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꽃 그늘

 


여름이 무르익는 칠월부터
배롱나무 가지마다
옅붉은 꽃송이
그득 맺혀,

 

빨래터 네모난 물결에
소복소복 내려앉는다.

 

물이끼 밟으며
물방울 튀길
아이들도

 

물이끼 걷으며
손빨래 부산할
젊은 어매도

 

서울로 떠나
아무도 없지만,

 

멧새 살포시 내려앉는다.
잠자리 가만히 날개를 쉰다.

 

배롱꽃은
새와 풀벌레 노래 들으면서
별하고 놀고
해하고 춤춘다.

 


4346.9.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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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19. 맨발로 노는 재미 2013.9.15.

 


  맨발로 놀며 흙을 느낀다. 시멘트마당이라면 시멘트를 느끼지. 풀밭이라면 풀을 느끼고, 아침에는 풀밭에 내려앉는 이슬을 느낀다. 어디에서나 발바닥이 땅을 느낀다. 집에서도 바깥에서도 들에서도 바다에서도, 맨발과 맨손은 온누리를 느낀다. 맨손으로 볼을 쓰다듬는 느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맨발로 이불을 꾹꾹 눌러 빨 적에 얼마나 기쁜가. 아이들은 맨발로 살며 맨발로 놀고 싶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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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빨래그림자 놀이

 


  여름이 지나 가을로 접어들면서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작은아이는 마당에서 빨래그림자를 밟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논다. 아버지가 빨래를 마당에 너니 그림자가 드리우지? 이 그림자뿐 아니라 네가 움직일 적마다 생기는 네 그림자도 네 등 뒤에 길게 드리운단다. 4346.9.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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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79 : 일별一瞥

 


사회 생활을 하면서 깨어 있지 않은 때가 많은지라, 자기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하늘나라를 일별一瞥조차 못하는 것이다
《디팩 초프라/이현주 옮김-우주 리듬을 타라》(샨티,2013) 17쪽

 

  “사회 생활(生活)을 하면서”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사회에서 지내며”나 “사회살이를 하면서”나 “사회에서”로 손볼 수 있습니다. “깨어 있지 않은”은 “깨지 않은”으로 손질하고, “숨어 있는”은 “숨은”으로 손질합니다. “때가 많은지라”는 “때가 잦은지라”로 바로잡습니다. “자기(自己) 가슴”은 “내 가슴”이나 “이녁 가슴”으로 다듬고, “못하는 것이다”는 “못한다”로 다듬어 줍니다. ‘천국(天國)’이 아닌 ‘하늘나라’로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한자말 ‘일별(一瞥)’은 “한 번 흘낏 봄”을 뜻한다고 해요. 이 한자말을 쓰고 싶은 분은 쓸 만할 테지만,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적어 넣더라도 뜻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한자말을 쓰기보다는 누구나 환하게 알아듣도록 한국말로 또렷하게 적을 때에 잘 어울립니다.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적을 노릇이 아니라, 한국말로 “흘낏 보다”라 적을 노릇입니다.

 

 일별一瞥조차 못하는 것이다
→ 한 번 흘낏 보지도 못한다
→ 흘낏 보지도 못한다
→ 살짝 보지도 못한다
→ 구경조차 못한다
→ 조금도 못 본다
 …

 

  한국말 “흘낏 보다”를 한자말로 옮기면 ‘일별’이 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잘 알아듣고 즐겁게 생각을 나누도록 “흘낏 보다”라 적을 때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알맞고 아름답게 쓸 때에 싱그러이 살아나는 말입니다. 4346.9.20.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회에서 지내며 깨지 않은 때가 잦은지라, 내 가슴 깊은 곳에 숨은 하늘나라를 구경조차 못 한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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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만나다

 


  도서관에서 ‘세계여행’을 한다고 말씀하는 분이 있습니다. 중학생 적에 이런 말을 듣고는 인천시에 있는 시립도서관과 구립도서관을 모두 찾아다니며 어떤 책이 있는가를 찬찬히 살폈습니다. 내 동무들은 도서관에 ‘시험공부’를 하러 갔지만, 나는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갔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과 1990년대 첫무렵 인천시 도서관은 ‘세계여행’을 시켜 줄 만한 책이 얼마 없었습니다. ‘국내여행’조차 제대로 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도서관보다는 여느 새책방이 ‘여행’을 시켜 준다고 느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2년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책에 눈을 떴습니다. 헌책방 한 곳 크기는 새책방 크기하고 견주면 퍽 작기도 하고 책꽂이도 조그맣다 할 수 있어요. 도서관 커다란 건물하고 대면 헌책방은 그야말로 콩알만 하구나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헌책방에는 도서관에 없고 새책방에 없는 책이 그득했어요. 도서관에서 갖추지 않는 책들이 있고, 새책방에서 사라진 책들이 있어요.


  헌책방에서 ‘세월 넘나드는 여행’을 합니다, 헌책방에서 ‘이 나라와 저 나라 가로지르는 여행’을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나온 온갖 책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예전 사람들이 땀흘려 일군 알뜰한 책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왜 도서관에는 다른 나라 책이 거의 없을까요. 왜 도서관에는 예전 책을 찾아보기 이토록 어려울까요. 도서관에는 어떤 책을 놓아야 어울릴까요. 새책방에는 어떤 책을 갖추어야 아름다울까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려 읽어야 즐거울까요. 사람들은 새책방에서 어떤 책을 사서 읽을 적에 흐뭇할까요.


  중국조선족이 엮은 책을 헌책방에서 만나며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만났기에, 나로서는 비행기삯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중국 연변에 있는 신화서점이나 헌책방을 샅샅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돈 몇 푼으로 중국 연변 나들이를 다녀온 셈입니다.


  먼 나라 이웃 숨결을 느낍니다. 먼 나라 이웃 손길이 깃든 책을 넘기면서 내 마음으로 스며드는 넋을 곱씹습니다. 책을 만나면서 삶을 만납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읽습니다. 책을 사귀면서 고운 꿈을 키웁니다. 4346.9.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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