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레이터 The Crater 3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72

 


살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 The crater 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도영명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1.9.25. 9000원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The crater》(학산문화사,2011)는 셋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셋째 권 마지막 꼭지에서 책이름 ‘더 크레이터’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달을 살펴보려는 과학자이자 우주비행사가 달까지 가서 잘 내려앉지만, 그만 말썽이 생겨 우주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달에 남습니다. 그런데 달에 있는 분화구에서 나오는 김이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 몸에 닿으니 다시 살아나요. 이 우주비행사는 홀로 달에 남아 죽고 살기를 되풀이합니다.


  이동안 지구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지구사람은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 “하지만 말이다. 만약 도중에 어떻게든 자신의 직업에 의문이 생긴다면, 만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팔각형의 저택으로 오거라. 그러면 딱 한 번 너는 다른 운명으로 바꿀 수 있다.” “다른 운명?” ”그래, 만약 네가 만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지, 또 하나의 세계에 있는 자신으로 바꿀 수가 있는 거란다. 단 한 번뿐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있나요. SF도 아니고.” “류이치, 이 우주는 말이다, 네가 모르는 무한의 세계가 있단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세계이지.” (12∼13쪽)


  지구사람은 무기를 만드느라 바쁩니다. 무기를 만든 지구사람은 엄청나게 만든 무기로 전쟁을 하느라 바쁩니다. 전쟁을 하는 지구사람은 서로를 죽이면서 스스로 죽느라 바쁩니다.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지구사람은 지구별을 아주 망가뜨려 숲도 들도 바다도 땅도 모조리 무너뜨립니다.

  달에서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는 이 모든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지구사람 아닌 달사람이 되고 만 우주비행사는 지구별에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겠다고 깨닫습니다.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해대며 서로 죽이고 죽는 통에 어느 누구도 지구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서로 죽이고 죽는 사이에 어느 누구도 숨을 곳이 없으며, 애써 숨는다 하더라도 핵폭탄이 터져 흐르는 방사능 때문에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방사능이 안 닿는 곳에 숨더라도 먹을 밥이나 마실 물이나 바람이 없습니다.

  지구사람은 왜 어리석은 길을 가고야 말까요. 지구사람은 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안 깨달을까요.


  무기를 만들면 전쟁을 할밖에 없습니다. 군대를 만들면 전쟁하는 데에 쓸밖에 없습니다. 군인을 키워 어디에 쓰나요. 전투경찰도 경찰도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예전 안기부나 오늘날 국가정보원은 어떤 구실을 하는가요. 참으로 나라를 지키려 한다면 국방부나 국가정보원이 아닌 평화부가 있어야 하고, 사랑을 나눌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평화부란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과 옷과 집을 낳는 사람을 키우는 곳입니다. 사랑을 나눌 일꾼이란 남한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흙을 일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무기 만들기를 그치지 않으면 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군대를 하루빨리 없애지 않으면 평화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온통 전쟁 이야기만 있는 역사책을 들여다보셔요. 제아무리 잘났다 하는 권력자라 하더라도 전쟁으로는 평화를 거두지 못합니다. 전쟁을 일으켜 땅을 아무리 넓혀 본들 백 해를 잇지 못합니다. 전쟁은 새로운 전쟁을 부를 뿐입니다. 전쟁은 새로운 전쟁을 낳을 뿐입니다. 전쟁은 사람들 등허리를 휘게 할 뿐입니다. 전쟁은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여러 나라 땅과 숲과 물과 바람을 더럽힐 뿐입니다.

 


- “아아, 출구인가! 바깥 바람이.” “조금만 더 힘을 내. 별이야! 저것 봐! 너랑 이렇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렸어. 지금은 단둘뿐이야.” ‘이제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사카이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67쪽)
- “너,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거나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 줄래?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서도 안 돼. 약속할 수 있겠니?” “약속이야 하겠지만 대체 무슨 일인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실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미도리는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라뇨? 아하, 아하하, 농담하지 마세요. 이 가게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미도리는 말이지, 저 샘에서 사는 님프란다. 님프란 존재를 아니? 님프란, 물 주변에 사는 요정이야.” (87쪽)


  사람이 살아갈 길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평화요 사랑입니다. 평화로운 사랑과 사랑스러운 평화, 이 길 하나가 바로 사람이 살아갈 길입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평화를 누려야 살아갈 수 있어요. 이밖에 다른 삶길은 없습니다.

  무기를 만드느라 돈과 품과 겨를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저마다 밭을 일구고 숲을 돌보는 데에 온마음과 온힘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전쟁준비나 전쟁훈련에 돈과 품과 겨를을 바치지 말아야 합니다. 삶을 짓고 사랑을 가꾸는 데에 모든 꿈과 사랑을 들일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시험기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아이들과 푸른 아이들은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빛내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대학교 입학시험 치르는 일에 온 마음이 빼앗긴 채 꿈과 사랑하고 동떨어진 길을 자꾸 걸어가고 말면, 이 나라에는 아무런 빛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대학교가 아닌 삶을 보아야 하고, 시험문제가 아닌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 또한 아이들한테 돈과 학력과 아파트를 물려줄 생각은 접고, 어른들부터 사랑스러운 삶을 누리고 아름다운 평화를 꽃피우는 길을 즐겁게 걸어가야 합니다.


- “원시림에 들러싸여, 정말로 고요하게 숨겨져 있는 샘을 발견했지. 물론 그곳은 누구 하나 발을 들인 적이 없어 보였어. 내가 그 샘을 처음 봤듯이, 샘도 인간을 처음 봤을 거야. 나는 그 샘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러자, 무슨 일인지 샘물에 물결이 일더니, 갑자기 한 소녀가 나타난 거야.” (88∼89쪽)

 

 


  데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책 《The crater》 세 권을 빌어 우리한테 묻습니다. 여보시오, 이녁은 살고 싶소, 아니면 죽고 싶소?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살고 싶은가요, 죽고 싶은가요? 삶길을 가고 싶은가요, 죽음길을 가고 싶은가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삶길인가요, 죽음길인가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사랑길인가요, 전쟁길인가요? 우리는 어느 길에 설 때에 서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는가요.


  모든 길은 나 스스로 걷습니다. 남한테 이끌려 걷는 길은 없습니다. 어느 길이든 나 스스로 걷습니다. 아름다운 길도 스스로 찾아서 걷습니다. 안 아름다운 길도 스스로 찾아서 걷습니다.


  사랑은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스스로 찾는 사랑이고, 스스로 가꾸는 사랑이며, 스스로 나누는 사랑입니다. 착한 마음이 되어 참다운 생각을 밝힐 때에 사랑이 시나브로 깨어납니다. 맑은 넋이 되어 밝은 꿈을 키우려 할 때에 사랑이 가만히 눈을 뜹니다.


  전쟁은 누가 따로 가르칩니다. 남한테 이끌리거나 제도권에 휩싸일 때에는 전쟁 톱니바퀴 되고 맙니다. 내 마음이 없거나 내 넋을 세우지 못하면, 다른 사람 손에 휘둘리면서 전쟁 허수아비가 되지요. 내 꿈이 없거나 내 사랑을 빛내지 못하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함부로 저지르는 바보가 되어요.


- “아주머니, TV에서 한 발표 들었어요?” “네에, 들었어요. 류이치 소식 말이죠?” “전사했다면서요. 정말 멋져요.” “오쿠노 씨의 어머님이죠? 아드님의 전사통지서입니다. 훌륭한 공적을 세우고 옥쇄하셨습니다.” (111쪽)
- “류이치, 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단다. 정말은 군신 따위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어.” (119쪽)
- “너는 빈사의 중상을 입으면서도 적 기지로 돌진해 사령탑과 폭사했단 말이다. 용사의 날까지 제정하고, 충령탑까지 만들어서 영웅 취급을 받고 있단 말이다. 왜, 왜, 왜 돌아온 거냐?” “그런 말씀을 하셔도 저는 몰랐던 일입니다. 어쨌든 저는 살아 있습니다. 기뻐해 주십시오.”“너 이 자식, 한 번 더 죽어라!” “네에? 겨우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죽으라니, 그건 너무합니다. 너무하다고요.” “이 멍청아! 살아서 뻔뻔하게 기지 안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으냐. 군 사령부나 정부가 국민을 속인 게 된단 말이야. 너를 명예로운 전사자로 발표했단 말이야.” (122∼123쪽)
- “오쿠노, 귀관은 한 번 적의 기지로 날아가라! 그리고, 전사해라. 그렇다. 군의 공표대로다! 우선 적기의 공격을 받아서 가슴에 적탄을 맞고 이를 악물면서 적의 기지로 돌진하는 거다! 그대로 실행해라. 그러면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다른 전우를.” “안 돼! 귀관이 해야 한다.” “저는 영웅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습니다.” (124쪽)

 

 


  전쟁을 벌이는 사람은 영웅을 만듭니다. 영웅이란 언제나 전쟁영웅입니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영웅이 없습니다. 평화영웅은 없어요. 사랑영웅도 없어요. 왜냐하면, 평화와 사랑이란 어깨동무요 두레이며 품앗이입니다. 서로 어깨를 겯거나 손을 맞잡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평화요 사랑입니다. 평화와 사랑에 영웅이 끼어들 자리 없습니다.


  평화와 사랑은 그예 일꾼입니다. 평화와 사랑은 그예 사람입니다. 오롯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 평화와 사랑입니다. 오롯이 슬픈 영웅이 되는 길이 전쟁입니다.


  전쟁영웅이 된다는 뜻은 ‘내 이웃이나 동무를 많이 죽였다’는 소리입니다. 싸움터에서 적군을 많이 죽이니 전쟁영웅 된다는데, 적군은 누구일까요. 적군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군과 적군은 똑같습니다. 바보스러운 권력자한테 휘둘려 덧없이 끌려나와 부들부들 떨며 ‘너를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고 두려워 하는 여느 사람들이 아군이요 적군입니다. 서로를 왜 죽여야 하는지 모르는 채, 그동안 조용한 마을에서 조용한 사람으로 조용한 삶 일구다가 갑작스레 싸움터에 총칼을 거머쥐고 서서는, 서로를 ‘얼른 죽이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바라는 허수아비요 바보입니다.


- “할머니, 기운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자, 보세요. 그 거미가 저렇게 큰 집을 만들었어요. 멀고 먼 이 낯선 땅에 와서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고 있어요.” (163쪽)
- “그 가스를 믿지 않는단 거야? 그 기적의 가스를?” “그게 어쨌단 거야? 잘 들어, 좀비. 지구는 지금 세계가 둘로 나뉘어서 서로 한창 대립하고 있는 중이라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보다, 어떻게 빨리 적에게 이길까가 더 중요하단 말이야.” (188∼189쪽)
- 며칠이 지났을까. 문득 나는 지구를 보고,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건 핵폭발이야. 전 세계에 핵폭발의 빛이. 이제 다 끝나 버렸군. 아마도 핵전쟁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 거겠지. 그리고 이제 인간은 누구 하나 살아 있지 않을 거야.” (192∼193쪽)


  살아가려면 사랑을 합니다. 죽으려면 전쟁을 합니다. 살아가려면 숲을 보듬으면서 사랑을 합니다. 죽으려면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합니다. 살아가려면 숲바람 마시며 숲노래를 부릅니다. 죽으려면 총칼을 들어 이웃과 동무를 찔러 죽이거나 쏘아 죽입니다. 살아가려면 숲밥을 먹으면서 이웃과 나란히 숲집을 짓습니다. 죽으려면 탱크와 전투기와 미사일과 군함을 잔뜩 만들어 이웃 없이, 아니 이웃을 죽이고 나도 죽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역사책을 덮을 노릇입니다. 권력자 이야기와 전쟁 이야기만 가득한 역사책을 덮을 노릇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새로운 삶을 쓸 노릇입니다. 사랑 이야기와 꿈 이야기가 가득한 새 삶을 써서 새 역사책을 지을 노릇입니다.


  역사란 사람들이 살아온 발자취라 하는데, 싸우고 죽인 짓만 담는 책을 역사책이라 하기에는 참 부끄럽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일군 아름다운 빛을 담을 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참다운 역사책입니다. 여태껏 어른들은 서로 죽고 죽이면서 바보스러운 역사책만 썼지만, 앞으로 이 땅 이 나라 아이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역사책을 쓸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 어른들도 부끄러움을 깨닫고 아이들과 함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데즈카 오사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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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75] 언제나

 


  둘로 나눌 수 없는 삶, 하늘, 바다, 흙.
  둘로 가를 수 없는 꽃, 나무, 마음, 빛.
  언제나 하나이고 한결같은 이야기.

 


  둘로 나눌 수 없는 삶입니다. 이 삶과 저 삶으로 한 사람 삶을 나눌 수 없습니다. 늘 모든 삶이 하나로 움직이고 흐릅니다. 하늘과 바다와 흙도 둘로 나눌 수 없습니다. 정치꾼은 국경선을 가르지만, 흙은 국경선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바다도 금으로 나누지 못합니다. 꽃과 나무를 둘로 가르면 죽습니다. 마음과 빛을 둘로 갈라 보았자 이내 하나로 됩니다. 언제나 하나로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늘 웃을 수 있는 삶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오직 하나요 한결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생각을 짓습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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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만 원

 


  서천여고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준 일삯을 받는다. 이달에는 1인잡지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석 달 앞서 만들어 놓은 한글파일을 연다. 오늘 주문을 넣을까 하다가 하루를 더 생각해 보기로 한다. 낮에 아이들 자전거에 태워 마실을 다녀오다가 문득 한 가지 떠오른다. 옆지기가 지난 시월 첫머리에 람타학교 강의를 들으러 부산으로 동생과 함께 다녀오며 배움삯 35만 원을 옆지기 동무한테서 빌렸다. 빌린 돈이 있었네, 빌린 돈부터 갚아야겠네.


  자전거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빌린 돈을 보낸다. 이러면서 1인잡지 낼 돈은 사라진다. 그래도, 곧 다른 일거리 들어와서 강의를 다녀온다든지, 사외보나 잡지에서 글을 써 주면, 그 돈으로 1인잡지를 낼 수 있겠지. 아침에 주문하려던 생각을 하루 미루기를 잘 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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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재미나게 읽는 책

 


  사진책은 누가 읽는 책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는 사진책이라 할 테지요. 만화책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고, 시집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며, 소설책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지요. 그런데,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즐겁게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거나 나누는 사람이 뜻밖에 몹시 적습니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 사진기를 새로 갖추거나 더 낫다 하는 장비로 옮기는 데에 사로잡힐 뿐, 사진책을 알뜰살뜰 헤아리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좀처럼 늘지 못해요.


  시를 좋아하는 분들은 시읽기뿐 아니라 시쓰기도 해 봅니다. 소설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소설읽기를 하는 만큼 소설쓰기까지 나아가기는 어렵다 할 테지만, 글쓰기는 즐겁게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좋아한다는 분은 여러 갈래로 나눌 만해요. 첫째, 사진기를 좋아하는 사람, 둘째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사람, 셋째 사진에 찍히기 좋아하는 사람, 넷째 사진책을 좋아하는 사람, 다섯째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얼추 이렇게 나누어 봅니다. 이 가운데 넷째와 다섯째에 드는 사람이 가장 적지 싶어요. 그래서 사진책을 즐겁게 장만해서 읽거나 나누는 손길이 얕구나 싶습니다.


  2012년 1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나온 사진책 가운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책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어느 사진책이라고 안 아름답지 않으며, 어느 사진책이라고 내 마음으로 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진책이든 재미난 삶을 보여줍니다. 어느 사진작가이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사진이든 맑고 밝은 빛과 그늘을 보여줍니다.


  몽골에서 마주한 독수리사냥 이야기를 엮은 이장환 님 《독수리사냥》(삼인,2013)을 읽으며 눈과 마음을 탁 틀 수 있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일흔 고개를 넘으며 들려준 사진 이야기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은 애틋한 사랑노래로 읽었습니다. 김민호 님이 차분한 빛으로 그린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는 따사로운 볕살과 같았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과 삶을 어린이 눈높이로 엮어 아이들하고 함께 읽을 만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는 아이들 가슴을 부풀게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이 내놓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과 같은 책을 읽으며 삶을 이루는 바탕과 우리 이웃을 새삼스레 돌아보았어요.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두 사람이 쓴 《뱅뱅클럽》(월간사진,2013)은 인종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진 삶터에서 사랑을 지키며 사진을 찍는 고단함과 보람을 알려줍니다. 탈북청소년과 이주노동자와 고려인에 이어 재일조선인과 어깨동무한 김지연 님이 선보인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를 보며 나라이름이란 대수롭지 않고, 오직 마음속 빛을 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안에서 전주로 사진터를 옮긴 김지연 님이 지난 삶 갈무리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은 우리한테 보배는 늘 곁에 있다고 보여줍니다.


  손승현 님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과 강영희 님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와 박진영 님 《Way of photography》(atelier Hermaes,2012)는 여느 책방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들은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특정 책방을 찾아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손승현 님 사진에서는 빛을, 강영희 님 사진에서는 넋을, 박진영 님 사진에서는 숨을 찬찬히 느낍니다. 빛으로 삶을 읽고, 넋으로 삶을 마주하며, 숨으로 삶을 헤아립니다.


  올해에 비로소 알아보고 즐긴 사진책들을 하나씩 떠올립니다. 이 사진책들은 그동안 얼마나 사랑받았을까 궁금합니다. 인병선 님 《짚문화》(대원사,1989)는 삶과 밥과 꿈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기식 님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은 잉카 문명을 구경꾼이나 관광객이나 방관자 아닌 ‘이웃’으로서 만나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아베 사토루 님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은 바로 우리 삶이 사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 《W. William Eugene Smith》(la Fabrica, 2011)와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를 드디어 올해 장만해서 읽습니다. 미국으로 배움길 다녀온 옆지기가 들고 온 유진 스미스 님 사진빛을 바라보며 참 따스하다고 느꼈어요. 유리 꾸이진 님은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로 핵무기와 핵발전소 문제를 낱낱이 밝힙니다. 시마 유키히코 님은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에서 바람과 같이 흐르는 삶과 사랑을 살며시 붙잡는 손길을 보여줍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빛을 느껴 다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이 다 다른 사진은 다 다른 출판사에서 다 다른 손길로 어루만져 다 다른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사진책에서 읽으며 재미납니다. 나도 내 삶을 내 깜냥껏 찍고 엮어 내놓으면 이 재미난 사진책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 들려줄 수 있겠지요. 재미난 삶에서 재미난 사진 태어나고, 재미난 웃음 나누려는 손길에서 재미난 이야기 샘솟습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여느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책) **
이장환 님 《독수리사냥》(삼인,2013)
아라키 노부요시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
김민호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
오오타 야스스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뱅뱅클럽》(월간사진,2013)
김지연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
김지연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


** (따로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특정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책) **
손승현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
강영희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
박진영 《Way of photography》(atelier Hermaes,2012)


** (올해 내가 새로 알아보며 좋아한 사진책) **
인병선 《짚문화》(대원사,1989)
이기식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
아베 사토루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
유진 스미스 《W. William Eugene Smith》(la Fabrica, 2011)
유진 스미스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
유리 꾸이진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
시마 유키히코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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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가며 밥과 집과 옷, 이 세 가지를 늘 건사하고 돌본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밥과 집과 옷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다. 밥도 집도 스스로 장만하거나 돌보지 못하고, 옷조차 스스로 못 지을 뿐 아니라, 빨래마저 못 하기 일쑤이다. 곰곰이 돌아보면,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빨래를 하지 않는다. 기계가 빨래 일감을 맡을 뿐이다. 빨래를 하는 보람과 고단함과 즐거움과 재미가 불현듯 사라졌다. 그림책 《빨래하는 날》은 손으로 빨래하던 삶을 아마 조선 무렵 즈음으로 맞추어 보여준다. 우리 겨레가 예부터 돌보던 빨래살이를 찬찬히 보여주는 예쁜 그림책이다.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그림책인데, 막상 어른들은 이러한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베풀지 않았다. 어른들 스스로 빨래살이와 동떨어진 채 살아온 탓이다. 나라밖 명작그림책만 읽힌들 삶을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먹고 자고 입는 삶을 제대로 보여주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빨래하는 모습을 예쁘장하게 그리기는 하지만, 어딘가 어설픈 대목이 드러난다. 예부터 빨래는 ‘손빨래’이다. 빨래하는 ‘손길’이 제대로 드러나야 한다. 그림책에 나오는 사람들(캐릭터)을 예쁘게 그리기는 했으나, 정작 빨래를 주무르고 깁으며 손질하는 ‘손 모습’이 너무 작다. 여느 그림에서도 손과 발은 얼굴 크기만 하게 그려야 옳은데, 더욱이 빨래 그림책에서 손이 너무 작다. 이래서야 빨래가 무언지 제대로 밝힐 수 있겠는가. 게다가, 늦가을에 이불빨래를 하는데, 나뭇잎에 노란 물이 거의 안 들었다. 냇가에서도 나뭇가지에서 톡톡 떨어지는 잎이 노란잎 아닌 푸른잎이다. 냇둑에서 자라는 풀도 모두 푸른 잎일 뿐, 누렇게 시든 잎이 하나도 없다. 마당에서 피어나는 맨드라미가 구월께에 꽃이 벌어지는 하지만, 가랑잎이 지는 철에도 이렇게 꽃송이가 벌어질까. 기와집인데, 대청마루가 너무 낮다. 기둥을 받치는 돌보다 낮은 자리에 대청마루를 그리기까지 했다. 잘못 그린 그림을 따지면 너무 많다. 판화 기법을 쓰든 어떤 기법을 쓰든 좋다만, 시골집, 시골마을, 기와집, 가을날, 풀과 나무와 꽃, 일하는 사람 모습과 손놀림, 냇가와 냇둑, …… 제대로 살필 대목은 제대로 살피면서 예쁘게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사람들은 빨래살이를 잊었으니 이렇게 손빨래 하던 삶을 새롭게 이 책에서 배울는지 모른다만, 막상 손발을 써서 이불빨래 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아마, 이 그림책에 나오는 잘못된 그림을 알아차리는 이도 드물겠다고 느낀다. 이제는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4346.11.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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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날
홍진숙 글, 원혜영 그림 / 시공주니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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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3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11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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