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모기 물린 낮잠

 


  모기는 왜 아이들을 더 좋아할까. 아이들 피가 더 맛날까. 아이들 좀 물지 말고 내 팔다리를 물면 물렸다 싶을 적에 찰싹찰싹 때려서 잡을 텐데. 아이들은 모기한테 물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곯아떨어진다. 얼굴에 얼룩덜룩 모기 물린 자국이 그득하다. 이런 모습을 보는 이웃들은 모기약을 뿌리라고 한 마디씩 하지만, 모기약을 뿌리면 그 살충제가 다 어디로 갈까. 4347.3.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작은아이가 아직 기어다닐 무렵 모기 물린 얼굴로 낮잠 자던 모습을 새삼스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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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50. 논둑놀이 아이 (2012.5.30.)

 


  시골에 살지만 우리 땅은 아직 없어 논일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 땅이 아니더라도 온통 논과 밭이니, 어디이든 마실을 다닌다. 대문만 열어도 코앞에 있는 논을 바라보고, 집 뒤로는 모조리 밭이다. 머잖아 우리 논을 얻으면 그때에는 손모를 퐁퐁 심을 수 있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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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61. 2012.5.30.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젖살이 빠진다. 두 살 네 살 여섯 살을 지나고 여덟 살 열 살이 되는 동안 볼이며 팔뚝이며 다리이며 통통한 빛이 차츰 사라진다. 몸과 팔다리가 곧게 뻗는다. 무엇을 먹고 이렇게 예쁜 몸이 되니? 너희들은 밥만 먹으면서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몸으로 자라니? 입안 가득 맛있는 밥을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기에, 날마다 새롭게 자랄 수 있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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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60. 2012.5.13.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혼자서 수저질을 잘한다. 큰아이와 함께 노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면서 이 아이들이 어느새 이만큼 자랐는가 새삼스레 돌아본다. 작은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큰아이와 훨씬 오래 어울리면서 놀았을까. 작은아이가 태어났기에 큰아이는 더 재미나게 놀면서 하루를 빛낼 수 있을까. 아이들이 깊이 잠든 밤에 부엌에서 쌀을 헹구고 설거지를 한다. 땅밑물을 쓰기에 설거지를 늘 조금씩 남겨 밤에 물을 끌어올리곤 한다. 밤에도 한두 차례 물이 흘러야 아침에도 쓰기에 좋다. 아침을 차리자면 앞으로 너덧 시간쯤 남았지만 오늘은 무슨 밥을 차리며 아이들을 즐겁게 할까 하고 헤아려 본다. 문득 예전 모습을 그린다. 작은아이가 한창 젖떼기밥을 먹을 즈음 큰아이는 혼자 밥상을 받곤 했다. 작은아이를 달래고 어르느라 큰아이한테 미처 손을 못 쓸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때에도 큰아이는 혼자 받는 밥상을 씩씩하고 대견스레 받아들여 주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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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직역, 의역, 오역, 번역투, 창작

 


  작가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알아채지 못하면 번역이 엉터리가 되겠지요. 왜냐하면, ‘직역’은 직역일 뿐 번역이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문장을 ‘의역’으로만 옮기면, 이때에는 번역이 아닌 창작이 됩니다. 작가가 들려주려는 이야기가 아닌 번역가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로 바뀌어요. 직역이 되든 의역이 되든 둘 모두 ‘오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고 만다고 느낍니다. 번역은 번역이 되도록 할 일입니다. 직역도 의역도 아닌 번역을 해야지요.


  번역을 하려면 무엇보다 제 나라 말을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어를 잘 안다 하더라도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면, 번역가는 영어로 된 책을 잘 읽고 헤아렸어도 이 책을 한국말로 읽을 독자한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합니다. 외국말과 함께 한국말을 잘 알아야지요. 게다가 외국말만 잘 알아서는 안 되고 외국 문화를 나란히 알아야 하며, 한국 문화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골고루 헤아리면서 짚을 수 있는 눈길과 마음결일 때에 비로소 번역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외국말을 전공해서 번역하는 사람이 꽤 많기는 해도, 막상 한국말을 함께 슬기롭게 익혀서 번역하는 번역가는 뜻밖에 퍽 적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쓰는 ‘비유’를 번역가가 공부하지 않으면, 번역이 엉터리가 될 테지요. 작가가 쓰는 말투를 살리지 않고 번역가가 쓰는 말투를 쓴다면, 이때에도 번역이 아닌 의역이 되어요. 상품 해설서를 한국말로 적는 일이 아니라면,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번역한다면, 마땅히 작가를 잘 알아야 하고 작가가 살아온 터전을 살펴야 하며 작가가 태어난 나라가 어떤 문화요 사회인가를 차근차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흔히 떠도는 서평을 헤아려 봅니다. 서평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품 해설서와 같은 서평을 하면, 이러한 서평은 책과 작가를 제대로 읽어서 말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궁금해요. 수많은 서평은 상품 해설서에서 맴돌지 않느냐 싶습니다. 작가 한 사람이 책을 낸 뜻, 작가 한 사람이 살아온 길, 작가 한 사람이 이녁 보금자리에서 가꾸는 빛 들을 골고루 짚으며 헤아릴 때에 비로소 ‘상품 해설서 아닌 느낌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번역투가 나타나는 까닭은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면서 상품 해설서와 같은 번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올바로 배우고 슬기롭게 가다듬는 이라면 번역투로 번역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번역을 하겠지요.


  창작을 하는 사람도 한국말을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레 익혀야 합니다. 독자한테 ‘상품 해설’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나라 이웃인 독자(한국사람)가 즐겁게 알아듣고 아름답게 받아들이며 사랑스레 삭힐 수 있도록 한국말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제대로 읽을 때에 제대로 씁니다. 제대로 쓸 때에 제대로 읽습니다. 제대로 볼 적에 제대로 살아갑니다. 제대로 살아갈 적에 제대로 봅니다. 언제나 함께 맞물리면서 이루는 삶이고 넋이며 빛입니다. 삶과 넋과 빛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태어나는 책입니다. 4347.3.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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