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36. 2013.11.18.

 


  아이들하고 밥을 먹는데, 큰아이가 문득 무를 들더니 살며시 구부리며 “무지개다!” 하고 말한다. 살그마니 구부리면서 무지개라 말한다. 작은아이는 누나 따라 무를 구부리다가 톡 끊어진다. 끊어진 무를 보면서 “무지개 끊어졌다!” 하고 말한다. 너희는 무 아닌 무지개를 먹는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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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1-21 00:52   좋아요 0 | URL
아~ 애들은 정말 타고난 시인 같아요!!
사랑스런 남매 보기 좋아요!!^^

파란놀 2013-11-21 01:22   좋아요 0 | URL
네, 시인이요 발명가요
아주 놀랍습니다~ ^^
 

까마중나무

 


  우리 집 돌울타리 건너편 밭을 일구는 면소재지 사람이 가끔 돌울타리를 타고 넘어온다. 볼일이 있으면 대문으로 들어올 노릇이지, 자꾸 돌울타리를 밟고 넘어온다. 이러면서 돌울타리가 자꾸 무너지는데, 꽃밭이자 텃밭으로 삼는 곳에서 자라는 푸성귀까지 밟힌다. 지난 늦여름에는 식구들 즐겁게 먹는 까마중을 밟아 넘어뜨렸다. 머리끝까지 뿔이 났지만 넘어진 까마중이 너무 애처롭다. 어쩌나 어쩌나 생각하다가 까마중줄기 살살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어 하고 얘기해 주었다. 그 뒤 까마중은 죽지 않았다. 넘어진 채 새 줄기를 자꾸자꾸 낸다. 넘어진 뒤로도 야무지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찬바람 불며 이제 찬찬히 시들겠지 싶었으나, 이 까마중은 시들지 않는다. 새 잎이 돋고 새 줄기가 더 뻗으며 하얀 꽃망울 더욱 터뜨린다. 십이월이 코앞인 요즈막 까마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넘어진 이 까마중은 까마중‘풀’이라기보다 까마중‘나무’라 할 만하다고 본다. 나무와 같이 꽃을 수두룩하게 달고, 나무처럼 열매 또한 수두룩하게 맺는다. 그래, 너는 우리 집 까마중나무야. 푸른 바람과 숨결과 노래를 들려주는 우리 집 어여쁜 마당나무야.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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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컴퓨터 놓기

 


  인천에 사는 형이 새 컴퓨터를 장만해 주었다. 나는 모니터를 새로 장만한다. 모니터가 집으로 온 뒤 새 컴퓨터 담긴 상자를 뜯는다. 그동안 쓰던 컴퓨터와 대면 본체가 좀 작다. 여기에 하드디스크 두 대를 우겨넣자니 빠듯하다. 예전 컴퓨터에 있던 줄을 둘 뽑아서 이쪽으로 옮겨 본다. 외장하드 껍데기를 벗겨 하드디스크를 빼려 하는데 외장하드 껍데기가 도무지 안 벗겨진다. 이렇게 되면 새 컴퓨터에 하드디스크 둘 붙이지 못한다. 한참 머리를 싸매다가 하드디스크를 새로 하나 장만해서 붙이기로 한다. 외장하드는 그대로 쓰면서, 아이들과 볼 영화를 이곳에 차곡차곡 모아야겠다고 느낀다. 아이들 모습 담은 동영상도 외장하드에 담아야겠지. 내가 찍는 사진은 2테라 하드디스크에 이태나 세 해쯤 담을 수 있을까. 나중에는 외장하드만 따로 두는 본체가 하나 있어야 하리라 느낀다. 그나저나 오늘 주문한 하드디스크가 집으로 와야 비로소 컴퓨터를 제자리에 넣을 수 있다. 컴퓨터책상은 방 한쪽에 바싹 붙여서 두면서 바람막이 구실을 하니, 하루 동안 방 한쪽을 차지해야 한다. 새 컴퓨터에는 한글 풀그림이 없다. 예전 컴퓨터에 깔던 한글 풀그림 시디를 온 집안 뒤지며 찾지만 안 나온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웃돈을 얹어 새 풀그림을 산다. 왜 이렇게 풀그림 시디를 제대로 못 건사하면서 지낼까. 그래도, 필름스캐너 시디는 용케 안 잃고 잘 있다. 이제 새 컴퓨터는 사진을 만지거나 한글문서 만질 적에 조금 더 빠르겠지. 형이 보내준 선물로 글을 쓰고 사진을 만질 수 있구나. 아주아주 고맙다. 아침부터 낮 네 시 넘도록 새 컴퓨터 만지느라 아이들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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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씨앗 꽃대

 


  우리가 먹는 쌀은 볍씨이다. 우리들은 늘 볍씨를 먹는다. 볍씨에서 껍질인 겨를 벗기면 쌀이 되고, 쌀을 물에 불려 끓이면 밥이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흙을 만지지 않으니, 겨를 벗기고 씨눈까지 깎은 새하얀 쌀만 보고, 아이들은 아예 쌀조차 만질 일 없이 하얗게 고슬고슬 김이 나는 밥만 보기 일쑤이다.

 

  쌀을 심으면 싹이 안 난다. 쌀도 씨앗이지만, 씨눈을 깎은 쌀알은 씨앗 구실을 못한다. 더구나 껍질인 겨를 벗겼으니 싹이 틀 수도 없다. 볍씨란 씨눈뿐 아니라 겨까지 함께 있는 씨앗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밥을 먹지만, 정작 씨앗이 될 만한 열매가 아닌 씨앗이 되지 못하는 열매만 먹는 노릇이라 할 만하다.


  쌀도 밥도 벼도 볍씨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인 터라, 쌀이 될 벼가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줄 모른다. 쌀이 되는 벼알이 다닥다닥 수북하게 맺히는 줄기는 하나이다. 가느다란 줄기 하나에 벼알이 수북하게 맺히기에 줄기는 고개를 숙인다. 너무 무거우니까. 다른 웬만한 줄기는 씨앗인 열매가 맺혀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찬찬히 따지면, 씨알을 먹으려는 풀은 사람들 손으로 고치고 다스리면서 씨알이 더 굵도록 했고, 잎사귀를 먹으려는 풀은 꽃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잎사귀만 잘 퍼지도록 고치고 다스렸지 싶다.


  벼알을 벤 뒤에는 볏줄기가 꼿꼿하게 선다.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참말 꼿꼿하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 볏줄기, 곧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신을 삼고 지붕을 이으며 바구니와 멍석과 섬을 짰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알뜰히 건사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어느 것에도 마음을 안 두느라, 벼껍질인 겨도 벼꽃대인 볏짚도 아무렇게나 팽개친다. 소한테 먹이면 그나마 낫지만, 거의 모든 논이 농약과 비료로 흠뻑 젖으니, 소가 겨나 볏짚을 먹더라도 농약과 비료를 먹는 셈이다.


  늦가을 부추꽃대를 바라본다. 씨주머니 터지며 씨앗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안 떨어진 씨앗이 제법 많다. 꽃대도 씨주머니도 바싹 마르고 누렇게 시들었는데 안 꺾인다. 드세거나 모진 바람이 불어도 부추씨앗 꽃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날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저 가냘픈 꽃대는 씨앗을 모두 떨굴 때까지 꼿꼿하게 버틴다. 물기 하나 없고 누렇게 시들었지만 씨앗이 모두 흙으로 떨어질 때까지 씩씩하게 선다. 어버이 마음일까. 어머니 넋일까. 아버지 꿈일까. 누렇게 시든 부추꽃대 곁에 새로운 부추싹 돋는다. 가을볕 여러모로 따스한 남녘땅에서는 아마 지난해 흙땅에 드리웠음직한 씨앗에서 새 부추싹 돋는다. 얘들아, 너희는 참 놀랍구나. 너희는 참으로 야무지구나. 너희 잎사귀를 뜯어먹는 우리들도 너희한테서 놀랍고 야무진 기운 얻을 테지. 너희를 곁에 두고 언제나 지켜보는 우리들도 너희한테서 아름답고 싱그러운 사랑 얻을 테지.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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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이야기책

 


  ‘무민’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이렇게 쏟아진 적이 없었다. ‘무민’ 이야기는 1970년대부터 하나둘 한국말로 나오기는 했으나, 그리 널리 사랑받지는 못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알 만한 사람 가운데에도 모르기 일쑤인 이야기가 ‘무민’ 이야기책이었다.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반도 나라들은 ‘무민’ 이야기책을 몹시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한국에서는 좀처럼 무민 책이 나오지 못했고 읽히지 못했다. 그런데 2013년 막바지에 갑작스레 ‘무민’ 책들이 여러 갈래로 나온다. 반가우면서 살짝 무섭다. 아무리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이라 하더라도 어떤 바람, 이를테면 방송에 뭔가 나온다고 하는 바람을 타지 않고는 태어날 수 없는가? 어느 연속극에 나온다고 하면서 갑작스레 엄청나게 팔린다는 어느 그림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야 책이 뭐가 되는가. 책은 책인데, 책을 책 아닌 ‘돈벌이 되는 장삿속’으로만 따지면 어찌 되는가.


  곰곰이 돌아본다. 나는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책마을에 발을 디딘 터라, 내가 일하는 출판사 책들 많이 팔아치우려고 ‘가판’을 참 많이 했다. 가판을 나가면 하루에 적어도 100만 원어치 넘게 팔아야, 아니 들고 나온 책들 9/10는 팔아야 마음이 풀렸다. 처음에는 출판사 사람들이 하루 100만 원은커녕 50만 원만 팔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200만 원어치 팔지 않고는 마음에 차지 않기도 했다.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서 책을 팔려고 얼마나 침을 튀기며 책을 떠벌이고 알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름다운 책은 내가 굳이 안 떠벌여도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산다. 에누리 한 푼 하지 않고 고스란히 산다. 아름다운 책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떠벌이며 책을 팔다가도, 저녁에 밥과 술을 먹으며 돌아본다. 내가 떠벌여서 파는 책과 책손이 스스로 넌지시 골라서 사는 책하고, 어느 책이 책답게 사람들 가슴으로 스며드는가 하고 돌아본다.


  출판사에서 광고를 하며 책을 팔 수 있다. 광고가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책을 알아보는 사람은 광고 때문에 책을 알아보지 않는다. 오로지 책 하나 때문에 책을 알아볼 뿐이다.


  ‘무민’ 이야기책은 광고로나 신문 기사로나 무엇으로나 한대서 널리 팔릴 만한 책이 아니다. 오직 이 책에 깃든 삶과 넋과 사랑으로 읽힐 만한 책이다. ‘무민’ 이야기책이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왜 그렇게 사랑받을 만한가를 놓고 내 앞에서 한 시간 남짓 신나게 말밥 풀어놓던 외국어대 스웨덴어학과(스칸디나비아어학과) 옛동무가 생각난다.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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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21 00:46   좋아요 0 | URL
이중섭 님의 책도 어느 연속극에 나와서 많이 팔리는 것 같더라고요.
‘무민’ 이야기책을 오래전에 아셨군요. 관심 갖겠습니다.
최근에 만화책을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만화도 진화했구나 싶더라고요.
글이 많지 않으나 생각하는 자세의 방법을 배웠어요.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책은 다 배울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읽은 것 중 시시한 책은 없었어요.^^

파란놀 2013-11-21 01:22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만화책을 꾸준하게 소개하거나 알리는 매체는 없다시피 하지만...
눈을 밝히면 잘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러고 보면, 만화책을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저 스스로 만화책을 자주 이야기하는구나 싶기도 하네요~ ^^

무민 동화책이나 만화책도,
또 토베 얀손 님 수필책도
퍽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