도 목구멍도 배도 모두 즐겁다. ‘살 만한’ 집이라면 이럭저럭 두 다리 뻗고 잘 만하다 여길 테지만, 나로서는 ‘살’ 집에서 살아야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즐거우면서 환하게 웃음꽃 피운다고 느낀다.


  내 하루는 아름답다. 내 옆지기 하루는 아름답다. 내 아이들 하루는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하루는 ‘지낼 만한’ 하루가 아니라 ‘즐거이 지내며 누리는’ 하루이다. 곧, 우리들은 ‘할 만한’ 일이나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할’ 일과 놀이를 하며 즐기고 누린다.


  더도 덜도 아니라 생각한다.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아이들한테도, 또 내 좋은 동무와 이웃한테도 ‘읽을 만한 책’이란 썩 도움이 되기 힘들 뿐더러 조금도 사랑이 될 수 없으리라 느낀다. 서로서로 ‘읽을 책’을 기쁘게 손에 쥐고는 ‘누릴 삶’을 예쁘게 건사할 때에 빛나는 하루가 되리라 느낀다.


  그러나 ‘읽어야 하는 책’은 반갑지 않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할 일’을 한다. ‘먹어야 하는 밥’이 아니라 ‘먹을 밥’을 먹는다. 읽을 책을 읽을 뿐이다. 사랑해야만 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날이 아니라, 사랑할 사람을 즐거이 사랑하는 나날이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장만하며 책을 읽고 책을 즐기는 내 삶을 톺아본다. 나는 ‘이럭저럭 읽을 만하다 싶은 책’을 읽으며 즐겁던 적이 한 차례조차 없다. 나는 ‘참말 읽을 책’을 읽을 때라야 비로소 즐겁다고 느낀다.


  읽은 책에 별점을 붙이는 일은 부질없겠지만, 별 다섯 만점에 별 다섯을 붙일 만한 책이어야 나한테 ‘읽을 책’이 되겠지. 누군가는 ‘아니 왜 별 다섯짜리 책만 읽나요? 별 하나짜리 책도 읽을 수 있지 않아요?’ 하고 물을는지 모르는데, 나는 ‘내 하루를 늘 별 다섯짜리 즐겁고 좋은 삶’으로 누리고 싶다. 나는 내 주머니를 털어 장만하려는 책이 별 다섯짜리 즐겁고 좋은 책이기를 바란다. 나는 내 가슴으로 스며들 이야기 깃든 책이라 한다면 노상 별 다섯짜리 예쁘고 해맑은 책이기를 꿈꾼다.


  읽을 책을 읽는다. 읽을 책을 누린다. 읽을 책을 사랑한다. 읽을 책을 말한다. 읽을 책을 나눈다. 읽을 책을 읽어 느낌글 하나 갈무리한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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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 내리던 장날 - 제4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14
안학수 지음, 정지혜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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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스며드는 웃음꽃을
[시를 사랑하는 시 9] 안학수, 《부슬비 내리던 장날》(문학동네,2010)

 


- 책이름 : 부슬비 내리던 장날
- 글 : 안학수
- 그림 : 정지혜
- 펴낸곳 : 문학동네 (2010.7.30.)
- 책값 : 8500원

 


  봄을 맞이한 시골은 온 들판이 밥상입니다. 천천히 들길을 걷고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싱그럽게 푸른 풀잎을 뜯어서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풀잎은 날마다 새롭게 돋습니다. 풀잎은 날마다 새롭게 뻗습니다. 이 자리에서 오늘 이 풀잎과 풀줄기를 뜯어서 먹고, 저 자리에서 이듬날 저 풀잎과 풀줄기를 뜯어서 먹습니다.


  한 사람이 먹는 풀잎은 많지 않습니다. 조금 조금 조금, 천천히 거닐며 조금 조금 조금, 천천히 씹고 천천히 즐기고 천천히 삭히면 온몸이 즐겁습니다. 온몸이 즐거우니 온마음이 환합니다.


  먼먼 옛날 보리고개라 했지만, 보리고개라 하던 때는 봄철이었습니다. 봄철에는 숱한 풀잎과 풀줄기를 누릴 수 있으니, 따로 벼 알맹이를 먹지 않더라도 배고플 일은 없습니다. 다만, 먼먼 옛날 풀잎 먹고 풀죽 쑤어먹는데에도 배고프며 힘들었다 할 때에는, 여느 흙일꾼으로서 제 땅뙈기를 누리지 못하고 땅임자 땅뙈기를 힘겹게 갈고 일구며 땀을 흘려야 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땅임자이든, 계급과 신분 낮은 흙일꾼이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한삶을 누리려 하는 사회나 나라였다 하면, 보리고개라는 말마디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장날 작은 수레를 끌며 / 이천 원짜리 모기약 팔던 / 허리 굽은 할아버지 ..  (부슬비 내리던 장날)


  시골집에서만 지내다가 여러 달만에 시외버스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나들이를 합니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 두 군데를 들른 다음, 경기도 파주 책도시로 나들이를 합니다.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파주에서 걸어다니며 생각합니다. 서울도 파주도 나무를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서울과 파주에서 자라는 나무는 너무 가엾어 보입니다. 가냘프고 줄기가 새까마며 잎사귀가 하늘거립니다. 너무 높은 건물이 나무를 윽박지릅니다. 밤에도 번쩍이는 불빛이 나뭇잎을 쥐어박습니다. 자동차 매캐한 배기가스가 줄기를 옥죕니다.


  시골집에서 들풀과 멧풀을 뜯어 봄빛을 즐기던 식구들이 도시에서 흐느적거립니다. 뜯을 풀이 없기도 하지만, 눈으로 구경할 풀조차 없습니다. 택시에서도 가냘픈 나무만 바라보고, 두 다리로 거닐면서도 파주 책도시 우람한 출판사 건물 사이사이 구슬픈 나무만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나무만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예 방방 뛰며 노는 첫째 아이가 길가 ‘줄기 새까만 나무’들 옆을 지날 때마다 덥석덥석 온몸으로 안습니다. 어, 너, 뭐 하니, 하고 말하려다가, 아, 그래, 좋아, 고맙구나, 네가 참 빛나는 하느님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 나무들이 가녀리고 가엾다면 온몸으로 덥석덥석 껴안고 볼을 부비며, 나무야 사랑해, 나무야 고맙다, 나무야 반갑네, 나무야 잘 지내, 하고 인사를 나누면 되는군요.


.. 꼬부랑 할머니도 / 꼬부랑 호미 들고 / 날마다 갯벌로 나갑니다 ..  (떡 캐는 갯벌)


  도시에서는 밥을 사다 먹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잠잘 데를 찾아 꽤 비싼 돈을 치러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얼마 안 기다려도 버스나 전철이 들어옵니다. 도시에서는 가만히 서기만 해도 택시가 알아서 우리 앞에 멈춥니다.


  도시에서는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내 주머니에 돈이 가득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내 주머니에 돈이 넘치도록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벌어야만 하고, 돈을 써야만 합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돈을 생각하고 돈을 꿈꾸며 돈을 사랑해야 합니다.


  옆지기가 눈 코 입 혀 머리 가슴 배 다리 팔 손 온몸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 말합니다. 몸만 아플까요. 마음까지 아플 테지요.


  나는 말을 않고 꾹 참지만, 이래서야 안 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나도 눈부터 코며 입이며 머리이며 가슴이며 발바닥이며 손가락이며 안 아픈 데가 없습니다. 마음도 아프고 생각도 아픕니다.


  다 함께 빛날 삶이며 환할 목숨일 텐데, 다 함께 아프며 고단한 나날이 된다면, 도시살이란 참 끔찍합니다. 왜 이렇게 돈만 벌어 돈만 써야 할까요. 왜 이다지도 돈에 얽매이며 돈을 붙들어야 하나요.


  좋은 밥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좋은 밥 누릴 좋은 흙과 지구별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좋은 책을 생각하며 읽고 싶습니다. 좋은 넋과 얼을 이끄는 좋은 삶 간추린 좋은 책 하나 생각하며 읽고 싶습니다.


.. 여름내 꽃 피우고 / 햇빛 모아 열었던 열매 / 다람쥐 가족에게 / 겨울 양식으로 주고 ..  (겨울 갈나무)


  서울과 파주에서 시집을 스무 권 즈음 장만합니다. 아이들 그림책은 마흔 권 즈음 장만합니다. 내가 읽을 사진책은 서른 권 즈음 장만합니다. 이런 책 저런 책 골고루 장만합니다. 가방에 시집을 챙겨 넣습니다. 아이들 모두 잠든 깊은 밤과 이른 새벽에 시집을 조용히 읽습니다.


  훌렁훌렁 읽을 만한 시집은 없습니다만, 차근차근 아로새길 만한 시집도 없다고 느낍니다. 내가 생각하는 삶을 노래하거나 내가 바라는 삶을 들려주는 싯말을 만나지 못합니다. 시집으로 묶인 보배와 같은 싯말이 허술하거나 모자라거나 변변하지 않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시를 쓴 분 삶을 더 꾸밈없이 드러내거나 그예 수수하게 보여주거나 즐겁게 이야기하거나 빛나게 누린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 못마땅하다면 내가 글을 써서 내 책 하나 빚으면 됩니다. 길가에서 돈을 치러 무언가 사다 먹을 때에 혀가 아프고 몸이 아프다가 마음까지 아프다면, 나 스스로 내 좋은 보금자리 둘레 들판과 멧자락에서 손수 흙을 일구거나 몸소 풀을 얻어 천천히 먹고 즐길 노릇입니다. 도시로 마실을 나온 터라 풀밥을 얻지 못한다면, 도시에서는 도시대로 즐겁게 밥을 사다 먹으면 됩니다. 내 살림돈이 넉넉하지 않으면, 이렇게 안 넉넉한 살림돈에 알맞게 이런저런 밥을 사다 먹으면 됩니다. 썩 내키지 않거나 그리 마땅하지 않다 싶은 시집이라 하더라도, 이 시집을 이룬 싯말을 빚은 사람들 삶과 꿈과 넋과 빛을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알뜰히 사랑하자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언제나 좋은 내 하루이듯, 언제나 반가운 책 하나입니다. 언제나 기쁜 내 삶이듯, 언제나 고마운 내 이야기 한 자락입니다.


.. 춥고 고픈 겨울이라고 / 꼬마 생쥐들 찾아오면 / 따듯한 방 열어 주고 / 아낌없이 탈탈 털어 주자 ..  (콩대)


  안학수 님 동시집 《부슬비 내리던 장날》(문학동네,2010)을 읽습니다. 따로 밑줄을 그으며 읽을 만한 동시는 없다고 느낍니다. 나는 이렇게 느끼지만, 안학수 님은 스스로 어떻게 느낄까 궁금합니다. 안학수 님은 당신 동시를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사랑하며 얼마나 즐길는지 궁금합니다.


  생쥐이든 들쥐이든 굴을 파며 살아갑니다. 생쥐이든 들쥐이든 사람이 ‘방문을 열어’ 주지 않아도 어딘가 굴을 파서 몰래 기어듭니다. 쥐는 흙집 흙벽도 뚫고, 시멘트집 시멘트벽도 뚫습니다. 쥐는 흙땅을 파서 저희 따스한 집을 마련하면 되련만, 둘레에 사람집이 있으면 사람집으로 파고들어 손쉽게 먹이를 얻으려 합니다. 추위를 타니까 사람집에 들어오기도 할 텐데, 먹이를 바라며 사람집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나는 쥐한테 따로 방문을 열어 줄 마음이 없습니다. 쥐는 쥐대로 흙땅 한켠에 저희 굴을 파며 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살아갈 때에 가장 즐거우며 가장 좋은 삶이 되리라 여깁니다.


  우리 시골집 처마에는 제비가 둥지를 짓습니다. 제비 두 마리가 밤새 깃털 부비며 잠을 자고, 이른새벽이면 재재거리며 똥을 누고 먹이 찾아 돌아다니는데, 곧 알을 낳고 새끼를 까겠지요. 나는 이 제비들이 우리 방 안쪽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비는 제비대로 처마 밑 둥지가 가장 좋습니다. 제비가 처마 밑에서 살아가면 우리 집 둘레에 파리 모기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서로서로 돕고 어깨동무합니다.


  내가 쥐한테 무언가 털어 줄 것이란 없습니다. 쥐는 쥐 스스로 제 집과 먹이를 들판과 흙밭에서 찾겠지요. 내가 제비한테 무언가 내어 줄 것이란 없습니다. 제비는 제비 스스로 제 집과 먹이를 들판과 멧자락에서 찾겠지요.


  동시를 쓰는 안학수 님은 안학수 님 삶에서 무엇을 스스로 찾고 무엇을 스스로 누리며 무엇을 스스로 빛내실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찾는 삶을 들려주고, 스스로 누리는 삶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빛내는 삶을 글줄 하나에 담을 때에 한결 아름다우며 예쁜 싯말이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구경하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넋을 동시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말이 아닌 스스로 즐거이 생각하는 꿈을 동시에 실으면 좋겠습니다. 예쁘장하게 보이는 싯말이 아닌 어른으로서 언제나 누리는 가장 밝은 사랑을 동시로 옮기면 좋겠습니다.


  안학수 님 하루를 동시에 담아 주셔요. 안학수 님 꿈을 동시에 실어 주셔요. 안학수 님 참사랑을 동시로 옮겨 주셔요. 수수하고 흔한 이야기라도 좋아요. 수수하고 흔한 이야기가 될 때에 참 좋아요. 할머니 호미질을 구경해도 나쁘지 않지만, 손수 호미를 쥐어 보셔요. 할머니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지만,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참 좋아요. 가슴으로 스며들어 내 웃음꽃이 되는 삶자락을 한 올 두 올 사근사근 풀어내어 빛말로 여미어 주셔요. 사진은 빛그림이라면, 동시는 빛말입니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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