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8
박남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53

 


빛을 품어 시를 쓴다
―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박남준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0.10.25. 8000원

 


  빛을 품는 사람이 시를 씁니다. 시 한 줄이란 바로 빛 한 줄기이기 때문입니다. 빛을 품는 사람이 시를 읽습니다. 시 한 줄이란 곧 빛 한 자락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뜨면서 빛이 온누리를 감쌉니다. 해가 지면서 빛이 온누리에서 스러집니다. 어둠도 빛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을 테지요. 빛이 사라진 자리에 ‘빛이 없는’ 모습이 어둠일 테니까요.


  빛은 하나하나 그림을 그립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날이 밝으면, 나뭇가지도 풀잎도 메뚜기도 제비도 시골집도 아파트도 제 모습을 살그마니 보여줍니다. 해가 둥실 떠올라 온누리가 밝고 환할 적에는 바다도 하늘도 구름도 꽃도 자동차도 책방도 또렷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빛 한 줄기가 온누리에 이름과 모습과 이야기를 입히듯, 글 한 줄로 이루는 시 한 가락은 온누리에 새로운 이름과 모습과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해가 뜨면서 온누리에 빛깔이 감돌고, 시 한 줄 노래하면서 온누리에 빛무늬가 어립니다.


.. 꽃이 피어나는 건 / 당신을 향한 내 사랑 때문이다 / 지금 별똥별이 반짝이는 건 / 이 밤 당신께 보내는 연분홍 편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  (최대의 선물)


  ‘꽃’이라는 말은 시인이 빚었습니다. 흙을 일구면서 숲을 사랑하던 시인이 빚은 말이 ‘꽃’입니다. 무시무시한 총이나 칼을 휘두르던 사람은 ‘꽃’이라는 말을 빚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정치권력을 뽐내던 사람은 ‘꽃’이라는 말을 빚지 않았습니다. 관료 노릇을 하거나 학자 노릇을 하던 사람도 ‘꽃’이라는 말을 빚지 않았습니다. 참말, ‘꽃’이라는 낱말은 시골에서 흙을 아끼고 보듬던 사람이 빚었습니다.


  이리하여, 이 꽃에는 이 꽃대로 새로운 이름을 붙입니다. 저 꽃에는 저 꽃대로 새로운 이름을 붙입니다. 군인도 권력자도 학자도 관료도 꽃이름 붙이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지만, 시골 흙일꾼은 조용히 꽃이름을 짓습니다. 오래오래 꾸준히 꽃이름을 짓습니다.


  꽃이름에 이어 풀이름을 짓습니다. 풀이름에 이어 나무이름을 짓습니다. 꽃과 풀과 나무에 이어, 벌레마다 이름을 다 다르게 지어서 부릅니다. 벌과 나비한테도 다 다른 이름을 붙여요. 새한테도, 물고기한테도, 시골 흙일꾼은 저마다 다른 이름을 슬기롭게 떠올려서 아름답게 불러요.


.. 우리 집 양철 지붕 위 비 오는 소리 / 따르르르 따르르륵 // 마당 앞 파초 잎에 비 드는구나 / 파르르르 파로로롱 ..  (소리)


  빛을 품어 시를 쓰고, 빛을 품어 말을 짓습니다. 빛을 품어 시를 읽고, 빛을 품어 삶을 짓습니다.

  온누리 모든 목숨한테 가장 사랑스러울 이름을 지어서 부른 시골 흙일꾼은, 곧이어 밥과 옷과 집을 가리키는 살갑고 따사로운 이름을 지어서 부릅니다. 기둥 하나와 섬돌 하나를 살가운 벗님으로 여겨 기쁘게 이름을 붙입니다. 절구 하나와 숟가락 하나를 반가운 이웃님으로 삼아 즐겁게 이름을 붙입니다.


  참 마땅한 노릇인데, 군인도 권력자도 학자도 관료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에서 쉽니다. 그러나 군인도 권력자도 학자도 관료도 밥이나 옷이나 집하고 얽힌 낱말 어느 한 가지도 짓지 못했고, 지을 생각조차 못 품어요. 게다가 군인이건 권력자이건 학자이건 관료이건 밥과 옷과 집이 없으면 모두 죽겠지요. 더욱이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과 풀이 없으면 이들 군인을 비롯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햇볕을 못 쬐고 바람을 못 들이켜며 물을 못 마셔도 목숨을 건사할 군인이나 권력자가 있을까요? 그렇지만 군인이건 권력자이건 햇볕과 바람과 물과 풀을 아름답고 정갈하게 돌보거나 보듬거나 지키거나 가꾸는 일에는 하나도 마음을 안 써요.


  시골 흙일꾼은 ‘어머니’와 ‘아버지’와 ‘아기’와 ‘아이’ 같은 낱말도 짓습니다. 이런 낱말 즐겁게 지어서 환한 웃음꽃처럼 노래합니다. 이윽고, 시골 흙일꾼은 ‘사랑’과 ‘꿈’과 ‘믿음’이라는 낱말을 지어요. 이제 시나브로 ‘노래’와 ‘춤’과 ‘이야기’ 같은 낱말을 짓고, ‘잔치’와 ‘두레’와 ‘품앗이’ 같은 낱말을 짓습니다.


  시골 흙일꾼은 ‘고속도로·공장·발전소·전투기·컴퓨터·스마트폰·케이티엑스·송전탑·농약·유전자조작·버스·비행기’ 같은 낱말을 안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어느 한 가지조차 없어도 우리 삶은 아름답게 일굴 수 있습니다. 꼭 없어도 되는 것들 이름을 짓는 군인이거나 권력자이거나 학자이거나 관료인 셈입니다. 꼭 있어야 하는 것들 이름하고는 동떨어진 채, 사람들이 꼭 누리면서 나누어야 할 아름다움을 잊거나 등돌리도록 부추기는 군인이요 권력자요 학자요 관료라고 느낍니다.


.. 꽃 대궐이라더니 /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 그래 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 간밤을 설렜을 것이다 /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  (봄날은 갔네)


  사랑을 하면서 시를 씁니다. 사랑을 하면서 삶을 가꿉니다. 사랑을 나누면서 시를 읽습니다. 사랑을 나누면서 삶을 일굽니다.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를 못 씁니다. 사랑을 생각하지 않거나 사랑을 헤아리지 않거나 사랑을 살피지 않는 사람도 시를 못 씁니다. 사랑을 노래하기에 시를 읽어요. 사랑을 꿈꾸기에 시를 읊으며 이야기꽃을 피워요.


  어버이가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밥을 지어 아이한테 먹이듯, 시를 쓰는 사람은 온누리 모든 숨결에 사랑스러운 이름 하나 붙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며 씩씩하게 자라듯, 시를 읽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따사로운 실마리를 알뜰살뜰 잇고 돌봅니다.


  그러니까, 시를 쓰지 못하는 사회는 메마릅니다. 시를 읽지 못하는 학교나 정치나 교육이나 문화나 행정이나 경제나 사회운동은 모두 팍팍합니다. 시를 쓰는 사회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시는 문학이 아닙니다. 시골 할매 이야기 한 자락이 모두 시입니다. 골목동네 할배 이야기 두 자락이 몽땅 시입니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론이나 지식으로는 시를 못 써요. 이론이나 지식은 이론이나 지식일 뿐 시가 아닙니다.

  시는 사랑이요, 시는 삶이며, 시는 꿈입니다. 사랑이 시로 태어나고, 삶이 시로 드러나며, 꿈이 시로 이루어집니다.


.. 이제 곧 신시도와 선유도를 잇는 연륙교가 세워지면 / 아이들은 배를 타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출할 수 있을 것이다 /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 아무도 연분홍 해당화의 바닷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 자전거를 타고 헐레벌떡 달음질로 뛰어와 / 고래고래 떠나는 배를 향해 작은 손 흔들어주던 / 아이들의 얼굴도 희미해질 것이다 ..  (섬에서 부르던 유행가)


  박남준 님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실천문학사,2010)를 읽습니다. 지리산 어느 멧자락에서 씩씩하게? 또는 신나게? 또는 재미나게? 또는 홀가분하게? 또는 사랑스럽게 살아간다고 하는 박남준 님 삶이 한 올 두 올 묻어나는 이야기가 담긴 시집입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빗소리 들으며 시를 씁니다.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픈 대로 밥을 지으며 시를 씁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눈을 쓸거나 바라보면서 시를 씁니다. 술 한 잔이나 차 한 잔을 마시면, 또 이러한 삶대로 찬찬히 노래를 부르듯 시를 씁니다.


.. 삽질을 하려거든 강 말구 밭에서 하시구요 / 뱃놀이를 하려거든 강 말구 바다에서 하시지요 / 새들이 오지 않는 운하는 싫어 / 물고기들 살지 않는 운하는 싫어 / 친구들과 물장구치는 강이 더 좋아 / 푸른 강물 금모래 밭 강이 더 좋아 ..  (강이 더 좋아)


  그나저나, 밭에서도 삽질을 할 노릇이 아닙니다. 밭에서 할 일이란, 흙과 풀을 사랑할 일입니다. 아무렇게나 파헤친다면 밭일이 아니에요. 그야말로 ‘삽질’이 되어요.


  삶은 삽질이 아니라 삶입니다. 사랑과 꿈으로 이루어지는 삶일 때에 참으로 삶입니다. 따사로운 손길로 사랑을 빚을 때에 삶이라 하지, 우악스럽고 거칠게 이웃을 괴롭히는 모습은 삶이라 하지 않아요. 이럴 때에는 바보짓이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대강이건 대운하이건, 또 이런 토목공사이건 저런 개발사업이건, 이 나라에서는 으레 바보짓이 되풀이됩니다. 이 나라에서 군인이거나 권력자이거나 학자이거나 관료인 사람들은 자꾸자꾸 스스로 바보짓을 되풀이하려 합니다.


  삶을 바라보지 못하고 돈만 바라보기 때문일까요. 사랑을 바라보지 않고 권력만 바라보기 때문일까요. 꿈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름값만 바라보기 때문일까요.


.. 노루가 떠나간 들녘을 생각해보았는가 / 새들이 깃들지 않는 숲을 떠올려보았는가 / 제초제와 농약과 화학비료들 자욱한 사철 푸른 골프장의 잔디밭이 / 곶자왈의 이름을 대신할 것이네 ..  (곶자왈, 스스로 빛나던 이름이여)


  마음속에 시를 품어요. 마음속에 사랑을 품어요. 아이들한테 삽질을 가르치거나 물려주면 재미있을까 생각해 봐요. 어린 아기들한테 옹알이 아닌 지식과 정보와 이론을 줄줄 읊는다면 얼마나 재미있을는지 곱씹어 봐요. 졸린 아이들 앞에서 꽥꽥 소리지르는 대중노래 부르면 아이들이 반길는지 헤아려 봐요.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 곁에서 영어교육 조기교육 한자교육 부르짖는 모습이 얼마나 철이 있다 할 만한지 가늠해 봐요.


  아름답게 누릴 삶을 생각해요.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삶을 곱씹어요. 즐거이 꿈꾸는 빛을 헤아려요. 따사로이 손 맞잡으며 걸어갈 길을 가늠해요.


  빛을 품어요. 빛을 가꿔요. 빛을 노래해요. 빛을 나눠요. 스스로 빛이 되고, 내 동무와 이웃 모두 함박웃음 같은 빛이 되어 서로서로 어깨를 겯어요. 마음속에서 샘솟는 모든 말이 시가 되도록 해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노래가 되도록 해요. 내 모든 몸짓이 꿈이 되고 이야기가 되도록 해요. 삶을 노래하면서 언제나 웃어요. 4346.8.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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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동마실을 마무리짓고

서울로 가서 출판사에 들러

한글날에 나올 <숲말> 교정을 보려 한다.

 

그러고는 서울에서 하루 묵고

이튿날인 8월 17일 토요일에

순천으로 기차를 타고 가서

사진잔치 이야기마당을 꾸려야지.

 

그러고는 우리 시골집으로!

 

그동안 농약바람 찬찬히 가라앉거나 사그라들면서

우리 시골집 느긋하며 넉넉하게 누릴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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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먹을 때는 제비
놀 때는 강아지
잘 때는 곰
울 때는 개구리
웃을 때는 꾀꼬리
춤출 때는 두루미
걸을 때는 나비
달릴 때는 병아리

 

할머니 옆에서는 매미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곁에서는
아기.

 


4346.8.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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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16 17:20   좋아요 0 | URL
정말 참 좋습니다~!
'아기'를 어쩜 이렇듯..예쁜 시로 쓰셨는지요. *^^*

파란놀 2013-08-18 08:36   좋아요 0 | URL
우리 집에 아기가 셋이 있느라고요 ^^;;;
 

그래도 학교에 보내야?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유아원도 보육원도 다니지 않는다. 언제나 저희 어버이와 함께 지낸다. 두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하고 늘 함께 살아간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갈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아이들이 바란다면야 갈 수 있으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흐름을 살피면,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서면서 밥과 옷과 집을 씩씩하게 건사하는 삶을 듣거나 얻거나 나눌 수 없는 한국 사회이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시험공부만 시킨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른 말 잘 듣게 길들이는 훈련’만 시킨다. 학교는 아이들끼리 서로 다투거나 치고받으면서 밟고 올라서도록 내몬다. 학교는 아이들을 못 놀게 닦달한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겉치레와 겉꾸밈에 사로잡히도록 부추긴다.


  아마, 요즈음 어버이 가운데 이런 학교 모습을 모르는 분은 드물지 싶다. 그렇지만 막상 이런 학교 모습을 바로잡거나 고치려고 애쓰지 못한다. 이런 학교 모습에 그냥 맞추고 만다. 이런 학교 모습이라 하더라도 ‘기초교육인데’라든지 ‘의무교육인데’라는 말을 하면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만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어버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 어른들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되나.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누리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도록 할 때에 아름다운 삶을 일굴 수 있을까.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제도권 학교교육인데, 그냥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아이들은 몽땅 망가지고야 만다. 아이들을 믿기만 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더라도 어른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오랫동안 서로 마주보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길’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놀고,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한테 삶을 보여주며,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책을 함께 읽거나 생각을 조곤조곤 나누면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여느 제도권 학교에 다니더라도 슬기로움을 잃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 어버이는 집에서 ‘집 교육’을 올바르며 참답고 아름답게 잘 하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제도권 아닌 대안교육 펼치는 학교에 다니더라도 집에서 ‘집 교육’을 올바르거나 참답거나 아름답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씩씩하거나 튼튼하게 자라지 못한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그냥 학교에 다녀’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그냥 낳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집에서 함께 지내거나, 깊이 생각하고 살피면서 다 함께 즐겁게 놀고 일하며 어우러지는 삶을 누려야 한다.


  삶이 있을 때에 교육이 이루어진다. 삶이 있을 때에 사랑이 싹튼다. 삶이 있을 때에 이야기가 샘솟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더라도 입시교육에 휘둘리거나 길들이지 않도록 마음을 쏟는 어버이나 어른이 되기를 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돌보면서 아이도 어른도 슬기로우면서 착하고 참다운 길 아름답게 걸어가는 삶을 생각한다. 4346.8.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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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숲길 책읽기

 


  대구에서 안동으로 들어서는 시외버스를 탄다. 대구부터 태백까지 달리는 시외버스는 안동에서 먼저 선 다음 태백까지 달린다고 한다. 시외버스는 대구 시내 벗어나면서 왼쪽과 오른쪽 모두 나무 우거진 숲 사잇길을 달린다. 이곳은 어느 시골일까, 여기는 어디 멧자락일까, 하고 곰곰이 헤아려 본다. 대구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시골이 있고 숲이 있네, 하면서 놀란다. 그렇지만, 바깥 들과 숲을 한껏 누리지 못한다. 씽씽 달리는 버스 소리에 갇히고, 너무 빨리 달리는 시외버스에서는 바깥 푸른 물결을 느긋하게 돌아보지 못한다. 모두 휙휙 지나치는 ‘풍경’ 또는 ‘구경거리’이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찻길은 모두 시골마을이나 숲이나 멧자락을 가로지른다. 어쩔 수 없을 텐데, 도시와 도시 사이는 모두 시골이거나 들이거나 숲이거나 멧자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불구불한 오래된 찻길, 이른바 지방도로가 아니고서야 모두 고속도로나 고속국도이다. 제아무리 빼어난 숲이 이루어졌다 한들, 참말 푸르게 우거진 여름숲이라 한들, 자동차를 달리는 사람들은 나무나 풀을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100킬로미터 120킬로미터 140킬로미터로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동차에서 어찌 옆을 돌아보겠는가. 앞지를 만한 다른 자동차가 있는지 살피고, 길알림판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자동차가 삐끗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기울일 뿐이다. 백 킬로미터 넘는 빠르기로 달리니, 숲을 돌아보다가 손잡이를 잘못 돌리거나 만지면 그만 자동차가 뒤집어지리라. 자동차를 몰면서 숲을 누릴 수는 없다.


  애써 찻길을 아름다운 숲 사이로 지나가도록 닦았다 하지만, 그저 숲 사이를 지나갈 뿐, 어느 누구도 숲길을 달린 줄 깨닫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고 되새기지 않는다. 숲 사이를 지나가더라도 창문을 열며 숲바람을 마시지 않는다. 고속도로 달리며 창문 활짝 열어 숲바람 마시겠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고속도로에서 창문을 연다면 옆을 싱싱 스치는 자동차 바퀴 소리에 귀가 찢어질는지 모른다. 4346.8.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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