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집을 빙 둘러
탱자나무 초피나무 찔레나무
소복소복 자라서
말간 꽃 푸른 꽃 하얀 꽃
피우면
멧새와 들새
내려앉아 쉬면서
샛밥 즐기는
울타리 된다.

 


4346.4.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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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책읽기


  땅을 사 놓고 땅에다 집을 안 짓고 밭이나 논을 일구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시골 땅뙈기가 들이나 숲이 되도록 돌보지 않는다면, 이렇게 ‘땅을 사들이는 일’은 무엇일까. ‘투자’인가, ‘투기’인가?


  돈을 더 벌겠다면서 시골마을 값싼 땅을 도시사람이 사들인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가리켜 투자라 하든 투기라 하든, 쉽게 말하자면 ‘땅장사’라고 느낀다. 땅을 사고팔면서 돈을 벌 생각일 뿐이라고 느낀다.


  땅장사를 하고 싶으면 땅장사를 할 노릇이다. 은행을 열거나 맞돈 빌려주면서 돈장사 하는 사람도 있으니, 땅을 사고팔며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나올 만하다. 물장수도 있고, 바람장수도 있으며, 학교장수나 물고기장수, 배추장사, 주식장수, 지식장수, 온갖 장수 다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땅을 왜 사려고 할까. 사람들은 왜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려 할까. 나이 많이 먹고 나서 느긋하게 놀면서 시골살이를 할 뜻으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는가. 흙 만지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는가.


  책은, 책을 사랑스레 읽을 사람이 사들여야 마땅하다. 돈은, 돈을 슬기롭게 쓸 사람이 벌어야 마땅하다. 꿈은, 꿈을 아름답게 펼치려는 사람이 꾸어야 마땅하다. 집은, 살붙이나 동무하고 오순도순 살아가고픈 사람이 지어야 마땅하다. 땅은, 땅을 이루는 흙을 아끼고 보듬으면서 풀과 나무를 얼싸안으려는 사람이 장만해서 보살펴야 마땅하다.


  함부로 파헤쳐도 되는 땅은 없다. 모든 땅에는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가 한가득 깃든다.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가 한가득 깃든 땅에는 지렁이와 벌레와 작은 짐승과 작은 들새가 깃들어 함께 살아간다. 사람 눈에 뜨이지 않을 뿐이라 할 수많은 목숨들 터전이 땅이요 흙이며 들이고 숲이다.


  풀과 나무는 땅문서 하나 없지만,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땅을 살린다. 벌레와 짐승은 땅장사 한 적 없으나, 튼튼하게 보금자리 마련해서 흙을 북돋운다. 사람은 무얼 하나. 사람은 무슨 일을 하나. 사람은 무슨 짓을 하나.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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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마음


  시골에서 숲을 바라본다. 도시에서 나무를 바라본다. 숲을 바라보고 숲빛 살피며 숲내음 마시면서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노랫가락 하나 헤아린다.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빛 살피며 나무내음 마시면서 마음속으로 감겨드는 노랫자락 하나 돌아본다.


  숲을 보는 사람은 숲을 노래한다. 숲을 안 보는 사람은 숲 아닌 다른 것을 노래한다. 숲을 마주하는 사람은 숲을 이야기한다. 숲하고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결 느낄 수 없는 삶을 이야기한다.


  삶이 고스란히 시로 태어난다. 삶터가 하나하나 시를 짓는다. 삶마디가 새록새록 싯마디 되어 물결처럼 흐른다.


  숲속에서도 꿈을 노래하지만, 시멘트 층집에서도 꿈을 노래한다. 숲속에서도 사랑을 속삭이지만, 아스팔트 찻길에서도 사랑을 속삭인다. 꿈은 어디에서나 꿈이요, 사랑은 언제나 사랑이다. 삶을 노래하기에 시를 노래할 수 있고, 삶을 누리기에 시를 누릴 수 있다. 숲마을 고흥을 떠나 여러 날 일산과 서울 언저리를 거치는 동안, 도시에서 새잎 내놓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며 시를 쓰는 분들 문학이 내 숨결로 젖어들지 못하는 까닭을 생각한다.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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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시렁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 꽃병 있고, 꽃병에는 노란 꽃송이 빛난다. 아주 조그마한 틈을 내어 꽃병을 놓으니, 책시렁은 어느새 꽃시렁 된다.


  들풀 한 포기 뿌리를 내려 들꽃 한 송이 피워 올리는 자리는 아주 조그맣다. 한 평이나 반 평이나 0.1평조차 아닌, 손바닥만 한 땅뙈기나 손가락 하나만 한 땅조각마저 아닌, 아이들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은 틈이 있으면 들풀이 자라서 들꽃을 피운다.


  책시렁 한쪽 꽃병 놓으며 노랗게 꽃빛 드리우는 자리는 아주 조그맣다. 아주 조그마한 자리 하나에서 꽃빛이 맑고, 꽃빛이 책마다 스며들어, 헌책방 나들이 누리는 사람들한테 새 빛살 베푼다.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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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0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좋고, 책시렁에 노란 꽃병이 놓여 있는 헌책방 사진도
참 좋습니다. ^^ 마음에 그득하게 담아갑니다.~

파란놀 2013-05-09 01:31   좋아요 0 | URL
사람들 마음 한켠에 늘 고운 꽃 피어나기를 빕니다
 

[당신은 어른입니까 20] 도서관읽기
― 책은 어떻게 건사하면 아름다울까

 


  도서관은 책을 두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도서관 건물 한 번 지으면, 더는 새 건물 안 늘리기 일쑤예요. 책을 둘 자리 넉넉하게 늘리지 못해요. 도서관은 책을 두는 곳이지만, 책을 버리는 곳이 됩니다. 새로운 책을 꾸준히 사들이자면, 그동안 사들인 책을 꾸준히 버려야 해요.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기 퍽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이 없는 도서관은 없겠지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드문드문 찾는 책이라든지 어쩌다 한 번 찾는 책이 있는 도서관은 퍽 드물어요. 대출실적 적은 책을 꾸준하게 버려야, 사람들이 새로 찾는 책을 장만해서 갖출 수 있거든요.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참 힘듭니다. 아직도 아주 많은 도서관은 책을 읽기보다는 수험공부 하는 데로 여깁니다. 책을 읽기 좋도록 건물을 짓거나 꾸미거나 고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 스스로 책을 읽으려는 마음이라기보다 수험공부 하려는 데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애써 아름답게 도서관을 지어 책을 읽기 즐거운 터로 꾸몄어도,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 빚지 못하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못합니다.


  도서관은 책을 사랑하는 곳입니다. 그런데요, 이 나라에서는 도서관이 책을 사랑하도록 북돋우는지 이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는 몸가짐과 책을 다루는 손길을 보여주거나 알려주는 도서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사람들 손길 타는 책’이 튼튼하도록 껍데기를 두껍게 댄다든지 테이프를 바른다든지 해요. 책마다 딱지를 붙이고 번호와 숫자를 매겨요. 책마다 도장을 찍고 ‘훔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붙여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해 보곤 합니다. 책을 이렇게 망가뜨려도 될까 하고. 책에 이렇게 덕지덕지 지저분한 짓을 해도 될까 하고. 사람들이 책을 사랑하도록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어떻게 만지고 넘기며 책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가르쳐야지 싶습니다. 이런 장치 저런 딱지 붙인대서 책을 안 도둑맞지 않아요. 이렇게 도장을 찍고 저렇게 테이프를 발라야 ‘어느 도서관 책’이라고 널리 보여주지 않아요.


  도서관은 책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래, 도서관은 책을 배우는 곳이지요. 그래, 도서관은 책이 어떠한 숨결이요 삶이며 마음인가를 배우는 곳이지요. 그러면, 우리 도서관은 사람들한테 책이 무엇인가 하고 가르치나요. 우리 도서관은 사람들한테 책으로 어떤 삶 짓거나 일구거나 가꿀 수 있는지를 어떻게 가르치나요. 우리 도서관은 사람들한테 책 하나에 깃든 꿈과 사랑과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가르치나요.


  작은도서관을 떠올려 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서울 한복판에 커다란 건물로 서는 모습 말고, 국립중앙도서관이 서울 곳곳에 조그마한 ‘책집’으로 깃드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골목도서관을 헤아려 봅니다. 시립도서관이든 군립도서관이든 골목골목 조그마한 살림집에 스며들어 책집이 되면서 잠집(게스트하우스) 구실까지 맡는, 살가운 책터 하나 헤아려 봅니다.


  골목집 한 곳을 정갈하게 꾸며 책 만 권씩 건사한다면, 골목집 백 곳을 마련하면 책 백만 권 너끈히 거느립니다. 골목집 천 곳을 마련하면 책 천만 권 알뜰히 거느리겠지요. 인터넷이 발돋움한 오늘날은 인터넷으로 ‘어느 책이 어느 골목도서관에 있는가’를 쉬 알아볼 수 있으니, 굳이 커다란 건물로 있는 큰 도서관으로만 가지 않아도 됩니다. 책을 알맞게 나누어 백 군데나 천 군데로 나누어 놓으면, 사람들은 즐겁게 골목마실 누리면서 책마실 빛낼 만합니다.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골목도서관에서 느긋하며 한갓지게 책을 누리면서 책삶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골목도서관은 골목도서관 있는 동네에서 지킬 수 있어요. 골목동네 사람들이 골목도서관을 스스로 돌보며 가꿉니다. 꼭 사서자격증 있어야 ‘골목도서관 책지기’를 할 수 있지 않아요. 사서자격증 아닌 ‘골목동네 사랑하는 마음씨’ 있는 슬기롭고 착한 사람을 ‘골목도서관 책지기’로 두면 돼요. 이렇게 하면, 골목도서관 책지기는 일흔 살 할아버지가 맡을 수 있고, 열다섯 살 푸름이가 맡을 수 있습니다. 책을 참답게 아끼고 사랑하는 누구라도 도서관 책지기 될 수 있지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을 건사하고 돌보고 살피고 헤아리고 나누는 몫을 맡습니다. 십진분류법이라든지 무슨무슨 학문을 갈고닦은 사람이 일할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돌보는 꿈을 꾸는 사람이 일할 도서관입니다. 이때에 시나브로 책사랑이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에 바야흐로 책날개 온누리에 팔랑이면서 ‘책으로 나누는 문화’ 곱게 크리라 생각합니다.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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