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기
― 마음을 건드리는 사진

 


  예쁘장하게 찍히려면 얼굴은 어떻게 어느 쪽으로 돌리라느니, 사진 찍는 사람이 어느 자리에서 찍으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진을 찍어 보기로는, 이런 ‘예쁜 짜임새’가 그닥 예쁘다 싶지 않아요. 모든 사람을 똑같은 틀에 맞추어 찍어내는 붕어빵과 같습니다. 이른바 황금비율이란, ‘황금을 만드는 비율’이 될는지 모르는데, 황금만 아름다울 수 없어요. 다이아몬드도 아름답겠지만, 구리도 아름답고 여느 돌도 아름답습니다. 돌 가운데 몽돌도 아름답고 조약돌도 아름답지요.


  조약돌은 ‘조약돌답게’ 찍어야 빛납니다. 조약돌을 황금비율로 찍으면 어떤 사진이 될까요. 아마, 퍽 멋스럽다 싶은 새로운 모습이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때에는 조약돌이 조약돌 아닌 모습이 됩니다. 그저 ‘멋스러운’ 사진만 바란다면 황금비율을 따르면 될 테지만, ‘조약돌다운’ 사진을 생각한다면 황금비율을 내려놓아야 알맞아요.


  내 옆지기를 사진으로 담거나 우리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을 때, 나는 어떠한 짜임새도 틀거리도 얼거리도 따지지 않습니다. 따질 까닭이 없고, 따질 겨를조차 없어요.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찍습니다.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다운 모습으로 찍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다운 모습으로 담습니다. 꼭 어떤 흐름이나 틀을 헤아려야 하지 않아요. 나 스스로 사랑하는 눈길로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 아끼는 손길로 사진 한 장 찍으면 넉넉해요.


  마음을 건드리는 사진을 바라기에, 언제나 꾸밈없는 삶자락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즐기기에, 늘 수수한 삶결 그대로 북돋울 만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내 사진에는 내 마음이 담깁니다. 내 사진에는 내 사랑이 깃듭니다. 내 사진에는 내 이야기가 감돕니다. 434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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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책읽기

 


  집에 있어도, 바깥에 있어도, 아이들은 춤을 추며 논다. 아이들 움직임은 언제나 춤과 같다. 할머니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며 늘 웃는다. 잘 놀고 잘 뛰고 잘 웃는 이 아이들은 새 숨결을 불어넣는 하느님이라 할 만하다.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만 있지 않는다. 그저 혼자 좋아서 춤을 춘다. 마늘잎 돋는 밭뙈기 앞에서 춤을 추고 마을회관을 바라보며 춤을 춘다. 그러고 보면, 춤을 추지 않으면 아이들답지 않달 수 있을까. 노래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다움이 사라졌달 수 있을까. 까르르 웃고, 개구지게 뒹굴지 못한다면 아이들다움을 누군가 빼앗았달 수 있을까. 춤을 추는 사람이 웃고, 웃는 사람이 즐거우며, 즐거운 사람이 사랑을 나눈다. 4346.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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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76) 천하의 1 : 천하의 남사고도

 

천하의 남사고도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의 묏자리는 잘 보면서 정작 자신의 아버지 묏자리는 제대로 보지를 못하니 말예요
《강난숙-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지혜롭게 살았을까?》(청년사,2008) 23쪽

 

  “다른 사람의 묏자리”는 “다른 사람 묏자리”로 다듬습니다. “자신(自身)의 아버지 묏자리”는 “제 아버지 묏자리”로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천하(天下)’는 “(1) 하늘 아래 온 세상 (2) 한 나라 전체 (3) 온 세상 또는 한 나라가 그 정권 밑에 속하는 일 (4) (일부 명사 앞에 쓰이거나 ‘천하의’ 꼴로 쓰여) 매우 드물거나 뛰어나서 세상에서 비길 데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토씨 ‘-의’를 붙이는 말꼴은 넷째 뜻으로 쓰는 셈입니다.


  그런데, “천하를 다스리다”라 해도 나쁘지 않지만, “온누리를 다스리다”라 하면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공산당 천하”라면 “공산당 판”이나 “공산당 누리”나 “공산당 나라”처럼 적을 수 있겠지요.

 

 천하의 남사고도
→ 내로라하는 남사고도
→ 온누리에 비길 바 없는 남사고도
→ 묏자리 잘 보는 남사고도
→ 그 잘난 남사고도
→ 그 똑똑한 남사고도
 …

 

  온누리에 비길 데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둘도 없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놓고 “그 잘난”이라든지 “그 똑똑한”이라든지 “그 대단한”을 꾸밈말로 넣어도 어울립니다. 보기글에서는 묏자리를 잘 보는 사람을 이야기하니, “묏자리 잘 보는 아무개”라고 적어도 됩니다.

 

 천하 갑부 → 알아주는 갑부
 천하 절경 → 끝내주는 모습
 천하의 명기 → 아주 훌륭한 기생
 천하의 못된 놈 → 더없이 못된 놈

 

  한자말이건 한국말이건, 쓰는 만큼 더 익숙하게 쓸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대로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한자말 ‘천하’를 써 버릇하면 토씨 ‘-의’가 자꾸 달라붙습니다. 어떤 말씨로 생각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삶이 차츰 달라지는 줄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4341.3.21.쇠./4346.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 똑똑한 남사고도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 묏자리는 잘 보면서 정작 제 아버지 묏자리를 제대로 보지를 못하니 말예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305) 천하의 2 :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중년의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북새통》 67호(2008.4.) 28쪽

 

  “중년(中年)의 위기(危機)는”은 “아찔한 중년”이나 “아슬아슬한 중년”이나 “흔들리는 중년”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습니다. ‘중년’이 한 사람한테 어느 나이 때인가를 헤아려 봅니다. 나이 마흔을 넘기는 때부터 쉰 살 언저리입니다. 흔한 말로 “꺾이는 나이”가 한자말 ‘중년’으로 가리키는 때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는 “파인만 씨도 나이가 꺾이니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나 “파인만 씨한테도 꺾이는 나이에는 위기가 어김없이 찾아왔다”로 손보면 어떨까 싶군요.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 한결같던 파인만 씨한테도
→ 거침없던 파인만 씨한테도
→ 잘나가던 파인만 씨한테도
→ 훌륭한 파인만 씨한테도
 …

 

  보기글에 나오는 ‘천하의’는 거침이 없거나 씩씩하거나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키지 싶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뜻과 느낌 그대로 적을 때에 가장 알맞습니다. 통째로 고쳐쓸 수 있겠지요. “한결같던 파인만 씨한테도 중년이라는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나 “거침없던 파인만 씨한테도 꺾이는 나이에는 위기가 어김없이 찾아왔다”로. 4341.4.11.쇠./4346.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거침없던 파인만 씨도 꺾이는 나이는 어김없이 위기였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7) 천하의 3 : 천하의 나쁜 놈

 

혹시 누군가 내 머릿속을 열고 들여다보면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욕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죠
《노을이-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철수와영희,2012) 59쪽

 

  ‘혹시(或是)’는 ‘아마’나 ‘어쩌면’이나 ‘문득’이나 ‘이를테면’으로 손볼 수 있어요. 이야기 나누는 흐름을 살펴 알맞게 손봅니다. “욕(辱)할 것 같아”는 흔히 쓰는 말투로 여겨 그대로 둘 수 있지만, “나무랄 듯해서”나 “꾸짖을까 봐”나 “손가락질하겠다 싶어”로 손질하면 한결 나아요. 국어사전 말뜻을 살피면 ‘욕’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한국말로 쉽고 알맞게 하면 됩니다. “마음이 불편(不便)하죠”는 “마음이 안 좋지요”나 “거북하지요”나 “꺼림칙하지요”로 다듬습니다.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 천하에 몹쓸 놈이라고
→ 이 나쁜 놈이라고
→ 이런 나쁜 놈이라고
→ 몹시 나쁜 놈이라고
→ 대단히 나쁜 놈이라고
 …

 

  이 보기글은 겉으로는 한국말처럼 보이지만, 조금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천하의 나쁜 놈” 같은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를 껍데기만 한글로 적은 모습입니다. 토씨 ‘-의’ 넣은 자리를 고쳐 “천하에 나쁜 놈”처럼 적으면 그나마 한국말 맛이 살짝 난다 할 텐데, 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한국사람은 차츰 줄어듭니다.


  “세상에 이런 나쁜 놈이 다 있나”처럼 말하고, “이 벌건 대낮에 무슨 짓이람”처럼 말합니다. 이 보기글처럼 쓰는 자리에 한국사람은 ‘-에’를 넣습니다. ‘-의’를 넣지 않아요.


  글흐름을 더 헤아리면, ‘천하의’는 꾸밈말 구실을 합니다. 나쁜 놈을 말하는데, 어떻게 나쁘다 하는 뜻을 북돋우는 구실입니다. 그래서 ‘몹시’나 ‘매우’나 ‘아주’나 ‘참말’이나 ‘대단히’나 ‘무던히’ 같은 낱말을 넣으면 잘 어울립니다. ‘이’나 ‘이런’이나 ‘이렇게’나 ‘이다지도’나 ‘이 따위로’ 같은 말마디를 넣어도 썩 어울려요.


  이런 말투 저런 말씨 그런 낱말을 찬찬히 헤아리지 않으면 ‘-의’ 말씀씀이는 단단히 들러붙어요. 스스로 아름답게 쓰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말투는 아름답게 거듭나지 못해요. 스스로 곱게 추스르려고 힘쓰지 않으면, 우리 말씨는 곱게 빛나지 못해요. 4346.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마 누군가 내 머릿속을 열고 들여다보면 아주 나쁜 놈이라고 나무랄 듯해서 거북하지요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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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대는 마음

 


  힘든 누군가 등을 기댑니다. 힘이 없는 누군가 팔이나 어깨를 잡고 기댑니다. 힘이 들고 힘이 빠지니 그예 기댑니다. 기댈 만한 등이나 팔이나 어깨가 되어 주는 이가 고맙습니다. 그런데, 기댄다고 할 때에는 힘이 없거나 적거나 모자라거나 빠진 쪽만 기대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힘이 있거나 많거나 넉넉하거나 넘치는 쪽도 나란히 기대는구나 싶어요. 둘이 서로 만나기에 서로 기대겠지요. 한쪽은 받으면서 기대고, 한쪽은 주면서 기대요. 한쪽은 받으면서 새 기운을 돋우고, 한쪽은 주면서 새 기운을 차려요.


  물이 흐릅니다. 판판한 곳에서는 물이 고이지만, 조금 기울어진 데에서는 물이 흐릅니다. 물은 땅밑에서 천천히 솟아서 높은 곳에서 터지고, 높은 곳부터 낮은 자리까지 다시금 천천히 흐릅니다.
  물은 흐르기에 맑습니다. 물은 고이기에 썩습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기운을 나누기에 맑습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지 않거나 기운을 주고받지 못할 적에는 스스로 어두워집니다.


  나는 누군가한테 기댈 수 있어 즐겁습니다. 누군가 나한테 좋은 ‘비빌 언덕’ 되어 주니, 이녁한테도 새 기운 샘솟도록 북돋우는 구실을 하리라 느낍니다. 거꾸로, 나는 글 한 꼭지 쓰면서 누군가한테 ‘비빌 언덕’이 됩니다. 집에서 살림 꾸리고 밥을 차리면서, 아이들한테 ‘비빌 언덕’이 되고, 나는 내 지친 마음을 아이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 들으며 달래니까, 아이들은 나한테 새삼스러운 ‘비빌 언덕’입니다. 4346.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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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함께 앉는 어린이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에서, 사름벼리는 혼자 앉아 가겠다 한다. 저녁이라 사람이 북적일 듯한데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가지? 읍내 벗어나기 앞서 버스는 꽉 차고, 사름벼리더러 엉덩이 나누어 함께 앉자 말하는 분이 있다. 사름벼리는 엉덩이를 창가로 붙이며 함께 앉아 준다. 그래, 너는 너답게 살면서 네 마음을 나누면 되겠지. 그런데 말야,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 무릎을 마치 네 걸상처럼 여기면서, 버스에서는 왜 아버지 무릎을 걸상으로 안 삼는데? 434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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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3-01-03 15:0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이들도 한자리 차지하고픈 마음이 있나봅니다. 저희딸애도 어릴때 곧잘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파란놀 2013-01-04 05:35   좋아요 0 | URL
네, 그런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