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일기

 


  1925년에 태어나 2003년에 숨을 거둔 이오덕 님 일기책이 나온다. 예전에 《이오덕 교육일기》라는 이름으로 1960∼70년대에 쓰신 일기를 묶어서 나온 적 있는데, 이번에 온삶을 가로지르며 쓴 일기를 추려서 다섯 권짜리 책으로 태어난다. 이오덕 님이 2003년 8월에 숨을 거둔 뒤, 이해 9월부터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 깃들어 선생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몫을 맡았다. 아마 2004년 이월쯤이었지 싶은데, 잔뜩 쌓이고 어수선하게 있던 상자들과 원고뭉치와 책더미 사이에서 선생님 일기꾸러미를 찾아내었다. 찾아낸 일기꾸러미는 모두 복사를 해 놓았고, 이 일기꾸러미도 언젠가 빛을 보겠지 하고 생각했다. 예쁘장한 옷 입고 태어난 선생님 일기를 사람들은 잘 읽고 슬기로운 넋 북돋아 주겠지? 아름다운 사랑과 꿈 깃든 고운 이야기를 즐겁게 받아먹으면서, 저마다 아름다운 삶 일구도록 이끄는 눈물겨운 책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빈다. 애틋하다.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직 배본은 안 되었을 테고, 다음주부터 배본이 되지 싶다. 출판사에서 책 모습을 손전화로 찍어서 보내 주었다. 얼른 이 책들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아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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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4 06:18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예쁘게 책이 나왔군요.
저도 이 아름다운 책 마련해 즐겁게 읽고 싶네요.
함께살기님께서는 더욱 각별하고 애틋하실 것 같아요. *^^*

파란놀 2013-06-14 07:14   좋아요 0 | URL
네... 아침에 이래저래 싱숭생숭해서
예전 글들만 자꾸 만지작거렸네요.... @.@
 

여름 어귀

 


마늘쫑 뽑고
부추잎 따며
조용히
눈 감으며
멧골에 피고 지는
예쁜 꽃을 바라본다.

 

하늘 파랗구나.
구름 하얗구나.

 

할미꽃은 씨앗 맺고
민들레는 씨앗 뿌려
여름으로 접어든다.

 

버들잎 노래한다.
바닷물 출렁인다.
고을마다 포근포근 바람
마을마다 따뜻따뜻 햇살

 

싸목싸목
흘러
기지개 한 번.

 


4346.5.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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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6.13.
 : 찔레꽃 진 자리에 밤꽃

 


- 우체국에 가려고 자전거를 달린다. 샛자전거와 수레를 매단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려놓을 때에, 누구보다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본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타고 자전거마실을 하면 무척 좋아한다. 작은아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보라야, 수레에 타라고 할 때에 타는 줄 알지? 아직 챙길 짐 있으니 기다리렴.” “응.” 한참 말을 따라하며 배우는 작은아이는 참말 짧게 말한다.

 

- 우체국으로 가기 앞서 우리 도서관에 들러 짐을 내려놓는다. 오늘은 우체국만 다녀올 생각이라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들르지는 않는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큰길에서 아버지를 기다려 준다.

- 우리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저 앞에서 마주 걸어오는 모습 본다. 꾸벅 인사를 하며 지나친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문득 “저 사람 혼자 여행하네.” 하고 말한다. 얘야, ‘저 사람’이 아니고 ‘마을 할배’란다. ‘혼자 여행하’시지는 않고, ‘걸어서 천천히 마실 다니신’ 셈이란다.

 

- 동호덕마을 지나 면소재지 접어들 무렵, 상수도 공사하는 데를 본다. 상수도 공사는 아직 안 끝났네. 참 질기게 오래도록 하네. 벌써 몇 달째인가. 얼추 스무 달쯤 된 듯한데, 이 작은 마을 상수도 공사를 아직도 안 끝내고 뭘 할까. 우리가 지나가려는 길을 엉망으로 파헤쳐 놓았기에 휘 돌아가는 길로 접어든다. 공사한다며 파헤쳐 놓은 자리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마을 할매가 아이들 보며 알은 체를 한다. 이 더운 날씨에 할매도 참 고단하시겠다.

 

-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느라 상자에 담아 싸는 동안, 두 아이는 우체국 앞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논다. 아이들은 어디이든 놀이터로 삼는다. 아이들은 뛰고 달리면서 논다. 아이들한테는 놀잇감 따로 손에 쥐어 주지 않아도 잘 논다. 아이들은 빈터만 있으면 어디이든 놀이터로 삼는다. 생각해 보면, 나도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어릴 적에 언제나 어디에서 즐겁게 뛰놀았다. 놀이공원에 가야 놀지 않는다. 어떤 놀이터 시설이나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다. 마음을 열고 까르르 웃으면서 뛰고 달리면 모두 놀이가 된다.

 

- 면내 가게에 들러 막걸리 두 병 산다. 큰아이가 “아버지, 나 아이스크림 살래.” 하고 말한다. 먹고 싶니? 음, 오늘은 사 주마. 너 하나 고르고 동생 하나 고르자. 큰아이도 수레에 태운다. 작은아이 큰아이 모두 수레에 앉는다. 큰아이는 샛자전거 붙인 뒤 언제나 샛자전거에만 탔는데, 오늘 모처럼 수레에 동생하고 함께 앉는다. 둘은 수레에 앉아 얼음과자를 먹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얼음과자 다 먹고는 수레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다. 졸렸구나. 잘 자렴.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등허리 펴고 눕게 해 줄게. 신나게 발판을 구른다. 면소재지 언저리 멧자락에서 꼼꼼한 냄새가 풍기기에 무언가 하고 살피니, 아하, 밤꽃이로구나. 밤꽃이네. 찔레꽃이 지면서 유월 여름날 밤꽃이 활짝 피었구나. 얘들아, 알겠니? 밤꽃이란다. 사름벼리 너는 여섯 살이지만, 우리가 시골에서 산 때는 네 동생이 태어난 해부터이니까, 네가 세 살 적부터 시골에서 살며 밤꽃내음 맡았는데 알아볼 수 있겠니?

 

- 모내기 마친 논마다 앙증맞은 자그마한 벼포기 무럭무럭 자란다. 좋은 유월 한낮, 좋은 바람 마시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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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6-13 20:37   좋아요 0 | URL
이글, 참 좋군요. 눈 앞에서 그림이 그려져요.

파란놀 2013-06-14 05: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동차 타는 사람들도
날마다 좋은 그림 그리면서
예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커피 한 잔과 책이랑

 


  커다란 헌책방이든 작은 헌책방이든, 헌책방 나들이를 할 적이면 으레 커피 또는 차 한 잔 대접을 받습니다. 커다란 새책방으로 나들이를 할 적에는 손에 마실거리를 쥘 수 없습니다. 책에 쏟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조그마한 새책방으로 나들이를 할 적에도 손에 마실거리를 섣불리 쥐지 못합니다. 다만, 오래된 단골로 동네 새책방 나들이를 하면,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책을 읽을 때에 커피 또는 차 한 잔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요.


  지난 1992년부터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새책방과 헌책방은 어떻게 다를까?’ 하고 생각해 볼 때에, 또 ‘도서관과 헌책방은 어떤 대목이 다른가?’ 하고 살필 적에, 꼭 한 가지가 달랐습니다. 커피이든 차이든 마실 수 있느냐 없느냐로 ‘새책방과 헌책방’이 갈리고, ‘도서관과 헌책방’이 갈려요.


  새책방이 갖춘 책이나 헌책방이 갖춘 책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서관이 건사한 책하고 헌책방이 건사한 책도 그닥 다르지 않아요. 사뭇 다르다 싶은 책이 있지만, 서로 똑같은 책을 많이 갖추어요.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살림집이나 일터하고 가까운 곳으로 가면 됩니다. 집하고 도서관이 가까우면 도서관 나들이 즐기면 됩니다. 일터하고 헌책방이 가까우면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헌책방에 들르면 됩니다. 집하고도 조금 멀고 일터하고도 꽤 멀다면, 가끔 말미를 내어 즐거이 먼 나들이 누리면 돼요.


  책을 읽는 삶이란 이야기를 읽는 삶입니다.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이웃과 동무를 헤아립니다. 이웃과 동무를 헤아리면서 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되짚습니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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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3 11:36   좋아요 0 | URL
안네의 일기, 위에 놓여 있는 두 잔의 종이컵이
유난히 보기 좋습니다...^^

파란놀 2013-06-13 11:42   좋아요 0 | URL
종이잔에 커피를 주신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라니 얼른 치우시려고 해서
사진이 살짝 흔들렸어요 ^^;
 

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7. 책손이 살피는 책 - 헌책방 대양서점 2013.5.6.

 


  책손이 책을 살핍니다. 하나둘 살핀 책 가운데 집까지 가져가서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은 책은 골라서 한쪽에 쌓습니다.


  헌책방 일꾼이 책을 살핍니다. 하나하나 살핀 책 가운데 헌책방 책시렁에 꽂아 책손들이 새롭게 만나도록 할 만하다 싶은 책을 장만해서 한켠에 쌓습니다.


  책손이 살핀 책은 책손이 읽을 책입니다. 헌책방 일꾼이 살핀 책은 책손이 읽을 책입니다. 책손 눈길과 헌책방 일꾼 눈길이 하나될 때에 헌책 한 권 새롭게 태어납니다.


  책은 껍데기가 낡을 수 있습니다. 껍데기가 낡은 책은 껍데기가 낡을 뿐입니다. 책은 줄거리가 닳지 않습니다. 껍데기가 낡거나 닳더라도 줄거리는 닳지도 않고 낡지도 않습니다. 책에 깃든 줄거리는 책이 처음 태어날 무렵 가장 환하며 고운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빛은 언제까지나 빛날 수 있고, 이 빛은 어느 때부터인가 꺾일 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빛나거나 널리 빛난대서 따사로운 빛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밤하늘 뭇별 몰아내고 도시 한복판을 차지한 전깃불빛이 따사롭지는 않으니까요. 개똥벌레 불빛을 밀어내고 자가용이 번쩍번쩍 비추는 등불빛이 너그럽지는 않으니까요. 아궁이 불빛을 쫓아낸 자리에 깃든 손전화 불빛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아이들 맑은 눈빛을 내동댕이친 자리에 스며든 학력차별과 계급차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고운 손길 받아 태어난 책들이 새책방과 도서관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떠돌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옵니다. 좋은 손길 받아 읽힌 책들이 다른 좋은 손길 기다리면서 헌책방에 놓입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는 책손은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바랍니다. 헌책방으로 책마실 떠나는 책손은 생각을 북돋우는 책을 꿈꿉니다. 책손 한 사람이 고르는 책에는 헌책방지기 마음과 손길과 눈빛과 사랑이 고스란히 스며듭니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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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3 11:33   좋아요 0 | URL
문득 헌책방,이란 소금창고나 별들의 저장소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파란놀 2013-06-13 11:42   좋아요 0 | URL
소금창고도 되고 별저장소도 되겠군요.
참 예쁜 책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