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사람

 


  마을에서나 읍내에서나 면소재지에서나, 할머니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면 으레 ‘이쁜 사람’이라고 부른다. “저 이쁜 사람 보소.”라 말씀하거나 “이쁜 사람이 무얼 먹나.” 하고 말씀한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볼 적에는 “이쁜 사람이 자네.” 하고 말씀한다. 언제나 말끝마다 ‘이쁜 사람’이다.


  집에서 아이들을 부를 적에 ‘똥벼리’나 ‘똥보라’처럼 부른다거나 ‘똥벼’나 ‘똥보’라 부르기도 하다가, 이러다가 아이들이 똥똥이가 되지 않겠나 싶어, 나부터 말을 고치기로 다짐한다. ‘예벼’나 ‘예보’처럼 부르기도 하고 ‘예벼리’나 ‘예보라’처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예쁜 벼리’랑 ‘예쁜 보라’처럼 예쁘다고 부르지 않아도 예쁜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그대로 예쁘고, 삶이 그대로 예쁘며, 사랑이 그대로 예쁘다. 4345.1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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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책을 내고, 책을 팔아 땅을 산 다음, 이 땅이 막개발과 도시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시골숲이 되도록 지키는 일을 한다면 더없이 즐거우리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베아트릭스 포터 님이 살아가던 집이란 바로 이 같은 시골숲일 테지. 한국에서도 글로 책을 빚어 돈을 버는 이들이 시골마을 땅뙈기를 차근차근 사들여 아무런 농약도 비료도 항생제도 없을 뿐더러, 자동차 오가지 않도록 지키는 정갈한 숲으로 이어가도록 하면 얼마나 예쁠까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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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피터 래빗의 어머니
수전 데니어 지음, 강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2년 11월 2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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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내놓았던 <씨앗의 희망>은 한동안 절판되었는데, <소로우의 강>이 새로 나오며 다시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씨앗의 희망>처럼 책시렁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이, 두루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삶을 아름다이 고치는 길을 일깨우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더없이 기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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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의 강- 강에서 보낸 철학과 사색의 시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11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12년 11월 2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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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4] 물고기묵

 

  국어사전을 보면 ‘생선(生鮮)묵’이라는 낱말은 ‘어(魚)묵’으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나와요. 그런데, ‘생선묵’을 ‘어묵’으로 고쳐써야 하는 까닭은 밝히지 않아요. ‘생선묵’이라는 낱말은 ‘가마보꼬(かまぼこ)’라 일컫던 일본 먹을거리를 이런 일본말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 한글학자들이 해방 뒤 이처럼 고쳐쓰자고 외쳐서 나왔다 하는데, 요즈음에는 ‘생선묵’을 ‘어묵’으로 바로잡자고 다시 얘기한다면 ‘생선’이라는 한자말도 알맞지 않다는 소리가 될 테지요. 그러면 ‘어묵’이라 할 때에 ‘魚’를 붙이는 한자는 얼마나 알맞을까 궁금해요. 무엇보다 왜 해방 뒤에나 요즈음에나 한국사람이 가리키는 한국말인 ‘물고기’라는 낱말을 붙이는 ‘물고기묵’은 생각하지 못할까 아리송합니다. 물고기 살을 발라서 만든 먹을거리라면 ‘물고기묵’일 뿐이에요. 도토리를 갈아 만든 먹을거리는 ‘도토리묵’이고, 메밀을 갈아 만든 먹을거리는 ‘메밀묵’이에요. 바라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살아가는 대로, 말을 빚고 이름을 붙여요. 그러나, 학자들은 ‘어류학자’일 뿐 ‘물고기학자’가 없어요. 사전을 엮어도 ‘어류사전’일 뿐 ‘물고기사전’을 엮지 않아요. ‘고기잡이배’라 하면서 막상 ‘물고기장수’ 아닌 ‘생선장수’가 되고 말아요. 여느 사람들도 학자들도 ‘물고기’라 일컫거나 말하지 않아요. 차라리 ‘오뎅(おでん)’이라 하든 ‘가마보꼬’라 하든, 일본말을 쓸 때가 외려 덜 남우세스럽지 않나 싶기까지 합니다. 이 말도 저 말도 모두 생각이 없어요. 4345.1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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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름으로

새 글을 하나

쓰기로 생각한다.

 

어젯밤 곰곰이 생각하다가

[당신은 어른입니까]라는 이름으로

이 나라 학부모나 어버이나 여느 어른한테

띄우는 글월을 써 보기로 한다.

 

앞서 "신문읽기"와 "교사읽기"를 썼는데,

두 가지 '읽기' 이야기는

다른 갈래로 묶어야 한다고 느끼다가,

비로소 이렇게 묶으면 되겠다고 느낀다.

 

아무튼, 모든 글이름에는 '-읽기'라고 붙는다.

앞으로 쉰 가지 남짓 쓸 생각이고

어쩌면 백 가지쯤 쓸는지 모르는데,

 

사람읽기 - 생각읽기 - 학교읽기 - 정치읽기 - 사진읽기 - 문화읽기 -

영화읽기 - 버스읽기 - 미국읽기 - 평등읽기 - 사랑읽기 - 아이읽기 -

책읽기 - 꽃읽기 - 숲읽기 - 풀읽기 - 길읽기 - 흙읽기 - 글읽기 -

헌책방읽기 - 도서관읽기 - 발전소읽기 - 자전거읽기 - 공동체읽기 -

......

 

이런저런 '-읽기'를 밑바탕 삼아

어른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갈 넋이 무엇인가를

짚으려고 한다.

 

왜 '어른한테 쓰는 글월'인가 하면,

아이들은 '학생'이라는 신분(?)을 얻으면서

이래저래 조금이나마 배우려는 티를 내지만,

막상 학생 신분을 마친(졸업) 이들은

도무지 스스로 배울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까지나,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다.

 

스스로 배우지 않고

스스로 배우는 길을 안 걸어간다면,

이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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